지난 토요일 오랜만, 아니 몇 년만인 거 같은데 

글벗들이랑 하동 북천과 평사리를 다녀왔다.

날씨가 어찌나 좋은지 한껏 파란 하늘에  무심히 떠 있는 흰 구름, 마냥 좋았다.

북천역을 먼저 갔는데 예전의 그 간이역이 사라진 거다. 이럴 수가. 너무 아쉬웠다.

그런 건 좀 그대로 두면 안 되나. 코스모스도 예전처럼 그렇게 많이 안 보이고 

라라북천,이라는 카페가 새로 생겨서는 루프탑 공사진행 중이고 이젠 어딜 가나

그렇게 풍경이 변해가고 있다. 



이병주문학관에는 우리 말고는 사람이 아무도 없었다.

2008년 개관한 이후 세월이 많이 흘러 동판 지붕이 그동안 더 멋스러워졌다.

정면 양쪽에 펜대와 문학비는 새로 한 거 같은데 펜대은 없는 게 나을 뻔.

건물 자체의 멋스러움이 반감되었다. 아쉽다 ㅠㅠ 

건물 주변의 고즈넉한 정취가 말할 수 없이 좋은 거다.

공기가 참 맑았다.





하동에서 출생한 나림 이병주 소설가는 1921년 태어나 1992년 세상을 떴다. 와세다대학 불문과 재학 중 학병으로 끌려갔고 광복 후 귀국했다. 40중반에 등단하여 27년 동안 장편과 작품집만도 60권이 넘게 발간하고 한국 현대문학사의 중요한 성과를 이룬 작가로 평가받는다.  1970년대 '지리산', '산하'를 비롯해 가장 정력적으로 창작하였는데 1965년 등단 소설 <소설 알렉산드리아> 부터 여러 책이 한길사에 요렇게 때깔좋게 나와 있다. 드라마 '지리산'은 기대보다 흡입력이 별로라 첫 회를 보면서 일단은 접기로 했고(일단 계속 깔리는 음향이 어마무지 거슬렸다) 이병주의 '지리산' 한길사편을 찜하며... 서체도 마음에 드네.


















오래전에 이병주문학관을 다녀와서 쓴 글을 그대로 옮겨둔다. 




나폴레옹 앞에는 알프스가 있고 내 앞에는 발자크가 있다.’

 

  나림(那林) 이병주(李炳注1921~1992)가 문학수업을 받던 대학시절 책상 앞에 써놓았던 글귀다. 전 생애를 통해 정복해야 할 산()으로 발자크를 세운 점에서 소설가로서 그의 충천한 기대와 야심을 엿볼 수 있다.


  발자크(Honore de Balzac, 1799~1850)19세기 프랑스 문호로 사실주의 소설의 창시자다. 프랑스 혁명 이후 전쟁과 산업혁명, 자본주의가 진행되던 격동의 시대를 적나라하게 보여준 그는, 냉혹하고 천박한 욕구로 들끓는 등장인물을 내세워 인간 내면의 욕구와 시대의 본질을 총체적으로 그려낸 최초의 작가로도 손꼽힌다. 작가 자신의 파란만장한 삶, 리얼리스트로서의 작가적 내면, 거대한 상상력으로 시대와 문학의 연()을 작품 속에 풀어낸 점에서 발자크는 이병주의 롤모델이었다. 발자크는 하루 50잔의 커피를 마시며 상당한 량의 원고를 써내려간 작가로도 유명하다. 이에 못지않게 이병주는 하루에 원고지 이백여 장, 한 달 평균 일천여 매의 원고지를 집필한 다작(多作)의 작가다.


하늘도 청명한 구월의 어느 하루, 한적한 고속도로를 타고 남강휴게소를 지나는 동안 가을 풍경이 느리게 이어졌다. 황금물결로 일렁이는 벼가 농부의 손길을 기다리고 사천천을 지나 서포 위로 달리는 해발 4백 미터의 길에는 노랗게 물든 모과가 정겨운 얼굴로 매달려 있었다. 나지막한 산이 한아름에 안길 듯 덤벼들었다. 오래 전에 북천초등학교를 졸업한 선후배간 시인 두 분의 재미있는 이야기에 웃음 지으며 곤양인터체인지로 내렸다. 사천 국도에는 코스모스가 가녀린 몸매로 꽃무리를 짓고 억새가 찬연한 햇살 아래 출렁였다. 길가에 아무렇게나 자라 있는 옥수수가 그리 크지 않은 키에 강단 있어 보였다. 가을은 이렇게 바람에 흔들리는 것들로 무르익는다.


  다솔사로 가는 길이 보이고 곤양천을 지나 이병주문학관 7km’라는 이정표가 반가웠다. 원전마을 신해사 이정표를 지나면서부터 허수아비와 장승들이 마중 나와 있었다. 정면에 보이는 산자락 세 개 중, 두 번째 자락의 구곡산 아래에 이병주 작가가 살던 마을이 있다고 한다. 고향 시인이 곁들여준 말씀이다.


  북천초등학교 앞 들판에는 누렇게 익어가는 벼 대신 코스모스가 흐드러졌다. 코스모스는 그리스어 kosmos에서 유래하여 조화, 아름다움, 장식을 뜻한다. 학명(Cosmos Bipinnatus)을 풀이하면 날개를 겹치고 있는 꽃이다. 여덟 장의 여린 꽃잎들을 동글게 모으고 춤을 추듯 바람에 몸을 맡기고 서 있는 코스모스의 꽃말은 소녀의 순정, 애정이다. 신이 가장 먼저 만들었다는 꽃! 순정이 그렇듯, 불완전하고 미완성의, 그래서 더 보듬어줘야 할 것 같은 꽃, 애잔하다. 이병주 작가와는 어울리지 않을 듯한 꽃이 지천으로 피었다.


  문학관에 들르기 전, 북천 코스모스 역을 지나 3회 하동 북천 코스모스 메밀꽃 축제단지(2009. 9.18~10.4)’에 먼저 들르기로 했다. 뽀얗게 부푼 메밀꽃밭이 코스모스꽃밭과 어우러져 화사하고 부드러운 풍경을 자아냈다. 행사장에는 흥겨운 음악이 울리고 여러 군데 천막이 쳐 있고 홍보 부스가 마련되어 있었다. 한 곳에 들어가 메밀묵과 메밀국수를 주문했다. 잣나무가 심긴 이명산 자락이 포근하게 감싸주는 북천마을은 아늑하고 편안한 느낌이었다.


  마음도 배도 부른 우리는 꽃단지와 안녕하고 가까운 문학관으로 차를 돌렸다. ‘이병주문학관 2km’ 이정표가 장승처럼 우뚝한 곳에서부터 야트막한 오르막길. 길가에 벚나무 초록 잎이 갈색으로 하나 둘 옷을 갈아입고 있었다. 이상하게도, 바람에 이리저리 날리는 잎사귀들이 허망하게 느껴지지 않았다. 화사했던 봄날은 시간의 뒤안길로 사라졌지만 회생의 시간을 꿈꾸며 굳건히 서 있는 나무, 생명력의 진리를 믿고 지난한 생을 견뎌온 사람들이 그 곁에서 함께 살고 있음이다. 조금 올라가면 오른쪽으로 이명마을회관이 수령이 많아 보이는 벚나무를 앞세우고, 그 옆으로는 돌담 위에 황토담을 쌓아올린 시골 옛집 담장에 샛노란 호박꽃이 시들시들 피어 있었다.

 

  억새들이 바람을 조용히 일으키는 길을 따라 올라갔다. 곤북로 1035, 파란 철대문 옆에 나림정이라는 조금만 쉼터가 있다. 20078월 세워진 것. 이병주의 호를 따서 이름 지은 것만 봐도 고향 문학인, 이병주에 대한 마을사람들의 자부심이 느껴졌다.


  하동군 북천면 직전리 이명골길에 자리한 이병주문학관은 20084월에 개관했다. 나림정 맞은편, 문학관 들머리에서 우스꽝스럽게 입혀놓은 허수아비들이 길게 열을 지어 우리를 맞이한다. 시골 아주머니, 수줍은 새댁, 댕기머리 숫처녀, 넥타이를 맨 신사, 군복 입은 사내까지.


  이명산 산기슭에 호젓이 서 있는 문학관은 한눈에 보아도 세련된 젠 스타일이다. (Zen)()’으로 번역되는데 청명함, 여유, 여백의 미를 강조하며 정신적, 명상적, 자연주의적 경향을 추구하는 스타일이다. 왼쪽으로 좁지 않은 주차장, 오른쪽으로 2층의 문학관 건물이 앉아 있다. 현판을 중심으로 잿빛 커다란 피라미드형 동판 지붕이 원목 벽의 건물을 아늑하게 덮고 있다. 동판은 빛에 바래면 더 멋들어진다고 한다. 나무 바닥 테라스에는 나무 벤치와 탁자를 내어놓아 환담을 나눌 수 있게 해두었고 그 앞의 빨간 가림막이 악센트로 산뜻하다. 자연 그대로의 재료에 현대미를 가미하여 절제된 건축 미학이 돋보이는 건물이 마음에 쏙 들었다. 1층과 2층에 각각 창작실을 두어 일반인과 학생들을 위한 문학수업과 다양한 체험학습을 돕고 있다고 한다.

 

  앞마당엔 몇 개의 비석이 낮게 서 있고 작가의 유명한 글귀들이 새겨져 있었다. 문학관으로 들어서자 왼편에 전시관이 있고 그 앞에서 주최 측 사람들이 다과와 차를 대접하며 방문객을 맞고 있었다. 오른쪽으로 강당, 그 앞에 있는 화장실에 들어가자 벽에 붙어있는 작가의 글귀를 또 만날 수 있었다.

 

     우리에겐 청춘은 없었다. 청춘엔 광택이 있어야 하는 거다.

    진리에 대한 정열로써, 포부를 가진 사람의 자부로써,

    뭐든 하면 된다는 자신으로써 빛나야 하는 건데,

    우리에겐 아니 정확하게 말하면 내겐 그런 것이 없었어. - 산하

 

  올라오면서 본, 바람에 가벼이 흩날리던 황갈색 벚나무 잎이 떠올랐다. 역설적 의미의 허무주의를 감지하며 어떠한 이데올로기보다 앞서야 하는, ‘인간에 대한 참을 수 없는 애정과 저변에 흐르는 낭만적 상상력의 도저한 강물이 연상되었다.

 

  ‘정치란, 그리고 혁명이란 슬픔을 감소시키기 위해 있어야 하는 것이 아닐까.’

 

  3공화국의 부당성을 비판하며 한국 현대사를 재구성한 1982년도 작품 그해 5의 글귀다. 어떠한 주의도 사람의 행복에 우선해서는 안 된다는 휴머니즘을 읽을 수 있다. 실제로 그가 말년에 지병으로 고통 받으면서도 효성을 발휘하려는 아들에게 베푼 자상함과 의연함은 그의 부성애가 얼마나 깊고 그윽한지 보여주는 것이다


  사단법인 이병주기념사업회가 주최하는 이병주하동국제문학제는 올해로 3회째다. 2007년 시작한 이래 2008년부터는 이병주국제문학상을 포함하여 시행함으로써 명성 있는 국제문학제로 정착하고자 한다. 문학도시 하동의 자긍심을 고양하고 지역적 특성을 홍보하는 계기도 되는 이 문학제는 이병주 작가의 시대사적 가치를 통해 역사와 문학의 필연에 대해 되짚어보며 지성적 전통과 문학적 가치를 되짚어보는 기회가 되는 것이 목적이다.

 

  오후 3시에 시작하는 개회식 및 문학강연회에 참석하기 위해 강당으로 들어갔다. 삼각형으로 높이 솟은 천정은 나무의 결과 색을 그대로 살려 시원한 느낌을 주고 여러 개의 작은 창들이 자연 채광으로 밝고 온화한 실내 분위기를 살려주었다. 유족대표 경성대 일어일문학과 이권기 교수의 소박한 인사말을 뒤로 문학강연회가 열리는 동안 나눠받은 책자들을 훑어보고 그의 데뷔작 소설ㆍ알렉산드리아를 읽어볼 생각에 부풀었다. (집에 돌아와 단숨에 읽었다.)


  마흔에 데뷔한 박완서보다 더 늦게, 이병주는 마흔넷에 등단한 늦깎이 소설가다. 하지만 그의 글쓰기는 자칭 저널리즘의 노동으로서 이미 그 이전에 출발하였다. 일찍이 내일 없는 그날(1954)로 부산일보에 최초의 연재소설을 내보였고, 그것이 처녀작이다. 당시 국제신보의 논설주간으로 칼럼 등 왕성한 집필 활동을 하던 그가 소설(小說)로 쓴 이 연재소설이 갖는 의미는 크다. 일제강점기 학병의 트라우마를 훗날 스스로 노예사상으로 불렀던 그가 자신의 주인화 과정 중 제3단계를 가능하게 한 숨겨진 무기로 해석된다. 이 작품은 거듭 실패한 저널리즘 노동의 유일한 탈출구가 되어 이병주 글쓰기 노동의 원점이자 회귀점이라고 평가 받는다.

 

  어떻든 타고 남은 재가 다시 기름이 된다는 사상엔 구원이 있다.’

 

  등단작소설ㆍ알렉산드리아(1965)는 당시 소설계에서도 그랬지만 내게도 하나의 이변이었다. 이국의 정취와 구원의식, 편지글을 통한 액자 구성, 성격이 치밀하게 묘사되기보다 전형으로 보이는 피상적 인물들, 일인칭 화자의 보조적 존재감, 관념적 서술, 역사와 인간과 이데올로기 자체가 주인공으로 내세워진 것 같은 작가적 사명감에의 충만함. 이는 이후의 작품들에 원형으로 역할, 주제와 형식면에서 그 특징이 반복하여 제시된다. 나는 작품 속 화자 형의 말을 빌려 피카소의 게르니카를 설명하는 대목에 주목했다.

 

     사실적 수법으로 에센스를 묘사할 수 없지 않아요? 사실 이상의 사실,

    상상 이상의 상징, 게르니카를 비롯한 인간악적 사건 전체에 통하는 심오한

    의미가 나타나 있지 않습니까. (중략) 이건 게르니카의 의미를 그린 것이

    아니라 바로 의미 그것이라고……. - 소설ㆍ알렉산드리아, 바이북스, 71

 

 

  소설 속 화자의 형은 다소 모순에 차 있는 작가 자신의 분신이다. 필화사건으로 감옥에 갇힌 그는 비루한 세계에 정신적 황제로서 고고하고자 했던 작가를 대변한다. 1961년 작가의 논설 조국은 없고 산하만 있다에 대해 혁명재판소가 그 책임을 물어 10년형을 선고 받지만 다행히도 27개월의 복역을 마치고 출감하게 된다. 19631216일의 일이다.


  감옥에 있는 동안 그는 사마천의 사기를 정독하고 역사의 올바른 기록자가 되고자 다짐했다. 훗날 정사(正史)의 모범이 된 이 책은 다른 정사와는 달리, 객관적인 역사의 구성보다 오히려 서술하고 있는 역사상의 인물들에게 도덕적인 평가를 내리고 특징에 따라 유형화해 어떤 인물의 본보기가 될 만한 행동을 한 장()에서 기록했다. 그가 역사에서 이끌어낸 교훈은 다양한 것이었는데, 때로는 서로 모순되는 것들도 많았다고 한다. 그런 점에서 이병주가 출감 후 쓴 이 작품에 소설이라는 전제를 붙인 것은 올바른 기록으로서의 문학을 강조하며 명제화한 것으로 보인다. 그의 올바른 기록이란 아래와 같은 문학관에 중심을 둔다.

 

    기록이 문학으로서 가능하자면 시심(詩心) 또는 시정(詩情)이 기록의 밑바닥에

    지하수처럼 스며있어야 한다는 것이 나의 문학이론이다. 그래야만 설득력과

    감정이입이 함께 가능하다고 믿고 있었던 것이다. - 겨울밤

 

역사는 산맥을 기록하고 나의 문학은 골짜기를 기록한다.’

  

  그의 역사관과 문학관을 대변하는 인상적인 문장이다. 역사의 그물로 포획할 수 없는 삶과 인간의 진실을 문학이 표현한다는 확고한 시각은, 1992년 지병인 폐암으로 타계할 때까지, 역설적 모순과 생경한 매혹, 범속과 탁발의 경계를 넘나들면서  80여 권의 작품을 남기는 초인적인 정열을 태우게 했다. 그의 정열은 좌우 어느 곳에도 속하지 않는 무정부주의적 자유정신과 회색인의 허망함에 속하는 듯하다.

 

 1979년 발표한 지리산에서 그는 정열을 이렇게 울부짖고 있다.

 

아무튼 불행한 나라야. 민족의 수재라고 할 수 있을지 모르는 사람들이 허망한 정열에

  불타서 죽고, 죽어가고 있고, 계속 죽어야 하니까 말이다. 아아, 허망한 정열!

  (중략) 분노도 또한 정열이다. 사람은 분노만으로도 역경을 견딜 수 있다.

  - 나는 죽을 수 없으니까 죽는다. -지리산

 

  문학평론가 김종회는  ‘운명... 그 이름 아래서만이 사람은 죽을 수 있는 것이다. - 관부연락선

(1968)’고 한 이병주에게 이런 질문을 던진 적이 있다고 술회했다. “역사적 기록의 신빙성에 대해 어떻게 생각하느냐?”는 것. 그때 그는 서슴없이 역사는 믿을 수 없는 것이라는 답변을 내놓았다. 표면상의 기록으로 나타난 사실과 통계수치로는 시대적 삶의 노정한 질곡과 그 가운데 스며있는 사람들의 뼈아픈 사연들을 제대로 반영할 수 없다는 말이었다. 현실을 냉정하게 인식하려는 욕망과 세계를 낭만적으로 감각하려는 욕망의 교차가 이병주 문학을 매혹적이게 하는 지점이라면 역사가 생명을 얻자면 소설의 힘, 문학의 힘을 빌려야 한다. -바람과 구름과 비()(1978)’는 말에 나는 많은 부분 공감한다. 역사는 과거가 아니라 현재에 서서 재평가되어야 하고 미래를 향해 부활되어야 함이다.

  

  태양에 바래면 역사가 되고 월광에 물들면 신화가 된다.’

 

  이병주 아포리즘의 백미(白眉). 하동군 북천면은 아름답다는 말로는 부족한 섬진강물을 끼고 굽이굽이 근현대사의 질곡이 아로새겨진 지리산의 품속에 자리한다. 골짜기마다 역사의 마디마디 못이 박인 이 고장은 어쩌면 광활한 이야기의 탄생이 숙명처럼 예정된 곳인지도 모른다. 역사는 퇴색할 수 있어도 결코 끝나지 않는다. 작가의 혼으로, 이야기의 혼으로 새겨진 역사는 재해석과 재구성으로 부활하여 영원한 신화가 된다. 비로소 진실이 된다.

 

    아아, 이 산하(山河)! 이 땅에 생을 받은 사람이면 좋거나 나쁘거나 잘났거나

    못났거나 모두 이 산하로 화하는 것이다. - 산하(1985)

 

 

  알면 사랑하게 된다는 말은 일부만 맞다. 사랑하면 알고 싶어진다는 말이 더욱 맞다. ‘안다이해한다와 동의어다. 이날 행사에서는 방문객이 많아 전시실을 꼼꼼히 둘러보지 못해 아쉬웠다. 소설ㆍ알렉산드리아에 매료된 나는 시월 조용한 때에 홀로 전시실을 다시 찾게 되었다. 고난의 세월을 호활한 문필로 승화한 걸출한 작가, 그에 대한 연민에 발길이 당겼다는 말이 더 옳다. 그새 코스모스는 많이 졌고 벚나무 잎사귀들은 색이 더욱 바랬지만 눈부신 가을 하늘 아래 정겨운 허수아비들이 여전히 반색하며 맞아 주었다.


  전에는 보이지 않더니 이제야 보이는 것들, 그런 것들이 살갑다. 마음의 눈을 뜨면 세상은 넓고 사람은 밝게 보인다. 전시실 지붕 추녀 끝에 물고기 모양의 작은 풍경(風磬)이 달려있다. 손끝으로 두어 번 튕겨보니 명징한 소리가 난다. 아담한 전시실 안은 전체적으로 둥근 모양을 하고 연대순으로 네 구역으로 이어져 방대한 작품을 남긴 작가를 총체적 시각으로 만나볼 수 있게 배려하고 있다. 입구에서 방명록에 이름을 쓰고 들어서면 작가의 분신 같은 몽블랑 만년필이 탑처럼 우뚝 서 있다. 한가운데에는 지리산의 한 장면을 디오라마로 만들어 마치 영화의 한 장면 같다. 그 위로는 세로쓰기 한 친필 원고지들이 원을 그리며 붙어 있다.

 

  1구역은 1921년에서 1963년까지로, 고뇌하는 학병시절을 겪은 노예로서의 자유에 대한 절망감을 냉전시대의 자유인, 황제로서의 비자유인으로서 벗고자 한다. 그의 세계관과 역사관의 기저를 엿볼 수 있었다. 2구역은 1963년부터 1978년까지로 본격적으로 소설 집필에 매달린 시기다. 민족적 거대한 좌절의 기록인 관부연락선, 광복 후의 빨치산과 사회주의 운동을 조명한 대하소설 지리산을 비롯하여 매혹적인 초기 단편들 겨울밤, 예낭풍물지, 마술사등도 이때 탄생한다. 3구역은 1979년에서 타계할 때까지의 기간으로 서재에 이만오천 권의 책을 두고 괴력의 집필을 한 시기다. 한국현대사를 재구성한 그해 5산하, 소설로 쓴 세태풍속사 행복어사전이 등장한다. 서재에 앉아 만년필로 원고지에 글을 쓰고 있는 디오라마가 제4구역과의 사이에 자리하는데 책상 위에 쌓여있는 책들 중 마르크스주의에 대한 책이 눈에 띄었다.


  그를 두고 흔히 박학다식박람강기라는 수식어를 붙인다. 방대한 독서세계와 함께 동서양의 해박한 지식과 철학, 다양한 언어에 대한 이해가 유려하면서도 중후한 문장력과 더불어 이야기 전반에 녹아있다. 동서고금을 아우르는 지식과 남성적 역사관이라는 줄기에 낭만적 통찰력이 빛을 발하는 문장으로 독자층이 두터운 이야기꾼. 최근작도가니로 호평을 받는 공지영 작가는 이미 20대에 이병주 문학에 매료되어 밤을 새워 그의 책을 탐독했다고 한다.


  한길사에서 30권으로 대표작을 모은 이병주문학전집이 새로 나와 있다. ‘행복에 기여하지 않는 이데올로기가 무슨 쓸모인가라고 회의적 질문을 던지는 기막힌 현실인식과 무엇보다 앞서는 절대적 인간애, 노예의 자유보다 황제의 자발적 비()자유를 선택한 진정한 자유정신을 읽고 싶다면, 골짜기마다 스며들어 신화의 역사를 쓴 월광의 펜촉을 느껴보고 싶다면 이 전집을 새로 읽어보는 것도 좋을 것이다.

  구월이 꼬리를 감추어가던 그날, 문학관에서 나온 우리 일행은 해거름 섬진강가에 앉았다. 사위가 회색으로 물들어갈 때면 세상도 사람도 순해짐을 느낀다. 어둠이 야금야금 빛을 덮더니 정박해 있던 고기잡이 작은 배마저 한순간에 보듬어버렸다. 비로소 세상이 잠들고 이야기가 깨어난다, 상현달빛 아래 강물 위로 스멀스멀.


  회색! 이병주는 역사적 허무주의와 댄디한 망명의식으로 회색이라는 질타를 일부 받기도 했다. 하지만 회색의 고뇌, 강인함과 관대함, 내적 생명력을 아는가. 회색은 평화를 옹호하고 인간을 미치도록 사랑한다. 빛보다 어둠이, 드러냄보다 은근한 감춤이 진실에 더 가까운지도 모른다. 일광보다 월광이 미더운 것은 그런 연유일 테다. 불현듯 질박한 고고함을 감추는 듯 드러내는 조선의 투박한 달항아리가 가슴속 거대한 빛으로 떠 올랐다. @

 

 

- 계간 <여기> 2009년 겨울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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stella.K 2021-10-27 14:42   좋아요 4 | 댓글달기 | URL
아유, 언제 또 이런 글을 쓰셨습니까?
사실 이병주 선생은 정말 대단한 문학인이신데 그동안
박경리, 이청준, 박완서 선생 보다 덜 알려진 것 같아 좀 아쉬움이 남더군요.
이 많은 책을 언제 다 읽을지 모르겠습니다.
그래도 오늘 프레이야님 글을 읽는 것만으로도 풍성한 느낌입니다.

드라마는 첫회에 확 사로잡는 게 있어야 하는데 <지리산>은 좀 그런 게 약하긴 하죠?
주춤하는 사이 시청자로 하여금 잡생각을 하게 만들면 좀 그런데 말입니다.
전 전지현과 주지훈이 앞으로 어떻게 할 건지 조금 더 지켜 본 후에 더 볼 건지 말건지 결정하겠슴다.ㅋㅋ

프레이야 2021-10-27 18:21   좋아요 3 | URL
그런 거 같아요 ^^ 이병주 선생도 박완서 선생처럼 늦게 40 중반에 첫 소설을 썼어요.
그리곤 완전 불타는 창작열로 많은 글을 쓰고 가셨더군요. 그 열정을 어찌 쫓아갈까요.
일제징용에다 박정권 시절 감옥에도 갔었고 파란만장한 삶.
하동 안 가보셨지요? 경남이라 좀 멀지요. 깡촌에 사신다구 ㅎㅎ

지현 지훈 앞으로 어떻게 할 건지 지켜보신대서 잔뜩 쫄겠어요.
잘해야 될 건데 모쪼록 ㅎㅎ

서니데이 2021-10-27 20:56   좋아요 1 | 댓글달기 | URL
하늘이 파랗고 예쁘네요. 강이 흘러가는 순간도 반짝반짝 빛나서 예쁘고요.
프레이야님, 요즘 날씨가 일교차가 크다고 합니다. 감기 조심하시고 좋은 저녁시간 되세요.^^

프레이야 2021-10-27 21:05   좋아요 2 | URL
저 날 날씨가 어찌 좋은지 섬진강 강물이 반짝반짝했어요. 강물에 손도 담그고 참방참방. 몸 어서 나아지길요 서니님

희선 2021-10-28 01:40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오랜만에 가 보신 곳이 예전과 달라졌군요 간이역은 빨리 사라지기도 하죠 가끔 그런 곳을 남겨두기도 하지만... 하늘이 참 맑고 빛나는 강물도 예쁩니다

하루에 원고지 이백여장이라니... 대단하네요 저는 잘 몰랐던 분이네요 소설 제목은 들어본 적 있었을 것 같기도 한데... 프레이야 님 글 보고 아주아주 조금 알았습니다


희선

프레이야 2021-10-28 15:11   좋아요 2 | URL
풍경이 그렇게 변해가는 게 꼭 좋지만은 않은데 트랜드라
어쩔 수 없나봐요. 간이역은 제가 참 좋아하는 정경인데 아쉽구요.
대단한 작가인데 덜 알려진 거 같은 이병주 작품을 좀 더 읽어봐야겠어요.
좋은 날 보내세요 희선님.

hnine 2021-10-28 05:02   좋아요 1 | 댓글달기 | URL
지난 주말 날씨 정말 좋았어요.
이병주의 <바람과 구름과 비>는 아주 옛날, 신문에 한참 연재되었던 것으로 어렴풋이 기억나고, 대학교때 도서관에 가면 장편으로 주욱 꽂혀 있는 <지리산>을 늘 보면서도 한번도 읽어볼 생각을 못했어요. <허상과 장미>라는 소설을 읽었던 것 같고 그 외 다른 작품들은 읽었던가 가물가물하네요.
섬진강 저도 몇년 전에 가본적이 있는데 옆에 끼고 살던 한강과 느낌이 아주 많이 다르더군요.

프레이야 2021-10-28 15:13   좋아요 1 | URL
강도 제 느낌을 갖고 있다는 게 참 신기하죠. 주변 풍경과 그 풍경이 담는 역사와
함께 가는 것 같아요. 이병주 작가를 일찍 아셨군요 나인 님 역시!!
전 학생 땐 전혀 몰랐어요. 작품은 좀 더 읽어봐야겠다는 생각을 하고 있어요.

그레이스 2021-10-28 14:16   좋아요 1 | 댓글달기 | URL
이병주 <행복어사전> 재밌게 읽었어요.

프레이야 2021-10-28 15:15   좋아요 2 | URL
오모나 그레이스 님 읽으셨군요.
<행복어사전>부터 좀 여러가지 찾아읽어봐야겠어요.^^

페크pek0501 2021-11-03 11:11   좋아요 1 | 댓글달기 | URL
흥미와 유익함이 느껴지는 글, 잘 읽었습니다. 발자크와 이병주 작가 님의 책들, 다 열독하고 싶네요.
저로 하여금 새로운 학구열이 불타게 해 주심에 감사드립니다.^*^

프레이야 2021-11-03 12:46   좋아요 1 | URL
꼼꼼히 진지하게 읽는 페크 님의 독서생활 중 이병주와 발자크 추가인가요 ^^ 기대합니다. 오늘 날씨 너무 좋아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