냉정하고 잔혹하다
시비돌이 지승호의, 시민운동가 박원순 인터뷰집 <희망을 심다>를 끝내고 1차 편집 중간정도에 와 있다. 참여연대를 시작으로 아름다운가게, 아름다운재단, 희망제작소까지 그의 활동가로서의 면모와 인간성, 세상을 읽고 행동으로 옮기는 저력과 기본적인 생각들을 읽을 수 있었다. 기부는 예술이고 과학이라는 표어에서부터, 거대담론만 융성한 우리 시대에 정작 필요한 건 각론이라며 좀더 세밀하고 치밀한 계획과 활동이 요구된다는 말이 공감되었다. 책의 뒷면에 아내와 가족, 주위사람들에게 쓴 공개유언장은 경상도 남자 특유의 무뚝뚝함이 엿보이면서도 울컥하게 만든다. 그가 검사와 변호사를 버리게 되는 과정과 세계 어느 곳의 사람과도 연결될 박변주소록, 과로사로 죽는 게 소원이라고 말할 정도의 시민운동가다운 정력이 조근조근 감동을 준다.
오늘부터는 리처드 예이츠의 <레볼루셔너리 로드>를 시작했다. 작년에 영화로 보았던 소설이라 더더 읽고 싶었다. 역시 잘 골랐다. 냉정하게 파고드는, 아름답고 정교한 문장들 중 오늘 기억나는 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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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제 그는 월계수 극단의 참패를 정확한 관점에서 바라보았다. 그것은 기분 나빠할 가치도 없는 일이었다. 지적이고 사려 깊은 사람이라면 이런 일쯤은 가뿐하게 떨쳐버릴 수 있어야 했다. 도심에서 감당하는 끔찍하게 지겨운 일과 교외 주택가의 끔찍하게 무료한 가정이라는, 이보다 더 심한 부조리도 가뿐하게 극복하듯이. 경제적인 여건 때문에 이런 환경에서 살 수밖에 없을지라도, 진정 중요한 것은 오염되지 않은 존재로 남아 있다는 사실이었다. 중요한 것은, 언제나, 자신이 누구인지를 기억하는 것이었다. (38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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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volutionary Road>는 1961년 발표한 리처드 예이츠의 첫 작품으로 전미 도서상 최종 후보작에 올라 '작가들의 작가'라는 명성을 안겨주었으나, 정작 일반 독자들에게는 작품이 그다지 알려지지 않은, '저주받은 걸작'이었다. 최근 들어 <타임>지가 선정한 영어권 100대 소설(2005년)에 꼽힌 것을 비롯하여 관심이 높아졌다고 한다. 리처드 예이츠의 작품에 대해 잔인할 정도로 비극적인 작품이라는 치우친 비판이나 폄하에서 벗어나 깊이 있는 리얼리즘과 작가적 냉정성을 재평가하는 비평들이 발표됨으로써 이제 그의 작품세계와 삶까지 폭넓게 재조명되는 전기들도 속속 출간되고 있다고 한다. 그의 작품 중 <부활절 퍼레이드>도 영화화 예정이라는데...
아무튼 앞으로 만나게 될 문장들이 기대된다.
작년에 영화를 보고 쓴 리뷰를 먼댓글 링크로... 공허함보다 차라리 '희망없음'을 냉혹하게 그려내 오싹했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