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4개의 눈동자
피터팬픽쳐스 / 2008년 11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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쇼도시마에 가고 싶었던 이유 중 하나, 24개의 눈동자 영화마을을 추억하며.
쇼도시마는 일본 시코쿠, 다카마쓰 현에 속한 섬이다.
다카마쓰 여객터미널에서 나오시마와 쇼도시마로 가는 배를 각각 탈 수 있다.
봄날 설레며 찾아갔던 때묻지 않은 섬, 쇼도시마!

 

 

순수함이 주는 눈물어린 위로

 

스물네 개의 눈동자  / 기노시타 게이스케 / 1954

 

   

 

 일본 남쪽바다 세토내해에 있는 서른 개의 섬들 중 두 번째로 큰 섬 쇼도시마. 유월 어느 좋은 날, 다카마쓰 항에서 배를 타고 들어가는 그 길은 설렘이었다. 미풍이 밀어 준 배는 한 시간이 채 못 되어 도노쇼 항에 도착했다. 느리고 깨끗하고 조용한 쇼도시마는 그 소박한 풍경만으로 무한한 위로가 되는 순수한 영혼이나 다름없었다.

 

서정성이 돋보이는 감독 기노시타 게이스케가 이 섬에 세트장을 마련하고 촬영에 들어간 영화 <스물네 개의 눈동자>1954년에 탄생해 여태껏 일본의 국민영화로 뭇사람들의 심금을 울린다. 섬처럼 순연한 흑백의 필름이 어린 열두 명의 영혼과 온기 넘치는 오이시 선생의 수십 년 세월을 담담하고 투명하게 그려낸다.

 

영화는 19284, 섬에 갓 부임한 여선생 오이시가 자전거를 타고 등장하는 장면으로 시작한다. 섬마을 어른들은 신여성을 곱지 않은 시선으로 보지만 5킬로미터를 자전거로 달려 분교로 출근한 예쁜 선생님을 초등학교 1학년 스물네 개의 눈동자들은 반기고 따른다. 오이시 선생님은 짓궂은 아이들의 장난으로 다리를 다쳐 목발을 짚게 되어도 자신을 걱정해 먼 길을 걸어서 집까지 찾아온 아이들을 따뜻이 맞이해 먹이고 놀아준다. 영화는 이들이 맺는 소중한 인연을 따라 몇 십 년을 이어간다. 가난과 전쟁으로 상실의 고통을 딛고 신산한 삶을 사는 이들의 가슴 아픈 사연들이 흑백의 필름 위에 맑은 눈물로 어룽거린다. 군국주의와 전쟁에 대해 표독한 말을 드러내진 않지만 영화는 힘없고 순수한 사람들의 상처를 통해 오히려 강하게 말하고 있다.

 

쇼도시마로 무작정 가야겠다고 생각한 건 무엇보다 ‘24개의 눈동자 영화촌을 가고 싶어서였다. 시간이 정지한 듯 나른한 마루켄 간장마을을 지나 당도한 그곳에는 바다가 한눈에 들어오는 둔덕에 커다란 솥이 두 개 나란히 놓여 있었다. 저쪽으로 영화에서 본 교실이 그대로 재현되어 있었다. 나무바닥이 삐걱대는 복도에 신발을 벗고 올라 교실에 들어서니, 두 명씩 앉는 나무책상들이 낮게 배열되어 있고 출입문 쪽에는 풍금이 놓여 있었다. 햇살 따스한 교실의 격자창문 밖으로 잔잔하기 이를 데 없는 바다가 빛나고 있었다. 우리 마음에도 그처럼 고요한 정경이 늘 유지된다면 얼마나 좋을까.

 

옆 교실에는 기노시타 게이스케의 사진과 당시의 촬영기계들, 영화 포스터들이 배치되어 있었다. 교무실 안에 오이시 선생님이 타고 다녔던 자전거 뒤에 자잘한 꽃무늬 수건에 싸인 도시락이 묶여 있었다. 안쪽으로는 선생님이 앉았을 소박한 나무책상 위, 나무 책꽂이에 분홍색 공책이 한 권 있고, 그 책상에 앉아 고개를 들면 보이는 벽에 괘종시계가 1240분을 가리키고 있었다. 시간이 딱 그 때로 멈추어 있는 것 같았다.

 

교실을 나와 입구 쪽으로 나오니 영화 상영관이 있고 그 옆으로 <스물네 개의 눈동자> 원작을 쓴 소설가 쓰보이 사카에 문학관이 보였다. 사카에는 1952년 이 책을 내고 부엌에서 앞치마에 손을 닦으며나온 작가라는 평을 들으며 높은 호응을 얻었다. 아담하고 정갈한 건물 안에 후박한 얼굴에 동그란 테 안경을 쓰고 웃고 있는 작가의 사진과 여러 가지 표지로 출판을 거듭한 책들이 전시되어 있었다.

 

쓰보이 사카에는 전쟁은 불행만을 안겨준다고 생각했고 오이시 선생의 입을 빌어 말했다. 오이시는 만주사변과 태평양전쟁을 겪으며 명예로운 야스쿠니가 되겠다는 다섯 명의 남자 제자들을 막지 못하는 슬픔을 겪으면서 이렇게 말한다. 명예로운 전사 따위 필요 없어. 꼭 살아 돌아와야 해.” 18년이 지나 전쟁의 상흔과 가족의 상실을 겪은 선생님은 다시 이곳으로 돌아와 그때 그 제자들의 아들딸들을 가르친다. 나이 마흔이 되어서도 여전히 눈물 많고 여린 선생님이지만 더없이 따뜻하고 인간미 넘치는 사람이다


   기노시타 감독은 인간에 대한 믿음과 낙관을 잃지 않았고 사람들간의 아름답고 단순하고 순수한 관계를 존중한다고 말했다. 약하고 힘없는 사람들을 관통하는 역사의 소용돌이에도 이들은 그저 무심하고 담담하고 분노할 줄 모른다. 쇼도시마의 깨끗하고 조용한 풍경이 아픔을 감내하며 묵묵히 살아가는 이들의 슬픔을 더욱 진하게 전해준다.

 

마음속에 흐르는 눈물을 어찌 다 닦을 수 있으랴. 꾸미지 않고 뽐내지 않고 부풀리지 않는 순한 마음과 그 마음이 전해지는 말과 눈빛은 언제나 수굿한 포옹이다. 그렇게 순연한 위안이 필요할 때면 이 영화를 다시 꺼내어 본다.

 

 

- 배혜경의 농밀한 영화읽기 51 <고마워 영화> 중,  p26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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비연 2018-01-12 11:13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어릴 때 이 책 읽고 많은 감동을 받았었는데.. 영화가 있었군요. 한번 찾아봐야겠어요~

프레이야 2018-01-12 16:59   좋아요 0 | URL
네, 비연 님 원작을 먼저 보셨군요. 오래된 흑백영화에 순수함을 담아냈어요.
일본 국민영화라고 하더군요.

비연 2018-01-12 21:31   좋아요 0 | URL
심지어 일어원서도 있답니다 ㅠ 못 읽고 한켠에 쳐박..ㅠ 영화가 네이버다운로더 이런 데 없어서 DVD를 사야하나 그러고 있슴다~

프레이야 2018-01-12 23:02   좋아요 0 | URL
네. 저도 디비디를 구입해 보았어요.
일어 원서까지 갖고 겨시군요. 쓰보이 사카에 문학관에 여러가지 표지가 있었어요.

雨香 2018-01-13 17:17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일본의 근대 모습이 오롯이 담겨있겠군요. <24개의 눈동자> 를 보러 쇼도시마에 갔다는 블로그를 몇 편 봤습니다. 쇼도시마 정말 볼 것이 많은 곳이군요.^^

프레이야 2018-01-13 18:07   좋아요 1 | URL
네, 가보시면 아주 좋아하실거에요. 느리고 조용하고 깨끗해요

雨香 2018-01-14 10:57   좋아요 0 | URL
네.. 느리고, 조용하고,,, 제가 일본 시골, 소도시에 관심이 가는데, 딱 좋을 것 같네요. ^^
 

 

 무엇이 삶을 예술로 만드는가 / 프랑크 베르츠바흐 / 불광출판사(정지인 옮김)

 녹음시작 2017. 4. 5 ~ 녹음완료 2017. 12. 6 (총 254쪽)

 

보통 내가 책 한 권에 걸리는 녹음일자보다 많은 시간이 걸려 녹음 완료한 책이다. 작년 한 해 동안 다른 책이 중간중간 들어왔기 때문이기도 하고 좀 바빴기 때문이기도 한데, 올해로 넘기지 않아서 좋다. 무엇이 삶을 예술로 만드는가는 내가 늘 고민하던 주제라 책제목을 보고 바로 녹음실 책꽂이에서 고른 책이다.

 

책의 부제 '일상을 창조적 순간들로 경험하는 기술'을 차근차근 풀어간다.

비유가 아니라 실제로 차를 마시는 순간을 오롯이 가져라는 말인데, 차나 커피를 마시며 다른 일을 하지 말라고 한다. 하루 두 번 정도 20분씩 과제에서 놓여나 차를 마시는 짧은 시간에 취하는 휴식에서 우리는 창조성을 키울 수 있다. 우리는 멈추는 법을 배워야 한다. 일상이 행복하려면 창조적 순간들을 자주 경험해야 한다. 창조적인 삶의 첫걸음은 자기 자신에 대해 성찰하겠다는 의지인 것이다.

 

스위스 철학자 페터 비에리의 말을 빌려 저자는 이렇게 설명한다. - 자신을 인식한다는 것은 자신에 대해 결정하는 또 하나의 형식이다. 자기 결정에는 가능한 것에 대한 감각, 즉 상상력과 공상이 필요하다. 자신이 하는 일로 자신을 표현하지 않는 사람은 자신이 어떤 사람인지 인식할 가능성 하나를 놓쳐버린다.

 

비에리뿐만 아니라 많은 사람들의 말을 적절히 인용하여 저자의 주장을 뒷받침하여 넓은 방향에서 보다 좁은 방향으로 전개한다. 행복하고 가치있는 삶을 위한 유용한 충고가 실린 이 책을 편집수정 작업을 하며 올해 한 번 읽을 것이다.

 

"창조를 위해서는 기술이 필요하지만 또한 기술로부터의 자유도 필요하다. 그러려면 기술이 무의식 수준으로까지 스며들 때까지 연습해야 한다. 연습은 예술에 필수적이기만 한 것이 아니라 연습이 바로 예술이다."

 

 

 

라요하네의 우산 / 김살로메 / 문학의문학 (총 319쪽)

녹음 2017. 1. 25 ~ 2017. 3. 29

편집 2017. 12. 27 완료

 작년 1월에 포항에서 열린 출판기념회에서 '왼손엔 달강꽃'을 낭독하고 돌아온 후, 바로 녹음 시작해 두 달만에 끝내고 연말에 편집수정 작업까지 완료했다. 작년 1월에 이 책을 녹음하고 있던 중 mbc 라디오 '행복한 저녁길'에서 인터뷰 기자가 녹음실을 찾아와 인터뷰하고 방송되었는데 그 때 잠깐 읽어서 라디오에 나간 대목도 '왼손엔 달강꽃'의 일부다. 라요하네의 우산,이라는 책제목도 방송되었다.

"잘 지내지? 내일 오후에 그곳으로 내려갈 것 같아. 네 시쯤에 시간 돼?"

p는 짧게 요점만 말했다.(218쪽)

 

 

 

 

잠 1,2 / 베르나르 베르베르 / 열린책들

녹음 & 편집 완료 2017 가을~겨울

상상력의 대가 베르나르 베르베르의 무한 상상력이 발동된 책으로 부산점자도서관 지정도서로 들어온 책을 팀장이 내게 요청하였다. 신간이 나오자마자 첫 낭독자로 읽게 되어 기분좋게 받아들이고 즐거이 읽었다. 이야기는 술술 잘 읽히고 인생에 필요한 제법 귀한 금언들도 눈에 든다.

 

나로선 베르베르의 <웃음>보다는 덜 재미있었던 <잠>은 인간의 미개척지 수면 6단계에 대한 이야기다. 안과 밖이 통하는 클라인의 병을 들어 시간의 안과 밖이 있다면, 이라는 상상력에서 출발한다. 우리가 시간을 가로질러 그 어느 지점으로 바로 가닿을 수 있다면 과거의 어느 지점으로 돌아가고 싶을까. 바꿀 수도 있는 어떠한 가능성이 열려 있는 그 시간으로 돌아가고 싶다면... 누군가는 다시는 돌아가고 싶지 않다고 말하지만 나는 돌아갈 수 있다면 다르게 살아보고 싶다는 생각을 한다.

 

어디에선가 전국의 시각장애인들이 무의식 저 아래에 있는 꿈의 영역 어딘가에 상상의 날개를 펼치며 재미나게 들으면 좋겠다. 우리는 잠재된 능력을 얼마나 펼치고 살다 갈 수 있을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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마녀고양이 2018-01-10 17:26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언니, 참 좋아요. 마음이 행복해져요.

프레이야 2018-01-10 20:17   좋아요 0 | URL
울마고 님 오늘하루도 수고 많았지요. 그곳엔 눈이 많이 왔나요? 오늘 이곳에는 아침에 진눈깨비 조금 날리더니 멎었어요. 그 정도에도 좋다고 기뻐서 톡 날려주는 영혼이 있어 참 순수하구나 생각했어요. 전 왠지 무감각 ㅎㅎ 언제 어디서든 행복하기에요. ^^

라로 2018-01-11 03:10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자기 책도 시각장애인들께서 많이 기다리실 것 같아요. 더구나 영화를 볼 수 없는 분들이라 얼마나 영화에 대한 얘기가 궁금할까요. 이렇게 꾸준히 뭔가를 하는 님을 보면 참 표현할 말을 못찾겠어요!!!❤️

프레이야 2018-01-11 08:26   좋아요 0 | URL
그분들 중 영화에 관심이 많은 분들은 베리어프리 영화로 감상해요. 나도 몇 번 본 적이 있다우. 내 책 중 ‘유리정원’ 이야기에도 나와요. 우리가 우리 눈으로 보고 우리 귀로 듣고 우리 다리로 어디든 다닐 수 있다는 것만으로도 감사하다 생각하고 살아야겠다는 생각을 새삼 하게 되어요. 새해 들어 열흘이 지났는데 지지부진 게으름 피우고 있다우.
 

김지안 작가의 <네 멋대로 읽어라>에서 ‘인류를 구원할 기록’이라는 제목의 글에는 안정희 저자의 <기록이 상처를 위로한다>라는 책이 언급된다. 인간만이 기억하고 추억하고 기록하고 그래서 호모아키비스트라고 한다. 저자는 개인의 기록물을 더 중히 여겨 민간 아카이브를 지향한다고 한다. 6하 원칙을 바탕으로 스토리가 담겨 있어야 하고 공유하는 성질을 띠거나 공공성이 있어야 한다는 전제를 두는데, ‘개별적인 인간은 소멸하되 기록하는 인류는 미래를 꿈꾼다’고 저자의 말을 인용한다.

알라딘 서재도 나름의 민간 아카이브로 톡톡히 구실하는데 한 이삼 년간 기록을 게을리했다. 언제나 고향처럼 든든히 나를 기다려주는 곳이고 내 기쁨과 슬픔이 고스란히 담긴 곳이다. 2017년을 간단히 정리해보니, 다니기도 많이 다녔더라.

그중 3월에 간 요르단과 이스라엘은 특히 잊지 못한다. 가보고 싶었던 페트라와 와디럼, 사해는 물론이고. 페트라는 꼭대기 그 옛날 수도원 자리로 추정되는 곳까지 올라갔고 와디럼 사막은 짚을 타고 여섯 시간을 달리며 해 질 녘까지 있다가 나왔다. 낯선 이들이 함께한 여행이었는데 무리 없이 잘 다니고 있는 나를 발견했다. 에너지가 어디서 그리 신나게 나오던지 발걸음이 가벼웠다. 날씨도 다니기에 최적이었다. 같이 다니되 혼자인 게 좋다. 여행지에선 혼자여야 하는, 혼자이고 싶은 순간이 잦다. 동행자가 있을 땐 때로 부담스럽다. 감정을 살피고 돌봐야하는 데에 에너지를 좀 빼앗기니까. 오히려 나를 모르는 그래서 더 편한 좋은사람들 덕분에 유익하고도 건강히 잘 다녀왔고 후에 동영상도 이메일로 받아서 추억의 아카이브를 공짜로 받았다. 묵묵히 재미났던 인생선배들에게 감사하다.
이제라도 간단하게나마 조금씩 기록을 남길까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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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8-01-06 00:20   URL
비밀 댓글입니다.

프레이야 2018-01-06 08:46   좋아요 2 | URL
유별남, 사진작가 맞구요. 근데 본명일까요 유별나게 ㅎㅎ 페트라가 있는 왕국으로 걸어들어가는 길부터 두근두근했어요.

서니데이 2018-01-06 02:04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인디아나존스에서 보았던 그 곳이네요.
아래 두 사진은 파노라마로 찍으신 것 같아요. 사진이 선명해서 정말 예뻐요.^^

프레이야 2018-01-06 08:44   좋아요 1 | URL
네. 맞아요. ^^
성배를 찾던 곳인가 그렇지요. 아이폰 파노라마도 맞구요. 지금은 사라지고 유적지가 된 붉은사암으로 만든 나바티안들의 나라, 신비로웠어요.

2018-01-06 08:33   URL
비밀 댓글입니다.

2018-01-06 08:41   URL
비밀 댓글입니다.
 
다른 사람 - 제22회 한겨레문학상 수상작
강화길 지음 / 한겨레출판 / 2017년 8월
평점 :
구판절판


다른 국면, 변화. 그것은 모순된 상황과 모순된 감정들, 그 출발점으로 돌아가 내 안의 다른 사람을 일으키는 일이 전제되어야 한다. 너와 나 안의 다른 사람들은 얼마나 무섭고 또 강할 수도 있는가. 편하자고 지적 받기 싫어서 또다른 구실들로 내가 주저앉힌 다른 사람은 또 얼마나 많은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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책으로 만났고 앞으로도 만나게 될 인연이 참 좋다는 생각을 늘 한다. 책선물로 주고 받는 마음이 늘 훈훈하다. 여태 많은 책을 서로 주고 받았다. 내게 책선물을 한 분들을 떠올리며 새삼 고마움을 전하고 싶다. 재작년에도 작년에도 내가 구매한 도서가 많은데, 받은 것들도 적지 않다. 다 올리지는 못해도 일단 대충이라도 정리 좀 해두고 차근차근 읽어나가자.

올해는 읽기에 보다 집중하는 나날이길 다짐하며.

 

 

 

 

알라디너 스텔라 님이 2016년 발간한 '작가를 꿈꾸는 이들을 위한 독서 에세이'다.

자유분방하게 펼쳐놓은, 기독교 신자이기도 한 저자의 생각이 아주 발랄하고 재미나다.

연말연시에 딸애들 이사 정리를 도우러 서울에 가는 비행기 안에서 읽었다.

나와 별자리도 연령도 같은 그녀는 자필 글씨체부터 독특하고 매력이 넘친다.

책과 글과 글쓰기, 사회적 현상, 독서와 작가와 독자에 대한 그이의 솔직담백한 진술이

술술 넘어가면서 생각거리를 던져준다. 책을 소개받게 되는 대목들도 마음에 든다.

다음에 좀더 이야기하기로 하고.  s님 고마워요.

 

작가가 되어서도 독자이길 멈추지 말아야 한다고 생각한다. 독자 위에 군림하기 위해

작가가 되려고 해서도 안 된다고 생각한다. 그저 사람들과 함께 있기 위하여 있어야 한다고

생각한다. - 작가의 말, 중에서

 

 

 

 

 

 

2016년 6월에 명동성당 아래 마리아홀에서 열렸던 로쟈의 강의를 들으러 간 적이 있다.

서울에 사는 친구를 불러 같이 갔다. 주 단위로 연속 강의였는데 나는 거리가 멀어 매번 듣기에는

무리가 있어서 서울 사는 친구에게 바통을 넘기고 나는 그날 하루만 들었다. 인사는 안 드렸지만 가까이에서 로쟈의 강의를 듣는 건 책으로 읽는 것과는 달리 또 다른 감흥이 있었다.

좋았다는 얘기다. 새해 1월부터도 가즈오 이시구로 읽기 포함해 강의가 많던데 서울에 산다면 다 들을 건데 아쉽다.

그 때 서울에 사는 친구는 모두 출석하여 듣고 마지막 시간에 에코백이랑 볼펜인가 하는 선물도 받았다고 내 덕분에 좋은 강의를 알고 듣게 되어 좋았다고 전했다. 

로쟈의 <아주 사적인 독서>는 점자도서관에서 낭독녹음도 하여 애정이 가는 책인데

<문학 속의 철학>도 대충 보았는데 깊이와 재미가 함께 있다.

ㅆ님 고마워요.

 

 

 

 

 

 ㅂ님은 음식과 여행을 비롯해 일상을 가족과 함께 참 맛나게 꾸리고 사는 사람이다.

내가 느끼는 그이는 다정하고 섬세하고 명랑하고 따스한 사람이다. 고마워요 ㅂ님.

"행복은 손으로 움켜잡을 수 있는 어떤 것이 아니다. 행복은 예기치 않은 곳에 보슬비처럼 소리 없이 찾아오는 것이다. <우리는 행복을 눈에 보이도록 높이 들어 올리려 하지만 가장 분명한 행복은 그것을 내면에서 변용시킬 때 비로소 현현하는 것>이라는 시인의 말을 다시 한 번 생각하게 된다. 두이노는 이탈리아 북부의 아드리아 해가 내려다보이는 지역으로 이곳에 탁시스 후작 부인의 성이 있다. 이 책은 릴케가 후작 부인의 초대로 이곳에서 지내는 동안 처음으로 착상되고 쓰여지게 된 것이 계기가 되어 얻어진 시제다. " - 역자해설 중

 

장미여, 오 순수한 모순이여,

그 많은 눈꺼풀 아래

그 누구의 잠일 수 없는 기쁨이여

(릴케가 남긴 묘비명을 책 끝에서 또 만나네)

 

 

 

 

2015년 생일에 ㅂ님이 주신 책이다. 고마움을 이렇게 전한다. 책장의 한 끝에 세모로 종이를 접어 끼워 보내주셨다. 책갈피를 손수 종이를 접어 만드신 거다. 얼마나 세심하신 분인지!

"모든 것을 바꾸어 놓게 될 편지는 화요일에 도착했다. 깨끗한 빨래와 갓 깎은 풀 냄새가

나는 4월 중순의 평범한 아침이었다."로 시작하는 본문 앞에 존 번연의 시가 있다.

 

진정한 용맹을 보고자 하는 자,

이리 오게 하라.

바람이 불어도 날씨가 나빠도

여기 이 사람은 늘 한결같을 것이다.

어떤 실망스러운 일이 생겨도

순례자가 되겠다고

처음 굳힌 마음을

느슨하게 푸는 일은 없을 것이다. - <천로역정>

 

 

 

 

한결같이 자신과의 약속을 지키는 사람은 그만의 힘이 있다.

ㅅ님 고마워요. 낭독녹음을 할 생각에 미루고 있었는데 점자도서관 측에서 리스트에 올리지 않는다 아직. 전에는 내가 가지고 있는 도서도 녹음할 수 있었는데 이제 지정된 목록에서만 고를 수 있게 바뀌었다. 도서관 측 담당자들이 협의하여 목록을 지정하는데, 추천해봐야겠다.

"오늘, 짧은 낮잠에서 깼을 때 '얼굴 없는 남자'가 앞에 있었다. 그는 내가 잠자던 소파 건너편 의자에 걸터앉아, 얼굴 없는 얼굴 위 가상의 두 눈으로 나를 똑바로 바라보고 있었다." - 프롤로그 중

 

'얼굴 없는 남자'를 보니 <여자 없는 남자들>이 생각난다. 이야기 한 편 한 편을 장편보다 훨씬 흥미롭게 읽었던 기억이...

 

 

 

 

 

피아니스트의 아흔 해 인생 인터뷰.

ㄴ님 고맙습니다. 대면한 적은 없지만 책둥지에서 글로 사진으로 오래 보면서 느껴지는 게 있다.

조용히 계시다가 어느 순간에 꼭 진심어린 응원의 말과 인사를 건네주시니 참 감사하다.

회의감이 들고 지칠 때 이런 것으로 다시 힘을 얻는다.

내가 좋아하는 '마음산책'의 책이라 디자인이 산뜻하고 편집도 깔끔하다.

일가를 이룬 사람, 나이 들어 지혜가 깊어진 사람의 말은 언제나 들을 만한 가치가 있다.

이 책과 함께 영화 <피아니스트 세이모어의 뉴욕 소네트>를 알려주시고 클래식 음악 파일까지

보내주셨다. 책의 표지사진은 저 영화의 포스터 부분이다.

인터뷰어 앤드루 하비는 영국의 시인, 소설가, 종교학자로 신비주의와 영성에 관한 논픽션으로 대중에게 알려져 있다. 

 

"예술가들은 어렵게 얻은 예술적 성취를 일상의 삶으로 끌어들이기 위해 노력해야 합니다."

 

 

<피아니스트 세이모어의 뉴욕 소네트>는 배우 에단 호크가 감독한 다큐멘터리 영화다. 배우로 지내며 받은 스포트라이트가 진실성이 없는 허상이란 걸 알고 있었다고 고백하는 에단 호크가 겸허한 장인에게 속내를 털어놓고 깨달음을 얻는다. "피아노 소리를 듣듯이 사람의 말을 들으면 상대의 감정을 더욱 잘 알 수 있어요." 세이모어 번스타인Seymour Bernstein의 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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stella.K 2018-01-05 17:01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ㅎㅎ 프레이야님 저의 주소 적은 글씨는 정말 멋진데!
저는 그렇게 밖에 못 써요.ㅠㅠㅎㅎ

고맙습니다. 저의 책 괜찮게 봐 주셔서.
요즘 갑자기 읽고 싶은 책이 생겼어요. 전작하고 싶은 작간데
예전엔 별로 읽을 마음이 없었거든요.
책이란 이렇게 우리 의식 속에서 어떤 땐 썰물이었다가 어떤 땐
파도치듯 막 읽고 싶은 책이 있나 봐요.
저의 책은 아직까지 그닥 찾는 사람은 없는 것 같은데
또 어느 날 어떤 사람에게 문득 찾아지는 책일 수도 있겠다는 생각을 해 봅니다.
제가 이러는 걸 보면요.ㅎㅎ

프레이야 2018-01-05 17:02   좋아요 1 | URL
어떤 작가인가요? 궁금해요. 스텔라 님의 거침없는 시각과 솔직담백한 문장 모두 장점이 많은 책이에요. 넘어지고 깨어진 그 자리에서 다르게 생각하고 자신을 일으켜 세우는 이야기가 특히 좋았구요. 시나리오와 희곡도 계속 쓰시면 좋겠어요.

stella.K 2018-01-05 18:19   좋아요 0 | URL
헉, 이럴수가...! 그런 시각이 있었나요?
넘어지고 깨어진 그 자리에서 다르게 생각하고 자신을 일으켜 세우는 이야기라니...!
아, 제가 쓰고도 독자로부터 그런 말을 듣는 건 프레이야님이 처음이어요.
사실 제가 늘 그래 오기는 했죠. 워낙에 좌충우돌이 많은 시절을 보냈던지라.
이렇게 꿰뚫으시다니 감동입니다!!!
독자로부터 이런 감동을 받을 수도 있군요.
사실 작가는 늘 독자한테 감동을 끼쳐야 한다는 묘한 강박 같은 게 있잖아요.
그래서 누군가는 잘 쓰려고 하지 말라고 했나 봐요.
이래서 독자와 작가가 만날 수 있는 거로군요.
고맙습니다. 프레이야님!^^

아, 제가 갑자기 전작하고 싶은 작가는 프레이야님도 읽어 보셨는지도 모르는데,
김형경 작가요.
오래 전부터 알고 있기는 했는데 딱히 읽어야겠다는 생각이 없었는데
요즘 부쩍 읽고 싶다는 생각이 드네요.^^

프레이야 2018-01-05 19:09   좋아요 0 | URL
독자가 책을 완성시킨다고 생각해요^^ 김형경 작가 책은 예담에서 나온 사람풍경 그 책을 읽었어요 오래전에요. 마음치유에 좋은 내용이었어요. 그리고 소설 외출. 손예진이 주연으로 나온 영화를 보고난 후에요. 그것도 오래전이네요. 영화도 책도 생각보다 좋았어요.

2018-01-05 20:21   URL
비밀 댓글입니다.

2018-01-05 20:25   URL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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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8-01-05 20:41   URL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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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8-01-05 20:52   URL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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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8-01-10 00:08   URL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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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8-01-10 07:59   URL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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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8-01-11 16:26   URL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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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8-01-11 17:41   URL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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