여느 때처럼 토요일 5시 기숙사에서 일주일을 보낸 큰딸아이를 데리러 간다.
오늘은 바람이 매섭다. 꽃샘추위도 물러간 것 같은데 바람이 마지막 시샘을 부리나.
산 아래 바람이 더 싸늘한 학교 운동장에 차를 대고 라디오를 들으며 아이를 기다린다.
오늘은 좀 준비할 게 있는지 조금만 더 기다려 달라고 문자가 온다.
하얀 얼굴에 캐리어를 끌고 커다란 가방은 어깨에 매고 또 다른 작은 가방 하나를 들고 내려오는 게 미러로 보인다.
차에 타자, 3월 학력평가에서 전교2등 했다고 말한다. 아주 잘 했다. 유지를 잘 해야겠지,는 아이가 먼저 한 말.^^
얼마전 텝스도 930 받았다.(팔불출 엄마 또 나온다)
7개월 정도 남았는데 끝까지 체력관리 잘 하고 좋은 결과 있기를 바란다.
EBS 라디오에 주파수를 맞추고 마음에 드는 문구들을 사자고 해서 아이가 잘 가는 시내 팬시점에 간다.
횡재다. 손택수 시인의 낮고 진지하고 온기있는 목소리가 나온다. 시집 '목련전차'만 읽었고 목소리는 처음이다.
어느 날부터 집앞 나뭇잎을 3개월 간 하루도 빠짐없이 봤단다.
그러면 어느날 나뭇잎이 말을 걸고 그 말을 글로 쓰면 시가 된다는...
꾸준히 관찰하면 사랑이 생기고 사랑하는 마음이 시가 된다는...
위에 옮긴 '방심'을 손택수 시인이 음악과 함께 직접 낭송한다. 아, 참 좋구나.
마음도 놓아버리면 숨구멍이 트이는 것을.
'방어진 해녀'도 낭송하는데 꾸밈없는 시어들이 팔딱인다.
뒤이어 황인숙 시인이 나온다. 놀랍다. 내가 생각했던 목소리가 아니다. 너무 예쁘다.
그런데 편안한 음색이 아니라 어딘지 불편하다. 한참 생각하다 말을 꼭꼭 씹어서 조금씩 내뱉는 듯.
목소리만으로 다 알 수 없는데 편견이겠지싶다.
고양이를 3마리나 키우고 길고양이를 먹이기 위해 먹을거리를 가방에 늘 넣어다닌다는 특이한 시인이다.
배고파 보이는 비쩍 마른 고양이를 만났는데 줄 게 없으면 가슴이 아프다고...
조근조근 그녀의 시낭송을 듣는 건 좋은데, 사회자가 너무 촐싹대는 바람에 딸애가 다른 데로 돌리자고 은근히 조른다.
배캠으로 돌리고 집을 향했다.
아파트에 들어서니 이미 어둠이 내려앉아 있다.
벚나무 꽃망울들이 터지기 시작한다.
양지의 벚나무는 이미 만개했구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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방심(放心) - 손택수
한낮 대청마루에 누워 앞뒤 문을 열어
놓고 있다가, 앞뒤 문으로 나락드락
불어오는 바람에 겨드랑 땀을 식히고 있다가,
스윽, 제비 한마리가,
집을 관통했다
그 하얀 아랫배,
내 낯바닥에
닿을 듯 말 듯,
한순간에,
스쳐지나가버렸다
집이 잠시 어안이 벙벙
그야말로 무방비로
앞뒤로 뻥
뚫려버린 순간,
제비 아랫배처럼 하얗고 서늘한 바람이
사립문을 빠져 나가는 게 보였다 내 몸의
숨구멍이란 숨구멍을 모두 확 열어젖히고
(펌: 문태준 시인의 글)
'마음을 놓다'라는 말, 참 오랜만이다. 마음을 풀어 놓아 버린 일 얼마나 오래되었나. 마음 졸이며 염려하고 살아왔을 뿐. 시인은 대청마루에 큰 대(大)자로 누워 있었던 모양이다. 최대한 마음과 몸을 느슨하게 하고서. 바다처럼 편편하고 넓게 퍼져서. 그런데, 스윽, 칼날이 지나가듯 제비가 공중을 한 층 횡으로 서늘하게 자르면서 지나간 모양이다. 손가락을 퉁기는 정도의 짧은 시간 동안에 벌어진 기습처럼. '나락드락 불어오는 바람'보다 더 민첩한 한 줄기 바람으로.
집과 나의 중심부를 뚫고 지나갔으니 급소(명자리)를 맞은 듯 어이없고 어리둥절해서 말을 잃었을 것이다. 그러나 그런 체험은 얼마나 시원한 것인가. 체증(滯症)이 가신 듯했을 것이다. 마음을 꼭 붙들어 매는 것만이 능사는 아닐 터. 마음을 사방으로 허술하게 경계 없이 풀어놓는 것으로서 우리는 마음의 열림을 얻기도 한다. 그것이 무방비의 미덕이다. 좀 게으르게 혹은 별 준비 없이 멍청하게 있다가 한번쯤 당해보기도 해보라. 그런 당함에는 오히려 소득이 있다. 마음의 앞뒤 문을 다 열어놓고 있지 않았다면 어떻게 '제비 아랫배처럼 하얗고 서늘한 바람'을 볼 수 있었겠는가. 마음을 조급하게 각박하게 쓰느니 차라리 이처럼 마음에 장애를 아예 만들지 않음이 오히려 '심심(深心)'이요, '정(定)'에 가깝다.
손택수(38) 시인은 긍정심이 아주 많은 시인이다. 다른 존재들의 '빛나는 통증'을 그의 시는 받아 안는다. 그의 시는 그가 어렸을 때 그곳서 자랐다는 전남 담양 강쟁리 마을을 배경으로 태어나는 경우가 많다. 그곳 마을 사람들의 천문(天文)적인 상상력은 그의 시에 들어와 크게 빛을 발하면서 그만의 새로운 서정을 만들어낸다. "별이 달을 뽀짝 따라가는 걸 보면은 내일 눈이 올랑갑다"('가새각시 이야기')라고 말씀하시는 할아버지와 매달 스무 여드렛날은 "달과 토성이 서로 정반대의 위치에 서서/ 흙들이 마구 부풀어오르는 날"('달과 토성의 파종법')이자 "땅심이 제일 좋은 날"이라며 밭에 씨를 뿌리러 가던 할머니의 상통천문(上通天文)이 자주 등장한다. 뿐만 아니라 사람의 콧구멍에는 흰 쥐와 검은 쥐 두 마리가 혼쥐로 살고 있다는 믿음, 임신한 몸으로 시큼하고 골코롬한 홍어를 먹으면 태어날 아이의 살갗이 홍어처럼 붉어진다는 믿음 등 오랜 세월을 거치는 동안 한 마을에서 자연 발효된 이런 금기사항은 우리 시에서 어느덧 희귀해진 것이어서 각별하고 값지다.
그는 스무 살 무렵 안마시술소에서 구두닦이를 할 때 안마시술소 맹인들에게 시를 읽어주면서 시를 처음 알게 되었다고 했다. 이시영 시인은 그를 "송곳니로 삶을 꽉 물고 놓지 않는, '고향의 기억'을 잊지 않는 오랜만의 생동하는 민중서사적 시인"이라고 평가했다. 나는 그의 시를 읽을 때마다 '역린(逆鱗)'을 생각한다. "물고기 비늘 중엔 거꾸로 박힌 비늘이 하나씩은 꼭 있다고"('거꾸로 박힌 비늘 하나') 하는데, "유영의 반대쪽을 향하여 날을 세우는 비늘"인 역린을 생각한다. 그의 시에는 바닥으로 곤두박질친 생(生)을 펄떡이게 하는, '뽈끈 들어올려주는' 힘이 있다. 시에 있어서 가장 든든한 원군(援軍)은 역시 '삶 그 자체'라는 것을 다시 깨닫게 해준다. (문태준, 시인)
(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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방어진 해녀
손 택 수
방어진 몽돌밭에 앉아
술안주로 멍게를 청했더니
파도가 어루만진 몽돌처럼 둥실둥실한 아낙 하나
바다를 향해 손나팔을 분다
(멍기 있나, 멍기-)
한여름 원두막에서 참외밭을 향해 소리라도 치듯
갯내음 물씬한 사투리가
휘둥그래진 시선을 끌고 물능선을 넘어가는데
저렇게 소리만 치면 멍게가 스스로 알아듣고
찾아오기라도 한다는 말인가
하마터면 정신나간 여잔가 했더니
파도소리 그저 심드렁
갈매기 울음도 다만 무덤덤
그 사투리 저 혼자 자맥질하다 잠잠해진 바다
속에서 무엇인가 불쑥 솟구쳐 올랐다
하아, 하아- 파도를 끌고
손 흔들며 숨차게 헤엄쳐나오는 해녀,
내 놀란 눈엔 글쎄 물 속에서 방금 나온 그 해녀
실팍한 엉덩이며 볼록한 가슴이 갓 따 올린
멍게로 보이더니
아니 멍기로만 보이더니
한 잔 술에 미친 척 나도 문득 즉석에서
멍기 있나, 멍기- 수평선 너머를 향해
가슴에 멍이 든 이름 하나 소리쳐 불러보고 싶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