불선여정不宣餘情


정끝별


쓸 말은 많으나 다 쓰지 못한다 하였습니다 편지 말미에 덧붙이는 다 오르지 못한 계단이라 하였습니다

꿈에 돋는 소름 같고 입에 돋는 혓바늘 같고 물낯에 돋는 눈빛같이 미처 다스리지 못한 파문이라 하였습니다

나비의 두 날개를 하나로 접는 일이라 하였습니다 마음이 이아음을 안아 겹이리든가 그늘을 새기고 아침마다 다른 빛깔을 펼쳐내던 두 날개, 다 펄럭였다면 눈 멀고 숨 멎어 돌이 되었을 거나 하였습니다

샛길 들목에서 점방처럼 저무는 일이라 하였습니다 봉인된 후에도 노을을 노을이게 하고 어둠을 어둠이게 하는 하염총총 하염총총, 수북한 바람을 때늦은 바람이게 하는 지평선의 목마름이라 하였습니다

때가 깊고 숨이 깊고 정이 깊습니다 밤새 낙엽이 받아낸 아침 서리가 소금처럼 피었습니다 갈바람도 주저앉아

불선여정 불선여정 하였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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말을 할수록 침묵하는 것이 많아지는 것이
시와 사랑 아닌가. ˝이대 나온 여자˝ 정 시인의
오늘 특강 중 결미의 말이었다.
밝고 편안한 기운을 나눠주는 시인이었다.
침묵하고 있는 이야기를 이해하는 단계라면,
시든 사랑이든,
쉬이 돌아가지 못할 인연의 문턱을 넘은 게 아닐까.
정끝별은 아버지가 지어주신 본명이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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