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국 현대사 산책 1960년대편 3 - 4.19 혁명에서 3선 개헌까지 한국 현대사 산책 8
강준만 지음 / 인물과사상사 / 2004년 9월
평점 :
구판절판


79일 한미행정협정이 조인된다. 정확히 말하면 주둔군 지위에 관한 협정또는 소파(SOFA : Status of Forces Agreement) . 한홍구는 소파에 대해 이렇게 말한다.

 

“.....지금 입장에서 볼 때 소파는 엄청난 불평등 조약이지만, 베트남 파병이라는 피의 대가로 한국은 미군의 무법천지를 적어도 외형상으로나마 벗어날 수 있었다. 미군 범죄는 1967년 이후 해마다 적을 때는 1100여건, 많을 때는 2300여 건이 일어났는데, 1967년 이전에는 통계조차 없다. 다만 관련자들의 증언에 의하면, 소파 채택 이후 미군 범죄가 현격하게 줄어들었다고 하니 미군 범죄가 그동안 얼마나 심각했는지를 미루어 짐작할 수 있을 뿐이다.”

 

미국은 한국지식계 역시 장악했다. 가장 대표적인 친미 연구소는 57년에 창립된 고려대의 아시아문제연구소였다. 62년엔 아세아문제연구소는 고려대 총장 유진오, 한국학술원 회장 이병도, 미 대사 버거 등이 참석한 가운데 포드재단 원조자금에 의한 특수연구 시무식을 개최하기도 한다.

 

황용주 필화사건 이후 통일 논의는 완전 금기가 되었다. 금기를 깬 건 민주사회당 발기를 선언하고 나선 서민호였다. 서민호는 한일협정 폐기, 주월 한국국 철수, 김일성과의 면담을 주장하다 반공법 위반 혐의로 구속된다.

 

524, 부산 세관은 한국비료에서 사카린 2259포대(55)을 건설자재로 꾸며 들어와 판매하려던 것을 적발한다. ‘한국비료 사카린 밀수사건의 시발이었다.



 

동양텔레비젼, 동양라디오, <중앙일보>등 삼성 비호에 전 중앙 매스컴이 총동원된다. 국회에선 이만섭, 김대중 등이 이병철의 구속을 주장한다. 김두한은 국무위원석으로 다가가 똥이나 쳐먹어, 이 새끼들아, 고루고루 맛을 봐야 알지라고 국무위원들에게 똥을 뿌린다.

 

사태가 심각해지자 이병철은 한국비료 국가헌납과 자신의 경제계 은퇴를 발표한다. 헌납각서까지 썼던 이병철은 도중에 각서 내용을 부인하는 한편 사카린 밀수사건은 언론이 만든 조작극이라고 오리발을 내밀어 물의를 빚는다. 이병철은 뭘 믿고 이토록 오만방자했던 것일까. 이병철의 장남 이맹희는 회고록에서 사카린 밀수 사건은 박정희와 이병철의 공모 아래 정부기관들이 공모한 엄청난 규모의 조직적 밀수라고 폭로한다.

 

“65년말 시작된 한국비료 건설 과정에서 일본 미쓰이는 공장 건설에 필요한 차관 4200만 달러를 기계류로 대신 공급하며 삼성에 리베이트로 100만 달러를 줬다. 아버지는 이 사실을 박 대통령에게 알렸고, 박 대통령은 여러 가지를 만족시키는 방향으로 그 돈을 쓰자고 했다.

 

..삼성은 공장 건설용 장비를, 청와대는 정치자금이 필요했기 때문에 돈을 부풀리기 위해 밀수를 하자는 쪽으로 합의했다. 밀수 현장은 내가 지휘했으며, 박 정권은 은밀히 도와주기로 했다. 밀수를 하기로 결정하자 정부도 모르게 몇 가지 욕심을 실행에 옮기기로 했다. 이 참에 평소 들여오기 힘든 공장기계나 건설용 기계를 갖고 오자는 것이다. 당시 밀수 총액은 요즘으로 치면 2천억 원에 해당했다. 밀수한 주요 품목은 변기, 냉장고, 에어컨, 전화기, 스테인리스판과 사카린 원료 등이었다.”

 

양변기의 경우 한국 암시장에서는 15만 원에 팔렸다고 한다. 삼성이 양변기 100개를 남대문 암시장에 풀자 가격이 10만원으로 떨어졌다. 김형욱은 이렇게 증언한다.

 

그 품목들이 사카린은 물론 표백제, 전화기 제품, 수세식 변기, 심지어 목욕하는 욕조에 이르기까지 1만여 가지에 달하고 있었다. 울산 현장에서 나의 요원들이 조사를 시작하자 이병철은 당황하여 물건들을 모래 사장에 묻기도 하고, 바다에다 버리기도 하면서 난리를 치고 있는 것을 나는 손바닥을 들여다보듯 환히 파악하고 있었다.”

 

이맹희의 증언에 따르면, 한국비료는 박정희 이병철 합작사업이었다. 종국에 박정희는 이병철을 배신한다. 박정희는 공식석상에서 재벌 밀수는 반국가 행위라고 말했다. 조갑제는 만약 이맹희가 이런 고백을 1966년 당시에 했더라면 아무리 강력한 박정희 정권이라 하더라도 무너졌을지 모르겠다는 생각이 들 정도로의 충격적인 내용이다고 말했다.



 

학생들은 밀수 규탄 성명서를 발표한다.

 

1015일 민중당은 대구 수성천변에서 특정재벌 밀수진상폭로 및 규탄국민대회를 개회했다. 이 대회에서 장준하는 박정희야말로 우리 나라 밀수 왕초다라고 말했다.

 

대구 발언 때문에 장준하는 구속된다. 강준만은 이렇게 적었다.

 

무엇보다도 박정희야말로 우리나라 밀수 왕초다라는 말이 박정희를 분노케 했을 것이다

그건 진실이었기 때문이다.

 

미군은 10월 말부터 한국군 2만 명 추가 파병을 요청한다. 한국으로선 4차 파병이었다. 박정희는 동의한다. 미국 대통령 존슨 방한은 1031일로 예정돼 있었다. 박정희는 존슨 환영을 위해 15천만 원을 투입한다. 국기 100만개, 국화 5만 송이. 존슨을 위해 홍콩에서 특제 침대형 침대까지 긴급 공수된다. 한양대에서 워커힐 뒤편 빌라 까지 이틀 밤을 새워 자갈길을 포장도로로 바꾼다. 존슨의 환영식에 동원된 인원은 학생 100만명 시민 155만명, 공무원 20만 명등 모두 275만명이었다. (당시 서울 인구는 350만명)

 

박정희는 존슨을 위한 기생파티까지 준비했으나, 존슨의 아내 버드 때문에 무위에 그쳤다. 박 정권은 존슨을 수행한 백악관 기자들에게도 기생 서비스를 베풀었다. UPI 통신 기자인 매리엄 스미스가 자기 방에 들어온 여자를 보고 기겁을 해 문명자에게 도움을 요청한다. 문명자의 증언이다.

 

“ ‘홍 장관, 왜 이리 나라 망신을 시켜요? 백악관 기자단에 여자를 붙여요?’ 홍종철은 김형욱 부장이 한 일이라며 쩔쩔맸다. ....기자에게 여자를 붙여주는 나라가 이 지구상에 또 있을까. 그것이 바로 나의 조국이라니.”

 

65년 초, 박정희, 김종필, 김형욱이 모인 자리에서 박정희는 김형욱에게 <경향신문>을 정부 소유로 만들라는 지시를 내린다. 66<경향신문>이 경매 처분되어 기아산업 대표이던 김철호에게 넘어간다. 중정이 개입한 음모극이었다. 박정희는 이후 <경향신문>을 신진자동차 김창원에게 넘긴다. 이후 <경향신문>은 문화방송과 함께 박정희 친위언론으로 전락한다.

 

<조선일보>45일자 신문에서 <부정부패를 추방하자>라는 캠페이성 기사를 연재한다. 이 기사가 나가자 중앙정보부는 정권 타도의 의미가 있다며 세무사찰, 은행 융자금 회수, 신문용지 배당 중단 등의 조치를 취한다. 박정희를 비판한 <동아일보> 최영철 기자, 민주당 의원 박한상, <동아일보> 정치부 권오기 등은 괴한으로부터 테러를 당한다.

 

625일 한국사상 첫 세계 권투 타이틀 매치인 김기수의 챔피언 도전전이 장충체육관에서 열린다. MBC의 시청률은 거의 100%에 육박했다.



 

60년 중반의 가요계는 이미자와 최희준의 시대였다. 이미자의 <동백아가씨>, 최희준의 <하숙생>이 인기를 끌었다. 3월에 귀국한 패티킴 리사이틀이후 리사이틀 붐이 일었다. 어떤 공연이건 무조건 리사이틀이라는 타이틀을 붙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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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6-08-12 11:08   URL
비밀 댓글입니다.

시이소오 2016-08-12 11:15   좋아요 0 | URL
엄청나게 뿌렸죠. 당시 2층 양옥집을 살 정도 돈을 쥤다고하네요. 그러니 그냥 박정희라 하면 꺼벅 죽는거죠

겨울호랑이 2016-08-12 13:33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아시아문제연구소에는 식민사관의 거두 이병도 이 분도 있네요.. 정말 아시아에서 문제있는 연구소입니다.. 지금 보니 어른들이 말씀하시는 옛날도 그렇게 좋지 않은 것 같아요.. 라고 생각했는데 속보를 보니 이재현 CJ 회장님께서 특사를 받으셨군요..

시이소오 2016-08-12 14:03   좋아요 1 | URL
재벌과 권력의 유착, 계속 이렇게 놔둬야하는지.
갑갑하네요 ㅠㅠ
 

기억술의 핵심은, 우리 뇌가 잘 기억하지 못하는 것을 기억하기 쉬운 것으로 바꾸는 것이다. 이 방법은 기억할 내용을 상대적으로 기억이 잘 되는 시각 이미지로 바꾸어 기억의 궁전에 심는 것이다. 이때 재미있고, 외설스럽고, 기괴한 이미지가 기억에 더 잘 남는다.

 

 

예를 들어, 내 포커 카드 중 하트 킹은 마이클 잭슨이 흰 장갑을 끼고 문워크 하는 이미지, 클럽 킹은 영화배우 존 굿맨이 햄버거 먹는 이미지, 다이아몬드 킹은 빌 클린턴이 시가를 피우는 이미지다.

 

가장 기본적인 생리 수준에서 볼 때 기억은 뉴런간 연결 패턴이다. 우리가 기억하는 모든 감각, 우리가 떠올리는 모든 생각은 이 거대한 네트워크에 존재하는 뉴런의 연결을 바꿈으로써 뇌를 바꾼다.

 

뇌는 기본적으로 비선형 구조나 방사선 구조로 되어 있기 때문에, 기억을 순차적인 방식으로 찾는다는 것은 불가능하다. 어떤 일을 또렷이 기억한다는 것은 그것이 다른 생각이나 지각, 즉 거미줄처럼 연결되어 있는 뇌 신경망을 통해 다른 기억과 연상 작용을 하고 있다는 것을 뜻한다.

 

놀랍게도 지력 선수들이 새로운 정보를 학습할 때 두 가지 특수한 임무, 즉 시각 기억과 공간 탐지 기능을 담당하는 곳으로 알려진 뇌의 여러 부위가 눈에 띄게 활성화됐다.

 

이름을 암기하는 방법

 

어떤 사람의 이름을 상상할 수 있는 다른 이미지와 연결하는 거야. 예를 들면, 머릿속으로 그 사람의 얼굴에 대한 시각 기억을 이름과 연관된 시각 기억과 묶어 둘 제 3의 이미지를 만드는 거지.

 

청킹

 

청킹은 기억해야 하는 항목의 부피를 늘려서 전체 개수를 줄이는 방식이다.

청킹은 언어 분야에 처음 접목됐다. HEADSHOULDERSKNEESTOES라는 스물 두 글자를 기억해야 한다고 하자. 뜻은 고사하고 눈에 잘 들어오지도 않는 글자를 외우자니 난감할 것이다. 하지만 이것을 네 덩어리


HEAD, SHOULDERS, KNEES, TOES로 나눠보자. 일단 눈에 확 들어오고 암기하기도 더 쉽다. 동요를 잘 아는 사람이라면 머리 어깨 무릎 발같은 동요의 한 마디로 묶어서 암기할 수 있을 것이다.

 

체스기사들

 

체스 전문가들은 수를 더 많이 읽거나 보지 않았다. 오히려 병아리 감별사들과 비슷하게 행동했다. 그들은 어떤 말을 어디로 움직여야 하는지 직관적으로 바로 아는 것 같았다. 그들은 폰 구조같은 말의 위치나 배치에 대해 말했고, 상대에게 노출된 룩처럼 죽은 것과 다름 없는 말들을 바로 알아챘다. 그들은 체스 판에 놓인 말 서른두 개를 각각 독립적인 것으로 보지 않고 여러 덩어리로 묶어 판단했다.

 

그들의 안구 운동을 연구한 자료를 보면, 그들은 말이 움직이는 각 칸보다 칸을 이루고 있는 테두리를 평범한 선수들에 비해 더 주시한다는 것을 알 수 있다. 이것은 그들이 한 번에 여러 칸에서 동시에 정보를 얻는다는 것을 뜻한다.

 

이들은 슬쩍 한 번만 보고도 체스 판을 통째로 기억할 수 있었다. 그리고 오래전에 두었던 게임도 기억에서 끄집어내 그대로 복기할 수 있었다.

 

우리는 어떤 사실을 개별적으로 기억하기보다는 맥락에 따라 기억한다. 앞에서 열두 자리 숫자를 우리가 아는 역사적 사건과 날짜에 기초해 덩이를 지은 것처럼 체스 마스터들도 체스 판의 말을 덩이 짓기 위해 장기 기억에 저장된 수많은 체스 패턴을 쓴다. 이것은 체스 달인들이 가진 체스 경기에 대한 경험과 지식이 그만큼 풍부하다는 것을 반증한다. 어느 분야든 마찬가지겠지만, 체스에서 세계 정상급 선수로 발돋움하기가 어려운 이유가 바로 이것이다. 경험은 하루아침에 쌓이는 게 아니기 때문에 많은 시간과 노력을 투자해야 얻을 수 있다.

 

뇌가 방출하는 미세한 자기장을 검출하는 기술인 뇌 뢴트겐 촬영법을 통해 세계 정상급 체스 기사들이 체스판을 응시하고 있을 때 그들의 전두 피질과 두정 피질이 더 활성화되는 것을 알 수 있다. 이것은 그들이 체스 판을 보면서 장기 기억에 저장된 정보를 떠올린다는 것을 뜻한다. 이와 달리 평범한 체스 기사들의 경우 내관자엽이 더 활성화되는데, 이것은 그들이 새로운 정보를 수집한다는 것을 나타낸다.


에릭손에 따르면 전문 지식이란 관련 분야에서 오랫동안 일하며 획득한 광범위한 지식, 패턴에 기초한 검색, 계획 체제. 다른 말로 하면, 우수한 기억이란 전문 지식의 부산물이 아니라 전문 지식의 정수다.

 

왜 나이들수록 시간은 빨리 흐르는가

 

제가 주관적 시간을 연장하는 작업을 하고 있는데, 이것 때문에 더 오래 살 수 있지 않을까 싶습니다. 무슨 말인가 하면, 한 해가 저물어 갈 때 허망한 느낌이 있잖아요. 도대체 한 해 동안 뭘 했지 하는 느낌을 갖지 않게 하는 겁니다.”

어떻게 그렇게 할 수 있죠?” 내가 물었다.

 

더 많이 기억하고, 인생에 아주 오래 남을 추억을 차곡차곡 쌓고, 시간의 흐름을 더 확실하게 각인하는 거죠.”

 

나는 그럴듯한데요하면서 갑자기 떠오른 풍자 소설가인 조지프 헬러의 <캐치 22>에 나오는 파일럿 던바에 대해 이야기했다. 던바는 인생이 즐거울수록 시간이 빨리 흐른다고 생각해서, 인생의 속도를 늦추는 가장 확실한 방법은 삶을 지루하게 만드는 것이라고 했다.

 

에드가 어깨를 으쓱하며 말했다. “저는 정반대입니다. 인생을 기억으로 채우면 채울수록 시간은 더디게 흘러갑니다.”

 

그는 실험을 시작한지 한 달밖에 안 됐다고 생각하고 있었다. 그는 외부와 차단된 캄캄한 동굴에서 시간이 두 배나 압축적으로 흘러 버린 것을 경험했다. 단조로움이 시간을 줄인다. 시간을 늘리는 것은 새로움이다. .....틀에 박힌 일상을 바꾸고 이국적인 곳으로 여행을 떠나고 가능한 한 기억에 남을 새로운 경험을 많이 하는 것이 중요하다. 새로운 기억의 창조가 심리적 시간을 늘리고 삶에 대한 인식과 태도를 바꾼다.

 

미국의 심리학자이자 철학자인 윌리엄 제임스는 1890년에 쓴 <심리학 원리>에서 심리적 시간의 연장과 수축에 대해 이렇게 썼다. “젊어서 우리는 의도하든 의도하지 않든 매일 매 시간 아주 색다른 경험을 한다. 이런 경험은 생생하게 오래 기억에 남는다. 그래서 젊을 때 기억은 흥미진진한 여행지의 추억처럼 다채롭고 이색적이고 오랫동안 남는다. 하지만 나이가 들수록 이런 색다른 경험은 틀에 박힌 일상으로 바뀌어 진부한 것이 되기 때문에 별 의미 없는 것으로 기억에 남고, 그래서 해가 바뀔수록 기억에서 하나씩 자취를 감춘다.”

 

해가 갈수록 시간이 빨리 가는 것처럼 느껴지는 것은 나이가 들수록 새로 기억할 만한 일이 줄어들기 때문이다. “기억하는 것이 인간적인 것이라면, 더 많은 것을 기억하는 것은 더욱더 인간적으로 되는 것입니다.” 에드가 말했다.

 

서술기억

 

심리학자들은 서술적 기억을 더 세분화해서 의미 기억 또는 사실 및 개념 기억과 일화 기억 또는 생활에서 얻는 경험 기억으로 나눈다. 어제 아침에 삶은 달걀을 먹었다고 하자. 이것을 기억하는 것이 일화 기억이다. 반대로, 아침 식사가 세끼 중 가장 먼저 하는 식사라고 아는 것이 의미 기억이다. 일화 기억은 시공간 안에 있다. 그래서 어디와 언제가 꼭 따라다닌다.

 

기억법의 핵심 1 : 기억은 시각 이미지를 좋아한다.

기억법의 핵심 2 : 공간을 활용하라.

 

이 전통은 기원전 5세기에 시모니데스가 갑자기 붕괴한 대연회장 잔해 더미 위에 선 순간 시작되었다. 시모니데스는 눈을 감고 머릿속으로 산산조각 난 건물의 잔해를 맞춰 원래 모양대로 되돌리던 중 놀라운 경험을 한다. 연회에 초대된 손님들이 건물이 무너지기 직전에 어디에 앉아 있었는지 똑똑히 생각한 것이다. 손님들의 자리 배치를 일부러 기억하려고 한 적은 없다. 시모니데스는 이때 경험으로 나중에 기억술의 토대가 되는 기억 기법을 개발했다.

 

그는 역으로 이렇게 생각해 봤다. 만일 연회에 일반인이 아니라 당대 최고라고 할 수 있는 극작가들처럼 좀 특별한 사람들이 모두 참석해 나이순으로 앉아 있었다면 그대로 기억하지 않았을까? 혹시 식탁에 손님들 대신 자신의 시가 한 수 놓여 있었다면? 그는 공간 기억을 활용하면 무엇이든 마음에 떠올릴 수 있고, 기억에 새겨 넣을 수도 있으며, 오랫동안 간직할 수도 있다고 확신했다.

 

시모니데스의 기법은 숫자, 포커 카드 한 벌, 쇼핑 리스트, <실낙원>같이 암기하기 힘든 것을 시각 이미지로 바꾸거나 가상의 공간에 배열하는 것이었다.

 

<헤렌니우스에게 바치는 수사학>에 따르면, 기술적 기억은 이미지(모상)와 장소라는 두 가지 기본 구성 요소를 가지고 있다. 이미지는 어떤 사람이 기억하려고 하는 것의 내용이고, 장소는 이미지가 저장되는 곳이다. 따라서 기술적 기억은 가상의 공간, 즉 이미 잘 알고 있어서 머릿속으로 쉽게 떠올릴 수 있는 장소를 만드는 것이다. 그리고 이렇게 만든 가상의 공간에 기억하려고 하는 대상의 이미지를 저장한다. 로마인들이 장소법이라 한 가상의 건물이 나중에 기억의 궁전으로 불린 것이다.

 

전미 메모리 챔피언십에서 네 번 연속 우승을 차지한 스콧 해그우드는 기억 저장소로 건축 전문 잡지 <건축 다이제스트>에 소개되는 호화 주택을 썼다. 말레이시아의 기억술사인 입 스위 추이 박사는 57,000단어를 수록한 1,774짜리 <옥스퍼드 중앙 사전>을 통째로 암기하기 위해 자기 몸의 각 부위를 기억의 궁전으로 썼다.

 

기억의 궁전에서 중요한 것은 내게 가장 친숙한 공간을 선택하는 것이다. “첫 번째 기억의 궁전으로 어린 시절을 보낸 집이 좋을 것 같아. 보통 어린 시절을 보낸 집이 가장 친숙한 공간이거든

 

 

기억의 궁전 만들기

 

나에게 친숙한 공간 선택하기. ; 어린 시절을 보낸 집


2. 기억해야 할 단어의 이미지 만들기 : 이미지는 기억할 대상과 같거나 비슷하면 좋다. , 재미있고, 외설스럽고, 색다르게 만들어야 한다. 모호하지 않고 동적이면 더 좋다. 뇌는 항상 새로운 것을 갈망하기 때문에 기이한 이미지일수록 기억에 오래 남는다. 거기에 다양한 감각 정보를 결합하면 금상첨화.

 

3. 기억의 궁전에 저장하기

 

공간을 머리에 떠올리면서 구석구석에 이미지를 심어 둔다. 이때 각 장소는 너무 밝아도 너무 흐릿해서도 안 된다. 또 그림자가 이미지를 흐려서도 번쩍거리게 해서도 안 된다. 이미지 사의의 간격은 서른 걸음 정도가 좋다.

 

4. 심어놓은 이미지 찾기

 

아침에 궁전을 만들었다면 저녁에 궁전을 거닐어 보고 다음날 오후에 또 1주일 뒤에 거닐어보라. 글미을 그리듯 선명하게 각인될 것이다. 머릿속에 공간이 새겨지면 저장된 내용을 떠올리고 싶을 때는 언제든 기억의 궁전을 따라 걷기만 하면 된다.

 

 

시 암송하기

 

키케로는 연설문을 기억하는 최선의 방법은 원고를 통째로 암기하기 보다는 사물 기억으로 요점을 파악하는 것이라고 보았다. 그는 <연설가에 대하여>에서, 연설을 앞둔 연설가는 주요 화제별로 이미지를 그리고 그것을 기억의 궁전에 심어 두기만 하면 된다고 했다.

 

암송의 기술1 : 운율이 기억을 돕는다

 

뇌는 반복적이고, 리듬이 있고, 운율이 있고, 무엇보다 쉽게 시각화 할 수 있는 것을 가장 잘 기억한다.

 

음유시인들의 기억술 가운데 가장 널리 쓰인 것은 노래다. 어떤 것을 노래로 만들어 계속 흥얼거리고 다니면 절대 잊지 않을 것이다.

 

암송의 기술 2 : 외설적인 이미지로 만들어라

 

<헤렌니우스에게 바치는 수사학>의 저자는 시를 있는 그대로 기억하는 최선의 방법은 행을 두세 번 되풀이해 읽고 나서 관련 이미지를 떠올리는 것이라고 한다.

 

키케로와 같은 시대 인물인 스켑시스의 메트로도루스가 시각화할 수 없는 것을 시각화할 방법을 내놓았다. 영어의 접속사, 관사, 전치사 등 연결어에 상응하는 간단한 이미지의 체계를 개발한 것이다.

 

하지만 안타깝게도, 현재 메트로도루스의 이미지 체계는 존재하지 않는다. 그래서 군터는 쉽게 시각화할 수 없는 단어 200여 개를 골라 자기만의 이미지 사전을 만들어서 활용한다. 그 사전에서 영어의 ‘and’는 원이고 (‘and’는 둥글다를 뜻하는 독일어 ‘rund’와 운이 맞다). ‘the’는 무릎으로 걷는 사람이다. 그리고 시가 끝나는 지점에는 못을 박는다.

 

 

이미지를 떠올릴 수 없는 단어를 이미지화하는 군터의 방법은 아주 오래된 방식으로, 발음이 비슷한 단어나 동음이의어로 대체해 시각화 하는 것이다.

 

14세기 영국의 신학자이자 수학자로 켄터베리 대주교에 임명된 토머스 브래드워딘은 이런 단어 기억을 가장 극대화했다. 그는 음절 기억이, 시각화하기 어려운 단어를 기억하는 데 이용할 수 있는 최적의 수단이라고 했다. 브래드워딘의 방법은 단어를 음절로 나누고 같은 음절로 시작하는 다른 단어를 토대로 이미지를 창조하는 것이다.

 

예를 들어, 음절 ‘ab-’를 기억해야 할 경우 대수도원장(abbot)을 떠올린다. ‘ba’는 궁노수(balistarius)를 그린다. 그리고 이 두 음절을 결합해 이미지화하면 수수께끼같이 요상한 그림이 만들어진다.

 

그녀는(코린나 드라슐)은 시를 작은 덩어리로 나누고 각 덩어리에 일련의 감정을 부여한다. 단어와 이미지를 연결하기 보다는 단어에 감정을 불어넣는 것이다.

 

저는 글쓴이가 어떤 감정 상태이며 무엇을 의도하는지 느끼고, 그가 행복한지 슬픈지 상상합니다.”

 

라벤나의 피터는 판례 2만 건, 오비디우스가 쓴 글 1,000, 키케로의 연설과 격언 200, 철학자의 격언 300, 성경 1,000절과 수많은 고전을 외운다고 자랑했다. 그는 틈나는 대로 기억의 궁전에 저장한 글을 다시 꺼내 읽었으며 이렇게 기록했다. ...그는 이 글들의 이미지를 저장하기 위해 처음에 1만 개나 되는 기억의 궁전을 사용했는데, 이 숫자는 유럽 전역으로 성지 순례를 다니면서 계속 늘었다. 그는 주제별 관련 자료와 인용구를 알파벳순으로 분류한 마음의 도서관을 지었다.

 

13세기 카탈루냐 출신 철학자이자 신비주의자인 라몬 율에게 영감을 얻은 그(브루노)는 모든 단어를 고유의 이미지로 전환할 특수 장치를 고안했다. 이 장치는 둥근 바퀴가 동심원 구조로 이어진 형태로 각 바퀴의 둘레에는 두 글자가 한 쌍을 이루어 총 150쌍의 단어가 새겨져 있었다.

 

가장 안에 있는 첫 번째 바퀴 둘레에 새겨진 단어 150쌍은 신비하고 불가사의한 모양과 짝을 이루었다. 두 번째 바퀴 둘레에는 항해’, ‘양타자 위에’, ‘깨진150가지 행위와 상태가 나란히 표시되어 있었다. 세 번째 바퀴에는 150개의 형용사가, 네 번째 바퀴에는 150가지 사물이, 다섯 번째 바퀴에는 진주로 꾸민또는 바다 괴물을 타고 있는같은 150가지 상황이 새겨져 있었다. 바퀴를 적절히 돌려 맞추면 최대 다섯 음절까지 어떤 단어든 독특한 아미지로 바꿀 수 있었다.

 

숫자 기억은 내가 일상에서 기억의 궁전을 시험해 본 주요 대상 중 하나다. 나는 메이저 시스템이라고 알려진 기법을 썼는데, 그것은 1648년경 독일의 예술사가이자 고고학자인 요한 빙켈만이 개발한 것으로 숫자를 음성으로 전환하는 간단한 코드다. 음성은 다시 단어로 전환되고, 단어는 이미지로 전환돼 기억의 궁전에 저장된다. 작동방식은 다음과 같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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원주율 10만 자리나 메이저리그 뉴욕 양키스 선수 개개인의 평균 타율같이 긴 숫자를 암기할 때 지력 선수들은 기억 마니아, 루빅큐브의 달인, 수학 천재 등을 위한 온라인 포럼인 월드와이드 브레인 클럽에서 사람- 행동-대상(Person action object) 또는 간단히 머리글자만 따서 PAO로 알려진 기법을 쓴다.

 

PAO 시스템00에서 99까지 모든 두 자리 숫자를 어떤 사람이 어떤 대상에게 어떤 행동을 하는 이미지로 나타낸다. ....이 시스템은 00에서 999,999까지 숫자마다 고유의 이미지를 만들 수 있어서 좋다.

 

밀레니엄 PAO’라는 그의 새 방법은 경쟁자인 대륙의 지력 선수들이 주로 쓰는 두 자릿수 방법을 사람 행동 대상 이미지 1,000가지로 된 세 자릿수 방법으로 수준을 높인 것이었다. 이 방법으로 그는 0에서 99,9999,999까지 숫자별로 고유한 이미지를 만들 수 있었다.

 

지력 선수들이 포커 카드를 암기하는 데 쓰는 방법은 비슷하다. 보통 PAO를 이용해 52장의 카드를 사람 행동 대상 이미지와 연결한다. 이 방법을 이용하면 카드 세 장을 이미지 하나로 묶으니까, 카드 한 벌을 열여덟가지 이미지로 압축할 수 있다.

 

벤은 이진수를 암기하기 위해 이와 비슷한 비잔틴 시스템도 개발했다. 이 시스템은 10으로 된 이진수를 열 자리씩 끊고 이미지 하나로 전환하는 것으로, 그는 210승 개, 1,024개의 이미지를 만들어서 암기했다. 즉 열자리 이진수 1101001001을 한 덩어리로 보는 것이다.

 

벤은 각 줄에 인쇄된 이진수 30개를 이미지 하나로 전환한다.

 

전문가는 판에 박힌 일에도 초지일관 높은 집중력을 발휘한다는 점에서 일반인과 구분된다. 에릭손은 전문가들의 이런 태도를 주도면밀한 습관이라고 부른다. 그들은 자동화 단계로 진입하지 않기 위한 전력을 세우고 다음 세 가지를 꾸준히 실천한다. 자신의 기술에 집중하고, 항상 목표를 지향하며, 결과에 대해 꾸준히 비판하고 반성하는 것이다. 그들은 의도적으로 인지 단계에 머물러 있으려고 한다.

 

아마추어 연주자들은 연습 시간에 연주곡을 처음부터 끝까지 연습하는 경향이 있는 반면, 프로 연주자들은 곡의 특정 부분이나 난해한 부분에 연습을 집중한다.

 

에릭손이 전문가들에 대한 연구를 통해 알아낸 자동화 단계와 오케이 플래토에서 벗어날 최선의 방법은 결국 단점이나 약점을 찾아내 극복하는 것이다. 정통하고 싶은 분야나 일에 능통한 사람을 롤 모델로 삼아 그 사람이 어떻게 문제를 풀어 나가는지 알아보는 것도 한 방법이다.

 

실제로 어떤 사람의 체스 실력을 알아보는 척도는 그가 게임을 얼마나 많이 했느냐가 아니라, 얼마나 오랫동안 혼자 앉아서 기존 게임을 분석하고 연구했느냐에 있다.

 

어떤 것에 정통하기 위해 중요한 것은 연습하는 동안 그것을 어느 정도 의식적으로 통제할 수 있어야 한다는 것이다. 즉 자동화 단계로 넘어가 무의식적 상태가 되는 것을 경계해야 한다.

 

심리학자들이 찾아낸 가장 효과적인 방법은 현재의 타자 속도에 만족하지 않고 더 빨리 치도록 자신을 다그치는 것. 그리고 일부러 실수하는 것이다.

 

일단 내 카드 암기 속도를 알아낸 뒤 메트로놈을 그보다 10~20퍼센트 빠르게 맞춰 놓고, 이 속도에서 실수하지 않을 때까지 꾸준히 연습하는 것이다. 나는 메트로놈을 맞춰 놓고 연습하면서 잘 암기되지 않는 카드가 있으면 따로 기록했다가 나중에 왜 잘 기억되지 않는지를 되짚어 봤다. 놀랍게도 효과가 있었다.

 

만들어 놓은 이미지라고 해서 그냥 방치하면 안 돼. 계속 발전시켜야 해. 오늘 밤부터 카드 한 벌을 가져다가 카드별 이미지의 특징을 되새겨 봐. 이미지가 어떻게 생겼는지, 어떤 느낌인지, 무슨 냄새가 나고, 맛은 어떻고, 어떤 소리가 나는지, 걸음걸이는 어떻고, 어떤 옷을 입었는지, 태도는 어떻고, 성적 취향은 어떻고, 폭력성은 없는지 다시 꼼꼼히 따져 봐. 그 다음에 각 이미지를 종합적으로 그려 보는 거야. 상상이기는 해도 각 아미지의 물리적, 사회적 특징을 느껴보고, 그것들이 네 집 주변을 돌아다니면서 일상적인 일을 한다고 생각해. 그러면 이미지에 친숙해지니까 일반적인 상황에서도 희미해지는 일은 없을 거야. 포커 카든 한 벌을 암기하려면 어느 상황에서라도 떠올릴 수 있는 두드러진 특징을 각 이미지에 부여해야 해

 

한계란 없다. 정상이 있을 뿐이다. 하지만 거기에 안주해서는 안 된다. 그것을 넘어서려고 노력해야 한다.”

 

- 이소룡

 

 

헤렌니우스에게 바치는 수사학

 

선택한 장소는 아주 주의 깊게 숙지해야 한다. 그래야 기억에 오래 남는다. 그리고 장소의 개수를 헷갈리지 않으려면 다섯 번째 장소마다 표시를 해 놓으면 된다. 예를 들어 다섯 번째 장소마다 황금 손을 놓아두거나 열 번 째 장소마다 이름이 데키무스인 사람을 놓아두는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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루쉰P 2016-08-11 22:23   좋아요 1 | 댓글달기 | URL
이것이야말로 저에게 엄청 도움되는 리뷰 ㅋ 숨도 못 쉬고 읽었습니다. 저의 기억의 궁전을 빨리 만들어 봐야 겠어요 ㅋ 리뷰 넘나 감사합니다. ㅋㅋㅋㅋ

시이소오 2016-08-11 23:55   좋아요 1 | URL
저도 현대의 건축물들로 기억의 궁전을 만들어보고 싶네요 ^^

깊이에의강요 2016-08-12 10:16   좋아요 1 | 댓글달기 | URL
기억력 천재는 못되겠네요 ㅋ
어렵다ㅠ

시이소오 2016-08-12 10:37   좋아요 1 | URL
강요님은 할 수 있어요.
^^

이인우 2016-09-28 00:27   좋아요 1 | 댓글달기 | URL
기억궁전으로 대회나가서 1등하고 진짜 대단한것같아요

시이소오 2016-09-28 16:51   좋아요 1 | URL
저도 해보고 싶긴한데 동기가 없으니 안 되네요 ㅋ^^
 
1년 만에 기억력 천재가 된 남자 - 전 세계 사람들을 깜짝 놀라게 만든 기억의 위대한 힘
조슈아 포어 지음, 류현 옮김 / 갤리온 / 2016년 4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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은유님의 <글쓰기의 최전선>을 읽으니, 시를 암송하는 수업도 하신단다.  그래서 이 책을 읽고 난 이후, 시 암송에 도전할 작정이었다. 그런데 숫자를 암기하는 방법은 나오지만 시를 암송하는 방법은 없네. 메모리 그랜드 마스터인 에드 쿡은 밀턴의 <실락원>을 통째로 외운다. 저자인 조슈아 포어가 포토그래픽 메모리' 때문에 가능한 거 아니냐고 물었다. 에드 쿡이 말했다.

 

포토그래픽 메모리는 신빙성 없는 미신입니다. 그런 게 있을리 없죠. 사실 제 기억력은 보통 수준입니다.”

 

전 세계 기억력 그랜드 마스터는 포토그래픽 메모리같은 건 없다고 말하는데, 이지성은 왜 자신은 포토그래픽 메모리가 있다고 우기는 걸까. (책을 팔만큼 팔았으면 제발 사기 좀 그만치고 다녀라.)

 

쿡뿐만이 아니라 대부분의 기억력 마스터들은 누구나 기억력을 향상시킬 수 있다고 주장한다. 그래서 기자인 조슈아 포어는 자신을 실험삼아 일년 동안 기억력 훈련에 돌입, 일년 후 전미 기억력 챔피언쉽에 참가한다. 결과는

우승이었다. 심지어 조슈아 포어는 스피드 카드에서 신기록을 세운다.

 

독후감을 쓰기 위해 다시 읽어보니, 책에는 시를 암송하는 방법이 있었다. 내 기억에는 없었던 것. (이런 걸 뇌라고 할 수 있을까) 혹시나 기억에 도움이 될까 싶어 독후감을 남기기도 하지만 뒤돌아서면 잊어 버린다. 어떻게 하면 좀 더 오래 기억할 수 있을까?

 

기억의 궁전.

 

전 세계 기억력 마스터들은 전부 다 기억의 궁전을 활용한다. 다른 말로 장소법

 

 

기억의 궁전 만들기

 

나에게 친숙한 공간 선택하기. ; 어린 시절을 보낸 집

 

2. 기억해야 할 단어의 이미지 만들기 :

 

이미지는 기억할 대상과 같거나 비슷하면 좋다. , 재미있고, 외설스럽고, 색다르게 만들어야 한다. 모호하지 않고 동적이면 더 좋다. 뇌는 항상 새로운 것을 갈망하기 때문에 기이한 이미지일수록 기억에 오래 남는다. 거기에 다양한 감각 정보를 결합하면 금상첨화.

 

3. 기억의 궁전에 저장하기

 

공간을 머리에 떠올리면서 구석구석에 이미지를 심어 둔다. 이때 각 장소는 너무 밝아도 너무 흐릿해서도 안 된다. 또 그림자가 이미지를 흐려서도 번쩍거리게 해서도 안 된다. 이미지 사의의 간격은 서른 걸음 정도가 좋다.

 

4. 심어놓은 이미지 찾기

 

아침에 궁전을 만들었다면 저녁에 궁전을 거닐어 보고 다음날 오후에 또 1주일 뒤에 거닐어보라. 그림을 그리듯 선명하게 각인될 것이다. 머릿속에 공간이 새겨지면 저장된 내용을 떠올리고 싶을 때는 언제든 기억의 궁전을 따라 걷기만 하면 된다.

 

 

시 암송하는 법

 

1. 키케로의 방법

 

키케로는 연설문을 기억하는 최선의 방법은 원고를 통째로 암기하기 보다는 사물 기억으로 요점을 파악하는 것이라고 보았다. 그는 <연설가에 대하여>에서, 연설을 앞둔 연설가는 주요 화제별로 이미지를 그리고 그것을 기억의 궁전에 심어 두기만 하면 된다고 했다.

 

2. 운율이 기억을 돕는다

 

뇌는 반복적이고, 리듬이 있고, 운율이 있고, 무엇보다 쉽게 시각화 할 수 있는 것을 가장 잘 기억한다.

 

음유시인들의 기억술 가운데 가장 널리 쓰인 것은 노래다. 어떤 것을 노래로 만들어 계속 흥얼거리고 다니면 절대 잊지 않을 것이다.

 

3. 이미지


<헤렌니우스에게 바치는 수사학>의 저자는 시를 있는 그대로 기억하는 최선의 방법은 행을 두세 번 되풀이해 읽고 나서 관련 이미지를 떠올리는 것이라고 한다.

 

그렇다면 이미지할 수 없는 것들은 어떻게 해야 할까? 접속사, 관사를 이미지화 할 수는 없다. 기억력 마스터인 군터는 그래서 쉽게 시각화할 수 없는 단어 200개를 골라 자기만의 이미지 사전을 만들었다.

 

이미지를 떠올릴 수 없는 단어를 이미지화하는 군터의 방법은 아주 오래된 방식으로, 발음이 비슷한 단어나 동음이의어로 대체해 시각화 하는 것이다.

 

4. 감정

 

시 암송에서 1위 자리를 놓치지 않던 군터가 15세의 코린나 드라슐에게 패배했다. 그녀의 암송 방법은 감정이었다.

 

코린나 드라슐은 시를 작은 덩어리로 나누고 각 덩어리에 일련의 감정을 부여한다. 단어와 이미지를 연결하기 보다는 단어에 감정을 불어넣는 것이다.

 

저는 글쓴이가 어떤 감정 상태이며 무엇을 의도하는지 느끼고, 그가 행복한지 슬픈지 상상합니다.”

 

메이저 시스템

 

숫자를 기억하는 방법이다. 1648년경 독일의 예술사가이자 고고학자인 요한 빙켈만이 개발한 것으로 숫자를 음성으로 전환하는 간단한 코드다. 음성은 다시 단어로 전환되고, 단어는 이미지로 전환돼 기억의 궁전에 저장된다. 작동방식은 다음과 같다.

 

 

0 1     2 3  4 5  6    7     8     9

S T,D N M R L SH, K,G F,V P,B

 

PAO 기법

 

원주율 10만 자리나 메이저리그 뉴욕 양키스 선수 개개인의 평균 타율같이 긴 숫자를 암기할 때 지력 선수들은 기억 마니아, 루빅큐브의 달인, 수학 천재 등을 위한 온라인 포럼인 월드와이드 브레인 클럽에서 사람- 행동-대상(Person action object) 또는 간단히 머리글자만 따서 PAO로 알려진 기법을 쓴다.

 

PAO 시스템은 00에서 99까지 모든 두 자리 숫자를 어떤 사람이 어떤 대상에게 어떤 행동을 하는 이미지로 나타낸다. ....이 시스템은 00에서 999,999까지 숫자마다 고유의 이미지를 만들 수 있어서 좋다.

 

에드는 밀레니엄 PAO’법을 개발, 0에서 99,9999,999까지 숫자별로 고유한 이미지를 만들기도 했다.


 

이 책을 읽는다고 당장에 기억력이 향상 되지는 않는다. 그러나, 여기 소개된 여러 방법들을 훈련하면 분명 기억력을 개선시킬 수 있을 것이다. 역시나 뭐든지 훈련과 연습 말고는 답이 없다.

 

한계란 없다. 정상이 있을 뿐이다. 하지만 거기에 안주해서는 안 된다. 그것을 넘어서려고 노력해야 한다.”

 

- 이소룡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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cyrus 2016-08-11 17:07   좋아요 1 | 댓글달기 | URL
저는 책 한 권을 다 읽고, 서평을 작성하기 전에 시이소오님처럼 인상 깊거나 서평 글감으로 쓸 만한 문장들을 발췌합니다. 그리고 발췌한 문장을 한글 프로그램에 입력해서 따로 저장해둡니다. 발췌 문장 정리한 파일을 참고하면서 서평을 작성할 때 편리해요. 이 과정도 꽤 시간을 많이 잡아먹는 편이라 가끔 귀찮아질 때가 있지만, 발췌 문장을 정리해두는 것이 좋더라고요. 문장 정리 안 하고, 서평 작성하면 읽었던 내용에 대한 기억을 더듬느라 시간이 오래 걸려요. ^^


시이소오 2016-08-11 17:19   좋아요 1 | URL
저는 모든 책을 다 발췌하진 않습니다만, 독후감이 안써질경우 발췌하다보면 어거지로 쓰긴 하더라구요. ^^
 
한국 현대사 산책 1960년대편 3 - 4.19 혁명에서 3선 개헌까지 한국 현대사 산책 8
강준만 지음 / 인물과사상사 / 2004년 9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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수출 아니면 죽음을 위해 65일하는 해로 지정되었다. (66년은 또 일하는 해로 지정되었다.) 서민들은 보리밥 먹고 피똥 싸는 해라 불렀다. 65년까지 소득은 급격히 감소했다. 이 당시 수출 품목 중 가장 효자 품목은 가발이었다. 미국에서 가발하면 코리안을 연상할 정도였다고.

 

이 당시 모든 재벌의 좌우명은 차관을 잡아라!”였다. 은행 금리는 25~30%, 차관 이자율은 3~4%. 차관만 받으면 앉아서 떼돈을 벌 수 있었다. 재벌들은 어떻게 하면 차관을 잡을 수 있었을까? 상투적인 답. 군사정권과 줄이 닿아 있으면. 박정권은 정부 발주 사업에서 무조건 10%를 정치자금으로 뜯어갔다. 그럼에도 재벌들은 워낙에 남는 장사였기에 너도나도 박정희의 바짓가랑이를 잡고 늘어졌다.

 

3월에 이른바 송아지 사건이 터진다. 대전방송국에서 방송된 <송아지>가 빈부격차를 다뤘다고 해서 편집부장 김정욱은 반공법 위반으로 체포된다. 빈부격차의 문제를 다룬다는 것은 북괴의 활동을 찬양, 고무한 것이었다.

 

개발독재 최고의 이론가인 로스토우는 52일 한국을 방문해 박정희를 만난다. 강연에서 로스토우는 한국 경제의 도약을 위해서 일본 자본의 도입이 불가피하다고 역설한다. 한국에서의 환호와 달리 로스토우가 행정부에서 물러날 때, 미국 대학들은 로스토우의 교수직 복귀를 거부한다.

 

118, 한일 본회담이 속개된다. 회담 전 17일 일본 측 수석대표 다카스키 신이치는 이렇게 말했다.

 

일본의 조선 통치는 좋은 것이었다. 우리가 그들의 언어를 금지하고 일본식 이름을 강요한 것은 분명한 사실이다. 그러나 이러한 행위는 오로지 선의에서 비롯된 것일 뿐이다. 우리는 그들에게 진짜 일본인의 지위를 부여하려 한 것이다. 불행하게도 전쟁으로 우리의 노력은 좌절되었지만, 일본이 20년만 더 통치했더라면 오늘날 한국은 훨씬 더 발전된 나라가 되었을 것이다.”

 

박정희는 이에 대해 뭐라고 했을까? 침묵했다. 박정희, 아니 다카기 마사오, 아니, 오카모토 미노루와 달리 국민들은 대규모 시위를 벌였다. 4, 5, 6월 내내 대학가에서 시위는 끊이질 않았다. 고등학생들까지 합세했다.




 

장장 15개월에 걸친 시민들의 반대 시위에도 불구하고 622일 오후 5시 동경의 일본 수상 관저에서 이동원과 시이나가 서명함으로 한일협정은 정식으로 조인된다. 일본은 식민지 지배는 합법적이었으나 1945년 일본의 패전으로 무효가 되었다고 말할 수 있게 했다고 말했다.

 

평화선 철폐, 49해리 전관수역 주장은 철회되고 일본 즉 주장대로 12해리 전관수역이 설정되었다. 일제가 35년간 불법으로 강탈해간 모든 한국 문화재는 일본 소유물로 인정해버렸다. 정신대, 사할린 교포, 원폭 피해 문제는 거론조차 하지 못했다. 이후 50년 후.  



어떻게 된 게 그 아버지에 그 딸이다. 나라 팔아먹은 부녀라니. 저런 걸 대통령이라고. 

에휴, 접시물에 코 박고 죽고 싶다.  

  

714일 밤, 공화당은 한일협정 비준동의안을 전격 발의한다. 731일 예비역 장성, 대학교수단, 종교인, 문인 등 3백여 명이 참가한 조국수호국민협의회가 결성된다. 한일협정 비준 반대를 외친 여러 단체들이 있었지만, 박정희가 가장 골치 아프게 생각한 건 조국수호국민협의회였다. 핵심 멤버들이 5.16 쿠데타 시 동지들이었기 때문이다.

 

811일 여러 단체들이 연합전선을 펴기로 합의하지만 공화당은 한일 협정 비준안을 날치기로 통과시킨다. 814일 여야 간 심한 몸싸움 끝에 야당의원이 불참한 가운데 비준안은 국회 본회의를 통과한다.

 

8월 중순 이후, 반대시위는 다시 격화되었다. 23일부터 시위는 전국으로 확산되었다. 26일 박정권은 서울시 일원에 위수령을 발통 전방 6사단 병력을 서울 각 대학에 진주시킨다. 94일고려대, 연세대에 무기휴업령이 내려진다. 박정권은 예비역 장성, 학원가, 언론인 들에 대한 무자비한 테러를 감행한다.

 

장면 정부 민의원 의원으로 내무부 정무차관을 지냈던 김영구의 말에 따르면 장면 정부가 일본에 요구한 배상액은 100억 달러였다. 일본 정부는 50억 달러를 제시했고, 70억에서 80억 달러에서 협상할 계획이었다고 한다. 박정희가 일본에 받은 돈은 얼마였던가?



3억 달러였다


 

하와이로 추방당한 이승만이 719일 사망한다. 유해는 국민장을 거쳐 국립묘지에 안장된다. 국장으로 하자는 의견도 나왔지만, <조선일보> 724일자 사설 <지금이 자유당 천하인가>는 다음과 같이 비판했다.

 

아무리 격정적이고 감상적이고 건망증이 심한 것이 한국의 국민성이라 할지라도 노 정치가의 죽음을 애도하고 한 줄기 눈물을 흘려주는 따뜻한 국민들의 아량을 짓밟아, 그것을 미끼로 역사를 바꾸는 국가적 과오를 범해서야 말이 되겠는가....”

 

그러나 조선일보는 30년 후 이승만 우상화에 앞장선다. 500만의 국민을 살육한 이승만을 국립 묘지에 묻어야 할까. 4. 19 혁명이 누구 때문에 일어났는데? 지금이라도 무덤을 파헤쳐 뼈를 부셔, 갈아야 하지 않을까.

 

6529일 서울운동장에서 월남 파병 환송 국민대회가 열린다. 박정희는 비둘기 부대원을 자유의 십자군으로 찬양한다.

 

미국은 5월 미국을 방문한 박정희를 극진히 환대한다. 1012일엔 맹호부대와 청룡부대 환송 대회가 열린다.

 

1222일 베트남에서 한국군이 12세 이하 어린이 22, 여성 22, 임산부 3, 70세 이상 노인 6명 등 민간인 50명을 사살한 사건이 일어나지만 언론은 입을 다문다.

 

56<신아일보>, 922일엔 <중앙일보>가 창간된다. 60년대 중반은 라디오 전성시대였다. KBS, CBS, MBC, DBS, TBC 5개 라디오 방송상들이 경쟁 체제에 접어든다. DBS에서 구봉서, 김희갑, 송해 등이 인기를 끌자 MBC는 구봉서, 송해를 스카웃 해 배삼룡 등과 함께 팀을 형성한다. 동양방송은 서영춘을 키운다.

 

박정희는 코미디언을 박 정권 홍보의 수단으로 삼는다. 전 국민 우민화 작전의 총사령관은 배삼룡이었다. 다른  한 사람은 김희갑이었다.

 

이만희 감독의 <7인의 여포로>가 반공법에 걸려 이만희가 구속된다. 반공영화였음에도 북한군을 너무 멋있게그렸다는 게 문제가 됐다.

 

유현목의 <춘몽>은 외설죄로 고발당한다. 이만희를 옹호한 유현목 감독은 검찰에 동조자로 찍힌 것. 65년 최대 화제작은 김수용 감독의 <저 하늘에도 슬픔이>였다. 서울의 국제극장 한 곳에서만 30만 명의 관객을 동원하는 대기록을 세운다. (이 영화 보면서 어릴 적 어찌나 울었던지. )  




 

프로레슬러 박치기김일이 86일 귀국한다. 1127일 장충체육관, 이 날의 메인 이벤트는 김일과 칼 칼슨의 대결이었다. 이에 앞서 세미파이널로 장영철과 일본의 오쿠마가 대결하였다. 이날 경기는 장영철이 이기는 것으로 각본이 짜여졌는데, 오쿠마 측은 말을 듣지 않았다. 장영철은 오쿠마 측이 약속을 어겼다. 프로레슬링은 쇼다라고 폭탄선언을 한다. 이날 이후로 프로레슬링 인기는 시들해졌으나, 10월 유신 이후 박정희는 김일을 후원해 다시 레슬링 붐을 일으킨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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다락방 2016-08-10 10:01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윽- 저도 이 책을 읽어봐야겠어요.

시이소오 2016-08-10 10:06   좋아요 0 | URL
우와, 다락방님이시다. 여행 잘 다녀오셨겠지요? 시차 적응도 끝나셨나요? ㅋ

오랜만에 뵈니 반가워용 ^^


2016-08-10 11:44   URL
비밀 댓글입니다.

2016-08-10 12:49   URL
비밀 댓글입니다.
 
한국 현대사 산책 1960년대편 2 - 4.19 혁명에서 3선 개헌까지 한국 현대사 산책 7
강준만 지음 / 인물과사상사 / 2004년 9월
평점 :
구판절판


1945년 이후 총격에 의한 미군의 한국인 살해가 가장 빈번했던 달은 642월이었다.

26, 미군은 토끼 사냥을 나간 소년들을 사살한다. 4,6,9,17,18, 19일에 미군의 총질은 계속된다.

박정희에게 수출제일주의는 일종의 신앙이었다. 당시 경제기획원 운영차관보였던 이선희는 이렇게 증언했다.

 

차관 특혜, 세제 특혜, 금융 특혜, 수출원자재 특혜, 역금리 특혜 등 모든 특혜를 부여함으로써 인위적인 수출 진흥이 이루어졌다. 정부, 기업, 국민 모두 수출 진흥에 총동원되었고, 엄청난 특혜가 주어졌다.”

 

8월 말 금성방직, 대한제분, 삼성물산 등 9개 재벌기업에 177억 원이 집중 대출되었다. 이는 당시 화폐 발행고의 82%, 통화량의 43%, 일반 금융기관 대출 잔액의 40%에 해당하는 금액이었다.

 

국회의원 유창열은 이른바 3() 폭리 사건을 폭로한다. 밀가루, 설탕, 시멘트 등 이른바 3분 산업과 관련된 기업들이 매점매석으로 가격을 조작하고 세금 포탈을 통해 엄청난 폭리를 취하는 것을 묵인해주는 대가로 공화당이 거액의 정치 자금을 제공받았다는 폭로였다. 이 사건엔 삼성그룹의 제일제당이 연루돼 있었기 때문에 세간의 관심을 끌었다.

 

박정희는 63년 대통령 선거를 앞두고 극비리에 215천 톤의 밀가루를 들여온다. 판매 대금은 선거 자금으로 활용했다. 그때 들여온 밀가루 중 일부가 업자들에게 흘러 들어가 ‘3분 폭리사건이 벌어진 것. 일부는 수재민 구호라는 이름으로 유권자들에게 공짜로 제공되었다. 대선 기간 중 때 아닌 밀가루 잔치판이 벌어졌고, 박정희는 밀가루 대통령이라는 별명을 얻었다. 선거 직전엔 태풍 셜리의 피해를 입은 남부 지역에 집중 살포되기도 했다. 아 놔, 밀가루 뿌려 대통령 된 거임??

 

4.19 2주년을 맞아 박정희는 다음과 같은 기념사를 했다.

 

“4. 19 의거는 국민의 용기와 지혜와 양식의 발전이었다. 도탄에 빠진 민생과 각박한 민심도 아랑곳없이 불법과 폭력으로 권력을 유지하려던 민족의 폭도들을 시대적 양심으로 추방한 민족 사상의 불멸의 금자탑이었다. ....”

 

여기서 잠깐, 이승만을 국부라 부르는 것들은 박정희가 이승만을 불법과 폭력으로 권력을 유지하려던 민족의 폭도라 부른 것을 부정하는 건가? 박근혜는 이승만을 국부로 칭송하면서 아버지를 부정하는 건가? 새누리당과 뉴라이트는 박정희를 부정하는 건가? 이승만이 국부면 이승만을 민족의 폭도라 부른 박정희는 빨갱인가?

 

박정희 정권은 3월 들어 한일회담을 재개하면서 ‘3월 타결, 4월 조인, 5월 비준방침을 정한다. 야당과 시민들은 반발한다.

 

322일 장준하 등이 연사로 나선 서울 장충단공원 유세엔 70만 명의 인파가 몰려든다. 이 뜨거운 열기는 이틀 후 3.24 데모를 촉발시킨다.

 

324, 4. 19 이래 최대의 학생 시위가 서울에서 발생한다. 서울대, 연세대, 고려대 학생 등 5천여 명이 모여 한일 굴욕외교 반대를 외치며 가두로 진출한다. 시위는 전국으로 확대되어 고등학생 및 일반 시민들까지 참여한다. 미국은 한국의 반일 학생 운동을 어리석은 행동이라고 비난한다.

 

야당 의원 김준연은 국회 본회의에서 정부는 일본으로부터 13천만 달러를 이미 받았다고 주장했다. 이어 42, “선거자금으로 박정희, 김종필 라인은 2천만 달러를 받았다고 주장한다. 김준연은 얼마 후 구속된다.

 

박정희 정권은 무상공여 3억 달러, 유상공여 2억 달러, 상업 차관 1억 달러를 골자로 한 김종필 오히라 메모를 공개한다. 메모 내용이 언론에 공개되면서 시위는 더욱 격렬해진다.

 

410일 서울대, 411일 고려대와 연세대에 각각 배달된 정체불명의 소포엔 불온문서와 100달러가 들어 있었다. 학생들은 이 사실을 폭로한다. 중앙정보부가 학생 회유 공작에 3천만원을 뿌렸다는 소문이 돌았다. 학생들은 학생 사찰을 즉각 중지할 것을 요구하면서 학생 정보 조직원 YTP(Youth Thought Party), 일명 창사회 등 사이비 학생조직들을 폭로한다. YTP는 중정의 후원과 지휘 아래 학원 사찰을 담당하는 비밀 폭력단체였다.

 

511, 방탄 내각으로 불리던 최두선 내각이 총 사퇴하고 돌격 내각이라 할 정일권 내각이 들어선다.

 

520, 동숭동 서울 문리대 교정에서 3천여 명의 대학생과 1천여 명의 시민이 참석한 가운데 민족적 민주주의 장례식이 열렸다. 서울대 미학과 4학년 김지하가 작성하고 정치학과 4학년 송철원이 낭독한 조사 시체여가 울려퍼졌다.

 

521일 새벽 무장한 육군 공수단 소속 군인 13명이 법원에 난입한다. 이들은 전날 밤 구속영장을 모두 기각한 영장담당판사 자택으로 몰려가 수류탄을 터뜨리겠다며 영장발부를 강요한다.

 

523, ‘민족적 민주주의 장례식에서 조사를 낭독한 서울대 학생 송철원이 청년 4명에게 산 속 외딴 건물로 끌려가 2시간 동안 구타당하고 담뱃불로 지져지는 등 심한 린치를 당했다고 폭로한다.

 

한일회담 반대운동은 5.16에 대한 부정, 박정권 퇴진요구로까지 번져졌다. 524, 한일굴욕회담반대 학생총연합회는 <5.16을 비판한다>는 성명을 발표한다.

 

화폐개혁, 환율개정, 농촌 고리채 정리 등 졸렬 무정견한 경제정책과 새나라, 빠찡꼬, 오토바이, 교포재산반입, 증권파동 등 갖가지 부정사건으로 총파탄에 이르는 국민 경제를 일본 자본주의자의 더러운 손에 주무르려 발악하고 있다. 일본 제국주의자의 더러운 배설물로 한국 경제가 자립된다는 거짓말을 강변하고 있다. 이제 5월 쿠데타 정부는 자기 내부에 자기혁명을 가능케했던 부패, 무능, 독선, 부정 등 온갖 독소가 터질 때를 기다리며 화농해있다. 반민족적 탄압, 기만, 부정, 무능, 부패 정부에 양심적 국민은 무엇을 할 것인가.”

 

63일 전국적으로 1만 여명의 학생과 시민들이 시위에 참여한다. 오후 4시경, 경찰 백차와 트럭을 탈취한 시위대는 청와대 앞 최후 저지선까지 위협한다. 군사정권은 940분을 기해 서울 일원에 비상계엄을 선포한다.



 

6.3 사태 이후 군사정권은 학생 데모가 공산주의 세력의 사주를 받았다며 반국가단체 불꽃회학생들을 구속한다. 역시나 조작극이었지만 불꽃회 사건은 6.3 열기에 찬물을 끼얹었다.

 

박정권은 언론의 굶주림 보도 사건’, ‘앵무새 사건등에 일일이 대응하는 것에 한계를 느꼈는지 언론을 통제하기 위한 언론윤리위원회법을 국회에 상정한다. <조선일보>, <동아일보>, <경향신문>, <대구매일신문>만이 끝까지 반대한다. 박정희는 유성에서 언론계 대표들과 회합을 갖는다. 이른바 유성 타협’. 타협이라기보단 언론의 굴복이었다.

 

언론윤리위원회법을 둘러싸고 윤보선파와 유진산파의 갈등이 심화된다.

 

814일 중정은 이른바 인혁당 사건을 발표한다. 중정 김형욱이 조작한 사건이다. 오죽하면 김병리, 장원찬, 최대현 등 사건 담당 검사 3명이 기소할 수 없다며 사표까지 제출했을까. 박정권은 힘으로 밀어붙여 12명의 피고에 대해 대법원에서 최고 3년에서 1년까지 형을 선고받게 하는 데 성공한다. 아무래도 박정희는 앙심이 남았나보다. 박정희는 10년 뒤 인혁당 사건 시즌 2’로 무고한 시민 8명을 빨갱이로 몰아 사형에 처한다. 사형 선고가 떨어진지 불과 18시간 만에.


 

문화방송 사장 황용주는 월간 <세대> 11월호에 통일에 관한 글을 기고한다. 야당 의원들이 이를 문제시삼자 황용주와 평소 사이가 좋지 않았던 김형욱은 황용주를 구속한다. 박정희는 왜 황용주를 토사구팽했을까? 64년 중 박정희의 공보비서관 박상길이 양민학살진상 규명을 건의했을 때, 박정희는 이런 이유로 거절했다고 한다.

 

나도 빨갱이로 몰리는 판에 내가 그런 걸 손댈 수 없지 않느냐.”

 

박정희는 오히려 민간인 학살 진상 규명을 요구하는 유족들을 빨갱이로 몰아 구속했다. (이후 1987년까지 민간인 학살 문제는 제대로 알려지지조차 않았다.) 결국 민간인 학살 진상 규명이 늦어진 것 역시도 한 명의 남로당 프락치 변절자의 레드 콤플렉스 때문이었나?

 

조선일보 외신부 기자인 리영희는 1121일 자 기사에 남북한이 유엔에 동시 가입하는 안건을 아시아, 아프리카회의에서 검토 중이라는 내용을 실었다고 반공법 혐의로 구속 기소된다. 이게 왜 구속 사유가 될까? 북한이 대한민국과 동격으로 유엔에 초대되거나 동시가입이 제안되는 따위의 이야기는 남의 나라에서 한 이야기일지라도 적성국가, 단체 고무찬양이 된다는 것이다. 같이 구속되었던 편집국장 선우휘는 무혐의 불기소 처분으로 풀려난 반면, 리영희는 두 달간 감옥 생활을 해야 했다.

 

927일에 창간된 <주간한국>은 대성공을 거둔다. 당시 최고 부수 일간지가 20만 부도 못 미칠 당시 <주간한국>435천부를 팔아치웠다.

 

59, ‘라디오서울’RSB이 개국한다. 915일 사장에 홍진기가 취임함으로써 라디오 서울은 삼성 계열사로 편입, 나중에 동양방송’(TBC)으로 개칭한다.

 

64년은 라디오 DJ가 등장한 최초의 해다. 64년 동아방송의 최동욱에 이어 66년 문화방송 이종환이 등장함으로써 라디오는 DJ 전성시대를 맞는다.

 

삼성은 라디오 방송에 만족하지 않고 127일 한국 최초의 민간 상업 TV 방송인 동양TV(DTV)를 개국한다. 50년대 후반부터 부산지역에선 일본 TV 시청이 유행했다. DTV는 채널 7을 사용하기로 한다. 그런데 NHK가 채널 7을 사용하고 있었다. NHKDTV의 채널이 겹치자 부산시청자들이 반발, DTV는 채널 9를 사용하게 된다. 부산과 영남지역의 보수화는 일본 극우 TV 방송을 보던 때부터 연유한 것일까. DTV는 곧 TBC로 명칭을 바꾼다. TBC가 삼성거였다니. 전혀 몰랐다.

 

64년 최고 흥행 영화는 김기덕 감독, 신성일, 엄앵란 주연의 <맨발의 청춘>이었다. 23만 명의 관객을 동원했다. 이 영화의 주제가였던 최희준의 <맨발의 청춘>도 인기를 끌었다. 최정상의 인기를 구가하던 신성일과 엄앵란은 그해 11월 결혼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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