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
내 문장이 그렇게 이상한가요? - 내가 쓴 글, 내가 다듬는 법
김정선 지음 / 유유 / 2016년 1월
평점 :
읽다가 중간에 멈췄다. 갑자기 공포가 온몸을 휘감았다. 무서워서 도무지 책을 읽을 수가 없었다. 다들 읽어 보시라. 이 책에 비하면 미쓰다 신조의 공포 소설은 애들 장난이다.
책을 읽다 불현 듯 그런 생각이 스쳤다.
‘도대체 나는 얼마나 많은 비문과 오문을 쓰고 있는 걸까’
그 생각이 드니 공포감에 젖어 도무지 읽어낼 자신이 없었다.
돌이켜보면 입시 시험 이후로 문법을 공부해 본 적이 없다.
한 열흘쯤 지나서야 용기를 내서 다시 도전했다.
‘그래, 맞을 매라면 맞아야지.’
<내 문장이 그렇게 이상한가요?>의 장르를 뭐라 불러야 할까?
‘문법 소설’은 어떨지?
저자는 문법과 이야기를 교차로 진행시킨다. 굉장히 현명한 작법이다.
만일 문법에 대한 설명만 나왔다면 읽기 괴로웠을 것이다.
그리고 여기 나오는 이야기엔 나름 반전도 있다. 완전 속았다.
공개할까도 싶었는데 다른 독자들의 재미를 위해 비공개하기로.
적의를 보이는 것들
접미사 ‘-적’, 조사 ‘-의’ 그리고 의존명사 ‘것, 접미사 ’-들‘을 습관적으로 쓰는 경향이 있는데 되도록 쓰지말라고.
굳이 있다고 쓰지 않아도 어차피 있는
‘있다’는 동사이기도 하고 형용사이기도 하다. 동사일 때는 동작을, 형용사일 때는 상태를 나타낸다. ‘눈으로 덮여 있는 마을’이란 문장에서 굳이 ‘있는’을 쓸 필요 없다. ‘눈으로 덮인 마을’이라고 하면 된다.
술어에 ‘ -있었다’라고 쓸 필요도 없다고 한다.
길 끝으로 작은 숲이 이어지고 있었다.
길 끝으로 작은 숲이 이어졌다.
‘- 관계에 있다’도 마찬가지.
가까운 관계에 있었다.
가까웠다. (또는) 가까운 사이였다.
‘ -에게 있어’, ‘하는 데 있어’, ‘-함에 있어’, ‘-있음에 틀림없다’ 도 습관적으로 잘못 쓰인다고.
그에게 있어 가족은 목숨보다 더 중요한 것이었다.
그에게 가족은 목숨보다 더 중요한 것이었다.
지적으로 게을러 보이는 표현
‘-에 대한’, ‘-들 중 한 사람, -들 중 하나, -들 중 어떤
그녀는 전형적인 독일 여자들 중 한사람이었다.
그녀는 전형적인 독일 여자였다.
‘- 같은 경우’ ‘-에 의한’, ‘-으로 인한’
‘에’와 ‘-에는’의 차이, ‘-에’와 ‘-으로’를 혼동하는 경우, ‘-에’와 ‘-로’도 구분해 써야한다.
사역 문장의 오류. 너무 많이 쓰이는 지시대명사들. 잘못 쓰이는 ‘었던’과 ‘-는가’, 시작할 수 없는 걸 시작하는 오류. 등등
읽다보면 내 문장은 정말로 이상한 것처럼 보인다. 한 문장도 못 쓸 만큼 벌벌 떨었다.
후반부로 갈수록 ‘어라 김훈체네’하는 인상을 받았다. 아니나다를까.
저자는 김훈의 <칼의 노래> 교정을 봤다. 책을 읽으면서 왜 김훈의 문장이 낭독에 좋은지 가설 하나를 얻었다.
저자에 따르면 김훈은 그리고, 그래서, 그러나 같은 접속 부사를 거의 안 쓴다고 한다.
‘접속사 안 써야 하는 거얌?’ 또한 주격 조사 ‘이,가’도 거의 쓰지 않는다. 김훈은 또한 대명사를 거의 쓰지 않는다. 또한 주어 하나에 서술어 하나다. 서술어가 둘 이상일 땐 주어를 반복해서 쓴다.
김훈의 문장이 낭독에 좋은 이유는 문법에 정확한 문장이기 때문은 아닐지.
내가 이 책을 두려워한 만큼 저자는 ‘김훈체를 읽는 것은 감당하기 어렵고 두려운 일이다’라고 말한다. 교정자가 두려워하는 작가라니! 김훈은 어찌하여.
시간만 더 있었더라면 필사를 했을텐데. 아무래도 사서 아무 때나 읽어야겠다.
저자가 쓴 또 다른 책인 <동사의 맛> 역시 어떤 맛일지 궁금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