별의별 책들과 정신을 소개받는 즐거움
일본 小출판사 순례기 - 출판정신으로 무장한
고지마 기요타카 지음, 박지현 옮김 / 한국출판마케팅연구소 / 2007년 3월
평점 :
장바구니담기


세상에 있는지 없는지 몰랐던 책들이라도 책 이야기는 언제나 흥미롭다. 
먼 나라에서 나온 책들은 내가 읽을 가능성이
0.0001%도 안 된다고 할지라도 제목만 들어도 애틋한 마음이 든다.
어떤 책의 탄생 비화는 스릴러 영화보다 손에 땀을 쥐게 한다.

언제부턴가 내가 책을 선택하는 게 아니라 책이 나를 선택하는 게 아닌가, 하는
생각을 하게 되었다.
책을 고르고 그 값을 지불하는 사람은 나이지만 어떤 책을 읽다보면
바로 그 순간이 내 인생에서 절대 빠져서는 안 되는 필수 코스임을 깨닫게 되는 것이다.
깨달음이 좀처럼 실천으로 이어지지 않는 게 문제이지만......

<일본 小출판사 순례기>에서 만난 책 만드는 사람들은 자신이 만들고 있는 책을 통하여
다양한 삶의 모습과 정신을 보여주었다.
소수의 독자에 대한 믿음으로 밀고 나가든, 무명의 필자 발굴에 안테나를 세우든,
인문적 관점에서 세상을 읽든, 환경문제를 붙들고 늘어지든, 운동으로서의 그것이든,
하나같이 흥미로웠다.

--특히 독자의 반응이 좋았던 책은 오카 나미키의 <도로 포장과 하수도 문화>였다.
론쇼사(論創社)는 내가 인문서고를 맡고 나서 알게 된 개성 있는 출판사다
.(168쪽, 론쇼사 편)

일본의 작은 출판사들은 몇 대째 가업을 잇는 동네 길모퉁이의 작은 식당과도 같은 느낌이다.
포렴을 걷고 들어가 구석자리의 작은 식탁 앞에 앉는 것이다.
벽에 붙은 손글씨의 메뉴판을 보며 음식을 고를 때만큼 흡족한 시간이 있을까?
책을 고를 때의 기분과도 흡사하리라.
발행인이나 편집인들의 믿음 위에서 제각각의 출판정신으로 무장한
다양하고 세부적인 내용을 다룬 책들의 제목만 듣고도 오금이 저렸다. 

--여러 가지 이야기를 하던 중에 선생님은 무심코 "오늘날 일본의 번영은
아시아 민중들의 인간 이하의 삶 위에 성립된 것"이라고 하셨다.
나는 숨이 멎는 듯했다.(...)
나의 얄팍한 지식, 인간관계 속에서도 지배계급과 피지배계급,
자본주의와 식민지 관계에 대해 읽거나 들은 적이 있었다.
그렇지만 언제나 이론일 뿐이었다.
이렇게 인간에 근거하여, 생활에 근거하여, 따뜻한 시선으로 어떤 슬픔마저 감도는
어투로 말하는 이가 있었던가.
이론이 아닌 인간의 진심을 담은 그 말에 나는 감동했다
.(261쪽, 도메스출판사 편)

"오늘날 일본의 번영은 아시아 민중들의 인간 이하의 삶 위에 성립된 것"이라고 말한
곤 와지로는 '고현학(考現學)'이라는 독창적 학문의 창시자라는데 이 책에서 처음 만났다.
그 외에도 얼마나 매력적이고 독특한 책과 저자들이 많은지
백지에 제목과 이름만 한 번씩 적어보는데도(호감의 구체적인 표시로!)  종이가 꽉 찼다.


**출판 관련 소책자에 실렸던 연재물이라지만
내용을 조금 더 보완하고 다듬었으면 좋았겠다는 아쉬움은 남는다.
오자도 여러 개 눈에 띄고, 한마디로  감칠맛이 부족한 느낌.









 


댓글(17) 먼댓글(0) 좋아요(28)
좋아요
북마크하기찜하기 thankstoThanksTo
 
 
2007-08-31 16:06   URL
비밀 댓글입니다.

2007-08-31 16:29   URL
비밀 댓글입니다.

2007-08-31 16:48   URL
비밀 댓글입니다.

2007-09-03 13:37   URL
비밀 댓글입니다.

2007-09-01 00:45   URL
비밀 댓글입니다.

프레이야 2007-09-01 08:58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고현학, 처음 들어봅니다. 오늘날 일본의 번영은 아시아민중들의 인간이하의
삶 위에 성립된 것, 곤 와지로. 늘 생각거리 던져주시고 훌훌 가볍게 서재방 걸어나가시는 로드무비님, 글 멋진 거 아시죠! 로드무비님^^

로드무비 2007-09-03 13:45   좋아요 0 | URL
헤경 님, 가볍게 서재방을 걸어나가는 게 아니고 걸음이 무겁습니다.
컴이 자주 다운되어 짧은 글 하나 쓰기 어렵거든요.
고현학, 책 읽고 잠시 검색해 봤답니다.
곤 와지로라는 학자를 알게 되어 즐겁더군요.^^

프레이야 2007-09-03 23:02   좋아요 0 | URL
'가볍게'는 님의 글쓰시는 방식에서 제가 받은 호감이에요, 님^^
제가 부러운 방식이라서요. 내용은 묵직하게 방식은 가볍게..
이게 참 쉽지 않아서요^^ 오늘 하루 잘 보내셨지요^^

누에 2007-09-01 19:00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덕분에 저도 이 책의 존재를 알게 되었네요. ^^

로드무비 2007-09-03 13:33   좋아요 0 | URL
누에 님, 그럴 때 참 기쁘죠? 잠시나마.^^

2007-09-01 23:48   URL
비밀 댓글입니다.

2007-09-03 13:32   URL
비밀 댓글입니다.

비로그인 2007-09-18 23:46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안녕하세요. 님 리뷰를 읽으니 이 책에 관심이 가네요. 읽어봐야 겠어요.^^

로드무비 2007-09-19 11:42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적과 흑 님, 안녕하세요? 이 책 전 재밌게 읽었답니다.^^

릴케 현상 2007-09-21 16:54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출판사 다닐 때 비슷한 책을 읽은 듯한데...같은 책이 새로 나온 건지 다른 책인지 모르겠네요^^

로드무비 2007-09-22 11:33   좋아요 0 | URL
<송인소식>에 연재가 되었다더군요. 그때 읽으셨나 보다.^^

2007-10-05 14:00   URL
비밀 댓글입니다.
 
구덩이 창비청소년문학 2
루이스 새커 지음, 김영선 옮김 / 창비 / 2007년 8월
평점 :
장바구니담기


지난해 아지즈 네신의 <생사불명 야샤르>를 읽고 나서 제일 먼저 한 일은
그의 나머지 책들을 주문하는 일이었다. (리뷰를 먼저 썼던가? 아무튼.)
책을 통해 멋진 작가를 만나게 되면 나는 호감의 표시로
읽지 않은 그의 책들을 몽땅 주문한다.
그래봤자 1년에 한두 번 있는 일이다.

그런데 최근 며칠새 연타석 홈런을 쳤다.
중국 작가 하진(<남편 고르기>를 읽고)과 루이스 쌔커.
루이스 쌔커가 파놓은 구덩이는 깊고도 서늘해, 그 속에서 나오고 싶지 않았다.
그의 책 <웨이싸이드 학교 별난 아이들>을 주문하기 위해 할 수 없이 기어나왔지만......

집이 가난해 캠프에 한 번도 가본 적 없는 뚱보 소년 스탠리는
어느 날 이름도 근사한 '초록호수 캠프'에 참가하게 된다.
그런데 호수는 눈을 씻고 봐도 없고, 사막 한가운데의 소년원이다.
하루에 열몇 시간 뙤약볕 아래 작은 물통의 물을 아껴 마시며
구덩이를 파는 것이 일이다.
가지가지 죄목으로 끌려온 소년들과 함께 스탠리는 하루에 한 개씩의 구덩이를 판다.
그 구덩이가 무엇에 소용되는지 알지도 못하고.

구덩이 속을 돌아다니는 전갈이며 뱀이며, '멀미봉투'니 '겨드랑이' 등의 별명으로
서로를 부르는 아이들의 몰골이며, 칙칙하고 음산하기 짝이 없는 이야기인데
흡인력이 대단하다.
110년 전 흑인 양파장수와 백인 여선생의 러브스토리인 초록호수 마을의 전설과,  
스탠리의 고조할아버지 엘리아와 집씨할멈의 이야기, 그리고 어느 날
하늘에서 떨어진 운동화 한 켤레를 움켜잡았다가 도둑으로 몰려
수상한 캠프장으로 끌려온 스탠리의 이야기가 기막히게 잘 섞여 있다.

소재나 내용, 중층의 플롯이 아주 독특하고 창의적이다.
이현의 <우리들의 스캔들>에 이어 '창비 청소년문학 제2권'인데
앞으로 어떤 구덩이들이 나를 기다리고 있을지 기대된다. 


**서너 달 전, 푸른숲 출판사의 도서 이벤트에 뽑혔다며 10만 원권 관광상품권이
등기로 도착했다.
아지즈 네신의 <툴슈를 사랑한다는 것은>을 주문할 때 자동 응모된 것이라고.
좋아하는 작가의 선물이라 생각하고 신나게 썼다.





 















댓글(14) 먼댓글(0) 좋아요(8)
좋아요
북마크하기찜하기 thankstoThanksTo
 
 
치니 2007-08-30 14:20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아앗, 이 책이 다시 구덩이로 나왔군요. 예전에 <엄지손가락의 기적>이라는 책으로 읽었는데 너무나 재미있어서 아이에게 권했고 , 아이도 재미있어 했는데...
학교 도서관에 기증하자 담임선생님이 아직 다른 아이들에게 읽히면 안 좋겠다고 했다는군요. 당시 6학년이었는데, 너무 폭력적 묘사가 많다고 생각하셨는지...-.- 아직도 왜 교육적으로 무리라고 생각했는지가 의문이에요.

로드무비 2007-08-30 14:28   좋아요 0 | URL
치니 님, 소장과 펜댄스키 선생의 언행이 특히 폭력적이긴 했는데,
아이들도 알 건 알아야죠.
전 내년쯤 주하 읽히려고 하는데요.^^

nada 2007-08-30 14:47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저도 너무 좋아하는 책이에요. *^^*
문장이 쉬우니까 애들 좀 크면 영문본으로 읽혀도 좋을 거 같아요.
해리 포터 같은 것보다 훨 나은데.
이렇게 단순한 이야기 속에 어떻게 그렇게 큰 세계가 담길 수 있는 건지..
용해 죽겠어요. -.-

로드무비 2007-08-30 15:02   좋아요 0 | URL
치니 님도 그렇고 꽃양배추님도 그렇고 어쩜 그리 책에 대해 빠삭하세요?ㅎㅎ
단순한 이야기, 큰 세계.
콕 집어 말씀해 주셨네요.^^

2007-08-30 15:24   URL
비밀 댓글입니다.

2007-08-30 15:57   URL
비밀 댓글입니다.

2007-08-30 16:15   URL
비밀 댓글입니다.

2007-08-30 16:28   URL
비밀 댓글입니다.

2007-08-31 09:11   URL
비밀 댓글입니다.

2007-08-31 12:05   URL
비밀 댓글입니다.

마노아 2007-09-01 23:24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축하해요! 좀 더 찐한 글씨로 자랑하셔도 되었을 텐데^^ㅎㅎㅎㅎ

로드무비 2007-09-03 13:41   좋아요 0 | URL
처음엔 찐한 글씨로 자랑했답니다.
소기의 목적을 달성했으니...=3=3=3

urblue 2007-09-03 14:22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바로 주문 들어갑니다. ^^

로드무비 2007-09-09 17:29   좋아요 0 | URL
잘하셨수.^^
 
작은 토끼야 들어와 편히 쉬어라
김서령 지음 / 실천문학사 / 2007년 3월
평점 :
품절


-- 인터넷의 호주 유학 전문 커뮤니티를  들락거리는 학생들에게는
내년도 학비인상 계획보다 순창고추장과 팬틴샴푸의 가격이 더 궁금한 법이다.
우습게도 말이다.('바람아 너는 알고 있나'166쪽)

-- 호주 유학 다녀온 학생입니다. 정리해 드려야 할 듯해서요.
매운맛 너구리에는 다시마 조각이 한 개 들어 있구요,
순한맛 너구리에는 건더기 스프 안에 다시마가 잘게 잘려진 채로 들어 있답니다.
참고하세요.(168쪽)

호주의 한인 식료품점에서 파는 너구리우동.
매운맛 너구리에 다시마 조각이 한 개 들어 있다느니
순한맛 너구리에는 잘게 잘려진 채로 들어 있다느니
한 호주 유학 사이트가 시끌시끌하다.
그 반대면 어떻고 또 안 들어 있으면 어떨라구.
그런데 나도 그 다시마 조각 하나에 신경을 쓰느라
하루를 다 보낼 때가 있다.

오늘 아침 모 텔레비전 방송에서는 탤런트 전광렬이
아름답고 매력적인 긴 생머리의 아내와 치아교정중인 듬직한 초등학생 아들과
프랑스를 여행하는 장면을 보여주었다.
비 내리는 거리에서 우산도 아무런 약속도 없이 올려다보면
예쁜 커튼을 친 창 안에서 흘러나오는 불빛이
더욱 아늑하게 보이는 법이다.
프로방스며 보르도며 노트르담 사원이며 어디에 있어도 그림 같은
가족의 뒤를 쫓으며 나는 흡사 비오는 거리에 우산도 없이 혼자 서 있는 기분이 들었다.
맛있는 냄새와 아늑한 불빛이 흘러나오는 창을 바라보며.

김서령의 소설 속에는 하염없이 길을 떠나고 낯선 거리를  떠도는 사람들이 나온다.
그들은 불빛이 흘러나오는 창 안을 훔쳐보지도 않는다.
우산 하나 장만할 생각도 없이 내리는 비를 쫄딱  맞고 있다.
비슷한 몰골로 어쩌다 시선이 마주치는 사람이 있으면 주머니의 동전을 털어
커피나 술을 한잔 사서 나눈다.
표제작 '작은 토끼야 들어와 편히 쉬어라'의 태원이 엄마처럼
손목을 와락 그러쥐고'집으로 끌고 가 국물이 진한 시래기국을 끓여
뜨거운 국밥을 퍼먹이기도 한다.

책 뒤에 실린 방민호의 '점점이 빛나는 모나드적 개체들'이라는 해설도 재미있었다.
신파와 함께 더할 수 없는 냉철함을 갖춘 이 작가라, 그 적확한 표현이라니.
얼마 전 박완서의 '친절한 복희 씨'에 대한 해설을 읽고 눈이 크게 떠졌는데
아무래도 그의 모든 글들을 찾아 읽어봐야겠다.

'모나드에는 창이 없다.'
리뷰를 쓰다가 문득 정확한 뜻이 궁금해 창을 하나 더 열고 '모나드'를 검색하니
밑도 끝도 없이 이런 구절이 눈에 띈다.
'모나드에는 창이 없다.'

그 개체들은 초라하지만 점점이 빛난다.































댓글(19) 먼댓글(0) 좋아요(12)
좋아요
북마크하기찜하기 thankstoThanksTo
 
 
nada 2007-07-12 14:35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작가에 대한 애정이 실린 해설은 더 재미나고 뭔가 다른 거 같아요. 저도 찾아 읽어 보려고 메모했어요.^^

로드무비 2007-07-12 14:58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박완서 소설 '친절한 복희 씨'에 대한 그의 해설 제목이 '육체문학의 힘'이었거든요. 제목만큼이나 해설도 샤프하고 멋졌어요. 이 소설집 재밌게 읽었어요. 꽃양배추 님도 좋아하시지 않을까.^^

비로그인 2007-07-12 17:12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음, 정작 순한맛 너구리의 다시마 조각은 모르고 있었다는...너구리입니다. 안녕하세요. 님의 글은 일전에도 계속 읽었는데 오늘 댓글로 인사드리는군요.

로드무비 2007-07-13 12:51   좋아요 0 | URL
앗, 새초롬너구리 님이시군요. 반갑습니다. 제가 인용한 저 구절에 낚이신 건가요?^^

비로그인 2007-07-12 17:12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육체문학이라...뭔가 갸우뚱거리게 되는 군요

로드무비 2007-07-13 12:53   좋아요 0 | URL
'육체문학'이란 생소한 용어가 마음에 들어요. 정직한, 잔꾀 부리지 않는, 멋부리지 않는, 뭐 그런 의미도 포함하는 것 같고.^^

2007-07-12 18:00   URL
비밀 댓글입니다.

2007-07-13 13:07   URL
비밀 댓글입니다.

waits 2007-07-12 22:43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이 책 여기저기서 많이 마주치네요, 기대돼요.
마침 지난 주에 저희 도서관에도 들어왔길래 눈 여겨 봐뒀는데...^^
언젠가부터 해설은 잘 안 읽게 됐는데, 이 책은 꼭 찾아봐야겠어요.

로드무비 2007-07-13 12:57   좋아요 0 | URL
중간에 두 편은 조금 지루했는데 전체적인 색깔이 좋았어요.
나어릴때 님은 어떤 작품을 제일 재밌게 읽으실라나? 아마도 '역전다방'?^^

건우와 연우 2007-07-13 10:01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비가 오지 않아도 어두워지는 골목에 서면 남의집 처마의 불빛을 흘끔거렸던 기억이 있습니다. 누구라도 찾아주기를 기대하면서...
담아갑니다.^^

로드무비 2007-07-13 13:01   좋아요 0 | URL
어둑한 골목에 서서 남의 집 들창으로 흘러나오는 불빛과 도마질 소리, 생선 굽는 냄새 등을 맡고 있으면 아득해지지요. 남부럽지 않게 부엌을 하나 차지하고 지지고볶으며 사는데도 이상하게 골목에 혼자 서있는 듯한 기분이 들 때가 있어요.^^

2007-07-14 19:30   URL
비밀 댓글입니다.

2007-07-19 08:37   URL
비밀 댓글입니다.

2007-07-19 08:36   URL
비밀 댓글입니다.

2007-07-19 08:54   URL
비밀 댓글입니다.

2007-07-21 09:25   URL
비밀 댓글입니다.

2007-07-21 09:26   URL
비밀 댓글입니다.

2007-07-22 12:29   URL
비밀 댓글입니다.
 
젊음이여 오래 거기 남아 있거라 - 시대의 격랑을 헤쳐나간 젊은 영혼들의 기록
황광우 지음 / 창비 / 2007년 6월
평점 :
장바구니담기


6월 마지막 주, 광주항쟁 마지막 수배자였던 윤한봉 씨의 부음을 접하고
10여 년 전에 나온 그의 저서 <운동화와 똥가방>을 검색했더니 절판이다.
마침 한 서점에 재고가 있다는 기록.
부랴부랴, 황광우의 신간과 함께 주문했다.


'젊음이여, 오래 거기 남아 있거라'는 윤동주의 시 '사랑스런 추억'에서
가져왔다고 한다.
그런데 어쩌자고 원고를 넘기자마자 쓰러져 병상에 누웠다는 소식이 들려온다.
솔직히 말하면 나는 큰형 혜당 스님(황승우)과 세째형 황지우 시인과의
재미있고 소소한 일화들을 기대했다.
소년기와 청년기의 황씨네 형제들은 어땠을까?
(김훈은 오래 전 황광우의 결혼식장에서 그들 형제를 보고
"가히 카라마조프가의 형제들이로군"이라고 한마디 던졌다고 한다.)
아무튼 이 책은 그 소박한 기대를 보기좋게 배반했으니,
80년 5월과 87년 6월을 그럴 수 없이 담담한 어조로,
사실에 의거하여 기록하고 있다.

1979년 8월 나는 광주의 현대문화연구소에 출입하였다.
윤한봉 형은 감옥에 간 후배들 옥바라지를 하기 위해 책들을 수집하고 있었다.
나도 내 징역살이에서 본 책을 다 내놓았다.
윤한봉은 수도사였다. 지산동 어느 켠에 골방 하나를 쓰고 있었다.
가서 보니 빈방이었다.
'나의 재산목록'이라고 쓰인 편지지가 있었다.
팬티, 양말, 칫솔, 이쑤시개, 손톱깎이 등
50여 종이 그의 총재산이었다.(67쪽)

광주의 윤한봉, 윤상원, 박관현, 들불야학, 전남여고 앞에서 책과 튀김을
함께 팔았다는  카프카서점 주인 김남주, 용접기술사 2급 자격증을 따고
독산동 귀뚜라미보일러에서 일한 노회찬, 박병태, 거름출판사, 권인숙, 박종철......
한마디로 이 땅의 민주화에 바친 눈부신 젊음의 기록.

위장취업 여대생 박상옥(고대 83학번)의 일화가 특히 인상 깊었다.
온 집안의 희망이었던 명문대생 동생이 어느 날 자신처럼 공원이 되었다.
"상옥아, 세상이 얼마나 더러운지는 너보다 내가 더 잘 안다.
엄마아빠 걱정하시니 가끔 집에나 들러라."(127쪽)
동생을 말리기는커녕 그로부터 20년간 생활비를 보내주었다는 언니.
세상이 얼마나 더러운지 잘 안다는 말이 가슴을 친다.
그나마 세상이 요만큼이라도 바뀐 건 그들 덕분이라 생각한다.
살아 있는 에피소드들을 읽고 있자니 안재성의 소설 <경성 트로이카>를 읽을 때 
느꼈던 감동과 흥분이 고스란히 되살아났다.
(경성 트로이카의 주역 중 한 명인 '걸어다니는 자본론' 이재유 이야기도 나온다.)

황광우는 이 책에서 윤한봉의 자필 재산목록을 소개하고 있는데,
사실 그의 재산 목록 1, 2호는 손목시계와 만년필이었다.(<운동화와 똥가방>)
10년 전에 윤한봉의 책을 도서관에서 빌려 읽으며
일체의 감상을 배제한 이런 기록이 어떻게 가능한지 궁금했는데
엊그제 황광우의 글을 읽으며 절로 고개가 끄덕여졌다.
5월광주와 6월항쟁은 사실의 기록만으로도 충분하다.
아아, 오오 하는 감
탄이나 기교, 과장은 필요가 없는 것이다.

신문지에 둘둘 만 시루떡 같은 글의 구수함과 찰짐이라니......














 

 

 

 


댓글(6) 먼댓글(0) 좋아요(15)
좋아요
북마크하기찜하기 thankstoThanksTo
 
 
2007-07-09 13:15   URL
비밀 댓글입니다.

2007-07-10 00:49   URL
비밀 댓글입니다.

로드무비 2007-07-14 04:48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불사른 청춘은 재가 되었나 님, 황씨네 형제에 관심이 있어 오래 전
혜당 스님의 책도 사보고 했습니다.
이 책이 좋았던 건 전혀 멋을 부리지 않았다는 겁니다.
그냥 객관적인 진술. 달리 보면 그게 좀 오만한 태돈가요?
마음만 먹으면 얼마든지 촉촉하게 글을 쓸 수 있을 것 같은데
드라이한 진술로 일관한 게 전 좋았어요.
저 혼자 먼저 도취한 태도를 무지 싫어하다 보니 그 반동으로.^^
그래봤자 윤한봉 님과는 또 다른 면모를 보이긴 하더군요.
그건 그렇고 곧 개봉되는 영화 '화려한 휴가'가 어떤 기폭제가
되어주기를 바라는 은밀한 마음이 있습니다.
영화 속에 카프카서점이 나왔으면 좋겠어요.
한쪽 옆에서 튀김을 만드는 시인을 보고 싶어요.^^

조용히 님, 아이고 고맙습니다.(_ _)

2007-07-13 19:50   URL
비밀 댓글입니다.

로드무비 2007-07-14 05:01   좋아요 0 | URL
씽긋 님, 아이고, 그 사실을 깜빡했어요.
자는데 이상하게 뒤통수가 간지러워 일어났더니......는 괜히 하는 말이고,
일 때문에 일어나 컴 앞에 앉았는데 메일을 확인하고 싶더라고요.ㅎㅎ
혜당스님 책에도 버젓이 나와 있고 시인의 글을 통해 알고 있었던 사실인데
그리고 그분의 삶을 멋지다 생각해 놓고 이럴 수가.....
책이나 좋아하는 작가에 관한 한 꽤 쓸만한 기억력이었는데
이젠 그마저도 제겐 없군요. 엉엉.

혜당 스님 책을 찾아 읽고 리뷰와 댓글 틀린 부분 고쳤습니다.
고맙습니다.^^


2007-07-10 17:31   URL
비밀 댓글입니다.
 
육명심의 문인의 초상 - 한국을 대표하는 작가 72인, 그 아름다운 삶과 혼을 추억하며
육명심 글.사진 / 열음사 / 2007년 5월
평점 :
절판


-- 김종삼은 항상 빈곤이라는 산더미 같은 바윗덩이에 깔린 신세인데도
어쩌다 원고료라도 생기면 그 즉시 먹고 싶은 것, 사고 싶은 것에 써버렸다.
또한 후배들에게 술도 사주고 용돈도 잘 주는 사람이었다.
결코 비상금 따위를 따로 챙기는 꼼수를 쓰지 못하는 위인이었다.

그가 쓰는 시도 그의 이런 고급 취향과 맞물려 있다.
그의 시는 하나같이 짤막하고 간단하며 단단하게 압축되어 있다.
그리고 매우 탐미적이다.
대표작 중 하나인 '북치는 소년'은 그의 이런 특징을 잘 말해준다.
또한 그의 탐미적인 시선은 꿈과 환상의 세계로까지 잇닿아 있다.

이 같은 생득적인 본성을 뒷받침하는 일화가 있다.
그는 초등학교에 다니는 딸아이의 소풍을 따라간 적이 있었다.
점심을 먹은 후 아버지가 보이지 않자 어린 딸은 한참을 찾아다니다
한 언덕 위에 묵직하고 넓적한 돌을 가슴에 안고 잠들어 있는 아버지를 발견했다.
딸은 아버지에게 다가가서 왜 그러고 있는지 물었다.
그러자 아버지는 '하늘로 날아갈까 봐'라고 대답했다.
과연 그다운 말이다.
(김종삼 시인, 본문 73쪽 중)

<문인의 초상>은 1970년대 언저리에 사진작가 육명심이 집중적으로 찍은
우리나라의 시인과 소설가 등 문인들의 흑백 사진집이다.
박두진 박목월 김종삼 구상 강은교 등 널리 알려진 시인들 외에도
전봉건, 박봉우, 이원섭, 이유경 등 어느 날 시나 글로 만나
어떻게 생겼을까 잠시 궁금해 했던 시인들의 사진이 떠억하니 나와 있다.

반바지에 '난닝구' 차림으로, 한동안 우리집 뒷방에 진을 치고 있다가
소원대로 트럭 운전기사가 되었던 식객과 똑같이 생긴 강우식 시인을 필두로
한 장 한 장 넘길 때마다 탄성이 터져 나왔다.
멋들어진 글씨의 '禁酒'  쪽지 앞에서 저고리를 풀어헤치고 홍소하는 고은 시인,
동네 개천 앞에 쪼그리고 앉은 박용래 시인의 모습은
한편의 시를 방불케 한다.
시인이랍시고 한껏 폼을 잡은 사진들은 몇 편 없고
 대부분 생활인의 냄새를 물씬 풍겨서 더할 수 없이 좋다.


1990년대 초 한 문학상 시상식장에서 만취하여 자신이 수상하지 못한 데 대한
불만을 토로하며 갈짓자 걸음으로 돌아다녔던 시인이 있었다.
시상식에 참석했던 사람들의 눈살을 찌푸리게 했던 그가 이 책에서
눈빛이 형형한 청년의 모습으로 나를 쳐다보았다.
이제 그 부끄러운 기억은 지워달라고.
(어쩌면 그는 그날 필름이 끊긴 가운데 연출했던 그 장면이 너무 무참해
일찍 세상을 버렸는지 모른다고까지 생각했다.)

올해 2월 세상을 떠난 오규원 시인의 초상을 보는 순간 가슴이 울컥했다.

한적한 오후다
불타는 오후다
더 잃을 것이 없는 오후다
나는 나무 속에서 자본다
(오규원 시인이 눈을 감기 전 제자의 손바닥에 쓴 시)

나는 그가 의도적으로 다소 가볍게 시를 쓴다고 생각했는데
책꽂이 앞에 검은 스웨터를 입고 앉은 모습에서
뭐라고 형용할 수 없는 아우라를 본다.
책상 앞에 붙여두고 오며가며 보고 싶다.
그리고 책 표지를 장식한 박두진 시인의 인품이 그대로 드러나는 얼굴, '
이상하게 오싹해지는 휴전선'의 시인 박봉우.
보기만 해도 내 사는 꼴이며 모습이 부끄러워지는 얼굴들이 있다.

지난해인가, 이  비슷한 포맷의 <시인 박물관>이라는 책은
나에게 엄청난 실망을 안겨 주었는데......

생각지도 않은 큰 선물을 받은 기분이다.















댓글(16) 먼댓글(0) 좋아요(23)
좋아요
북마크하기찜하기 thankstoThanksTo
 
 
hnine 2007-06-22 19:48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저도 이 책 찜해놓고 있었는데 리뷰 읽어보니 망설일 이유가 없군요 ^ ^

2007-06-22 22:05   URL
비밀 댓글입니다.

로드무비 2007-06-22 23:42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hnine 님, 망설일 이유가 없습니다.^^

사고 싶은 건 사고 님, 제 유일한 신념이 바로 그겁니다.
사고 싶은 건 사고, 먹고 싶은 건 먹고.
하나 덧붙이면 보고 싶은 건 보고.^^*
에잇, 그거 제가 사드리고 싶은데, 요즘 좀 거시기해서...=3=3=3

2007-06-23 02:29   URL
비밀 댓글입니다.

플레져 2007-06-23 02:30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이 책이 출간되었을 때부터 몹시 당겼더랬어요.
멋진 책과 멋진 리뷰어의 합작, 잘 보았습니다 ^^

hanicare 2007-06-23 14:36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시인박물관..음...향수묻은 손으로 나물 무친 격이더군요.
육명심씨..열화당에서 세계사진가론으로 익힌 이름인데 이 책도 명심해 두었다가 땡스투나..

로드무비 2007-06-23 14:55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몇 줄 고치고 있는데 다녀가셨구랴. 하니케어 여사.
향수 묻은 손으로 나물 무친 격, 절묘한 표현입니다.
어찌나 화가 나던지.^^

플레져 님, 육명심 씨 이름이랑 표지에 이끌려 바로 구입했습니다.^^

뒤프레의 평전 님, 그 무렵 제가 무지 좋은 책들을 읽어댔는데요.
이상하게 리뷰는 쓰고 싶지 않은 거예요.
노란 색연필은 밑줄 긋기용으로 산 겁니다.
남이 쳐놓은 밑줄은 한 번 더 읽게 되죠?
저도 그랬답니다.ㅎㅎ
그리고 그 영화, 다소 감상적인 듯하나(페이퍼에도 썼지만)
전 무지 마음에 들었습니다.
보는 시각은 모두 이렇게 다르군요.^^
(그 친구들에게 위로와 힘을 주는 글 쓰실 거죠?)

프레이야 2007-06-24 09:09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저도 바로 담아갑니다. 좋은 책 소개 고맙구요.^^

로드무비 2007-06-24 10:46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혜경 님 담아가 주셔서 고맙습니다.^^

2007-06-24 14:11   URL
비밀 댓글입니다.

네꼬 2007-06-25 02:02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우선 땡스 투. 무비님의 한마디는 언제나 강력해요. 쿠궁.

로드무비 2007-06-25 10:35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네꼬 님, 제가 좀 과장이 심하죠. 헤헤헤.^^*

2007-06-26 09:46   URL
비밀 댓글입니다.

2007-06-26 10:10   URL
비밀 댓글입니다.

2007-06-28 17:34   URL
비밀 댓글입니다.

2007-07-02 09:30   URL
비밀 댓글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