작은 토끼야 들어와 편히 쉬어라
김서령 지음 / 실천문학사 / 2007년 3월
평점 :
품절


-- 인터넷의 호주 유학 전문 커뮤니티를  들락거리는 학생들에게는
내년도 학비인상 계획보다 순창고추장과 팬틴샴푸의 가격이 더 궁금한 법이다.
우습게도 말이다.('바람아 너는 알고 있나'166쪽)

-- 호주 유학 다녀온 학생입니다. 정리해 드려야 할 듯해서요.
매운맛 너구리에는 다시마 조각이 한 개 들어 있구요,
순한맛 너구리에는 건더기 스프 안에 다시마가 잘게 잘려진 채로 들어 있답니다.
참고하세요.(168쪽)

호주의 한인 식료품점에서 파는 너구리우동.
매운맛 너구리에 다시마 조각이 한 개 들어 있다느니
순한맛 너구리에는 잘게 잘려진 채로 들어 있다느니
한 호주 유학 사이트가 시끌시끌하다.
그 반대면 어떻고 또 안 들어 있으면 어떨라구.
그런데 나도 그 다시마 조각 하나에 신경을 쓰느라
하루를 다 보낼 때가 있다.

오늘 아침 모 텔레비전 방송에서는 탤런트 전광렬이
아름답고 매력적인 긴 생머리의 아내와 치아교정중인 듬직한 초등학생 아들과
프랑스를 여행하는 장면을 보여주었다.
비 내리는 거리에서 우산도 아무런 약속도 없이 올려다보면
예쁜 커튼을 친 창 안에서 흘러나오는 불빛이
더욱 아늑하게 보이는 법이다.
프로방스며 보르도며 노트르담 사원이며 어디에 있어도 그림 같은
가족의 뒤를 쫓으며 나는 흡사 비오는 거리에 우산도 없이 혼자 서 있는 기분이 들었다.
맛있는 냄새와 아늑한 불빛이 흘러나오는 창을 바라보며.

김서령의 소설 속에는 하염없이 길을 떠나고 낯선 거리를  떠도는 사람들이 나온다.
그들은 불빛이 흘러나오는 창 안을 훔쳐보지도 않는다.
우산 하나 장만할 생각도 없이 내리는 비를 쫄딱  맞고 있다.
비슷한 몰골로 어쩌다 시선이 마주치는 사람이 있으면 주머니의 동전을 털어
커피나 술을 한잔 사서 나눈다.
표제작 '작은 토끼야 들어와 편히 쉬어라'의 태원이 엄마처럼
손목을 와락 그러쥐고'집으로 끌고 가 국물이 진한 시래기국을 끓여
뜨거운 국밥을 퍼먹이기도 한다.

책 뒤에 실린 방민호의 '점점이 빛나는 모나드적 개체들'이라는 해설도 재미있었다.
신파와 함께 더할 수 없는 냉철함을 갖춘 이 작가라, 그 적확한 표현이라니.
얼마 전 박완서의 '친절한 복희 씨'에 대한 해설을 읽고 눈이 크게 떠졌는데
아무래도 그의 모든 글들을 찾아 읽어봐야겠다.

'모나드에는 창이 없다.'
리뷰를 쓰다가 문득 정확한 뜻이 궁금해 창을 하나 더 열고 '모나드'를 검색하니
밑도 끝도 없이 이런 구절이 눈에 띈다.
'모나드에는 창이 없다.'

그 개체들은 초라하지만 점점이 빛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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nada 2007-07-12 14:35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작가에 대한 애정이 실린 해설은 더 재미나고 뭔가 다른 거 같아요. 저도 찾아 읽어 보려고 메모했어요.^^

로드무비 2007-07-12 14:58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박완서 소설 '친절한 복희 씨'에 대한 그의 해설 제목이 '육체문학의 힘'이었거든요. 제목만큼이나 해설도 샤프하고 멋졌어요. 이 소설집 재밌게 읽었어요. 꽃양배추 님도 좋아하시지 않을까.^^

비로그인 2007-07-12 17:12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음, 정작 순한맛 너구리의 다시마 조각은 모르고 있었다는...너구리입니다. 안녕하세요. 님의 글은 일전에도 계속 읽었는데 오늘 댓글로 인사드리는군요.

로드무비 2007-07-13 12:51   좋아요 0 | URL
앗, 새초롬너구리 님이시군요. 반갑습니다. 제가 인용한 저 구절에 낚이신 건가요?^^

비로그인 2007-07-12 17:12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육체문학이라...뭔가 갸우뚱거리게 되는 군요

로드무비 2007-07-13 12:53   좋아요 0 | URL
'육체문학'이란 생소한 용어가 마음에 들어요. 정직한, 잔꾀 부리지 않는, 멋부리지 않는, 뭐 그런 의미도 포함하는 것 같고.^^

2007-07-12 18:00   URL
비밀 댓글입니다.

2007-07-13 13:07   URL
비밀 댓글입니다.

waits 2007-07-12 22:43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이 책 여기저기서 많이 마주치네요, 기대돼요.
마침 지난 주에 저희 도서관에도 들어왔길래 눈 여겨 봐뒀는데...^^
언젠가부터 해설은 잘 안 읽게 됐는데, 이 책은 꼭 찾아봐야겠어요.

로드무비 2007-07-13 12:57   좋아요 0 | URL
중간에 두 편은 조금 지루했는데 전체적인 색깔이 좋았어요.
나어릴때 님은 어떤 작품을 제일 재밌게 읽으실라나? 아마도 '역전다방'?^^

건우와 연우 2007-07-13 10:01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비가 오지 않아도 어두워지는 골목에 서면 남의집 처마의 불빛을 흘끔거렸던 기억이 있습니다. 누구라도 찾아주기를 기대하면서...
담아갑니다.^^

로드무비 2007-07-13 13:01   좋아요 0 | URL
어둑한 골목에 서서 남의 집 들창으로 흘러나오는 불빛과 도마질 소리, 생선 굽는 냄새 등을 맡고 있으면 아득해지지요. 남부럽지 않게 부엌을 하나 차지하고 지지고볶으며 사는데도 이상하게 골목에 혼자 서있는 듯한 기분이 들 때가 있어요.^^

2007-07-14 19:30   URL
비밀 댓글입니다.

2007-07-19 08:37   URL
비밀 댓글입니다.

2007-07-19 08:36   URL
비밀 댓글입니다.

2007-07-19 08:54   URL
비밀 댓글입니다.

2007-07-21 09:25   URL
비밀 댓글입니다.

2007-07-21 09:26   URL
비밀 댓글입니다.

2007-07-22 12:29   URL
비밀 댓글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