별의별 책들과 정신을 소개받는 즐거움
-
-
일본 小출판사 순례기 - 출판정신으로 무장한
고지마 기요타카 지음, 박지현 옮김 / 한국출판마케팅연구소 / 2007년 3월
평점 :
세상에 있는지 없는지 몰랐던 책들이라도 책 이야기는 언제나 흥미롭다.
먼 나라에서 나온 책들은 내가 읽을 가능성이
0.0001%도 안 된다고 할지라도 제목만 들어도 애틋한 마음이 든다.
어떤 책의 탄생 비화는 스릴러 영화보다 손에 땀을 쥐게 한다.
언제부턴가 내가 책을 선택하는 게 아니라 책이 나를 선택하는 게 아닌가, 하는
생각을 하게 되었다.
책을 고르고 그 값을 지불하는 사람은 나이지만 어떤 책을 읽다보면
바로 그 순간이 내 인생에서 절대 빠져서는 안 되는 필수 코스임을 깨닫게 되는 것이다.
깨달음이 좀처럼 실천으로 이어지지 않는 게 문제이지만......
<일본 小출판사 순례기>에서 만난 책 만드는 사람들은 자신이 만들고 있는 책을 통하여
다양한 삶의 모습과 정신을 보여주었다.
소수의 독자에 대한 믿음으로 밀고 나가든, 무명의 필자 발굴에 안테나를 세우든,
인문적 관점에서 세상을 읽든, 환경문제를 붙들고 늘어지든, 운동으로서의 그것이든,
하나같이 흥미로웠다.
--특히 독자의 반응이 좋았던 책은 오카 나미키의 <도로 포장과 하수도 문화>였다.
론쇼사(論創社)는 내가 인문서고를 맡고 나서 알게 된 개성 있는 출판사다.(168쪽, 론쇼사 편)
일본의 작은 출판사들은 몇 대째 가업을 잇는 동네 길모퉁이의 작은 식당과도 같은 느낌이다.
포렴을 걷고 들어가 구석자리의 작은 식탁 앞에 앉는 것이다.
벽에 붙은 손글씨의 메뉴판을 보며 음식을 고를 때만큼 흡족한 시간이 있을까?
책을 고를 때의 기분과도 흡사하리라.
발행인이나 편집인들의 믿음 위에서 제각각의 출판정신으로 무장한
다양하고 세부적인 내용을 다룬 책들의 제목만 듣고도 오금이 저렸다.
--여러 가지 이야기를 하던 중에 선생님은 무심코 "오늘날 일본의 번영은
아시아 민중들의 인간 이하의 삶 위에 성립된 것"이라고 하셨다.
나는 숨이 멎는 듯했다.(...)
나의 얄팍한 지식, 인간관계 속에서도 지배계급과 피지배계급,
자본주의와 식민지 관계에 대해 읽거나 들은 적이 있었다.
그렇지만 언제나 이론일 뿐이었다.
이렇게 인간에 근거하여, 생활에 근거하여, 따뜻한 시선으로 어떤 슬픔마저 감도는
어투로 말하는 이가 있었던가.
이론이 아닌 인간의 진심을 담은 그 말에 나는 감동했다.(261쪽, 도메스출판사 편)
"오늘날 일본의 번영은 아시아 민중들의 인간 이하의 삶 위에 성립된 것"이라고 말한
곤 와지로는 '고현학(考現學)'이라는 독창적 학문의 창시자라는데 이 책에서 처음 만났다.
그 외에도 얼마나 매력적이고 독특한 책과 저자들이 많은지
백지에 제목과 이름만 한 번씩 적어보는데도(호감의 구체적인 표시로!) 종이가 꽉 찼다.
**출판 관련 소책자에 실렸던 연재물이라지만
내용을 조금 더 보완하고 다듬었으면 좋았겠다는 아쉬움은 남는다.
오자도 여러 개 눈에 띄고, 한마디로 감칠맛이 부족한 느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