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집 나간 마음을 찾습니다 - <유희열의 스케치북> 정민선 작가가 그려낸 선연한 청춘의 순간들
정민선 지음 / 시공사 / 2010년 12월
평점 :
어느새 서른 중반을 훌쩍 넘겼다. 앞으로 살아야 할 날이 더 많은데도 언젠가의 일들을 떠올릴 수 있다는 것이 행복하기도 씁쓸하기도 하다.
내가 원하는 방향으로 삶은 나아가지 못하고 우물쭈물거리며 시간을 보냈던 이십대를 생각하면 반짝반짝 빛이 났던 것도 같고, 우중충한 회색빛이 났던 것도 같은 그런 애매한 시간이 생각난다. 그때 만났던 사람들을 모두 다 기억하지도 못하고 더러는 나는 기억하지만 그들은 기억하지 못하는 존재가 되었을지도 모른다는 생각을 할때가 있다. 그만큼 이십대의 기억이 가물가물한다. 게다가 내 맘대로 좋은 쪽으로 해석하고 나에게 유리한 쪽으로 기억을 조작하고 있을지도 모른다는 생각을 한다.
이십대의 나는 미친듯이 방황하는 정신나간 사람이었다. 방탕한 생활은 물론 늘 집을 떠나고 싶다는 생각을 했으니 말이다. 집을 벗어나 살던 3년반의 생활만큼 홀가분했던 적이 또 있었을까도 싶었지만 주말이면 어김없이 집으로 기어들어갔던 나를 생각하면 진정 집을 벗어나고 싶었던 적은 별로 없었을지도 모른다는 생각을 하곤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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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넌 너라는 사람이 좋아? 맘에 들어?"라는 친구의 물음에/ 분명한 목소리로 "좋아!"라고 대답하는 내가 보인다./ 오늘 다시 그 질문을 받는다면 나는 뭐라고 답해야 할까? (프롤로그 중)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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내가 이런 질문을 받는다면 나는 분명한 목소리로 "좋아!"라고 답하지 못하고 불분명한 태도로 씩 웃고 말았을 것이다. 나는 여태 나를 제대로 대접한 적이 없다. 자존감이 부족한 사람의 태도라고나 할까. 그러니 나는 여태 행복이라는 것이 무엇인지 제대로 알지 못하고 살았던 것이다. 하지만 나이가 들면서 행복은 멀리 있는 것이 아니라는 것, 늘 우리 곁에 있지만 그것을 모르는 채 지내왔다는 사실을 깨달으며 살고 있다. 모든 것이 감사하고 감사한 일이라는 것을 나이가 들면서 알게 되었단 얘기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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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금 행복하지 않은 내가 / 과연 이따가는 행복할 수 있을까? (25쪽)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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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 글을 읽는 순간 멈칫했다. 맞아. 행복하다고 생각하지 못했던 날들은 늘 불행하다고 생각하고 술을 마시고, 이 사람 저 사람 붙잡고 지껄여대고, 한숨짓고 그랬던 것 같다. 하지만 행복하다고 생각하는 그 순간부터 나는 앞으로도 계속 행복할 수 있을 것 같다. 그리고 그런 쓸데없는 하소연은 더 이상 할 필요도 없다는 걸 깨달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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어쩌면 어른이 된다는 건/ 감정을 숨겨야 하는 것, / 슬퍼도 참아야 하는 것, / 아파도 웃어야 하는 것.(27쪽)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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내게도 어른이 된다는 것에 대한 환상이 있었다. 어른이라면 이렇고 저렇고 내 나름의 기준이 있었다. 하지만 어른도 아프면 아프다고 말해야 하고, 슬플땐 울어야 한다. 그것을 감춘다고 어른이 되는 것은 아니다. 진심을 감춘다고 어른이 되는 것은 아니다. 다만, 어른이 된다는 것은 그 모든 것을 책임질 수 있어야 한다는 것이 내 생각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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마음을 있는 힘껏 동여매고 / 아무 일 없는 것 마냥 그렇게 웃는다.(35쪽)
조금 덜 행복해도 괜찮으니 / 조금 더 단단해졌으면 좋겠다.(45쪽)
긴장의 끈을 느슨하게 풀어놓으면 / 마음의 나사를 헐겁게 풀어놓으면 / 욕심이 과해 부대끼던 많은 일들이 저절로 잘 되어간다. / 그것이 인생의 진실이자 아이러니다.(53쪽)
나이를 먹어간다는 건 참으로 흥미로운 일이다. / 10년 후의 나는 또 어떤 생각으로 / 하루하루를 살아가고 있을지......./ 어느 나이를 살든, 생각은 늙지 않고 / 여유와 관록만으로 빛이 났으면 좋겠다.(59쪽)
나의 상처와 마주하는 것, / 호~ 입김을 불어주고 연고를 발라주고 / 반창고를 붙여주는 것으로 나는 비로소 성장한다. / 그리고 반드시 기억해야 할 건, / 흉터는 남았어도 아픔은 지나갔다는 것이다.(63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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음악프로그램의 시나리오 작가인 이 에세이의 저자는 작사가이기도 하단다. 자신을 돌아보며 많은 이야기를 꺼내어 놓는다. 마치 한편의 시를 읽는 듯, 그녀의 마음을 읽어간다. "어느 나이를 살든, 생각은 늙지 않고/ 여유와 관록만으로 빛이 났으면 좋겠다"고 말하는 그녀의 글이 이제 막 서른으로 접어든 풋내기의 글처럼 느껴지지 않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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연애란 / 오늘은 / 이렇게 좋은데 어떻게 헤어지지 했다가 / 내일은 / 이런 애랑 어떻게 계속 만나지 하는 것.(105쪽)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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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람을 만나 사랑을 나누는 일만큼 쉽지 않은 일이 또 있을까? 너무 좋다고 만났다가도 어느날에는 도무지 마음에 들지 않는다고 전화 한통으로 결별을 말하는 그런 사랑도 있다. 그 어느 순간엔 좋아서 어쩔줄 몰랐는데 말이다. 그때의 상처가 고스란히 떠오르지만 지금은 그때처럼 아프지 않다. 상처가 생겼던 그 순간 나는 어느새 성장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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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랬다. 너의 인생과 나의 인생 모두/ 마음에 안 드는 것들 투성이라고 생각했지만/ 지나고 보니 그럭저럭 잔잔하게 흘러간 것 같다./ 소행성 B612에서 내려다보면 오늘 나의 이 혼잡함들은 / 너무 작고 보잘 것 없어서 존재하는지도 모르겠지.(215쪽)
오랜만의 휴식으로 마음에 쉼표를 찍은 날. / 나는 비로소 숨을 쉰다.(243쪽)
이 세상에 헛되게 흘러간 시간은 없다. / 그 시절을 그렇게 보내지 않았더라면 / 지금의 견고한 나는 만들어지지 않았을 것.(247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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인생은 참 살아볼만하다. 이렇게 아무 것도 아닌 듯 흘러왔던 시간들 속 어느 순간 순간들은 반짝 반짝 빛이 났을테고, 그것을 나 혼자 기억하고 있다고 해도, 그 순간들은 언제나 내 기억 속에 있었다는 것만으로도 행복해할 수 있다는 생각을 하면 그것으로도 족하다. "이 세상 헛되게 흘러간 시간은 없다" 이 세상 그냥 그렇게 살아온 날은 없는 것이다. 내가 살아왔던 그 모든 순간들이 지금의 나이고, 앞으로의 나일테니까 말이다.
나보다 어린 작가의 글을 읽으며 그녀의 이야기에 귀를 기울이고, 그녀의 생각에 공감을 표한다. 그렇게 산다는 것은 어느 나이 많은 사람의 이야기에서만 감동을 받는 것은 아닐 것이다. 살아있는 모든 생물들에게 인생을 배우고 삶을 생각한다. 또 앞으로 더 열심히 살아야겠다. 죽음을 맞이하는 그 순간까지도 말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