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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물>을 읽고 리뷰를 남겨 주세요.
- 김숨 장편소설
김숨 지음 / 자음과모음(이룸) / 2010년 3월
평점 :
절판


김숨, 작가의 이름을 보며 긴 숨을 한번 쉬었다. 모르는 작가라 신인인가했는데 벌써 여러해전에 등단하여 여러 작품을 발표한 작가다. 이제야 이 작가의 책을 읽어보게 되다니 부끄럽다. 

집을 삼킬 듯한 거센 물줄기가 인상적인 표지엔 '물'이라는 제목만 덩그러니 쓰여있다. 어떤 글이 쓰여있을까 한껏 호기심을 불러 일으킨다. 

이 책을 펼쳐들고는 김숨이라는 작가의 매력에 흠뻑 취한다. 물질이 갖고 있는 속성을 제대로 간파하고 있다. 물, 불, 소금, 금, 공기, 납, 안개...... 

늘 물이 문제라는 작가의 말은 사실이다. 이 세상에 물이 없다면 우리가 존재할 수 있을까? 우리 몸의 대부분을 차지하고 있는 물, 단 하루라도 물을 마시지 않는다면 우리는 서서히 말라 죽어가지 않겠는가 말이다. 

물인 어머니는 소금, 금, 공기를 낳았다. 불인 아버지와 함께 말이다. 

물은 만물의 근원인 어머니를 상징한다. 하지만 하나의 결정체를 낳기위해서는 혼자 힘으로는 이룰 수 없으며 불인 아버지와의 조화에 의해서만 가능하다. 사람은 누구나 소유할 수 없는 것을 소유하려고 하지 않던가. 소금은 자신의 결정체를 망가뜨리는 어머니인 물에 기대고 불은 금의 변형을 가져올지라도 금을 소유하려고 한다. 이 모든 것을 관통하는 또 하나 공기, 대기 속을 떠도는 공기 또한 없다면 우리는 살아갈 수 없었을지도 모른다. 그리고 공기는 물과 불에서 태어났지만 그들을 지배할 수 있는 속성을 지니고 있다. 특히나 불의 힘을 세게하거나 약하게 만들 수 있는 것이 공기가 아닐까 한다.  

작가는 이런 물질들의 속성을 한 가정에 담았다. 각자의 개성에 맞게 살아가고 있는 우리들 모습과 꼭 닮아 있다는 생각을 한다. 

모든 것을 감싸안으려는 물, 모든 것을 소멸(파괴)시키려는 불, 자신의 소명을 다하는 소금, 오로지 존재하는 것만으로 가치가 있는 금, 눈에 띄지 않지만 없어서는 안될 공기. 이 다섯 식구들 각자의 개성은 물질의 속성과 닮아 있으며 작가는 이것을 놓치지 않고 포착했다. 작가적 관찰력이 세심하게 드러나는 소설이었다. 이런 상상력으로 하나의 아름답지만 기괴한 작품을 만들어낼 수 있다니 그 부러움은 이루 말할 수 없다. 

   
  한 방울의 물과 한 방울의 물은 서로를 끌어당긴다. 경계를 허물고 서로를 끌어당겨 한 방울의 오롯한 물이 된다.(205쪽)  
   

 이렇게 아무렇지도 않게 아름다운 문장을 쓸 수 있다니......감동과 감탄을 계속 자아냈다. 단숨에 이 책을 읽어내느라 하루를 어떻게 보냈는지도 모르겠다. 내게도 오로지 물이 문제였다. 

물은 물로써 지워진다는 작가의 글이 아름답다. 수족관에 죽어 하나의 흔적으로 남은 어머니의 존재를 휩쓸고 간 삼백만톤의 저수지 물, 불이 몰아낸 물이 언젠가 또 돌아올거라는 소금의 생각은 옳다. 집을 휩쓸어버린 물은 공기와 금을 사라지게 하고, 그들의 삶을 다르게 이끈다.   
 
물이 휩쓸고 지난 곳에 늪지대가 생기고 안개가 뒤덮고 불과 소금은 다시 망각에 사로잡힌다. 
   
 
안개는 망각하지 말아야 할 것들마저도 망각하게 한다. 그렇지 않아도 물인 어머니의 죽음 뒤로 나는 망각을 멀리하게 되었다. 내가 정말로 원하는 것이 망각이 아님을 깨달았기 때문이었다. 
  망각이 아니더라도 안개는 아버지와 내게 위험한 존재다. 
  안개는 물만큼 강력하지는 않아도, 조용하고 확실하게 불과 소금을 무력화시켜버린다. 안개는, 한 덩이의 암염으로 다시 태어난 내가 미처 의식하지 못하는 사이에, 내가 품은 '각'들을 무디게 한다. 나는 안개 속에서 각들이 녹아 없어지는 것을 문득 깨닫고 두려움에 휩싸인다. 안개를 멀리 쫓아보려고 하지만, 이 집 안으로 꾸역꾸역 밀려드는 안개를 막을 방법은 없다.(290쪽)
 
   

 그래도 잊지 않고 찾아주는 수도검침원과 은행원이 있다는 사실만으로도 이들의 고립이 영원할 것 같지만은 않다. 새로 돈을 빌려 공중호텔을 만들어낸 아버지, 그것을 지켜오던 하나의 암염이던 할머니를 이을 소금, 그리고 언젠가 연금술이 이루어진다면 반드시 금이 되고도 남을 금이 낳은 납, 그들의 삶에 또 한번의 물이 몰려올지도 모르지만, 그들도 그렇게 살아갈 수 있으니 나 또한 이렇게 풍요롭고 편리한 세상을 살아가는데 무예 어려울까 싶다. 

물, 설거지를 하면서 양치질을 하면서 또 목욕탕에 들어 앉아 있으면서 며칠은 물에 대해 생각할 것 같다. 아니, 내가 물을 쓰는 그 어떤 날에도 나는 물을 생각할 것 같다. 물을 보며 물에 대해 생각하며 물이라는 소설을 쓴 작가도 함께 생각하면서 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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마녀고양이 2010-04-29 08:57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아, 좋은 리뷰입니다....
스크랩한 문구가 아주 아름답네요,, 한국 소설은 평소 가까이하지 않지만, 섬님의 리뷰를 보니 한번 읽고 싶어집니다...

꿈꾸는섬 2010-04-29 22:05   좋아요 0 | URL
저도 처음 접한 작가인데 너무 매력적이에요. 다른 작품들도 찾아보고 싶어요.^^

필로우북 2010-04-29 11:07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 김도언 작가와 부부가 함께 소설을 쓰시죠..김숨님은 열림원 편집자로 일하시는 걸로 알아요..그런 와중에 부지런히 소설을 발표해서, 온갖 억측(퇴근해서 소설만 쓴다더라...)이 떠돈다고 하네요..ㅋㅋ 이렇게 말하는 저도 김도언님 소설만 읽어봤어요.^^


꿈꾸는섬 2010-04-29 22:05   좋아요 0 | URL
앗, 김도언 작가는 또 누굴까요? ㅎㅎ 문학적 감이 영 없는 내 자신이 부끄러워ㅠ.ㅠ 김도언 작가도 찾아봐야겠군.
 
<보이니치 코드>를 읽고 리뷰를 남겨 주세요.
보이니치 코드
엔리케 호벤 지음, 유혜경 옮김 / 해냄 / 2010년 3월
평점 :
품절


   
  "신기한 과정을 통해 총살당하게 될 사람이 1,000명 있습니다. 사형 집행인은 일렬로 세운 죄인들 가운데 첫 번째 죄인을 시작으로 두 명당 한 명의 죄인을 총으로 쏠 것입니다. 살아남은 죄인들을 다시 모아 일렬로 세운 다음, 다시 첫 번째 죄인을 시작으로 두 명당 한 명의 죄인을 사형시킵니다. 단 한 명의 죄인이 남을 때까지 이렇게 사형을 집행합니다. 당신은 몇 번째에 서 있겠습니다?"(100쪽)  
   
   
 

"혈전이 끝나면, 군인들을 재편성합니다. 군인들은 대부분 중상 혹은 경상으로 불구가 되었기 때문에 슬픔에 잠겨 있습니다." 

(중략) 

"군인들의 70퍼센트는 적어도 한쪽 눈을 잃었습니다. 75퍼센트는 한쪽 귀가 잘려나갔습니다. 80퍼센트의 군인들은 적어도 한쪽 팔이 잘렸습니다. 그리고 85퍼센트는 다리 하나가 없습니다. 장군은 최소한 한쪽 눈, 귀, 팔 그리고 다리를 잘린 부하가 몇 명인지 알고 싶어 합니다. 가장 용감한 군인들에게 훈장을 수여하기 위해서입니다."(122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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같은하늘 2010-04-27 00:17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우와~~ 문학신간평가단 하시나봐요? 대단하십니다.^^

꿈꾸는섬 2010-04-28 16:28   좋아요 0 | URL
에고 어쩌다 그리 되었네요.^^

hnine 2010-04-27 19:33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아, 저는 이 책이 너무 진도가 안나가고 있어요. 빨리 다음 책 읽고 싶은데 말이죠.

꿈꾸는섬 2010-04-28 16:27   좋아요 0 | URL
사실 저도 이 책 아직 읽는 중이에요. 그다지 흥미진지하진 않지요.^^
 
<숨김없이, 남김없이>를 읽고 리뷰를 남겨 주세요.
숨김없이 남김없이
김태용 지음 / 자음과모음(이룸) / 2010년 4월
평점 :
절판


늦깍이 대학생이 되었을때, 우리과 선배가  내게 이것 저것을 물었다. 그러더니 나에게 하는 말이 "넌 참 모던한 놈이구나." 하더라. '모던하다'라는 말이 어떤 의미일까 생각해보았지만 그게 그래서 어떻다는거지? 한참을 생각하게 되었고, 가끔 내가 만나는 책이나 영화들을 보면서 내가 선호하고 있는 것들을 보면서 '아, 난 참 모던하구나.'라고 알게 되었다. 

한참 대두되었던 '포스트 모더니즘'에 대한 이해도 부족했지만 '포스트 모더니즘'이라는 이름으로 거론되던 책이나 음악 그리고 영화들에 대해 상당히 재미없어하고 이해하지 못했다. 

그래서라고 생각한다. 이 책이 갖고 있는 매력을 파악하지 못하는 것을 말이다. 

책이 온 날부터 틈만나면 이 책을 붙잡았지만 책장이 넘어가질 않았다. 작가의 의도대로 언어에 구멍이 났던 것이다. 내가 알고 있는 기존의 소설이라는 장르의 개념을 넘어선 소설을 읽는 일은 정말 힘에 겨웠다. 게다가 툭 던져놓는 남자와 여자의 성적 표현, 그것이 어떤 의미를 가질까를 고민하며 뿌리, 근본, 기원, 근원......뭐 이런 것들에 대한 이야기를 하고 싶었던 것일까? 막연한 생각만 나열될뿐, 도저히 이해했다고 말할 수 없는 찝찝함을 안고 계속 책을 읽었다. 

서사의 줄기가 없는 책을 읽는다는 행위가 얼마나 잔인하고 참혹한지 작가는 알까? 

어지간하면 작품의 뒤에 실리는 해설이나 작가의 말, 옮긴이의 말을 읽지 않고 서평을 쓰려고 하는데 이 책은 중간쯤 읽다가 지쳐 작가와의 인터뷰 글을 읽었다. 솔직히 인터뷰도 짜증이 확 솟았다. 그래, 너 참 잘났다 싶었다. 문학이라는 테두리에서만 가능한 소설의 형식을 파괴한 소설을 쓰고 싶었단다. 오히려 시였다면 좋았겠단 생각을 하며 읽었는데 자신은 시를 쓸 생각이 없고 소설을 쓰고 싶었단다. 언어의 구멍을 내고 싶었단다. 그래, 정말 언어에 구멍이 났다. 그 많은 구멍들에 빠져 허우적거리느라 이해도 되지 않았다. 정말 차라리 개들의 언덕으로 뛰어 올라가 주둥이가 돌아간 개의 주둥이를 치고 싶어졌다. 

이 소설은 인물과 사건, 사물만이 존재한다. 그, 그녀, 미파, 뭐, 개, 냉장고, 의자, 책상, 카레, 음경, 음문, 약방, 지하도, 매트리스......내가 미처 파악하지 못하는 사이에 서사가 존재하고 있었을지도 모른다. 하지만 서사의 줄기는 모두 동강나 있었다. 마치 컬트 영화를 보듯이 말이다. 이 책을 읽으며 영화 <나쁜피>를 떠올렸는데 작가의 영감이 <나쁜피>에서 나왔다는 인터뷰를 보면서 역시 내가 좋아하지 않는 장르의 영화를 보는 것만 같아서 내내 불편하고 욕지기가 일었다.  

   
  뭐뭐 쏟아지는 얼굴을 붙잡고 보아도 여자애로 추측되는 얼굴은 없어 심히 낙심하여 내가 왜 이 마을에 다시 돌아오고 싶어 했는지 다시금 알게 되면서 돌아서 마을회관을 빠져나오려던 찰나 기괴한 목소리가 들려 돌아보니 하체가 잘린 소녀가 몸을 질질 끌며 나에게로 다가오며 뭐뭐뭐 소리를 내기에 좀 똑바로 말할 순 없니, 라고 다그치자 다시금 뭐뭐뭐거리며 피를 토해내기에 도저히 들어줄 수 없어 누군가의 머리를 들어 어쩌면 내가 찾던 소녀일지도 모를 소녀가 입을 다물 때까지 머리통을 갈겨주고 나선 이미 죽어가고 있는 자를 죽이는 것은 살인인가 아닌가 하면서 나의 못돈 버릇 중의 하나인 쓸데없는 사유에 다시금 사로잡힌 자신을 타이르며 쉬엄쉬엄 걸어 나와 마을 입구를 지나 마을을 벗어나려는데 문득 뒤를 돌아보니 입술이 얼굴의 반을 차지하고 있는 장승이 나를 보며 기괴한 웃음을 웃기에 나 역시 살육의 공모자처럼 내가 낼 수 있는 최대한 야비하고 비굴하고 께름칙하고 잔인한 웃음을 내보려 노력했지만 나는 칼새처럼, 침을 질질 흘리던 개처럼, 하체가 잘린 소녀처럼, 뭐뭐뭐 소리만 낼 줄 알게 되었던 것이다.(152쪽)  
   

일말의 희망이라고 생각했던 어떤 분의 리뷰도 내게는 통하지 않았다. 도저히 읽어내기 싫은 문장으로 가득 들어찬 글의 조합처럼 느껴졌던 것이다.  

   
   나는. 나는 바다로. 나는 바다로 가서. 나는 바다로 가서 바라던. 나는 바다로 가서 바라던 바를. 나는 바다로 가서 바라던 바를 달성. 나는 바다로 가서 바라던 바를 달성하는. 나는 바다로 가서 바라던 바를 달성하는 자를. 나는 바다로 가서 바라던 바를 달성하는 자를 원망하지. 나는 바다로 가서 바라던 바를 달성하는 자를 원망하지 않지만. 나는 바다로 가서 바라던 바를 달성하는 자를 원망하지 않지만 이라고. 나는 바다로 가서 바라던 바를 달성하는 자를 원망하지 않지만 이라고 쓰고 나서는. 나는 바다로 가서 바라던 바를 달성하는 자를 원망하지 않지만 이라고 쓰고 나서는 약 두알을 씹지. 나는 바다로 가서 바라던 바를 달성하는 자를 원망하지 않지만 이라고 쓰고 나서는 약 두악을 씹지도 못하고 빨아 먹으며. 나는 바다고 가서 바라던 바를 달성하는 자를 원망하지 않지만 이라고 쓰고 나서는 약 두알을 씹지도 못하고 빨아 먹으며. 나는 바다로 가서 바라던 바를 달성하는 자를 원망하지 않지만 이라고 쓰고 나서는 약 두 알을 씹지도 못하고 빨아 먹으며 체리가 그려진. (생략) (66쪽)  
   

 글을 읽는 나는 정말 힘에 겨웠지만 이 글을 쓴 작가는 신이나서 썼을 것만 같았다. 소설의 형식을 파괴하고 시작과 끝의 경계도 없이 이리저리 독자를 개 끌고 다니듯 다녔으니 말이다. 이리저리 끌려 다녔더니 몸도 머리도 많이 지쳤다. 

결국 한가지 인정하고 싶었던 건 작가의 오만한 천재적 자질이라는 것인데, 1930년대의 이상이 발표했던 말도 안되는 시들에 대한 경외심이 오늘에와서야 인정되었다는 것이다. 김태용이라는 작가를 이해하지 못하는 나 자신이 못났단 생각이 든다. 그래서 더 약이 오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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마녀고양이 2010-04-26 08:55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섬님, 신간 평가단이시군요?
이야.... 바쁘실거 같아요. 좋은 리뷰네요.
좋은 한주의 시작되셔여!

꿈꾸는섬 2010-04-26 11:37   좋아요 0 | URL
문학분야라 기대가 커요. 근데 왜 이리 어려운 책을 보내주셨는지 ㅠ.ㅠ
정말 울며 겨자 먹기로 읽었네요.
새책 받아보는 즐거움에 바빠도 좋아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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