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집보다 여행>을 읽고 리뷰를 남겨 주세요
집보다 여행 - 어느 여행자의 기발한 이야기
왕영호 지음 / 21세기북스 / 2010년 8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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품절


가끔 우리는 농담아닌 농담을 한다. '지금까지 마신 술이 집 한채 값은 될거야.' '담배만 안 피웠어도 돈이 꽤 모였을 걸.' '여행만 안 다녔어도 집 샀을텐데...' 하지만 이런 후회성 짙은 농담은 결코 현실적으로 이루어지지 않았을 일들에 대한 농일뿐이란 생각을 한다. 

여행을 하지 않았어도 우리는 분명 그 돈을 술이든 담배든 혹은 책을 사는데 소비했을 것이기 때문이다. 

어제 만난 어떤 친구분은 어떤 달엔 경조사비로 80만원이 지출된다는 얘기를 했다. 우리는 그걸 어떻게 감당을 하냐고 했지만 그 사람에게 있어서 대인관계는 무척 중요한 일이고 그러다보니 경조사비용으로 지출되는 돈이 만만치 않다. 

<집보다 여행>, 지금까지의 여행에세이와는 확연히 다르다. 작가의 기발한 상상력이 동원된 이 책은 한편의 소설을 읽는 느낌이 들었다. 여행을 가고 싶다는 부인을 위해 9,999,990원 달여행 패키지를 선택하고 달여행을 가서 가이드의 권유에 따라 지구에서는 희귀한 보석을 사고 달에서만 살 수 있는 한약을 산다. 여행지에서 즐길 수 있는 것들은 모두 옵션여행으로 추가비용이 따른다. 정작 지구로 돌아와 보석값을 확인해보지만 돌멩이에 불과하단다. 또 한약은 복통을 일으킨다. 여행비용보다 쇼핑비용이 더 많이 지출된 상황이다. 이 부분을 읽으며 마치 나의 모습을 보는 듯 했다. 신혼여행패키지 상품을 이용해 처음 해외로 나갔을때 가이드의 말을 곧이 곧대로 따랐던, 또 마지막날 하루는 쇼핑에 올인했던 기억이, 물론 우린 적정선에서 쇼핑을 마치고 싶었지만 왠지 다른팀이 사니 나도 꼭 사야만 할 것 같은 그런 분위기였다. 시부모님 선물 당연히 사가야죠. 여기서만 살 수 있는 것들이에요. 라고 말하던 가이드, 하지만 정작 여행은 쇼핑때문에 불쾌하게 마무리 되었었다. 이런 여행은 이제 다시는 하지 않겠다고 결심했다. 

오랜 여행에 대한 경험을 바탕으로 쓴 에세이라 초보 여행자나 여행을 즐기는 노련한 여행자 모두에게 즐겁고 유익하게 읽을 수 있는 책이 될 것 같다. 

여행은 집이 주는 안락함보다 삶에 미치는 정신적인 안정감을 준다는 작가의 생각에 동의한다. 그러니 집보다 여행이라는 말이 마음에 든다. 집을 사기 위해 은행에서 돈을 빌리고 그 돈을 갚기 위해 여행도 떠나지 못한 채 각박하게 살아가는 사람들, 진정 행복한가? 좋은 집에서 안정되게 살고 있는가? 묻고 싶다. 

여행을 통해 소통하고 모험과 자유를 꿈꿀 수 있다는 것만으로도 여행은 우리에게 꼭 필요한 것이 아닐까 싶다. 현실에서 벗어나 잠시 쉬어갈 수 있는 여유를 우리에게 제공해줄 것이다. 그러니 집보다 여행이 더 좋다고 말할 수 있는게 아닐까 싶다. 

이 책을 읽으며 다시 또 여행을 꿈꾼다. 아직 가보지 못한 미지의 장소로 나를 데려가고 싶다. 평생 여행자가 되어 수많은 도시를 돌아다녀보고 싶다는 생각을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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비로그인 2010-09-05 10:32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여행이 안식처가 된다면...여행에 투자해야죠.
ㅎㅎ집 한채 값의 책을 사신 분도 있어여, 나랑 무쟈게 친한 분인데^^

꿈꾸는섬 2010-09-05 10:34   좋아요 0 | URL
ㅎㅎㅎ저희 남편은 집 한채 값의 술을 마셨을 것 같아요.ㅎㅎㅎ

마녀고양이 2010-09-05 11:04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저는 여행가려고, 10년짜리 변액 보험 붓고 있어요.
그런데..... 아마 만기 때는 다른 바쁜 일에 들어갈 가능성도 크죠!
하지만,, 그 돈 중 일부는 꼬옥 여행에 쓰겠어요!

꿈꾸는섬 2010-09-05 14:36   좋아요 0 | URL
전 여행가려고 적금 들었어요. 원래는 뉴저지 가려고 모은 돈인데 뉴저지 가기전에 일본 먼저 다녀올까봐요.ㅎㅎ 물론 다른 바쁜 일이 생기면 거기 쓸지도 모를 일이구요.ㅎㅎ

소나무집 2010-09-05 16:00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저희도 여행 다니다 돈 못 모으는 집 중 하나예요.ㅜㅜ
하지만 세상을 바라보는 넓고 풍성하고 여유로운 시각은 여행이 준 멋진 재산이라고 생각해요.

꿈꾸는섬 2010-09-06 08:39   좋아요 0 | URL
ㅎㅎㅎ소나무집님댁이 그래서 행복이 넘치잖아요. 님 말씀대로 세상을 바라보는 시각이 넓고 여유로워지죠. 환산할 수 없는 멋진 재산...맞아요.^^ 그런 생각을 닮고 싶어요.^^

루체오페르 2010-09-05 19:27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인생은 선택과 기회비용의 연속~

여행을 못 가도 아껴서 집을 사서 행복...
집을 못 사도 그 돈으로 여행을 가서 행복...

다들 자기만의 가치관이 있고 자기만의 행복의 나침반에 따르면 되는거겠죠.^^

꿈꾸는섬 2010-09-06 08:40   좋아요 0 | URL
ㅎㅎ다들 자기만의 가치관이 있죠. 그 가치관 형성에 여행이 중요한 역할을 할 것 같아요. 이 책을 보시면 무슨 말일지 아실 것 같아요.

양철나무꾼 2010-09-06 01:18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저는 일로다가 다니는 건,결코 '여행'이라고 이름 붙이고 싶지 않고요~
가족끼리의 여행은 거의 아들의 학교생활의 연장선 상(과제물)에서 이루어졌습니다.
그 외의 여행은,솔직히 집에서 쉬는 게 더 좋아서...남편과 아들 맘 상하게 여러번 했습니다.
여행...마음의 여유가 그 시작인 것 같습니다~!

꿈꾸는섬 2010-09-06 08:41   좋아요 0 | URL
ㅎㅎ그렇죠. 출장은 여행이 아니죠. 아들 숙제로 하는 여행도 의무감에 하는 여행이라 재미없을 것 같아요.ㅋㅋ 일하시는분들은 집에서 쉬는걸 제일 좋아하시는 듯, 저희 언니네도 그래요.ㅋㅋ
마음의 여유로 시작하는 여행이 진정한 여행을 느끼게 해주겠죠.ㅎㅎ

희망찬샘 2010-09-07 18:25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저도 책 안 샀으면 과연 무엇을 샀을까 잠깐 생각을 해 봐야겠어요. ㅋㅋ~

꿈꾸는섬 2010-09-08 14:15   좋아요 0 | URL
ㅎㅎㅎㅎ희망찬샘님도 집 사실만큼 책을 사셨을 것 같아요.ㅋㅋ

같은하늘 2010-09-08 23:19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저도 둘째가 이제 좀 컸으니 여행 열심히 다니고싶지만...
저의 저질 체력에 힘들어서 못하겠어요.^^
매일 농담반 진담반으로 삼부자만 다녀오라고해요.ㅎㅎ

꿈꾸는섬 2010-09-10 12:22   좋아요 0 | URL
ㅎㅎ전 여행이라면 저질체력도 극복할 수 있어요.ㅋㅋ
 
<바이퍼케이션>을 읽고 리뷰를 남겨 주세요.
바이퍼케이션 1 - 하이드라
이우혁 지음 / 해냄 / 2010년 8월
평점 :
절판


얼마전 신간평가단에서 문자가 왔다. 신간평가단 서재에 들어오면 좋은 일이 있을거라고. 몇시간 뒤에 시간이 되어 신간평가단에 들어 갔더니 <바이퍼케이션>의 리뷰어를 공개 모집한다는 것이다. 사실 이런 장르소설을 많이 읽어보지 않았고, <바이퍼케이션>의 이우혁 작가의 유명한 <퇴마록>도 읽어보지 않아서 자신있게 손을 들지는 못했지만 혹시나 하는 마음에 신청했고 10명 모집에 7번째로 선정되어 이 책을 받게 되었다. 그런데 다른 분들은 1,2,3권 모두 받은 것 같은데 나에겐 달랑 1권만 왔다.  

여하튼 장르소설의 매력적인 흡입력은 이 소설에 집중하게 하고 끌리게 한다. 마치 한편의 미드를 보는 듯한 느낌이었다. 하지만 드라마보다 훨씬 섬세한게 책이지 않는가. 

<바이퍼케이션>의 1권은 하이드라, 머리 열두개를 지닌 뱀, 신화속 괴물, 그는 과연 누구일까? 일명 뱀파이어로 불리고 있는 이 괴한의 정체를 쫓아 비밀 임무를 수행하는 프로파일러 에이들, 그에게 도움을 줄만한 믿을만한 형사반장 가르시아, 그들에게도 과거 가족이 살해되는 상처가 있다. 천재적인 프로파일러 에이들과 인간적인 면모를 한껏 과시하는 베테랑 형사의 만남이니 어떤 어려운 문제도 척척 해결해나갈 것 같다는 기대감을 갖게 한다. 

남편이 살해당하고 발목이 잘려나간 미모의 여성 헤라, 그녀는 어떻게 사람들의 기억을 조작하는 것일까? 살인마 리온 앞에 나타났다 사라지고, 그를 설득해 자신의 배를 갈가리 찢어 죽이게 만든 그 힘은 무엇일까? 소설은 미스테리 그 자체다. 휠체어를 타고 다니는 여성의 힘이 얼마나 셀 수 있을까? 과연 그녀는 진정 헤라클레스일까? 

소설의 모티프라 할 수 있는 그리스 신화를 바탕으로 헤라로 탄생한 헤라클레스는 12과업에 도전하고 1권에서는 사자, 리온을 헤치운다. 그 다음 발생한 한 가족 살해 사건, 생존자는 꼬마소년 빌리, 빌리네 집에서는 무슨 일이 있었던 것일까? 에이들의 추리로 해결의 실마리를 보이는가 싶었지만 병실에서 만난 헤라의 이야기는 전혀 다른 방향으로 흘러간다. 눈에 보이지 않는 존재를 향한 싸움이 될 것 같다. 헤라와 빌리, 둘의 관계는 무엇일까? 

자선병원의 자원봉사자 나타샤와 닥터 스핑클스의 존재는 또 무엇일까? 지하실로 옮긴 기계의 정체는 또 무엇이란 말이가? 왜 굳이 커피를 거절하는 경찰에게 커피를 마시라고 했던 것일까? 마치 사건의 중심에 이 둘이 중요한 자리를 차지하고 있을 것만 같은 느낌이 든다. 혹 그 둘에 의해 헤라가 자신이 헤라클래스가 되었다는 착각을 일으키고 있는 것은 아닌지 모르겠다. 

왜 이 책을 1권만 보내주어 사람을 이리 궁금하게 만드는지 모르겠다. 

얼른 2권, 3권을 찾아보고 싶다. 

장르소설을 즐겨 읽진 않지만 막상 읽고나니 흥미진진, 소설 속에 빠져 들었다. 마치 내가 에이들 된 것처럼 이 사건을 해결해보려고 이 생각 저 생각을 하고 있다. 살인을 하는 사람들, 그것을 통해 쾌감을 느끼는 사람들이 마치 내 주변 어딘가에도 살고 있을까 겁이 좀 나긴 한다. 하지만 그런 사건들을 해결해나가는 범죄심리학자들과 경찰들의 모습을 보면 경이롭다. 

아, 이거 다음 이야기가 궁금하다. 얼른 찾아봐야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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마녀고양이 2010-09-03 12:07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ㅎㅎㅎㅎㅎㅎㅎㅎ, 이우혁 작가 책을 섬님이!
읽는 장면이 상상도 안 갑니다. 저런. 장르 소설도 마약의 한종류인데? 큭큭.

꿈꾸는섬 2010-09-03 15:17   좋아요 0 | URL
ㅎㅎㅎㅎㅎㅎ박장대소하실만합니다. 근데 확실히 장르소설이 재밌네요.ㅋㅋ

pjy 2010-09-03 20:43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이게 장르소설이 대부분은 장편이라 첨에 엄두가 안나도요~ 한번만 넘어가주면 안달납니다ㅋㅋㅋ

꿈꾸는섬 2010-09-03 21:00   좋아요 0 | URL
ㅎㅎ저 장편 잘 읽어요. 다만 장르소설은 많이 안 읽어봤지요.
재밌더라구요.^^

pjy 2010-09-04 15:29   좋아요 0 | URL
오호~~~ 장편도 잘 읽는 이쁜 섬님! 저야말로 편식쟁이라ㅎㅎ 섬님한테 배우는게 많습니다^^

꿈꾸는섬 2010-09-04 16:02   좋아요 0 | URL
제가 읽은 장편은
태백산맥, 아리랑, 한강, 장길산, 토지, 임꺽정, 봄날......
또 있을텐데 생각이 안나네요.^^

다이조부 2010-09-04 09:38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중고딩때 이우혁의 퇴마록이 폭발적인 인기를 누렸던게 기억나네요

이런류의 소설이랑 안 친한데 어찌어찌 하다보니까 퇴마록은 제법 봤네요 ㅋ

덕분에 옛날 기억이 ㅎㅎ

꿈꾸는섬 2010-09-04 16:03   좋아요 0 | URL
폭발적인 인기에도 불구하고 안 읽어봤어요.
근데 재밌을것 같아요.ㅎㅎ

같은하늘 2010-09-08 23:26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신간평가단은 정말 다양한 책을 보내는군요.^^

꿈꾸는섬 2010-09-10 12:24   좋아요 0 | URL
네, 정말 다양해요.^^
 
<당신 옆을 스쳐간 그 소녀의 이름은>을 읽고 리뷰를 남겨 주세요.
당신 옆을 스쳐간 그 소녀의 이름은 - 제15회 한겨레문학상 수상작
최진영 지음 / 한겨레출판 / 2010년 7월
평점 :
구판절판


     

내가 그의 이름을
불러 주기 전에는

그는 다만 하나의
몸짓에 지나지 않았다.

내가 그의 이름을
불러주었을 때

그는 나에게로 와서
꽃이 되었다

내가 그의 이름을
불러준 것처럼

나의 이 빛깔과
향기에 알맞는
누가 나의 이름을 불러다오

그에게로 가서 나도
그의 꽃이 되고 싶다

우리들은 모두
무엇이 되고 싶다

너는 나에게
나는 너에게...

잊혀지지 않는
하나의 눈빛이 되고 싶다

 

김춘수 시인의 <꽃>을 생각나게 하는 작품이었다. 이년, 저년, 언나, 간나, 꼬맹이, 유나, 어느 것 하나 소녀의 이름이라고 할 수 없었다. 소녀는 자신의 이름이 무엇인지 소녀의 진짜 부모가 누구인지 알지 못했다. 따뜻한 물 속을 헤엄쳐 다니던 그 시절에 본 엄마의 심장을 그리워할뿐이다. 작은 구멍을 찢고 세상 밖으로 나오면서 이미 이 세상을 끝을 경험했다는 소녀는 양수 안에서의 삶을 그리워한다. 그때 소녀는 평화라 불렸다.

구멍 밖의 세상엔 평화가 없었다. 늘 부서지고 던지고 때리고 맞고 욕하고 굶주리는 생만이 존재한다.

진짜 엄마를 찾기 위해 나선 길 위의 여정은 고단하다. 고단한 삶을 살고 있는 사람들만이 소녀를 알아본다. 황금다방의 장미언니, 다른 사람들에게 웃음을 팔며 돈을 벌어 광장공포증이 있는 많이 배운 남자친구를 위해 먹을 거리를 사서 그의 집으로 간다. 그의 온갖 야유와 비웃음을 견뎌내며 심지어 그의 폭력까지 감수하며 살아간다. 그녀의 그런 모습에 소녀는 실망하고 떠난다. 더 먼 곳으로 가서 진짜 엄마를 찾기 위해 기차를 탄다. 기차역에서 만난 태백식당 할머니, 할머니와 사는 동안 소녀는 할머니가 진짜 엄마일지도 모른다는 생각을 한다. 그 둘의 소소한 삶은 사회로부터 소외된 자들이 서로를 의지하며 외로움을 견디고 서로를 아껴가는 삶이다. 그런 삶도 오래 지속되지 못한다. 사업에 실패한 아들네 식구가 식당을 점령한다. 눈에 가시같은 존재인 소녀를 끝내 지켜주지 못하고 할머니는 떠나 보낸다. 경찰들에게 붙잡혀 가짜엄마, 아빠에게 돌아갈 것이 두려운 소녀는 도망친다. 배고픈 소녀는 슈퍼에서 초코파이를 훔친다. 그녀를 향한 따뜻한 손에 이끌려 교회에 간다. 교회에서의 생활이 나쁘지만은 않다. 하지만 교회에서는 늘 착한 아이처럼 굴어야할 것 같은 압박을 느낀다. 어느날 공짜밥을 먹으러 오는 남자를 따라 폐가에 머문다. 그의 폐가에서 라디오를 듣고 책을 읽으며 평온한 날을 보낸다. 하지만 그것도 잠시다. 축제장에서 본 각설이패를 따라 이곳저곳을 다니며 진짜 엄마를 찾아야겠다고 생각한다. 하지만 그들과의 생활도 오래 지속되지 못한다. 진짜 가족이 아니기 때문에 그들과의 생활도 쉽지가 않다. 그렇게 서울로 들어와 또래 친구들을 만난다. 또래 친구들의 아픔은 또한 그녀의 아픔만큼 상처가 크다. 아이들을 세상밖으로 내몰은 사람들은 도대체 누구란 말인가. 왜 그들에게 의미있는 삶을 살아가게 해주지 못했는가.

책을 읽는내내 젊은 신예 작가의 당돌하고 발칙함에 매료되었다. 술술 넘어가는 책장에 내 마음도 덩달아 태백과 부산 그리고 강릉, 서울을 넘나들었다. 하지만 그 어디도 마찬가지다. 아무도 소녀를 의미있는 사람으로 만들어주지 못한다. 소녀 스스로도 선택할 수 없다. 소녀에겐 처음부터 이름이 존재하지 않기 때문이다. 소녀를 무어라고 명명할 수 없으니 소녀의 삶은 어떤 의미도 부여될 수 없는 것이다.

제 15회 한겨레 문학상 수상작이라는 이름에 걸맞는 작품이다. 소녀의 내면의 이야기는 가슴 저미게 아프기도 했지만 순수한 소녀가 바라보는 세상은 고정화된 우리의 시선을 다른 곳을 향하게 만들어준다. 틈틈이 보여지는 아름다운 문장들도 결코 쉽게 쓰여지진 않았을 것 같다. 이 세상 어딘가에 소녀와 같은 소녀가 살아가고 있을 것이란 생각에 어른다운 어른으로 부모다운 부모로 살아가야겠단 생각을 한다.


길 잃은 볕이 우연히 들른 바닥에 발을 뻗고 있으면 온몸이 살살 녹아들 듯 간지럽고 나른했다. 창과 길 사이, 우리 머리 위엔 노란 민들레도 피었다. 나는 창밖으로 손을 뻗어 그 민들레를 살살 쓰다듬곤 했다.(262쪽)


어린 소녀가 마음 편히 발뻗고 누울 공간하나 만들어주지 못했던 소녀의 엄마, 그리고 아빠, 우리 주변 어딘가에 자신의 존재를 찾기 위해 고단한 여행을 하며 우리 곁을 스치게 될 어느 소녀를 위해 기도하고 싶은 날이다. 부디 의미있는 삶의 주인공이 되기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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마노아 2010-08-20 15:36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헉, 폰트가 왜 이리 되었나요!

꿈꾸는섬 2010-08-20 15:58   좋아요 0 | URL
그러게요.ㅜㅜ
어떻게 해야할지 잘 모르겠어요.

같은하늘 2010-08-20 17:49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헉~~ 대단해요. 여전히 문학 서평단을 하고계시는군요.
책을 보면 탐나지만 자신이 없어서 못하겠던데...

꿈꾸는섬 2010-08-20 20:28   좋아요 0 | URL
신간도서..특히 이렇게 좋을 책을 받을때는 정말 행복해요.^^
 
<파인데이즈>를 읽고 리뷰를 남겨 주세요.
파인 데이즈
혼다 다카요시 지음, 이기웅 옮김 / 예담 / 2010년 6월
평점 :
품절


...분명 존재했을......당신만의 어느 멋진 날은 어느새 수많은......어제가 되어버렸다

책 표지의 글이다. 나만의 어느 멋진 날이 수많은 어제가 되었다는 말이 가슴으로 들어왔다. 

현실의 어딘가에 남아 있을지도 모르는 과거의 어느날은 기억할 수도 있고 기억하지 못할 수도 있는 수많은 언젠가가 되었다. 

오늘을 살아가는 어느 날, 문득 과거의 어느 날이 떠오른다. 그날이 어느새 생생한 현재처럼 느껴지는 날에는 오랜 몸살을 앓는 듯 온몸이 저리고 아파올때도 있다. 물론 기쁨과 행복으로 가득했던 날들도 물론 있었다. 그런 기억들은 그저 행복한 기억이었겠지만 아픈 과거가 상처로 남지 않았다면 그것이 행복했었다는 것을 알지 못하고 지나갔을지도 모를 일이다. 

혼다 다카요시, 처음 접하는 작가이다. 일본의 베스트셀러 작가란다. 막상 읽어보니 고개를 끄덕일 수밖에 없다. 그의 글이 갖는 은근한 매력이 나를 사로잡았다. 로맨스와 미스테리의 오묘한 조화가 흡입력을 갖게 한다. 

죽음을 몰고 다니는 여학생, 심지어 살인자라는 누명을 쓰지만 실제로 살인을 했는지는 알 수 없다. 다만 사람들이 죽을때 여학생이 느꼈다는 오한은 무엇인지 영혼의 육체 이탈은 아니었을지를 생각하게 한다. (Fine days) 

암에 걸린 아버지가 결혼전에 사귀던 여인을 찾아달라고 부탁하고 아들은 그녀를 찾기 위해 그녀가 살았던 아파트로 간다. 현관문을 열고 그가 만난 젊은 아버지와 그녀, 아버지의 과거를 오롯이 이해할 수 있었을지는 의문이다. 현재와 과거를 넘나드는 작가의 기묘함이 매력적이었다. 이 소설은 영화화되어 젊은층의 열렬한 지지를 얻었단다. 나도 영화화된 작품을 보고 싶다.(yesterdays) 

여동생을 죽이고 자신이 살아남았다는 죄의식에 사로잡힌 그녀, 누나의 그림이 미래를 예견하는 불운을 만들어낸다는 사실을 알게된 그, 사람들과의 관계를 단절시키기 위해 노력한 그의 앞에 당당히 선 그녀는 과연 어떻게 될까?를 생각해본다. 누구에게나 있을법한 과거 속 그날의 암울함이 인상적이었다.(잠들기 위한 따사로운 장소) 

현재의 나를 들여다볼 수 있게 한 과거의 이야기, 나와 그녀의 사랑에 걸림돌이 된다고 생각한 그녀의 과거, 하지만 그것은 그녀에 의한 것이 아니라 나에게서 비롯된다는 노파의 이야기, 어둠은 어둠에서 생겨나는 것이 아니라 빛에 의해 존재하는 것이라는 이야기, 결국 모든 것의 원인은 나로부터 시작되는 것일테다.(shade) 

두 아이를 낳고 사는 나의 현재, 오늘의 모습은 과거 속 어디에서부터 시작되었던가를 생각한다. 어느 우연한 날의 남편과의 만남이 있었기에 가능했을 것이다. 가끔 그날을 생각하면 과거 속 어딘가에서 또 하나의 그림 속 퍼즐이 이미 준비되어 있었던게 아닌가를 생각한다. 

내가 소설을 읽는 것은 시시하고 시덥잖은 이야기라 폄하될지라도 그 속에 우리들의 삶이 녹아져 있기 때문이다. 전혀 다른 듯이 살고 있지만 그 속 어딘가에는 나의 모습이 존재하고 있다. 우리 나라 소설만이 아니라 먼 외국의 소설을 읽어도 마찬가지의 감정을 느낀다. 그런데 일본 소설은 어쩜 그리 우리와 비슷한 구석들이 많은지 모르겠다. 물론 문화적인 차이가 있겠지만 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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마녀고양이 2010-08-02 15:22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어느새 수많은 어제가 되어버렸다..... 참, 아련해지는 문구네요.
수많은 어제가 모여 현재를 살아나가고, 미래를 꿈꾸고.
그러나 말을 뱉는 이 순간 역시 과거화된다는 점을 생각하면... 잡을 수 없는 노을같아요.

꿈꾸는섬 2010-08-02 15:54   좋아요 0 | URL
그렇죠. 어느새 수많은 어제가 되어버렸다......오늘도 다 같은 오늘은 아닌게 되는거죠.^^

양철나무꾼 2010-08-02 21:20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저는 우리와 비슷하면서도 가장 큰 차이가 나는 게 일본장르소설 같아요~^^

꿈꾸는섬 2010-08-02 23:32   좋아요 0 | URL
ㅎㅎ저도 그래요. 차이가 있다고 생각하기때문에 더 많이 비슷한 구석을 발견하는 것 같아요.^^
 
<버니먼로의 죽음>을 읽고 리뷰를 남겨 주세요.
버니 먼로의 죽음
닉 케이브 지음, 임정재 옮김 / 시아출판사 / 2010년 7월
평점 :
품절


호주 출신의 뮤지션이자 영화배우, 시나리오 작가, 소설가로 활동하고 있는 닉 케이브의 두번째 소설 <버니 먼로의 죽음>을 읽다. 이 책의 주인공 버니 먼로를 통해 작가는 우리에게 무엇을 이야기 하고 싶었던 것일까? 

버니 먼로는 화장품 방문 판매원이다. 화장품을 판매하며 여성들의 심리를 꿰뚫어 보려고 노력한다. 아니 그와의 섹스가 가능한가를 가늠한다. 그는 일종의 섹스광이며 성도착증 환자이다. 하지만 그도 그의 정신상태를 잘 알지 못하는 듯 하다. 정상적인 가정을 꾸려 아이도 낳았지만 그는 아내만으로 만족하지 못하고 모든 여성을 자신의 성적 대상으로 생각한다. 남편의 부도덕한 모습에 지친 아내는 우울증에 시달리고 결국 침실 창문에 목을 매고 자살한다. 이 이야기는 아내의 죽음으로부터 시작된다고 할 수 있다. 

아내가 죽은 침실의 공포를 이기지 못하고 버니 먼로는 9살 아들과 함께 화장품 판매 길에 오른다. 그 둘의 기이한 여행이 시작된 것이다. 아이는 안질을 앓지만 버니 먼로는 알아채지 못한다. 아무리 얘기를 해도 귀 기울여 듣질 않는다. 그에게는 오직 성적 해소를 할 수 있는 여성만을 찾는 것만이 유일한 목적인양 두리번 거린다. 아이의 눈에도 아빠의 그런 모습은 기이하게 보인다. 하지만 아이는 그 어떤 것도 알지 못한다. 아이의 마음을 위로하고 함께 할 수 있는 유일한 친구는 엄마가 사준 백과사전뿐이다. 백과사전을 통해 궁금증을 해소하고 마음의 위로를 받는 것이다. 

버니 먼로는 마치 죽음을 향해 달려가는 사람처럼 무모한 행동을 한다. 여성들 누구나 자신에게 호감을 갖고 있다는 착각, 언제든 자신을 위해 다리를 벌려 줄 거라는 기대감, 그런 착각으로 호되게 당해도 그는 지칠줄 모른다. 오히려 더 악착같이 위안을 받으려고 안달을 한다. 그의 이런 기이한 행동의 기원은 그의 아버지로부터 시작되었다. 지금은 늙어 죽음을 기다리는 늙은이에 불과하지만 버니에게 세일즈를 가르친 것은 아버지였다. 그런 이유는 가슴이 너무 아팠다. 그의 아들 버니 주니어도 그를 따라 다니며 그의 삶을 배울테니까 말이다. 얼마 전 읽었던 <아메리칸 러스트>의 포도 유전적인 영향을 벗어버리지 못해 늘 싸움에 휘말려 결국 감옥으로 가지 않았던가 말이다. 

   
 

   "음, 너도 알다시피 무엇보다도 너는 그들이 필요하다고 여기는 것을 가지고 있어." 

  "그게 뭔데?" 

  "희망. 너도 알다시피......꿈이야. 너는 그들에게 꿈을 팔아야 하는 거야."(128~129쪽)

 
   

 그래도 가슴을 쓸어 내릴 수 있었던 것은 버니 주니어는 강하다는 엄마의 영혼의 얘기를 믿기 때문이다. 그 아이를 희망이라고 부를 수 있기 때문이다.

   
 

   "엄마, 살아 있는 것 맞아? 엄마가 살아 있는 것처럼 느껴져. 엄마의 심장이 고동치는 소리를 들을 수 있어." 

아이는 말을 하고 엄마를 꼬옥 안는다. 

  "아니야, 얘야, 엄마는 살아 있지 않아. 엄마는 죽었어." 

  "그게 엄마가 내게 하고 싶은 말이었어?" 

  "그래 그렇단다. 하지만 엄마는 다른 말도 해주고 싶단다. 정말 이 말을 해주고 싶었어. 어떤 일이 일어나더라도 네가 견디어냈으면 좋겠어. 무슨 말인지 알겠어?" 

아이는 엄마를 쳐다보며 말한다. 

  "그럼 알고말고. 엄마가 정말 말하려고 하는 것은 좋지 않은 일이 벌어지더라도 강하게 이겨내기를 바란다는 것이잖아." 

그녀는 아이를 안고 미소를 지으며 말한다. 

  "그래 알았지?"(257쪽)

 
   

 버니 먼로는 결국 끔찍한 사고로 죽음을 맞이 한다. 그가 쌓아 온 그의 삶에 걸맞는 죽음이라고 할 수 있다. 죽음 통해 그가 과거에 행했던 일들이 회상처럼 지나간다. 붉은 페인트칠을 한 뿔 달린 살인마와 다를바 없던 그의 삶은 그 어떤 여성들에게 용서가 되지 않을 것 같다. 그래도 그가 행복한 사람일 수 있던 것은 그의 아들은 그가 기이하고 이해할 수 없는 행동을 일삼아도 그가 아빠라는 이유 하나만으로도 사랑한다는 것일 것이다. 그래서 나는 버니 먼로의 죽음을 희망이라 부르고 싶다. 그의 죽음을 통해 그의 영혼은 더이상 죄를 짓지 않아도 되고 그의 아들은 나쁜 영향으로 벗어나 강하게 살아갈테니까 말이다. 

여성이고 또 두 아이를 키우는 엄마의 입장으로 읽다보니 버니라는 인물은 내게 쓰레기같은 존재이며 도저히 용서할 수 없는 캐릭터이다. 하지만 그의 삶은 그의 잘못만이 아니라는 것을 생각하며 우리가 키워내야할 아이들에게 우리는 또 어떤 영향을 끼치는 부모가 될까를 생각하게 된다. 

요즘 우리 사회에도 성폭력으로 상처받는 아이들과 여성들이 곳곳에 있다. 그들의 상처에 조금은 위로가 될 수 있을지는 모르겠지만 한번쯤 생각해볼만한 이야기를 담고 있는 소설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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루체오페르 2010-07-27 19:19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처음 본 책입니다.
리뷰를 읽다보니 자세한건 모르겠지만 주인공 버니가 아주 저질이면서 한편으론 불쌍하기도 하네요. 여성을 성의 대상으로만 본다던가 그걸 즐긴것보단 중독되어 끌려간것 같다는 느낌이 들었거든요. 요즘 성범죄가 워낙 심각해 여러 대책이 나오고, 어제 신상공개도 시작되고 했는데...화학적,물리적 거세같은 치료요법을 국가에서 강제로 뿐만 아니라 본인이 원하는 사람은 신청해서 받을수 있다면 괜찮지 않을까는 생각도 해봅니다. 어느 다큐에서도 자원하는 분도 있더군요. 자기도 너무 힘들고 못 이길까봐 무섭다고요.
버니도 그런 방법을 통해 욕망을 줄이고 조절했다면 욕망에 불타 사라지지 않고 아들과 함께 할수있었을텐데...

꿈꾸는섬 2010-07-27 20:20   좋아요 0 | URL
자신의 성적환상을 현실에서 극복하기 힘들었을 것 같아요. 소설이니 더 극적인 장치가 필요했겠구요. 오히려 아버지가 사라져준게 아들에겐 다행스러운 일이라고 봐요.^^

양철나무꾼 2010-07-27 20:31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저도 에파타님 서재에서 주워들은건데요,글쎄...
성충동을 여자는 하루에 한번정도 느끼는 반면에 남자는 52초마다 느낀다네요~
남자들이 성충동을 느끼는게 일반적이라고 하여,그게 다 저런 형태로 표출되지는 않잖아요.
그게 수행이 됐던지,교육이 힘이던지,교양이던지,화학적 물리적 거세던지 간에 잘 조잘했다가...불 타올라야 할때만 제대로 불타올랐으면 좋겠어요~^^

꿈꾸는섬 2010-07-28 16:15   좋아요 0 | URL
앗, 그런가요. 남자는 52초마다 한번...정말 심한데요. 여자들은 절대 이해 못할 남자들의 생리구조군요.

마녀고양이 2010-07-28 09:56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사람의 집착이란 무서운거라 느낍니다.
하나에 빠져들면 점점 집착하고 점점 강도가 세져야 하고
잘못되었다 느껴도 멈출 수도 없고......

사람의 뇌란게 그리 만만한게 아닌데,, 사람들은 자기 것인줄 알지요. ㅠㅠ

꿈꾸는섬 2010-07-28 16:16   좋아요 0 | URL
집착이라고 볼 수도 있겠어요. 양철나무꾼님 댓글에 놀랐어요. 남자들은 그렇군요. 근데 모두가 그런건 아닌거죠?