인간은 다른 종과는 달리 협동을 하며 문명을 발달시켜왔다. 혈연 중심의 소규모 밀집생활이 아닌 여러 요인들로 밀집해 협력하며 살아간다. 


인류사에 많은 바이러스가 확산되었을 것이다. 그러나 전파가 되지 않는다면 확산을 가져오지 못한다. 인류가 발달시킨 문영, 모여사는 도시라는 삶 그리고 전국, 전세계를 이동할 수 있는 교통의 발달은 바이러스의 확산과 전파의 좋은 수단을 제공했다. 

바이러스를 좋다, 나쁘다라고 하는 것은 단순히 인간의 시각일 뿐이다. . 바이러스 나름의 생존을 위해 숙주를 선택하고, 생태계의 일부인 인간 역시 숙주가 될 수 밖에 없다. 
악명 높은 바이러스라도 숙주가 모두 사망해버리면 그 바이러스 역시 멸종한다. 바이러스와 숙주는 시간이 지나며 서로 타협한다. 무증상으로 숙주안에 숨어 살거나 가벼운 통증만 남기는 방식으로. 그리고 치사율이 높은 바이러스는 시간이 지나면 잠잠해진다. 이렇게 인간은 바이러스와 공진화했다.  

그러나 인간이 만들어낸 문화는 이런 질서에 왜곡을 가져온다. 애써 바이러스를 전파하는 환경을 만들어내는 것이다.  인간은 바이러스를 알기도 전에 검역과 격리라는 효과적인 바이러스 전파를 차단할 수 있는 방안을 찾아냈다. 그러나 인간은 역시 그런 검역과 격리를 무력화시키는 행동들을 한다. (정부에 비협조적인 지자체와 혼란을 주는 종교단체)

신앙을 가진 모 교수는 신앙에 대해 이런 sns를 올렸다. 예배를 보지 못하도록 총칼로 막을 때 예배를 지키는 것이 신앙이라면, 모여서 예배를 보는 것이 타인을 향한 총칼이 될 때는 모여서 예배를 보지 않는 것이 신앙이라고. 
현재 문제 확산의 주된 요인의 신천지라는 점은 분명해 보지이만, 하나님, 예수그리스도를 믿는 것인지 ‘돈’,’성공’을 믿는 것인지 잘 모르겠는 개신교 역시 코로나19 확산에 기여할 수 있다는 점을 좀 생각해야 할 것이다. 

책 <판데믹>은 많은 시사점을 준다. 생태계내 다양성이 사라지면서 특정 바이러스들이 확산했을 수도 있다는 것이다. 바이러스가 모든 종에게 전파되지 않는다. 특히 특정 종내에 다양성이 있다면, 예를 들어 조류 다양성으로 어떤 지역에 다양한 새들이 있다면 바이러스의 확산은 한정적일 것이다. 그러나 다양성이 훼손되어 단 몇 종류의 새들이 있고, 하필 그 새들이 인수공통 바이러스의 중간숙주 역할을 한다면 인간에게 전파 확산되는 것을 시간 문제일 것이다. 

바이러스 문제는 단순하지 않다. 바이러스 역시 지구를 이루고 있다. 어떤 바이러스를 박멸했다면 다른 바이러스가 그 빈 자리를 차지한다. 인간이 할 수 있는 것은 치사율이 높은 바이러스에 대한 차단 및 백신 등의 방안을 마련하고, 바이러스 변이로 인간의 생명을 위협하는 새로운 인수공통 바이러스 출현을 최소화하는 정도가 아닐까. (생태계 과도한 개입을 하지 않고, 식문화 혹은 관상문화의 변화)

* 인간의 밀집과 협동전략에 대해 책의 일부분을 옮겨 본다. 옮기는 장면 모두 묘하게 해외 언론이 이야기가 떠오른다. ‘신천지와 반정부세력’이 정부의 바이러스 대책을 막고 있다는...

인구 밀집의 가장 변혁적인 효과는 밀집을 통해 병원체가 더욱 치명적이 되는 방법에있다. 이것은 분명 진화의 과정에서 얻은 특이한 강점과 관련되어 있는데, 병원체는 이것을 십분 활용해 밀집된 대중을 감염시킨다. 대부분의 상황에서 병독성*은 병원체의 전파 능력에 있어서 결정적이다. 독감 바이러스처럼 사람들의 호흡을 통해, 또는 콜레라나 에볼라처럼 접촉을 통해 전파되는병원체를 생각해 보자. 전파의 성공은 감염자와 비감염자간의 사회적 접촉에 의존한다. 비감염자가 감염자가 내쉬는 숨을 들이쉬거나 체액과 접촉해야 전파되는 것이다. 그렇지 않으면 병원체는 한발짝도 움직일 수 없고,따라서 전파되지 않는다. 

이처럼 사회적 접촉에 의존하는특성 때문에 병원체에게 병독성은 문제가 된다. 병독성이 지나치게 강하면 감영자가곧 사망할 수 있다. 감염자가 직장에서 사람들과 악수를 하거나 열차에서 다른 승객들에게 숨결을 내뿜는 대신 혼자 침대 신세를 지거나 병원에 격리될 것이다. 감염자가 죽으면 시신에 도사리고 있는 병원체가 다른 사람에게 전파되기 전에 시신이 화장되거나 매장될 것이다. 이것은 결정적인 약점이다. 그래서 병독성은 진화적 차원에서 제동이 걸린다.

그러나 인간들의 특정 행동은 병독성에 대한 이런 제동장치를 풀고 가장 치명적인 바이러스조차 번성할수 있도록 만든다. 한가지 예는 유가족이 망자의 시신을 만지는 장례의식이다. 예를들어, 우간다 아출리족의 전통적 장례 의식에서는 친척들이 시신을 씻 기고조문객들이 시신의 얼굴을 만진다. 2014년에 서아프리카에서 발생한 에볼라 유행에서 중요한 역할을 했을 것으로 보이는 이와 비슷한 의식들은 병원체를 병독성의 약점으로부터 자유롭게 해 주었다. 감염자가 죽어도 사회적 접촉은 계속되기 때문에, 에볼라처럼 희생자를 즉시 죽게 만드는 병원체도 새로운 회생자에게 전파될 수있는 것이다. 153-154쪽

종간경계를 넘어 전파되어 질병을 일으킬 수있는 병원체는 분명 위험한 존재이지만, 그것은 사실 대유행병으로 향하는 여러 단계의 여정에서 겨우 절반에 이르렀을 뿐이다. 
여정의 나머지 절반의 운명은 사회가 어떻게 대응하느냐에 의해 결정 된다. 때로 병원체는 마치 해일처럼 사회가 어떻게 대처해야 할지 미처 헤아릴 겨를도 없이 너무 빠르거나 가혹하거나 은밀하게 덮쳐 오기도 한다. 그러나 많은 경우, 예를 들어 감염자를 격리하고 질병의 확산을 서로에게 경고하는 등의 지극히 기초적인 집단적 방어 대책이 죽음과 파괴의 파도를 막는 방파제 역할을 할 수있다.
그것이 병원체와 인간사이의 싸움을 대등하게 만든다. 생물학적으로 말해서, 인간의 협동은 굉장한 것이다. 대부분의 포유류는 혈연으로 연결된 경우에만 서로 협동한다. 그러나 우리는 그렇지 않다. 우리는 지구상의 다른 어느 종보다 더 빈번하고 더 강하게 더 대규모로 협동한다. 

..

협동 전략은 새로운 병원체로부터 우리를 지키는 데 있어서 특히 증요하다. 그런 전략이 효과를 거두기 위해 꼭 첨단적 방법이나 병원체 자체에 대한 정교한 이해가 필요한 것은 아니다. 병원체가 어떻게 전파될 수 있는지에 대한 가장 기초적인 수준의 지식만을 가진 사회라도 서로 협동하는 능력을 이용함으로써 효과적인 통 제 전략을 실행할 수 있다. 우간다의 아초리족은 아프리카에서 의료 인류학자들이 감염병에 대한 전통적인 믿음을 연구한 몇 안 되는 인종 집단 중 하나다. 많은 아초리족 사람들은 마법과 영혼을 통해 질병이 전파된다고 믿는다. 그럼에도 전염병에 대한 이들의 전통적인 대응은 병원체의 확산을 제한한다. 최초의 감염 징후가 보이면, 그들은 서로협력하여 병자를 격리시키고, 부들로 만든 장 대로 병자의 집을표시하고, 의부인들에게 전염병이 도는 마을에 들어오지 못하도록 경고하고, 사교 모임이나 성관계, 특정 음식물을 먹는 것, 전통적인 매장 관습을 포함하여 질병을 전염시킬 수 있는 다수의 행동들을 삼갔다,

규모가 더 크고 공식적인 체계가 갖춰진 사회는검역 및 격리 그리고 신속한 장거리 통신으로 가능해진 협동적 행동을 바탕으로 훨씬 더 효을적인 통제 전략을 실행할 수 있다. 이런 사회들은 그렇게 할 태세가 갖춰져 있다. 따지고 보면 현대 사회의 많은 제 도들은 우리에게 세금을 내거나 독감 예방주사를 맞는 등의 비교적 세속적인 집단행동을 추구하도록 권장하고 비협조자들에게는 벌을 줌으로써 우리의 타고난 협동 능력을 강화하도록 고안되 었다. 
그러므로 대유행병이 나타난다면, 이는 특별히 공격적인 병원체가 수동적이고 위험을 감지하지 못하는 희생자를 이용했거니 우리가 부지불식간에 엄청난 전염 기회를 제공했기 때문만은 아니다. 그것은 또한 우리 내부에 깊숙이 뿌리내린 미묘한 협동 능력이 작동하는데 실패했기 때문이기도 하다. 175-177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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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20-02-29 21:50   URL
비밀 댓글입니다.

2020-03-01 12:46   URL
비밀 댓글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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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적폐 문제가 함참일 때 읽은 책인데, 다시금 떠올랐다. 


 당시 창비에서는 권력비판 3부작으로 <권력과 검찰> <권력과 언론> <권력과 교회>를 펴냈다. 


 우리나라 검찰의 역사는 초라했다. 해방 후 빨갱이라는 명목으로 그 자리에서 한 검사를 총으로 쏴죽였을 정도로 힘이 없는 존재였다. 그리고 등장한 군사정권에서는 군사정권의 시녀 노릇만 했을 뿐이다. 


 그런 검찰이 무소불위의 힘을 얻게 것은 국민에 의해 선출된 사람들이 정권을 잡기 시작하면서이다. 이제는 그들의 권력을 분산시켜야 할 때가 왔다. 검찰개혁이 필요한 시점이다. 


아이러니하게도 검찰이 이처럼 막강한 권한을 갖게 된 것은 군사독재를 벗어난 민주화 덕분이다. 법과 절차를 의식하지 않았던 날것의 물리력이 후퇴하고 민주화의 진행으로 법적 절차를 중시하게 되자 법적 권한을 앞세운 검찰의 힘이 안기부와 보안사를 능가하기 시작했던 것이다. 시민들의 치열한 항쟁과 희생으로 일구어낸 민주화 분위기 속에서 이루어진 5공 청산 국면에서 검찰은 마침내 전직 대통령을 구속하기에 이르렀고, 정치인과 고위 공직자와 재벌의 부패를 감시하고 척결한다는 명분을 내세워 무소불 위의 권력기관으로 성장한 것이다. 


이러한 검찰은 이명박-박근혜 정권을 거치면서는 군사독재 정권의 주문을 처리하던 과거의 수준을 넘어 권력의 입맛에 맞게 정국의 향방을 결정하는 준정치집단의 역할까지 맡아 수행했다. 이명박정권 이후 정치의 긍정적 기능이 퇴화하거나 실종되어 사회적 갈등이 정치적 해결보다는 사법적 판단에 넘겨지는 일이 잦다 보니, 검찰이 이제 각종 사회 이슈에 관한 판정자를 자임하는 상황이다. 견제 받지 않는 권력은 절대 부패한다. 검찰 권한의 오남용이 거듭될수록 사회정의는 후퇴했으며, 법의 권위는 추락했다. 대한민국의 법치주의란 불의한 정권이 자행한국가폭력의 정당화를 위해 쓰이는 수사로 전락하고 말았다. 


그 결정판은 박근혜, 최순실, 김기춘, 우병우 등의 등장과 몰락이었다. 정권과 유착한 검찰은 청와대와 비선 실세의 비리를 눈감아 주었고, 결국 대통령 탄핵이라는 미증유의 사태를 불러왔다. 책임을 회피하며 알량한 법지식에 기대어 시민을 조롱하고 법치주의를 농락하는 전직 검사들의 모습을 보며 시민들은 ‘법꾸라지‘라 는 신조어를 만들어 냈다. 현재의 검찰은 과거 홍만표 진경준 등이 보여준 부패의 모습과는 다른 적폐와 거악의 종합관인 것처럼 보인다. 정치검사, 떡값검사라는 말로는 그 실상을 도무지 온전하게 표현하고 담아낼 수 없을 정도다. (218-219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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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국 관련해서 많은 생각이 든다. 사람들은 믿었던 사람에 대한 배신을 이야기하고, 언행불일치를 이야기한다. 그런데 잠시 숨을 고르고 생각해보자. 


어느 청문회에서 이 처럼 검찰이 발빠르게 움직인 적이 있었는가. 주민등록법 위반, 탈세 등 명백한 혐의에도 움직이지 않았던 검찰이 말이다. 


아무리 큰 사건이라고 할지라도 특수부 중 한 부서가 투입되는데, 특수1,2,3,4부가 투입되서 고작 찾아낸 것이 자원봉사 관련 증서이고, 갖다 붙인 혐의는  사문서 위조라니




몸통은 검찰권이다. 임용된 지 몇 달 안 된 실무 수습 검사가 어떻게 검사실에서 피의자에게 성행위를 요구할 수 있는가. 특수부부장을 지낸 검사 가 어떻게 차명 계좌까지 만들어 놓고 기업과 다단계 사기범 측근의 돈을 받은 것인가. 그런 일들 을 가능하게 한건 검사들 손에 쥐어진 힘이었다 . 검찰이 마음 먹기에 따라 수사 대상과 범위가 달라지고 기소 여부가 결정되며 적용할 법조문이 가려지는 현실, 권한을 앞세워 권력과 돈, 향응 을 추구하고 싶은 일부 검사들의 욕망을 수준이하의 동료들이 폭로 한 것이다(227쪽) 

* 2012년 김광준 검사 뇌물수수사건, 서울동부지검 성행위 요구 사건


더 분명한 건 검찰정치가 사회 전반에 끼칠 해악 이다 . 검찰을 앞세워야 하는 정치는 정상적인 정치가 마비되고 있음을 드러내는 증거다 . 민주정치에서 묻고 답하기 (Q&A) 는 정부 - 여당 - 야당 - 시민 사회의 대등한 관계 속에 이뤄져야 한다. 일단 검찰 정치가 시작되면 Q&A 는 ‘신문-진술’의 일방향이 되고 만다 . 조사실의 특수 유리 뒤에서 지켜 보는 자를 위한(206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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물론 나는 저자가 이야기하는 '세상은 예전보다는 좋아지고 있다'는 데 적극 동의한다. 불과 100년 전만 하더라도 생존자체가 버거웠던 인류가 지금은 평균 연령 70세라는 점은 경이로운 일이다. 


현대인들이 겪는 질병도 못 먹어서 생긴 옛날과는 달리 지금은 너무 많이 먹어서 문제다. 


그리고 이 책은 많은 분들이 추천하는 책이다. 그런데!!! 난 도무지 이 책을 왜 추천하는지 이해할 수 없다. 처음 이 책을 읽었을 때 저자가 구분하는 4단계에 도무지 공감할 수 없어 100여 페이지 정도 읽다가 그만 두었다. 


최근 <가짜뉴스, 팩트>를 주제로 독서를 하면서 이 책을 다시 들었는데, 여전히 의문투성이다. 


책 66쪽에 있는 그래프를 좀 다시 그려봤다. 정확히는 아니고, 그냥 직관적으로 이해하기 쉽게 그려본 것이다. 팩트풀니스라고 되어 있는게 책에 있는 그래프이고, 조정이라고 되어 있는 것이 간격을 재 조정한 것인데 느낌이 사뭇 다르다. 





첫 번째 그래프는 브라질 총소득에서 상위 10%가 차지하는 비율이다. 첫번째 그래프로 보면 엄청난 개선이 있던 것 처럼 보인다. 두번째 그래프는 소득 단계별 인구분포다. 저자는 소득단계를 하루 2달러 미만, 2~8달러, 8~32달러, 32달러 이상 4단계로 구분하는데 그렇게 구분하다 보니 중산층이 가장 많이 차지는 것 처럼 보인다. 그런데 소득단계가 아닌 소득으로 그래프를 다시 그려보면 왼쪽에 굉장히 편중된 그래프가 보인다. 뭔가 이상하지 않은가.


물론 여기에도 생각할 것이 많다. 브라질이 90년에서 2010년간 어떤 일이 있었는지를 비교할 필요도 있고,(일단 좌파가 정권을 잡았다는 것을 감안해야 할텐데) 고려할 사항이 너무 많다. 그러나 저자는 너무 쉽게 '세상은 이렇게 좋아지고 있어' 그런데 너희들은 기본적으로 부정본능이 있어서 부정쪽을 확대해서 보는 경향이 있다보니 세상을 제대로 보지 못하는 거야 라고 말하는 듯 하다. 


게다가 경제성장을 이야기하는 부분에서 좀 이상한 부분이 있는데, 한국이 경제성장을 한 것은 독재시절이었다는 점을 강조하거나, 2000년대 이후 경제성장을 한 나라중에 민주주의 국가는 없다는 발언도 한다. (물론 저자는 민주주의의 필요를 인정한다.) 


* 앞에서도 생각할 부분이 있다고 했던 것 처럼 한국의 경제성장도 짚고 넘어가야 하는데, 한국의 경제성장은 독재냐 민주주의냐 보다는 세계경제와 금융의 흐름을 봐야 하는데, 1970년대부터 90년대까지 고속성장한 나라는 딱 네나라이다. 일본, 한국, 대만, 이스라엘. 뭔가 감이 오지 않나~(냉전과 중동분쟁)


저자는 하루 2달러 이상만 벌어도 중간소득이라고 이야기한다. 곰곰생각하는발 님이 서재에서 지적했듯이(https://blog.aladin.co.kr/myperu/10973702) 하루 70달러에 달하는 최저임금 가지고 사투를 벌이는 한국의 노동자들은 이미 고소득인 32달러가 넘는데도 배부른 투쟁을 하고는 있는 건지 모르겠다. 

  

** 처음에 백여페이지 읽다가 말고는 페이스북에 소득 4단계에 도무지 공감할 수 없다는 글을 남겼다. 어느 페친께서 서구적인 시선이 너무 반영된 것 같다고 글을 달아 주셨다. 서구인이 아닌 비서구인을 보면서 그 정도면 그래도 괜찮게 사네라고 보는 것 같다는 생각이 들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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겨울호랑이 2019-09-01 08:20   좋아요 1 | 댓글달기 | URL
많은 분들이 알고 계시듯 저 역시 빈곤의 문제는 절대적 문제가 아닌 상대적 문제라 생각합니다. 모두가 피난민인 시절에는 단돈 2달러에도 큰 문제가 없지만, 부자 이야기를 언론을 통해 접하다보면 부의 불평등에 대한 인식이 높아지는 것은 당연해 보입니다...

雨香 2019-09-01 08:50   좋아요 1 | URL
네 공감합니다. 그런데 저는 이 책이 이야기하는 소득 분류도 도무지 이해가 되지 않습니다. 하루 2달러만 넘으면 중간소득이라는게~ 저자가 이야기하는 2단계 소득 중에 ‘더 이상 바닥에서 자지 않아도 된다‘ 뭐 이런 수준이라 동의하기 힘듭니다.

곰곰생각하는발 2019-09-01 11:22   좋아요 1 | 댓글달기 | URL
저도 이 책 정말 꾸역꾸역 읽었씁니다. 이건 정말 자본가 입장에서 쓴 책이에요. 야, 이 노동자 그지새끼들아 ! 너희들 돈 없다고 징징대지 마. 너흰 중산층이라니까 ~ 이런 메시지인데...... 왜 이 책을 현대 사장이 극찬하며 신입 사원 전원에게 이 책을 선물했는지 이해가 갑니다.. 스티븐 제이 굴드가 살아 있었다면 진짜 화끈한 이 책에 대한 반론 글을 썼을 겁니다... 아무리 생각해도 이 책의 주장에는 동의할 수가 없음..

雨香 2019-09-02 09:15   좋아요 0 | URL
네~ 뒤쪽에 보면 민주주의와 경제성장에 대해 논란이 될 만한 이야기를 하는 부분이 있습니다. 저자의 생각은 어떨지 모르지만, 이런 내용을 좋아할 사람, 세력은 분명하기 때문에 조심스럽게 접근해야 할 부분이 아닌가 싶습니다.

2020-01-20 22:22   URL
비밀 댓글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