어제(2월5일)은 이재용의 2심 선고가 있던 날이다. 

 예상과 같이 그는 집행유예로 풀러났다. 

 

 경영권 승계를 위해 삼성답지 않게 무리했던 그를 사법부는 피해자로 판단했다. 그를 피해자로 만들기 위한 법원의 판단은 눈물겹다. 


 삼성의 구조조정본부나 미래전략실의 가장 큰 목표는 경영권 승계다. 이미 그를 위해 그들은 법의 틈을 악용하면서 때로는 입법과정에 힘을 쏟아 자신들의 입맛에 맞게 바꿔왔다. 


 박근혜 정부때는 급하게 처리했고, 삼성답지 않게 위법한 행동을 많이 했다. 

 그럼에도, 눈물겹게도, 마치 법원이 무죄를 찾아내기 위해 공들였다. 


 적폐의 한 축인 삼성은 빠져나왔다. 적폐청산은 지난한 싸움이 될 듯하다.  


이제 삼성에버랜드를 배경 삼아 다른 계열사의 주식을 사들이며 그룹 전체를 할 일만 남았다. 이재용은 순환 출자 고리를 이용해 삼성생명의 주식을 사들였다. 이 과정에서 삼성생명의 전·현직 고위 임원들이 자신들 명의의 주식을 모두 모아 헐값으로 삼성에 버랜드에 넘기는 일이 벌어졌다. 그들의 눈물겨운 충성심 덕분에 삼성에버랜드는 삼성생명의 지분 20%를 확보했다" 삼성에버랜드를 장악한 이재용은 삼성에버랜드를 통해 손쉽게 삼성생명의 지분을 확보하며 명실상부한 삼성의 지배자가 되었다.

 이 모든 일의 핵심에 구조조정본부가 있었다 구조조정본부는 정상적인 기업 활동에서 벗어나 기업의 이익을 훼손하면서까지 삼성그룹 총수 일가의 바람에 따라 업무를 조정하고 경영권 세습을 위해 충성을 다하는 사조직이자 행동 조직이었다. 삼성 총수 일가의 소유 지배 구조의 안정적 운영과 성공적인 경영권 세습이 구조조정본부의 지상 과제였던 것이다. (150-151쪽)



삼성이 입법 로비에서 가장 공을 들인 것은 금산분리와 순환출자였다. 이는 삼성 총수 일가의 소유 지배구조에 직접적인 영향을 미치기 때문이었다. 박근혜 정부에 들어서 순환출자에 대한 논의가 다시 불거졌을 때에도 삼성의 로비는 집요하게 이어졌다. 결국 신규 순환출자만 금지하는 법안이 국회를 통과하면서 삼성을 비껴 갔다. 기업 경영 성과 평가 사이트인 ℃BO스코어는 덕분에 삼성 그룹이 20조 원의 비용 부담을 덜어 가장 큰 혜택을 보았다고 분석했다. 

이렇게 국회에서는 삼성의 성장을 돕는 법, 나아가 삼성 총수일가를 위한 법이 만들어지고 있다. 삼성의 입김이 국민의 목소리보 다 더 크게 입법 과정에 영향을 미침으로써 대의제 민주주의를 왜곡시킬 뿐만 아니라 삼성권력을 단단하게 만들고 있는 것이다. (163-164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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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8-02-06 09:57   URL
비밀 댓글입니다.

2018-02-06 12:20   URL
비밀 댓글입니다.
 

  바빠서 제대로 찾아 보지는 못했지만, 조국 민정수석의 검찰과 경찰의 수사권 조정이야기를 들으면서 얼추 넘겨 짚을 수 있었다. 지난 늦여름 혹은 초가을에 읽었던 <권력과 검찰>이라는 책 때문이었다. 


지난 늦여름 초가을에 <적폐>라는 주제로 <삼성독재> <권력과 검찰> <권력과 언론> <국세청은 정의로운가>를 읽었다. 적폐라는 태그로 페이퍼를 올리고 있는데, <삼성독재> 하나만 올렸을 뿐이다. 플란다스의 계도 있고 하니 국세청 이야기도 시간 내서 올려야 겠다. 


 책 내용 중에 몇 가지가 기억났다. 경찰과 중앙정보부의 시녀에 불과했던 검찰이 권력의 핵심으로 등장하게 된 부분과 검경 수사권 조정이 일어나면 언론은 어떤 반응을 보일지에 대한 부분이다. 


 몇 해전 우리나라에서 세계 검찰 행사가 있었는데, 다른 나라에서 한국의 검찰을 부러워했다고 한다. 수사권과 기소권을 독점하고 있는 검찰은 보기 힘들기 때문이다. 검찰이 처음부터 이런 무소불위의 권력을 갖게 된 것은 아니다. 


권력이라는 건 본래 군·경찰·검찰 등의 권력기관을 통해 행사하죠. 식민지였다가 독립한 나라의 경우 대부분 군이 장악을 하는데, 우리나라는 워낙 뭐가 없었잖아요. 정규군 자체가 아예 없었던 상태에서 독립했으니까요. 

...

게다가 이승만정부는 너무나 허약한 정당성과 권위를 지닌 정부였기 때문에 민심 통제를 위한 권력 행사를 경찰에 맡겼는데, 경찰은 이미 일제 36년을 거치면서 1만명 넘는 인력을 보유하고 있었어요. 굉장히 숙달되고 훈련된 조직이었죠. 어느 집에 숟가락 이 몇개 있는 것까지 다 알고, 누가 독립운동을 했는지도 다 알고요. 독립운동이라는 건 그 당시에 사회주의운동과 등치되는 개념이었기 때문에, 충격과 공포로 통치할 수 있다는 것을 체득한 경찰에 모든 걸 맡겨버린거죠. 

...

일개 시경의 수사과장이 검찰총장을 암살하려고 했을 정도로 당시 경찰의 위세와 권위가 컸던 거죠. 경찰의 유세에 짓눌려서, 거기에 저항해봤자 몸보신 하기가 힘드니 주어진 권한이 많음에도 불구하고 검찰이 경찰의 가랑이 밑으로들어갔어요. 경찰이 저지른 일을 법적으로 뒤처리하는 역할  정당화하는 역할이 이승만 시대의 가장 초라했던 검찰의 모습이 아닌가 합니다. (21-22쪽)


5·16 후에 정권은 검찰의 권한을 강화해주면서 검찰을 정권의 하수인으로 활용하기 시작했습니다. 자유당 시절에는 정권 유지의 핵심기관이 경찰이었죠. 5.16 및 유신 후에는 중앙정보부 였고, 5공화국 때의 보안사, 6공화국 때의 안기부를 거쳐 문민정 부 이후 검찰이 핵심으로등극했지요. 


기본적으로 검찰 권한이 너무 강하기 때문에 정권이 검찰을 이용하려고 했던 거죠. 막강한 권한을 분산시키면 정권 입장에서는 검찰을 이용해 실질적으로 할 수 있는 일이 축소되니까 이점이 없어지게 되죠. 독재정권이 검찰을 정권유지 수단으 로 활용하기 위 해 권한을 점점 더 많이 부여하고 대신 인사권은 대통령이 쥐고 있었던 겁니다. (171-172쪽)


그러나 검경 수사권 조정의 이야기가 나오면 언론은 그리 긍정적이지 않다. 언론과 검찰의 관계 때문이다. 


검찰에 대해 '권한이 비대하다. 그러면 필연적으로 부패한다'라고 말하면 다들 동의해요. 그런데 그 해결 방안으로 수사권 을 경찰에게 주어야 한다는 걸 제시하면 일단 언론에서 반대해요. 왜냐하면 법에 관계된 기자들이 대개 법조 출입기자라서 검찰과 친하거든요. 경찰과는 안 친해요. 경찰 출입 기자들은 사회부 기자라서 초년생들이고요. 새누리당 출입하는 기자들은 새누리당과 친해요 민주당 출입하는 기자들은 야당 성향이 생겨요. 그런 식으로 검찰측과 친한 사람들이 발언권이 센데, 그 말이 맞다면 우리는 검찰공화국에서 살아갈 수밖에 없어요. “수사권을 경찰한 테 준다고 하는데 우리 경찰이 제대로 할 수 있겠느냐"라고 하는 분들에게 저는 거꾸로 묻고 싶어요. 영국·미국·독일·프랑스·일본 등 모든 선진국에서 수사는 경찰이 하는데 대체 왜 대한민국 경찰은 안 된다는 거냐고요. (91쪽)


노무현 전 대통령시절 검사와의 대화가 있었다. 김대중 전 대통령도 그렇고, 노무현 전 대통령도 그렇고 두 분다 권력을 독점하지 않으려 했다. 그 사이 검찰은 법이라는 도구위에 자신의 권력을 덮었다. 이제 검찰에게서 수사권을 독립시켜도 될 때가 왔다. 검찰 스스로가 자초한 일이다. 


아이러니하게도 검찰이 이처럼 막강한 권한을 갖게 된 것은 군사독재를 벗어난 민주화 덕분이다. 법과 절차를 의식하지 않았던 날것의 물리력이 후퇴하고 민주화의 진행으로 법적 절차를 중시하게 되자 법적 권한을 앞세운 검찰의 힘이 안기부와 보안사를 능가하기 시작했던 것이다. 시민들의 치열한 항쟁과 희생으로 일구어낸 민주화 분위기 속에서 이루어진 5공 청산 국면에서 검찰은 마침내 전직 대통령을 구속하기에 이르렀고, 정치인과 고위 공직자와 재벌의 부패를 감시하고 척결한다는 명분을 내세워 무소불 위의 권력기관으로 성장한 것이다. 


이러한 검찰은 이명박-박근혜 정권을 거치면서는 군사독재 정권의 주문을 처리하던 과거의 수준을 넘어 권력의 입맛에 맞게 정국의 향방을 결정하는 준정치집단의 역할까지 맡아 수행했다. 이명박정권 이후 정치의 긍정적 기능이 퇴화하거나 실종되어 사회적 갈등이 정치적 해결보다는 사법적 판단에 넘겨지는 일이 잦다 보니, 검찰이 이제 각종 사회 이슈에 관한 판정자를 자임하는 상황이다. 견제 받지 않는 권력은 절대 부패한다. 검찰 권한의 오남용이 거듭될수록 사회정의는 후퇴했으며, 법의 권위는 추락했다. 대한민국의 법치주의란 불의한 정권이 자행한국가폭력의 정당화를 위해 쓰이는 수사로 전락하고 말았다. (218-219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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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이재용 1심 선고를 보면서, 회사에서 사람들끼리 이런 이야기를 했다. 

 '5년을 때렸으니, 항소 할 거고, 항소하면 2년이나 3년, 그리고 대법원 가면 2년에 집행유예 2년 되고 풀려나겠죠'

 

 주진형은 <경제, 알아야 바꾼다>에서 재벌에 대한 판결을 아래와 같이 이야기한다.  


재벌 총수가 횡령이나 배임으로 기소되면 1심에서 5년을 선고합니다. 그러면 2심에서는 이런저런 이유를 만들어서 3년으로 줄여줘요. 정상 참작으로 형을 줄일 수 있는 한도는 50%거든요. 그다음에는 그동안의 경제발전에 공헌 운운하면서 집행유예를 선고합니다. 우리 형법에는 3년 이하의 형을 받으면 집행유예가 가능하도록 되어 있거든요. 기가 막히지 않습니까? 이게 말하자면 짜고 치는 고스톱이죠.


 처음에는 5년을 때려서 국민들이 카타르시스를 느끼게 하고 2심에서는 집행유예, 대법원에서는 집행유예 확정

(51쪽)


어찌되었건 담당판사는 넥슨 사건도 그렇고, 정황상 여러 의심을 갖게 한다. 정유라가 법정에 깜짝 등장하지 않았으면 무죄를 때리지 않았을까 하는 의문이 든다. 


 휴가를 포함해서 잠시 여기저기 다닐 일이 많아지면서, 갑자기 독서주제가 많아졌다. '적폐'가 하나의 주제이고, '우주과학'이 또 있다. 여기에 몇 개의 책을 더 읽으면서 후기를 적어야 할 책들이 계속 줄 서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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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90년대만 하더라도 삼성에 비판적인 학자, 언론이 많았다. 오히려 보수경제학자들이 삼성을 많이 비판했다. 중공업 등 한국산업에서의 최초라는 문을 게속 열어간 현대, 한국이라는 나라를 모르는 동유럽, 남미, 아프리카 시장을 뚫어낸 대우와 달리 삼성은 쉽게 돈 벌 수 있는 산업만 한다는 지적이다. 


 그리고 다른 하나는 삼성의 규모에 비해 한국경제에 미치는 영향이 적다는 것이다.이 지적은 90년대나 2010년대나 변한 것이 없는데, 이제는 아무도 지적하지 않는다. 삼성이 대한민국 수출의 몇 %를 차지하고, 세금의 얼마를 담당하는지만 이야기한다. 그러나 삼성 산업의 특성상 국내산업 영향이이 적다. 한예를 들어보자면 삼성이 만드는 스마트폰의 국산화율은 30%가 되지 않는다. 게다가 핵심기술, 부품은 전부 수입한다. 산업유발효과가 현기차 등에 비해 턱없이 낮음에도 불구하고 요즘은 아무도 삼성을 비판하지 않는다.  


삼성만을 줄기차게 파온 저자는 삼성의 성장과정을 한 권의 책에 담아냈다.책에 따르면 삼성의 시작은 미약했다. 일제시대 허가받은 이만 할 수 있었던 양조업으로 돈을 벌었고, 일제 착취의 수단이었던 조선척식은행과의 친분으로 조선척식은행을 사금고처럼 사용하며 땅장사로 돈을 벌었다. 


삼성상회의 자본금은 3만원이었다. .... 결코 적은금액이 아니었다. 하지만 일제강점기 동안 가장 성공을 거둔 금융자본가 민규식, 경성방직의 김연수, 화신백화점의 박흥식과 비교하면 이병철의 삼성상회는 자본금 규모에서 비교가 되지 않았다. 

....

이병철은 삼성상회가 있는 대구를 기반으로 권력을 확보해나갔다. 해방 직후부터 을유회라는 사업가 조직을 결성해 이익을 도모했다. 그리고 일본인이 경영하던 대구 지방지 〈조선민보>를 인수해 <대구민보>로 개칭하고 언론 사업을 벌였다. 기업가의 조직화와 언론을 통한 여론 형성은 정치적 힘을 행사하고 정치적 커넥션을 확보하는 데 중요한 요소임을 이병철은 이때 이미 간파 했던 것이다. 삼성은 기업가조직과 자신이 운영하는 언론의 영향력을 앞세워 정치세력과 어렵지 않게 연계할수 있었다. ... 

한편 식량난으로 촉발된 대구의 10월 인민항쟁이 진압되고 얼마 지나지 않아 이승만이 대구를 방문했다. 이병철을 포함해 30명의 대구 기업가들은 왜관까지 나가 이승만을 환영했다. 이병철은 자신의 아버지와 이승만과의 인연을 내세워 이승만에게 접근했다. 이병철의 아버지와 이승만은 한때 기독교 청년 활동을 함께한 동갑내기였다. 이병철과 이승만의 정치적 연결망은 그렇게 시작되었다. 이승만의 대구 방문을 계기로 이병철은 서울에서 이승만을 다시 만나면서 정치적 연줄을 단단하게 만들어갔다. 급기야 이병철은 이승만의 권유로 삼성물산공사를 서울에 세우게 된다. 이는 지방 기업에 불과했던 삼성이 중앙 무대로 진출하는 계기가 되었을 뿐 아니라 본격적으로 중앙 정치세력과 커넥션을 형성하는 시발점이 되었다. (30-34쪽)


이병철은 이승만과의 관계를 통해 지금처럼 영향력 있는 대기업을 만들어냈다. 특별한 기술이나 경쟁없이 원조물자 수입, 판매를 독접하면서.  


원조물자를 효과적으로 얻기 위해서 무역 회사가 필요했다. 한국 시장경제의 출발점인 무역 회사는 성격상 상업자본이었고, 원조 물자가 상업자본을 발전시키는 데 크게 기여했다. 


삼성물산공사도 원조 물자를 매매하는 무역 회사였다. 1948년 서울에 세워진 삼성물산공사는 1년 반만에 당대 최고의 무역 회사가 되었다. 전쟁으로 산업 시설이 파괴돼 타격을 입기도 했으나 양조업의 이윤보전에 힘입어 1951년 삼성물산주식회사로 재건되었다. 전시에는 고철을 일본에 수출하고 비료와 설탕을 수입해 부 를 축적했다. 또한 회사 안에 제당사무소를 설치했는데, 이것이 훗 날 제일제당이 되었다. 삼성은 삼성물산을 발판 삼아제일제당, 제일제분, 제일모직 등 으로 사업을 확장했다. 이들 삼성의 주력 산업은 수입 대체 산업으로 국가의 보호를 받으며 시장을 독점했다. 특별한 기술이 필요한 사업이 아니었다. 원조 물자를 수입해 간단히 가공한 뒤 판매하면 그만이었다. 기술보다는 원조 물자 배분 권한이 있는 정치권력과 의 커넥션이 필요했다. 이병철은 일찍이 그 방면의 선두주자였다 제일모직은 모방직산업의 시설과 시장 규모의 60%를 지배했고 제일제분을 포함한 3대 재벌은 제분업 시설 용량의 약 절반을 차 했다. 제당업은 삼성의 제일제당을 포함한 4대 재벌이 독점했다. 제일제당은 그중 2/3 이상의 원당을 처리했다. 제일이라는 기업 명칭처럼 삼성은 최고의 지배적 위치를 차지했다. 이 모든 것이 미국으로부터 쉽게 원조 물자를 제공받은 덕분이었고 원조 물자의 배분권을 소유한 정치권력과의 커넥션 덕분이었다. (39쪽)


삼성은 자금확보에도 특별한 능력을 가지게 되는데, 일제시대에는 조선척식은행과의 관계로 해방후에는 정부지원하에 원조자금으로, 결국에는 금융업까지 손에 넣게 된다. 


기업의 물적 토대를 단단하게 해준 또 다른 요소는 특혜융자였다. 해방 뒤의 악성 인플레이션 아래서 특혜융자는 융자라기보다 무더기 돈을 공짜로 안겨준 것이나 마찬가지였다. 특혜융자로 돈을 불리는 일은 아주 쉬었다. 이를테면 특혜융자를 받은 기업은 융자받은 돈으로 시설투자를 하기보다 원조 물자나 원자재를 사는 일에 몰두했다. 3년의 상환 기간이 지나고 나면 인플레이션으로 물가가 올랐고 덕분에 사재기해둔 원조 물자나 원자재 일부만 처분 해도 충분히 융자금을 갚을 수 있었다. 그 나머지는 고스란히 수익으로 남았다. 삼성도 특혜융자를 받는 데 예외는 아니었다. 


또한 삼성은 이승만 정권의 도움으로 일찍이 금융업에도 진출했다. 이승만 정권은 일본인 소유에서 정부로 귀속된 은행 주식을 공매했다. 은행 주식 불하에서 이병철과 이승만의 개인적 관계가 크게 작용했다. 최초 적산 기업 불하에서 큰 재미를 못 보았던 삼성은 은행 부문에서는 남달랐다.1954년부터 1956년까지 진행한 은 행 민영화 결과 한일은행, 조흥은행, 상업은행 등이 이병철에게 넘어갔고 삼성은 금융 자원을 확보하면서 빠르게 성장했다. 이병철은 은행에 대한 정부귀속주식 공매에 응찰해 한일은행으로 바뀐 흥업은행주의 83%를 가진 대주주가 되었다. 또한 홍업은행이 상업은행주를 33% 가량 갖고 있었으므로 상업은행의 실제 최대 주주였다. 곧이어 그는 조흥은행주의 55%를 매입했다. 결국 주요 시중 은행 주식의 거의 절반이 이병철 소유가 되었다. 


이어 이병철은 한국화재보험을 인수했고 나아가 대주주가 된 은행이 관리하던 기업들을 인수했다. 호남비료의 45%, 한국타이어의 50%, 삼척시멘트의 70%에 해당하는 주식이 이병철에게 넘어 갔다. 금융 기관을 장악한 삼성은 거칠 것이 없었다.(44쪽)


최근 삼성의 행보를 보면서 해방후 삼성과 지금의 삼성이 크게 달라보이지 않는다. 


이병철은 누구보다 뛰어난 정치적 자본가였다. 원조 물자와 원조 자금에 의존해서 성장한 한국 자본주의의 구조상 기업가 정신 보다 정치권력과의 유착이 기업 간 경쟁에서 승리를 보장하는 열쇠가 되었다. 원조 물자와 원조 자금을 배분하는 권한은 정치권력에게 있었고 정경유착은 필연이었다. 굳이 쉬운 길을 두고 어려운 길을 갈 이유는 어디에도 없었다. 이러한 구조를 누구보다 정확히 꿰뚫은 인물이 바로 이병철이었다. (45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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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처음에 책을 읽으면서 조금 거북했다. 일단 영어책을 한권 외우라는 것도 내 공부 스타일과도 맞지 않고, 게다가 1/4정도를 시간관리에 할애한다. 시간쪼개기, 계획세우기 이런 내용에는 반감이 크다. 처음에는 그 선입견 때문일까. 책 내용이 잘 들어오지 않았다. 


 다만, MBC PD라는 것, PD가 프로그램을 만들지 못하고, 영어책을 써야 하는 MBC의 현실이 더 캐탄스러웠다. 


 다른 영어교육책들을 들춰보느라 책을 다시 집어 들었는데, 저자의 의도가 보이기 시작했다. 영어책 한권을 외우라는 의미도 알게 되었다. 


 저자는 우리가 영어공부를 하면서 안다는 착각에 빠져 있지 않은지를 묻는다. 


책 한 권이라는 목표가 중요한 이유가 여기 있습니다. 성과가 보이지 않아도 포기하지 말고 한 권을 다 외울 때까지는 해보는 겁니다. 교재 앞부분은 쉬워서 진도가 잘 나갑니다. 후반부에 들어서 면 점점 더 암기하기가 어려워집니다. 문장도 어려워지고, 누적된 표현의 가짓수가 많아지면서 복습을 할 때마다 소요 시간이 늘어 나거든요. 무엇보다 가장 힘든 때는 몇 달째 열심히 했는데도 실력이 나아지지 않는 것처럼 느껴지는 순간입니다. 그때 포기하지 않고 끝까지 가야 합니다. 적어도 첫 번째 계단을 만날 때까지는 버텨야 합니다. 양질 전환이 이루어지는 첫 번째 전환점 말입니다 이 첫 고비를 넘기면 영어 공부에 재미가 붙을뿐더러, 인생에서도 힘 든 순간에 포기하지 않고 버티는 법을 배우게 됩니다.

 책한권을 포기하지 않고 끝까지 가기 위해저는 매일 한 과씩 외우고 전날까지 외운 것을 복습하는 공부가 중요합니다. 복습을 할때 핵심은 책을 보지 않고도 영어문장이 떠올라야 한다는 것입 니다. 책을 보고 읽으면 다 아는 것 같은 착각이 생기거든요. (24쪽)


공부에 대한 오해를 살펴보는 책 《어떻게 공부할 것인가》(헨리 뢰 디거 등 지음, 김아영 옮김, 와이즈베리)를 보면, 심리학자들이 '지식의 저주(the curse of knowledge)'라고 부르는 현상이 나옵니다 자신이 이 미 능숙하게 익힌 지식이나 기술을 다른 사람이 처음으로 배우거나 과제를 수행할 때 더 짧은 시간이 걸리리라고 생각하는 경향을 가리킵니다. 

...

'많이 들어본 것 같은 이야기를 들을 때 우리는 안다는 느낌 (the feeling of knowledge)에 빠지고 그 착각이 사실이라고 믿는 실수를 저지를 수 있다. 

유창성 착각(fluency illusion)은 텍스트에 유창한 것을 내용에 숙달한 것으로 착각하는 데서 일어난다. 예를 들어 어려운 개념을 특히 명료하게 표현한 자료를 읽는다고 해보자 자료를 읽으면서 그 개념이 정말로 간단하다고 생각할 수 있고 다 아 는 것 이었다는 생각마저 들 수 있다. 앞서 언급했듯 교재를 반 복해서 읽는 방식으로 공부하는 학생들은 교재를 여러 번 읽 어서 익숙한 것을 그 과목에 대해 이용 가능한 지식을 얻은 것으로 착각할 수 있고, 그 결과 자신이 시험에서 얻을 성적을 과대평가하게 된다 -(어떻게 공부할 것 인가》(헨리 뢰디거 둥 지음, 김아영 옮김, 와이즈베리) (90-91쪽)


저자가 영어책 한권을 외우기를 강조하는 것은 몸으로 익혀야 한다고 생각하기 때문이다. 최근에 외국어를 배우는 것은 수영이나 자전거를 배우는 것처럼 몸으로 익혀야 한다는 이야기를 하는 사람들이 있다. 맞는지는 모르겠으나, 어느 정도 말이 되는 것 같다. 

공부를 할 때 책을 눈으로만 읽으면 실력이 늘지 않습니다. 머리로 이해하기보다 입으로 자꾸 소리 내어 훈련하는 것이 중요 합니다 무협 영화를 보면, 고수가 되는 이상적인 수련 방법은 간단 한 일을 몸으로 반복하는 겁니다. 계단을 오르내리며 물을 나르거나 무거운 도끼로 장작을 패는 단순한 일만 반복해서 합 바복해서 합니다. 사부님은 절대 현란한 초식이나 고급 기술을 가르쳐주지 않아요 주지 않아요. 기초 내공만 계속 수련하게 하지요 무공을 닦는 것처럼 영어 공부도 기 초를 꾸준히 갈고닦는 것이 중요합니다. 

어학 공부를 시작할 때는 적은 분량을 완전히 내 것으로 만드는 학습법이 좋습니다. 주변에 보면 매일 CNN을 틀어놓고 그걸로 영 어 실력을 쌓겠다는 사람이 있습니다 계속 듣다 보면 한두 개라도 얻어걸리겠지' 하는 심정이겠지요 요즘은 아침에 일어나 즐거운 마음으로 영어 팟캐스트를 듣는 분도 많지요. 이런 공부는 참 즐겁 습니다 영화 속 영어 대사도 즐기고, 진행자의 농담도 들으며....... 이렇게 매일 1년을 들으면 영어가 늘겠지' 하는 심정으로 듣습니 다 하지만 초보일 경우, 이런 공부는 세월만 좀먹을 뿐 효과는 거 의 없습니다. 

기왕 결심을 했다면, 기초 회화를 외우세요 초급 회화 암기로 영어의 틀을 잡은 후에라야 다양한 방식으로 영어를 접하는 게 효과 가 있습니다. 

...

저는 머리를 믿지 않아요. 오히려 습관이 깃든 몸을 믿습니다 무 엇을 잘하려면, 매일 하는 것 말고는 방법이 없다고 생각합니다. 

'꿈이 있다면, 머리를 쓰지 말고 몸을 굴리자.'

이것이야말로 제가 영어 공부를 통해 몸에 익힌 절대무공입니다. (45-47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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