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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주밥상 표류기
양희주 지음 / 스타일북스 / 2012년 3월
평점 :
절판
<제주밥상 표류기>는 단순히 맛집을 소개하는 책이 아니다. 음식을 중심으로 제주를 이야기한다. 음식과 관련한 생활이 있고, 식당을 찾아과는 과정에 제주의 관광지가 등장한다. 그리고 때로는 가슴아픈 제주의 과거를 들려준다.
워낙 제주 음식이 많이 알려져서 이제는 <제주밥상 표류기>가 소개하는 음식명이나 유래의 독보성은 퇴색되었지만, 여전히 음식과 관련한 이야기는 들을 것이 많다.
제주도 육개장에는 한라산 고사리가 듬뿍 들어간다. 소고기 대신 돼 뼈를 푹 삶아 오래도록 고아 진하게 육수를 우려낸다. 여기에 고사리 듬뿍 넣고 되직하게 끓인다. 고사리가 뭉개져 실고추처럼 찢어질 때 까지 끓인 후에 메밀가루를 폴폴 푼다. 고사리와 함께 뭉근하게 저어가며 끝을 알 수 없는 돼지육수의 밑바닥을 끌어올린다. 걸쭉해진 국물에 삶은 돼지고기를 손으로 가늘게 쭉쭉 찢어넣고 다시 한참을 끓인다. 어느 게 고사리인지 돼지고기 인지 서로가 얽히고 설키어 형태를 알아볼 수 없는 지경에 이르면 스튜와 흡사한 제주도 고사리 육개장이 완성이다. 전에 알던 육개장과 전혀 다른 비주얼이다. 이름만 같을 뿐이다. 맛은 더 딴판이다. 수저를 넣어 휘휘 저으면 처음엔 이끼 같은 고사리향이 은은하게 퍼진다. 곧 이어 포근하고 달콤한 단내가 올라오고 큼큼한 나무 껍질향이 뒤를 따른다. 무엇보다 베이스를 좌지우지하는 중심에는 돼지 뼈국물의 진중함이 있다. 거스를 수 없는 굳건한 의지에 포용력이 더 해진다. 산속에서 웅크리고 자란 고사리향과 뒤섞이며 차원이 다른 개성을 획득한다. 이 육개장은 숟가락으로 먹으면 그 맛이 안 난다. 실처럼 가늘어진 돼지고기와 부들부들한 고사리를 젓가락으로 건져 가닥가 음미하며 먹어야 제맛이다. 고사리 육즙이 퍼지면서 국물은 더욱 진해지고 구수해진다. 여기에 향이 진한 봄부추를 새콤하게 무쳐서 함께 곁들인다. 돼지기름에 두툼하게 지진 녹두부침개와 막걸리 한사발을 더 하면 봄날의 소풍처럼 기쁨이 번진다. 고사리 육개장의 맛이라니, 세월 의 탓을 하지 않고 나이든 여인은 더 이상 조급하지 않다. 눈가의 주름과 함께 촘촘히 웃는다. (32-33)
다루는 음식들은 흑돼지, 육개장, 꿩메밀국수, 말고기, 토종닭, 방어, 은갈치, 오분작, 물회, 생선회, 생선조림, 멸치, 몸국과 돔베고기, 갱이죽, 보말죽, 보리빵, 빙떡과 옥돔구이, 오메기술, 전복죽, 순대, 성게, 고기국수, 회국수, 밀면, 짬뽕이다.
제주 제사상에 카스테라가 올라온 배경을 빵과 엮어낸다던지, 전복을 모두 착취당해 오분작이 향토음식으로 남게 된 과정 등 제주의 음식문화에 대한 설명이 꼼꼼하다.
게다가 제주에 대한 설명은 주재료 같은 덤이다.
제주에는 네 곳의 곶자왈이 있다. 9km에 이르는 서부의 한경-안덕 곶자왈과 북부의 애월 곶자왈, 최대 30km에 이르는 조천-함덕 곡자왈지대와 25.8km에 이르는 동부의 구좌-성산 곶자왈 지대이다. (39쪽)
그에 더해 안타까움도 전해온다. 개발로 망가져가는 제주에 대한 안타까움이다.
여름이 삼나무숲이라면 가을에는 억새밭이다. 서부의 새별오름과 마라도, 산굼부리는 가을이면 은빛 억새가 물결 친다. 교래리 억새는 예전부터 아름답기로 소문이 나서 매해 억새꽃잔치가 열렸다고 한다. 그러나 우리가 다 아는 그 생수공장이 들어서며 주변의 억새를 깡그리 베어 버렸다. 그후로 억새꽃축제는 애월읍 새별오름으로 자리를 옮겨 치르다가 그마저도 2010년에 소리 소문 없이 사라지고 말았다. (94쪽)
잘 모르던 제주의 눈물 젖은 역사도 알려준다.
알뜨르 비행장 근처의 섯알오름이야말로 한맺힌 사연으로 제주도 사람들에게는 그냥 지나칠 수 없는 곳이다, 1950년 한국전쟁 당시 한림·대정 지역의 무고한 주민 200여 명이 예비검속이란 이름 아래 무차별 적으로 학살당한 곳이다. 예비검속이란 어떤 상황에 대하여 아직 어떤 짓도 저지르지 않은 사람들이지만 곧 일을 벌일지도 모르기 때문에, 실제로는 발생하지 않은 일에 대한 죄를 물어 구속하는 법이라고 한다. 법적으로 효력이 있을 리가 만무하다. 당시 제주는 이미 4·3이라는 엄청난 희생을 치른 후였다. 4·3에서 살아남은 얼마 되지 않는 양민들마저 마구잡이로 끌려갔으며 좌익이 될 가능성이 있다는 이유만으로 참혹하게 희생되었다. 남은 가족들은 공범으로 몰릴까 두려워 시체조차 수습 할 수 없는 안타까운 상황이었다. 6년이 지난 후에야 유족들에게 시체를 찾아가라 허락하였지만 이미 132구의 유구들은 누가 누구인지 제대로 구별할 수 없는 지경이었다. 별도리 없이 유구를 한데 모아 '백할아버지의 한 자손이라는 뜻의 백조일손 묘역을 만들게 되었으며 매년 위령제를 열고 억울한 죽음을 애도하고 있다. (110쪽)
제목은 밥상, 즉 음식을 표방하고 있지만, 이 책을 읽으면 제주에 대한 기본이 잡힌다고 해야 할 것이다. 제주의 현재, 과거 그리고 음식을 둘러싼 문화와 제주인들의 삶을 크게 한번 훑어 볼 수 있는 책이다.
(제주를 일곱~여덟차례 다녀왔다. 이태전부터 제주 가기전 주제로 책을 읽고 있다.
첫번째는 유홍준의 문화유산답사기와 돌배게의 한려수도와 제주도 그리고 새로쓰는 택리지 제주도
편이었고,
두번째는 제주역사기행, 주강현의 제주기행 등이었고,
세번째는 제주이주민들의 삶을 다룬 책들이었고,
이번에 네번째로 음식을 다룬 책들을 좀 들춰봤다. 태그는 제주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