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면역에 관하여
율라 비스 지음, 김명남 옮김 / 열린책들 / 2016년 11월
평점 :
<면역에 관하여>는 제목에 딱 걸맞는 책이다. 그리고 훌륭한 책이다.
이 책이 훌륭한 것은 다른책들이 면역을 거부하는 행위를 단순한 무지로 판단하는데 반해, 저자는 왜 예방접종을 거부하는지에 대한 이해를 바탕으로 한다. 기본적으로 면역이 맞지만, 맞기 때문에 예방접종을 하라는 것이 아니라, 사회적 약자들을 보호하기 위해 필요하다는 점을 이야기한다.
「백신은 다수 집단을 동원해서 소수 집단을 보호함으로 써 효과를 발휘하지.」 아버지의 설명이다. 이때 아버지가 말한 소수집단이란 해당 질병에 특히 취약한 사람들이다. 인플루엔자의 경우 노인들이다. 백일해의 경우, 신생아들이다. 풍진의 경우 임신부들이다. 하지만 상대적으로 부유한 백인 여성들이 제 자식에게 백신을 맞히는 건, 독신인 어머니가 최근에 이사를 했기 때문에 선택에 따라서가 아니라 상황에 따라서 미처 아이를 완전 접종시키지 못한 일부 가난한 흑인 아이들을 보호하는 데 동참하는 일일 수 있다. (48쪽)
저자는 저널리스트이다. 아이를 낳을 즈음, 주변에서의 백신의 대한 이야기에 노출이 되면서 백신에 관심을 갖게 된다. 백신에 대해 언론은 믿지 못할 것이고, 백신은 대형 제약회사들이 만들어낸 것일 뿐이라는 지적에는 동의했지만, 정말 못 믿을 것인가에 대한 의문을 갖게 된다.
그래서 이 책은 사람들이 생각하는 걱정, 문제제기가 왜 있는지를 살펴보고 그에 대한 과학적이고, 사회적이고, 역사적인 해답을 찾아낸다.
일단 예방접종은 과학적으로 상당히 안정적인 면역계를 만드는 방법이다. 그런데 예방접종에는 부작용이 있다. 그러나 그 부작용이 사실 모호하다. 백신 때문인지 알수가 없고, 발병율 자체가 너무 작아 통계적으로도 무의미하다.
백신에 대한 두려움은 백신의 이득이 피해보다 훨씬 크 다고 장담하는 전문가들의 위험-편익 분석이 아무리 많이 등장하더라도 쉽게 잦아들지 않는 듯하다. 백신으로 인한 심한 부작용은 드물다. 그러나 정확히 얼마나 드문지는 계량하기 어려운데, 한 이유는 백신에 연관된 합병증은 애초에 그 백신이 예방하려고 하는 감염에 의해서 자연적으로도 발생하는 합병증일 때가 많아서다 홍역, 볼거리, 수두, 인플루엔자에 자연적으로 감염되더라도 뇌가 감염되어 붓는 병인 뇌염에 걸릴 수 있다. 우리는 아무 병에도 걸리지 않았고 아무 백신도 맞지 않은 인구 집단에서 뇌염의 기저 발병률이 얼마나되는지 모른다. 그러나 홍역 환자 1,000명 중 약 1 명 꼴로 뇌염 이 따른다는 건 알고, MMR(홍역-볼거 리-풍진) 백신 접종자 300만 명 중 약 1명꼴로 접종 후 뇌염 발생이보고된다는 건 안다. 그런 사례는 워낙 드물기 때문에, 연구자들은 그런 뇌염이 정말 백신 때문에 일어난 건지 아닌지를확실히 결론 내리진 못했다. (57쪽)
그럼에도 사람들이 백신의 부작용을 크게 인식하는 것은 바로 두려움 때문이다.
위험 인식은 계량 가능한 위험에 관한 문제이기보다 측정 불가능 한 두려움에 관한 문제일지도 모른다. 우리의 두려움은 역 사와 경제, 사회적 힘과 낙인, 신화와 악몽의 영향을 받는 다 그리고 우리가 강하게 품는 여느 믿음처럼, 우리의 두려움은 우리에게 소중하다 슬로빅이 실험에서 확인했던 경우처럼 사람들이 자신의 믿음을 반박하는 정보를 접할 때, 우리는자신이 아니라 정보를 의심하는 경향이 있다. (60쪽)
그리고 이 두려움에는 인간이 만들어낸 인공물에 대한 배경이 있다. 자연적인 것은 선이고, 인공적인 것은 위험하다는 생각이다. 과연 그럴까. 앞서 이야기한 것 처럼 사람들은 정보를 의심한다.
실제로 우리 몸안에 포름알데히드가 자연적으로 존재함에도 그런 사실을 무시한다. 심지어 모유 성분들은 신나, 농약, 로켓 연료 등과 같은 성분이다. 양이 문제라고 이야기하는데도 사람들은 믿지 않는다. 백신안에 있는 어떤 성분은 모유보다도 적은데 사람들은 문제가 심각한 것 처럼 이야기한다.
사람들은 순수함에 대한 로망이 있는 듯하다. 그런데 그 순수함에 대한 열망이 우생학으로 나오고, 특히 우리나라에서 외국인에 대한 차별로 나타난다는 것을 볼 때 순수함이 사회적이나 정치적으로도 그다지 바람직하지 않은 것 같다. 특히 예방접종을 거부하는 이들이 이런 차별성향을 많이 나타낸다는 점도 고려해 봐야 할 것이다. 실제로 트럼프 정부에 백신 반대론자들이 많다는 사실도 생각해봐야 한다.
미국에서 백신거부자들은 대체로 백인들에게서 일어난다. 그들은 여전히 전염병은 사회적으로 떨어지는 집단에서 발병하는 것으로 생각하는 경향이 강하다. 역사적으로도 백신이 처음 도입되었을 때 지배계층이 아닌 하층민, 이주민에 대해 강제접종의 형태였다. 양심적 거부라는 말도 백신 거부에서 나온 말이다.
저자는 또한 민주주의와 백신거부와의 관계도 설명한다. 잘못된 정보를 바탕으로 사회에 문제를 제기하는 것이 과연 민주주의인지, 백신을 거부한 이들은 결과적으로 백신에 의한 집단면역에 무임승차한 이들이 아닌지 의문을 제기한다.
인류가 이렇게 오래살기 시작한 것은 얼마되지 않았다. 그 중에 가장 큰 역할을 한 것이 백신이나 의학을 거부하는 이들에게는 미안한 이야기이지만, 백신과 항생제다. 자연적인 것을 최고로 치는 사람들이 많지만, 자연속의 인간은 언제 죽을지 모르는 상태에 영양부족의 상태였다는 점을 왜 모르는 척 하는지 모르겠다.
미국에서는 지속적으로 홍역과 같은 전염병 확산이 문제가 되고 있다. 2008년에 홍역이 한번 돌았고, 2014년에도 돌았다. 전문가들은 집단면역체계가 깨졌다고 이야기한다. 백신을 거부하는 이들이 대체로 중산층이고, 우리나라에서도 어느 정도 학식을 갖춘 사람들이라 자식이 그 병에 걸렸더라도 돈을 들여 치료를 할 수 있는 사람들일 것이다. 하지만 그 사람들의 자식들의 전염병의 매개체라는 생각은 못하는 듯 하다. 경제적으로, 건강적으로 백신 접종에서 소외된 이들에게 그 병을 옮겨 그들에게 큰 상처(질병이나 후유증)를 주는 것이 과연 바람직한 생각이라 할 수 있을까.
면역에 대해 궁금해 하거나, 궁금하지 않거나 읽어볼만한 책이다. 면역을 왜 거부하려는지 그들의 생각을 공감할 수 있고, 역사적으로 정치적으로 사회적으로 면역이 어떤 위치에 있는지에 대해서도 생각해볼 수 있는 책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