별 일 없는 주말(사실 별 일 없지는 않다. 잠깐 집에서 보고서를..) 이라, 일주일 신문을 들춰보았다. 따로 북섹션을 들춰냈다.
올해는 1919년 백주년이다. 3.1 운동이 있었고, 4월엔 임시정부가 수립된다. 올해는 1919년을 주제로 근대사를 다룬 책을 쭉 보려하고 있다. 3.1 관련 책은 이미 몇 권 사두었는데, 아무래도 인식의 지평의 넓어지기 위해서는 많은 책들이 출간되어야 한다. 그런면에서 이번에 소개된 두 권의 책은 의미가 있다. 한 명은 잘 모르던 무정 김병희를 다룬 <무정 평전 - 비운의 혁명가 무정의 삶 그리고 생각> 이고, 다른 하나는 너무 잘 알려진 <윤봉길 평전 - 강의한 사랑의 독립전사>이다.
안문석 전북대 정치학과 교수가 남북한이 모두 외면한 비운의 독립운동가에 관심을 갖게 된 것은 대학 1학년 때, 같은 하숙방을 쓰는 선배에게 “북한에서 해방 후 김일성보다 더 유명했던 무정 장군” 이야기를 얼핏 들은 것이 계기였다. 이후 ‘그토록 유명했던 무정이 왜 권력투쟁에서 졌을까’ 하는 궁금증에서 비롯된 다소 험난한 연구과정이 이어졌고, 정치학자로서 저자의 관심은 무정의 숙청을 전후로 한 북한현대정치사로 확장됐다.
무정의 본명은 김병희, 1904년 함경북도 경성에서 태어났다. ‘무정’은 중국 군관학교 시절 상관이 군인을 뜻하는 ‘무’(武) 자를 넣어 지어준 이름이라고 한다. 1919년 15살의 나이에 3·1운동에 참가한 것이 독립운동가로서 그의 첫 행보였다. .....
<무정 평전>은 무정의 일대기를 다루되 특히 무정이 1948년 3월 초대 최고인민회의 대의원에서 탈락한 일을 시작으로 권력의 주변부로 밀려나 1951년 8월 사망에 이르는 과정에 중점을 뒀다. “숙청의 실제 이유는 무엇이며 무정의 숙청이 북한체제 형성에 어떤 영향을 미쳤는지, 그가 추구했던 정치노선은 무엇인지” 등을 구체적으로 살펴봄으로써 “무정의 해방 이전 무장독립운동에 치우쳐 있던 기존 연구의 공백을 메우고, 북한현대정치사 연구의 지평을 넓히고자” 하는 저자의 뜻이 담겨 있다. 저자는 무정이 북한에 대한 소련의 영향력을 경계한 점에 주목하면서 그를 “이념을 추구하기보다 어떻게 하면 민족을 일제를 비롯한 강대국의 속박에서 완전히 벗어나게 할까 고민한 민족주의자”로 규정하고, “이러한 무정의 고민은 목하 한반도의 고민과 그대로 맞닿아 있다”고 짚는다.
무정에 비하면 너무나 유명한 독립운동가인 윤봉길 의사를 재조명한 <윤봉길 평전>은 ‘윤봉길 의사가 던진 것은 사실 도시락이 아니라 물통 폭탄이었다’는 뜻밖의 폭로를 통해 우리가 실제로 윤봉길 의사에 대해 아는 것이 별로 없다는 사실을 깨닫게 한다. 평전을 집필한 이태복 전 보건복지부 장관은 이것이 ‘김구의 행동대원 윤봉길’이라는 왜곡된 프레임 때문이라고 지적하면서, “상하이 폭탄 의거는 윤봉길 의사의 주체적인 독립전쟁 선포였다”고 강조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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http://www.hani.co.kr/arti/culture/book/886052.html#csidxa27ee475ce2f8318765c6d6f6d8af31
그 동안 이북에서 활동한 독립운동가에 대해서는 잘 알려지지 않은 것이 사실이다. 그 중에는 남과 북 모두에서 외면받은 이들이 있다. 그들에 대한 복원이 필요하다. 이때가 아니면 그분들은 계속 역사속에 남아 있질 않을 것이다.
윤봉길 의사는 두 개의 폭탄을 준비했다. 그가 던진 것은 물통 모양의 수통 폭탄이었고, 도시락 폭탄은 자결용이었다. 회사에서 이 사실을 이야기하니 알고 있는 사람은 거의 없었다. 도시락 폭탄이냐 수통 폭탄이냐가 중요한 것이 아니라 윤봉길 의사에 대해 과연 우리는 무엇을 알고 있을까.
올해 쭉 1919를 중심 독서를 생각하고 있는데, 두 권의 책은 사뭇 반갑다. 올해 내 내 이런 책이 출간되어야 한다.
이번 북섹션의 1면은 좀 낯설다. 제인스 빌? 제인스 빌이 어디야? 기사를 읽고 나서야 알아챘다. GM이 있던 그 곳이다.
2008년이던가, 미국의 경제위기에 직격탄을 받은 곳이 바로 디트로이트이다. 미국의 자동차 공장의 상징이었던 곳. 제인스빌은 디트로이트는 아니다. 그렇다고 멀지는 않다. 미시간호 좌측 위스콘신 주, GM 공장을 위해 만들어진 도시다. 경제위기, 한 산업으로 발전한 도시가 산업의 도태된 후 어떻게 되었는지를 보여주는 책이다. 기사를 읽으면서 조선산업을 통해 성장한 거제를 다룬 <중공업 가족의 유토피아 - 산업도시, 거제 빛과 그림자>라는 책이 떠 올랐다. 두 권의 책을 엮어 읽어야 겠다. 한국과 미국의 산업도시가 경제위기때 어떻게 되었는지를 보고 싶다.
책에서 충격적인 대목은 바로 이 재교육 문제다. 실직자를 재교육해 새로운 일자리를 찾게 도와주는 정책엔 정치적 견해 차이를 떠나 누구나 동의한다. 지은이는 이를 “재교육 복음”이라고까지 한다. 블랙호크 대학도 지엠 공장 폐쇄 이후 실직자들을 위해 88개의 강의를 신설했고, 개인강사가 부진한 학생한테 추가 수업도 했다. 그런데 지은이가 위스콘신대학 조사기관과 함께 한 설문조사와 직업 재교육에 대한 분석결과는 재교육의 효과를 의심케 한다. “직업 재교육은 제인스빌은 물론 그 주변 지역에서도 구직 기회나 임금을 늘리는 데 아무 도움도 안 됐다. 이는 일자리가 크게 줄어든 시기에만 국한된 현상은 아니었다.” 실직한 뒤 학교에 가 재교육 프로그램을 마친 이들의 취업률은 학교를 다니지 않은 실직자보다 낮았고, 재교육을 받으러 학교에 간 해고 노동자들은 그렇지 않은 해고 노동자들보다 구직 후에도 더 낮은 급여를 받은 것으로 나타났다.
직업 재교육은 아무런 효과가 없단 말인가? 지은이는 2012년 10월 <워싱턴포스트> 오피니언 지면에서 이를 설명한다. 다른 일자리를 어렵지 않게 구할 수 있었던 사람들은 재교육을 받을 필요 없이 재취업을 했다. 반면 고용주들이 덜 선호하는 해고자들이 대학에 진학했을 가능성, 재교육의 효과가 더디게 나타날 가능성, 재교육을 받지 않은 사람들이 일자리들을 먼저 차지해버렸을 가능성도 있다고 봤다. 그는 “재교육이 지금보다 더 잘 이뤄져야 한다. 2년제 대학과 일자리 수요 사이의 연계가 더 긴밀해져야 한다. (…) 그러나 여전히 존재하는 불편한 진실은 일자리 맞춤형 족집게 교육으로도 충분치 않을 수 있다는 것이다”라고 말한다. 앤서니 캐너베일 조지타운대 교육인력센터장은 “직업훈련은 일자리를 만들어 내지 않는다. 일자리가 직업훈련을 만들어 낸다. 그런데 사람들은 항상 반대로 생각한다”고 짚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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http://www.hani.co.kr/arti/culture/book/886048.html#csidx38f338cf8ed6b3eb50f6103dab914f2
작년 암호화폐 이후로 지속적으로 금융경제, 화폐경제에 관심을 가지고 있다. 몇 권의 책도 이미 모아 두었고. '신용사회'라는 장밋빛 허상 뒤의 디스토피아 라는 부제가 바로 눈에 들어온 것도 그 때문이다. 금융경제를 이야기하면서 신용을 빼놓을 수는 없다. 지난 주 언급한 바 있는 <금융과 회사의 본질>과도 느슨하게 연결해 볼 수 있는 책이다.
현재 우리는 신용카드로 대변되는 신용사회에 너무 익숙하다. 그런데 과연 신용사회는 누구를 위한 사회일까.
영국의 프리랜서 기자가 쓴 <현금 없는 사회>는 ‘신용 사회’의 주술 뒤에 숨은 이익집단들의 음모와 그 이유를 다양한 실례를 들어 낱낱이 폭로한다.
지은이는 현금 지불을 억제하거나 없애려는 힘있는 이익단체들이 당신을 염탐하고 돈을 빼앗아간다고 말한다. 바로 국가와 기업, 그리고 은행 들이다. “이들이 우리를 현금 없는 사회로 몰아가려는 이유는 딱 하나, 재정적으로나 정책적으로 우리를 통제하려는 것”이다. 실제로 전자결제는 사용자가 어떤 교통수단을 탔는지, 어디에서 누구와 무엇을 먹었는지 고스란히 기록한다. 전자거래 전도사들은 이를 분석해 사용자의 취향과 생활 패턴을 파악하고, 심지어는 그가 게으른지, 바람을 피우는지까지 추론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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http://www.hani.co.kr/arti/culture/book/886038.html#csidxa63a9488e2f3b56b61a289406ebfcc6
일본 관련 커뮤니티에 자주 올라오는 글 중에 하나는 바로 신용카드에 대한 불만이다. 그러면서 탈세 운운한다. (일본은 예전부터 POS기가 설치되었고, 자영업의 소득이 투명하게 드러나는 사회였다.) 사실 신용카드는 비신용사회에서 먼저 확산되었다. 2000년을 전후로 마구잡이로 신용카드를 만들어주는 시기를 기억해본다면, 사실 답은 있다. 우리나라가 신용카드가 OECD에서도 압도적인 이유 중 하나는 바로 신뢰할 수 없는 사회였기 때문이다. 만연한 탈세와 지하경제를 드러내기 위해서 정부는 신용카드를 강제했고, 말도 안되는 연말정산 소득공제라는 제도까지 만들었다.
4차산업혁명과 더불어 현금없는 사회에 대한 이야기들이 나온다. 제일 먼저 대두된 나라들이 저신용 국가들이었다. 그런데 이제는 많은 나라들이 점점 현금없는 사회를 추구하고 있다. 현금이 아닌 다른 통화수단을 사용하는 순간, 내가 어디가서 무엇을 했는지 고스란히 남는 사회가 되고 있다.
토요일자 신문에는 독일의 예술학교 바우하우스가 한면을 차지한다. 바우하우스라는 이름은 몇 번 들어봤고, K-mooc에서 건축관련 강의를 하나 들으면서 쉽게 다가온다. 물론 그 때 자세히 읽어보려 책을 하나 사긴 했지만.
올해는 바우하우스(1919~1933) 탄생 백 주년이 되는 해다. 외신에 따르면, 이를 기리기 위해 베를린에서 전시회, 공연, 강연 등 많은 행사가 열리고, 특히 바이마르 바우하우스 뮤지엄에서 기념식과 전시가 준비되고 있다고 한다.
바우하우스는 지난 백년간 세계 건축과 디자인에 엄청난 영향력을 끼친 주된 흐름이자, 지배적 원리나 법칙처럼 세상 곳곳에 스며들어 있다. 예컨대 평지붕과 장식이 배제된 노출 콘크리트, 철·유리 등의 재료와 기하학적 구조로 지은 건물에서부터 대량 생산된 의자와 조명은 물론 스마트폰 등의 산업제품, 리듬감 넘치는 기하학적 형태의 그래픽, 타이포그래피, 심지어 산뜻한 누리집 디자인 등에 이르기까지 그 유산은 일상 도처에 퍼져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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여기서 주목할 것이 있다. 바우하우스가 오늘날 한국의 많은 미술대학 디자인 관련 학과에서 가르치고 배우는 것처럼 단순히 ‘아름답고 멋진 디자인’을 생산할 직능인 배출에 목표를 둔 것이 아니라는 사실이다. 그 목적은 패전 후 바이마르 공화국 체제에서 발생한 좌우충돌의 정치적 혼란과 극심한 경제공황의 현실에서 사회와 개인의 삶을 구해낼 ‘급진적 사회개혁 프로그램’에 있었다. 바우하우스가 추구한 조형 활동은 이러한 목적을 구현하기 위한 시각화 과정으로 디자인 행위의 바탕에 사회철학을 전제하고 있었던 사실을 눈여겨 봐야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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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러나 2010년대 후반에 이르러 신자유주의 세계화가 휩쓸고 지나간 쓰나미의 잔해 위에서 그 이념에 다시 주목해야 할 상황이 발생하고 있다. 금융 위기에 따른 경기 침체와 장기 불황 속에서 공공서비스의 민영화로 삶의 기준은 저하되고, 양극화가 더욱 심화되고 있다, 이 과정에서 바우하우스가 제안한 ‘조립식 산업제품으로서 주택’의 필요성이 부활하고, 실물 경제와 제조업 붕괴 그리고 환경오염의 현실 속에서 인간 삶과 디자인에 대한 재고와 성찰이 심각하게 요청되고 있는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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http://www.hani.co.kr/arti/culture/culture_general/886170.html#csidxb39a44ae484a60f9b7c903c9c96b3f4
올해는 3.1운동 100주년이 되는 해이다. 이미 지난달 몇 권의 책을 주문했고, 3.1운동에 대한 책을 번갈아 가며 들고 다닌다. 그리고 또한 주기율표 150주년이기도 하다. UN은 올해를 주기율표의 해로 정했다. 주말 관련된 책을 몇 권 빌렸고, 주문을 넣은 책을 고르고 있다. 그런데 <주기율표>라는 제목의 책을 낸 프리모 레비 또한 잊을 수 없다. 프리모 레비의 책을 주문넣었다. 이번 주에 소개된 책은 일단 독서목록만 작성해두고, 잠깐 뒤로 밀어 둘 참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