힘들다.
힘들어...힘들어 죽겠다.
좀 쉬어야지....................... !
떠나는 날 아침, 남편과 크루즈 여행에 나섰다. 두시간 반 정도 걸리는데 홍콩에서 크루즈 하던 것보다는 재미없었다. 그냥 바다, 바다, 바다...멀리 싱가폴의 상징 머라이언 상이 보이고. 명나라때 청호라는 장군이 배를 타고 도착했었다는데 장군의 이름을 따 배 이름도 청호. 거북이들의 섬 규슈에서 20분간 쉬었다. 거북이님들이 어찌나 많으신지... 동전함에 1불을 넣고 소원을 빌었다. 무조건 건강이다! 정말? 그것만 빌었나? ㅎㅎㅎ작은 사원이 있어 2불을 내고 향을 사 곳곳에 계신 신들께 기도했다. 기도를 마치고 나오니 얼굴 가득 땀...
아주 잘 만들어져 있는 느낌이랄까. 인공의 냄새가 나기는 해도 깨끗함은 비할 데가 없다. 저 멀리 씩씩하게 걸어가는 롱다리의 남자, 내 남편이다 ^^:; 이번 여행에서는 한국인을 거의 만나지 못했다. 대부분 호주, 뉴질랜드인들이라 나는 마음놓고 애교스런 말투로 남편에게 수다떨곤 했다. 히히~ 숙소로 돌아와 조금 쉬었다가 6시에 체크 아웃. 일몰 직전의 싱가폴, 벌써 그립네...ㅎ
혼자 영화라도 찍은 것처럼 행복한 여행이었다. 남편은 쉼없이 일을 해야 했지만, 그래서 조금 미안하기도 했지만 나라도 열심히 놀아야겠다는 생각에 부지런히 이곳 저곳을 기웃거렸다. 사진을 다 올릴 수도 내게 일어난 일들을 다 말할 수도 없으나 가끔 이 페이퍼를 들춰보면 사진과 사진 사이에서 일어난 예기치 못한 일들이 먼저 떠오를 것 같다.
아침이 밝았다. 오늘은 어디로 가지? 매일 뭐 해먹나... 하던 고민이 오늘은 어디에서 놀아볼까로 바뀌기도 한다는 현실에 감사했다. 교통이 편리하고 볼 거리가 많은 곳, 특이한 장소로 가면 좋겠지? 웨인 왕의 영화 스모크에서처럼 매일 같은 장소를 같은 시간에 찍는 호사도 누리다니! 오전 8시의 싱가폴, 붓에 휘핑 크림을 살짝 칠한 것처럼 부드러운 풍경이다. 호텔 가이드에게 물어 Holland Village로 가는 방법을 알아냈다. 방법이란, 택시를 타고 가거나 스탠포드 상점 앞에서 7번 버스를 타는 것 -_-; 택시비가 비싸지 않아 부담스럽지는 않지만 웬만하면 대중교통을 이용하고 싶다. 가는 게 문제가 아니라 다시 돌아올 때 택시 잡는 일이 쉽지 않기 때문이다. 특히 밤에는 도시 혼잡요금을 받기 때문에 시내에서 빈 택시 잡는 일은 쉽지 않다. 콜을 하는게 가장 좋은 방법이고 그보다 더 좋은 방법은 대중교통을 이용하는 것. 가이드 북에서 발견한 Holland Village에 끌려 택시를 타고 도착했다. 오전 10시 40분. 가이드 북의 설명과는 달랐지만, 너무나 이른 아침이라 문을 열지 않은 상점도 많았지만그냥... 조용한 주택가라는 것 말고는 달리 할 일도 볼 것도 없었다. 모든 가이드 북이 다 쓸만한 건 아니다. 가끔 실망은 하더라도 뭐, 괜찮다. 대충 돌아보고 택시를 잡아 타고 원점으로 돌아갔다. 다시 걷기 시작했다. 햇살은 따가웠지만 나는 어떻게든 길을 잃고 싶었다. 하지만, 도시에서 길을 잃는 일은 생각보다 쉽지 않다. 길을 잃는 대신 막다른 길에 다다랐다. 횡단보도는 없었으나 지하 통로로 내려가라는 사인이 있었다. 그 지하 세계의 이름은 city link. 삼성역 처럼 거대한 지하 쇼핑몰과 거리가 거대한 블록으로 이어져 있었다. 길을 걷다 지치면 벤치에 앉아서 쉬어도 된다. 서점을 발견하면 그저 반갑다.
미니스커트 대신 핫팬츠를 입고 거리를 활보했다. 스타벅스 커피를 홀짝 거리다 힘들면 쉬었다. (무다리를 노출해서 죄송합니다. 꾸벅.) 그래서 나는 길을 잃지 않고 무사히 이정표를 따라 숙소인 swissotel에 도착했다. swissotel과 붙어있는 라플 시티. 이곳은 라플 시티의 광장인데 저녁에는 각종 이벤트 행사가 펼쳐진다. 아침에 숙소로 배달된 신문에는 이영애와 대장금에 관한 기사로 넘쳐났다. 아시아의 연인이자 아시아의 보석으로 일컬어지는 이영애. 며칠전에 이영애가 내가 묵고 있는 호텔에 하룻밤 묵고 갔단다. 텔레비전에선 대장금이 인기리에 방송중이고 이영애가 모델인 L전자 회사의 에어컨 선전이 쉼없이 나온다. 택시 운전 기사 아저씨는 S전자 LCD 텔레비전과 휴대폰을 칭찬하고 한국 제품을 선호하는 사람들도 꽤 많아 덩달아 힘이 났다. 두어시간 거리를 헤맸더니 힘이 쪽 빠져 숙소로 돌아와 잠시 낮잠을 즐겼다. 가끔, 아주 가끔은 깊은 수면제 처방으로 책을 읽기도 한다. 사진을 찍어놓고 5분도 되지 않아 잠들었다...다시, 길을 떠나려던 찰나 비가 와서 잠시 서성거렸다. 비가 멈출 때까지 기다렸다가 다시 출발. 저녁 무렵이라 남편이 오기 전에는 돌아와야 하므로 근처를 돌기로 했다.
골목에 있는 게 아쉬울 정도로 멋있는 상점. 라플 호텔 1층 아케이드 통로. 사진 찍을 때 숨을 쉬었던가 보다. 사진이 흔들렸다. 또, 하루가 지나가버렸구나...흑.
싱가폴 지하철 MRT를 타고 차이나 타운으로 향했다. 지하철 패스는 우리나라 교통 카드와 비슷한데 도착한 역에서 카드를 반납하면 1불을 환불 받을 수 있다. 목적지마다 요금이 정해져있는데 우리나라와 비슷하다. 지하철 색깔과 이정표만 잘 따라가면 길을 잃을 염려는 없다. 차이나 타운에 내리자 비가 내리고 있었다. 우산은 없었지만 여행객에게 우산이 없는 것도 어쩐지 낭만적이라 무턱대고 걸었다. 차이나타운이라는 이름에 걸맞는 거리 풍경들. 향 냄새가 진동하고 건물은 모두 울긋불긋, 다닥다닥 붙어 있었다. 중국인이 운영하는 상점에서 옷도 한 벌 사고 ^^ 저렴한 가격으로 향초들을 몇 개 샀다. 중국인 쥔장은 자꾸 물건을 권하고, 나는 유혹에 넘어가는듯 보였으나 정신 차리고 몇 개만 사왔다. 증거를 남기기 위해 사진도 ^^ 숙소가 있는 city hall 역으로 가려면 한 번 갈아타야 한다. 긴 환승장, 아무리 걸어도 힘들지 않은 여행. 비가 자주 내리기 때문일까. 거리는 아주 깨끗하다. stanford street. 차이나타운에서 2만원짜리 샌들을 하나 사서 신고 돌아다녔다. 신발 바닥이 너무나 깨끗해서 놀랐다. 미세한 먼지가 묻은 정도다. 아트 뮤지엄 근처에도 국립 도서관이 있는데 여기에도 있네. 여기가 어디냐면... 패스! 현대적인 건물, 상상초월의 건물, 거의 한 블록을 차지하는 국립도서관. 영화 망종이 떠올랐다. 길을 걷고 있는데 어디선가 요란한 풍물패 소리가 들렸다. 급히 카메라를 꺼내들긴 했는데 너무나 빨리 달려서 흐릿하게 포착된 풍물패. 차이나타운 쇼핑몰에서 산 슬리퍼. 아주 맘에 든다. 일몰 직전의 싱가폴. 저녁은 숙소와 맞붙어 있는 라플 시티 내 중국 식당에서 해결했다. 담백하고 느끼하지 않은 제비추리와 닭고기로 만든 스프. 딤섬. 가격도 그닥 비싸지 않다. 두부와 버섯 요리. 누들과 바닷가재. 망고 수플레. 낮에는 농심 신라면 컵라면으로 때우고 웬만하면 걸어다녔으니 여행 경비를 줄일 수 있었다. 서울에서 두 시간 정도 걷는 일은 거의 없었는데, 비가 오지 않는한 거리를 걸었다. 걷다가 힘들면 벤치에 앉아 쉬어가고... 아무도 말 걸지 않는 고즈넉한 도시, 여기에서라면 한번 살아볼 수도 있을 것 같다.
남편이 출근하고 난 후, 홀로 싱가폴 투어에 앞서 빵과 커피로 마음과 위장을 무장! 오늘의 목적지는 싱가폴 아트 뮤지엄. 호텔 프런트에서 아트 뮤지엄 위치를 물었는데 생각보다 너무나 가까운 곳에 있었다. 택시로 5분, 도보로 10분. 당연히 도보로 가야지! 고딕 성당을 기점으로 싱가폴 아트 뮤지엄이 건너편에 있다는 설명을 듣고, Ok ! 그러나 고딕 성당을 지나고 turn right를 반복해도 아트뮤지엄은 보이지 않았다. 지도와 가이드 북을 들고 있으니 관광객 쳐다보듯 하는 시선이 괜히 껄끄러워 가방에 지도를 쑤셔넣고 아트 뮤지엄이 있는 Victoria Street 를 찾아나섰다. 헤매던 Hill Street에서 발견한 Philatelic museum 이다. Philatic museum 위에 있는 National Archives. 길을 잘못 들었지만 당황할 필요는 없다. 내가 묵고 있는 호텔이 저 멀리 보일 뿐더러 길을 헤매는게 오히려 더 즐거운 이상한 관광객이니까. 하는 수 없이 누군가에게 물어보는 게 빠를 것 같아 들어간 곳이, central fire station -_-;;친절한 말레이 계통의 남성들이 관람하러 온 줄 알고 방명록부터 내밀었으나 정중히 사양하고 여차저차 길을 물었다. 그제야 알았다. 프런트에서 가르쳐 준 고딕 성당과 내가 알고 있다고 착각한 고딕 성당이 다르다는 것을.낯선 곳에서 하나의 표상만 알고 있다는 건 좋기도 하고 불편하기도 하다. 지명을 따라가면 되는 건데 하나 알고 있는 고딕 성당을 프런트에서 설명해준 그것이라고 믿고 있었던거다.어쨌든 Let's go! Victoria street 로 가는 길. 무단횡단을 하면 안되지만, 내국인들이 대거 무단횡단을 하기에 괜히 따라서 건너봤다. 여기도 아트 뮤지엄은 아니다.
드디어 찾았다! 알고보니 호텔과 너무나 가까운 곳에 인접해있었다. 사진 촬영은 할 수 없으니 감상한 미술 작품들은 내 마음속에 들어있다. 1층과 2층으로 나뉘어진 뮤지엄안에는 각기 다른 주제들로 싱가폴, 말레이지아, 인도, 중국 등다민족이 사는 국가 답게 다양한 나라의 아티스트들의 작품을 만날 수 있다. 그러나 그들의 주제는 '소외된 사람들' 이었다. 2층은 타원형의 복도를 따라가면 대 여섯개의 전시실로 들어갈 수 있다.전쟁과 민중, 싱가폴의 과거와 현재를 테마로 한 작품들이 전시중이다. 1층에는 싱가폴을 대표하는 화가의 방과 작품들이 전시되어있다. Eugene Chen 이란 화가의 방에는 자화상과 초상화가 많이 걸려 있었는데 화가에 대한 설명 중 인상적이었던 구절을 메모하고 그 방에 앉아 한참을 앉아 있었다. 독방에 그림과 수감된 것처럼 나를 스스로 가두고 낯선 화가의 초상화를 보고 또 보았다. 1층 전시실 밖이다. 여기는 사진을 자유롭게 찍을 수 있다. 나는 그녀였다, 가 아니라 her에 e를 미처 못 찍었다. -_-I was Here ! 같은 행보로 관람하던 일본인 커플은 저 곳에서 여러 컷의 사진을 찍고 사라졌다. 사진 좀 찍어달라고 할 참이었는데, 홀로 셀카질에 몰두하던 중 커플이 사라졌다....흑. 어딜가나 일본인이냐는 말을 들었다. -_- 하다못해 유치원 꼬마들이 내 곁을 지나며 오하이오~ 라고 하더라~ 완벽한 지도가 있어야 떠나는 것은 아니다, 라는 책 제목이 있었던가? 자꾸 그 말이 떠올랐다. 한 번 헤매고 난 후, 길을 더 잘 알게 되었다. 그러니까... 나는 원래 방향치다. 이 정도면 정말 양호한거다. 고럼!
버스 정류장. Library만 보면 무조건 사진촬영. 판다님도 덤으로 나왔다~ ^^ 돌아오는 길은 너무나 쉬웠다. 숙소 건너편 라플 호텔. 영국식 건물이 많은 싱가폴, 싱가폴 사람들은 내게 일본인이냐고 묻고 서양인들은 내가 싱가폴 국민인 줄 알고 길을 물었다. 누가 뭐래도 나는 대한민국인!
싱가폴엔 또 비가 내렸다. 천둥 번개가 몰아쳐서 번개 사진 찍으려고 20분간 발코니에서 서성였다.번개가 번개처럼 빨라서 사진은 못 건졌다. 생일날 한식을 먹은 건 몇 번 되지 않는 것 같다. 그러나, 정말 한식을 먹어야 했다. 먹고 싶었다! 이보다 더한 생일 식사가 어디 있으랴! Orchard Road, Takeshimaya 백화점 (주로 명품만 취급하는... 그러나 밥 값은 안비싸다.) 4층 crystal jade 한국식당에서 30분 기다려 김치찌개와 돌솥비빔밥을 먹었다. 김치찌개에 밥 말아 다 먹어치웠다.
타케시마야 백화점 앞, 루이뷔똥 디스플레이 앞에서 한 컷...^^;;