여름 휴가를 가지 않고 (못 간 것이지만) 가을로 미뤘다.
결혼기념일 여행겸해서 아름다운 우리나라의 가을에 도취할 예정이었다.
남편의 출장이 싱가포르 일주일로 확정되는 바람에 덤처럼 따라왔다.
남편은 회사에 가고 나는 홀로 투어에 나선지 4일째.
여기는 창이 빌리지, 한적한 싱가포르의 구석이다.
숙소 건너편에 바다가 있고 산책로가 있어 유한마담처럼 아침과 늦은 오후에 독서와 바람을 즐긴다.
바퀴가 보일만큼 커다란 비행기가, 바게뜨 같은 비행기가 빠른 속도로 떴다 사라진다.
바게뜨 같은 비행기라는 내 말에 웃어준 그녀가 있어 한번 더 써먹는다.
내 말에 귀기울여주고 웃어주는, 칭찬해주는 사람이 있다는 건 행복하다.
싱가포르는 여전히 덥고 습하고 조용하다.
어디선가 빌딩들이 무럭무럭 크는 소리가 심장 박동처럼 틈틈이 들려오는 가운데
길을 물어오는 외국인들에게 친절한 가이드 노릇도 하며 배회하는 중...
Asia Civilization Museum 관람이 '특히' 좋았다.
환상 여행을 온 것처럼 어둑한 박물관 내부, 섬뜩한 공포가 밀려오는 아시아 유물들...
동그마니 홀로 앉아 인형극을 관람하고 터치 스크린의 긴 듯한 이야기는 건너뛰며
오래 머물러 있었다. 머릿속이 미로가 되버리는 느낌.
흐릿한 기억이 되지 않도록 기운을 내야 한다.
날씨가 너무 덥고 체력이 딸린다.
내일은 오리라도 한마리 잡아먹어야지.
아, 그리고 하마터면 리틀 인디아에서.......................................... !
(계속)