인생의 행로는 정해져 있네. 자연의 길은 하나이고, 게다가 되짚어올 수 없는 길이라네. 그리고 인생의 각 단계에는 각각 그때에 어울리는 성질이 주어져 있네. 소년의 나약함, 젊은이의 패기, 안정기에 든 자의 중후함, 노년기의 원숙함, 모두 제 때에 거둬들여야 하는 자연의 결실과 같은 것을 가지고 있는 법이라네.

 - 키케로, 『노년에 대하여』中에서


 * * *

딱 열흘 전 '고교 졸업 30주년'을 맞아 안동을 다녀왔다.

이 행사의 준비를 위해 오래 전부터 많은 친구들이 정말 열심히 일해 왔고, 나 또한 이 행사를 앞두고 '준비위원'의 한 사람으로 나름대로 열심히 참여해 왔기 때문에, 이번 '사은회의 밤'을 성공적으로 마무리하고 나니 몹시도 기쁘다.

개인적으로 옛 은사님들을 모시고 '사은회'를 가져본 경험이 몇 번 있었는데, 대학을 갓 졸업하고 몇 해 지나지 않아 한창  젊었을 때 '전공과목 교수님'들을 모시고 사은회를 가졌던 기억은 그다지 감동적이지는 못했던 것 같다.

나중에 사회생활을 하느라 정신없이 한참의 세월을 보내고 난 뒤, 점차 나이가 들면서 점점 더 어릴 적에 함께 뛰놀고 공부했던 '옛 친구들'과 좀 더 자주 만날 기회가 늘어 나면서, '옛 친구들'과의 이야기 가운데 자꾸만  '그 때 그 시절의 은사님'에 대한 추억들이 자꾸만 잦아지게 되면서, 제자인 우리들이 직접 발벗고 나서서 '은사님'을 수소문해서 찾게 되고, 그렇게 고생 고생해서 우리 스스로 마련한 뜻깊은 자리에 '은사님'을 모시게 되었을 때, 그런 '사제와의 만남'은 이루 말로 형언할 수 없을 정도로  '격한 감동'을 경험하게 되었던 것 같다.

이번 '사은의 밤' 역시 그런 찐한 감동을 느끼기에 조금도 부족함이 없었다. 특히 고3때 한없이 '엄하기만 하셨던' 선생님들께서 한없이 '다정다감한 모습'으로 우리 제자들을 '너무나 반갑게' 맞이해 주셔서 정말 감격스러웠다. 그리고 선생님들께서 우리들을 바라보며 너무나 '즐거워 하시고 흐뭇해 하시는 모습'에 또 감동이 더더욱 배가되는 느낌을 받기도 했다. 그리고 한편으로는 '맹자의 인생삼락' 가운데 한 가지를 만끽하시는 우리 선생님들이 몹시 부럽기도 했다. 그러고 보니 우리 동기생들은 유난히 '제자들을 가르치는 일'에 몸을 담고 있는 경우가 많은 것 같다. 어 또한 은사님들을 말 그대로 '사표'로 삼은 결과가 아닐까 싶은 생각도 들었다.

한편으로는 고3때 함께 졸업한 490여명의 동기생들 가운데 무려 200명에 이르는 친구들이 경향 각지에서 마치  '연어떼처럼'  은사님과 친구들과 고향을 찾아 몰려 왔던 것도 참으로 반갑고 기뻤다. 물론 '30년의 세월 동안' 어디서 무엇을 하고 지내왔는지 몰라도 그동안 '잘 살아온 것 같은'  친구들의 모습을 확인하는 일 또한 기쁘기 한량 없었다.

정말 잊을 수 없는 감동과 추억의 시간들이었다.  (비록 지극히 개인적인 행사였고, 지극히 개인적인 사진들임에도 불구하고) 이 페이퍼를 통해 여러 장의 사진들을 올릴 이유를 갑자기 찾게 된 건 순전히 ''우리 반' 친구'가 어느 신문에 쓴 칼럼 때문이라고 말하고 싶다. 나 역시 그 친구와 똑같은 말을 이 곳 알라딘 독자들에게도 '말하고 싶은' 욕구를 주체하기 힘들었기 때문이다.

"추천한다. 이 가을 모교행사가 불러주면 가보라. 추억을 먹고 오는 것만으로도 배가 부르다. 절대 후회하지 않는다."
(
http://news.khan.co.kr/kh_news/khan_art_view.html?artid=201110091928135&code=990507)


 * * * * *

1. 30년 만에 만나, 50대 아저씨로 변한 '친구'를 확인하느라 바쁜 모습들......



2. 학창시절 우리들을 가르쳐 주신 은사님들의 사진을 바라보며 옛 추억을 회상~



3. 영어를 가르쳐 주셨던 한규성 선생님께서 '소개'를 받으시고 덩실덩실 어깨춤을 추시는 모습~



4. 생물을 가르치셨던 '독사' 천태오 선생님의 인사와 손짓에 열광적으로 환호하는 제자들~



5. 어디서 무얼 하며 지내 왔는지 몰라도 '연어처럼' 이 곳 '안동'에 다시 모여든 친구들~



6. 선생님 감사합니다~



7. 고맙다. 제자들아~



8. 30년 만에 비로소 선생님께 '큰 절'을 올리는 제자들



9. 국어를 정말 재미있게 가르쳐 주신 '꽁치' 선생님과 함께 했던 1반 친구들



10. 5반 친구들의 큰 절을 받으시는 강태화 선생님



11. 학창시절 '사랑의 매'가 남긴 상처를 자랑스럽게(?) 선생님께 보여주고 있는 제자



12. 아이고..... 이게 누군가?



13. 그래.... 고맙다... 제자들아....



14. '독사' 선생님과 함께 했던 8반 친구들



15. 30년 만에 만난 선생님과 친구들이 서로 어깨를 걸고~



16. 초청가수 현숙 '누님'의 노래에 환호하는 '50대' 아저씨들



17. 이** 장학사, "오빠는 잘 있단다~~"
(오빠 맞나?)



18. 현숙씨를 키운 권** PD와 권PD를 키워낸 꽁치 선생님~



19.
(마찬가지로) 현숙씨를 키운 김** PD와 김PD를 키워낸 자라 선생님~



20. 독사 선생님의 열창~



21. 배** 동기의 열창~



22. 
'지리' 과목을 가르쳐 주셨던 '자라' 선생님께서 너무 느린 노래를 선곡하니까,
      (누군가 옆에서 하는 말)  "자라는 원래 느려 ~~~ "



23. "자~~ 떠나자~~ 동해 바다로~~~~" 
      (1979년에 설악산으로 수학여행을 갔을 때 많이 췄던 '고고춤'을 다시 재현)



24. 김연호 선생님의 열창~



25. 안동시 정상동으로 옮긴 모교 교정의 모습



26. 산자락에 자리잡은 모교 기숙사



27. 학창시절을 떠올리게 하는 교정 모습



28. 선생님 감사합니다~
(지금의 우리보다 더 젊으셨던 '30년 전' 은사님들의 모습)


(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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마녀고양이 2011-10-11 12:55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와, 30주년 고교 동창회시라니....... 라고 쓰고는요,
제가 몇주년 되었는지 분주히 세어보고 있습니다. 그런데 저 역시 22주년이나 되어서.. 에고.
정말 시간을 잊어버렸었는데, 페이퍼를 보니 아련하게 생각나네요.

저는 선생님들 별명 중에 '배둘레햄' 이라는 별명만 유독 잘 기억하고 있습니다.
즐거운 사진들이네요.

oren 2011-10-11 13:12   좋아요 0 | URL
'30년 세월'이 이렇게 빨리 흘러갈 줄 미처 몰랐어요...
(7년전 혹은 5년 전에 선배님들이 이 행사를 '주관'할 때만 해도 '우리'에겐 먼 훗날 얘긴줄 알았죠)

고교 졸업후 22주년이면 아직 많이 남았네요. 마고님도 먼(?) 훗날 '30주년' 행사엔 꼭 참석하길 바랄께요. 정말 잊을 수 없는 감동을 느끼고 왔답니다.

고교때 선생님들 별명이 정말 다양하고 재미있었죠.
꽁치, 자라, 울보, 베트콩, 마당쇠, 달포(입만 '달'싹거리면 엄'포'를 친다고 해서...ㅎㅎ) 등등...
30년 전 학창시절을 함께 했던 '그 친구들과 그 때'가 몸서리치도록 그리운 시간이었습니다.

페크pek0501 2011-10-11 16:35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아~~, 감동, 감동, 감동, 감동스러워라. 이렇게 감동스런 사진을 올리시다니...

저도 이런 모임 있으면 감동 받을 준비를 하고 참석하겠습니다.
그런데 이젠 스승들과 제자들의 나이 차이가 크게 느껴지지 않는 얼굴들이 되었군요. 그렇게 같이 늙어가는 건가요?

많은 분들이 방문하여 이 사진들을 보게 되었으면 좋겠습니다. 혼자서만 보기엔 아까우니까요.
그리고 추천을 하나밖에 누르지 못하는 것이 아쉽습니다. 이런 건 열 개 정도의 추천을 한꺼번에 눌러야 하는 건데 말이죠.

저와 동갑인 것도 감동?스럽습니다. (아, 혼자만 나이 많은 건 억울한데, 다행히도 같이 늙어가는 분을 만나 위로가 된다는...ㅋ)

oren 2011-10-11 18:46   좋아요 0 | URL
pek님께서도 저만큼 '감동'해 주시니 저도 몹시 기쁩니다.
그리고 뜨겁게(?) 추천해 주셔서 더욱 고맙습니다.

순오기 2011-10-11 20:58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아~~~ 저도 3년 전에 30주년 홈커밍데이 했는데... 남고는 이런 모습이군요.^^
추억이 방울방울 솟아나는 동창회 풍경~~~~~~ 보기 좋습니다!ㅋㅋ

oren 2011-10-12 09:37   좋아요 0 | URL
순오기님께서는 이미 3년 전에 홈커밍데이를 하셨군요.
'여고'는 어떤 모습이었을지 살짝 궁금하기도 하네요. ㅎㅎ

페크pek0501 2011-10-12 15:46   좋아요 0 | URL
아, 순오기님도 우리와 동지?~~~ 반갑습니다. 여기서 만나니 더욱 반가워요.(근데 우리는 이미 서로의 나이를 알고 있는 사이지요?ㅋ) 하지만 마치 처음 안 것처럼 참 반갑다는 것이지요. ^^

순오기 2011-10-13 10:30   좋아요 0 | URL
제 여고동창회 페이퍼는 여기로 가면 볼 수 있습니다~ ^^
http://blog.aladin.co.kr/714960143/3112546

2009년이니까 3년 전이 아니고 2년 전이라고 해야 되나...ㅋㅋ

노영조 2016-12-10 08:33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과거 은사님을 찾습니다... 영어 한규성 선생님 연락처를 혹 알수있나싶어 연락드립니다 과거에 안동 계시다 대구 잠 깐 계실때 저희 담임이셨습니다 꼭 뵙고싶은데 연락할 길이없어서요 부탁드립니다 010 3111 1927입니다

oren 2016-12-13 16:12   좋아요 0 | URL
한규성 선생님을 담임으로 모신 적이 있으셨군요... 아무튼 반갑습니다^^
남겨주신 연락처로 선생님 연락처 알려드렸습니다^^

phw0119 2018-06-02 14:20   좋아요 1 | 댓글달기 | URL
안녕하세요
저는 경북고등학교를 1987년도에 졸업했구요
고3 담임이셨던 한규성선생님의 연락처를 아시면
부탁드립니다.

2020-06-02 16:55   URL
비밀 댓글입니다.
 
하늘공원에 가보세요......


● 일시 : 2011. 9.21(수) 저녁, 9.22(목) 저녁
● 장소 : 하늘공원


(사진을 클릭하시면 조금 더 크게 보실 수 있습니다)

1. 결실

Shooting Date/Time 2011-09-21 오후 5:46:31


2. 하늘과 구름과 억새

Shooting Date/Time 2011-09-21 오후 5:54:55


3. 천고(天高), 그리고 억새고(高)

Shooting Date/Time 2011-09-21 오후 6:03:55


4. 가을의 속삭임

Shooting Date/Time 2011-09-21 오후 6:16:56


5. 내 이름은 구름이여~

Shooting Date/Time 2011-09-21 오후 6:20:33



6. 붉은 노을

Shooting Date/Time 2011-09-21 오후 6:23:59


7. 푸른 하늘, 푸른 강

Shooting Date/Time 2011-09-21 오후 7:01:12


 - - - - - - - - - - - - - - - - - - - - - - - - - - - - - - - -  (날짜 변경선)  - - - - - - - - - - - - - - - - - - - - - - - - - - - - - - - -


8. 억새 너머 어렴풋이 '여의도'가 보이네요.

Shooting Date/Time 2011-09-22 오후 6:01:00


9. 바람과 함께 춤을~

Shooting Date/Time 2011-09-22 오후 6:04:56


10. 저녁 햇살을 즐길 시간~

Shooting Date/Time 2011-09-22 오후 6:10:43



11. 억새 속으로~

Shooting Date/Time 2011-09-22 오후 6:15:41


12. 지는 해

Shooting Date/Time 2011-09-22 오후 6:16:50


13. 하늘공원에 오른 사람들

Shooting Date/Time 2011-09-22 오후 6:17:56


14. 석양을 즐기는 사람들

Shooting Date/Time 2011-09-22 오후 6:21:03


15. 외로운 일몰

Shooting Date/Time 2011-09-22 오후 6:25:32



16. 어둠이 내리는 시간

Shooting Date/Time 2011-09-22 오후 7:02:10


17. 여의도, 저녁 7시 30분

Shooting Date/Time 2011-09-22 오후 7:30:10


18. 집으로 돌아갈 시간

Shooting Date/Time 2011-09-22 오후 7:32:06



19. 한강의 가을밤

Shooting Date/Time 2011-09-22 오후 7:38:48

(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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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1. 가을 산책
    from Value Investing 2013-09-26 00:13 
    나는 적어도 하루에 네 시간을 - 보통은 그 이상인데 - 모든 세상일에서 완전히 벗어나 숲과 언덕, 들판 위를 거닐지 않으면 건강과 원기를 보존할 수 없다고 생각한다. 도대체 무슨 한 푼 가치도 없는 생각, 혹은 천금의 값어치가 나가는 생각이냐고 말해도 상관없다. 기술자들과 가게 주인들, 그들 중 대다수가 - 마치 다리가 서거나 걷기 위해서가 아니라 앉기 위해서 만들어지기라도 한 것처럼 - 가게에서 오전뿐만 아니라 오후에도 내내 다리를 꼬고 앉아 있는
 
 
Bflat 2011-09-23 00:34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내셔널 지오그래피에나 나올 법한 예술작품입니다.
사진에서 작가의 시선이야 우리가 공감할 수 있다지만, 수려하면서도 따뜻한 온기가 느껴진다는 건 정말 놀라운 일이고 재능입니다.

oren 2011-09-23 10:51   좋아요 0 | URL
아무리 '하늘공원'에서 찍은 사진이라지만 너무 '하늘' 위로 던져 올리는 거 같습니다. ㅎㅎ
갑자기 히사이시 조의 '공중산책'이라는 음악이 '떠오릅니다'.

순오기 2011-09-23 01:36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와아~~~~~~~~ 근사하네요!
어떻게 하면 이런 사진을 찍을 수 있을까요, 부러워요!!
잘 보고 추천 꾹 눌렀어요.^^

oren 2011-09-23 10:52   좋아요 0 | URL
고맙습니다. 순오기님~

라로 2011-09-23 09:54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오와오와~~~~~~~~정말 근사해요!!!!
하늘공원에 억새가 저렇단 말이죠!!!!
오렌님은 제가 최근에 읽은 책 [57세 사토 씨의 공부 편력기 - 배우고 익히면 즐겁지 아니 한가]의 주인공 사토씨와 비슷할 것 같은 느낌이 들어요!!
저도 추천!!^^

oren 2011-09-23 11:01   좋아요 0 | URL
나비님께서 너무 과격하게 좋아해 주시는군요.
나비님께서 읽으신 책 제목처럼 '배우고 익히면' 즐겁지 아니할 수 없겠지만, 그래도 그 책의 저자와 비슷할 것 같다는 말씀은 당치도 않습니다(다만 처녀시절에 잠시 일본에서 살았던 제 옆지기의 말에 의하면, '당신은 일본에 가서도 살 수는 있을 꺼'랍니다. 제 성격이 일본인들 특유의 '어떤 성격들'을 많이 닮았다면서 말입니다).

pjy 2011-09-23 13:49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이렇게 비교해서 죄송하지만 제가 아는게 이래서, 달력사진 삼아도 손색이 없습니다욧! 너무 멋집니다^^ 가을이네요~출력해서 제가 사진틀에 끼우면 실례가 될까요?

oren 2011-09-23 15:41   좋아요 0 | URL
네.. 고마워요 pjy님. 어느새 성큼 가을이 왔어요.
그리고, 제가 올린 풍경사진들은 얼마든지 가져다 쓰셔도 됩니다.

페크pek0501 2011-09-25 13:59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이렇게 멋진 사진들을 발품 팔지 않고 편히 감상할 수 있다니... 첫 번째 감사.

오렌님 덕분에 도덕감정론을 알라딘에 어제 주문신청했어요. 오늘 책값을 입금할 예정이니 내일이나 모레쯤 책 받겠지요... 두 번째 감사.

좋은 인연에 대해... 세 번째 감사.

도덕감정론에는 인간을 이해할 수 있는 글이 많아서 꼭 갖고 싶은 책입니다. 이런 책을 찾고 있었어요. 앞으로 제 글에도 많이 인용될 것 같은 예감이 듭니다. (적립금 들어 오시면 제가 Thanks to 눌러서임ㅋ)

'한 사람이 못을 박으면 다른 사람은 그 못에 모자를 건다'라는 영국 속담이 떠올랐다는...^^^




oren 2011-09-26 00:08   좋아요 0 | URL
한번 오셔서 세 번씩이나 감사의 말씀을 해주시니 너무 고맙습니다.
거기에 더불어 Thanks to까지 해주시고, 제가 난생 처음으로 들어보는 좋은 속담까지 덧붙여 주시고...
아무튼 못과 망치도 한 번 쓰지 않고 여러 장의 사진들을 쭈욱~ 걸어 놓았는데, 많은 분들이 못이 박힌 줄 '착각'하시고 '모자'까지 걸어 둘까봐 두렵습니다. ㅎㅎ

2011-09-27 16:03   URL
비밀 댓글입니다.

2011-09-27 17:17   URL
비밀 댓글입니다.

2011-09-27 22:25   URL
비밀 댓글입니다.

2011-09-28 00:41   URL
비밀 댓글입니다.

2011-09-28 08:11   URL
비밀 댓글입니다.

슈바빙 2011-09-28 14:01   좋아요 0 | 댓글달기 | 수정 | 삭제 | URL
자네 솜씨가 프로에 가까워지는 것 같아. 뭐든지 열심히 하는건 알고 있었지만, 이렇게 일취월장하는 모습을 보니 탄성이 절로 나오네.
 


평소에 점심 시간에 여의도에서 자주 식사도 함께 하고 얘기도 서로 나누는 '아끼는 후배'가 있는데,  그를 facebook에서도 자주 접하다 보니 그 후배가 '무슨 생각'을 주로 하는지, 주된 '관심사'는 또 무엇인지에 대해 좀 더 많이 알게 되었다. 그리고 또 그 후배가 facebook에 '좋은 글'도 자주 올려 주어서 (facebook에서) '좋아요' 버튼을 자주 클릭해 주는 사이가 되고 또 심심찮게 그의 글에 '댓글'도 달아주곤 한다. 그러다 보니 그 후배가 가끔씩 '내가 읽는 책들'에도 얼마간 관심을 보이길래 '언제' 기회가 되면 책을 좀 선물하고 싶다는 '언약'까지 하게 되었다.

오늘은 드디어 이 후배한테 내가 '약속'한 대로  책을 선물하게 되었다. 그래서 알라딘에 있는 '선물하기' 버튼도 클릭하고 무슨 '메시지' 같은 것도 쓰고 해서 그 후배의 집주소로 택배를 신청했다.

그런데 이곳 알라딘에서 내 나름대로 딱 10권을 '엄선'해서 주문버튼을 클릭했더니 "확인해주세요. 이전에 구매하셨던 상품들입니다'란 메시지가 뜬다. 그동안 나는 책을 구매할 때 거의 대부분 '온라인 서점'인 이곳 알라딘에서만 구매해 왔으니 너무나 당연하다 싶어 '그려려니...' 했는데, 가만히 '주문일자'를 보니 2004년, 2005년, 2006년에 구매했던 책들도 제법 있었다. 이 책들을 구매했던 게 엊그제 같은데 벌써 세월이 그렇게나 훌쩍~ 지나왔나 싶어 무척이나 놀랐다. 한 가지 다행이라면 내가 골랐던 10권의 책이 '모두' 아직까지는  '절판'된 책이 단 한 권도 없다는 점이었다.


<그림 1 : 확인해주세요>

















































그리고, 평소에 구매하려고 마음 먹었던 책들도 이것 저것 모아서 무려 14권을 또 주문했다(16권을 주문했다가 2권은 이미 구매했던 책이어서 '알라딘'에게 들켰다. 그 2권은 이미 진작에 사 두고 읽지도 않은 채 또 구매할 뻔했다. 알라딘만 이용하다 보니 '정말 좋은 점' 하나는 이렇게 '이미 구매한 책'을 정확하게 '확인'해 준다는 점인 것 같다).

두 번째 주문까지 다 마치고 나니 얼핏 '잉카 최후의 날'이라는 책이 '오늘만 반값'이라고 외치는 모습이 순간적으로 내 눈에 들어왔다. 알라딘의 광고에 딱~ 걸려 들었다 싶었지만, 그래도 이왕 책을 사는 김에 '반값'에 책 한 권 더 사는 것도 나쁘지는 않겠다 싶어 (전부터 마음에 담아 두었던 책인) '주석달린 월든'까지 집어넣어 '또' 구매했다.

결국 '지금 진행중인' 주문현황을 클릭해 보니, '상품 준비중'이라는 글씨가 무려 세 개나 '깜빡'거린다. 평소에 책을 열심히 읽지도 않는데 오늘은 아무래도 너무 많은 책을 산 게 아닐까 하는 일말의 양심의 가책이 느껴졌다. 하지만 내가 구매한 책들을 설령 내가 (죽기 전까지) 다 읽지는 못하더라도 또 언젠가는 누군가의 손에 들려 읽히는 날이 또 있을 것이라는 희망을 떠올려 보니 문득 '괜찮다' 싶은 생각도 든다. 비록 이것도 다 내 스스로 얼른 '합리화'하는 것이겠지만......


<그림2 : 지금 진행중인 주문현황>



















(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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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lanca 2011-09-22 22:45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선물받으시는 분이 무척 좋아하시겠어요. 저는 요새 제가 읽은 책의 내용과 제목을 기억하지 못하는 지경에 이르렀습니다. 그리고 한 권의 책을 읽는 와중에도 앞서의 얘기를 잊어버리는... 오렌님 도서 목록을 보니 제 독서가 너무 문학 쪽으로 편중되어 있지 않나 하는 생각이 드네요.

oren 2011-09-23 00:22   좋아요 0 | URL
혹시... 책을 너무 많이 읽으셔서 그런 건 아니세요? 좀 쉬어가면서 책이 많이 '고플 때' 읽으시면 머리에 쏙쏙 들어오지 않을까요? 저는 예전에 청춘일 때는 '문학'을 꽤나 좋아했던 것 같은데, 나이를 먹을수록 '문학이 아닌' 쪽으로 기울어지는 게 늘 불만이랍니다. 각자 취향이 조금 다른 거라고 보여요.

라로 2011-09-22 23:25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와~~그 많은 책을 한 번에 선물하신거에요????
저도 오렌님과 같은 친구를 두고 싶어요!!!ㅎㅎㅎ
저는 중고샵에서 책을 많이 주문하게 된 이후로 제 스스로 확인해야 하는 일이 많아졌어요,,아직까지는 잘 확인하고 있지만요,,,그나저나 제 독서는 님의 독서와 비교해서 너무 쉬운 책에 편중되어 있다는 생각,,,생각을 많이 하게 해줄 그런 책도 좀 읽어야 겠어요.^^

oren 2011-09-23 00:30   좋아요 0 | URL
택배아저씨가 좀 고생할 것 같아요..ㅎㅎ
나비님과 저는 이미 친구 사이 아닌가요? ㅎㅎ
중고샵에서 책을 주문하면 '확인'을 해주지 않는가 보군요. 저는 책 읽는 시간이 너무 적어서 항상 책을 고를 때마다 '꼭 이 책을 지금 읽어야 하나'를 많이 고민하는 편이에요. 그러다보니 읽기 쉬울 것 같은 책들은 일단 '다음 기회'로 자꾸 미루게 되더라구요.

saint236 2011-09-23 11:55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밀리터리 클래식 저거 꽤 명작인데요. 도중에 구하기 힘든 것들이 몇 권 있습니다. 주로 밀덕후들이 볼만한 책들이요. 물론 저는 밀덕후가 아니라고 강력히 주장합니다. 다만 전략 게임을 좋아하는 관계로 조금 아주 조금 관심이 있을 뿐입니다.

oren 2011-09-23 13:07   좋아요 0 | URL
saint님 반갑습니다. 지금 살펴보니 밀리터리 클래식이 전집으로 무려 11권이나 있네요. 저는 딸랑 두권 있습니다. 다른 한권은 『나폴레옹의 전쟁 금언』이구요. saint님처럼 전략 게임을 좋아하시는 분들도 밀리터리 클래식을 찾으시는군요. 제 개인적으로『전쟁론』에서 가장 인상적이었던 내용은 '승리의 한계정점'이라는 개념이었습니다.

감은빛 2011-09-23 17:29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덕분에 좋은 책들 여러권을 알게되었습니다.
보관함에 담으면서 어떤 책인지 살펴보느라 시간 가는 줄 몰랐습니다.
고맙습니다!

oren 2011-09-24 10:51   좋아요 0 | URL
감은빛님 반갑습니다..
가끔씩은 책들을 미리 살펴보는 것만으로도 그 책을 읽는 것 못지않게 흥미로울 때도 있더라구요. 마치 영화의 예고편처럼 말입니다. 댓글 남겨 주셔서 감사드려요.
 


○ 시간 : 2011-09-20 오후 6:36:54 ∼ 오후 6:48:54
○ 장소 : 일산 호수공원

(사진을 클릭하시면 조금 더 크게 보실 수 있습니다)

1. Shooting Date/Time 2011-09-20 오후 6:36:54



2. Shooting Date/Time 2011-09-20 오후 6:42:17



3. Shooting Date/Time 2011-09-20 오후 6:43:05



4. Shooting Date/Time 2011-09-20 오후 6:44:03



5. Shooting Date/Time 2011-09-20 오후 6:44:30



6. Shooting Date/Time 2011-09-20 오후 6:48:54

(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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yamoo 2011-09-21 00:29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우와~! 멋지네요! 일산 호수공원은 한번도 못가봤습니다. 사진을 보니 가봐야 겠다는 생각이 새록새록 드네요..멋진 사진입니다~^^

oren 2011-09-21 09:48   좋아요 0 | URL
yamoo님께서 '저기'를 한 번도 못가보셨다니 그것도 놀랍군요. ㅎㅎ
언제 '저기' 들르실 기회가 있으시면 제게도 꼭 연락주세요. 제가 시원한 맥주라도 한 잔 쏘겠습니다~

신지 2011-09-21 02:25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와 무슨 태양의 표면 같군요. *.* 저런 하늘을 제가 언제 본 적이 있나 싶습니다. (하늘이나 일몰 사진 좋아하는데, 실제로는 잘 안 보고 살았던 것 같습니다.) ㅠ

oren 2011-09-21 09:51   좋아요 0 | URL
신지님의 표현대로 '태양의 표면' 같더라구요. 요즘엔 하늘과 구름과 태양이 빚어내는 풍경이 너무 예쁩니다. 그저께 저녁도 어제 저녁처럼 '불타는 저녁노을'이었어요.. 어제는 낮에도 하루 종일 '구름떼'가 장난이 아니게 예뻤답니다.

마늘빵 2011-09-21 09:00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아, 사진 멋지네요. 정말. 바탕화면으로 하고 싶을 만큼!

oren 2011-09-21 09:54   좋아요 0 | URL
반갑습니다, 아프락사스님.
(오래 전부터 필명은 자주 접했던 것 같은데 댓글로 만나 뵙기는 처음인 것 같아 더욱 반갑습니다.)

아프락사스님의 칭찬을 들으니 앞으로 더욱 멋진 풍경을 담아보고 싶네요.

2011-09-21 09:01   URL
비밀 댓글입니다.

oren 2011-09-21 09:56   좋아요 0 | URL
'지상 최대의 방화사건'이라......
***님의 표현이 사진보다 훨씬 더 멋진데요.

라로 2011-09-21 11:19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와~~~정말 멋진 사진이에요!!!
호수공원 자주 가시나봐요????
호수공원에서 찍은 사진이 꽤 되는 듯..^^

oren 2011-09-21 13:30   좋아요 0 | URL
호수공원이 가까워서 자주 가는 편입니다만, 좀 더 색다른 포인트가 없을까 싶은 생각도 들더군요.
이 즈음에는 '하늘공원' 같은 데도 '하늘'을 즐기기에는 참 좋을 것 같기도 합니다.

pjy 2011-09-21 12:32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길게 찍어놓은 사진이 우와~~~~ 호수공원에 모기많은거로 들은 기억만나는데...하늘 좀 쳐다보러 놀러가야겠습니다^^

oren 2011-09-21 13:32   좋아요 0 | URL
모기도 물론 먹고 살아야겠죠..ㅎㅎ
호수 속에는 커다란 잉어들도 많이 삽니다. ㅎㅎ

페크pek0501 2011-09-21 13:21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와, 멋져부러...^^^ 추천감입니다. 그래서...꾸욱~

그런데 누가 찍은 것인지요? 혹시 오렌님이?

oren 2011-09-21 13:59   좋아요 0 | URL
'출처'가 따로 없으니 만큼, 제가 찍은 것으로 생각해 주세요~

페크pek0501 2011-09-21 15:07   좋아요 0 | URL
그러면 by oren 이라고 써야죠. 더 폼나잖아요. ^^^ 또 그런 표기가 보는 사람을 위한 하나의 예의?이죠. 잘 모르는 사람은 출처가 궁금하지 않겠어요. 궁금증 해소 차원에서...

사진작가라, 멋져요.

oren 2011-09-21 15:42   좋아요 0 | URL
유명한 사진 사이트(가령 slr클럽) 같은 곳에 가보면 대부분의 사진에 스스로 출처(?)를 달더군요.
전 '무명'이 어울립니다. 사진작가라뇨.. 정말 가당치도 않습니다. ㅎㅎ

blanca 2011-09-22 09:42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정말 장관이네요. 일산 호수공원 아름다움과 오렌님의 촬영 실력의 조화가 놀랍습니다. 제도 어제 스마트폰으로 하늘 사진 찍었는데 완전 아기 수준이네요^^

oren 2011-09-22 11:10   좋아요 0 | URL
요즘 하늘이 너무 예쁘죠?
이틀 전 저녁 무렵의 저 '붉은 구름'은 정말 환상적이었어요.
 















만일 스스로 안정을 원한다면, 많은 일에 관여하지 말라고 철학자는 말한다. 그러나 이렇게 말하는 것이 더욱 좋지 않은가. 반드시 해야 할 일과, 본디 사회적인 동물인 이성이 요구하는 일만을 그 요구대로 행하라고. 왜냐하면 그것은 사물을 좋게 하는 데서 오는 안정뿐만 아니라, 많은 일에 관여하지 않은 안정도 가져오기 때문이다.

만일 이런 방법을 취하면 우리 언동의 대부분이 불필요하게 되어 더욱 많은 시간 여유와 더욱 적은 불안을 갖게 될 것이다. 그러므로 어떤 경우에도 인간은 언제나 '이것은 불필요한 일의 하나가 아닌가'하고 스스로 물어 보아야 한다. 그리고 인간은 불필요한 행위뿐만 아니라 불필요한 생각까지도 버려야 한다. 이렇게 하면 부질없는 행위를 하지 않게 된다.


 - 마르쿠스 아우렐리우스, 『명상록』 中에서

 * * *

고대 로마의 스토아학파 철학자는 스스로 '단순하게' 살기 위하여 끊임없이 자기 자신을 성찰한 것 같다.

그는 '공적인 이득을 위해 그대의 사상을 쓰지 않는 한, 그대는 남의 일을 생각하는 데 그대의 여생을 낭비해서는 안 된다. 왜냐하면, '저 사람은 무엇을 하고 있는가, 왜 또 무엇을 말하고 있는가, 어떻게 생각하고 있는가, 무엇을 계획하고 있는가' 하는 생각을 가지면, 다른 일을 할 기회가 없기 때문이다. 그리고 이런 잡념은, 우리를 내부 자제력의 구속에서 벗어나 옆길로 들어가게 하기 때문이다.'라고도 말했다.

그의 말에 따르면 나는 지금 정확하게 그의 권고와는 정반대의 행동을 하고 있는 셈이다. 최근에 있었던 '알라딘 서재 뉴스레터'를 둘러싸고 벌어진 일들에 대해 '관여하지 말라'는 '내부의 목소리'가 끊임없이 들려왔음에도 불구하고, 내가 이런 글을 굳이 쓰는 이유를 찾자면 그건 한마디로 말해서 나는 (고대의 스토아학파 철학자와는 너무나도 거리가 먼) '속물'이기 때문이다.

그렇다고 내가 '남의 일'에 앞으로 많은 '관여'를 하겠다는 생각을 이 참에 밝히려는 것은 더더욱 아니다. 나는 다만 이번 일에 대해 이미 ('아담 스미스'의 입을 빌어) 많은 얘기를 풀어놓은 죄과가 있고, 이제 이번 일이 어느 정도는 수그러든 시점에 이른 만큼 다시 한번 이번 일을 뒤돌아 보면서, 이와 유사한 일들이 앞으로는 가급적 재발되지 않았으면 하는 바램과 더불어, 이 곳 알라딘이 좀 더 서로 '신뢰'가 넘쳐나고 또한 서로 도와주고 지켜주는 '미덕'이 넘쳐나는 그런 공간이 되기를 바라는 마음에서 이 글을 쓰게 되었음을 미리 말하고 싶다.


① 공정한 방관자의 시각

아담 스미스는 그의 주저(主著)인 『도덕감정론』의 제1부에서 '행위의 적정성'을 다루면서 '우리는 불쾌한 감정에 대하여 친구들의 동감을 얻지 못했을 때 더욱 큰 충격을 받게 된다'고 말했다. 그리고 또 '불행한 사람들에 대하여 줄 수 있는 가장 잔인한 모욕은 그들의 재난을 경시하는 듯한 태도를 취하는 것'이라고도 말했다.















유쾌한 감정 vs 불쾌한 감정

우리가 친구들에게 더욱 전달하고 싶어 하는 감정은 우리 자신의 유쾌한 감정보다도 불쾌한 격정이라는 것이며, 우리가 친구들의 동감으로부터 더 큰 만족을 얻는 것은 우리의 유쾌한 감정에 대한 친구들의 동감이 아니라 우리의 불쾌한 감정에 대한 친구들의 동감이라는 것이다. 그리고 우리는 불쾌한 감정에 대하여 친구들의 동감을 얻지 못했을 때 더욱 큰 충격을 받게 된다는 것이다.

가장 잔인한 모욕

불행한 사람들에 대하여 줄 수 있는 가장 잔인한 모욕은 그들의 재난을 경시하는 듯한 태도를 취하는 것이다. 친구의 기쁨에 무관심한 듯한 태도를 보이는 것은 단지 무레한 행동에 불과하지만, 그러나 친구가 자신이 겪고 있는 고통을 이야기할 때 진지한 태도로 경청하지 않는 것은 정말로 엄청나게 비인간적인 행동이다.

 - 아담 스미스, 『도덕감정론』中에서


그래서 아담 스미스는 '따라서 우리의 친구들이 우리의 우정을 받아들여 주기를 바라는 우리의 마음은 그들이 우리의 분개에 동감해 주기를 바라는 마음의 절반 정도도 안 된다. 우리가 그들로부터 받을 수도 있는 호의에 대하여 그들이 무관심한 듯한 태도를 보이더라도 우리는 그들을 너그럽게 용서할 수 있다. 그러나 만일 우리에게 가해질지도 모르는 침해 행위에 대하여 그들이 무관심한 듯한 태도를 보인다면, 우리는 결코 참을 수 없다.'고 지적했다.


나를 화나게 만드는 분개를 조금도 함께 나누어 가지지 않는다면

사고(思考)나 추측(推測)의 문제에 관한 판단이나 취향의 문제에 관한 감정에서 당신과 내가 완전히 상반된다고 하더라도 나는 그것을 쉽게 무시할 수 있다. 그리고 비록 내가 어느 정도 불만이 있더라도, 나는 여전히 당신과의 대화에서, 심지어는 나와 당신의 견해가 상반되는 바로 그 주제에 관한 당신과의 대화에서도, 어떤 즐거움을 발견할 수 있다. 그러나 당신이 내가 당한 재난에 대하여 어떠한 동류의식도 가지지 않거나 또는 나를 괴롭히고 있는 슬픔을 조금도 함께 나누어 가지지 않는다면, 또는 당신이 내가 당한 침해에 대해 전혀 의분을 느끼지 않는다면, 나를 화나게 만드는 분개를 조금도 함께 나누어 가지지 않는다면, 우리는 이것들을 주제로 더 이상 대화를 계속할 수 없다. 우리는 피차 서로를 용납할 수 없게 된다. 나는 더 이상 당신의 친구가 될 수 없고, 당신 역시 더 이상 나의 친구가 될 수 없다. 당신은 나의 분노와 격정에 당황하게 될 것이고, 나는 당신의 얼음처럼 차가운 무감각과 감정의 결핍에 분노하게 될 것이다.

 - 아담 스미스, 『도덕감정론』中에서


또한 아담 스미스는 '모든 소소한 사건들에 대하여' 민감하게 반응하는 것을 결코 나쁘게만 보지 않았다.


모든 소소한 사건들에 대하여

인간은 비교적 중요하지 않은 이유에서 생기는 비교적 작은 기쁜 일들에는 더욱 쉽게 동감한다. 크게 번영하고 있는 중에도 겸손할 수 있다는 것은 훌륭한 일이다. 그러나 일상생활의 모든 소소한 일들에 대해, 지난밤을 함께 보낸 친구들에 대해, 우리가 함께 즐겼던 여흥(餘興)에 대해, 우리가 보고 들은 것에 대해, 현재 대화의 대상이 되고 있는 모든 소소한 사건들에 대해, 인간의 삶의 빈틈을 채워주는 소소한 모든 것들에 대해서 우리가 아무리 큰 만족을 표현하더라도 지나치지 않을 것이다. 성격적으로 쾌활한 것보다 더 좋은 것은 없다. 이러한 성격은 일상적인 소소한 사건들이 제공하는 모든 작은 즐거움으로부터 특별한 흥미를 느낄 줄 아는 것에서 비롯된다. 우리는 이러한 성격에 쉽게 동감하며, 그리고 이러한 성격은 우리로 하여금 동일한 기쁨을 느끼게 하며, 그리고 우리로 하여금 행복한 성격을 타고난 사람들이 보는 것과 동일한 모든 사소한 일들의 유쾌한 측면을 보게 한다.

바로 이러한 이유로 청춘(靑春), 즉 모든 것에 즐거움을 느끼던 시절이 그처럼 쉽게 우리의 마음에 그리움의 대상이 되는 것이다. 사소한 것을 보고도 즐거워하는 이러한 성향은 심지어 꽃까지 피어나게 하고, 젊고 아름다운 눈들을 반짝거리도록 만든다. 이러한 성향은 같은 동성(同性)의 사람들 사이에서도, 나이든 사람까지, 평상시 이상으로 기쁨을 느끼도록 만든다. 그들은 잠시 동안 자신의 노쇠함을 잊어버리고 그들에겐 오래 전에 이미 낯 설어버린 유쾌한 생각과 정서에 자신들을 내맡긴다. 이처럼 많은 행복감을 느낌으로써 유쾌한 생각과 정서가 그들의 마음속에 다시 떠오르게 되면, 그들은 마치 오랫동안 서로 그리워하면서도 떨어져 있었기 때문에 다시 만나서는 그 동안의 오랜 이별 때문에 더욱 진심으로 껴안을 수 있는 친구처럼, 이러한 생각과 정서는 그들의 가슴속에 자리를 잡게 된다. 

 - 아담 스미스, 『도덕감정론』中에서


그런데, 최근 '알라딘 서재 뉴스레터'에 대한 어느 알라디너의 '반응'에 대해 두 가지 확연하게 엇길린 반응을 보인 건 '무슨 이유' 때문이었을까에 대해 곰곰히 생각해 보게 되면서, 나는 그것이 결국 '공정한 방관자'의 문제에 귀결되는 게 아닌가 하는 생각을 떨치기 힘들었다. 그리고 또 그것은 어쩌면  '지위에 대한 경쟁'과도 연관이 있지 않을까 싶은 생각을 해보게 되었다. 아담 스미스는 '이 세상 사람들이 온갖 고생을 다하면서 야단법석을 떠는 것'은 결국 '자기 자신의 지위의 개선'이라는 목적 때문이라고 보았다. 이 '경쟁'에 관해서는 이 글의 뒷부분에 가서 '이타적 호혜주의'를 언급할 때 조금 더 짚어볼 생각이다.


경쟁심의 기원

이 세상 사람들이 온갖 고생을 다하면서 야단법석을 떠는 것은 무엇을 위해서인가? 탐욕과 야심, 부와 권력 및 최고를 추구하는 목적은 무엇인가?  ······

인류 사회의 각계각층의 사람들 모두에게서 나타나는 경쟁심은 어디에서 생기는 것인가? 그리고 소위 자신의 지위의 개선이라고 하는 인생의 거대한 목적을 추구하는 것은 어떤 이익이 있어서인가? 남들로부터 관찰되고 주의와 주목을 받는다는 것, 그리고 그들로부터 동감과 호의와 시인(是認)을 받는다는 것이 바로 그것으로부터 얻을 수 있는 이익이다. 우리의 관심을 끄는 것은 안락이나 즐거움이 아니라 허영이다. 그러나 허영이란 항상 자신이 주위로부터 주목을 받고 시인의 대상이 되고 있다는 신념에 기초한다. 부유한 사람이 그의 부유함을 자랑하는 것은 그 부유함이 자연히 세간의 이목을 끈다는 것, 그리고 부유함이 그에게 제공한 모든 유쾌한 감정에 인간들이 쉽게 공감하기 마련이라는 것을 알기 때문이다. 이러한 생각을 하면 그는 가슴이 벅차오르고 자랑스러움을 느낀다. 그리고 그는 부유함이 가져다주는 다른 어떤 이익보다도 바로 그 이유 때문에 부자가 되기를 원하는 것이다.

인간생활의 노동의 반이 추구하는 목표


사람들은 자기 자신이 보편적인 동감과 주목을 가장 잘 받을 수 있는 지위에 있는 것이 엄청나게 중요한 일이라고 상상하는 것 같다. 그러므로 자리 또는 지위(地位: place)는, 고관 부인들의 사이를 갈라놓는 위대한 목표로서, 인간생활의 노동의 반은 이 목표를 추구하기 위해서이며, 그리고 이것은 탐욕과 야심이 이 세상에 끌어들인 모든 소란과 소동, 모든 강탈과 부정의 원인이 되고 있다.

 - 아담 스미스, 『도덕감정론』中에서
















지위

지위는 당신이 마음만 먹으면 남들을 도울 수 있는 자산을 소유하고 있다는 것을 많은 사람들이 알아주는 것이다. 그런 자산에는 아름다움, 독보적인 재능이나 전문성, 유력자들의 신뢰, 그리고 무엇보다 부가 포함된다. 지위를 뒷받침하는 자산들은 대용이 가능하다. 부는 인맥을 만들고, 인맥은 부를 만든다. 아름다움은 (선물과 결혼을 통해) 부로 전환되거나, 중요한 사람들의 주목을 끌거나, 감당할 수 있는 것보다 더 많은 구혼자를 끌어들인다. 그러므로 자산 소유자는 단지 자산 소유자로 보이지 않는다. 그들은 후광이나 카리스마를 발산하고 그 때문에 사람들은 그들의 총애를 받고 싶어한다.사람들이 당신의 총애를 원하게 만들면 항상 편리하므로, 지위는 그 자체만으로도 간절히 원할 가치가 있다. 그러나 하루의 시간은 정해져 있고 아첨꾼들은 누구에게 빌붙을지를 선택해야 하기 때문에 지위는 어디까지나 한정된 자원이다. A의 지위가 높으면 B의 지위는 낮을 수밖에 없으므로 사람들은 경쟁을 해야 한다.
 - 스티븐 핑커, 『마음은 어떻게 작동하는가』中에서


알라디너들이 보여준 '상반된 관점'에 대해서는 우선 이 정도로만 언급하고, 뒤이어 '알라딘과 알라디너의 상반된 이해관계'에 대해 조금 생각해 보면 '공정한 방관자'로서 결코 공감할 수 없는 점이 있다. [우리 자신의 행복에 방해된다는 이유만으로 다른 사람의 행복을 해치는 행위나, 어떤 것이 우리에게 마찬가지로 유용하거나 또는 그 이상으로 유용하다는 이유만으로 다른 사람들에게 실제로 유용한 것을 빼앗는 행위나, 또는 이와 마찬가지 방식으로 타인을 희생시켜 가면서 다른 사람의 행복보다 자신의 행복을 중시하는 천성적인 선호(選好)에 몰두하는 행위는 공정한 방관자로서는 결코 공감할 수 없는 것이다.]

자신의 행복 vs 전 세계의 행복

속담에 의하면, 모든 사람은 그 자신에게는 전 세계일지 몰라도 나머지 사람들에게는 전 세계의 지극히 하찮은 부분에 불과하다고 한다. 비록 그 자신의 행복은 그를 제외한 전 세계의 행복보다 중요하다고 하더라도, 그의 행복은 다른 모든 사람들에게는 그 이외의 다른 어떤 사람의 행복보다 더 중요하지 않다. 따라서 비록 모든 개인이 각자의 마음속에서는 자기 자신을 모든 인류보다 더 선호하는 것이 사실이라 할지라도, 그가 다른 사람들을 정면으로 똑바로 쳐다보면서 자신은 이 원칙에 따라서 행동할 것이라고 솔직하게 말해서는 안 된다. 

 - 아담 스미스, 『도덕감정론』中에서


이번에 알라딘에서 알라디너들이 만들어낸 컨텐츠에 대해  '거의 무제한적인 사용권'을 당당하게 주장한 것은 어떤 측면에서 보면 '고객과의 신뢰'를 깨트리는 행위에 가깝다고 생각해 볼 수도 있다.


불의의 만연

사회는 항상 서로에게 상처를 주고 침해를 입히려고 하는 사람들 사이에서는 존립할 수 없다. 서로에 대한 가해 행위가 시작되는 순간, 서로에 대한 분개와 증오가 나타나는 순간, 사회의 모든 유대관계는 산산 조각나고, 그 사회의 모든 구성원들은 그들 간의 불화 감정이 야기한 폭력과 대립에 의해, 사방으로 흩어지고 국외로 달아나게 된다.

만약 강도와 살인자들 사이에서도 어떤 사회가 존재하려면, 주지하는 바와 같이, 적어도 그들 간에 서로 강탈하거나 살해하는 것을 자제해야만 한다. 따라서 자혜(慈惠)는 사회를 유지하는 데 있어서 정의(正義: justice)보다 덜 중요하다. 비록 최선의 상태는 아닐지라도, 사회는 자혜 없이도 존속할 수 있다. 그러나 불의의 만연은 사회를 철저히 파괴시켜 버린다.
······
불의는 필연적으로 사회를 파괴한다. 따라서 불의가 나타날 때마다 인간은 놀라고, 그대로 놓아두면 그에게 소중한 모든 것을 급속하게 파괴시켜 버릴 불의한 사건의 진행을, 중지시키려 달려든다. 

 - 아담 스미스, 『도덕감정론』中에서


그래서 나는 이번 '알라딘 서재 뉴스레터'에 관한 일은 '알라딘의 조심성 없는 행동'에 가깝다고 생각한다. 


조심성 없는 행동

우리는, 한 사람의 조심성 없는 행동에 의해 다른 사람이 고통을 당해서는 안 되며, 비난받을 만한 부주의로 인해 발생한 손해는 부주의한 행위를 한 사람에 의해 배상되어야 한다는 것보다 더 공정한 것은 있을 수 없다고 생각한다.

 - 아담 스미스, 『도덕감정론』中에서 



어쨌든 사람들은 모두 '시인을 받을 가치가 있는 존재가 되는 것이 언제나 최고로 중요한 목적임에 틀림없다.'


시인을 받을 가치가 있는 존재가 되는 것

인간들 중에서 가장 약하고 가장 천박한 자들만이 자신들이 전혀 칭찬받을 만한 일을 하지 않았음을 알고 있으면서도 칭찬에 의해 크게 기뻐할 수 있다. 약한 사람은 때때로 그러한 칭찬을 기뻐할지도 모르지만, 지혜로운 사람은 모든 경우에 그것을 거부한다. 지혜로운 사람은 그가 칭찬받을 만한 일을 하지 않았으나 칭찬을 받는 경우 그러한 칭찬으로부터 전혀 기쁨을 느끼지 못하지만, 그러나 그가 칭찬받을 만한 일을 자신이 행했을 때에는, 비록 그것에 대하여 결코 칭찬이 부여되지 않을 것임을 스스로 잘 알고 있을지라도, 그는 흔히 최고의 기쁨을 느낀다, 시인을 받을 만하지 못한 경우 인류의 시인을 얻는 것은 그에게 결코 중요한 목적이 될 수 없다. 정말로 시인을 받을 만한 경우 사람들의 시인을 얻는 것은 때로는 그에게 그리 중요하지 않은 하나의 목적이 될 수는 있다. 그러나 시인을 받을 가치가 있는 존재가 되는 것은 언제나 최고로 중요한 목적임에 틀림없다.

 - 아담 스미스, 『도덕감정론』中에서


그리고 '언제든지 일반 세상 사람들의 악의적인 판단에 의해 매우 심하게 실망하기 쉽다.'

그러므로 그의 친구들 및 세상 사람들의 호의적인 판단만큼 그를 기쁘게 하는 것은 없고, 그 반대의 것만큼 그를 심하게 낙담시키는 것도 없다. 전자는 그가 자신의 업적에 대하여 받고자 열망하는 호평(好評)을 확인해 주고, 후자는 그것을 흔들어 놓는다. 경험과 성공의 축적이 결국 자신의 판단에 대한 좀 더 많은 확신을 그에게 줄 수 있다. 그러나 그는 언제든지 일반 세상 사람들의 악의적인 판단에 의해 매우 심하게 실망하기 쉽다.

라신(Racine)은 그의 첫 번째 작품인 비극 『패드라(Phaedra)』가 큰 성공을 거두지 못하자 너무 실망한 나머지 더 이상 작품을 쓰지 않기로 결심했다. 그런데 그의 이 작품은 그의 생명의 활기가 충만할 때, 그의 능력이 절정기에 있을 때 쓴 것으로 아마 현존하는 비극들 중에서는, 어떤 언어로 된 것이건 간에, 가장 뛰어난 비극일 것이다. 이 위대한 시인은 종종 그의 자식에게, 가장 무가치하고 부당한 비판이 언제나 가장 훌륭하고 정당한 찬사가 그에게 주는 쾌락의 정도보다 훨씬 더 큰 정도의 고통을 주었다고 말했다. 볼테르(Voltaire)가 같은 종류의 가장 경미한 비난에 대해 극도로 민감했던 것은 모든 사람들에게 잘 알려져 있는 사실이다.

 - 아담 스미스, 『도덕감정론』中에서


아담 스미스가 결국 그의 책 『도덕감정론』에서 주장하고 싶은 핵심은, 내가 판단하기로는, '공평무사한 중립적 방관자'인 것 같다.


양심, 가슴 속의 동거인(同居人), 내부 인간, 우리 행위의 재판관 및 조정자(調整者)

그것은 이성(理性), 천성(天性), 양심, 가슴 속의 동거인(同居人), 내부 인간, 우리 행위의 재판관 및 조정자(調整者)이다. 우리가 다른 사람들의 행복에 영향을 미칠 수 있는 일을 하려고 할 때마다 우리 내심의 가장 몰염치한 격정을 향하여 깜짝 놀랄 정도의 큰 목소리로 다음과 같이 소리치는 것은 바로 이 사람이다. 즉, 우리는 대중 속의 한 사람에 불과하고, 어떠한 점에 있어서도 그 속의 다른 어떠한 사람보다 나을 것이 없으며, 우리가 그처럼 수치(羞恥)를 모르고 맹목적으로 우리 자신을 다른 사람들보다 우선시킨다면 우리는 다른 사람들의 분개와 혐오와 저주의 정당한 대상이 될 것이라고, 우리가 우리 자신들에 관련된 모든 것이 실제로는 사소한 것이라는 사실을 배우는 것은 오직 이 중립적 방관자로부터이고, 이 중립적 방관자의 눈에 의해서만 자애(自愛)가 빠지기 쉬운 잘못된 생각을 바로잡을 수 있다. 관용의 적정성과 부정(不正)의 추악성, 우리 자신의 큰 이익보다 다른 사람들의 더 큰 이익을 위하여 우리 자신의 그것을 양보하는 것의 적정성과, 우리 자신의 최대의 이익을 얻기 위하여 다른 사람의 가장 사소한 이익까지 침해하는 행위의 추악성을 우리에게 보여 주는 것은 바로 이 공평무사한 중립적 방관자이다.

 - 아담 스미스, 『도덕감정론』中에서



② 보고 싶은 것만 보고, 믿고 싶은 것만 믿고 싶은 마음

사람들의 '마음'이 저지르는 실수들은 그동안 수많은 '심리학적 실험'들을 통해 상당한 수준에 이를만큼 자세히 밝혀 왔다. 특히나 최근에 급속한 발전을 이뤄내고 있는 '진화심리학' 분야의 성과들은 그동안 우리의 마음이 '저절로' 어떤 식으로 작동하게 되는 '이해하기 힘든 문제들'에 대해서조차 많은 해답들을 제시하고 있는 것 같다.

사람들이 어떤 사물이나 현상에 대해서 '제 나름대로' 엄청나게 다양한 시각들을 보여주는 이유는 무엇일까? 그것은 무엇보다도 각자의 '성격'이나 '경험' 등이 다르기 때문이기도 하고, 또 각자가 처한 '상황'이 다르기 때문이기도 할 것이다. 그런데 사람들마다 각자 어떤 대상이나 현상에 대해 '판단'을 내릴 때 나름대로 독특하게 '편향된 시각'을 보이는 주된 이유 가운데 하나는 '인지 부조화'라는 심리적 오류 때문이 아닐까 싶다. 그래서 '인지 부조화를 해소하기 위하여 사람들은 자신의 잘못을 인정하기보다는 자신의 결정을 극단적으로 합리화하는 형태로 나아가며, 자신이 알고 싶지 않은 정보를 스스로 차단하고 알고 싶은 것만 받아들이게 된다' 는 것이다.

내가 생각하기로는, 이번에 '알라딘 서재 뉴스레터'의 문제에 있어서도 여러 사람들이 결국 자기 자신이 보고 싶은 문제점만 부각시켜 보게 된 때문에, 정말로 놀랍도록 다양한 반응들이 쏟아져 나왔던게 아닌가 싶다. 알라딘의 횡포에 가까운 '무책임한 사용권 남용'에 분개한 사람들도 있었고, '공개된 글'에 대해서는 '무한에 가까운 책임'을 스스로 지녀야 한다는 사람들도 있었고, '댓글의 성격'에 따라 달리 반응하는 태도의 문제점을 지적하는 사람들도 있었고......


사람들의 성격

사람들의 성격도, 기예(技藝)의 창작물이나 정부기구와 마찬가지로, 개인과 사회의 행복을 촉진하는 데 적합할 수도 있고 방해하는 데 적합할 수도 있다. 신중, 공정(公正), 적극적, 과단(果斷), 진지한 성격은 그 사람 자신과 그와 관련이 있는 모든 사람들에게 번영과 만족을 약속한다. 반대로 경솔, 오만, 나태, 유약(柔弱), 방탕한 성격은 그 개인에게는 파멸을, 그와 관계를 맺고 있는 모든 사람들에게는 재난(災難)을 예고한다. 첫 번째의 심리상태는 적어도 가장 유쾌한 목적을 촉진하기 위해 발명되었던 가장 완전한 기계가 가질 수 있는 모든 미(美)를 가지고 있다. 두 번째의 심리상태는 가장 어색하고 졸렬한 발명품이 갖고 있는 모든 결함들을 다 가지고 있다.

 - 아담 스미스, 『도덕감정론』中에서


자기 감정 나름

자, 그렇게 이상한 자극들 앞에서 왜 동물들은 우리에게 그토록 이상하게 보이는 행동들을 할까? 예를 들어 왜 암탉은 결과를 어렴풋이 예측이나 하듯이, 지독하게 흥미 없는 둥우리 속의 알들을 밤새 온몸으로 품을까? 유일한 대답은 자기 감정 나름이라는 것이다. 우리는 짐승들의 본능을 단지 우리가 알고 있는 우리 자신의 본능을 기준으로 해석한다. 왜 사람들은 가능하다면 딱딱한 바닥이 아니라 푹신푹신한 침대에 누울까? 왜 사람들은 추운 날 난로 곁에 앉을까? 왜 방 안에서는 벽을 마주 보는 대신 얼굴을 중앙 쪽으로 향할까? 왜 딱딱한 비스킷과 개울물보다 양 등심과 샴페인을 좋아할까? 왜 젊은이는 아가씨에게 사로잡히고, 그래서 그녀의 일거수일투족이 세상의 어느 것보다 더 중요하고 의미심장하게 보일까? 그것이 인간의 방식이라는 것, 그리고 동물들은 저마다 각자의 방식을 좋아하고 그 방식을 따라 행동하는 것을 좋아한다는 것 외에는 달리 말할 것이 없다. 과학이 그 방식들을 신중히 고찰한다면 그것들 대부분이 유용하다는 사실을 발견할 것이다. 그러나 각자가 자신의 방식을 따르는 것은 유용함 때문이 아니라 그 방식을 따르는 순간 그것이 유일하게 적절하고 자연스러운 행동이라고 느끼기 때문이다. 수십억의 사람 중에서 단 한 명도 저녁을 먹으면서 유용성을 생각하지 않는다. 우리는 음식이 맛이 있고 그래서 더 먹고 싶기 때문에 먹는다. 만일 누군가가 왜 그런 맛의 음식을 더 먹고 싶어하느냐고 묻는다면 우리는 그 사람을 존경스런 철학자가 아니라 바보 같은 사람으로 여기고 비웃음을 던질 것이다.

이와 같이 동물들은 특정한 물건이 있으면 특정한 행동을 하고 싶어하는 것 같다. 알을 보면 품고 싶어하는 암탉은, 둥우리 속의 알이 너무나 매력적이고 소중해서 밤새 품고 있을 물건이라고 생각하지 않는 생물이 지구상에 존재하리라고는 꿈에도 생각하지 못할 것이다.

 - 스티븐 핑커, 『마음은 어떻게 작동하는가』中에서


③ 우리와 그들, 무리짓기에 대한 착각

마침 일주일 전에는 그 어떤 영화의 인상적인 장면보다 훨씬 더 극적이었던, '인류 역사를 바꾼 운명의 순간들'이라는 부제가 붙은 책『광기와 우연의 역사』를 쓴 슈테판 츠바이크의 표현을 빌리면 '역사의 피뢰침이 작동하는 순간'과도 같았던 9.11테러가 발생한지 10주년이 되는 날이었다. 그 사건을 실제 상황으로 TV화면으로 지켜봤던 사람들의 머릿속에는 새뮤얼 헌팅턴의 책 제목 그대로『문명의 충돌』을 실제로 바라보는 심정이었을 것이다. 그리고 리처드 도킨스가 『만들어진 신』이라는 책에서 '우리'와 '그들'의 신이 다르다는 단 하나의 차이 때문에 '종교'가 초래한 엄청난 비극들 가운데 첫 손에 꼽았던 사례 또한 9.11 테러였던 것 같다.

『우리와 그들, 무리짓기에 대한 착각』이라는 책을 통해 저자인 데이비드 베레비는 '우리와 그들'로 무리를 나눠 인식하려는 '인간 부류 감각'이 얼마나 뿌리깊은 것인지, 그리고 '마음'이 어떻게 세상을 만드는지에 대해 날카로운 설명을 보여줬다. 그리고 '인간은 서로 비슷한 사람들이 한패가 되는 것이 아니라, 한패가 되고 나서 서로 비슷해진다'고 지적했다.















인간은 단지 '부적절한' 부족에 속해 있다는 이유로 서로를 죽인다. 자신이 속한 부류의 사람들에게 친절하고 공손하며, 부모를 공경하고 자식을 아끼던 젊은이들이 일말의 가책도 없이 타인의 부모와 자식을 죽이는 일에 나선 사례는 지난 몇 년간만 해도 여러 차례 있었다. 2001년 9월 11일 뉴욕, 2004년 9월 1일 러시아의 베슬란, 1930∼1940년대 나치 지배하의 유럽에서 벌어진 일들이 모두 그런 사례다. 역사 속의 살인자들이 열성적으로 살인을 저지를 수 있었던 것은 희생자들이, 자신들이 아끼고 중요하게 생각하는 사람들과 같은 종류의 인간이 아니라고 믿었기 때문이다. ······

예컨대 1997년 8월 어느 날 밤 뉴욕에서는 그러한 결정적 상징이 작은 쇠붙이 조각이었다. 한 백인 경찰관이 체포한 흑인을 구타한 뒤, 두 사람이 함께 경철서 화장실에 들어가 있을 때였다. 거기서 경찰관은 흑인의 목에 걸린 작은 십자가를 발견했다. 그 경찰관이 경찰 대 용의자, 백인 대 흑인이라는 인간 뷰류의 지도 대신 두 명의 기독교인이라는 지도를 선택하게 만드는 데는 그것만으로 충분했다. 경찰은 자기도 예수를 믿는다고 말하며 그에게 사과했다.

1994년 5월 6일 르완다의 소부(Sovu)에서는 그러한 상징이 한 조각의 천이었다. 이날 투치족 난민들이 후투족을 피해 소부의 수녀원으로 도망쳐오자, 수녀원장이던 게르트루드 수녀는 후투족 민병대에게 이 사실을 알렸다. 수백 명의 투치족이 총칼에 난도질당하고 불에 태워졌지만, 게르트루드 수녀는 투치족 수녀들만은 넘겨주지 않았다. 베일이 그들을 살린 것이다. 그런데 거기에는 한 수녀의 사생아였단 알린이라는 19세 여성이 있었다. 그녀가 베일을 달라고 간청했지만 게르트두르 수녀는 이를 거절했다. 그로부터 7년 뒤, 게르트루드 수녀는 벨기에에서 전범으로 기소되었다. 증인들 중에는 살해된 알린의 어머니도 있었다. 그녀는 "내 딸은 작은 천 조각 하나 때문에 죽었다"고 말했다. ······ 광포한 학살자 무리로부터 살아남느냐, 희생자가 되고 마느냐를 결정하는 상징적인 천 조각이야말로 호모사피엔스만이 창조해낼 수 있는 것이다.

 - 데이비드 베레비, 』우리와 그들, 무리짓기에 대한 착각』 中에서















먹는 것과 못 먹는 것

······ 사람들의 도덕적 범위에는 모든 인간이 아니라 자신의 친족, 마을, 부족의 구성원들만 포함된다는 사실을 기억하면 이 모순을 이해할 수 있다. 그 범위 안에 포함된 사람들은 공감의 대상이고, 범위 밖에 있는 사람들은 돌이나 강이나 음식물처럼 취급된다. 이전의 한 책에서 나는 아마존에 사는 와리 부족의 언어에는 먹는 것과 못 먹는 것을 구별하는 일련의 명사 분류사가 있는데, 그 부족의 구성원이 아닌 사람은 누구나 먹는 것으로 분류된다는 사실을 언급한 적이 있다.

식인 풍습과 동물 해방

우리에게 식인 풍습은 아주 불쾌한 것이어서 오랫동안 인류학자들 조차도 그것이 선사 시대에 일반적이었다는 사실을 인정하지 않았다. 우리는 쉽게, 어떻게 사람들이 그렇게 끔찍한 행동을 할 수 있을까라고 생각한다. 그러나 동물의 권리를 옹호하는 운동가들도 육식을 하는 사람들을 그런 식으로 생각한다. 육식을 하는 사람들은 무수한 생명을 죽음으로 몰 뿐 아니라 그렇게 하고도 눈 하나 깜짝하지 않는다. 소를 마취도 시키지 않은 채 거세시키거나 낙인을 찍고, 낚싯바늘로 물고기의 입을 꿰뚫어 잡아 올린 다음 보트 바닥에 내동댕이쳐 헐떡거리게 하고, 바다 가재를 산 채로 삶는다. 내 요점은 채식주의를 도덕적으로 옹호하는 것이 아니라, 인간의 폭력과 잔인성에 대한 사고 방식을 조명해 보자는 것이다. 역사학과 민족지학에서는 마치 우리가 바다 가재를 취급하듯이 사람들이 타인을 취급할 수 있음을 보여준다. 그리고 그런 행동에 대한 우리의 몰이해는 우리의 행동에 대한 동물 권리 운동가들의 몰이해와 비교될 수 있다. 『확대되는 원』의 저자 피터 싱어가 『동물 해방』의 저자인 것은 우연의 일치가 아니다.

 - 스티븐 핑커, 『빈 서판』 中에서


우리는 어쨌든 '무리짓기에 대한 착각'으로부터 벗어나 '평화로운 공존'을 생각해야 한다. 그 해결책으로 로버트 트리버스가 찾아낸 것이 바로 '호혜적 이타주의'라는 것이다.


호혜적 이타주의

실험을 통해 확인한 바에 따르면, 사람들이 이방인을 가장 돕고 싶어하는 경우는, 낮은 비용으로 그를 도울 수 있을 때, 그에게 도움이 필요할 때, 그리고 그가 보답을 할 수 있는 위치에 있을 때라고 한다. 사람들은 자기에게 호의를 베푸는 사람, 자기가 좋아하는 사람에게 호의를 베푸는 사람, 베풀 수 있는 호의를 베풀지 않았을 때 죄 의식을 느끼는 사람, 자기에게 호의를 베풀지 않은 사람을 응징해 주는 사람을 좋아한다.


폭력적 본능

홉스는 흔히 자연 상태의 인간은 서로를 증오하고 파괴하는 비합리적 충동에 사로잡힌 존재라고 주장하는 철학자로 해석되고 있다. 그러나 그의 분석은 보다 섬세하고 어쩌면 훨씬 더 비극적일 수 있다. 왜냐하면 그는 합리적이고 이기적인 행위자들의 상호 작용으로부터 어떻게 폭력이 발생하는가를 설명했기 때문이다. 홉스의 분석은 진화 생물학, 게임 이론, 사회 심리학 분야에서 재발견되고 있으며, 나 역시 그의 분석을 토대로 해서 폭력의 논리를 논한 다음 인간이 어떻게 폭력적 본능을 중화하기 위해 평화적 본능을 구사하는가의 문제로 넘어가고자 한다.

다음은 그 유명한 "인간의 삶"에 관한 구절 앞에 제시된 분석이다.

인간의 본성에서 우리는 싸움의 세 가지 주된 요인을 발견한다. 첫째는 경쟁이고, 둘째는 자신감 결여이고, 셋째는 영광이다. 첫 번째는 인간이 이익을 위해 서로를 공격하게 만들고, 두 번째는 안전을 위해 서로를 공격하게 만들고, 세 번째는 가령 말 한마디, 미소, 견해 차이를 비롯하여, 본인이 직접 겪는 것이든 혈연, 친구, 국가, 직업, 이름 등을 통해 간접적으로 겪는 것이든 자신을 무시하는 갖가지 사소한 이유들 때문에 서로를 공격하게 만든다.

첫째는 경쟁이다. 자연 선택의 힘은 경쟁에 있는데, 그것은 자연 선택의 산물들-리처드 도킨스의 비유에 따르면 생존 기계들-이 생존과 번식에 도움이 되는 일이면 어떤 것이든 미리 정해진 디폴트 값에 따라 수행해야 한다는 것을 의미한다. (중략)

둘째, "불신"의 원래 의미는 자신감 결여(diffidence)이다. 투키디데스의 『펠로폰네소스 전쟁사』를 번역한 홉스는 "전쟁이 불가피해진 것은 성장하는 아테네의 힘과 그에 대해 스파르타가 느낀 두려움 때문이었다."라는 설명에서 깊은 인상을 받았다. 만약 이웃이 내가 가진 것을 몹시 탐낸다면 나는 그들의 욕구를 가로막는 장애물이 된다. 따라서 나는 자신을 방어할 준지를 해야 한다. 방어란 성벽, 마지노선, 대탄도 미사일 등의 첨단 기술을 망라해도 불확실한 방법이고, 그런 것이 없으면 더욱 미심쩍고 불확실하다. 자기 보호를 위한 가장 확실한 방법은 잠재적으로 적대적인 이웃에게 선제 공격을 퍼부어 쓸어 버리는 것일 수 있다. 요기 베라의 충고대로 "최상의 수비는 최상의 공격이고, 또 최상의 공격은 최상의 수비이다."

셋째는 영광인데 보다 정확한 단어는 "명예"일 것이다. 인간은 "말 한마디, 미소, 견해 차이를 비롯해 자신을 무시하는 갖가지 사소한 이유들 때문에" 싸운다는 홉스의 말은 17세기에나 지금에나 사실이다. 

- 스티븐 핑커, 『마음은 어떻게 작동하는가』 中에서


④ 컨텐츠의 중요성과 합리적 사용에 대한 이해상충의 문제

개인적인 경험으로는 한때(7∼8년쯤 전에) 직업적인 이유 때문에 '컨텐츠의 중요성'에 대해 상당한 관심을 기울인 적이 있었다. 그리고 '문화 컨텐츠'를 핵심사업으로 하는 어떤 기업에 상당한 규모로 투자한 적이 있었다. 그 회사는 수년 동안 성과가 지지부진하였고, 주가 역시 지지부진한 상태를 벗어나지 못했으나 어느 한 순간 '증권시장의 피뢰침이 작동했는지' 미친듯이 주가가 치솟는 바람에 '흥분의 도가니'를 맛볼 정도로 '결과'는 좋았다.

최근 주식시장의 흐름이 '우리'에겐 '그들'에 불과한 '미국과 유럽'의 문제로 인해 급락세를 면치 못하고 있지만, 유독 이런 혼돈스러운 장세 속에서도 홀연히 빛나는 종목들이 있다. 소위 말하는 '컨텐츠' 주식들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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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렇다고 내가 이 글에서 이들 종목을 추천하는 것은 절대 아니다. 내가 말하고자 하는 요지는 '알라딘'에서도 소위 말하는 '유저'(알라디너)들이 스스로 만들어낸 '디지털 컨텐츠'에 대한 중요성을 '깊이' 인식하고 있는 것 같다는 점이다. 결국 중요한 것은 '스토리'와 그 스토리를 '전달하는 기술'인 것 같다.















"호머(Homer), 초서(Chaucer), 그리고 세익스피어(Shakespeare) 시대로부터 오늘날에 이르기까지 그 전달 매체가 무엇이건 간에 중요한 것은 스토리와 그 스토리를 전달하는 기술이었다." (마이크 아이스너, 월트 디즈니 前 CEO)

 - 마키노 요,『나는 사람에게 투자한다』 中에서


그런데, 알라딘은 아직 '스토리를 전달하는 기술'을 사용하는데 익숙치 못한 것 같다(그 점은 나 역시 마찬가지이다. 이 글만 하더라도 그렇다. 이야기의 주제도 뚜렷하지 못하며, 내가 말하고자 하는 이야기를 '전달하는 기술'이 산만하기 그지없다). 그러나 알라딘이 최근에 유저(사용자)인 알라디너 스스로 끊임없이 만들어 내는 다양한 컨텐츠를 좀 더 잘 '활용'하기 위해 적극적으로 뭔가를 시도하고 있는 점은 어느 측면에서는 환영할 만한 일이라고 본다(알라딘이 생존경쟁에서 살아남지 못하면 결국 유저들인 알라디너들도 더이상 여기에 붙어 있을 수 없으므로). 아직 판단하기에는 너무 이른 감이 있지만 최근 종로에 열었다는 '알라딘 중고서점' 역시 '시도'는 훌륭하다고 본다.


⑤ 합리적 해결방식, 고객을 소중히

알라딘을 사용하면서 많은 분들이 '알라딘식(?) 문제 해결 방식'에 나름대로 상당한 불만을 가졌던 적이 있었고, 그 점은 아직까지도 '현재진행형'이 아닐까 싶은 생각이 든다. 의사소통능력의 부족이 빚어내는 '불통'이 상당한 문제점으로 보이는데 그것보다 더 중요해 보이는 건 '고객'을 대하는 태도와 '고객과의 신뢰'를 중시하는 '바탕'이 아닐까 싶다.

예전 글에서도 인용했듯이, [플라톤의 신성한 잠언(箴言)이라고 키케로(Cicero)가 정확하게 부른 것, 즉 자기 부모에 대해 폭력을 사용해서는 안 되는 것처럼 자기 조국에 대해서도 폭력을 사용해서는 결코 안된다는 말]처럼, 어떤 영리조직이든 자기 자신의 고객에 대해서는 결코 폭력(혹은 폭력이라고 느낄 만한 '힘')을 사용해서는 안된다고 나는 생각한다.

정말로 중요한 것은 '기본에 충실'하는 것이다.
















결론적으로 초우량 기업에 있어 경영의 핵심은 다른 경쟁 기업과 비교해서 그저 어딘가 모르게 다르다는 정도가 아닌 것이다. 그들의 차별성은 경영학에서 상식으로 통하지만 모든 사람들의 관심에서 멀어져 있는 기본에 충실하라는 말을, 실제 현장에서 충실히 지키고 있다는 데서 찾을 수 있다.

 - 톰 피터스,『초우량기업의 조건』 中에서


찰스 다윈은 '관찰 전에 추리하는 것은 필요하고 관찰 후에 추리하는 것은 유용하지만, 관찰 중에 추리하는 것은 치명적인 실수이다'라고 말했다. 그런 측면에서 내가 이번 문제에 대해 나름대로 '관찰 후에' 정리해본 내용은 결국 다음과 같다.

아무리 알라딘이라는 인터넷 공간에 '공개적으로' 쓴 글이라고 하더라도, '공개된 글의 작위적인 편집 가능성 혹은 거의 제한없는 사용권'에 대해서는 '일반적인 상식'이 강력하게 항의하고 있다고 생각한다. 결국 문제라면 그 문제에 대해 알라디너가 반응한 '태도' 혹은 '대처방식'에 있는 것이지(어떤 문제에 대한 과도하게 지나친 반응에 대해서는 통상적으로 다른 사람들의 공감을 쉽게 얻지 못하거나 심지어 경멸하려는 태도까지 불러 일으킬 수 있다고 본다), 알라디너가 문제를 제기할 수 밖에 없었던 '근본 원인' 즉 '화제의 서재글'이 '그런 식으로까지' 광범위하게 알라딘 서재 뉴스레터 독자들에게 일일이 이메일로 배달될지 몰랐다는 점에 대해서는, 알라딘에서도 분명히 '문제가 있었다는 점'을 뒤늦게 깨닫고(어쩌면 처음부터 '혹시나' 문제가 되지 않을까 하는 일말의 염려를 했을 수도 있겠다 싶다) '어떤 식으로든' 개선조치를 취한 게 아닐까 싶다(내 생각으로는, 합리적이고 바람직한 뒷수습이라기 보다는 대충 무마하고 넘어가는 어정쩡한 땜질식 처방에 가까웠다고 본다).

그리고, '공개된 글이므로 거의 무제한적인 사용의 수용과 비판을 감수해야 한다는 입장'이 다수의 견해라고 받아들여야 한다면, 그리고 정당한 문제 제기를 한 것으로 보여지는 알라디너가 결과적으로 겪게 된 고통에 대해서 공감하기에 앞서 그 문제제기 방식의 서투름부터 나무란다면, 이 곳 알라딘의 앞날에도 '어두운 그림자'가 드리우는 것은 아닐까 걱정스럽고, 결국 알라딘이나 알라딘 서재를 이용하는 알라디너에게나 '합리적인 문제 해결'의 길을 버리고 마녀사냥식의 해결방식을 선호하는 '어두운 세계'에 발을 들여 놓는 것이라고 나는 생각한다.

다시 '도덕감정'이라는 주제로 되돌아와서 얘기해 보자면, '그것은 서로 도와주고 지켜주는 모든 동물에게 고도로 중요한 것의 하나이기 때문에 자연선택에 의해 증가'되었을 감정이라는 것이다.
















다윈은 '사회적 미덕의 발달을 위한 또 하나의 다른, 그리고 더 강력한 자극은 우리 동료로부터의 칭찬과 비난에 의해 주어진다'고 말한다. 동료의 시인을 얻는 행동이 항상 이루어지도록 자극되었다고 생각하는 것이다. 이렇게 해서 점차 도덕적 행위가 쌓여 서서히 몸에 매어서 '용기있고 동정심이 많으며 충실한 구성원을 많이 가지고, 언제나 서로 위험은 바로 경고하고, 서로 돕고 지키는' 부족은, 그렇지 않은 부족과의 싸움에서 승리하여 사회적 자질, 도덕적 자질이 높은 인간이 늘고 퍼져 간다고 생각한다. 집단 생존투쟁의 승리이다.

'제아무리 복잡한 방식으로 이 감정이 생겼다 하더라도 그것은 서로 도와주고 지켜주는 모든 동물에게 고도로 중요한 것의 하나이기 때문에 자연선택에 의해 증가되었을 것이다. 왜냐하면 가장 동정적인 성원을 최대한 가지는 공동체가 가장 번영하고 최대수의 자손을 키웠을 것이기 때문이다.'

도덕감각에 대해 다윈은 J.S.밀이 말한 '도덕감정이 천성적인 것이 아니라 얻어진 것이라 하여도 그 때문에 본디의 것이 아니라고 하는 말은 아니다'를 주로 인용하면서 동물의 사회적 본능과 결부된 천성의 감각임을 설명하고 있다.

'다음 명제는 고도로 개연적이라고 생각된다. 즉 부모와 자식의 애정을 포함해 현저한 사회적 본능이 풍부한 동물이라면, 어떤 동물도 그 지적인 능력이 인간과 같거나 혹은 그에 가까운 정도까지 발달하면 당장 도덕 감각, 혹은 양심을 획득할 것이다.'

 - 다윈, 『종의 기원』中에서(책의 말미에 실린 '다윈의 생애와 사상' 中에서)

(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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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1-09-20 08:34   URL
비밀 댓글입니다.

2011-09-20 10:09   URL
비밀 댓글입니다.

신지 2011-09-20 14:29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글 잘 읽었습니다. 방명록에 쓴 글에 댓글을 확인하러 왔다가, 이 글 지금에야 보게 됐습니다.
(방명록에 마고님과 마립간님 글에는 답글이 있지만, 제 글에만 답글이 없더군요.)
보면은 오렌님과 저는 여러모로 관심사가 비슷한 듯 싶습니다. (한사람님의 서재에서도 그런 것을 좀 느꼈구요)
인용하시는 글들도 대부분 제 '관심사'와도 비슷해서 항상 공감이 잘 되더군요.

다만, 며칠 전 오렌님이 저의'초월적 입장'이라는 글에 주신 인용문은 (도대체 제 글과 무슨 상관이 있는지 ! )
정말 이해가 안 되더군요.

그런데 이 글에서 <'공평무사한 중립적 방관자'> 라는 것을 언급하시는 것을 보면,
저('초월적 입장'이라는 글)에게 이의를 말씀하시는 게 아닌가 싶습니다.

그렇다면, 제 글('초월적 입장'이라는 글)에 오렌님이 남겨주신 댓글은
오렌님이 저에게 뭔가 '깨닫게' 해 주시려고 그처럼 '선문답'같은 인용글을 주신 것인지 궁금합니다.

추석 전에 저에게 뜬금없이 남겨 주신 댓글도 혹시 (사실은) 불만 때문이셨는지요?

그런 것은 다 괜찮습니다.

다만 그렇다면, 자신의 태도를 감추는 모호한 댓글, 인용글을 남기신 것은 (지금 이 글을 보고 나니)
저로서는 좀 불쾌하군요.

(제가 알듯모를듯한 댓글을 싫어한다는 것은 얼마전 마립간님에게도 말했지만,
예전에도 알라딘에서 여러번 말한 적이 있습니다..)

http://blog.aladin.co.kr/cjsak/4266256

이 글과 인용문들은 제가 보기에 읽는 사람에 따라 다르게 받아들이고, 오해할 수 있게,
무척 두루뭉술하게 쓰여져 있습니다.
<이 인용문과 오렌님의 말씀이 어떤 연관이 있을까> 라는 부분에서 말입니다.
즉 오렌님이 말씀하시고자 하는 것이 모호합니다.

누가 읽으면 내게 말하는 건가 싶고, 비판하는 것인지, 생각이 다르다는 것인지, 자신은 아담 스미스와 같은 입장이고 다른 사람들은 그렇지 않다는 것인지....... 말입니다.

불필요한 오해를 줄이기 위해, 질문을 하나 하겠습니다.
오렌님이 저에게 이견이 없는 부분은 어떤 것이고,
이견이 있는 부분은 어떤 것이 있을까요?

oren 2011-09-20 15:52   좋아요 0 | URL
신지님 반갑습니다.

신지님의 긴 댓글을 보니 솔직히 '겁'부터 덜컥 나는군요. ㅎㅎ

신지님께서 워낙 '칼날처럼' 예리한 비판을 하시는 분이어서 저로선 사실 '여러모로' 신지님의 날선 비판을 감당하기 힘들 것 같다는 생각도 솔직히 들거든요.

우선, 신지님께서 제 방명록에 고마운 댓글을 남겨주셨는데 '여태껏' 꾸물거리다가 댓글조차 남겨 드리지 못한 점에 대해서는 죄송하다는 말씀을 드립니다. 신지님께서 남겨주신 글은 진작에 봤는데, 어쨌든 제 불찰로 아직까지도 답글을 남겨드리지 못했습니다. 신지님께 '정말 고맙습니다'라는 한 마디라도 남겼더라면 불필요한 오해는 없었을텐데, 신지님께 함부로 어설픈 댓글을 달았다가는 또다른 오해를 불러 일으킬 수도 있겠다 싶어서 좀 꾸물거렸던 게 그만 일이 꼬인 것 같습니다. 다른 뜻은 추호도 없었으니 제발 오해하지 않으셨으면 좋겠습니다.

제가 신지님을 얼마만큼 납득시킬 수 있을지는 잘 모르겠지만 지금부터 성의껏 답변해 보겠습니다.

* * *

① 다만, 며칠 전 오렌님이 저의'초월적 입장'이라는 글에 주신 인용문은 (도대체 제 글과 무슨 상관이 있는지 ! )
정말 이해가 안 되더군요. 그런데 이 글에서 <'공평무사한 중립적 방관자'> 라는 것을 언급하시는 것을 보면,
저('초월적 입장'이라는 글)에게 이의를 말씀하시는 게 아닌가 싶습니다. 그렇다면, 제 글('초월적 입장'이라는 글)에 오렌님이 남겨주신 댓글은 오렌님이 저에게 뭔가 '깨닫게' 해 주시려고 그처럼 '선문답'같은 인용글을 주신 것인지 궁금합니다.

---> 신지님께서 '초월적 입장'이라는 글에서 쓰신 내용에 대해 저 또한 '적극 공감한다'는 뜻의 댓글을 남기고 싶었습니다. 그런데 마침 데이비드 베레비의 책 구절에서 봤던 '데페이즈망(depaysement)'이라는 말이 떠올라서, 아하~ 신지님께서 이 글에서 '말씀하시고 싶어하시는 내용'이 바로 이런 걸 두고 하는 거로구나 싶어서 인용했던 것입니다. 제가 쓴 댓글이 다소 모호하다는 신지님의 댓글을 보고 나서, 제가 댓글로 '인용의 한계'를 언급한 것도 그런 측면이었습니다. 오해가 없으셨기를 바랍니다.(오해하셨다면 제 책임이 큽니다)

② 추석 전에 저에게 뜬금없이 남겨 주신 댓글도 혹시 (사실은) 불만 때문이셨는지요?

---> 정말 밤 늦게까지 축구중계를 보다가 우연히 신지님께서 오래 전에 올려 놓으신 긴 글을 읽게 되었는데, 참으로 논리정연하고 '빈틈이 없을 정도로' 날카로운 비판을 하신 글이어서, 저 또한 '적극 공감한다'는 취지로 밤늦은 시각임을 무릅쓰고 댓글을 달았던 것입니다. 그리고 신지님께서도 제 댓글에 공감해 주셔서 댓글을 쓴 '보람'을 느꼈었구요. 이 댓글에 대해서도 신지님께서 '일말의 오해'를 하셨다면 그것 또한 제 불찰입니다.

③ 다만 그렇다면, 자신의 태도를 감추는 모호한 댓글, 인용글을 남기신 것은 (지금 이 글을 보고 나니)
저로서는 좀 불쾌하군요. (제가 알듯모를듯한 댓글을 싫어한다는 것은 얼마전 마립간님에게도 말했지만,
예전에도 알라딘에서 여러번 말한 적이 있습니다..)

---> 신지님께서 평소에도 날카로운 지적을 하시는 모습을 저 또한 가끔씩 지켜본 적이 있습니다. 그래서 솔직히 신지님이 겁이 좀 납니다. ㅎㅎ 제가 무슨 의도를 가지고 '모호한 댓글과 인용글'을 남긴 것은 아닌데, 제 댓글 때문에 '불쾌'하셨다면 이 곳 공간을 빌어 진심으로 신지님께 사과를 드립니다.

④ 이 글과 인용문들은 제가 보기에 읽는 사람에 따라 다르게 받아들이고, 오해할 수 있게, 무척 두루뭉술하게 쓰여져 있습니다. <이 인용문과 오렌님의 말씀이 어떤 연관이 있을까> 라는 부분에서 말입니다. 즉 오렌님이 말씀하시고자 하는 것이 모호합니다.누가 읽으면 내게 말하는 건가 싶고, 비판하는 것인지, 생각이 다르다는 것인지, 자신은 아담 스미스와 같은 입장이고 다른 사람들은 그렇지 않다는 것인지....... 말입니다.

----> 그런 측면이 충분히 있다고 저도 인정합니다. 어떤 말이든 '비유적으로' 혹은 '중의적으로' 해석될 여지는 있습니다. 그런 부분을 명료하게 가다듬지 못한 것도 제 글쓰기의 한계일 것입니다. 저 역시 이 글을 쓰면서 신지님께서 지적해 주신 부분이 '걱정'된 것도 사실입니다. 그래서 아우렐리우스의 명언록 가운데 일부를 인용한 것이기도 하구요. 신지님께서 지적하신 부분은 제가 감수해야 할 부분이라고 생각합니다. 신지님의 비판을 겸허히 수용하겠습니다.

⑤ 불필요한 오해를 줄이기 위해, 질문을 하나 하겠습니다. 오렌님이 저에게 이견이 없는 부분은 어떤 것이고, 이견이 있는 부분은 어떤 것이 있을까요?

----> 솔직히 신지님의 이 '질문'에 대해서는 저로서는 '질문의 범위'를 구체적으로 파악하기 힘이 드는군요. 조금 더 구체적으로 말씀해 주시면 제 능력껏 답변해 드리겠습니다.

고맙습니다.

신지 2011-09-20 18:48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ㄱ.
제가 무슨 의도를 가지고 '모호한 댓글과 인용글'을 남긴 것은 아닌데, 제 댓글 때문에 '불쾌'하셨다면 이 곳 공간을 빌어 진심으로 신지님께 사과를 드립니다.

ㅡ> 아 그렇다면, 오히려 저의 불찰이지, 오렌님이 사과하실 일이 아닌 것 같습니다.

ㄴ.
어떤 말이든 '비유적으로' 혹은 '중의적으로' 해석될 여지는 있습니다. 그런 부분을 명료하게 가다듬지 못한 것도 제 글쓰기의 한계일 것입니다.

ㅡ> 이전에도 사실 저는 여러번 온라인의 대화가 어렵다는 것을 말한 바가 있는데요, 이는 오렌님만의 문제가 아니라, 저도 그렇고, 누구든 다 그렇지 않은가 싶습니다.

ㄷ.
* 다른 뜻은 추호도 없었으니 제발 오해하지 않으셨으면 좋겠습니다.
* (오해하셨다면 제 책임이 큽니다)

ㅡ> 제 생각에는, 어떤 글이나 주장에는 동의, 이견, 비판, 질문 등을 할 수 있을 것입니다. 그렇다면 저는 <의사소통> 목적의 '질문'을 드린 거였어요. 즉 오해와 착각 등 의사소통의 어려움에 대해서 여러번 말하기도 했고, 저는 고민도 많은데요, 혹시 제가 착각하는 게 아닐까 싶어서요, 질문을 드린 것이니 그점에 대해서는 부디 개의치 말아 주세요. ;;;;;

ㄹ.
조금 더 구체적으로 말씀해 주시면 제 능력껏 답변해 드리겠습니다.

ㅡ> 그런데 제가 굳이 오해를 무릅쓰고 ( = 오해했을지도 모르는데), 댓글을 남긴 것은요,
이 글이 읽기에는 독자에 따라서, 제 글에 대한 비판이나 반론으로 여길 수도 있을 듯 해서요.
저는 마립간님의 '초월적 입장'에 대해서 여러번 비판을 했고,
오렌님은 '공평무사한 중립적 방관자'에 대해서 쓰셨으니까요.

만약 그렇다면( =비판이나 반론이라면), 그 부분에 대해서 당연히 해당 글쓴이(저) 또한 해명하고 싶을 것이고, 당연히 기회가 주어져야 한다고 생각합니다. 그런데 무엇에 대한 비판인지, 누구에게 하는 말인지, 비판인지 아닌지- 가 불분명하면 독자들이 오해하게 되는 반면, 비판 받는 사람으로서는 해명할 기회조차 얻지 못할 것입니다. 강준만은 예전에 문학논쟁 땐가요, 비실명 비판의 문제점에 대해서 여러번 비판한 적이 있는데, 제 생각도 그렇습니다..


oren 2011-09-20 21:15   좋아요 0 | URL
신지님의 댓글 잘 읽었습니다.

신지님께서 댓글을 달아 주신 순서대로 제 의견을 말씀 드려 보겠습니다.

우선, 신지님께서 여러차례 강조하셨듯이 <의사소통과정>에서의 오해와 착각 등에 대해 말씀해 주신 부분에 대해서는 저도 공감을 많이 느낍니다.

① ㅡ> 그런데 제가 굳이 오해를 무릅쓰고 ( = 오해했을지도 모르는데), 댓글을 남긴 것은요, 이 글이 읽기에는 독자에 따라서, 제 글에 대한 비판이나 반론으로 여길 수도 있을 듯 해서요. 저는 마립간님의 '초월적 입장'에 대해서 여러번 비판을 했고, 오렌님은 '공평무사한 중립적 방관자'에 대해서 쓰셨으니까요.

만약 그렇다면( =비판이나 반론이라면), 그 부분에 대해서 당연히 해당 글쓴이(저) 또한 해명하고 싶을 것이고, 당연히 기회가 주어져야 한다고 생각합니다. 그런데 무엇에 대한 비판인지, 누구에게 하는 말인지, 비판인지 아닌지- 가 불분명하면 독자들이 오해하게 되는 반면, 비판 받는 사람으로서는 해명할 기회조차 얻지 못할 것입니다. 강준만은 예전에 문학논쟁 땐가요, 비실명 비판의 문제점에 대해서 여러번 비판한 적이 있는데, 제 생각도 그렇습니다..

(제 답변)

제가 이 글을 쓰면서 [신지님이 쓰신 '초월적 입장'이라는 글을 제가 비판하는 입장에서 '공평무사한 중립적 방관자'를 내세워 쓴 것]은 결코 아닙니다.

지금에 와서야 신지님의 말씀을 듣고 보니, 신지님께서 '제 글을 읽고나서' 어떤 식으로든 해명하고 싶다는 느낌이 들었을 수도 있겠다 싶습니다. 그 점(신지님께서 오해하신 점)은 제가 미처 생각지도 못했습니다. 신지님의 말씀을 듣고 보니, '초월적 입장'이라는 신지님의 글에 대해서 제가 상당한 공감을 느꼈으면서도 왜 제가 이번 글을 통해 '공평무사한 중립적 방관자'를 그토록 강조하므로써, 제 본래의 의도와는 전혀 상관없이 신지님의 마음을 불편하게 했는지 뒤늦게 알았습니다.

신지 2011-09-20 19:00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예를 들어, 오렌님은 이렇게 말씀하십니다.

" 알라딘의 횡포에 가까운 '무책임한 사용권 남용'에 분개한 사람들도 있었고"

ㅡ> 저는 "알라딘의 횡포에 가까운 '무책임한 사용권 남용'"이라는 것에 동의하지 않습니다.

"'공개된 글'에 대해서는 '무한에 가까운 책임'을 스스로 지녀야 한다는 사람들도 있었고"

ㅡ> 또 저는 과연 "무한에 가까운 책임"이라고 말한 사람이 있는지, 그렇게 생각하는 사람이 있는지, 궁금합니다.

그렇다면 사람들에게는, 각자 같은 사안에 대해서도, 이런 '시각차'가 있는 것 같습니다.

저는 그런데 사람마다 '시각차'가 있을 수 있다고 생각하므로,
저는 오렌님의 글이 그냥 이번 서재뉴스사건에 대한 자신의 견해나 생각을 밝히는 것이라면 그다지 불만이 없습니다.
그것은 제 글에 달린 저의 댓글 등에서도 알 수 있는 일입니다 :

" 이런 문제에 있어서, 마고님과 마고님을 이해해 주신 다른 분들 모두, 각자의 개인적인 판단이 있을 것이고 존중해야한다는 게 저의 기본적인 생각입니다. 누가 잘못한 것이 있다기 보다는, 이견이 있다, 서로 좀 입장이 다른 것- 이라고 생각하는데요(...) ㅡ 신지 "

그러나 오렌님의 글은 '누구에게나 적용되는' 포괄적인 <인용문>의 대거 사용으로 인해,
오해의 여지가 너무 많은 듯 해서요.

다시 말씀 드리지만, 그 인용문이 <무엇에 대한 비판인지, 누구에게 하는 말인지, 비판인지 아닌지- 가 불분명하면> 독자들이 오해하게 되는 것 같아서요..


oren 2011-09-20 21:20   좋아요 0 | URL
① 예를 들어, 오렌님은 이렇게 말씀하십니다." 알라딘의 횡포에 가까운 '무책임한 사용권 남용'에 분개한 사람들도 있었고"
ㅡ> 저는 "알라딘의 횡포에 가까운 '무책임한 사용권 남용'"이라는 것에 동의하지 않습니다.

"'공개된 글'에 대해서는 '무한에 가까운 책임'을 스스로 지녀야 한다는 사람들도 있었고"
ㅡ> 또 저는 과연 "무한에 가까운 책임"이라고 말한 사람이 있는지, 그렇게 생각하는 사람이 있는지, 궁금합니다.

그렇다면 사람들에게는, 각자 같은 사안에 대해서도, 이런 '시각차'가 있는 것 같습니다. 저는 그런데 사람마다 '시각차'가 있을 수 있다고 생각하므로, 저는 오렌님의 글이 그냥 이번 서재뉴스사건에 대한 자신의 견해나 생각을 밝히는 것이라면 그다지 불만이 없습니다. 그것은 제 글에 달린 저의 댓글 등에서도 알 수 있는 일입니다 :

(제 답변)

저는 제 개인적으로 '제가 쓴 글의 내용'처럼(알라딘의 횡포에 가까운 사용권 남용) 판단을 했는데, 신지님께서 동의하지 않은 데 대해서도 충분히 이해합니다. 신지님의 말씀대로 '모두 각자의 개인적인 판단이 있을 것이고, 서로 입장이 좀 다르다'고 생각할 수 있을 것 같습니다.


② 그러나 오렌님의 글은 '누구에게나 적용되는' 포괄적인 <인용문>의 대거 사용으로 인해, 오해의 여지가 너무 많은 듯 해서요. 다시 말씀 드리지만, 그 인용문이 <무엇에 대한 비판인지, 누구에게 하는 말인지, 비판인지 아닌지- 가 불분명하면> 독자들이 오해하게 되는 것 같아서요..

(제 답변)

제 글의 가장 큰 문제점이 바로 신지님께서 지적하신 그대로입니다. '누구에게나 적용되는' 포괄적인 인용문을 대거 사용하다 보니, 제 글에 대해 읽는 분들이 오해할 여지가 너무 많은 것 같습니다. 인체에 비유하자면 '좋은 글'이란 '뼈와 살'이 알맞게 균형을 이뤄야 한다는데, 제가 쓴 이번 글은 '온통' 살덩이만 잔뜩 끌어다 놓은 채, 그 살덩이들을 제대로 지탱해 주는 뼈대를 갖추지 못한 게 맞습니다.

지금에 와서야 후회되는 일이지만, '이렇게 잔뜩 인용만 늘어놓아서 어쩌자는 건가....'하는 걱정을 많이 했더랬습니다. 신지님의 따끔한 지적을 듣고 보니 저도 참 반성이 많이 됩니다.

신지 2011-09-20 19:06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그런 인용문을 몇 가지만 예를 들어보겠습니다.

ㄱ.
내가 이런 글을 굳이 쓰는 이유를 찾자면 그건 한마디로 말해서 나는 (고대의 스토아학파 철학자와는 너무나도 거리가 먼) '속물'이기 때문이다.

이 곳 알라딘이 좀 더 서로 '신뢰'가 넘쳐나고 또한 서로 도와주고 지켜주는 '미덕'이 넘쳐나는 그런 공간이 되기를 바라는 마음에서 이 글을 쓰게 되었음을 미리 말하고 싶다.

ㅡ> 이런 말은 오렌님은 '미덕'을 위해서 글을 쓰지만, 다른 사람들은 다 '속물'이라는 얘기밖에 더 되나요. 저는 공론장에서 자신의 의견을 말하는 것을 다 '속물'이라고 생각하지 않습니다.


ㄴ.

그러나 만일 우리에게 가해질지도 모르는 침해 행위에 대하여 그들이 무관심한 듯한 태도를 보인다면, 우리는 결코 참을 수 없다.'고 지적했다. 고 하시고 아담 스미스의 "나를 화나게 만드는 분개를 조금도 함께 나누어 가지지 않는다면(...) "

ㅡ> 이런 생각에도 저는 동의하기 어렵습니다. 제가 고종석에 대해서(막강한 언론인/ 지식인의 잘못된 글에) 분개할 때, 모든 사람이 동의해야 하는 것은 아니지 않습니까. 그렇다면 제게 동의한 두 세명을 제외하고 모든 알라디너에게 저는 분노해야 하나요.

ㄷ.
그런데, 최근 '알라딘 서재 뉴스레터'에 대한 어느 알라디너의 '반응'에 대해 두 가지 확연하게 엇길린 반응을 보인 건 '무슨 이유' 때문이었을까에 대해 곰곰히 생각해 보게 되면서, 나는 그것이 결국 '공정한 방관자'의 문제에 귀결되는 게 아닌가 하는 생각을 떨치기 힘들었다. 그리고 또 그것은 어쩌면 '지위에 대한 경쟁'과도 연관이 있지 않을까 싶은 생각을 해보게 되었다.
아담 스미스는 '이 세상 사람들이 온갖 고생을 다하면서 야단법석을 떠는 것'은 결국 '자기 자신의 지위의 개선'이라는 목적 때문이라고 보았다.

ㅡ> 누구한테 하시는 말씀인지, 이번 일에 발언한 사람들은 모두 '속물'이거나 '경쟁심'이거나 "결국 '자기 자신의 지위의 개선'이라는 목적 때문"이라고 보신다면 저는 동의하지 않습니다. ^^;;



oren 2011-09-20 21:23   좋아요 0 | URL
① 내가 이런 글을 굳이 쓰는 이유를 찾자면 그건 한마디로 말해서 나는 (고대의 스토아학파 철학자와는 너무나도 거리가 먼) '속물'이기 때문이다. 이 곳 알라딘이 좀 더 서로 '신뢰'가 넘쳐나고 또한 서로 도와주고 지켜주는 '미덕'이 넘쳐나는 그런 공간이 되기를 바라는 마음에서 이 글을 쓰게 되었음을 미리 말하고 싶다.
ㅡ> 이런 말은 오렌님은 '미덕'을 위해서 글을 쓰지만, 다른 사람들은 다 '속물'이라는 얘기밖에 더 되나요. 저는 공론장에서 자신의 의견을 말하는 것을 다 '속물'이라고 생각하지 않습니다.

(제 답변)

신지님께서 하신 말씀을 듣고 보니 저도 낯이 화끈거립니다. 제가 저 대목을 쓰면서 '뭔가 표현이 잘못된 게 아닐까' 은근히 걱정스러웠었는데, 신지님께서 그렇게 말씀하시니 제가 할 말이 없습니다.

② 그러나 만일 우리에게 가해질지도 모르는 침해 행위에 대하여 그들이 무관심한 듯한 태도를 보인다면, 우리는 결코 참을 수 없다.'고 지적했다. 고 하시고 아담 스미스의 "나를 화나게 만드는 분개를 조금도 함께 나누어 가지지 않는다면(...) " ㅡ> 이런 생각에도 저는 동의하기 어렵습니다. 제가 고종석에 대해서(막강한 언론인/ 지식인의 잘못된 글에) 분개할 때, 모든 사람이 동의해야 하는 것은 아니지 않습니까. 그렇다면 제게 동의한 두 세명을 제외하고 모든 알라디너에게 저는 분노해야 하나요.

(제 답변)

제 글이 '날림공사'였음이 다 드러납니다.

③ 그런데, 최근 '알라딘 서재 뉴스레터'에 대한 어느 알라디너의 '반응'에 대해 두 가지 확연하게 엇길린 반응을 보인 건 '무슨 이유' 때문이었을까에 대해 곰곰히 생각해 보게 되면서, 나는 그것이 결국 '공정한 방관자'의 문제에 귀결되는 게 아닌가 하는 생각을 떨치기 힘들었다. 그리고 또 그것은 어쩌면 '지위에 대한 경쟁'과도 연관이 있지 않을까 싶은 생각을 해보게 되었다. 아담 스미스는 '이 세상 사람들이 온갖 고생을 다하면서 야단법석을 떠는 것'은 결국 '자기 자신의 지위의 개선'이라는 목적 때문이라고 보았다. ㅡ> 누구한테 하시는 말씀인지, 이번 일에 발언한 사람들은 모두 '속물'이거나 '경쟁심'이거나 "결국 '자기 자신의 지위의 개선'이라는 목적 때문"이라고 보신다면 저는 동의하지 않습니다. ^^;;

(제 답변)

저는 '속물'이라는 표현은 (거듭 말씀드리지만) 제 스스로를 겨냥하여 쓴 표현이었을 뿐이고, 알라디너 분들에게까지 그런 뉘앙스가 전해질 줄은 생각지도 못했습니다. 다만 알라디너 분들의 반응이 확연하게 엇갈린 이유가 '경쟁' 또는 '자기 자신의 지위의 개선'과도 어느 정도는 연관이 있다고 제 스스로 판단했다는 건 사실입니다. 물론 이건 저 혼자만의 생각일 수도 있습니다.

신지 2011-09-20 19:09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ㄹ.
경쟁심은 어디에서 생기는 것인가? 그리고 소위 자신의 지위의 개선이라고 하는 인생의 거대한 목적을 추구하는 것은 어떤 이익이 있어서인가? 남들로부터 관찰되고 주의와 주목을 받는다는 것, 그리고 그들로부터 동감과 호의와 시인(是認)을 받는다는 것이 바로 그것으로부터 얻을 수 있는 이익이다.
그러므로 자리 또는 지위(地位: place)는, 고관 부인들의 사이를 갈라놓는 위대한 목표로서, 인간생활의 노동의 반은 이 목표를 추구하기 위해서이며, 그리고 이것은 탐욕과 야심이 이 세상에 끌어들인 모든 소란과 소동, 모든 강탈과 부정의 원인이 되고 있다.

어떤 것이 우리에게 마찬가지로 유용하거나 또는 그 이상으로 유용하다는 이유만으로 다른 사람들에게 실제로 유용한 것을 빼앗는 행위나, 또는 이와 마찬가지 방식으로 타인을 희생시켜 가면서 다른 사람의 행복보다 자신의 행복을 중시하는 천성적인 선호(選好)에 몰두하는 행위는 공정한 방관자로서는 결코 공감할 수 없는 것이다.]

ㅡ> 역시 누구한테 하시는 말씀인지, 이번 일에 발언한 사람들은 모두 "남들로부터 관찰되고 주의와 주목을 받는다는 것" 이거나........ "타인을 희생시켜 가면서 다른 사람의 행복보다 자신의 행복을 중시하는 천성적인 선호(選好)에 몰두하는 행위는 "라고 보신다면 저는 동의하지 않습니다;;;




oren 2011-09-20 21:25   좋아요 0 | URL
① 경쟁심은 어디에서 생기는 것인가? 그리고 소위 자신의 지위의 개선이라고 하는 인생의 거대한 목적을 추구하는 것은 어떤 이익이 있어서인가? 남들로부터 관찰되고 주의와 주목을 받는다는 것, 그리고 그들로부터 동감과 호의와 시인(是認)을 받는다는 것이 바로 그것으로부터 얻을 수 있는 이익이다. 그러므로 자리 또는 지위(地位: place)는, 고관 부인들의 사이를 갈라놓는 위대한 목표로서, 인간생활의 노동의 반은 이 목표를 추구하기 위해서이며, 그리고 이것은 탐욕과 야심이 이 세상에 끌어들인 모든 소란과 소동, 모든 강탈과 부정의 원인이 되고 있다. 어떤 것이 우리에게 마찬가지로 유용하거나 또는 그 이상으로 유용하다는 이유만으로 다른 사람들에게 실제로 유용한 것을 빼앗는 행위나, 또는 이와 마찬가지 방식으로 타인을 희생시켜 가면서 다른 사람의 행복보다 자신의 행복을 중시하는 천성적인 선호(選好)에 몰두하는 행위는 공정한 방관자로서는 결코 공감할 수 없는 것이다.]

ㅡ> 역시 누구한테 하시는 말씀인지, 이번 일에 발언한 사람들은 모두 "남들로부터 관찰되고 주의와 주목을 받는다는 것" 이거나........ "타인을 희생시켜 가면서 다른 사람의 행복보다 자신의 행복을 중시하는 천성적인 선호(選好)에 몰두하는 행위는 "라고 보신다면 저는 동의하지 않습니다;;;

(제 답변)

이 부분 역시 지금 생각해 보니 '제 머리에 뭔가가 잠깐 스치는 것처럼 걱정했던 대목'입니다. 지금 다시 살펴보니 역시 적절하지 못한 인용이었다고 생각합니다. 다만, "타인을 희생시켜 가면서 다른 사람의 행복보다 자신의 행복을 중시하는 천성적인 선호(選好)에 몰두하는 행위는" 알라딘'한테' 한 말이라는 점은 분명히 말할 수 있습니다.

신지 2011-09-21 10:48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ㅁ.

ㅡ'인지 부조화를 해소하기 위하여 사람들은 자신의 잘못을 인정하기보다는 자신의 결정을 극단적으로 합리화하는 형태로 나아가며, 자신이 알고 싶지 않은 정보를 스스로 차단하고 알고 싶은 것만 받아들이게 된다' 는 것이다.

ㅡ 보고 싶은 것만 보고, 믿고 싶은 것만 믿고 싶은 마음
(...)

ㅡ > 역시, 마찬가지입니다.
이는 오렌님에게 반박하는 것이 아니라, ( =저는 글의 의도를 아직 잘 이해하고 있지 못하니까요)

오렌님이 이렇게 모든 인간에게 포괄적으로 적용되는 인용을 하시면,
그런데 그 글이 오렌님의 어떤 주장이나 생각을 말하는 글일 경우,

오렌님의 말과 인용문이 연결이 잘 안 되면,
마치 <자신은 '성인' ( =인용문)이고, 다른 사람들은 모두 어리석다>-
라는 글로 오해할 수 있다는 생각이 들어서입니다.


oren 2011-09-20 21:27   좋아요 0 | URL
① ㅡ아담 스미스가 결국 그의 책 『도덕감정론』에서 주장하고 싶은 핵심은, 내가 판단하기로는, '공평무사한 중립적 방관자'인 것 같다. ㅡ'인지 부조화를 해소하기 위하여 사람들은 자신의 잘못을 인정하기보다는 자신의 결정을 극단적으로 합리화하는 형태로 나아가며, 자신이 알고 싶지 않은 정보를 스스로 차단하고 알고 싶은 것만 받아들이게 된다' 는 것이다. ㅡ신중, 공정(公正), 적극적, 과단(果斷), 진지한 성격은 그 사람 자신과 그와 관련이 있는 모든 사람들에게 번영과 만족을 약속한다. 반대로 경솔, 오만, 나태, 유약(柔弱), 방탕한 성격은 그 개인에게는 파멸을, 그와 관계를 맺고 있는 모든 사람들에게는 재난(災難)을 예고한다. ㅡ인간의 본성에서 우리는 싸움의 세 가지 주된 요인을 발견한다. 첫째는 경쟁이고, 둘째는 자신감 결여이고, 셋째는 영광이다. 첫 번째는 인간이 이익을 위해 서로를 공격하게 만들고, 두 번째는 안전을 위해 서로를 공격하게 만들고, 세 번째는 가령 말 한마디, 미소, 견해 차이를 비롯하여, 본인이 직접 겪는 것이든 혈연, 친구, 국가, 직업, 이름 등을 통해 간접적으로 겪는 것이든 자신을 무시하는 갖가지 사소한 이유들 때문에 서로를 공격하게 만든다. ㅡ '인간은 서로 비슷한 사람들이 한패가 되는 것이 아니라, 한패가 되고 나서 서로 비슷해진다'고 지적했다. ㅡ 보고 싶은 것만 보고, 믿고 싶은 것만 믿고 싶은 마음 사람들의 '마음'이 저지르는 실수들은 (...) 독특하게 '편향된 시각'을 보이는 주된 이유 가운데 하나는 '인지 부조화'라는 심리적 오류 때문이 아닐까 싶다. 그래서 '인지 부조화를 해소하기 위하여 사람들은 자신의 잘못을 인정하기보다는 자신의 결정을 극단적으로 합리화하는 형태로 나아가며, 자신이 알고 싶지 않은 정보를 스스로 차단하고 알고 싶은 것만 받아들이게 된다' 는 것이다. 내가 생각하기로는, 이번에 '알라딘 서재 뉴스레터'의 문제에 있어서도 여러 사람들이 결국 자기 자신이 보고 싶은 문제점만 부각시켜 보게 된 때문에, 정말로 놀랍도록 다양한 반응들이 쏟아져 나왔던게 아닌가 싶다. 알라딘의 횡포에 가까운 '무책임한 사용권 남용'에 분개한 사람들도 있었고, '공개된 글'에 대해서는 '무한에 가까운 책임'을 스스로 지녀야 한다는 사람들도 있었고, '댓글의 성격'에 따라 달리 반응하는 태도의 문제점을 지적하는 사람들도 있었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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ㅡ > 역시, 마찬가지입니다. 이는 오렌님에게 반박하는 것이 아니라, ( =저는 글의 의도를 아직 잘 이해하고 있지 못하니까요) 오렌님이 이렇게 모든 인간에게 포괄적으로 적용되는 인용을 하시면, 그런데 그 글이 오렌님의 어떤 주장이나 생각을 말하는 글일 경우, 오렌님의 말과 인용문이 연결이 잘 안 되면, 마치 <자신은 '성인' ( = 인용문)이고, 다른 사람들은 모두 어리석다>- 라는 글로 오해할 수 있다는 생각이 들어서입니다.

(제 답변)

제 글이 '부실공사'였음이 계속해서 드러납니다. 신지님의 말씀을 듣고 보니 제가 그런 '오해'를 받아도 할 말이 없게 생겼습니다. 그런 뜻은 결코 아니니 거듭 '오해하시지는 말아 주셨으면' 하고 간청드릴 수 밖에 없군요.

신지 2011-09-20 19:27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ps.

" 알라딘의 횡포에 가까운 '무책임한 사용권 남용'에 분개한 사람들도 있었고"
ㅡ> 저는 "알라딘의 횡포에 가까운 '무책임한 사용권 남용'"이라는 것에 동의하지 않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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라고 말씀드린 것은, 오렌님의 생각이 틀렸다는 게 아니라,
그 부분에 대해서는, 다른 사람은 다르게 생각할 수도 있다는 말입니다.

즉, 반박이 아니고,
저는 같은 사안에 대해서도, 사람마다 '시각차'가 있을 수 있다고 생각하는 것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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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가 너무 많은 댓글을 썼는데, (그러나 그 내용은 간단합니다. 즉 '인용문이 이번에 발언한 사람들을 모두 비하하는 것처럼 보일 수 있다'는 것입니다.)

먼댓글, 페이퍼로 쓰지 않고 댓글을 한 것은,
단순히 <제가 좋아하는 분과의 의사소통> 목적이기 때문입니다.
대화가 끝나면 삭제할 수 있습니다.필요하면 말씀해 주세요.
부디 실례가 아니었으면 좋겠고,
이해해 주실 것 같아서, 만나서 얘기하듯,ㅡ 의사소통 목적이지ㅡ 다른 의도가 아닙니다...


oren 2011-09-20 21:40   좋아요 0 | URL
제가 너무 많은 댓글을 썼는데, (그러나 그 내용은 간단합니다. 즉 '인용문이 이번에 발언한 사람들을 모두 비하하는 것처럼 보일 수 있다'는 것입니다.) 먼댓글, 페이퍼로 쓰지 않고 댓글을 한 것은,
단순히 <제가 좋아하는 분과의 의사소통> 목적이기 때문입니다. 대화가 끝나면 삭제할 수 있습니다.필요하면 말씀해 주세요. 부디 실례가 아니었으면 좋겠고, 이해해 주실 것 같아서, 만나서 얘기하듯,ㅡ 의사소통 목적이지ㅡ 다른 의도가 아닙니다...

(제 답변)

신지님의 기나긴 댓글과 여러가지 말씀을 듣고 보니, 정말 다른 분들이 그렇게(이번에 발언한 사람들을 모두 비하하는 것처럼) 생각할 수도 있다고 생각됩니다. 그런 오해는 전적으로 이 글을 쓴 저에게 책임이 있습니다. 다만 저는 많은 분들의 다양한 '생각의 차이'에 대해 어느 정도는 이해할 수 있다고 판단했고, 그런 이유(생각의 차이를 불러온 이유)를 여러 '인용글'들로부터 찾아내어 '함께' 생각해 보고 싶은 마음이 앞섰던 것 같습니다. 그러다 보니 신지님의 지적대로 [무리한 인용과 누구에게 하는 말인지 모호한 부분과 잘 연결되지 않는 부분]이 있었음을 절실히 깨닫게 됩니다.

뒤늦게라도 제 글의 요점을 다시 압축해서 말씀드려 보겠습니다.

1. 제 생각으로는, 알라딘에서 아무런 사전 예고도 없이 '화제글'을 임의로 '서재 뉴스레터' 형식으로 이메일로 배포한 것은 분명히 문제가 있다고 본다.
(알라딘의 처사는 '공정한 방관자'의 시각으로 보더라도 분개할 수도 있다고 저는 판단했습니다)
2. 따라서, 저는 어느 알라디너의 반응에 대해서도 충분히 그럴 수 있다고('분개'에 가까운 반응) 공감한다.
3. 그런 알라디너의 반응에 대해 '비판적인 입장'에 있는 분들의 생각 가운데 일부는 '경쟁'이나 '지위의 개선' 혹은 '인간부류 감각'과도 관련이 있지 않을까 생각한다.
4. 찰스 다윈의 표현대로, ''용기있고 동정심이 많으며 충실한 구성원을 많이 가지고, 언제나 서로 위험은 바로 경고하고, 서로 돕고 지키는' 부족은 생존경쟁에서 승리하듯이', 알라딘의 분위기도 '서로 돕고 지키는' 미덕이 발휘되는 방향으로 나아갔으면 좋겠다고 생각한다.

oren 2011-09-20 21:55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인용글' 때문에 신지님으로부터 신랄한 비판을 들었지만, 제가 이 글을 너무 '날림공사'로 써서 올리다 보니 모두가 제 스스로 자초한 일인 것 같습니다. 신지님 덕분에 '정확한 글쓰기'에 대해 새삼 많은 생각을 하게 되고, 댓글을 쓰다 보니 습관적으로 또 다른 '인용'을 하지 않을 수 없게 됩니다.
* * *
"모든 말은 결핍이다. 자신이 말하고자 하는 것을 다 담지 못한다. 모든 말은 과잉이다. 차마 전하지 않았으면 했던 것들도 전하게 된다."
- 호세 오르테가 이 가세트


신지 2011-09-21 13:12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그러고 보면 제가 말씀드린 것은 단지
[인용과 누구에게 하는 말인지 모호한 부분과 잘 연결되지 않는 부분]이고,잘 설명해 주셔서, 완전히 저는 잘 이해가 되었습니다.

끝에 압축해서 말씀하신 글의 요점을 보니 오렌님의 생각도 잘 이해가 됩니다.

끝에 사진을 보고 웃었는데, 저도 자주 저런 모습이거든요. ^^::
온라인에서 말하기 어렵다는 점, 서로 오해나 착각할 수 있다는 점, 그건 오렌님만의 문제가 아니라
저도 늘 고민하는 문제이고 저 또한 얼마나 실수를 많이 하는지 모릅니다.

근데, 이번에는 오렌님의 실수라기 보다
독자에 따라서는
오해가 있을 수도 있어서, 글에 질문하고, 설명을 들은 것 아닌가요.

고맙습니다. 좋은 밤 되세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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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ps.

다른 분들에게는 충분히 좋은 글일 수 있는데, 저만의 문제일 수도 있는 것 같습니다.

제가 앞서 이 사안에 대해서 발언을 했고, 앞서 오렌님과 댓글을 주고받았기 때문에요.
제가 보기에는, 이 글에 대해서 크게 괘념치 않으셔도 될 듯합니다..



oren 2011-09-21 09:43   좋아요 0 | URL
신지님께서 좋은 지적들을 해주셨는데 제 부실한 답변에 대해서도 흔쾌히 이해해 주셔서 고맙습니다.

우리가 일상적으로 쓰는 게 '말'이나 '글'이지만, 그게 '힘'을 지니다 보니 언제나 신중하게 그리고 정확하게 사용해야 되겠다는 생각을 이번 기회에 새삼 해보게 됩니다.

그리고 신지님께서 ()속에 담아주신 말씀은 제게 좀 부담스럽습니다.
(과공은 비례라고 했는데, '정확한 글쓰기'에 대해 남다른 감각을 지니신 신지님께서 저같이 '부실한' 글을 쓰는 사람에게 그런 말씀을 하시면 제가 몸둘 바를 모르게 됩니다. 저 대목 만큼은 신지님께서 '자삭'해 주시면 안될까요....)

2011-09-21 15:18   URL
비밀 댓글입니다.

2011-09-21 15:35   URL
비밀 댓글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