꽤 오랜 시간 책을 읽고도 아무것도 적지 않았다.

 

그간 읽은 책이 많지는 않아서 그렇기도 하지만, 한 번에 다 정리하고 싶은 마음이 컸기 때문이다.

 

하지만... 결국 한 번에 정리는 안 될 것 같다.

 

앞에 읽은 책 내용도 다 까먹어버리니까.

 

 

나와 남편은 둘 다 무협을, 아니 정확히는 '김용'을 좋아한다. 특히 사조삼부곡은 둘 다 좋아하는데 나는 <의천도룡기>를 제일 좋아하고 남편은 <사조영웅전>을 좋아한다. 남편은 내가 좋아하는 <녹정기>는 별로 좋아하지 않았는데 최근에 다시 읽더니 나이가 들어서인지 위소보 좋다면서 신기해 하는 중이고...

 

책으로만 읽으면 무술이라는 게 상상이 잘 안 가서 드라마나 영화로 보는 것도 좋아하는데 여기서도 나랑 남편은 달랐다.

 

나는 주구장창 1986년판 <의천도룡기>만 팠고, 남편은 주구장창 1994년판 <사조영웅전>을 팠다.

 

 

 

그런데 이번에 2017년 <사조영웅전>과 2019년 <의천도룡기>가 우리 부부의 마음에 꼭 들고 만 거다. 같은 감독이 찍었는데, 조연들은 좀 겹치기도 해서 더 반갑기도 하고 영상미나 연출이나 출연 배우들 연기나 너무 마음에 드는거다. 물론 <의천도룡기>의 경우 뒤로 갈수록 '조민'의 매력이 떨어지는 아주 커다란 단점이 있기는 하지만...

 

 

 

그래서 둘이 발작적으로 사조삼부곡을 다시 읽기 시작했다. 드라마 보고, 책 보고 둘이서 대화 하고...

 

그동안 서로 김용 좋아하는 건 알고 있었지만, 나는 <의천도룡기> 얘기만 주구장창 하고, 남편은 <사조영웅전> 얘기만 주구장창 해서 그런갑다 했는데, 이제 신나게 <사조영웅전>과 <의천도룡기> 이야기를 나누는 거다.

 

물론 <신조협려>도 좋은데, 그건 드라마가 음... 그러니까.. 아... 그렇다.

 

둘이 해맑게 웃으며 누구 무공이 제일 뛰어날까, 개방의 사조는 누굴까, 의천도룡기로 세대가 내려오면서 무공 수준이 많이 떨어졌다, 황룡유회로 길거리 낙엽 다 쓸면 편하겠다 등등 시간 가는 줄 모르고 이야기를 나눴다.

 

드라마에서

 

나는 <사조영웅전>에서는 황용과 황약사가 제일 좋았고, <신조협려>에서는 곽정과 양과가, <의천도룡기>에서는 장무기와 조민, 양소, 장취산이 제일 좋았다.

 

남편은 <사조영웅전>에서는 황용과 홍칠공을 좋아했고, <신조협려>에서는 황용과 양과를, <의천도룡기>에서는 소소, 조민, 주지약을 좋아했다. 김용도 소소를 좋아한다고 했는데 소소의 어디가 좋은걸까. 마음을 얻지 못할지라도 따라다니면서 시녀처럼 챙겨주는 게 좋은걸까? 그런 여자가 어디 있나... 엄마도 그렇게 못할텐데.

 

어쨌든 그러다보니 어디 글을 쓸 틈이 없었다. 둘이서 예전에 버린 초판본 영웅문 아깝다, 아니 중고 가격이 너무하다, 그래도 사야 하나... 이러고 있다.

 

내공 쌓으면 코로나19 정도는 가볍게 물리칠 수 있을까, 역시 몸을 따뜻하게 해야 해, 아니야 구음진경은 차갑잖아, 고묘파 내공도 그렇고...

 

이렇게 대화가 이어지는 반려자를 만나서 행복하다.

 

아주 다른데, 찰떡 같이 맞는 구석이 있는 건 정말 오묘한 일이다.

 

사조영웅전이나 의천도룡기에 대해서는 아마 좀 더 있어야 쓸 수 있지 않을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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별이랑 2020-02-25 18:32   좋아요 1 | 댓글달기 | URL
저도요~ 찌찌뿡
밤 새워가며 읽었던 1인 여기 있어요.



꼬마요정 2020-02-26 11:49   좋아요 1 | URL
어릴 때 학교에서 수학책 밑에 영웅문 숨겨 놓고 읽다가 걸린 적 있어요 ㅎㅎㅎ 정말 재밌었어요. 영웅문 이후로 어떤 무협소설도 눈에 안 들어오더라구요^^

2020-02-25 23:40   URL
비밀 댓글입니다.

2020-02-26 11:54   URL
비밀 댓글입니다.

2020-02-25 23:40   URL
비밀 댓글입니다.

2020-02-26 11:55   URL
비밀 댓글입니다.

2020-02-27 09:44   URL
비밀 댓글입니다.

2020-04-07 17:47   URL
비밀 댓글입니다.

2020-04-07 18:01   URL
비밀 댓글입니다.

잉클링스 2020-02-29 15:54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3부작 다 읽고 소오강호 까지 읽고 나서 책의 흡인력이 대단하다는걸 느꼈습니다. 이제 천룡팔부가 최근에 나와서 그거 사서 읽어 보려고요... 소오강호에서 약간 천룡팔부 얘기가 나와 궁금하더군요^^

꼬마요정 2020-04-07 17:49   좋아요 0 | URL
너무 늦게 댓글을 달게 되었네요. 일상이 바빠 이제서야 들어와서 댓글 답니다.ㅠㅠ
천룡팔부부터 소오강호까지 김용의 강호는 매력적인 곳이죠 ㅎㅎㅎ 개인적으로는 여전히 의천도룡기가 최고입니다^^ 하지만 영호충이란 인물이 멋있긴 해요. 죽음을 초탈했다는 점에서는 장무기랑 비슷하긴 하지만 또 다른 매력이 있네요.
 

 통통이가 무지개별을 건넜다.

 

14년 하고도 10개월을 통통이로 살던 까맣고 하얀 고양이는 이제 더 이상 내 곁에 없다.

 

2005년 3월, 울 집 계단에 집을 만들어주고 돌보던 길냥이 복죽이가 새끼 고양이 한 마리를 낳고는 세상을 떠났다. 엄마 잃은 작은 고양이는 그 때부터 우리집 귀염둥이가 되었다.

 

혼자 가출해서 며칠 동안 찾아다닌 적도 있었다. 고양이면서 담벼락에서 떨어져서 꼼짝도 못하고 있던 녀석을 데리고 오던 날을 아직도 잊을 수가 없다. 많이 춥고 배고팠는지 밥과 물을 한 가득 먹고 난로 앞에서 꿈쩍도 안하던 통통이가 그렇게나 고마울 수가 없었더랬다...

 

결혼하면서 통통이랑 떨어졌는데, 어느 순간 신장이 안 좋다고 해서 몇 번이나 병원을 들락거렸다. 하지만 비뇨기 관련 먹이를 주고 물을 많이 주는 것 외엔 별 다른 방법이 없었다.

 

그러다가 엄마가 강아지 한 마리를 구조하셨고, 덕분에 통통이는 외롭지 않았을까...?

 

얼마 전 통통이가 많이 안 좋다고 했다가 다시 좋아졌다고 해서 통통이 보러 가야지 했는데, 오늘 아침 엄마한테서 연락이 왔다.

 

"통통이가 갔다..."

 

너무 놀라 뛰어갔다.

 

항문이 열렸으면 말을 하지... 엄마는 너네 힘들까봐 말 안했다고 하셨지만 끝내 마지막을 보지 못해 미안하고 미안했다.

 

어릴 때부터 마냥 고양이가 좋았다.

 

언제나 고양이는 내게 웃음을 주었다. 보고만 있어도 행복했다.

 

그리고 떠나보낼 때마다 가슴이 아팠다. 나와 함께 한 삶이 행복했으면...

 

어떤 생명체든 죽음은 피할 수 없다. 이렇게 또 내게 소중한 존재가 세상을 떠나는 것을 본다. 새삼 살아있을 때 그 존재가 내게 얼마나 큰 기쁨이었는지 느낀다.

 

잘 가라 통통아.... 내게 기적 같던 고양이야...

어쨌든 우리 모두는 행복이라는 큰 선물을 받은 사람들처럼 함께 아름다운 저녁을 보냈다네.- P10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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잉크냄새 2019-12-31 09:22   좋아요 1 | 댓글달기 | URL
<사람이 죽으면 먼저 가있던 반려동물들이 마중나온다는 얘기가 있다.>
저도 고양이 기르는 입장에서 언제가 맞이할 아픔에 대하여 위안삼는 문구입니다.

꼬마요정 2019-12-31 15:03   좋아요 0 | URL
위로 고맙습니다. 먼저 간 그 곳에서는 아프지 말고 행복하길 바랄 뿐입니다.
함께 해서 행복했다면 좋겠어요. 고맙습니다.

blanca 2019-12-31 10:00   좋아요 1 | 댓글달기 | URL
고양이 키우고 싶은데 이별이 무서워서 시도 못하겠어요. 통통이가 좋은 곳으로 갔기를...

꼬마요정 2019-12-31 15:04   좋아요 0 | URL
저도 이별은 무서워요, 하지만 이 아이가 길에서 떠돌다가 생을 마치는 것보다는 살아있는 동안 배 부르고 등 따시게 지냈으면 해서 데려왔답니다. 같이 있는 시간들이 행복했다면 좋겠어요...
위로 고맙습니다.

stella.K 2019-12-31 15:02   좋아요 1 | 댓글달기 | URL
남의 일 같지가 않네요. 저희는 개를 16년째 키우고 내년이면 17년차 들어가는데
노견치곤 비교적 아직은 건강한 편이긴한데 언제든 마음의 준비는 하고 살고 있습니다.
하지만 말이 그렇지 녀석이 가곤하면 얼마나 허전할까 생각만하면 아찔하죠.

그래도 통통이 꼬마요정님 같은 좋은 주인 만나서 행복했을 겁니다.
그렇게 위안 삼으시길...
새해 잘 맞이하시구요.^^

꼬마요정 2019-12-31 15:08   좋아요 1 | URL
걱정이 많으시겠어요. 건강하다니 다행입니다. 건강이 최고에요.
늘 있었는데 빈자리를 보니 계속 울컥 울컥 하지만 괜히 내가 발목 잡아서 갈 길 못 갈까봐 잘 가라고 빌기만 하네요.

위로해주셔서 고맙습니다.
새해 복 많이 받으세요^^

프레이야 2020-01-01 00:38   좋아요 1 | 댓글달기 | URL
꼬마요정님 냥이와 15년을 함께한다는 게 어떤 걸까요. 통통이를 보내고 얼마나 마음이 아플까요 ㅠ 저도 반려하고 있는 냥이녀석 생각할수록 말 못하는 그 생명이 짠한데 앞으로 더더 오래 언제까지 함께할지 모르겠네요. 통통이 아픔 없는 곳에 가 있기를 바라요 님. 그동안 좋은 사람들과 함께 행복했을거에요. 님 토닥토닥.

꼬마요정 2020-01-01 10:17   좋아요 0 | URL
고맙습니다. 행복했겠죠? 밖에서 힘든 삶을 사는 것 보다 집에서 함께 한 시간들이 행복했길 바랄 뿐이에요. 아직 옆에 있는 냥들이 5마리나 더 있는데 더 잘 해줘야겠다는 생각이에요. 죽음을 피할 수 없다면 그 전까지 최선을 다해 잘 해주려구요. 프레이야님 반려냥이 건강하게 오래 오래 함께 하시길 바랍니다.
고마워요.

초딩 2019-12-31 23:35   좋아요 1 | 댓글달기 | URL
꼬마요정님 새해 복 많이 받으세요 :-)

꼬마요정 2020-01-01 10:18   좋아요 0 | URL
초딩님 새해 복 많이 받으세요^^

2020-01-01 21:40   URL
비밀 댓글입니다.

2020-01-04 22:39   URL
비밀 댓글입니다.
 

이야, 홍콩이다!!!

 

처음 문이 열리고 자호와 마크가 트렌치 코트 휘날리며 등장하는데, 진짜 홍콩 느와르 보는 느낌이라 좀 설렜다. 빠바밤 노래가 나오면서 둘이 계속 문을 넘나드는데, 거래를 성사시키기도 하지만 소위 암흑세계에서 전설이 되기까지 얼마나 많은 '관문'을 통과했는지 보여주는 것 같았다.

 

자호는 동생이 밝은 세상에 살기를 원했다. 엄마처럼, 형처럼 자걸을 보살폈다. 자걸 입장에서는 사실 아버지에 대한 정(情)보다는 형에 대한 애정이 더 컸기에 뒤에 배신감도 컸을테다. 훈련 도중 도선에게 형에 대해 이야기할 때 표정이나 목소리에서 사랑이 흘러 넘쳤다.

 

흑사회에서 자호는 신망 두터운 형님이고 마크 역시 자호와 함께 전설 같은 존재이다. 마크가 아성에게 이야기할 때 주윤발 같아서 정말 깜짝 놀랐다. 아마 그 장면 하나는 오마주가 아니었을까.

 

병원에 있는 아버지 병문안을 온 자호는 아버지로부터 자걸을 위해 손을 씻으라는 충고를 듣고 마음이 흔들린다. 이번 건으로 끝내리라 생각했을텐데, 그 마지막 한 번이 결국 발목을 잡고 만다.

 

경찰 세계이든 깡패 세계이든 배신자는 있기 마련이다. 여기 저기 욕망을 위해서든 이익을 위해서든 말이다. 결국 대만에서 있던 거래에서 자호는 함정에 빠져 감옥에 가고, 아성의 음모로 아버지는 희생되고, 자걸은 모든 분노를 자호에게 쏟아 붓는다.

 

사랑한만큼 미워한다던가... 사실 아버지의 역할이 무엇인지 궁금했다. 자신을 키워준 건 형이라고 하면서 형을 그토록 경멸하다니. 비록 형이 나쁜 짓으로 돈을 벌었으나 아버지의 죽음은 나쁜 사람의 계략 때문인데 모든 책임을 형에게 돌리는 자걸은 마치 어린아이 같았다. 물론 형의 전과 때문에 진급이 누락되기는 하지만.

 

아성의 음모 때문에 페기의 아버지가 죽지만 페기는 아버지를 원망하지 않았다. 사랑의 기억을 가지고 이해하려 했다. 만약 자호가 죽었다면 자걸은 어떠했을까...

 

물론 고회장과 자호의 입장이 다르긴 하지만, 자걸이 조금은 자호를 이해해주길 바랐다. 하긴 그러면 극이 막을 내려야겠지.

 

자걸이 어린아이 같던 모습에서 형을 이해하며 어른으로 성장한다면, 마크는 지난날의 영광을 잊지 못하고 현실을 부정하다가 결국 자신의 이상을 찾는다. 친구... 우정을 위해 불꽃처럼 타오른 마크는 강렬한 인상을 주는 인물이었다. 하지만 무엇보다 내가 영화에서 좋아했던 인물은 자호였다.

 

과거가 궁금해지는 인물이었다. 이 사람은 어떤 과거를 가지고 있길래 이런 삶을 사는 것일까. 동생을 위해 흑사회에 들어간 것일까. 뮤지컬에서도 역시 멋진 인물이었다. 사람 좋은 웃음으로 모두를 품지만, 냉철한 판단력과 의지를 잃지 않는 인물. 고회장이 딸바보라면 자호는 동생바보라고나 할까. 새 인생을 살다가도 동생이 위험하다면 섶을 지고 불 속으로 뛰어드는 일조차 마다하지 않는다.

 

유명한 마약왕이었던 고회장이 개과천선해서 바르게 산다한들, 과거의 검은 물은 그를 내버려두지 않았다. 자걸은 위험한 일인 줄 알면서도 전과자 형을 둔 죄로 잠입수사를 하게 되고, 진부하지만 사랑에 빠진다.

 

처음만 거짓이었단 말은 사실이었다. 수족관에서 수많은 물고기들 이름을 나열하며 -가물치, 잉어, 붕어, 문어 이랬으면 기억했을텐데 선셋프리티 밖에 모르겠다. 남미의 석양? 이런 거?- 너무 귀엽고 예뻤다. 아버지가 돌아가시고 형에게 배신감을 느낀 채 마음의 문을 닫고 있던 자걸이 무장해제되는 모습은... 참으로 귀여웠다. 거짓으로 다가갔지만 어느새 진짜가 되어버린 마음이 가슴 아픈 사랑으로 바뀌는 건 순간이었다. 아름답고 자유로운 듯 하지만 결국 갇힌 공간인 수족관이라는 곳은 그래서 예뻐도 안타까웠다. 

 

스파이의 삶은 쉽지 않았다. 안경을 쓰고 있을 땐 빌리였다가 안경을 벗으며 자걸이 될 때는 소름이 돋았다. 진짜 같은 사람이야? 하지만 내리는 비에 옷이 젖듯, 사랑은 빌리와 자걸의 마음에 이미 스며들어버렸다.

 

자호는 견숙의 정비소에서 일하게 되는데, 여기 견숙은 정말 멋진 사람이었다. 'stand up' 노래는 정말 흥겨워서 나도 모르게 벌떡 일어나서 춤 춰야 할 것 같았다. 우중충한 삶에 빛 같은 존재. 견숙은 그렇게 전과자들에게 갱생의 기회를 준다.

 

하지만 여전히 아성은 탐욕의 화신으로 모두를 수렁으로 몰고 있었다. 아성의 음모 때문에 자호는 자걸을 위해 다시 흑사회로 돌아가고, 형제는 비극적인 순간에 서로를 마주본다. 겨누는 손 끝도 떨리고 내 눈에서도 눈물이 떨어졌다.

 

오버랩 되는 장면들이나 시간 순서의 배치를 어긋나게 하는 것 등 연출이 참 좋았다. 이미 유명한 영화를 각색해서 뮤지컬로 올린다기에 어떨까 궁금했는데, 생각보다 좋아서 놀랐다. 하지만 넘버들이 전부 과하게 끝을 지르는 것으로 끝이 나서 감정이 좀 깨지기도 했다. 조용히 읊조리듯 끝나도 좋았을텐데. 엘이디도 너무 현란할 땐 눈이 좀 피곤하기도 했다. 번쩍번쩍 홍콩의 밤거리가 생각나기도 했지만 되려 외로워 보이기도 했다. 저 곳에 수많은 사람들이 살았고 살고 있고 살아가겠지.

 

그 유명한 장국영의 전화박스 씬이 어떻게 나올지 매우 궁금했는데, 비장함은 덜 하지만 간절함은 그대로였다. 살아남기를, 나는 죽어도 그대는 어서 도망치기를 바랐는데 결국 페기는 어떻게 되었을까...

 

경찰 내부에 있던 배신자 때문에 정체가 탄로난 자호, 자걸, 마크는 이제 중대한 결심을 해야 했다. 마크는 이대로 끝날 수 없다 절규하며 위조지폐 테이프 원본을 훔쳐내고, 자신이 진정 원하는 건 친구라는 사실을 절실히 깨닫는다.

 

여전히 형을 용서하지 못한 자호와 자걸을 뒤로 한 채 보트를 타고 가던 마크는 의리를 지키기 위해 돌아오고, 형제란!을 외치며 죽는다. 벽에 피가 튀는 장면에 나도 모르게 헉 하는 짧은 비명이 터져나왔다. 친구를 지키고 친구의 품에서 죽는 건... 그가 원한 삶이었을지도 모르지...

 

마크의 죽음으로 자걸은 비로소 마음의 빗장을 풀고 형을 이해하려 한다. 어쩌면 자신이 형을 그 길로 내몰았을지도 모른다는 내면의 목소리를 듣지 않으려 형을 애써 미워했던 건지도 모른다. 그런 동생을 따뜻한 마음으로 기다려 준 자호는 여전히 동생을 사랑한다.

 

결말은 영화대로였다. 포스터대로 같은 수갑을 찬 두 사람은 차가운 쇠조차 녹일만큼 뜨거운 심장으로 형제애를 나누었다.

 

뮤지컬 내내 자호가 부르는 넘버들은 어딘가 짠했다. 세상 풍파 다 맞고도 여전히 누군가를 지키려는 그 마음. 그 마음 하나만으로도 자호는 자걸의 영웅이 될 만 했다.

 

자걸이 빌리의 모습으로 아성을 협박할 때 온갖 물고기 이름 다 대며 안 예뻐! 하는데 너무 웃겼다. 하하

 

자호, 자걸, 마크 모두 연기를 너무 잘 해서 몰입해서 봤다. 셋이 같이 있을 땐 뭔가 훈훈하지만 처연했다. 바람결에 모든 것이 다 흩어진다 해도, 언젠가 삶의 저 끝에 서더라도 서로가 서로를 위해 있었음을 기뻐하며 함께 해서 행복했음을 기억하기를...

 

자호 : 유준상

자걸 : 한지상

마크 : 박민성

아성 : 박인배

한전아트센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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차가운 바람이 얼굴을 할퀴고 지나가면 나도 모르게 으스스한 기분에 온 몸이 쭈뼛해진다. 어쩌면 눈에 보이지 않는 다른 세계의 존재가 내 옆을 스쳤는지도 모른다.

 

이 뮤지컬이 그러했다. 그냥 지나갈수도 있었지만 돌아보게 만드는 것이.

 

약속을 했다. 꼭 후기를 남기겠다고. 그것이 비록 나 혼자 '그럴게'라고 했을지라도 지켜야했다.

그래서 이미 막공까지 지나버린 공연이지만, 후기를 남겨본다.
 
이 뮤지컬은 브램 스토커의 <드라큘라>에 기반해서 실존 인물이었던 왈라키아 공국의 블라드 체페슈를 모델로 한 것 같다. 용의 기사단 단장으로 임명 받아 용 문장을 받았던 블라드 2세가 아버지이고, 루마니아어로 드라큘(dracul)이 용이니까 '~의 아들'이란 뜻의 라(-la)를 붙여 드라큘라라는 별명을 가진 블라드 3세는 용맹함과 잔인함 덕에 유명해진 인물이며 바토리 백작, 카밀라와 더불어 뱀파이어 전설의 굳건한 토대가 되는 인물이다.

비잔티움 제국을 몰락시킨 메흐메트2세의 라이벌이자 당시 강력한 이슬람 세력과 대적한 거의 유일한 이 인물을 본 뜬 주인공답게 여기 나오는 드라큘라는 천하무적에 고결한 성품을 가진 훌륭한 군주이다. 그러나 우리는 알 수 없는 내막을 가진 그 천하무적은 정작 본인에겐 저주이고 사랑하는 아들에게 물려주고 싶지 않을 유전의 고리일 뿐이다.

사랑하는 아내인 아드리아나는 피를 갈망하는 저주를 이겨내는 데 큰 역할을 한다. 오로지 그녀만이 각인처럼 그의 심장에 새겨져 그의 욕망을 멈춰준다. 피의 천사들도 그녀 앞에선 어떤 힘도 쓰지 못하고 저 너머로 사라질 뿐이다.


하얀 잠옷 차림으로 가장 내밀한 욕망을 저주하지만 갈망하며, 무너지는 자아를 연기하는 엄큘은 그야말로 드라큘라의 비극성을 처절하게 보여줬다. 어떻게 그런 연기를 할 수 있지 싶을만큼 비참하고 간절한데 아름다웠다. 아무것도 보이지 않고 어떤 것도 들리지 않는 절망 속에 비추는 단 하나의 빛, 그녀의 사랑은 그를 저주에서 거듭 구해주고 평범한 인간이길 원하는 드라큘라는 그녀의 품 안에서 불안한 안식을 얻는다.

사실 오스만 제국이 비잔티움을 무너뜨리고 유럽 대륙을 위협할 때 최전방에 있던 곳이 왈라키아 공국이었고, 신성로마제국, 이탈리아, 서유럽 등은 자기들끼리 싸운다고 십자군에는 관심이 없었다. 그래서 십자군이라고 나선 이는 블라드 3세였고 숫적 열세에도 불구하고 그는 승리했으며 적에게 자신의 힘을 보이고 흔들리는 공국을 바로잡기 위해 적에게 매우 잔인했다.(물론 나중에 메흐메트2세에 의해 목이 잘리긴 하지만. 이 때 목이 잘린 시체가 사라져서 드라큘라 전설이 더 더욱 공포스러워졌다.) 

하지만 여기서는 드라큘라가 돈장사를 하는 루치안 반 헬싱 교황에게 맞서는 것으로 나온다. 성전이라는 명목으로 재물과 군사를 모은 반 헬싱은 고결하고 용맹한 드라큘라를 견제하며 그의 부를 탐한다. 실제로 4차 십자군 전쟁이나 그 후 교황들의 행태를 보면 드라큘라가 왜 그들을 저어했는지 이해가 가긴 한다. 하지만 결국 교회는 사람들의 믿음 위에 군림하고 있었고, 구원과 심판이라는 이름 아래 드라큘라의 성은 결국 무참히 희생 당하고 만다.

드라큘라가 자신의 저주 때문에 수도원에 기도하러 간 사이, 반 헬싱은 드라큘라 성을 습격하고 성 안을 도륙한다.

마지막까지 십자군에게 저항하던 로레인과 디미트루는 그들의 칼에 쓰러지고, 드라큘라의 아들은 죽임을 당하고, 부상을 입은 아드리아나는 미끼로 끌려간다.

뒤늦게 도착한 드라큘라... 아들의 주검 앞에서 온 영혼이 뒤틀리듯 오열하다 마침내 이런 저주 받은 힘을 받아들이기로 한다다. 절대신을 저주하며 자신의 사랑을 찾는 드라큘라. 거듭 생각하지만 세상 어느 인간이 감히 신에 대항하여 자신의 사랑을 지키려 했을까. 저주도, 믿음도 사랑 앞에서는 모두 바래져 버리고, 드라큘라의 시간은 그대로 멈춰버리고 만다...

아드리아나는 드라큘라가 주는 피를 거부하며 그에게 구원의 길을 열어준다. 그녀의 별이 다시 떠 올라 그의 별과 함께 춤을 출 때, 그 때야말로 그의 저주가 끝나고 피에 묶인 영혼이 자유로워질 것이라고.

이제 드라큘라는 그녀를 기다린다. 언제가 될 지 모르지만 반드시 올 그녀를... 그의 시간은 멈추고 쏟아지는 별들 안에서 단 하나의 별만을 찾으며 웃음도, 생기도 모두 잃어버린다. 살아도 산 것이 아닌 '살아있는 시체'라는 표현은 정말 아드리아나가 없는 드라큘라에게 너무나 잘 어울린다. 시간의 흐름 속에 멈춰선 채, 하나의 별만을 기다리는 드라큘라... 2막의 첫 장면은 그래서 너무나 아프고 슬펐다. 

400년 후, 아드리아나의 별은 파리에서 멈췄고, 운명처럼 드라큘라도 파리로 온다. 세상 어떤 것에도 관심 없는 얼굴이지만 약간의 분노와 무언가 애타는 듯한 표정이 가슴 한 구석을 아리게 했는데, 거짓말처럼 기다리던 얼굴을 마주본다. 드디어! 시간이 움직이기 시작한다. 드라큘라는 400년을 아드리아나만을 그리워하며 드디어 만났는데, 아드리아나는 드라큘라를 알아보지 못한다. 실망하다 못해 좌절한 드라큘라는 모든 것을 포기하려고 하지만, 디미트루의 설득에 그녀와의 만남을 준비하게 된다.

 

여기서 드라큘라는 우리가 아는 소설 속 드라큘라와는 좀 다르다. 거울 속에 자신의 모습이 비친다고 하니까. 거울 속 자신을 조우할 수 있는 존재... 그는 괴물도 아니고 악마도 아니고 그저 사랑을 잃은 가여운 한 남자였다.

 

한 눈에 알아볼 수 있었다. 아무리 많은 사람이 있어도... 군중 속에서 그녀에게 다가가려는 그의 절박한 몸짓은 마치 운명을 예견하듯 사람들 사이에서 사라진 그녀 때문에 더 애처로웠다. 이 부분 연출이 너무나 감각적이고, 드라큘라의 상황을 그대로 받아들일 수 있게 해줘서 너무 좋았다. 끝내 닿지 못할 사랑일까, 아니면 한 발만 더 내딛으면 만나질 수 있을까...

 

그리고 마주한 자리... 그는 운명을 이야기하며 그녀에게 이야기를 들려준다. 아드리아나... 긴 세월의 강을 건너 드디어 만나게 된 영혼의 반쪽, 삶의 이유. 천 년을 산다한들 그녀 없이는 무슨 의미가 있을까. 단 하루를 살아도 그녀 곁에 있는 것이 행복일테다... 마침내 서로를 알아 보지만, 운명은 그녀만을 데려온 건 아니었다. 반 헬싱 주교의 환생이든, 후손이든 거짓된 믿음으로 무장한 반 헬싱 역시 나타났으니까.

 

아이러니하게도 피에 묶이도록 만든 자가 그 피로부터 자유로워지도록 아드리아나를 드라큘라와 만나도록 이끌었다. 신의 심판을 입에 올리던 반 헬싱은 신이 가장 싫어하는 행동을 한다. 그가 믿는 신은 그에게 어떤 심판을 내릴까... (뱀파이어 다른 전설에 따르면 특정한 상황에서 자살한 영혼은 흡혈귀가 된다 하니 반 헬싱이 뱀파이어가 될 지도 모르겠다^^;;)

시간이 움직인 것도 잠시... 결국 드라큘라는 마지막에 아드리아나가 아닌 엘로이즈란 이름으로 그녀만의 삶을 살 수 있도록 그녀를 놓아준다. 자신은 이미 400년 전에 사라졌어야 했지만, 단 하나의 기원, 간절한 맹세인 그녀를 다시 만날 때까지 시간을 멈췄던 것 뿐이니까. 마치 400년 전으로 돌아간 듯 드라큘라 성에 있던 이들이 한 자리에 모여 드라큘라를 마중나오는 장면은 너무 짠했다. 긴 시간의 기다림 끝에 사랑을 지키고, 원한을 용서로 승화시킨 그는 드디어 자신의 저주를 벗고 안식을 얻게 된 것이다.

그렇게 그는 사라지지 않을 것이다. 다시 태어나 그 사랑을 이은 그녀의 기도에, 그를 위해 흘리는 눈물에, 그리고 내 마음에 영원히 살아있을테니까.

 

사랑을 위해 모든 것을 버리고 오롯이 그 사랑만을 남기고 간 최고의 로맨티시스트로 말이다.

 

액션씬들 다 좋았다. 드라큘라가 죽었다 살아나는 장면에서는 정말 놀랐고, 첫 흡혈 때 붉은 안개가 핏빛으로 퍼져 나가는 것도 좋았다. 파리에서 일어난 살인사건이 흡혈귀의 소행이 아닐까 할 때는 왠지 영국의 유명한 살인마 잭더리퍼가 떠올랐다. 사람을 죽이는 건 보통 인간 아닌 존재보다 인간이 더 잘 하는 짓이기도 하니까.

 

보는 내내, 드라큘라의 그 감정들이 너무 생생하게 전달되어 나도 따라 울었다. 사랑, 분노, 절규, 슬픔, 오열, 기쁨... 엘로이즈 앞에서 순한 강아지처럼 긴장하는 모습에 더해 눈물 흘리다 못해 말을 잇지 못하는 모습까지...

하염없이 흘러 떨어지는 그 눈물 방울방울 모아 목걸이를 만들면 세상 그 어떤 보석보다 빛나고 아름다울 것 같다는 생각을 했다. 다이아몬드가 빛을 반사시킨다면, 이 눈물 목걸이는 사랑의 마음을 비출 것 같다고나 할까... 이런 눈물로 기도한다면, 내가 신이라면 그의 소원은 무엇이든 다 들어줬을거다...


 

사랑은 끝나지 않는다...

 

드라큘라 : 엄기준

아드리아나 : 김금나, 권민제

반 헬싱 : 김법래, 이건명

로레인 : 쏘냐, 최우리, 황한나

디미트루 : 최성원, 조지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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시간은 흐르되 흐르지 않는 것이라고는 하지만, 시간을 알지 못하는 나에게 시간이란 그저 엄청난 속도로 지나가는 야속한 무엇이다.

 

'새해 복 많이 받으세요!'로 시작한 2019년도 이제 3주 가량 남았다. 뭔가 들뜨는 맘이 드는 12월을 보내면서 어김없이 올 한 해는 어떻게 지냈으며 앞으로 올 2020년은 어떨까 생각해본다.

 

 

 몇 년째 읽어야지, 혹은 읽다가 만 책 네 권을 다 읽었다. 내용도 모두 좋았지만 끝내 다 읽었다는 게 너무 기뻤다. 사람과 사람 사이는 시간이 해결해 줄 수 있는 문제도 있고, 그 시간 때문에 다시는 좁혀지지 않는 거리도 있다. 그리고 우습게도 그 거리 때문에 서로를 그리워하기도 하지만, 결국 다시는 만나지 않는 게 더 애틋할 수도 있다. 그게 신화이든 전설이든 소설이든 말이다.

 

 올해도 내년이 어떨지 기대하게 하는 이 책을 읽었다. 2015년부터 읽고 있는데 벌써 2020년이라니...('원더키디'가 나와야 할 것 같은데) 작년에 2019년 판을 읽었을 때도 놀라웠지만, 2020년은 얼마 전부터 이어진 개인의 신념이 삶을 주도하는 방식이 더 퍼져나갈 거라는 예측이 더 반가웠다. 나 역시 편리함을 위해 소비하지만 마음은 너무나 불편한 것인 '비행기 타기'가 북유럽에서는 '플뤼그스캄', '탁쉬크리트'란 이름으로 이미 많은 공감대를 얻고 있다는 게 힘이 됐다.

 

그리고 적당히 아는 관계가 주는 편안함 역시 모두가 적당히 원한다는 것도 좋았다. 굳이 그 사람의 속속들이를 알 필요는 없으니까. '오지랖'이라 부르는 것이 과거 농경사회나 집성촌에서야 당연한 것일지 몰라도 도시에서 살 때는 참 불편하다. 내가 어제 반찬으로 문어를 샀다는 걸 온 동네 사람이 안다고 생각하면 끔찍하지만, 그냥 내가 이 동네 산다는 걸 동네 사람이 아는 건 뭔가 소속감이 들게 한다.

 

 나를 행복하게 해 준 단편집들이다. 크리스마스 캐럴은 너무나 유명한 이야기이고 누구나 다 아는 이야기인데, 역시 너무나 좋은 이야기이다. 최면술사도 너무나 좋았다. 징구... 징구는 정말 징구다. 찰진 위트와 뼈 때리는 한 방이 내 입꼬리를 올리고 눈을 빛나게 한다. 이런 책을 읽을 때 나는 더 이상 내 의지대로 움직일 수 없다. 마치 꼭두각시 인형이 인형술사가 시키는대로 움직이는 것처럼 작가가 풀어놓는 이야기에 그대로 반응할 수밖에 없다.(작가의 의도를 알지는 못해도 이야기가 주는 감동에 벅차는 건 할 수 있다.) 찰스 디킨스, 마크 트웨인, 이디스 워튼... 너무 멋지고 멋지고 멋지다. 사랑한다 작가님들...

 

 '뱀파이어'는 나에게 특별한 존재다. 피를 빨아먹는 괴물이 아닌 사랑을 잃고 괴로워하는 존재일 뿐이다. 먹이사슬 최상층이라고 할 수 있지만 햇빛을 보지 못한다는 건 치명적인 약점이다. 분명 선악 구도에서 악한 존재로, 혹은 걸어다니는 시체쯤으로 여겨지던 끔찍한 존재가 어느 순간 로맨티시스트로 변신한다. 물론 소설과 영화의 도움이 매우 컸을 뿐더러, 과학의 발전 역시 한 몫 했다. 사람들은 더 이상 귀신이나 흡혈귀 같은 존재를 진정으로 믿지 않는다. 무서워하지만 믿지 않는다.

 

수키 스택하우스는 미드 '트루 블러드' 때문에 알게 되었다. 매력적인 수키. 그리고 매력적인 면과 끔찍한 면을 함께 가지고 있는 사람들. 인간의 역사를 되돌아보면 너무나 확실하다. '생명은 소중하다.', '다르면 없앤다.' '죽인다'는 표현보다 '없앤다'는 표현이 더 인격을 말살시키는 듯한 느낌이다.  

 

브램 스토커의 '드라큘라'는 너무나도 유명하'신 분'이다. 블라드 체페슈를 모델로 한 이 인물은 현재 우리가 알고 있는 뱀파이어의 원형 같은 존재다. 이전에 있던 흡혈하는 존재를 하나의 인물처럼 정의되게 만들었다고나 할까. 어찌보면 유치할 수도 있지만, 상상할 거리들이 너무 많아 읽을 때마다 즐겁다. 블라드 체페슈가 동방정교회, 이슬람교, 구교, 신교 모두에게 버림받은 존재였듯이, 브램 스토커의 드라큘라 역시 신에게 버림 받았다. 미국인인 퀸시가 물리적으로 힘을 행사했다면, 미나는 그의 영혼을 뒤흔들었다. 과연 그 '피'는 미나에게서 사라졌을까?

 

 '다르게 읽기'는 너무나 어려운 일이다. 물론 너무나 다르게 읽기는 참 잘 하는데, 이렇게 멋지게 다르게 읽기는 어렵다. '이렇게 생각할 수도 있겠구나'를 느끼게 하는 책은 너무나 좋다.

'지식'이란 권위에 한정없이 비굴해지는 나에게 저항할 수 없는 매력으로 다가온다. 나도 저 너머의 무언가를 읽어낼 수 있는 독자이고 싶다. 뭐, 죽을 때까지 읽었는데 못 읽어내면 어쩔 수 없고. 하나라도 배웠다면 그걸로 족하다.

 

올해 다 읽을 수 있을까 의심하고 있다. 얇은 데 정말 만만치가 않다. 분명 어느 정도 알아먹었다고 생각했는데 앞으로 나가지지가 않는다. 그래도 언젠가 마지막 장을 덮을 때가 올 것이다. 내 눈으로 볼 수 없는 블랙홀 안이든, 낙차에 따른 시간차든, 죽음 같은 결혼이든 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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