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난 4월, 부모님과 관련없이 처음으로 냥줍해서 키웠던 쭈쭈가 무지개 다리를 건넜다. 12살이 될 때까지 잔병치레도 거의 안 하고 언제나 상냥하고 너그럽고 식탐 많던 착한 고양이었다.  밑으로 동생들이 들어오면 씻겨주고 보살펴주고 참 잘 지냈더랬다. 그러다가 13살 쯤 구내염으로 고생하면서 신장도 망가지고 점점 힘들어하더니 15살.. 결국 마지막 숨을 내쉬고 떠났다. 


못다 준 사랑만 기억하리라는 싯구가 계속 맴돌았고, 힘들고 괴로웠던 순간을 잊기 위해 선택한 책들이 바로 <전쟁과 평화>, <황폐한 집>, <레 미제라블>이었다. 그리고... 정말 마음껏 울었다.


‘사랑’은 사람이나 존재를 아끼고 위하여 정성과 힘을 다하는 마음(한국민족문화대백과사전) 이라고 한다. 가장 따뜻하고 아름다운 마음이라고나 할까. 톨스토이도, 찰스 디킨스도, 위고도 모두 그 ‘사랑’을 노래했다. 남녀 간의 사랑부터 민중을 향한 사랑까지 아주 다양한 마음들을 그린다. 그리고 그 ‘사랑’은 필연적으로 ‘희생’을 불러온다.

전쟁과 평화는 1805년 아우스터리츠 전투가 일어나기 전 페테르부르크에서 쿠라긴 가의 둘째 아들 아나톨과 볼콘스키 가의 공작 영애 마리야를 엮어보려는 흔한 중매 시도로 시작한다. <안나 카레니나>도 안나의 오빠인 스티바가 저지른 불륜 때문에 오빠의 가정이 파괴될 지경에 이르자 그 일을 수습하려는 것으로 시작하는데 뭔가 느낌이 비슷하다. 귀족 사회의 흔한 사생활로 시작하는 느낌이랄까. 막 수다스러운 기분도 들고. 이 때 주요한 인물들이 다 등장하는데, 피예르 베주호프, 안드레이 볼콘스키, 나타샤 로스토바, 마리야 볼콘스키, 쏘냐, 아나톨 쿠라긴, 옐렌 쿠라긴, 니콜라이 로스토프, 돌로호프, 보리스, 데니소프가 그들이다. 그리고 나폴레옹과 알렉산드르 1세까지.


난 안드레이를 가장 좋아했다. 안드레이와 나타샤가 오트라드노예에서 서로의 마음에 스며들 때를 기억한다. 그리고 모스크바를 떠나 피난길에 올랐을 때 그 허름한 오두막 같은 그 곳에서 다시 만난 두 사람을 사랑한다. 아우스터리츠 전투에서 패배 속에서도 깃발을 든 채 쓰러진 안드레이를 기억하고, 리즈가 아이를 낳은 후 죽었을 때 죄책감을 가졌던 그를 좋아한다. 냉소적이지만 인간적이었고, 흠모하던 황제의 곁이 아닌 진정한 병사들 곁에 남기로 한 그를 좋아한다. 나타샤의 배신에 무너진 그의 선택을 존중하고, 용서와 사랑을 회복한 그를 사랑한다. 안드레이는 지상에서 신이 내린 숙제를 다 완수한 인물 같은 느낌이었다. 그래서 죽음을 이해한 순간 그는 육체로부터 해방되었다. 


톨스토이가 안배한 장면들 중 안드레이와 아나톨, 피예르와 돌로호프의 만남은 인상적이었다. 평화 시 생긴 불화는 오히려 전쟁터에서 해소되었다. 명시적인 전쟁도 참혹하지만, 전쟁이 아닌 때의 삶 역시 비참하고 치열했다. 전쟁이 광기를 불러왔다면 평화는 나태와 음모를 불러들였다. 무엇을 위해 그렇게까지 하는가. 피예르는 계속 고민 한다. 행동이 결실을 맺기까지는 정말 긴 여정이 필요하지만 결국 가장 밑에 있던 이들의 삶에서 나름의 진실을 발견하고 스스로의 삶을 살아간다. 


그리고 나타샤, 나타샤... 가장 밝고 천진하고 아름다운 그녀가 행복하길 얼마나 바랐는지 모른다. 등장인물들 중 가장 자기 자신에게 솔직한 인물이었고 자기 잘못에 너무나 크게 아파하고 힘들어했다. 아나톨과의 도피가 실패로 돌아간 후 아파하는 그녀에게 말해주고 싶었다. 니 잘못이 아니야. 로미오와 줄리엣이 죽니 사니 하던 때의 나이도, 춘향이와 몽룡이가 그렇게 은애하니 어쩌니 할 때의 나이도 모두 16살 그 쯤 아니던가. 멋진 남자가 작정하고 유혹하면 어떻게 안 넘어갈 수 있을까. 안드레이 부친의 반대가 그녀를 위축되게 했고, 곁에 없는 안드레이는 그녀를 외롭게 했으니. 심지어 안드레이는 자유를 주고 갔고, 아나톨이 결혼한 상태가 아니었다면 어쩌면 둘은 결혼해서 불행한 부부가 되었을지도 모를 일이다. 하지만 이 모든 역경을 딛고 스스로의 삶을 꾸려가는 나타샤의 용기에 박수를 보낸다. 


덧붙이자면, 1812년 전투를 읽을 때 차이코프스키의 <1812년 서곡>을 틀었더랬다. 물론 읽으면서 그냥 껐지만. 전쟁은 그렇게 대포가 불꽃놀이처럼 팡팡 터지고 종소리가 결혼식을 축하하는 것처럼 울려 퍼지지 않았다. 거기엔 파괴와 눈물, 죽음이 가득했다. 


역사는 영웅이 만들어가는 것이 아니라 그 속에 살아숨쉬는 모든 이들이 만드는 것이다.


 시대 흐름상으로는 이 책이 가장 뒷 이야기다. 세 책 모두 19세기를 그리는데, <전쟁과 평화>가 19세기 초의 러시아를 다룬다면, 이 책은 영국 빅토리아 여왕이 있던 시기를 다룬다. 디킨스가 1853년에 연재를 시작했다하니 그 시기인 것 같다. 


악명 높은 잔다이스 소송은 그 끝이 허무한 만큼이나 어이없는 당시의 법률관계를 보여준다. 돈벌이에 치중한 변호사들은 어쨌거나 소송을 끌어갔고, 계속 나오는 서류들만을 검토하며 다음 회기로 소송을 넘기는 법관들은 권위만 가득한 콧대 높은 나무토막들 같았다. 


잔다이스 소송에 얽힌 우리 잔다이스 아저씨, 리처드, 에이다, 에스더는 황폐한 집에서 함께 지낸다. 그리고 또 다르게 얽힌 데드록 귀부인과 토킹혼 변호사, 보이손 선생이 등장하고, 괜히 한 남자의 죽음에 얽혀버린 불쌍한 '조'가 나온다. 조만 생각하면 아직도 눈물이 나고, 악독한 스킴폴을 용서할 수 없다. 좀 희안하게도 <전쟁과 평화>에서 악역인 아나톨도, <레 미제라블>에서 악역인 떼나르디에도 이 정도로 화가 나지 않는데 스킴폴에 대해서만큼은 분노가 치밀어오른다. 난 여전히 부족한 인간이구나.. 느낄 정도로.


에스더는 보살이다. 정말이다. 집안일도 잘하고 남들도 잘 이해하고 애들도 잘 돌보고 화도 내지 않는다. 어릴 때 정신적으로 학대 받았음에도 불구하고 자신에게 주어진 것들에 감사하며 살아간다. 그래서 자신을 위해서 욕심내는 일이 거의 없다. 사랑까지도. 심지어 천연두로 추정되는 전염병에 걸려 죽어갈 때도, 그 병 때문에 얼굴이 엉망이 되어도 그녀는 절망하지 않는다. 오히려 사랑하는 이들이 곁에 있음에 또 감사한다. 만약 에스더가 위고의 작품 속 주인공이었다면 분명 죽었을지도 모른다. 톨스토이였다면... 얼굴이 망가졌으니 살아있을 확률이 높아졌지만 성품이 완벽해서 죽었을 거다. 하아.. 그렇구나. 디킨스를 만나서 다행이야 에스더.


잔다이스 소송은 거의 책이 끝날 때까지 끝나지 않고, 에스더가 가진 출생의 비밀은 애초부터 암시되지만 비극으로 치닫고, 리처드는 잘못된 믿음과 사람을 선택하여 파멸로 걸어가고, 에이다는 그 파멸을 알면서도 함께 걷기를 주저하지 않는다. 이 시대 영국 법을 수호하는 사람들은 극심한 빈부차로 인해 나락으로 떨어진 이들에게 자비를 베풀지 않는다. 법의 준엄함은 언제나 없는 이들에게 소리치고 법의 자애로움은 언제나 가진 자들에게 웃는다.   


그래도 1권부터 응원한 에스더의 사랑이 이루어져서 기뻤다. 사랑은 사랑하는 이들에게 이루어져야 하니까. 데드록 귀부인은 하지 못했던 그 사랑이, 보이손 선생과 잔다이스 아저씨가 바랐던 그 사랑이 에스더의 이마에 키스해줘서 고맙다. 울다가도 마지막은 웃을 수 있어 기뻤다.


덧붙이자면... 정말 디킨스 소설에는 유령이 빠지지 않고 등장한다. <위대한 유산>에서도 <두도시 이야기>에서도 <크리스마스 캐럴>에서도, 그리고 여기도.


삶이 고되고 억울하다 하여도 가끔 내려앉는 천사의 미소가 있어 희망을 가질 수 있다.


 나는 길치다. 

 

진짜 길을 잘 못찾아서 누구 개업식이나 누구 사무실을 방문할 때 난감한 적이 한 두번이 아니다. 그런데.. 그런데 파리의 골목길이나 파리의 하수도를 설명하면 내가 알아듣겠냐고.


내가 <노트르담의 파리>에서 대성당에 대한 설명도 그렇구나 했고, 이 책에서 미리엘 주교의 삶도 그렇구나 했고, 워털루 전투도 그렇구나 했는데, 장발장이 프티 픽피스에 떨어질 때나 마리우스를 들쳐업고 하수도를 통해서 도망갈 때는 정말 뭐라는지 고개를 저으며 읽었다. 나는 길치라구요...


이 책을 읽을 때 가장 힘들었다. 어떻게 미리엘 주교는 그럴 수 있었을까. 과거엔 방탕했던 것 같은데 어떤 일을 계기로 신의 사자가 되어 이렇게 선을 행하는가. 장발장은 그에게 감화되어 어떻게 그렇게 양심에 따라 행동할 수 있는가. 자베르는 도대체 어떤 인간들을 보아왔길래 동정심이라는 감정을 느끼지 못하고 법의 냉철함을 양심으로 삼아 살아갈 수 있는걸까. 그리고 끊임없이 그들의 양심을 시험하고, 선택하게 만드는 사랑하는 이들의 삶이 그들의 양심과 삶을 어떻게 더 풍요롭고 굳건하게 만드는지 보았다.


과연 장발장이라는 인물이 그렇게 극악한 범죄자인가. 1789년 혁명 이후 93년을 지나고, 나폴레옹이 등장했다가 사라지고 빈체제가 유럽을 지배할 때, 장발장은 그저 배가 고파서 아니 자신이 부양하는 조카들의 배가 고파서 빵 하나를 훔쳤을 뿐이었지만 법은 그에게 끔찍한 노역을 명했다. 그리고 그저 그러한대로 살면서 자신의 차례가 되어 탈옥을 거듭한 끝에 장발장은 19년이라는 세월을 도형수로 살았다. 가석방으로 정해진 주거지로 가는 도중 어느 누구도 자신에게 잠자리와 먹을 거리를 주지 않아 절망한 상태에서 신을 만났다. 


그 신은 미리엘 주교라는 이름으로 그에게 안식을 주었다. 그리고 용서와 자비를 베풀었다. 그리고 다시금 삶의 누추함과 비참함에 함몰되어 갈 때 신은 그에게 살아갈 희망과 빛을 코제트라는 이름으로 비춰주었다. 또한 그가 양심의 말을 따르길 주저할 때 자베르라는 이름으로 양심을 깨웠다. 장발장의 삶에서 가장 중요한 사람들, 미리엘 주교와 코제트와 자베르는 각자의 삶을 살며 장발장에게 삶을 어떻게 살 것인지를 끊임없이 깨닫게 해줬다.


1832년 자유를 외치는 젊은이들이 쓰러질 때 무슨 숭고한 자세로 그 곳에 있는 것이 아니었던 마리우스를 구해 묵묵히 걸어가는 장발장은, 전부였던 코제트를 보내고 혼자 죽어가던 장발장은 신이 가장 기뻐할 사람이었을 것 같았다. 가장 비참한 상태에 있는 사람도 선할 수 있다. 가장 높은 곳에 있는 사람이 추악할 수 있듯이. 그 자체로 악한들은 과연 원래 악했던 것일까, 사회가 그렇게 만든 것일까. 


학대를 받아도, 비참해도 가브로슈가 명랑한 개구쟁이였듯, 모두가 떼나르디에 같지 않았다. 내가 가질 수 없다면 아무도 가지지 못하길 바랐던 에포닌이었지만 그래도 마리우스가 살 길 바랐고, 죄인에게 동정은 허락할 수 없었지만 자베르는 한 번의 동정심을 발휘했고 그 대가를 치렀다.



내 고양이가 가슴 아프게 무지개 다리를 건너면서 시작한 여정은 이렇게 또 가슴 아프게 끝이 났다. 한동안 먹먹한 상태로 지낼 것 같지만 나는 또 다른 책을 읽을 것이고 감동 받고 또 살아가겠지. 그들의 감정을 느끼려고 애쓰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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stella.K 2021-06-06 19:07   좋아요 2 | 댓글달기 | URL
남의 일 같지가 않네요.
저희도 다롱이가 곧 떠날 것 같습니다.
18년을 살았으니 더 살길 바란다는 건 욕심이겠죠.
근데 보낸다는 게 참 쉽지 않네요.
혹시 사후처리를 어떻게 하셨는지 여쭤도 될런지요?
어떤 조언도 좋구요.ㅎ
많이 허전하시겠습니다. 그래도 좋은 책들과 함께 슬픈 마음 잘 다독이시기 바랍니다.

꼬마요정 2021-06-06 19:27   좋아요 2 | URL
다롱이가 18살이라니… 맘이 안 편하시겠어요ㅠㅠ 전 알면서도 막상 받아들여지지 않아서 한동안 괴로웠답니다. 아파서 간호한다고 잘 못자고 매달렸는데 더 잘 해줄걸 후회도 많았구요.

작년에는 둘째 고양이가 12살밖에 안 됐는데 암에 걸려서 급하게 갔거든요. 그 때도 그렇고 이번도 그렇고 하루 정도는 집에 같이 있었어요. 저도 집에 있는 다른 냥이들도 받아들일 수 있도록요. 그러고 반려동물 화장터에 가서 화장했어요. 사람도 동물도 살아있을 때 더 잘해주는 게 맞는 것 같아요. 저도 1분이라도 덜 자고 한 번이라도 더 입술 축여준 기억이 그나마 위안이 되더라구요. 그리고 운동도 열심히 하고 책도 열심히 읽고 일도 열심히 하면서 나름 현실 도피했는데 그러다보니 시간이 지나고 허전함은 계속 되지만 견딜만 하더라구요. 여전히 보고 싶은데 그건 어쩔 수 없는 것 같아요.

가능하면 다롱이가 좀 더 스텔라님과 함께 하기를 간절히 바랍니다~

페넬로페 2021-06-06 19:39   좋아요 1 | 댓글달기 | URL
꼬마요정님!
정든 냥이를 보내고 난 후에 그 허전한 마음을 독서로 달래셨네요~~
전 반려동물을 키우지는 않지만 그 맘은 잘 알것 같아요^^
먹먹한 마음 잘 추스리시기를 바래요^^

꼬마요정 2021-06-06 19:59   좋아요 1 | URL
위로 고맙습니다!! 많이 허전하고 먹먹하네요. 그래도 책들이 절 위로해주니 좋습니다. 만남이 있으면 헤어지는 것 또한 당연한 일이지만 참 견디는 게 쉽지 않네요. 나타샤나 에스더나 장발장은 어떤 마음이었을까요. 괜히 더 이입이 되어서 많이 울었다죠.^^
 

지난 5월 21일, 28일, 6월 4일. 내가 다니는 주짓수 도장에서 세미나가 열렸다. 우리나라 뿐 아니라 세계 무대에서도 이름을 알리는 선수 세 분이 와서 각자 자신들의 기술을 가르쳐 주고 갔다.

세계적이고 개성 뚜렷한 세 선수의 세미나는 말 그대로 먹을 게 많은 잔치였다. 채완기 선수가 보여 준 웜가드, 장인성 선수가 알려 준 니슬라이드패스, 황명세 선수가 전해 준 스매쉬패스는 모두 일단 너무 멋졌다.

동작 자체들이 연결되어 절도 있고 아름다웠는데, 상대를 제압하는 기술이 이렇게 멋질 수가 있구나를 ‘또’ 배웠다.

제일 인상 깊었던 점은 -세 선수 모두 공통적으로 말하길- 체급 차이나 명성에 쫄지 말고 이길 수 있다는 자신감을 가지라는 것과 상대에게 유리한 자세를 내주지 말 것과 설사 불리해졌다 하더라도 상대의 힘을 이용해서 다시금 유리한 지점을 되찾아 오라는 것이었다.

하나의 무술을 오래도록 끈기있고 열정적인 자세로 연마해 온 선수들의 말은 또한 우리 관장님의 말과도 닿아 있었다. 새삼 이런 기회를 주신 관장님께도 고맙고 와 주신 세 분께도 고맙다. 또한 바쁘고 힘든 기간이었지만 기어코 다 참석한 나에게도 고맙다.

세상은 열심히 한다고 해서 그 노력만큼의 보상을 약속하지 않지만 노력의 열매를 얻을 수 있도록 더 노력하는 수밖에 없지 않을까 싶다. 이런 세미나는 노력의 결과를 좀 더 쉽게 얻게 해 줄 좋은 기회라고 생각한다. 정말 기본 동작부터 정확하게 할 수 있도록 반복해야겠다. 저 분들의 여유에는 모두 반복된 연습이 있을테니.

나도 지금 배우고 있는 중이지만, 그 단계들은 쏜살같이 지나간다. (p. 1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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며칠 전, 주짓수 도장을 다니며 알게 된 동생이 폭탄을 던졌다.

 

"언니, 나 임신했어."

 

지금이 7월 중순이니까, 2020년 들어서 7개월 가까이 지나는 동안 반려동물도 떠나보냈고, 친한 후배도 떠나보냈고, 역병이 창궐하는 등 수많은 일들을 겪어내는 와중에 들은 가장 충격적인 이야기였다.

 

죽음이나 병이 내가 어떻게 살아야 할까, 죽음을 어떻게 대비해야 할까, 삶이란 무엇일까... 하는 질문을 던졌다면, 나보다 겨우 두 살 어린 아는 동생의 임신은 지금 살고 있는 내 삶에 파문을 일으켰다.

 

나는 남편이랑 상의해서 아이를 갖지 않기로 했기 때문에 출산과 육아는 내 삶에서 그닥 신경 쓸 부분이 아니었다. 그랬기에 일을 하거나 운동을 하거나 혹은 기타 다른 일들을 할 때 임신과 출산, 육아로 인해 하던 것들을 멈춘다는 것은 아예 생각조차 안 해 봤던 거다.

 

이제 그 아이는 주짓수 도장에 오지 못하겠지. 애를 어느 정도 키우고 다시 오기란 정말 쉽지 않을 것이다. 어느 정도 나이가 들어서 시작한 것도 엄청난 용기였을텐데, 나랑 비슷한 시기에 시작해서 같이 파란띠를 달았는데 너무 아쉬웠다.

 

그러면서 주위를 돌아보니 왜 나보다 나이 많은 여자가 없는지 알 것 같았다.

 

여자이기 때문에 처져 있는 한계가 눈에 들어왔다. 내가 주짓수를 시작할 때 여자가 그런 걸 해? 와, 진짜 대단한데... 이런 이야기를 많이 들었다. 당연히 남자인 남편이 먼저 시작했거나 하고 싶어하지 않았냐는 말도 많이 들었다. 남편과 상관없이 내가 하고 싶어 시작했고, 남편은 따라왔다가 재밌어보여서 같이 하게 된 거였는데.

 

이런 운동도 아이를 낳는 순간 정말 끝까지 하기 힘들겠구나 느꼈다. 사실, 기분이 이상했다.

 

나는 주짓수 뿐만 아니라 이번 여름에 서핑도 하고, 겨울엔 서예를 해볼까 생각하고, 또 다른 무언가 재미있는 게 뭘까 하며 살고 있는데, 거기에 '자식'이 들어가면 완전히 달라진다는 걸 느꼈다. 지금껏 주변에서 친동생조차 언니 부러워~ 할 때 아무 생각 없었는데 이번엔 충격이었다.

 

덕분에 수많은 어머니들이 얼마나 많은 걸 포기하고 사는지 격하게 알게 됐다고나 할까. 아이를 키우며 느끼는 기쁨은 기쁨이고, 잃어버린 건 잃어버린 거니까. 둘은 결코 상쇄되지 않겠지. 내가 아무리 즐겁게 지내더라도 그 기쁨을 알지 못하는 것처럼 말이다. 그러니 엄마들이 자유를 갈망하면서 죄책감을 느끼지 않았으면 좋겠다. 사람이라면 당연히 느낄 수 있는 감정일테니까. 그리고 세상이 그녀들에게 보다 더 관대해지면 좋겠다. 엄마도 사람인데 어떻게 모든 것을 다 할 수 있을까.

 

  상대성이론과 양자역학은 현대물리학을 떠받치는 중요한 두 기둥이라고 한다. 그런 두 개의 이론이 블랙홀에서는 서로 맞부딪친다. 진실이라고 믿는 중요한 두 가지가 어떤 상황에서는 서로에게 위배되는 것이다.

 

 엄마라는 존재도 마찬가지인 것 같다. 그동안 엄마는 희생으로 점철된 상징이었다. 엄마는 언제나 가족을 위해 희생하고, 그래서 일을 하더라도 가족에게 소홀하면 안 되는 존재였다. 하지만 어떻게 그럴 수 있을까? 사람인데? 그러니 사람이라서 느끼고 원하는 것들에 관대해지길. 그리고 세상 앞에 더 당당해지길.

그래서 이 강연에서 내가 전하려는 바는 블랙홀은 흔히 블랙홀이 칠해져 있는 것처럼 검지 않다는 것입니다. 한때 상상했던 것처럼 영원한 감옥도 아닙니다. 블랙홀 바깥으로 물건들이 빠져나올 수 있습니다. 우리 우주로도 나올 수 있지만 다른 우주로도 가능합니다. 그러니 만약 여러분이 블랙홀 속에 있다고 느껴지면, 포기하지 마시길. 나갈 길은 있습니다!- P6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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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 비가 많이 왔다. 밤새 내린 비는 반짝거리는 풍경을 보여준다. 풀잎에서 물방울이 떨어지거나 군데군데 고여 있는 물 위로 지나다니는 생명들이 비치면서 말이다. 난 비 온 뒤 그 반짝임이 좋다. 그리고 깨끗한 물내음도 좋다. 내 마음도 비가 한 번 씻어주면 좋겠다 싶다.

 

2. 아무 생각 없는 한 주를 보내려고 했다. 월요일 밤, 11년을 함께 했던 반려냥 누롱이가 세상을 떠났다. 암이었다. 그 조그만 몸에 그렇게 커다란 종양이라니. 그 고약한 놈은 내가 사랑하는 고양이의 생명을 파 먹었고, 순하던 녀석은 뭐가 그리 급한지 총총 가 버렸다. 남은 냥이들을 돌보면서도 비어 있는 누롱이의 밥그릇을 보면 눈물이 난다. 이제 이 밥그릇은 채워지지 않겠지. 또 다른 인연이 생기지 않는다면. 숫자로 치면 고작 1일 뿐인데, 집 전체가 비어버린 듯한 느낌이다. 누롱이의 빈 자리는 너무나 크고, 한 동안 물기 가득한 순간들을 보내겠지. 시간이 지나면서 바래질지언정 잊혀지지는 않을 추억을 되새김질 하면서.

 

3. 억수같이 퍼붓는 빗소리를 들으며 생각했다. 이 비가 거리를 씻어주는 것처럼 내 마음의 슬픔도 씻겨가게 해 주면 좋겠다고. 하지만 이렇게 슬픈 건 그만큼 사랑했다는 거니까, 그 사랑했던 마음까지 가져가 버릴까봐 그냥 이 슬픔을 받아들이기로 했다. 어차피 살아있는 모든 건 죽는다. 만나면 헤어지고, 떠나면 돌아온다. 생자필멸 회자정리 거자필반... 덧없다 여기면서도 사무치게 아프다.

 

4. 마음이 아파서 집어든 책을 아무렇게나 펼쳤더니... 이런 구절이 나온다.

 

'얻는 것과 잃는 것 중에 어느 것이 병이 되는가?'

 

얻는 것이 없다면 잃는 것도 없을테니 병도 없겠지. 또한 얻고 잃음에 초연할 수 있다면 병 또한 없겠지. 하지만 함께 해서 기뻤고, 헤어져서 슬픈 것을 병이라고 할 수 있을까. 왜 이런 구절이 지금 내 눈앞에 나타났는지 모르겠다. 집착이든 욕망이든 어떤 이름을 붙이던 상관없이 난 충분히 슬퍼하고 싶을 뿐. 슬플 땐 슬퍼해야지. 슬프니까.

 

얻으면 좋고 잃으면 슬프다... 그 또한 당연한 것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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겨울호랑이 2020-06-14 17:13   좋아요 1 | 댓글달기 | URL
에고... 누롱이를 떠나 보내셨군요. 저희 집 귀요미는 2살이어서 함께 보낸 시간이 그리 길진 않지만, 이 녀석이 없는 집은 생각하기 어렵네요... 11년을 함께 하신 꼬마요정님 마음을 미루어 짐작해 봅니다... 저희 역시 예정된 이별을 해야할 것이기에 꼬마요정님의 아픔에 공감합니다...

꼬마요정 2020-06-14 22:37   좋아요 1 | URL
위로 고맙습니다.
2살이라니.. 너무 귀엽겠어요. 많은 추억 쌓으시길 바랍니다.

보낼 때마다 참 가슴이 아프네요. 그래도 함께 한 시간 동안 누롱이는 행복했겠죠? 정말 집이 텅 비어버린 것 같아요. 하지만 보내줘야겠죠... 부디 아프지 않았으면 하네요.

다락방 2020-06-14 19:43   좋아요 1 | 댓글달기 | URL
꼬마요정님을 위한 다정한 마음을 놓고 갑니다.

꼬마요정 2020-06-14 22:37   좋아요 0 | URL
고맙습니다. 다락방님.
다정하신 분...
 

지난 일요일, 후배 장례식에 갔다.

 

부고 문자가 왔을 땐, 당연히 그 아이의 부모님 중 한 분이 돌아가셨으리라 생각했다. 하지만 느낌이 싸해서 문자를 다시 봤을 때... 본인 사망은 충격이었다.

 

2018년 2월 말, 그 아이는 또 다른 후배와 함께 손을 잡고 내가 있는 사무실에 들어왔다.

 

"언니, 우리 결혼해요."

 

같이 공부하던 정독실 후배였던 두 사람은 해맑게 웃으며 행복해했다.

 

전혀 몰랐다. 그 아이가 암과 싸우고 있던 사실을.

 

지금으로부터 5년 전 암 선고를 받고 치료와 수술을 거듭했을텐데 왜 아무도 몰랐을까.

 

죽음은 그렇게 나이를 무시하고 그 아이를 데려갔다.

 

 

중국의 어느 소수 민족 신화에 보면 붉은 새벽이 붉은 이유는 아버지 해가 아기 별들을 잡아먹어서라고 한다. 죽음이란 그렇게 곳곳에 선연한 핏빛을 남기는가보다. 여태껏 살면서 수많은 죽음을 보았지만, 나보다 어린 생명들이 죽는 건 가슴이 너무 아프다. 그리고 나도 언젠가는 죽겠지란 허망함.

 

삶이 쉽지 않기에, 삶에 의미를 두고 싶어진다. 삶이 행복해야만 하는 건 아니지만, 이왕 사는 거 행복하고 싶다. 하지만 삶의 의미는 고통스러울 때 더 크게 느껴지는 것 같고, 행복은 그 순간이 지나가서야 비로소 완전하게 다가오는 것 같다.

 

문득 떠오르는 책이었다. 어쩌면 '삶이 그대를 속일지라도 슬퍼하거나 노여워말라'는 말 때문일지도 모르겠다.

 

엇갈린 길이 또 다른 사랑을 데려올 줄 몰랐더랬다. 온 세상이 새하얀 눈으로 가득 찬 곳은 말 그대로 한 치 앞도 알 수 없는 인생길을 보는 듯 했다. 저벅저벅 걸어가다보면, 처음 생각한대로가 아니더라도 만족할 만한 곳이 나올게다. 비록 생각한 장소는 가 보지 못할지언정 말이다. 시간이 어느 정도 지난 뒤 다시 그 곳에 가면 나는 과연 무엇을 볼 수 있을까. 삶이 흘러간 자리를, 특히나 빈 자리를 보는 건 슬프다기 보다는 허무할 것 같다. 마치 장례식을 다녀오고도 한참 뒤 우연히 그를 떠올리는 장소에 갔을 때처럼 말이다.

 

나이가 드는 건 당연하다고 생각했지만, 이렇게 이 나이까지 살아왔다는 게 기적 같다는 생각이 들었다. 순간 순간을 느끼며 살고 싶어졌다. 하지만 곧 다시 일상에 매몰되겠지. 찰나 스쳐가는 깨달음은 말 그대로 찰나에 존재할 뿐, 나는 다시 사는 걸 당연하게 생각할 것이다. 하지만 이 찰나들이 한 번씩 나를 스쳐갈 때면 또 다시 깨우침을 주겠지. 그러면 조금은 자라 있을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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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20-05-27 23:24   URL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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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20-05-28 14:40   URL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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