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누군가의 죽음은 아무렇지도 않을 수 있지만,

 

또 다른 누군가의 죽음은 너무나 슬프다.

 

살아있다면 죽는 건 당연한데,

 

어째서 그 죽음을 받아들이는 건 어려운걸까.

 

쓸쓸한 가을 바람은 차갑게 지나가고

 

나는 꾸벅꾸벅 졸다가

 

갑작스런 소식에 놀라 눈을 뜬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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신랑과 내가 한동안 푹 빠져 있던 오락이 하나 있었다. 행복한 거리..라는 게임이었는데, 거리에 마을 을 만들어 마을 주민들을 기쁘게 해 주는 게임이다. 물론 끝없이 확장이 가능하고, 집과 가게들과 오락 거리들과 나무 등 만들고, 해변가, 돌산, 숲 속, 철광 등 영역을 넓혀 나갔다.

 

그런데.. 모든 것이 그렇듯 열심히 하던 오락거리에 시들해졌다. 나는 점점 내버려두기 시작했고, 그 틈을 탄 신랑이 나의 행복한 마을을 '점령'했다.

 

이 마을의 건물들은 모두 업그레이드가 가능했는데, 그러려면 돈 뿐만 아니라 갖가지 재료들이 필요했다. 물약이나 햇살, 돌, 철, 사과 등등 오락을 하면서 시간과 자원을 들여 만들 수 있는 것들이 많았다. 신랑은 그런 재료들을 조달하기 시작했다. 자신의 '식민지'인 나의 행복한 거리에서 말이다.

 

나의 거리는 넓어지기 시작했고, 주민 수도 많아지고, 보다 활기차졌다. 신랑이 '관리'해서다. 그러면서 신랑이 하는 말...

 

식민지 수탈론이 이해가 간다. 너의 거리가 보다 수익이 많이 나긴 하는데, 그거 전부 내 마을 위주로 한다. 일제가 조선을 근대화 시켰다는 둥 그러는데 그거 전부 웃긴게, 다 일제를 위해 만들어준거야. 결국 가장 중요한 것들은 너의 거리에 쓰지 않아. 다 내 거리로 가져가지. 오락하면서 이렇게 섬뜩한 건 정말 처음이네.

나는 웃었다.

 

맞아요.. 조선에 길 닦은 것도, 비행장을 지은 것도 다 자기들이 수탈하기 유리한 곳에 수탈하기 좋은 방법을 찾아서 한 것들이니까. 만약 조선인들이 직접 했더라면 다른 곳에 다른 방법으로 지었을텐데. 그리고 짓는 대가도 보다 정당하게 받아가고.

 

우리는 마주보며 웃었다.

 

그저 평범한 일상 속에서 얻은 깨달음이 무척 슬펐다. 아... 언제쯤...

 

* 따옴표 어떻게 하는건지..ㅠ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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어린 시절부터 공포 영화나 무서운 이야기를 좋아하던 나에게 드라큐라, 뱀파이어의 이야기는 매력적이었다. 신에 대항하여 그 죄로 죽지 못하는 삶을 비참하게 살아야 하는 존재. 그리고 어찌할 수 없는 사랑.

 

드라큐라는 창작가들에게도 매력적인 소재였나 보다. 곳곳에서 그의 흔적을 볼 수 있으니 말이다.

 

그래서일까.. 나에게 드라큐라는 사랑을 잃고 헤매이는 세계 최고의 로맨티스트이다. 현세의 삶 뿐만 아니라 자신의 영혼의 안식마저 던져버린 남자. 비참한 모습으로 인간의 피를 빨아먹으며 처참하게 영원을 살아야 할지라도 그는 신에 대한 저주를 멈추지 않는다. 자신이 사랑하는 단 한 여자의 안식 때문에.

 

신의 사랑을 비켜나 영원히 지옥을 맴돌아야 한다는 자신의 연인처럼, 자신도 신의 사랑을 거부하는 건 어쩌면 당연한 일인지도 모른다. 그녀가 고통받는데, 자신은 행복할 수 없으니. 그리하여 십자가에 칼을 꽂은 그는 후회하지 않는다.

 

세상 천지에 이런 로맨스가 어디 있을까. 드라큐라 왕자는 그 누구도 아닌 절대신에 대항했다. 그것도 자신의 사랑을 이루기 위해서가 아니라 자신의 사랑을 지옥으로 보냈다는 이유로. 그런 신이라면 더 이상 섬기지 않겠노라고.

 

드라큐라 영화를 제법 보았는데, 게리 올드만과 위노나 라이더, 키아누 리브스가 나온 이 영화가 제일 기억에 남았다.

 

 

 

 

 

터키와 전쟁을 하기 위해 성을 떠났던 드라큐라 왕자, 그가 승리하고 돌아왔을 땐 이미 그의 아내 엘리자벳은 자살한 뒤였다. 사랑하는 이가 죽었으니 나도 따라가리...라는 그녀의 선택에 사제는 말했다. 자살한 영혼은 구원받을 수 없노라고. 드라큐라 왕자는 분노했다. 신을 위해 싸운 대가가 이런 것이냐고, 그렇다면 나는 신을 버리겠다고, 신에게 복수하겠노라고.

 

 

 

 

 

 

신의 피를 마시고 포효하는 장면은 가히 압권이었다. 그의 어찌할 수 없는 분노가 생생하게 전해졌다. 

 

사실, 드라큐라가 흉측하고 끔찍한 모습으로 나타나는 건 비유적인 게 아닐까 생각한다. 사랑하는 사람이 있을 때는 정상적인 모습이지만, 그녀가 떠나고 신을 버리고 난 뒤 그의 삶은 살아도 산 것이 아니다. 허무하고 허무하며, 온갖 분노와 부정적인 생각들과 고통이 그를 휩싸고 있을테니 그런 모습일 수밖에. 그러나 그녀를 감지했을 때 그는 돌아왔다. 본래의 모습으로. 생생하게 살아있는 그 모습으로.

 

 

 

 

한 눈에 알아볼 수 있었다. 사랑하는 사람을. 구원받을 수 없다고 믿었는데 그녀는 환생하여 다시 그의 삶 속으로 들어왔다. 이제 그의 시간은 움직이기 시작했다.

 

 

 

 

 

 

 

 

그러나 그녀는 다른 남자의 아내가 될 운명. 또 다시 그는 신을 저주할 수 밖에 없었다. 광기에 휩싸인 그는 미나의 친구 루시를 죽이고, 그녀의 고백을 듣지만 이미 늦었다.

 

 

 

 

기나긴 시간을 홀로 외로이 살아온 그가 미나의 손에 죽는 건 당연한 일이었다. 시작을 그녀로 인해 하였으니 끝도 그녀가 내 주어야겠지. 구원받을 수 없는 그녀의 영혼이 속세에, 그녀를 그리던 그 앞에 나타났으니 이제 그가 신을 저주하며 고통받던 시간들은 끝을 내어도 좋았다. 그의 영혼이 소멸될지라도 그녀가 존재함을 그가 알았으니 이제는 쉴 수 있다. 그는 그렇게 그의 마지막을 행복으로 장식했다.

 

키아누 리브스가 좋았는데 이 영화는 게리 올드만이 더 멋있다. 아하... 어쩌면 그래서 드라큐라의 이미지는 나에게 로맨티스트가 될 수 있었는지도 모르겠다. 아니면 생뚱맞게 뱀파이어와의 인터뷰에서의 톰 쿠르즈의 영향도 있을수도.

 

인간의 피를 빨아먹고 사는 존재, 피라미드에서 인간의 위쪽에 있는 존재. 그런 존재가 나타난 것은 왜일까. 뱀파이어나 드라큐라나 정말로 존재할까. 하긴, 있을 수도 있겠지. 인간은 자신의 하위에 있다고 생각되는 존재를 사냥하고 학대하기에, 인간보다 상위에 있다고 생각되는 존재도 인간을 사냥한다고 생각할 수 있겠지. 그래서 어쩌면 존재할지도 모르는 그 존재를 두려워하고, 괴물의 모습으로  형상화하는 것일지도. 뭐, 나에게는 로맨티스트지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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카스피 2012-05-26 20:01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드라큐라 영화가 상당히 많이 만들어졌지만 원작인 드라큐라 내용을 가지고 만든 영화는 사진속 영화가 처음이라고 하더군요^^

꼬마요정 2012-05-26 20:13   좋아요 0 | URL
그렇군요... 그러고보니 드라큐라 영화 볼 때 미나가 나오는 건 별로 없긴 했어요. 이 영화는 그 유명한 흑백영화 드라큐라보다 훨씬 마음에 남았어요. 배우들 연기도 좋았구요.

카스피 2012-05-26 21:22   좋아요 0 | URL
최초이 드라큐라 영화는 독일의 노스페라투인데 이게 원작소설 드라큐라와는 전혀 다른 내용이죠.이후 헐리우드에서 10~20년대 드라큐라 영화(무성영화)를 많이 만들어내지만 이 당시는 워낙 상영시간이 짧아 원작소설을 담을수 없기에 원작의 내용과는 전혀 상관없은 영화들이 많이 만들어 졌습니다.

꼬마요정 2012-05-26 21:25   좋아요 0 | URL
아... 그랬군요. 처음 알았어요. 스토커의 소설 이후 뱀파이어를 소재로 한 소설이나 영화가 많은데 이 영화가 젤 맘에 들어요^^

카스피 2012-05-26 21:30   좋아요 0 | URL
사실 원작의 주제는 애절한 사랑이라고도 할 수 있는데 영화에선 너무 공포만을 앞세운것이 사실이지요.이 작품이후 뱀파이어 로맨스물이 하나 둘씩 생겨난것 같아요^^

꼬마요정 2012-05-26 23:23   좋아요 0 | URL
카스피님~~ 전문가세욤~^*^

이진 2012-05-27 01:39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꺄 브램스토커의 <드라큘라>는 저희 집에도 고이 보관되어 있어요.
드라큘라는 정말 좋아하는데, 음 저는 <대런섄>을 좋아해요.
제가 판타지 소설을 처음 읽은게 이 책이고 또 너무 재밌게 읽어서 사서 책장에 꽂아두기 까지 했고 내용을 다 꿰뚫고 있으니. 이로 인해 드라큘라 좋지요. (문장이 정말 제멋대로)

꼬마요정 2012-05-27 01:49   좋아요 0 | URL
오~~ 대련섄은 오늘 처음 알았어요. 저도 한 번 시도해보고 싶은 책이로군요.^^ 마음에 들어 꽂힌 책은 두고두고 읽다보면 어느샌가 주요 대사는 외우게 되고 연관된 이야기에 몰입하게 된다는..ㅋㅋ

저도 이 드라큘라가 너무 좋아요. 너무 애절하고 멋지잖아요.. 한 여자를 위해 이렇게까지 하다니.. 다른 의미로 개츠비스럽다고나 할까요..ㅎㅎ

노이에자이트 2012-05-27 15:15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토키영화로 접어들면서 드라큐라 역으로 가장 유명한 배우는 역시 크리스토퍼 리입니다.워낙 영화사의 고전이라고 해서 비디오로 본 적이 있는데 별로 무섭지 않더군요.지금 우리 대중들이 생각하는 드라큐라의 원형을 창조한 배우라네요.

꼬마요정 2012-05-27 20:12   좋아요 1 | URL
ㅎㅎ 크리스토퍼 리는 드라큐라 역을 몇 번 했네요.. 저는 1931년에 나온 것도 봤는데 (물론 ebs에서 하길래) 크리스토퍼 리가 나온 드라큐라 영화는 한번도 본 적이 없어요. 한 번 봐야겠어요.^^ 어쨌든 전 게리 올드만의 드라큐라 좋다는..ㅋㅋㅋ

카스피님 말씀처럼 아마도 드라큐라는 사랑을 간직한 인물이라서 그런 게 아닐까요... 게다가 미녀들을 거느리고.. 흠...

노이에자이트 2012-05-28 14:04   좋아요 0 | URL
제가 본 것은 색채영화였어요.꼬마요정님이 본 것은 흑백이었나요?

꼬마요정 2012-05-28 20:06   좋아요 0 | URL
헉... 그럼 제가 본 건 뭐죠??
ebs에서 하는 거 봤거든요. 새카만 영화인데.. 그게 혹시 색채영화? 크리스토퍼 리...가 드라큘라였던 거 같은데..ㅠㅠ

노이에자이트 2012-05-28 20:37   좋아요 0 | URL
크리스토퍼 리가 1922년 생입니다.그러니 1931년 영화에서 드라큐라 역을 했을 리가 없죠.최근작인 '찰리와 초콜릿공장'에도 나온 걸요.뭔가 다른 영화와 착각하신 듯해요.

꼬마요정 2012-05-28 21:16   좋아요 0 | URL
다른 영화겠군요..^^;; 역시 전 사람 구별할 줄 모르는 듯..ㅎㅎ

마녀고양이 2012-05-29 00:33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드라큐라 영화, 즉 뱀파이어 영화도 발전사가 있는거 같아요.
저 영화는 꽃중년 뱀파이어가 아주 인상깊었죠. 요즘은 꽃미남 뱀파이어가 나오잖아요.

뱀파이어라는 소재는 참 흥미진진합니다. 저는
앤 라이스의 <뱀파이어와의 인터뷰> 시리즈에 홀딱 빠진 이후, 준-영원의 삶에 대해서
많은 생각을 했었답니다.

꼬마요정 2012-05-29 00:44   좋아요 0 | URL
저도 뱀파이어와의 인터뷰 재미나게 보았어요. 그 시리즈는 뱀파이어와의 인터뷰 하나만 봤지만, 언제고 다 보려고 보관함에 넣어두고는... 아직도...ㅠㅠ

미드 중에 문라이트라는 드라마가 있는데, 하와이 파이브 오에 나오는 맥개럿 대령이 주인공이죠. 뱀파이어 탐정이랍니다. ㅎㅎ 좋아요..ㅎㅎ

그래도 전 로맨티스트 드라큐라 왕자가 제일 매력적으로 느껴져요.. 게리 올드만..ㅎㅎ 알라딘에서만 공감해주는 이야기라고나 할까요..ㅜㅜ

다락방 2012-05-29 10:47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저는 뱀파이어, 드라큐라 엄청 좋아해서 이런 영화는 거의 보려고 노력하는 편인데요, 그래서인지 되게 재미없는 드라큐라 영화도 있었어요. 가장 기억에 남는 재미없는 드라큐라 영화는 [드라큐라2000] 이었어요. 정말 엉망진창이라 깜놀할 정도로 재미 없었죠.

이 영화 [드라큐라]는 참, 유감스럽게도, 제가 게리 올드만과 키아누 리브스를 좋아함에도 불구하고 지루하고 재미없었어요. 고등학생때 보면서 아...왜 이정도인거야, 왜 이정도밖에 안되는거야, 했던 기억이 나네요. 그 뒤로는 다시 보지 않아서 어쩌면 지금 다시 보게 된다면 좋아하게 될런지도 모르겠지만요.

아주아주 오래된 영화중에 [미녀 뱀파이어]라고 있거든요. 이게..여자 주인공 이름이 생각 안나는데..안나 빠를로 였던가..기억이 가물. 꽤 촌스럽거든요. 그런데 엄청 재미있어요. 그러니까 이 여자는 뱀파이어인데 굉장히 괴물스럽게 남자의 피를 빤달까요. 그러면서 인간 형사와 사랑에 빠지는데, 인간 형사는 이 미녀 뱀파이어와의 정사 도중에 자꾸만 그녀가 자기를 물까봐 겁나는거에요. 그래서 그녀가 그렇게 걱정되면 나를 침대에 묶어 놓으라고 말하죠. 그래서 수갑으로 침대에 그녀의 팔을 묶어두고 정사를 나누거든요. 그건 심리적인 장치었을뿐, 실은 그 미녀 뱀파이어에게 수갑 따위는 아무것도 아니었어요. ㅋㅋㅋㅋ 정사를 하면서 눈동자가 빨개지는데... ㅎㅎㅎㅎㅎ

그러고보니 저는 그토록 뱀파이어 영화를 좋아하면서도 그중에 가장 재미있는게 무엇이냐, 라고 물으면 딱히 대답할 수 있는게 없네요. 흐음...


지금 다시 검색해보니 [미녀 뱀파이어] 가 아니라 [미녀 드라큐라]네요.

http://movie.naver.com/movie/bi/mi/photoView.nhn?code=12831&imageNid=2367251

꼬마요정 2012-05-29 18:33   좋아요 0 | URL
그러셨군요. ㅎㅎ 저는 이 영화 완전 맘에 들었는데요.. '그녀를 찾아 시간의 대양을 건넌' 그 사랑에 너무 몰입해서 말이죠. ㅎㅎ 드라큐라 이천은 저도 봤더랬죠. 로맨스가 없는 드라큐라는 매력적이지 않아요 ㅜㅜ

미녀 드라큐라 완전 땡깁니다.
여주인공 완전 순하고 어리게 생겼는데 빨간눈이 매력적이네요~~^^
 

다른 사람들도 이렇게 살겠지...

 

쳇바퀴 돌아가는 일상 속에서...

 

얼른 끝내고 내 삶을 살고 싶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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기억의집 2012-04-18 12:44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저는 집에서 노는데,,,왠지 모르게 허전한 맘이 들어요.
회사 다니고 싶기도 하고(이 말 하면 다들 계엄마들이 거품 물며 배부른소리 하고 있다고 아우성을 칩니다,
치열한 일상을 보내고 싶기는 해요.

꼬마요정 2012-04-18 13:15   좋아요 0 | URL
ㅎㅎ 집에 있으면 나가고 싶고, 일하면 집에 있고 싶고 그런 거 아니겠어요... 저도 집에 있고 싶어요~~~~~~~~^^
 

중학교 1학년 여름, 집이 이사를 하는 바람에 전학을 가게 됐다.

 

원래 살던 동네에서 지하철로 40분 넘게 걸리는 곳으로, 그러니까 중구에서 금정구로 이사하면서 나는 만화책을 알게 됐다.

 

지금 생각하면 우습게도...

 

난 그 때까지 만화책을 무시했다. 일요일 아침에 하는 만화부터 평일 저녁에 하는 만화영화는 다 챙겨봤으면서 정작 만화책은 무시했다. 저급하다고 생각했다. 나는 고고한 학이니까... 남들이 만화책 볼 때 나는 소위 고전문학을 보는 사람이니까.

 

사실, 그 때 읽었던 고전들 중 제대로 기억나는 건 몇 개 없다. 테스나 로미오와 줄리엣, 베니스의 상인과 같은 줄거리가 제법 읽고 기억하기 쉬운 것들 위주. 수레바퀴 아래서는 내용은 기억나는데 어떤 감흥도 느끼지 못했다. 그래서 왜? 이 정도. 데미안은 나중에 대학 가서 줄거리 읽고 기억해냈다. 이런 멍충이...하하

 

다 때가 있는 법. 이해할 수 있는 바탕이 없는데 폼잡고 읽는 건 아무 의미 없다.

 

 

 

그걸 깨달은 건 이사온 직후 중학교에서 학생들을 가르치는 우리 숙모가 추천해 준 만화책을 읽고 나서였다. 내가 제일 처음 읽은 만화책은 바로 김동화님의 롱롱러브(사랑의 에반젤린). 너무 재밌어서 그 뒤부터 만화책에 푹 빠졌다. 좁은 지하 만화방에 앉아서 10권짜리 비천무를 읽던 모습도 선명하게 떠오르고, 불새의 늪을 보고 충격에 빠지기도 하고,인어공주를 위하여를 4권만 빌리는 바람에 다음날까지 궁금증으로 학교가 마치자마자 만화방으로 달려갔던 기억도 난다. 아르미안의 네 딸들을 보다 마지막권이 안 나와서 이건 언제 나오나..하고 기다리면서 그제서야 마지막권을 남기고 계속 안 나오고 있다는 걸 알게 되고... 정말 만화에 푹 빠져 살던 나날이었다.

 

 

 

그 때 나는 나의 편협함의 많은 부분을 깰 수 있었다. 나와 다르다고 해서 틀린 게 아니라는 걸 알게 된 거다.

 

하지만 엄청난 장벽이 있었다. 바로 울 엄마.

 

울 엄마는 내가 만화책 보는 것에 기겁하셨다. 당신 본인도 만화책 좋아하면서 말이다. 울 엄마는 아직도 나랑 같이 만화책 즐겨 보신다. 사실 내가 애기 때부터 책을 좋아하고 읽는 건 엄마가 늘 책을 봤기 때문이니까. 여튼, 자기도 좋아하면서 왜 나는 못 보게 하는 거냐구요..ㅜㅜ

 

지금 이런 이야기를 하면 엄마도 멋쩍게 웃으시며 그러게 왜 그랬을까.. 이러시지만, 그 땐 정말 심각했다. 책을 사는 데 전혀 돈을 아끼지 않으시는 울 엄마면서 내가 만화책만 사면 다 찢어버리셨다. 그냥 버리는 것도 아니라 아예 갈기갈기 찢어서!!!

 

그 때의 충격은 정말... 나의 청소년기는 정말 암울했다. 흑흑

 

 

 

 

 

 

 

여튼, 엄마 몰래 사 모은 만화책들이 차례대로 능지처참 당하는 상황을 목격하면서 나는 울부짖었다. 그러면서 겨우 하나 건진 게 바로 황미나님의 엘 세뇨르!!

 

"엄마, 이거 그냥 내가 친구한테 팔게요. 그러니까 찢지 마요~~~~~!!!!!"

 

친구에게 사정사정해서 헐값에 넘겼다. 난 어릴 때부터 중고판매를 몸소 하고 있었던 셈. 크흑

 

그 후 이 책은 절판되어 아직까지 나오고 있지 않다. 중고시장에도 잘 없다. 있다한들 터무니없이 높은 가격이라 언젠간 꼭 애장판이 나오지 않을까 기다리고 있는 중.

 

 

 

 

 

 

 

 

 

 

 

 

 

 

 

대학엘 가면서 나는 한풀기라도 하듯 만화책을 사기 시작했다. 만화책이라는 게 한 두권이 아니라 여러 권이 묶음이라 사기 시작하니 책장이 남아나지 않게 되고 급기야 권수도 어마어마해졌다. 500권까지 세고는 그냥 포기했다. 한풀이라도 하듯 구할 수 있다면 중고만화방도 뒤져서 이오니아의 푸른별, 사랑의 아테네 등 절판된 아이들을 구하기 시작했다. 북해의 별은 겨우 7권 구하고 못 구해서 눈물을 흘리던 중이었고... 그러던 어느 날 만화책들이 예쁘게 다시 나오기 시작했다. 예약판매도 여기저기서 했다. 나는 망설이지 않았다. 하하.

 

황미나님 만화 중 내가 갖고 싶은 게 엘 세뇨르와 취접냉월. 둘 다 아직 구할 수 없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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마노아 2012-02-08 16:02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이런 경험들은 참 많이 중첩되어요.^^ㅎㅎㅎ
다행히 저는 엘 세뇨르와 취접냉월은 있어요. 오호호호^^ㅎㅎㅎ

꼬마요정 2012-02-10 16:32   좋아요 0 | URL
아아아아~~ 너무 부럽습니다. 엘 세뇨르와 취접냉월..ㅠㅠ
갖고 싶어요.. 얼른 애장판 나오면 좋겠어요~ㅠㅠㅠㅠ

무스탕 2012-02-08 18:02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울 엄니는 자식들이 만화 보는거에 대해 별 이야기를 안하셨어요. 만화보러 만화방 가게 돈 달라면 선뜻 주셨죠. 아버지는 만화책을 사다 주시기까지 했고요 ^^;
제 첫 소장만화는 캔디캔디 세트였어요. 아부지가 사주셨죠. 30년도 더 된 이야기네요.
캔디와 테리우스의 첫 키스가 어찌나 충격이었는지 보고 또 보고... ㅋㅋㅋ
요즘은 예전만큼 만화를 많이 보진 않지만 제 생에서 손떼는 일은 죽는 날까지 없으리라 생각해요.
신랑한테 종종 이야기하죠. 내가 죽거든 내 만화책들을 쫘~~악 깔아 놓고 그 위에 날 올리고 화장해 달라고요. ㅎㅎ

꼬마요정 2012-02-10 16:34   좋아요 0 | URL
멋진 부모님이십니다.!!!!!
오~ 추억의 캔디캔디가 첫 소장만화라니... 부럽습니다. 작가가 끝을 맺지 못하고 세상을 떠나서 얼마나 슬펐던지요...

앗, 저도 그럴까나요.. 집에 있는 만화책들과 함께 태워달라고..ㅎㅎㅎ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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