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좁은 문 - 펭귄 클래식 펭귄클래식 5
앙드레 지드 지음, 이혜원 옮김 / 펭귄클래식코리아(웅진) / 2008년 8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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여인은 머리를 올리고 두 손을 목 뒤로 한 채 목걸이를 채우기 위해 애쓰고 있다. 몇 번 애쓰다 결국 실패하고, 그들의 사랑은 끝났다.

 

아, 물론 지금의 관점으로 제롬과 알리사를 보는 건 잘못된 일일 것이다. 당시 시대상과 분위기를 보면 '그럴 수' 있을지도 모른다. 하지만 아무리 그렇다 해도 이건 아니다. 제롬은 알리사가 거울을 통해 그를 발견하기 전에 그녀의 목걸이를 대신 채워주는 것으로서 그의 존재를 알렸어야 했다.

 

그런 식의 머뭇거림은 결국 그들의 사랑이 이상적인 사랑이라는 환상을 불러일으키게 했고, 급기야는 서로가 결혼하는 데 아무런 문제가 없음에도 불구하고 알리사는 상사병으로 죽어버린다. 이 무슨 해괴한 일이란 말인가.

 

어린 제롬은 뷔콜랭 숙모의 그 야릇한 손짓에 강한 성적 트라우마를 가지고 있었다. 그래서 뷔콜랭 숙모를 똑같이 닮은 알리사를 사랑하는지도 모른다. 그리고 그녀를 뷔콜랭 숙모와는 다르게 완벽한 성녀로 생각하는 건지도. 그가 사랑하는 건 환상 속의 알리사, 그가 가진 왜곡된 욕망을 감춰줄 수 있는 이미지의 소녀.

 

알리사는 정숙하지 못한 어머니, 뷔콜랭처럼 될까봐 두려워한다. 엄마가 바람이 나서 집을 떠나고 남겨진 아버지는 무능력하게도 딸들을 유기한다. 엄마의 빈자리를 딸로서 메우는 게 아니라 가장으로서 완벽하게 메우려 하는 알리사의 강박증은 그 집에 닻을 내려버린다. 그럼으로써 어느샌가 피해자 증후군을 앓게 됐는지도 모른다. 행복이 바로 눈 앞에 있는데 자신을 비탄 속에 빠트리면서 자학하는. 언제나 비련의 여주인공이 되고 싶었는지도 모른다. 엄마가 떠난 뒤 남겨진 그 상처를 되풀이하면서.

 

이성과 감성을 자극하는 아름다움이 곳곳에 묻어나는 유미주의의 극치를 달리는 소설이라지만 읽는 내내 분통이 터졌다. 속된 말로 '밀땅'하는 수준이었다면 넘어갈 수 있었을거다. 약혼의 약자만 나와도 눈물을 흘리며 약혼은 나중에 해도 되잖아..라고 손사래를 치며 도망가는 알리사. 그런 그녀의 모습에 강하게 밀어붙이지도 못하고 회피해 버리는 제롬. 처음에는 가정 상황 때문에, 다음에는 쥘리에타 때문에, 그리고는 제롬의 학업 문제 때문에, 그러다가 급기야는 신에 대한 사랑 때문에 그놈의 약혼은 밀리고 밀려서 흔적조차 사라지고 만다.

 

이 책에 묘사되고 있는 어떤 감성적인 언어보다도 더 지독하게 슬픈 건 충분히 행복할 수 있었던 두 사람이 죽을만큼 고통스럽게 억지로 헤어짐을 만들어간다는 사실이었다.

 

제롬은 생각한다. 그녀를 맞이하기 위해 완벽한 모습이 되어야 한다고. 그래서 그녀가 약혼을 거절할 때마다 자신을 갈고 닦기에 여념이 없다. 단 한 번도 강하게 손 내밀어 잡아주지 않았다. 그녀가 걸고 있는 목걸이를 대신 걸어주지 않은 것만 봐도 사실 제롬은 이런 상황이 이상적이라고 여겼는지도 모른다. 약혼이나 결혼이라는 현실보다 그저 서로를 바라보며 자신이 보기를 원하는 부분만 보고, 상상하여 이상적인 상대방을 만들어내는.

 

거기에 비해 알리사의 기도는 거의 자학 수준이었다.

 

"하느님, 무기력한 제 마음은 제 사랑을 억누를 길이 없사오니, 더 이상 저를 사랑하지 않는 법을 그에게 가르쳐 줄 수 있는 힘을 제게 허락해 주옵소서..."

 

이 무슨 어처구니없는 기도란 말인가. 너무나 사랑해서 자신은 말라죽어 가면서, 제롬이 자신을 사랑하고 있음을 알면서도 이런 기도라니. 서로 사랑하면서, 그 사랑에 장애물이라고는 없는데, 사랑하지 않는 법을 가르쳐줄 수 있는 힘을 달라니... 그러고 싶지 않다고, 결혼하고 싶다고 온 마음을 다해 기도하고 있는 꼴이지 않은가.

 

이런 그녀가 과연 신을 더 사랑했을까... 의문이다.

 

쥘리에타의 삶 역시 평범하지는 않았다. 알리사가 자신의 엄마를 닮는 것을 두려워했다면 쥘리에타는 그 삶을 따랐다. 사랑하는 제롬이 아닌 다른 사람과 결혼하고, 알리사와 제롬의 행복을 위해 거짓 행복을 꾸몄던 그녀야말로 오히려 알리사가 추구하던 희생을 연기한 셈이다. 그 결과 그녀는 세상사에 지쳤을 때 숨어드는 방을 만들었고, 그 방은 알리사의 방과 똑같다. 자신의 부정한 엄마와 똑같이 생긴 알리사의 방과. 그리고 제롬은 그 방으로 인도된다.

 

그래... 이것이 너희 둘이 원하는 결론이었던 거니? 이게 둘이 함께하는 것보다 더 고상한 일인거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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감은빛 2012-06-04 11:26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이 글 무척 반가워요!
제가 사춘기 무렵에 [좁은 문]을 읽고 많은 영향을 받았었거든요.
그땐 아직 어렸기 때문에(혹은 순진했기 때문에) 그랬는지
제롬과 알리사의 사랑이 정말 감동적이고 멋있다고 생각했어요.
물론 시간이 좀 더 지나서 그 생각은 바뀌었지만,
이 책이 당시에 저에게 주었던 감동만큼은 잊혀지지 않습니다.

꼬마요정 2017-02-07 15:41   좋아요 0 | URL
앙~ 감은빛님 무척 반가워요~^^
저도 그런 책 있어요. 헤세의 지와 사랑은 정말 감동적이었거든요. 지금은.. 그런 감동이 전혀 없지만요ㅠㅠ 그래서 너무 슬퍼요.
 
위대한 개츠비
F. 스콧 피츠제럴드 지음, 방대수 옮김 / 책만드는집 / 2001년 8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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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 겨울이 지나고 또 봄이 가고, 봄이 가고... 여름이 지나고 그렇게 세월이 더해간다. 그 기나긴 세월을 기다림으로 보낸 한 여자가 있었다. 어떤 약속도 남기지 않고 떠나버린 야속한 연인을 순수한 사랑과 무한한 믿음으로 무장한 채 하염없이 기다리는 여인, 솔베이지.

 

여기 솔베이지와 닮은 듯한 한 남자가 있다. 한 여자만을 사랑하여 기다림 대신 다가섬을 선택한 남자, 개츠비.

 

개츠비에게, 저 쪽 너머에 일렁이는 초록색 불빛은 이루고 싶은 꿈이다. 그 초록색 불빛들 속에는 데이지가 있고, 돈이 있고, 상류 사회가 있다. 사랑하는 데이지가 있는 그 상류 사회로 들어가기 위해 개츠비는 꿈을 꾸고, 환상을 쫓는다. 그리고 그 환상은 현실이 된다.

 

1차 대전이 끝나고 대공황이 오기 직전, 살아남았다는 안도감과 전쟁 특수, 끝없이 이루어질 것 같은 산업의 발전은 사람들을 방탕하게 만들었다. 금주법은 유명무실했다. 개츠비의 저택은 주말마다 술과 사람들로 가득 찼다. 데이지의 남편 톰은 어딜가나 술과 함께다.

 

자신은 명문가 출신으로 옥스퍼드대를 나왔다고 주장하는 개츠비. 어떻게든 상류사회에 끼어 데이지가 자신을 인정해 주기를, 자신을 선택해 주기를 간절히 바라는 마음으로 개츠비는 연기를 한다. 자신의 출생을 지우고, 자신의 부를 상속받은 재산으로 바꾸고, 롱아일랜드에 거대한 저택을 사고, 온 집안을 명사들로 채우면서 말이다.

 

그렇게 자신은 상류 사회로 진입했다고, 이제는 그들의 일원이라고 생각하지만, 개츠비는 받아들여지지 않았다. 사랑하는 연인 데이지에게조차도 말이다.

 

소위 상류층이라는 사람들은 개츠비의 저택에서 그의 호의는 다 받아들이고, 뒤에서는 그가 밀수업자라는 둥, 살인자라는 둥 그의 성공을 질시하고, 그의 부를 조롱한다. 그들만의 리그에 개츠비가 들어설 곳은 없다.

 

"너무, 너무 아름다운 셔츠들이야." 그녀가 흐느꼈다. 그녀의 목소리는 얼굴을 파묻은 양팔에 잠겼다. "너무 슬퍼. 한번도 이렇게, 이렇게 아름다운 셔츠들은 본 적이 없거든."

 

상류층 사람들이란 그따위 사람들이었다. 데이지, 오직 한 사람만을 사랑하는 마음으로 힘겹게 힘겹게 다가 선 그의 사랑보다 비싼 영국제 셔츠에 더 감동하는. 혹은 톰처럼 부인이 있으면서도 다른 여자를 탐하는. 그러면서 자신의 부인에게 애인이 있다는 사실을 혐오하는. 사람을 치여 죽여놓고서도 그 죄를 떠넘기고 자신은 아무렇지 않게 떠나버리는.

 

개츠비는 사랑하는 이를 위해 살인죄를 뒤집어 쓰면서까지 절박하게 사랑한다. 하지만 그녀에게 소중한 건 사랑과 같은 감정보다는 타인의 시선, 상류층 인사로서의 지위, 멋진 영국제 셔츠 따위였다. 사랑할 가치가 없는 여자라는 것을 알면서도 개츠비는 그 사랑을 멈출 수 없다. 오히려 그 무가치함을 감내할 뿐이다. 목숨을 내던지면서까지.

 

빙그르 핏빛 원을 그리며 도는 튜브 안에서 개츠비는 행복했을까. 사랑하는 이를 대신할 수 있어서.

 

"내일이 되면 우리는 더 빨리 달릴 것이고, 더 멀리 팔을 뻗을 것이다. 그 어느 해맑은 날 아침에……. 그렇게 우리는 과거 속으로 끊임없이 밀려가면서도, 흐름을 거스르며 배를 띄우고, 파도를 가르는 것이다."

 

 

방탕한 삶으로 막대한 재산을 날리고 고향으로 돌아 온 페르귄트는 백발이 되어서도 자신을 기다리고 있는 솔베이지의 사랑에 감격한다. 윤기 나는 검은 머리가 하얗게 되어버릴 때까지 함께 하여도 모자랄 그 시간을 허비한 그는 그래도 행복했다. 사랑하는 이의 무릎에 머리를 대고 그녀의 손을 잡고 눈 감을 수 있어서. 삶을 함께 하지 못했더라도 죽음은 함께였다. 솔베이지의 기다림은 그와 함께 조용히 죽음을 맞이하면서 사랑으로 완성됐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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페크(pek0501) 2012-04-17 13:15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옛사랑의 여인을 만나기 위해 오로지 그 딱 한 명을 만나기 위해 집에서 자주 파티를 열었던 그 마음. 그 남자 주인공의 마음에 감동을 받았는지, 무라카미 하루키는 자신의 소설 어디에서 "위대한 개츠비를 읽은 사람은 나와 친구가 될 수 있어."라는 문장을 넣었더라고요. 그래서 <위대한 개츠비>를 읽게 되었어요. 이 책은 지독한 짝사랑을 해 본 적이 있는 독자라야만 공감하고 흥미를 가질 수 있을 듯해요.

저는 개츠비의 마지막 장면, 쓸쓸한 장례식장이 인상적이었어요. 그렇게 베풀었건만 죽을 땐 와 보지 않는 사람들의 몰인정... 현실 반영 같았어요. ㅋ 잘 읽고 가요.

꼬마요정 2012-04-17 23:57   좋아요 0 | URL
정말 그의 장례식장은 허무함 그 자체였습니다. 닉이 없었다면 개츠비라는 사람은 존재 자체가 지워져 버렸을지도 모른다는 생각도 들었죠. 마치 신기루처럼 말이죠. 여전히 가난한 마을에서 개츠의 아들로 혹은 요트에서 데이지를 바라만 보는 남자로 남아있는 건 아닌지...

데이지와 톰... 이 두 사람은 정말 짜증났어요. 그들은 우리 현실 속 저 높은 곳에 있죠.. 아.. 읽고 나니 우울해졌더랬죠.
 
브람스를 좋아하세요... 민음사 세계문학전집 179
프랑수아즈 사강 지음, 김남주 옮김 / 민음사 / 2008년 5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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누구나 가슴 한 켠에 아련한 꽃가지 하나 품고 산다. 외사랑이든, 헤어져버린 첫사랑이든 말이다. 브람스에게 클라라는 아련한 꽃이었다. 평생을 품을 수 없는 손 닿지 않는 그 곳에 고고하게 피어있는.

 

브람스는 자신의 스승이었던 슈만의 아내인 클라라를 사랑했다. 나이 차이가 제법 나는, 스승의 딸과 결혼한 슈만은 클라라와 행복했다. 그러나 슈만의 정신질환은 그들의 행복을 조금씩 조금씩 태워가기 시작했고, 그런 그들 앞에서 제자 브람스는 클라라를 사랑했다. 일생을 아무와도 결혼하지 않고 독신으로 클라라만을 사랑한 그는 그 아프고도 고독한 사랑에 중독되어 있었다.

 

폴 역시 마찬가지였다. 마치 중독된 것처럼 로제와의 관계에 매달린다. 권태로운 연인인 로제는 폴을 혼자 내버려둔 채 젊은 여자를 만난다. 폴은 알면서도 모른 척 하며 자신의 마음이 갈팡질팡하는 것도 외면한다. 그런 때 젊고 아름다운 청년 시몽이 나타난다.

 

미의 여신 아프로디테와 하데스의 아내인 페르세포네가 동시에 사랑한 소년 아도니스. 시몽을 보면 왠지 모르게 그리스 신화에 나오는 그 아름다운 소년 아도니스가 연상된다. 여기서는 신화와 달리 아도니스인 시몽이 여신인 폴을 열렬히 사랑하지만 말이다. 그래도 아도니스는 크나큰 상처를 입고 죽어버리니, 시몽 역시 그런 파괴적인 결말을 피할 수는 없었다.

 

더 사랑하는 사람이 약자라는 말이 있다. 사랑하기 때문에 사랑하는 사람의 말을 귀담아 듣고, 사랑하는 사람을 배려하고, 서운하더라도 서운함을 속으로 감춰버리고... 사랑하는 사람이 떠나버릴까봐, 사랑이 빛바랜 추억이 되어버릴까봐 두려워서 말이다.

 

폴과 시몽 모두 그러했다. 폴은 서른아홉이라는 나이를 바라보는 세상의 시선에 지레 겁을 먹고 더 이상 사랑이 찾아오지 않을 거라고, 그래서 곁에 있는 로제가 자신의 마지막 사랑이라고 그저 그렇게 자신을 안심시켰다. 시몽에게 끌리면서도 그 마음을 완전히 인정하지 못하고, 끊임없이 로제에게 돌아갈 때를 기다렸다. 그리고 그 기다림은 시몽에겐 저주였다.

 

언젠가는 끝나버릴 관계라는 그 시한부의 사랑이 과연 행복할까. 오늘일까, 내일일까... 그녀는 언제 나를 떠날까.. 시몽은 고통스럽게 그녀 곁에서 순간순간을 살아간다. 시몽이 폴에게 물었던 브람스를 좋아하세요...라는 질문은 사실 자신에게 했어야 할 질문인지도 모른다. 삶의 주도권을 깡그리 상실한 채 오로지 폴의 억양과 표정과 기분에 좌우되는 그런 시간들 속에서도 시몽은 그저 폴이 곁에 있다는 사실 하나로 행복해한다. 시몽은... 폴의 또 다른 모습이었다. 다른 것이 있다면 시몽의 열정 뿐...

 

사랑이라는 감정의 감각이 생생하게 전해져왔다. 어쩌지 못하고 끌려다니지만 설레이는 그 감정. 진실을 들여다보기 두려워 덮어둔 채 사랑한다고 자신을 세뇌시키는 어리석음과 그 어리석음으로 인해 아파하며 느끼는 희열까지.

 

폴은... 정말 최악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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프레이야 2012-03-23 19:58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문고판으로 갖고 있는 책인데 민음사판이 있군요.
사랑은 그렇게 자기 최면 같은 고독에의 중독일까요 정말.

꼬마요정 2012-03-26 10:15   좋아요 0 | URL
아아.. 사람의 감정은 정말 알 수가 없어요... 사랑하면 그저 사랑하는대로 그렇게 사랑하면 좋을텐데 그게 어렵네요.
 
울지 마, 팔레스타인
홍미정.서정환 지음 / 시대의창 / 2011년 10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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출근시간, 나는 이 책을 펼쳐들고 기어이 울고 말았다. 

담담하게 쓰여진 활자로 와닿는 그 비통함과 애참함의 크기가 이 정도라면 실제는 얼마나 더 참혹할까... 

버젓이 살고 있는 사람들이 있는 땅, 토착 아랍문화가 있고 수세기 넘게 살아온 아랍인들이 있는 그 팔레스타인 땅을 보고 민족 없는 땅이라고 한다. 그리고 땅 없는 민족인 유대인들에게 그 땅을 줘서 유대국가를 건설해야 한다고 한다. 우습게도 약 2천 년전에 추방되었던 민족의 땅이니 돌려주어야 한다고. 그러나 역사적으로 볼 때 현대 유대인 대다수는 바빌론 유수나 로마제국 시대에 추방되었다고 전해지는 유대인과 아무런 혈통 관계가 없다. 설사 2천 년전에 추방당한 유대인들의 후손이라 하더라도 2천 년이나 지난 현대에 와서 그들이 그 땅을 차지할 권리는 없다. 그렇다면 우리도 고조선 시절이나 고구려 시절 우리가 호령하던 땅들 돌려달라고 하고 싶다. 100년 된 간도도 못 돌려받고 있고, 일본의 도발로 독도도 위험한데 2천 년전에 살던 땅을 돌려달라니...  

예전에 우리집 초인종을 누르며 전도하러 오신 분이 계셨다. 여자 3명인데, 당시 휴학하고 알바를 하던 때라 오전에 찾아온 그들을 만날 수 있었다. 보통은 "안 믿어요.." 라고 하며 문도 안 열어주는데 춥다고 혹은 물만 좀 달라고 하면 괜시리 맘이 약해져서 문을 열어주게 됐고 그 분들은 나에게 '말씀'을 전하기 시작했다. 듣던 중에 탁! 하고 가슴에 박혀서 굉장히 화가 난 말이 있었는데 그게 하나님이 기적을 보여주겠다고 하셨는데, 그게 바로 아무도 예상하지 못했던 이스라엘 건국이었다는 것.  

홀로코스트 저리가라 할만큼 잔인하게 굴고 있는 이스라엘이라는 나라가 세워진 것이 신의 기적이라... 그 날 나에게 와서 그런 말을 하고 간 사람들의 종교는 소위 이단이었다.  

중동 땅을 통제하고 싶어하는 미국의 못된 욕심 -애초에는 영국이었지만-과 어떻게든 예루살렘 포함 그 땅을 빼앗고 싶어하는 이스라엘과 팔레스타인인들을 이스라엘의 영토확장을 막는 방어선이라고 생각하는 아랍부국들 속에서 팔레스타인인들은 살고 있다. 매일 매일을 두려움에 떨면서 말이다. 2008년 이스라엘의 가자지구 공습 때 이스라엘 군사가 팔레스타인인 집 벽에 써 놓은 낙서가 낙서로 보이지 않는다.  

   
 

IDF(이스라엘군)가 왔다 간다. 너 지금 이 낙서 보고 있지? 너를 죽이진 않을 거야. 공포 속에서 평생을 살게 할 거니까!                                                             (p.98)  

 
   

심지어 이들은 팔레스타인인들이 살던 집 곳곳에 똥, 오줌을 누고 휴지 대신 옷들로 닦았다. 백린탄이 투척되고 민간인들이 있는 정부청사 및 시가지가 파괴되는 그 22일 동안 1,300여명이 죽고 6,000여명이 부상을 입었다. 특히 백린탄으로 인한 피해는 엄청났다. 뼛속까지 태우는 그 무시무시한 전쟁무기 앞에서 사람들은 고통스러워할 수 밖에 없었다.  

희망을 이야기하는 것이 오히려 절망 같은 그들의 삶.. 그들이 되뇌이는 건 '신이 이 모든 것을 심판할 것'이라는 저주.. 강한 자가 한없이 약한 자를 짓밟을 때 어떻게 되는 지 그 빌어먹게 잔인한 현실 속에서 그들은 어떻게 살아갈까...하기 힘든 분노와 말로 표현하기 어려운 아픔, 그리고 거대한 힘 앞에 어쩔 줄 몰라하는 무기력함이  매순간 그들을 덮칠텐데도 말이다.

이리 저리 채이는 삶 속에서도 그래도 그들은 살아있다. 살아남았다. 그리고 앞으로도 계속 살아갈 것이다. 그래, 그것이 희망이다. 끝없이 존재를 지우려고 노력하는 이스라엘의 무자비한 공격 앞에서 당당히 존재하는 것으로 맞서는 이들. 모든 것을 포기한 듯 하지만 여전히 맞서고 있는 평범한 사람들 모두가 영웅이다.  

아랍에서 들불처럼 번지는 민주혁명과 러시아의 개입이 팔레스타인에도 용기와 희망을 줬으면 좋겠다. 스스로의 힘으로 살아가기에 벅찬 이들에게 그저 먹을거리나 던져주는 원조가 아니라 스스로 살아갈 수 있도록 환경이 만들어지면 좋겠다. 이스라엘의 점령촌 철거, 기간산업 확충, 무엇보다도 어디로든 자유롭게 갈 수 있게 되면 좋겠다. 단지 기도하러 가는데도 검문소를 거쳐야 하고, 분리장벽 근처로 가면 총 맞을 수 있는 이런 무시무시하고 끔찍한 상황이 빨리 끝나길 바란다. 

팔레스타인인들 스스로의 선택으로 집권하게 된 하마스 정권조차 친미가 아니고 팔레스타인을 단결하게 한다는 이유로 테러리스트로 매도당하며 세계의 공적처럼 되고 있지만 그래도 진실은 가려지지 않을 것이다. 부디 모두가 공존하는 사회가 빨리 오길. 

러시아의 개입을 보며 남의 힘이 있어야 벗어날 수 있는 안타까운 현실에 해방 후 우리나라의 모습이 겹쳐졌다. 미국, 이스라엘과 러시아의 힘의 균형이 분명 팔레스타인인들의 삶에 도움이 되겠지만 그래도 걱정된다.  

스스로의 힘으로 살아남기.. 비단 팔레스타인의 문제만은 아니다. 우리도 우리의 힘으로 살아남을 수 있도록 연구하고 노력해야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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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이리시스 2011-10-20 14:13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저도 얼마전에 팔레스타인,이스라엘,레바논,파키스탄의 내전과 학살을 좀 찾아봤더니 이 책에도 관심이 갔는데 너무 마음이 아파요. 중동을 테러리스트적 이질집단으로 매도하는 건 문제해결의 실마리가 아닌 듯한데 새로 탄생하는 정권들도 내국민 안전이나 부양에 관심이 없어보여 국민들이 참 힘들 것 같아요. 물론 북한을 먼저 생각해라,, 이런 비난이 있지만. 리뷰 반가웠어요!^^

꼬마요정 2011-10-20 16:03   좋아요 0 | URL
정말 마음이 아파요.. 저도 요즘 한창 이슬람이랑 아랍 사회에 대해 관심이 가서요.. 이것 저것 보고 있는데 왜곡된 자료들이 너무 많아요. 가슴이 아프더라구요.. 리뷰 반가워해주셔서 감사해요~^*^ 왠지 뿌듯합니다.ㅋ

VERTIGO 2011-10-20 16:13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미국에서 산다는 게 부끄러워 집니다. 자본의 동물적인 힘겨루기가 만들어 낸 비극이죠,

꼬마요정 2011-10-20 17:25   좋아요 0 | URL
모든 미국인이 그런 생각을 하는 건 아니니까요. 그 안에서 반성하는 사람들이 있다는 건 희망이라고 생각합니다. 너무 무섭습니다. 이런 비극은.. 이런 상황은 약자라면 누구나 겪을 수 있으니까요.. 지정학적 위치로 보면 한국도 결코 안전한 상황은 아니죠... 슬픈 현실입니다.

노이에자이트 2011-10-20 16:29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가자지구의 하마스와 서안지구의 압바스 정부의 충돌도 문제지요.팔레스타인 간의 내전이니까요.그리고 하마스가 보수적인 율법주의자의 세력이 커서 문제입니다.여성들은 해변에서도 긴 옷으로 몸을 감싸야하고 작년엔 남자미용사들이 여자머리를 만지면 안 된다고 직업을 박탈해버렸더군요.

꼬마요정 2011-10-20 17:33   좋아요 0 | URL
하마스와 압바스 정부가 손을 잡거나 그런 분위기가 있을 때마다 훼방놓는 이스라엘과 미국이 더 큰 문제라고 생각해요. VERTIGO님 말씀처럼 결속력을 다지려는 의도도 있는 것 같습니다. 보수적인 율법주의자들이란 극단적이니까요. 이런 문제를 앞 뒤 다 자르고 단편만 보내서 하마스를 부정적으로 보게 하는 언론들도 문제가 있다고 생각하구요, 그래도 하마스가 파타당 보다는 훨씬 팔레스타인인들을 위해 하는 일이 많잖아요.. 이래저래 가엾습니다.

VERTIGO 2011-10-20 16:42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결속력을 다지려는 내부정비같은 거 아닐까요? 우리도 외세에 몰리다 보면 민족성으로 뭉치려는 것처럼.

꼬마요정 2011-10-20 17:34   좋아요 0 | URL
그럴 수 있다고 생각합니다. 그리고 걸러져서 우리가 알지 못하는 사실들도 많겠죠..

pjy 2011-10-20 18:45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따로 또 같이 사는 세상인데요, 어쩌면 사람만큼 자기 종을 학대하는 건 못본거 같습니다. 참, 짐승만도 못한-_-;

꼬마요정 2011-10-20 22:00   좋아요 0 | URL
정말 그 말씀이 맞네요.. 짐승만도 못한데도 만물의 영장이라고 뻗대고 있으니..ㅠㅠ

VERTIGO 2011-10-21 09:23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노동력 착취나 경쟁으로 사람을 다루다 보면 인간성 상실은 시간문제라고 봅니다. 이미 그런 시대에 살고 있다는 게 답답할 뿐입니다.

꼬마요정 2011-10-21 15:24   좋아요 0 | URL
서글픈 현실이지요..그래도 한자락 희망을 잡아보렵니다. 일단 저라도 사람을 사람으로 대하자는 마음을 갖고 살아야겠습니다.

saint236 2011-11-12 02:09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걍...기독교인으로서 그렇게밖에 해석할 수 없는 한국 기독교의 현실이 그저 서글플 뿐입니다.

꼬마요정 2011-11-14 14:10   좋아요 0 | URL
그렇게 생각하지 않는 사람도 많잖아요.. 그분들은.. 몰랐던거겠죠.. 그래서 그렇게 쉽게 이야기했던 거고.. 제가 그 이야기를 적은 건 이스라엘과 팔레스타인 분쟁에 종교를 빼놓을 수는 없지만 직접적으로 비난할 수 없기에 사족처럼 넣은 거랍니다. 기분 안 나쁘시면 좋겠어요...
 
절망 (무선) 문학동네 세계문학전집 71
블라디미르 나보코프 지음, 최종술 옮김 / 문학동네 / 2011년 5월
평점 :
절판


읽는 내내 불편했다. 향긋한 커피를 넘기기도 힘들었다. 도대체 게르만이라는 사람은 어떤 뇌구조를 갖고 있는걸까. 오로지 '기억'에만 의존해서 글을 쓴다는 그는 일말의 가책 하나 없이 '기억'을 나열하고 있다. 자신에게 유리한 쪽으로, 자신은 어리석음 따위 없다는 식의 어투로. 그러면서 끊임없이 의심한다. 실수가 있을리 없어..라고. 

그러나 그는 가장 어리석은 실수를 했다. 이름이 적힌 그것이 아니라 제일 처음 펠릭스를 만났을 때 그를 보고 느낀 그 어리석은 실수 말이다. 자신이 쓰고 있는 소설과 현실을 혼동하는 몽상가. 글이 먼저인지 현실이 먼저인지 구분하지 못하면서 자신의 기억을 제멋대로 조합한다.  

아아.. 나는 읽는 내내 감탄했다. 그의 표현들은 너무나 멋졌다. 멋지다는 상투적인 표현밖에 떠올리지 못하는 내가 미울 정도로.  

밤의 꿰맨 부위가 터지기 시작하고, 바이올린 같은 영혼의 소유자가 완강히 거부하는 베개를 주먹으로 쳐서 실신시키고 나서 만남과 떼어놓는 칙칙한 하얀 시간을 어떻게 처분할 지 고민하는..   

이런 표현들도 있다. 

낮이 파리해졌다. 저녁이 다 되어 굼뜬 버스가 내가 고른 곳에 나를 떨어뜨렸을 때, 나는 그런 장소를 찾았다고 생각했다. 고통스러워 비명을 질러대는 뭉툭한 연필로 첫 페이지에 재빨리 그리고 단호하게

줄거리는 아주 단순하다. 어느 살인자의 고백이다. 그런데 이 줄거리가 나를 바보로 만들었다. 나는 계속 생각해야했다. 결국 난 작가에게 졌다. 나를 바보라고 불러라.. 날더러 어쩌란 말이냐.. 그렇게 외쳤다. 10장을 읽으면서 남은 쪽수를 봤다. 아직 많이 남아있었다. 게르만은 왠지 앞과 어울리지 않는 헛소리를 늘어놓고 있었고, 작가는 음산하게 웃고 있었다. 난 속았고, 계속해서 읽었다. 어릴 때 읽은 부활이나 죄와 벌은 전혀 도움이 되지 않았다. 죄와 벌의 라스콜리니코프가 떠올라야 했을까.  

어쨌든, 다락방님 말씀처럼 50페이지까지 정말 힘겹게 읽었다. 작가의 말을 보면 영어로 번역하고 난 뒤 성질 고약한 영국인에게 번역을 읽어봐달라고 부탁했다고 한다. 그 영국인은 첫 장만 읽고 더 이상 읽지 않았다고 하는데 작가는 주인공의 고백이 작가의 고백이 아니었을까 생각해서 그런 것 같다고 한다. 나는.. 그 영국인의 마음을 이해한다. 도대체 분신을 만나는데 온갖 현란한 수식어들과.. 알 수 없는 말들..이 가득하니까. 진전은 없고 묘사와 수식, 인용들이 읽기 어려웠다. 

그러나 한편으로 그 영국인이 딱하기도 하다. 첫 장을 넘기고 계속 읽다보면 어느새 책장을 덮고 있는 자신을 발견했을텐데 그런 기회를 날려버려서. 그 힘든 산을 넘고 나니 술술 읽혔다. 이야기가 제대로 전개되니까. 물론 나는 졌지만.  

고통스러워 비명을 질러대는 뭉툭한 연필이 지금 내겐 없다. 아쉽지만 난 마조히즘에 가득 찬 내 키보드를 두들겨 쉽게 떠오르지 않아 미적대면서 리뷰 제목을 적고자 한다. 

천재가 되고 싶어한 어느 살인자의 고백. 

게르만은.. 그저 어느 살인자일 뿐, 승자는 나보코프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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루쉰P 2011-06-22 23:13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전 왠지 이 책이 저에게 맞지 않을 듯해 구입하지를 않았어요. ^^ 자신의 기억을 멋대로 조합하는 것이 현대를 사는 사람들의 가장 큰 특징이지 않을까 싶어요. 자신에게 유리하게 기억을 많이 조작하죠. ㅋ 저도 그러니까요.
흠..책이 좀 많이 난해한가 봐요. 전 그런 소설은 좀 무서워요. ^^

꼬마요정 2011-06-23 01:56   좋아요 0 | URL
루쉰P님은 왠지 이 소설 읽으시면 좋아하실 것 같은데요. 톨스토이의 부활과는 상관없지만, 도스토예프스키의 죄와 벌과는 상당히 상관있거든요. 읽으면 그런 분위기가 느껴지거든요. 나중에 다시 한 번 더 읽어보려구요. 일단 표현만큼은 정말 멋져요~ 어쩜 저런 표현을 다 생각해냈을까요..아아~~

꼬마요정 2011-06-23 01:56   좋아요 0 | URL
제 댓글을 보니 도대체 무슨 말을 하는건지..ㅠㅠ

루쉰P 2011-06-27 22:10   좋아요 0 | URL
전 파악했습니다. 댓글조차 난해하게 쓰시다니 책의 영향인 듯! 표현이 멋지다! 거기서 훅하네요!

꼬마요정 2011-06-27 23:31   좋아요 0 | URL
정말로.. 표현이 죽여줘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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