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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야, 홍콩이다!!!

 

처음 문이 열리고 자호와 마크가 트렌치 코트 휘날리며 등장하는데, 진짜 홍콩 느와르 보는 느낌이라 좀 설렜다. 빠바밤 노래가 나오면서 둘이 계속 문을 넘나드는데, 거래를 성사시키기도 하지만 소위 암흑세계에서 전설이 되기까지 얼마나 많은 '관문'을 통과했는지 보여주는 것 같았다.

 

자호는 동생이 밝은 세상에 살기를 원했다. 엄마처럼, 형처럼 자걸을 보살폈다. 자걸 입장에서는 사실 아버지에 대한 정(情)보다는 형에 대한 애정이 더 컸기에 뒤에 배신감도 컸을테다. 훈련 도중 도선에게 형에 대해 이야기할 때 표정이나 목소리에서 사랑이 흘러 넘쳤다.

 

흑사회에서 자호는 신망 두터운 형님이고 마크 역시 자호와 함께 전설 같은 존재이다. 마크가 아성에게 이야기할 때 주윤발 같아서 정말 깜짝 놀랐다. 아마 그 장면 하나는 오마주가 아니었을까.

 

병원에 있는 아버지 병문안을 온 자호는 아버지로부터 자걸을 위해 손을 씻으라는 충고를 듣고 마음이 흔들린다. 이번 건으로 끝내리라 생각했을텐데, 그 마지막 한 번이 결국 발목을 잡고 만다.

 

경찰 세계이든 깡패 세계이든 배신자는 있기 마련이다. 여기 저기 욕망을 위해서든 이익을 위해서든 말이다. 결국 대만에서 있던 거래에서 자호는 함정에 빠져 감옥에 가고, 아성의 음모로 아버지는 희생되고, 자걸은 모든 분노를 자호에게 쏟아 붓는다.

 

사랑한만큼 미워한다던가... 사실 아버지의 역할이 무엇인지 궁금했다. 자신을 키워준 건 형이라고 하면서 형을 그토록 경멸하다니. 비록 형이 나쁜 짓으로 돈을 벌었으나 아버지의 죽음은 나쁜 사람의 계략 때문인데 모든 책임을 형에게 돌리는 자걸은 마치 어린아이 같았다. 물론 형의 전과 때문에 진급이 누락되기는 하지만.

 

아성의 음모 때문에 페기의 아버지가 죽지만 페기는 아버지를 원망하지 않았다. 사랑의 기억을 가지고 이해하려 했다. 만약 자호가 죽었다면 자걸은 어떠했을까...

 

물론 고회장과 자호의 입장이 다르긴 하지만, 자걸이 조금은 자호를 이해해주길 바랐다. 하긴 그러면 극이 막을 내려야겠지.

 

자걸이 어린아이 같던 모습에서 형을 이해하며 어른으로 성장한다면, 마크는 지난날의 영광을 잊지 못하고 현실을 부정하다가 결국 자신의 이상을 찾는다. 친구... 우정을 위해 불꽃처럼 타오른 마크는 강렬한 인상을 주는 인물이었다. 하지만 무엇보다 내가 영화에서 좋아했던 인물은 자호였다.

 

과거가 궁금해지는 인물이었다. 이 사람은 어떤 과거를 가지고 있길래 이런 삶을 사는 것일까. 동생을 위해 흑사회에 들어간 것일까. 뮤지컬에서도 역시 멋진 인물이었다. 사람 좋은 웃음으로 모두를 품지만, 냉철한 판단력과 의지를 잃지 않는 인물. 고회장이 딸바보라면 자호는 동생바보라고나 할까. 새 인생을 살다가도 동생이 위험하다면 섶을 지고 불 속으로 뛰어드는 일조차 마다하지 않는다.

 

유명한 마약왕이었던 고회장이 개과천선해서 바르게 산다한들, 과거의 검은 물은 그를 내버려두지 않았다. 자걸은 위험한 일인 줄 알면서도 전과자 형을 둔 죄로 잠입수사를 하게 되고, 진부하지만 사랑에 빠진다.

 

처음만 거짓이었단 말은 사실이었다. 수족관에서 수많은 물고기들 이름을 나열하며 -가물치, 잉어, 붕어, 문어 이랬으면 기억했을텐데 선셋프리티 밖에 모르겠다. 남미의 석양? 이런 거?- 너무 귀엽고 예뻤다. 아버지가 돌아가시고 형에게 배신감을 느낀 채 마음의 문을 닫고 있던 자걸이 무장해제되는 모습은... 참으로 귀여웠다. 거짓으로 다가갔지만 어느새 진짜가 되어버린 마음이 가슴 아픈 사랑으로 바뀌는 건 순간이었다. 아름답고 자유로운 듯 하지만 결국 갇힌 공간인 수족관이라는 곳은 그래서 예뻐도 안타까웠다. 

 

스파이의 삶은 쉽지 않았다. 안경을 쓰고 있을 땐 빌리였다가 안경을 벗으며 자걸이 될 때는 소름이 돋았다. 진짜 같은 사람이야? 하지만 내리는 비에 옷이 젖듯, 사랑은 빌리와 자걸의 마음에 이미 스며들어버렸다.

 

자호는 견숙의 정비소에서 일하게 되는데, 여기 견숙은 정말 멋진 사람이었다. 'stand up' 노래는 정말 흥겨워서 나도 모르게 벌떡 일어나서 춤 춰야 할 것 같았다. 우중충한 삶에 빛 같은 존재. 견숙은 그렇게 전과자들에게 갱생의 기회를 준다.

 

하지만 여전히 아성은 탐욕의 화신으로 모두를 수렁으로 몰고 있었다. 아성의 음모 때문에 자호는 자걸을 위해 다시 흑사회로 돌아가고, 형제는 비극적인 순간에 서로를 마주본다. 겨누는 손 끝도 떨리고 내 눈에서도 눈물이 떨어졌다.

 

오버랩 되는 장면들이나 시간 순서의 배치를 어긋나게 하는 것 등 연출이 참 좋았다. 이미 유명한 영화를 각색해서 뮤지컬로 올린다기에 어떨까 궁금했는데, 생각보다 좋아서 놀랐다. 하지만 넘버들이 전부 과하게 끝을 지르는 것으로 끝이 나서 감정이 좀 깨지기도 했다. 조용히 읊조리듯 끝나도 좋았을텐데. 엘이디도 너무 현란할 땐 눈이 좀 피곤하기도 했다. 번쩍번쩍 홍콩의 밤거리가 생각나기도 했지만 되려 외로워 보이기도 했다. 저 곳에 수많은 사람들이 살았고 살고 있고 살아가겠지.

 

그 유명한 장국영의 전화박스 씬이 어떻게 나올지 매우 궁금했는데, 비장함은 덜 하지만 간절함은 그대로였다. 살아남기를, 나는 죽어도 그대는 어서 도망치기를 바랐는데 결국 페기는 어떻게 되었을까...

 

경찰 내부에 있던 배신자 때문에 정체가 탄로난 자호, 자걸, 마크는 이제 중대한 결심을 해야 했다. 마크는 이대로 끝날 수 없다 절규하며 위조지폐 테이프 원본을 훔쳐내고, 자신이 진정 원하는 건 친구라는 사실을 절실히 깨닫는다.

 

여전히 형을 용서하지 못한 자호와 자걸을 뒤로 한 채 보트를 타고 가던 마크는 의리를 지키기 위해 돌아오고, 형제란!을 외치며 죽는다. 벽에 피가 튀는 장면에 나도 모르게 헉 하는 짧은 비명이 터져나왔다. 친구를 지키고 친구의 품에서 죽는 건... 그가 원한 삶이었을지도 모르지...

 

마크의 죽음으로 자걸은 비로소 마음의 빗장을 풀고 형을 이해하려 한다. 어쩌면 자신이 형을 그 길로 내몰았을지도 모른다는 내면의 목소리를 듣지 않으려 형을 애써 미워했던 건지도 모른다. 그런 동생을 따뜻한 마음으로 기다려 준 자호는 여전히 동생을 사랑한다.

 

결말은 영화대로였다. 포스터대로 같은 수갑을 찬 두 사람은 차가운 쇠조차 녹일만큼 뜨거운 심장으로 형제애를 나누었다.

 

뮤지컬 내내 자호가 부르는 넘버들은 어딘가 짠했다. 세상 풍파 다 맞고도 여전히 누군가를 지키려는 그 마음. 그 마음 하나만으로도 자호는 자걸의 영웅이 될 만 했다.

 

자걸이 빌리의 모습으로 아성을 협박할 때 온갖 물고기 이름 다 대며 안 예뻐! 하는데 너무 웃겼다. 하하

 

자호, 자걸, 마크 모두 연기를 너무 잘 해서 몰입해서 봤다. 셋이 같이 있을 땐 뭔가 훈훈하지만 처연했다. 바람결에 모든 것이 다 흩어진다 해도, 언젠가 삶의 저 끝에 서더라도 서로가 서로를 위해 있었음을 기뻐하며 함께 해서 행복했음을 기억하기를...

 

자호 : 유준상

자걸 : 한지상

마크 : 박민성

아성 : 박인배

한전아트센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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차가운 바람이 얼굴을 할퀴고 지나가면 나도 모르게 으스스한 기분에 온 몸이 쭈뼛해진다. 어쩌면 눈에 보이지 않는 다른 세계의 존재가 내 옆을 스쳤는지도 모른다.

 

이 뮤지컬이 그러했다. 그냥 지나갈수도 있었지만 돌아보게 만드는 것이.

 

약속을 했다. 꼭 후기를 남기겠다고. 그것이 비록 나 혼자 '그럴게'라고 했을지라도 지켜야했다.

그래서 이미 막공까지 지나버린 공연이지만, 후기를 남겨본다.
 
이 뮤지컬은 브램 스토커의 <드라큘라>에 기반해서 실존 인물이었던 왈라키아 공국의 블라드 체페슈를 모델로 한 것 같다. 용의 기사단 단장으로 임명 받아 용 문장을 받았던 블라드 2세가 아버지이고, 루마니아어로 드라큘(dracul)이 용이니까 '~의 아들'이란 뜻의 라(-la)를 붙여 드라큘라라는 별명을 가진 블라드 3세는 용맹함과 잔인함 덕에 유명해진 인물이며 바토리 백작, 카밀라와 더불어 뱀파이어 전설의 굳건한 토대가 되는 인물이다.

비잔티움 제국을 몰락시킨 메흐메트2세의 라이벌이자 당시 강력한 이슬람 세력과 대적한 거의 유일한 이 인물을 본 뜬 주인공답게 여기 나오는 드라큘라는 천하무적에 고결한 성품을 가진 훌륭한 군주이다. 그러나 우리는 알 수 없는 내막을 가진 그 천하무적은 정작 본인에겐 저주이고 사랑하는 아들에게 물려주고 싶지 않을 유전의 고리일 뿐이다.

사랑하는 아내인 아드리아나는 피를 갈망하는 저주를 이겨내는 데 큰 역할을 한다. 오로지 그녀만이 각인처럼 그의 심장에 새겨져 그의 욕망을 멈춰준다. 피의 천사들도 그녀 앞에선 어떤 힘도 쓰지 못하고 저 너머로 사라질 뿐이다.


하얀 잠옷 차림으로 가장 내밀한 욕망을 저주하지만 갈망하며, 무너지는 자아를 연기하는 엄큘은 그야말로 드라큘라의 비극성을 처절하게 보여줬다. 어떻게 그런 연기를 할 수 있지 싶을만큼 비참하고 간절한데 아름다웠다. 아무것도 보이지 않고 어떤 것도 들리지 않는 절망 속에 비추는 단 하나의 빛, 그녀의 사랑은 그를 저주에서 거듭 구해주고 평범한 인간이길 원하는 드라큘라는 그녀의 품 안에서 불안한 안식을 얻는다.

사실 오스만 제국이 비잔티움을 무너뜨리고 유럽 대륙을 위협할 때 최전방에 있던 곳이 왈라키아 공국이었고, 신성로마제국, 이탈리아, 서유럽 등은 자기들끼리 싸운다고 십자군에는 관심이 없었다. 그래서 십자군이라고 나선 이는 블라드 3세였고 숫적 열세에도 불구하고 그는 승리했으며 적에게 자신의 힘을 보이고 흔들리는 공국을 바로잡기 위해 적에게 매우 잔인했다.(물론 나중에 메흐메트2세에 의해 목이 잘리긴 하지만. 이 때 목이 잘린 시체가 사라져서 드라큘라 전설이 더 더욱 공포스러워졌다.) 

하지만 여기서는 드라큘라가 돈장사를 하는 루치안 반 헬싱 교황에게 맞서는 것으로 나온다. 성전이라는 명목으로 재물과 군사를 모은 반 헬싱은 고결하고 용맹한 드라큘라를 견제하며 그의 부를 탐한다. 실제로 4차 십자군 전쟁이나 그 후 교황들의 행태를 보면 드라큘라가 왜 그들을 저어했는지 이해가 가긴 한다. 하지만 결국 교회는 사람들의 믿음 위에 군림하고 있었고, 구원과 심판이라는 이름 아래 드라큘라의 성은 결국 무참히 희생 당하고 만다.

드라큘라가 자신의 저주 때문에 수도원에 기도하러 간 사이, 반 헬싱은 드라큘라 성을 습격하고 성 안을 도륙한다.

마지막까지 십자군에게 저항하던 로레인과 디미트루는 그들의 칼에 쓰러지고, 드라큘라의 아들은 죽임을 당하고, 부상을 입은 아드리아나는 미끼로 끌려간다.

뒤늦게 도착한 드라큘라... 아들의 주검 앞에서 온 영혼이 뒤틀리듯 오열하다 마침내 이런 저주 받은 힘을 받아들이기로 한다다. 절대신을 저주하며 자신의 사랑을 찾는 드라큘라. 거듭 생각하지만 세상 어느 인간이 감히 신에 대항하여 자신의 사랑을 지키려 했을까. 저주도, 믿음도 사랑 앞에서는 모두 바래져 버리고, 드라큘라의 시간은 그대로 멈춰버리고 만다...

아드리아나는 드라큘라가 주는 피를 거부하며 그에게 구원의 길을 열어준다. 그녀의 별이 다시 떠 올라 그의 별과 함께 춤을 출 때, 그 때야말로 그의 저주가 끝나고 피에 묶인 영혼이 자유로워질 것이라고.

이제 드라큘라는 그녀를 기다린다. 언제가 될 지 모르지만 반드시 올 그녀를... 그의 시간은 멈추고 쏟아지는 별들 안에서 단 하나의 별만을 찾으며 웃음도, 생기도 모두 잃어버린다. 살아도 산 것이 아닌 '살아있는 시체'라는 표현은 정말 아드리아나가 없는 드라큘라에게 너무나 잘 어울린다. 시간의 흐름 속에 멈춰선 채, 하나의 별만을 기다리는 드라큘라... 2막의 첫 장면은 그래서 너무나 아프고 슬펐다. 

400년 후, 아드리아나의 별은 파리에서 멈췄고, 운명처럼 드라큘라도 파리로 온다. 세상 어떤 것에도 관심 없는 얼굴이지만 약간의 분노와 무언가 애타는 듯한 표정이 가슴 한 구석을 아리게 했는데, 거짓말처럼 기다리던 얼굴을 마주본다. 드디어! 시간이 움직이기 시작한다. 드라큘라는 400년을 아드리아나만을 그리워하며 드디어 만났는데, 아드리아나는 드라큘라를 알아보지 못한다. 실망하다 못해 좌절한 드라큘라는 모든 것을 포기하려고 하지만, 디미트루의 설득에 그녀와의 만남을 준비하게 된다.

 

여기서 드라큘라는 우리가 아는 소설 속 드라큘라와는 좀 다르다. 거울 속에 자신의 모습이 비친다고 하니까. 거울 속 자신을 조우할 수 있는 존재... 그는 괴물도 아니고 악마도 아니고 그저 사랑을 잃은 가여운 한 남자였다.

 

한 눈에 알아볼 수 있었다. 아무리 많은 사람이 있어도... 군중 속에서 그녀에게 다가가려는 그의 절박한 몸짓은 마치 운명을 예견하듯 사람들 사이에서 사라진 그녀 때문에 더 애처로웠다. 이 부분 연출이 너무나 감각적이고, 드라큘라의 상황을 그대로 받아들일 수 있게 해줘서 너무 좋았다. 끝내 닿지 못할 사랑일까, 아니면 한 발만 더 내딛으면 만나질 수 있을까...

 

그리고 마주한 자리... 그는 운명을 이야기하며 그녀에게 이야기를 들려준다. 아드리아나... 긴 세월의 강을 건너 드디어 만나게 된 영혼의 반쪽, 삶의 이유. 천 년을 산다한들 그녀 없이는 무슨 의미가 있을까. 단 하루를 살아도 그녀 곁에 있는 것이 행복일테다... 마침내 서로를 알아 보지만, 운명은 그녀만을 데려온 건 아니었다. 반 헬싱 주교의 환생이든, 후손이든 거짓된 믿음으로 무장한 반 헬싱 역시 나타났으니까.

 

아이러니하게도 피에 묶이도록 만든 자가 그 피로부터 자유로워지도록 아드리아나를 드라큘라와 만나도록 이끌었다. 신의 심판을 입에 올리던 반 헬싱은 신이 가장 싫어하는 행동을 한다. 그가 믿는 신은 그에게 어떤 심판을 내릴까... (뱀파이어 다른 전설에 따르면 특정한 상황에서 자살한 영혼은 흡혈귀가 된다 하니 반 헬싱이 뱀파이어가 될 지도 모르겠다^^;;)

시간이 움직인 것도 잠시... 결국 드라큘라는 마지막에 아드리아나가 아닌 엘로이즈란 이름으로 그녀만의 삶을 살 수 있도록 그녀를 놓아준다. 자신은 이미 400년 전에 사라졌어야 했지만, 단 하나의 기원, 간절한 맹세인 그녀를 다시 만날 때까지 시간을 멈췄던 것 뿐이니까. 마치 400년 전으로 돌아간 듯 드라큘라 성에 있던 이들이 한 자리에 모여 드라큘라를 마중나오는 장면은 너무 짠했다. 긴 시간의 기다림 끝에 사랑을 지키고, 원한을 용서로 승화시킨 그는 드디어 자신의 저주를 벗고 안식을 얻게 된 것이다.

그렇게 그는 사라지지 않을 것이다. 다시 태어나 그 사랑을 이은 그녀의 기도에, 그를 위해 흘리는 눈물에, 그리고 내 마음에 영원히 살아있을테니까.

 

사랑을 위해 모든 것을 버리고 오롯이 그 사랑만을 남기고 간 최고의 로맨티시스트로 말이다.

 

액션씬들 다 좋았다. 드라큘라가 죽었다 살아나는 장면에서는 정말 놀랐고, 첫 흡혈 때 붉은 안개가 핏빛으로 퍼져 나가는 것도 좋았다. 파리에서 일어난 살인사건이 흡혈귀의 소행이 아닐까 할 때는 왠지 영국의 유명한 살인마 잭더리퍼가 떠올랐다. 사람을 죽이는 건 보통 인간 아닌 존재보다 인간이 더 잘 하는 짓이기도 하니까.

 

보는 내내, 드라큘라의 그 감정들이 너무 생생하게 전달되어 나도 따라 울었다. 사랑, 분노, 절규, 슬픔, 오열, 기쁨... 엘로이즈 앞에서 순한 강아지처럼 긴장하는 모습에 더해 눈물 흘리다 못해 말을 잇지 못하는 모습까지...

하염없이 흘러 떨어지는 그 눈물 방울방울 모아 목걸이를 만들면 세상 그 어떤 보석보다 빛나고 아름다울 것 같다는 생각을 했다. 다이아몬드가 빛을 반사시킨다면, 이 눈물 목걸이는 사랑의 마음을 비출 것 같다고나 할까... 이런 눈물로 기도한다면, 내가 신이라면 그의 소원은 무엇이든 다 들어줬을거다...


 

사랑은 끝나지 않는다...

 

드라큘라 : 엄기준

아드리아나 : 김금나, 권민제

반 헬싱 : 김법래, 이건명

로레인 : 쏘냐, 최우리, 황한나

디미트루 : 최성원, 조지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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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뮤지컬 <엑스칼리버> 스포일러가 포함되어 있습니다

 

세상에는 아주 많은 전설이 있다. 그 중에서도 아더 왕 전설은 많이 이야기 되지만, 또 많이 알려져 있지 않기도 하다. 켈트 신화에 기원을 둔 이 이야기는 기독교와 만나 많은 부분들이 고쳐지고 덧입혀지고 사라지기도 했지만, 여전히 신비롭고 재미있고 새롭다. 무수히 많은 영웅들이 원탁의 기사라는 이름으로 펼치는 모험담에 울고 웃다가 결국 모든 것이 바래져 먼지가 된다 할지라도, 아발론에 머물고 있는 아더가 언젠가는 돌아올 것이라는 희망은 여전히 사람들 마음 속에 자리하고 있다.

 

그리스 신화도 아니고 북유럽 신화도 아닌 스코틀랜드와 아일랜드에 남아 있는 켈트 신화가 어째서 지금도 영향력 있게 이야기 되는 것일까. 모계 사회, 궁정식 사랑, 성배를 찾는 모험... 그 옛날에도, 우리가 살고 있는 지금도 여전히 유효한 질문인 '나는 누구인가'라는 질문에 대한 답을 찾는 과정을 그린 이야기라서 그럴지도 모른다.

 

운명은 정해진 것일까, 그렇다면 그 운명 속에서 내가 해야할 일은 무엇인가. 운명은 만들어가는 것인가, 그렇다면 나는 내 운명을 어떻게 만들어야 하는가.

 

EMK에서 야심차게 내 놓은 창작 뮤지컬 <엑스칼리버> 역시 그런 이야기를 다룬 뮤지컬이다. 단순하게 말하면 아더의 이야기이고, 조금 더 길게 이야기하면 아더가 진정한 왕이 되는 이야기라고 할 수 있을 것이다. 하지만 정말 더 길게 이야기하자면, 브리튼의 패권을 둘러싼 켈트족과 색슨족의 전쟁과 드루이드교가 새로운 신앙인 그리스도교에 편입되는 과정을, 각각의 인물들이 사랑, 우정, 복수라는 방식으로 엮어낸 이야기일 것이다.

 

개인적으로 아더 왕 이야기를 아주 좋아하는데다 아더 왕 전설에서 가장 좋아하는 인물이 랜슬럿인 까닭에, 그리고 가장 좋아하는 배우가 그 랜슬럿 역을 맡았기에, 내가 이 극을 안 볼 수가 없었다. 그리하여 고약한 스케쥴을 소화해가며 <엑스칼리버>를 보러 다니게 된 것이다.

 

이 이야기는 케르눈노스를 상징하는 듯한 멀린이 갓 태어난 아더를 치켜들며 시작한다. 켈트 신화에서 숫사슴의 뿔은 죽음과 재생을 뜻하는데, 어찌 보면 '탄생' 혹은 '부활'을 나타낼 수도 있겠다는 생각이 들었다. 분열된 켈트 족을 통일하고 그들이 누린 영광을 부활시킬 왕의 탄생을 관객들에게 알리며 시간은 18년 후로 넘어간다.

(출처:이지훈인스타그램)

 

 

이제 18세가 되는 욱하는 성격을 지닌 아더는 마을 청년들과 검술 훈련을 하다가 급작스럽게 치밀어오르는 분노를 참지 못하고, 그런 아더를 랜슬럿과 엑터 경이 달랜다. 자연스럽게 마을의 리더 역할을 하는 랜슬럿은 귀여운 동생 같은 아더를 돌보는데, 사실 가슴 아픈 과거를 지닌 인물로 모두의 중심에 있지만 어디에도 마음 둘 곳 없는 고독한 늑대, 외로운 이방인 같은 느낌이었다. 

 

열 여덟이라는 숫자는 이제 운명을 받아들일 때라는 뜻이기도 한 모양인지, 멀린이 나타난다. 멀린은 아더에게 그가 왕이었던 우더 펜드라곤의 아들이며, 이제 침략해 온 색슨족에 대항할 왕이 되어야 한다고 말한다. 가슴 속 분노의 정체를 알 길 없었던 아더는 그제야 자신이 왜 그런 분노를 갖고 있는지, 자신이 왜 이렇게 자랐는지 알게 되었다. 멀린은 분열된 영국을 통일하고, 그리스도교를 전파하기 위한 의도로 '검 뽑기'를 기획한다. 커다란 바위 위에 천 년 동안 꽂혀있던 엑스칼리버. 진짜 천 년동안 꽂혀 있었는지는 중요하지 않았다. 그 검에 전해져 오는 전설과 그 검을 뽑는 사람만이 중요할 뿐. 아더를 위한 검이었으니, 아더는 그 검을 뽑고 사람들은 그가 신이 정해 준 왕이라 믿고 환호한다. 랜슬럿은 그저 어린 동생으로 여기던 아더가 검을 뽑자 묘한 시기심과 질투, 당혹감에 굳어버리지만 왕의 아들, 엑스칼리버를 뽑았다는 명분에 기꺼이 아더 앞에 무릎 꿇고 그가 왕임을 인정해준다. 랜슬럿의 인정은 정말 중요했는데, 그가 무릎을 꿇자 모두가 아더를 왕으로 받아들이게 되는 것이다.

 

천 년동안 꽂혀 있던 검을 뽑았다는 소식에 강과 바다가 만나는 곳에 사는 기네비어가 자신들의 왕이 어떤 사람인지 궁금해한다. 그녀를 먼저 본 건 랜슬럿이지만, 기네비어는 랜슬럿을 지나친다. 기네비어는 운명을 만들어가야 한다고 생각하는 인물로 영웅보다는 함께 나라를 풍요롭게 만들 왕을 기다리며 검을 뽑은 사람이 분명 잘 해낼 거라고 말하고, 아더는 그런 그녀에게 반한다. 그리고 그 모습을 흡족하게 바라보던 멀린은 마치 아버지처럼 웃으며 그녀가 너의 신부가 될 거라고 말해준다.

 

그러는 사이, 동쪽 해안에 상륙한 색슨족 대장인 울프스탄이 무자비하게 사람들을 학살하며 모르가나가 있는 수녀원을 파괴한다. '나는 왕의 딸이야!'라고 외치는 모르가나(여기서 모르가나는 우더 펜드라곤의 딸로 나온다)에게 수녀원장은 '니 아버지는 죽었어. 넌 누구의 딸도 아니야!'라고 한다. 그리스도교를 믿지 않는 모르가나는 순식간에 아비 없는 자식이... 좀 씁쓸했다. 극 내내 기독교와 다른 종교들이 맞붙는데, 드루이드교든 오딘이든 다들 좀 미개하게 그리는 것 같아서 말이다. 여튼 모르가나는 왕의 딸임을 밝히고, 왕의 성으로 색슨족을 안내하는 조건으로 포로가 되어 수녀원을 빠져나온다. 드디어 사랑하는 연인 멀린을 찾으러 갈 수 있게 된 것이다.

 

아더와 랜슬럿은 기네비어와 마을 여자들이 전투 훈련하는 곳을 훔쳐보다 딱 걸리는데, 랜슬럿이 능글맞게 여자들이 과연 남자들의 공격을 받아낼 수 있을까라고 하다가 기네비어한테 된통 혼난다. 난 이 때가 참 좋았다. 기네비어와 랜슬럿이 봉술 대련하는 장면 말이다. 마치 두 사람이 춤을 추는 것 같았다. 랜슬럿은 여자한테 졌다고 화내지도 않고, 바닥이 미끄럽다고 능청을 떨지만 기네비어를 인정해준다. 그리고 엑스칼리버를 보고 싶어하는 여자들 데리고 칼 빌려서 우루루 맥주 마시러 가 버리는데, 일부러 자리 피해주는 것 같아서 안쓰러웠다. 후에 일어날 일에 대해 혼자 책임 지는 것도.

 

둘만 남은 아더와 기네비어는 분위기 좋았는데, 정찰 나온 색슨족 병사들이 이 둘을 덮치고, 검이 없는 아더는 싸우다가 큰 부상을 입고, 뒤늦게 달려 온 랜슬럿과 기네비어와 함께 색슨족을 물리치지만 아더는 의식을 잃고 만다. 칼을 기꺼이 빌려준 것은 아더인데, 랜슬럿은 아더가 다치는 바람에 혼자 욕 먹고, 좋아하는 술도 끊고, 오로지 기사로서의 삶만을 살기로 맹세한다.

 

아더의 전언을 들고 색슨족에게 돌아 간 울프스탄의 아들은 아더 펜드라곤이라는 이름을 던져 준다. 울프스탄 옆에 있던 모르가나 펜드라곤은 큰 충격에 빠진다. 자신이 어째서 수녀원에 버려졌는지 알게 되었으니까. 분노에 사로잡힌 모르가나는 아비의 죄를 부르는데, 그 분노와 원망, 차마 버리지 못한 사랑, 슬픔, 배신감 등이 뒤섞여 온 무대를 덮치는 듯 했다. 멀린에게 가르침을 받으며 그와 함께 사랑을 나누던 행복한 때, 아버지를 원망하며 수도원에 갇힌 채 멀린의 생사도, 바깥 세상의 어떤 소식도 알지 못한 채 괴로워하던 때, 지독한 절망 속에 하루하루 살아가던 그 때를 떠올리며 용을 깨우는 주술을 행한다. 아비가 지은 죄 때문에 모르가나의 인생이 무너진 것이다. 심지어 믿고 사랑하는 멀린이 이 일을 주도했으니 그 배신감이란...

 

이제 캐멀롯은 색슨족을 막기 위해 진지를 구축한다고 바쁜 와중에, 의식을 되찾고 기네비어와 연인이 된 아더가 랜슬롯과 기네비어의 부축을 받으며 등장한다. 온 마을 사람들이 아더를 둘러싸고 그의 회복을 기뻐하는데, 그 모습을 보는 모르가나는 얼마나 외로웠을까.

 

용을 놓아주며 그 혼란을 틈타 도망친 모르가나는 캐멀롯에 나타나고, 잠재적 왕위 계승자이자 아더의 대척점에 있는 모르가나를 사랑하기에 그녀를 감췄던 멀린은 그녀가 나타나자 어떻게든 그녀를 다른 곳으로 보내려 애쓴다. 하지만 갑자기 나타난 누나를 보는 아더는 누나의 존재가 너무나 반가웠다. 일단 자신만 버림받은 것이 아니라는 사실에 안도했을테고, 같은 아픔을 공유한 누나를 보호해야겠다고 생각했을 것이다. 그래서 모르가나를 진심으로 환영하는데, 옆에 있는 랜슬럿은 진짜 관찰자였다. 혹시나 모를 위험에 대비하여 칼에 손을 얹고 유심히 보며 모르가나에 대한 경계를 풀지 않았다.

 

그리고 치러지는 대관식... 아더는 저 높은 곳에서 드루이드교 사제한테서 관을 받고, 원탁의 기사들은 아래에서 검으로 맹세하고. 아니, 대관식을 꼭 해야했을까. 엑스칼리버 뽑고, 왕 되고, 원탁에 모여 기사들과 맹세하면 되는 것을 굳이 대관식을 해야하는 이유는 무엇일까. 심지어 관을 씌워주는 건 드루이드교 사제인 멀린이다. 모두를 위한 왕이 되겠는가. 하지만 이 극에서 왕이란 군림하는 자가 아니라 옆에서 함께 하는 자가 아니던가. 원탁이란 무엇인가. 누구나 평등하다는 것 아니던가. 물론 원탁이 예수 그리스도가 열 두제자와 함께 최후의 만찬을 나눴던 식탁이고, 열 두명의 기사가 열 두제자를 상징하긴 하지만, 예수 그리스도가 군림하는 분은 아니지 않은가. 그리고 마치 십자군을 보는 듯한 옷도 그닥 와 닿지 않았다. 아더는 마치 나폴레옹 같았고. 여튼 아더는 그렇게 왕이 되었다.

(출처:텐아시아)

 

2막은 결혼식으로 시작한다. 결혼식 무대는 정말 화려하고 예뻤다. 하얀색에 금빛이 뿌려진 옷은 아더와 기네비어에게 아주 잘 어울렸다. 그리고 가면을 쓴 듯, 둘을 보며 웃는 것도 우는 것도 아닌 표정을 짓는 랜슬럿이 짠했다. 사람들이 그렇게 술을 권해도 단 한 방울도 마시지 않고 아더를 지키던 그는 자신에게 장난을 치는 기네비어에게 혼자가 편하다며 미소를 보낸다. 원하는 단 한 사람이 아니라면 누구와 있어도 혼자 있는 것이니까. 아더 곁을 떠나지 않고 지키면서 자연스레 기네비어에 대한 마음도 깊어졌을테고, 그런 마음은 품어선 안 되기에 랜슬럿은 더 깊은 침묵으로 마음을 숨기고자 한다. 진실한 사랑은 원한 적도 없다는 그 체념과 잡을 수 없는 신기루를 갈망하는 마음... 하지만 모르가나는 그 마음을 눈치채고 의미심장한 말을 던진다. 운명은 원하는 걸 주지 않는다고.

 

엑터 경이 죽고, 색슨족 짓이라고 여긴 아더는 잠재된 용의 분노를 다스리지 못하고 폭주하기 시작한다. 흑화한 아더는 모르가나를 제외한 주변 모든 사람들에게 분노를 뿜으며 용의 불길이 커져가도록 내버려두고, 멀린은 그런 아더의 분노를 잠재우려 애쓴다.

 

색슨족은 쳐들어오고 자연스럽게 랜슬럿이 중심이 되지만, 역시 왕은 아더니까 그 명분은 어쩔 수 없었다. 중앙에 있던 그를 밀쳐내고 중앙에 서는 아더와 밀려나'주'는 랜슬럿, 그리고 어릴 때처럼 싸워보지만 결국 '져야만'했다. 1막 처음 아더와 랜슬럿이 대결할 때는 랜슬럿이 검을 쳐 냈는데, 여기서는 같은 초식(?)인데 일부러 쳐 내지 않고 왼쪽팔을 내줬다. 랜슬럿... 너무 짠하다.

 

솔직히 아더가 아버지한테 버림받은 건 맞는데, 그런 폭력적인 아버지가 아닌 엑터 경 밑에서 사랑받으며 자라지 않았는가. 그 옆에는 엑터 경의 아들 케이도 있고, 엑터 경이 학대하는 부모로부터 구해준 랜슬럿도 있었다. 모두가 아더를 지켰는데, 그리고 엑터 경은 모두의 아버지였는데 어째서 그렇게 혼자 괴로워하는걸까. 엑터 경이 죽자 랜슬럿은 크게 슬퍼하지만 바로 분노조절 실패한 아더 때문에 제대로 슬퍼하지조차 못했다. 아마 뒤에서 혼자 슬퍼했겠지...

 

아더가 모두를 멀리하는 사이, 급격하게 가까워진 기네비어와 랜슬럿. 사실 기네비어가 랜슬럿에게 반하는 장면 하나쯤 혹은 둘이 같이 부르는 넘버 하나쯤은 넣었으면 했다. 랜슬럿은 기네비어를 미친듯이 사랑하는데, 기네비어가 그 마음을 드러내기에는 장치가 좀 부족하다고나 할까. 계속 아더의 마음을 돌려보려 애쓰는데, 어차피 먼저 맹세를 깨버린 건 아더야... 여기서 가장 행복하게 자란 사람은 어쩌면 아더 너 혼자일지도 몰라.

 

모르가나는 계속해서 복수의 덫을 놓고 아더의 파멸을 기대하는 한편, 멀린에 대한 미련도 놓지 못한 채 멀린의 사랑과 지식을 갈구한다. 그러고보면 켈트 신화가 모계 신화라 그런지, 이 극에서도 운명을 만들어가는 건 기네비어와 모르가나이고, 운명을 받아들이는 건 아더와 멀린이다. 특별히 랜슬럿은 가부장제와 기독교 때문에 튕겨나간 캐릭터라 그런지 좀 어중간한 태도를 취하고 있고.

 

색슨족은 코 앞까지 왔고, 랜슬럿은 사라졌다. 기네비어에 대한 사랑을 감출 수도, 말할 수도, 단념할 수도, 가질 수도 없어 혼자 헤매고 헤매다 그녀와의 추억이 있는 곳까지 와 버린다. 혼자 외로워하고, 혼자 슬퍼하고, 혼자 아파하고, 혼자... 절규한다. 살아있다면 맹세를 저 버리게 될 것 같아 극단적인 선택을 하려는데, 마침 기네비어가 구해준다. 랜슬럿! 그녀가 부르는 자신의 이름은 이성을 날아가게 하고, 꺼져 가는 생명의 불씨를 살렸다. 그것은 칠흑같은 어둠 속 작은 불꽃이며, 저항할 수 없는 사랑이었다. 애절하게 바라보다 격하게 끌어안는데 내 가슴이 부서지는 줄 알았다.

저 뒤에서 모르가나는 승리의 미소를 짓는다. 드디어 아더가 사랑하는 이들에게서 버림받게 되었다. 자신이 멀린을 잃은 것처럼, 자신의 전부였던. 이게 바로 끝은 정말 클라이막스였다. 점점 고조되는 감정들이 뒤엉켜 선택을 요구했다. 벨 것인가, 무너질 것인가.

 

자신이 무슨 짓을 했는지 깨달은 랜슬럿은 신께 용서를 구하고, 여전히 모든 책임을 자신이 지려고 한다. 죽음의 칼날이 내리치더라도 달게. 너의 분노가 그것으로 사라진다면... 하지만 아더는 분노 조절에 성공한다. 무릎 꿇은 랜슬럿을 보고 느낀 바가 있었을까.

 

모르가나는 결국 절반의 승리만을 얻었다. 하지만 멀린의 사랑을 온전히 가졌으니 그것만큼은 다행이라 생각했다. 사실, 좀 허무하긴 했다. 멀린의 사랑을 그렇게 표현하고 싶었으면, 차라리 모르가나가 아더를 죽이려고 하고, 그런 모르가나에게 기네비어가 활을 쏘고, 그 활을 멀린이 대신 맞으면 되지 않을까. 생 갈랑 버전을 이렇게 비틀면 더 아름답지 않을까. 더 희생적이고, 더 극적인 결말이 될 것 같은데 말이다. 여튼 모르가나와 멀린은 서로를 품에 안고 안개 뒤 그들만의 세계로 가 버렸다. 물론 원래 멀린은 비비안의 성에 갇혀 있고, 모르가나는 아발론의 군주가 되어 있지만 말이다.

 

그리고 마지막 전투. 울프스탄의 공격은 실로 막강했고 아더는 고군분투하는데, 저기 나타난 랜슬럿. 맹세를 지키기 위해 달려 온 그는 비록 아더의 군대는 아니지만 아더를 지키는 형이었다. 아더를 베기 위한 검을 쳐 내고, 울프스탄의 검에 베인 그는 두 번째 날아든 검을 피하지 않았다. 그렇다. 이것이 내겐 끝이었다. 수치 속에 사느니 여기서 죽을게란 말은 랜슬럿의 삶을 너무 아프게 말한 거라 눈물이 났다. 함께 할 수 없는 사람들을 사랑하여 결국 죽음이 반가웠던 삶. 그 삶 속에 잠깐씩 머물렀던 행복이 그에게 위안이 되었기를.

 

랜슬럿이 나가면서 기네비어가 등장한다. 둘은 끝내 함께 하지 못하는 것이다. 수녀라니. 전투 훈련은 왜 했냐고. 그러니까 결말을 바꿔야 한다고. 기독교가 들어오는 것 알겠다고. 기네비어가 나중에 신에게 귀의해서 구원받는 것도 안다고. 하지만, 여기는 그게 중요한 게 아니지 않은가. 운명은 만들어가는 거라고 믿는 기네비어가 종교에 귀의하다니... 차라리 떠나지. 랜슬럿은 울프스탄으로부터 아더를 구하고, 기네비어는 모르가나로부터 아더를 구하고 떠나면 되지 않냐고. 왜 죽이고 수녀 만들고 그러냐고. 아더의 비극성에 희생당한 캐릭터가 되어 버려 안타까웠다.

 

결국 아더는 처음 칼을 뽑은 그 곳으로 되돌아간다. 처음보다 힘겹게 올라가는 모습에, 우리네 삶이 담긴 듯해 울컥 했다. 삶은 그런 것이다. 지치고 힘들고, 스스로 지켜내지 못하면 다 잃어버리고... 그래도 앞으로 나아간다면, 그 끝이 어떻든 끝까지 살아내었으니 훌륭한 것이라고.

 

 

전체적으로 무대가 정말 좋았다. 숲을 구현한 것이나 스크린 영상 등은 멋있었고, 전투씬에 많은 수의 앙상블이 나오니 마치 영화를 보는 듯 했다. 정말 켈트 신들이 살고 있을 것만 같은 안개 낀 푸르름도 좋았다. 고대 영국은 이런 신비로운 분위기였을 것 같았다. 게다가 두 개의 층으로 대비하여 연출한 것도 괜찮았고, 무대를 깊고 넓게 쓰는 것도 좋았다. 물론 세종문화회관이 워낙 넓어 급하게 뛰어다녀야 할 것 같긴 하지만.

 

넘버들도 뭔가 켈틱하고 좋은데 좀 강해서 귀가 피로하기도 했다. 그래도 배우님들 연기랑 어우러져 시간 가는 줄 모르고 재미있게 봤다. 재연 때는 조금 고쳐서 올라오면 좋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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Mind 2019-07-30 01:33   좋아요 0 | 댓글달기 | 수정 | 삭제 | URL
와~ 엑스칼리버도 꼬마요정 님 리뷰 글도 정말 방대하네요. ^^ 장엄한 장면에서 많이 감동하신 것 같아요. 대리체험하게 해주셔서 감사합니다. ^^

꼬마요정 2019-07-30 10:46   좋아요 0 | URL
아더 왕 전설 좋아하고, 랜슬럿 좋아해서 객관적이지 못합니다^^;; 재미있는데, 서사적으로 조금 보충하고 고치면 더 좋을 것 같아요. 낡은 느낌의 대사들도 바꾸고...
재미있게 읽어주셔서 고맙습니다^^
 

그리스 로마 신화 속 제우스는 어머니 가이아가 아버지 크로노스에게 돌을 먹이고 간신히 살려냈다. 후에 포세이돈, 하데스와 더불어 크로노스 및 티탄 족들을 제거하고 올림포스의 최고신 자리에 오르게 된다.

‘시간’을 자신의 발 아래에 놓고, 최고의 상징인 번개를 휘두르며 대지모신이었던 헤라를 자신의 아내로 둔 신, 제우스.

옛날 옛날 아주 먼 옛날, 영국 브리튼 족장 가운데 가장 유명하고 용맹했던  왕이 있었다. 제우스처럼 숨겨졌다 신검 엑스칼리버를 뽑아 왕이 된 남자, 아더. 그는 드래곤을 무찌른 일족이자 왕이었던 우서 펜드라곤의 아들이지만 잘못된 욕망 속에 잉태된 씨앗이었다. 그리하여 그 죄 때문에 엑터 경의 집안에서 아주 평범하게 자라게 된다.

형인 케이의 시종으로 엑스칼리버를 뽑기 위한 대회에 가게 된 아더는 속죄의 길을 걸어야 하는 멀린의 도움으로 왕의 검인 엑스칼리버를 뽑게 된다. 브리튼 최고의 기사인 고르 왕국의 멜레아강조차 뽑지 못한 검을 아무렇지 않게 뽑아 든 아더에게 충성을 맹세하는 사람들. 명분이란 그렇게 무서운 것이었다.

궁정에서 자라지 못한 아더는 오히려 순수하고 깨끗한 영혼을 가지고 있었다. 자신의 운명이 어떻게 짜여 있는지 감히 상상도 못한 채, 그 운명이 시키는대로 왕이 되었지만 진정한 왕이 되는 길은 멀고도 험했다.

켈트 신화에서 사후세계로도 읽힐 수 있는 고르 왕국. 그 왕국의 왕 혹은 왕자인 멜레아강은 일종의 하데스이다. (극 중 모르간이 낳는 모드레드 역시 죽음, 하데스로 볼 수 있다.) 하늘이 내린 왕 아더와 지하 세계를 다스리는 멜레아강. 지상은 아더의 지배 하에 있으니 멜레아강은 당연히 패배할 수 밖에 없었다.

흰 손의 귀네비어. 아더는 엑스칼리버를 뽑기도 했지만, 반드시 그녀와 결혼해야만 브리튼의 왕이 될 수 있었다. 원탁을 가진 그녀는 켈트 족 전설에 따라 왕을 정하는 여신의 대열에 있다. 귀네비어는 스스로 아더를 왕으로 선택하고 캐멀롯은 아더왕의 근거지가 된다. 그러나 귀네비어는 왕을 정하는 여신이라 필연적으로 아더의 후계자를 선택해야 할 것이고, 그로 인해 캐멀롯과 원탁이 파멸할 것이라는 걸 알고 있는 멀린은 정해진 운명 앞에 고개 숙인다.

 

그리고 아더와 귀네비어 앞에 나타난 모르간. 그녀는 멀린과 같은 예언자이자 다른 세계를 엿볼 수 있는 특별한 사람이다. 아더 왕 궁정에서 가장 아름다운 이가 귀네비어라면, 가장 매혹적이고 멋진 이는 모르간이었다. 정해진 운명에 이끌려가지 않고 그 수레바퀴를 부수려고 했던 여자. 그 끝이 파멸이든 실패든 상관없이 원하는 바를 이루고자 돌진하는 카리스마 가득한 마법사. 그녀는 어린 시절, 어머니 이그레인이 아버지의 모습을 한 우서와 동침한 사실을 알고 고통스러워한다.(원전에서 이그레인은 우서와 결혼해서 행복하게 산다...) 그리하여 복수를 꿈꾸며 계략으로 아더를 파멸시킬 모드레드를 잉태한다. (물론 원래는 아더가 모르간이 아닌 다른 이복누이 모고즈 혹은 안나와의 사이에서 모드레드를 얻지만. 게다가 말로리는 틴테절 공작이 죽은 후 우서가 이그레인과 관계를 가져 아더를 잉태했다고 변명한다.)

 

멀린이 운명을 따르며 순종하는 편이라면, 모르간은 그 운명을 거스르고 자신이 원하는 바를 이루고자 한다.

 

이 이야기는 운명이 정한 왕 아더가 자신의 양심과 영혼을 걸고 한 선택들이 쌓여 브리튼의 진정한 왕이 되기까지를 그린 이야기인 것이다.

 

모르간은 복수를 위해 멜레아강을 이용하고, 첩자를 귀네비어에게 붙여 랜슬롯과의 사랑을 부추기며 아더와의 사이를 이간질한다.

 

진짜 부모의 사랑은 받아보지 못하고, 언제나 모자란 듯한 형 케이를 보살피며 살아 온 아더는 얼떨결에 운명에 떠밀려 왕이라는 막중한 자리에 오른다. 때는 색슨족이 쳐들어 와 각종 전투가 난무하고, 로마의 횡포로 백성들은 곤궁했으며 브리튼인들은 여러 갈래로 찢어져 서로와 다투던 때였다. 그저 검을 뽑고 원탁을 얻어 그냥 왕으로 안주할 수도 있었을텐데, 아더는 정말 죽을 힘을 다해 진정한 왕이 되고자 노력한다. 갑자기 짊어지게 됐음에도 막중한 왕의 임무를 성실히 수행하고자 하며, 자신이 어떻게 태어났는지 알게 됐을 땐 깊이 절망하기도 하지만 결국은 왕으로서 백성들을 위한 삶을 살고자 한다.

 

그러나 귀네비어는 자신이 아닌 랜슬롯을 선택하게 되고 또다시 절망에 빠지게 된 아더는 선택의 기로에 서게 된다. 모르간과 멜레아강의 계략으로 납치 된 귀네비어를 구하기 위해 랜슬롯은 성배를 버리고, 아더는 배신당할지도 모른다는 의심을 안고 멜레아강이 귀네비어를 감금한 곳으로 향한다.

 

그리고 그 곳에서 보게 된 잔인한 진실. 운명 따위 벗어던지고 자신의 충동대로 할 수도 있었겠지만, 아더는 그러지 않았다. 그러기에는 귀네비어, 랜슬롯 둘 다를 너무나 아꼈으니까.

 

그리하여 멜레아강의 성에서 있었던 일은 없던 일이라고 명령을 내린다. 하지만 결국 모두가 귀네비어의 부정을 알게 되고 만다. 귀네비어조차 부정하지 않는 현실 앞에 아더는 얼마나 괴로웠을까. 하지만 그는 누구도 하기 힘든 선택을 한다. 그녀를 용서하는 것.

 

그리고 복수를 원하는 모르간 역시 용서한다. 자신이 받지 못한 사랑을 받았던 그녀를, 자신이 알지 못하는 추억을 간직한 그녀를, 자신을 파멸시킬 아이를 가진 그녀를.

 

이렇게 되면, 진정으로 성배를 가져야 할 이는 바로 아더가 아닐까. 누구보다 순수하고 누구보다 선하며 누구보다 아량이 넓고 누구보다 훌륭한 기사.

 

 

아더는 실제로 색슨 족과의 전투에서 혁혁한 공을 세웠고, 엄청난 무공을 자랑하는 기사들이 따를만큼 카리스마 있는 족장이었다. 그런데 색슨 족과의 전투를 보여주지 않고 대사로만 이겼다고 처리해서 너무 당황했다. 아더의 고뇌가 이어지다 1막 마지막에서 왕으로 거듭나며 2막에서는 영웅적인 면모를 보여줘야, 후반부로 가면서 운명을 극복한 영웅을 넘어선 한 인간 아더를 볼 수 있을 것 같은데 끊임없이 절망이 주어지고 그로 인해 고뇌하는 아더만 보여서 너무 안타까웠다.

 

이제껏 아더왕 이야기에서 가장 불쌍한 이는 멀린이라 생각했는데, 여기서는 아더가 제일 불쌍했다. 원한 적 없는 운명을 거부할 수 없었던 그는 주어진 운명을 온 힘을 다해 만들어 간다. 힘든 선택을 해야할 때마다 자신의 의지로, 양심으로, 영혼으로 최선을 선택한 그는 사람이 어떻게 살아야 하는지 보여준 것이다. 운명이 정해져 있을지는 몰라도 그 운명을 이끄는 것은 인간이라는 것을. 거대한 수레바퀴가 돌아가는 것을 막을 수는 없지만, 방향은 정할 수 있다는 것을.

 

아더, 모르간, 멜레아강 정말 소름 돋았다.

 

아더 한지상

모르간 박혜나

멜레아강 김찬호

귀네비어 이지수

랜슬롯 장지후

멀린 지혜근

(2019.04.06 7시 충무아트센터)

 

* 오늘 전화를 받았는데, 색슨족과의 전투씬이 장비 문제로 날아갔다고... 어쩐지 대사로만 처리하는 게 어이없다 생각했는데 사고였구나. 다시 보러 가야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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세상에는 아름다운 사랑 이야기가 아주 많다. 그 중에 내가 좋아하는 로맨티스트는 드라큘라였다. 오직 사랑하는 여자의 구원 때문에 신을 버리고 홀로 그 시간의 대양을 건너 온 남자. 그 여자를 위해 자신의 영혼마저 버린 그 남자.

 

드라큘라가 자신의 사랑이 구원받지 못하자 순리를 거스르고 신을 버렸다면,

 

여기 이 남자 토드, 죽음은 오직 한 여자가 원하는 것을 들어주기 위해 순리를 거스르고 인간 세상에 개입한다.

 

천사에겐 행복, 악마에겐 고통, 인간에겐 사랑...

그렇다면 완전한 소멸만이 목적인 죽음에게 '그건' 어떤 것일까.

 

그렇다.

 

이 이야기는 엘리자벳이 진정 원하는 것을 들어주기 위해 그녀의 삶에 발을 들이며 상처 받으면서도 끝까지 그녀를 기다린 토드와 자신의 삶을 진정 사랑하고 삶의 의미를 찾고자 발버둥치지만 결국 의무라는 굴레를 끝내 벗어던지지 못해 괴로워하던 엘리자벳이 자유를 찾아가는 여정을 그린 장대한 드라마인 것이다.

 

이야기는 루케니의 재판으로 시작한다. 루케니는 왜 엘리자벳을 죽였는가.

 

광기에 휩싸인 채 루케니는 항변한다. 죽음이 배후라고. 엘리자벳은 죽음을 사랑해서 스스로 죽음을 향한 것이라고.

 

자유로운 아버지 밑에서 자유롭게 자란 엘리자벳은 말을 타고 개구리를 잡고 외줄 타기를 즐기는 말괄량이이자 바이에른의 어린 공주였다. 외줄을 타며 놀던 그녀는 그 아슬아슬함을 즐기다 땅에 떨어지게 되고, 오로지 존재의 소멸이라는 목적을 위해 그녀를 찾아 온 토드를, 그 존재 자체를 알아보고 동경한다. 토드는 자신의 의무이자 목적을 잊어버린 채 자신을 알아보는 그녀에게 빠져든다.

 

이름을 불러줘서 꽃이 되었다는 시처럼, 어린왕자를 기다리던 여우처럼, 살아있는 모든 것에겐 공포이자 존재 자체가 허무였던 죽음에게 의미가 생긴 것이다. 어쩌면 그것은 사랑, 어쩌면 그것은 삶의 의지, 어쩌면 그것은... 자유!!

 

그토록 삶을 사랑하고 죽음마저 두려워하지 않는 그녀를 사랑하지 않을 수 없었을 것이다. 죽음마저 사랑에 빠지게 만든 건 그 아름다운 외모가 아닌 살고자 하는 의지가 아니었을까.

 

엘리자벳 역시 죽음이라는 존재를, 다른 세상을 알았으니 이제 이 세상에 완전히 속하기는 어려웠을테다. 다른 세상에 한쪽 발을 내디딘 채 언제나 가슴 한 쪽에 채울 수 없는 갈증을 안고 살아야했다. 사랑한다고 생각한 요제프가 건넨 목걸이는 너무나 무거웠고, 결혼 서약은 혼란스러웠다. 그리고 신 앞에서 다른 남자와의 사랑을 맹세하는 엘리자벳의 대답을 듣는 토드는 상처 입은 야수마냥 웃는다.

 

마지막 춤은 살아있는 엘리자벳과의 마지막 춤이었다. 엘리자벳이 원하는 것을 엘리자벳 자신보다 더 잘 아는 토드는 상처 받았음에도 그녀에게 손을 내밀지만, 삶을 사랑하는 그녀는 선뜻 죽음의 손을 잡을 수 없다. 스스로 원하는 것을 찾겠다는 의지는 그녀의 삶의 근원이자 불행의 시작이었다.

 

황실의 삶은 힘들었고, 제국을 상징하는 대공비의 힘은 너무나 강했다. 황제조차 마음대로 하는 권력을 가진 소피에게 엘리자벳은 단지 황실의 꽃이자 후계자를 생산하는 존재였을 뿐이다. 믿었던 요제프가 자신이 아닌 어머니를 선택하자 엘리는 요제프에 대한 믿음을 버리고 자신의 삶을 되찾고자 한다. '난 나만의 것'은 믿었던 사랑이 자신의 편이 아니었음을, 자신의 삶은 자신이 만들어가야 함을 알게 된 그녀가 희망이 없는 곳에서 간절하게 부르는 주문이다. 그리고 그 주문은 토드를 움직인다.  

 

하지만 여전히 소피의 힘은 강했다. 아이들을 빼앗기고, 꼭두각시마냥 보이는 삶을 살던 엘리자벳은 이런 삶이 자신의 삶이 아님을 깨닫고 삶의 주도권을 되찾기 위해 노력한다. 그녀는 아이들을 되찾기 위해 자신의 외모를 이용하고, 소피에게 대항하기 위해 자신의 처지 같은 헝가리를 지원하고, 요제프를 소피에게서 떼어놓는다.

 

그녀가 주도권을 잡았을 때, 내가 춤추고 싶을 때를 정하겠다는 그 의지는 너무나 아름다웠고 너무나 강렬했으며 너무나 멋졌다. 죽음이 아무리 삶의 의지를 꺾으려 할지라도 그녀는 당당히 말한다. 자신의 삶을 사랑한다고. 엘리자벳을 향한 토드의 노래와 몸짓은 마치 구애 같았고, 사랑을 믿지 못하게 된 엘리자벳은 그 구애를 단호하게 거부한다.

 

그녀가 원한 것은 '진정한' 자유. 소피의 함정은 엘리자벳이 떠날 수 있는 구실이 되었다. 이미 비어버린 마음을 이 세상의 어떤 것으로도 채울 수 없는 그녀는 이제 평생을 자신이 원하는 것을 찾아다닌다. 모든 것을 버리면 얻을 수 있는 그것. 토드는 끊임없이 손을 내밀지만 엘리자벳은 번번이 그 손을 뿌리친다. 

 

모든 것을 버리지도, 제대로 된 자유를 얻지도 못한 그녀가 위로를 받는 곳은 정신병원이었다. 자신의 이익과 목적만을 쫓아다니는 인간들에게 진저리가 난 그녀가 미친 사람들 속에서 안식을 얻는 건 자연스러운 일이었다. 계속되는 근친혼으로 비텔스바흐 가문은 이미 많은 사람들이 말 그대로 미쳐 죽거나 미친 채였고, 멀쩡한 정신으로 비어버린 가슴 한 쪽의 갈증을 오랜 시간 감당하기엔 너무 버거웠으니까.

 

인간에 대한 회의를 드러낸 시인 하이네의 시를 벗삼고, 아버지처럼 살고 싶었지만 자신은 실패했다는 생각에 우울해하던 그 때, 아들인 루돌프가 아버지인 요제프와의 반목으로 그녀를 찾아와서 절규한다. 한 번만 이야기를 들어달라는 아들의 울부짖음에, 모든 것을 버리지 못하는 자신을 탓하던 그녀는 다시 그 속박 속으로 갈 수 없다고 읊조린다. 그건 루돌프에게 말한 것일까, 자신에게 다짐한 것일까. 사실 7년 넘게 소피가 키웠고, 20년 넘게 아들을 떠났던 엘리자벳이 루돌프에게 자신을 내어 줄 수는 없었겠지.

 

요제프에게 외면당했을 때 엘리가 자신의 삶을 선택했다면, 루돌프는 어머니가 자신을 외면하자 죽음을 선택했다. 의지할 데 없이 혼자 살아남아야 했던 루돌프는 삶을 살아갈 의지가 없었고, 죽음은 기꺼이 그를 데려갔다. 죽음이 손을 뻗어 데려가지 못한 이는 여전히 단 한 명.

 

아들의 죽음은 모든 것을 가지지도, 버리지도 못한 그녀에게 큰 충격이었다. 삶의 의지를 내던질만큼. 생이 다하는 그 때까지 삶의 끈을 놓지 않던 그녀가 자포자기로 죽음을 부르자, 토드는 답한다. 이것은 진실로 너가 원하는 것이 아니야, 이런 너는 아니라고. 누구보다 그녀를 이해했던 오직 단 하나의 존재. 그렇게 토드는 또 다시 엘리자벳을 기다린다. 온전히 자신에게 오기를...

 

아들의 죽음으로 이제 삶을 정리할 수 있게 된 엘리자벳은 자신을 옭아매던 이 세상의 사랑을 끊어낸다. 삶의 미련이 사라진 것이다. 그것은 어쩌면 요제프에겐 악몽, 엘리자벳에겐 축복...

 

때가 왔다. 그녀는 진정 삶을 사랑했고, 채울 수 없는 목마름을 채우려고 노력했고, 이제 그 답을 찾았다. 진정 그녀가 원하는 자유, 사랑, 삶... 평생 그녀를 덮었던 베일은 벗어던지고 자신보다 더 자신을 이해하는 존재에게 입맞춤을 허락한다. 기억은 지우고 자신은 무(無)로 돌아간다....

 

얼마나 사랑하면 그녀가 존재하지 않는 것조차 받아들일 수 있을까. 그것이 죽음의 존재 목적이라 하더라도 이전에는 모르던 감정을 알았는데, 이제 영원토록 비어버린 가슴 한 켠 끌어안아야 할텐데. 마지막 떨리던 그 손은 그래서였을까.

 

죽음은 허무, 존재하지 않음. 어쩌면 그렇게 둘은 온전히 하나가 된 것일지도 모른다. 너와 나가 하나인 상태.

 

엘리자벳과 토드가 서로를 처음 만난 순간부터 둘은 언제나 함께였고,

이제 사랑은... 혹은 자유는 그렇게 완성됐다.

 

엘리자벳이 루케니의 손에 죽은 건 당연한 일일지도 모른다. 어린 시절 어머니에게 버림받은 루케니는 루돌프의 또 다른 모습일지도 모르니까.

 

융통성 없는 군인이자 제국의 주인이었던 요제프는 엘리자벳을 너무나 사랑해서  제국마저 그녀에게 줄 수 있었을지도 모른다. 그러나 그녀가 원한 것은 단 하나였고, 그것은 요제프가 줄 수 없는 유일한 것이었다.

 

극 내내 흐르는 루케니의 광기는 너무 슬퍼 울지 못한 자의 비웃음이었다. 너무 힘들고 슬퍼 우는 것조차 할 수 없었던 그 시대의 민중들... 전쟁, 권력다툼, 급변하는 경제 상황들 속에서 살고자 발버둥치던 그들 모두가 루케니이고, 죽음이 데려간 사람들이자 죽음을 숭배한 이들일 것이다.

 

신엘리는 완벽했고, 식토드는 강렬했으며, 민제프는 가여웠고, 훈케니는 울부짖었다.

 

 

엘리자벳 : 신영숙

토드 : 박형식

루케니 : 이지훈

요제프 : 민영기

소피 : 이소유

루돌프 : 최우혁

(2019.03.24 부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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