카사노바의 귀향.꿈의 노벨레 (무선) 문학동네 세계문학전집 57
아르투어 슈니츨러 지음, 모명숙 옮김 / 문학동네 / 2010년 12월
평점 :
장바구니담기


나는 꿈을 잘 꾸지 않는다. 하지만 꿈을 꿀 때면 대부분 희안한 이야기 같은 꿈을 꾸곤 한다.

 

예를 들면, 내가 이집트 공주가 되어 커다란 함선에 갇힌 사랑하는 왕자를 구하러 가는데 갑자기 인어공주가 되어 함선에 구멍을 낸 뒤 왕자를 구출하고 갑자기 우리 집 근처 골목에서 씽씽카를 탄다던지, 길을 지나다가 새카만 갓을 쓴 너무나 잘생겼지만 얼음처럼 차가운 느낌이 가득한 저승사자를 만나 두려움에 떤다던지( 진짜 이 때 꿈인 걸 알았는데도 너무나 무서웠다ㅜㅜ), 집 근처에서 잘 놀다가 갑자기 커다란 호수가 나타나더니 난 마을버스를 타고 산 길을 위험하게 타고 어딘가에 도착했는데 거기가 저승이라고 하고 난 그 동굴 같은 곳에서 함정들을 피해 겨우 도망쳐 나오고... 

 

이런 꿈들을 꾸고 나면 괜히 피곤하다. 마치 내 영혼이 진짜 모험을 즐기다 온 것마냥.

 

꿈은 그 사람이 살아온 삶을 알아야 해석이 가능하다는데, 그럼 내가 읽은 책들에서 자신의 꿈을 이야기 하는 사람의 꿈은 어떻게 이해할 수 있을까.

 

<카사노바의 꿈>은 어느 정도 이해할 수 있다. 이 사람은 저항과 본능의 상징이므로. 어떤 삶을 살았는지 정확히는 몰라도 젊은 시절 많은 사랑을 했고, 베네치아 감옥을 탈옥했으며 유명세를 떨치며 유랑했다는 정도는 안다. 그래서인지 그가 나이가 들어 고향으로 돌아가고 싶어하는 마음과 저물어가는 육체에 대해 두려움을 갖고 있다는, 이제는 성적 매력도 없어지고 성적으로도 무기력하다는 것을 두려워한다는 사실을 자연스럽게 알게 된다. 마르콜리나에게 느끼는 열정은 이제 그의 입장에서는 가질 수 없는 꿈이다. 진짜 꿈이다. 마르콜리나가 원한다면 모르겠지만 아니라면 정말 파렴치한 짓이다. 그리고 그는 영원히 젊음과 이별한다. 르네상스의 기치가 인간 본성의 해방이라는데 그게 성욕으로 변질된 느낌이다. 베네치아 10인 위원회와 같은 이런 권력에 저항하던 카사노바가 나이 들어 보여주는 건 성을 통한 젊음인걸까? 그는 정말 권력의 끄나풀이 되어 젊은 시절 자신과 같던 이들을 고발할까? 그 전에 그의 늙은 육체는 껍데기만 남아있을지도 모르겠다. 젊은 시절의 그보다 더 빛나는 로렌치도, 그보다 더 똑똑하던 마르콜리나도 모두 신기루일지도. 수녀원에서 누군가 절박하게 부르던 그 이름도, 아말리아가 갈망하던 그 이름도 이제는 모두 껍데기일 뿐. 시간은 흘러가고 세상은 변하니 '멈추어라'고 말하는 건 어리석은 짓일지도 모른다.

 

문득 영드 <피터 오툴의 카사노바>가 떠올랐다. 젊은 하녀를 상대로 시시덕거리던 늙은 카사노바 피터 오툴의 능청과 자신만만하던 젊은 카사노바인 데이빗 테넌트가 말이다. 적어도 그들은 이 책의 카사노바처럼 비겁하지는 않았던 것 같다.

 

<꿈의 노벨레>는 생각보다 실망스러웠다. 프리돌린은 현실에서, 알베르티네는 꿈에서 각자의 욕망을 발견한다. 아무래도 남자가 여자보다 현실에서 성적 욕망을 표현하거나 표출하는 게 쉽겠지만, 현실이기 때문에 자유롭지 못한 것 같다. 선을 넘을 듯 말 듯 하며 홍등가를 거니는 것도, 고상한 듯 그 여자와 대화만 나누는 것도, 이상한 카니발도 모두 그가 가진 성(性)에 대한 두려움 때문에 벌어지는 일이다. 그러면서 자신의 아내인 알베르티네에게 불안과 죄책감을 덮어 씌운다. 자신에게 다가오는 성은 두렵고, 낯선 대상에겐 묘한 흥분을 느끼지만 결국 아무것도 하지 못하는 그 불안과 공포, 배신감을 말이다.

 

반면 알베르티네는 꿈에서 그런 욕망을 표출한다. 꿈 속에선 시간이나 공간의 구속이 없다. 발가벗고 춤을 춰도, 그러다가 날아가도 아무렇지 않다. 욕망을 해소하며 희열을 느끼지만 그 욕망을 막아서는 벽이 죄책감을 자아내고 꿈을 꾸는 본인은 꿈을 꾸면서도, 꿈을이야기 하면서도 아리송하다. 자신이 진정 원하는 것은 무엇인지 알지 못하는 걸까, 알지 못하는 척 하는 걸까, 알고 싶지 않은 걸까. 그 사람의 지나 온 삶을 모르는데 알베르티네의 꿈이 정말 말하고자 하는 것을 어떻게 알 수 있을까. 내 꿈에 나온 들판과 알베르티네의 꿈에 나온 들판은 다를테니. 다만 프리돌린이 지조를 지키려 여왕의 수청을 거절한 게 아니라 두려워서 일거라고 생각했기에 어떤 동정심도 없었던 게 아닐까... 짐작할 뿐. 그래서 프리돌린은 알베르티네를 순간 미워한 게 아니었을까. 어쨌든 알베르티네는 현실로 나오지 못했으니 안타까웠다. 프리돌린이 현실에 안주하기를 선택한 것이나 다를 바 없으니.

 

하지만 이들의 꿈과 욕망을 따라가는 건 제법 흥미로웠다. 내가 꾸었으나 기억 못하는 꿈들을 떠올리려 애쓰면서.


댓글(0) 먼댓글(0) 좋아요(20)
좋아요
북마크하기찜하기 thankstoThanksTo
 
 
 
향밀침침신여상 1
전선 지음, 이경민 옮김 / 마시멜로 / 2019년 12월
평점 :
장바구니담기


신선이 인간보다 더 잔인하다. 힘이 있어 약자를 보살피기도 하지만 그 힘으로 상대를 찍어누르는 게 가차 없다. 힘 있는 자가 가진 자신이 옳다는 믿음은 너무나 무섭다.

댓글(2) 먼댓글(0) 좋아요(12)
좋아요
북마크하기찜하기 thankstoThanksTo
 
 
후애(厚愛) 2020-08-03 09:51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이 책 작년에 나왔을 때 구매해야지 하면서 지금까지 구매도 못하고 계속 미루고만 있었어요.
신선이 나오는 책들을 무척 좋아하는데 다음에 꼭 구매해야겠어요.
더위 조심하시고, 행복한 한 주 되시길 바랍니다.^^

꼬마요정 2020-08-03 16:23   좋아요 0 | URL
후애님~ 책이 재미는 있는데 전 드라마가 더 좋더라구요.^^ 더운데 건강 유의하시고 식사 잘 챙겨드세요^^
 
향밀침침신여상 2
전선 지음, 이경민 옮김 / 마시멜로 / 2019년 12월
평점 :
장바구니담기


드라마에 더 큰 점수를 주고 싶다. 책 속 윤옥은 밋밋하고 욱봉은 질투쟁이에 금멱은 애 같다....

댓글(2) 먼댓글(0) 좋아요(10)
좋아요
북마크하기찜하기 thankstoThanksTo
 
 
서니데이 2020-07-16 23:23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저도 드라마 재미있게 봤어요.
꼬마요정님 시원하고 좋은 하루 보내세요.

꼬마요정 2020-07-16 23:32   좋아요 1 | URL
드라마가 볼 거리도 많고 인물들 성격도 더 잘 드러나서 좋네요. 저도 참 재밌게 봤어요. 고맙습니다^^
 
백야.우스운 자의 꿈 러시아 고전산책 1
표도르 도스토예프스키 지음, 고일 옮김 / 작가정신 / 2011년 4월
평점 :
장바구니담기


"비록 순간일망정 그가 존재했던 것은

 정녕 그대의 심장과 함께 하고파서가 아니었는지...."

 

첫 장을 넘기면서 본 글이다.

 

투르게네프의 <꽃>을 변형했다는데, 가슴이 뛰었다. 아직 <백야>를 읽기 전인데, 읽기 전부터 난 가슴이 콩닥거리기 시작했다. 도대체 낮보다는 어둡고 까만 밤보다는 밝은 그 밤에 무슨 일이 일어날 것인가...

 

화자가 알던 페테르부르크는 이사를 갔다. 어제까지 익숙한 곳이었는데 오늘 갑자기 낯선 곳이 되어버렸다. 혼자만 남겨진 기분 속에서 화자는 또 다른 상상을 한다. 도스토예프스키가 지금 세상을 보면 페테르부르크가 낯설어진 게 아니라 아예 다른 세상에 온 것이라 여기지 않을까. 급변하는 세상을 바라보고 느끼고 적응해야 하는 수많은 사람들 중에 이렇게 섬세한 사람이 보는 세상은 이렇구나 싶었다. 하긴 꼭 섬세하지 않아도 자신이 살고 있는 세계가 낯설어지는 경험은 누구나 한 번쯤은 하는거니까.

 

어쨌든 상상은 꼬리를 물고 또 다른 상상으로 기분이 좋아져 노래까지  흥얼거리며 길을 걷는데, 운명처럼 여자가 있다. 그것도 우는 여자. 남몰래 울고 있는 여자를 보고 다가가지만 여자는 갑자기 다가오는 남자가 무서워 돌아서고, 위험에 처한다. 아, 이것은 영화인지 소설인지. 위험에 처한 여자를 구한 남자와 급박한 상황에서 구출된 여자의 대화는 설레고 두근거리고 풋풋했다. 외로운 사람들끼리 나누는 대화는 노래 가사 같았다. '사랑으로 심장이 끓는 소리'라니...

 

아아, 나스텐카. 당신의 이름은 아무리 불러도 싫증나지 않을 것 같습니다.(p.37) 해가 지지 않는 밤은 그렇게 사랑에 빠진 한 남자를 만들었다. 절망적인 세상에 꿈 같은 시간이 찾아온 거다. 아무것도 가진 것은 없지만 사랑이, 진실함이 있었다. 물질이 주는 행복은 사랑이 주는 행복을 뛰어넘을 수 없다.  

 

꿈과 현실, 이상과 현실의 괴리나 소외된 자들의 문제, 현대인의 고독 같은 거창한 주제들이 있겠지만, 정작 내게 이 소설은 한 편의 완벽한 사랑이야기였다. 읽는 내내 가슴이 콩닥거렸고, 두 사람의 이야기에 설렜고, 그저 상대만을 바라는 진실에 감동했다. 두 사람이 나누는 이야기는 너무나 귀엽고 사랑스러웠다.

 

그래서일까. 그저 3일, 그저 단 하루 중 일 분이라 할지라도 완벽히 행복한 순간을 보았고, 그 순간은 '원수를 사랑하라'를 실천할 이유를 줬다. 사랑의 상처를 안겨줬을지라도, 사랑했던 그 사람의 찬란한 행복을 빌어줄 수 있는 이유. 행복의 절정을 보여주고 슬픔의 나락으로 떨어뜨린 그녀를 여전히 사랑하니까. '그대는 다른 심장, 외로운 심장, 고마워할 줄 아는 심장에게 일 분의 지극한 행복, 행복을 안겨주었기 때문이야!'(p.116) 그래서 앞에 나온 투르게네프 구절 중 '그'가 존재했다는 부분에서 '그'는 '나'가 아니었을까... 비록 순간일망정 나는 존재했다. 그대의 심장과 함께하고 싶어서.

 

<백야>가 이렇게 완벽히 내 마음을 설레게 했다면, <우스운 자의 꿈>은 좀 무서웠다.

 

인간 세계가 언제부터 아름다웠다고, 호모 사피엔스는 지구상 모든 생명체를 다 파괴할 것만 같은데 말이다. 과연 그들에게 '원죄'가 없던 시절이 있었을까 의문이다. 그럼 애초부터 '원죄'가 있는 존재라면 사랑받을만한 가치가 없는걸까. 자기 자신을 사랑하는 법조차 잊은 현대인들에게 용서와 사랑을 이야기하고 미친 사람 취급 받는 화자는 왜 꿈 속 세계를 타락시켰을까. 양심과 연민이 무엇이기에 모든 것을 망친 후에야 비로소 눈을 뜬 걸까. 어린 소녀를 찾았고... 어떻게 됐을까...


댓글(0) 먼댓글(0) 좋아요(13)
좋아요
북마크하기찜하기 thankstoThanksTo
 
 
 
화영시경 - 배혜경의 스마트에세이 & 포토포에지
배혜경 지음 / 지식과감성# / 2019년 11월
평점 :
장바구니담기


영화 <화양연화>를 사랑한다. 첫눈에 반하는 사랑이  아닌, 자신도 모르게 스며드는 사랑을 하는 두 사람의 아름다운 모습이 머리 속에서 사라지지 않는 영화. 둘이 있을 때보다 혼자가 되어 서로를 더 가슴 아리게 그리워하는 영화. 화면 가득 뒷모습이 쓸쓸하게 자리하는 영화...

 

이 책을 그렇게 읽었다. 리첸과 차우가 서로의 손을 온전히 겹치기까지 시간이 필요했던 것처럼 나도 천천히 읽었다. 내 마음에 스며들도록.

 

보랏빛 가득한 책장을 한 장 한 장 넘겼다. 정겨움과 그리움을 불러일으키는 사진들을 찬찬히 보았다. 흔들리는 꽃잎과 시간이 멈춘듯 한 나뭇잎들, 이 세상이 아닌 듯 보이는 바다까지, 주위에 있지만 자세히 보지 않았던 풍광들을 눈에 담았다. 그럴 때면 책에서 눈을 떼고 주위를 둘러본다. 비 온 뒤 느껴지는 물내음과 디지털이 표현해내지 못할 깨끗한 색감의 하늘이 있다. 언제나 있지만 언제나 느끼지는 못하는 자연... 그런 풍경들이 다시금 내 안에 담긴다.

 

첫 장을 읽으면서 마지막 장을 덮을 때까지 내내 그렇게 길진 않지만 나의 지나간 시간들이 떠올랐다. 특히 아버지가 오르한 파묵의 <내 이름은 빨강>을 사주셨다는 이야기에서는 눈물이 났다. 책 읽고 글 쓰는 걸 좋아했지만 그 누구도 알아주거나 이해해주지 못했던 어린 날이 떠올라서다. 그 나이대라면 누구나 그렇듯이 나 또한 무언가를 끄적였지만, 두툼한 공책 한 권이 갈기갈기 찢겨진 채 쓰레기통에 버려졌었다. 그 쓰레기통에는 찢은 이의 비웃음과 방조한 이의 무관심과 내 눈물이 가득했었다.

 

하지만... 내 감정, 내 상황, 내 주변, 이 풍경들을 솔직하고 고즈넉한 말로 풀어낼 재간이 없는터라, 응원에 힘입어 글을 잘 썼을 것 같지는 않다. 그래서인지 이렇게 일상 풍경들을, 경험들을, 추억들을 아련하고 처연한 말투로 물빛 가득하게 그려낸 이 책이 너무 아름답게 느껴졌다.

 

무엇이 내 마음을 건드린 걸까. 갑자기 마음이 과거로 날아갔다. 흑백사진을 보는 것처럼 옛일이 떠오른다. 그리고 그 때 미처 하지 못했던 말들을 떠올린다. 차우가 앙코르와트 벽에 비밀을 남기고 봉인한 것처럼.

 

꽃그림자 드리운 시간 풍경인데, 나는 어두운 기억을 불러와버렸다. 하지만 그 속에서도 붉은 꽃가지 하나쯤은 있기 마련이다. 좋지 않은 기억 곳곳에 좋은 기억들이 점점이 박혀있다. 푸르름 가득하던 그 때 따뜻한 말로 날 위로해준 친구가 있고, 집에 가기 싫다고 한 마디 했을 뿐인데 무슨 일인지 들어준 선생님도 있다. 사랑하는 고양이들이 있고, 내게 힘을 주는 책이 있다. 따뜻한 커피와 달콤한 초콜릿, 즐거운 음악이 있다.

 

기억을 불러온다는 건, 삶을 다시 살아가는 것 같다. 시간은 상처를 흔적으로 만들고, 환희를 따뜻한 미소로 만든다. 그 흔적들은 나를 강하게 만들고, 따뜻한 미소는 내게 안식을 준다. 나는 좀 더 어른이 되어 있기를 바란다. 어린 수도승이 왕금수도복을 벗고 어른이 된 것처럼 말이다.

 

덧글)5부 책 들려주는 시간에 수록된 책들 대부분이 읽지 않은 책들이다. 프레이야님이 들려주는 책이 읽고 싶어졌다. 그렇게 귀로 듣고 마음으로 읽어보고 싶다.

무언가에 집중하여 걸어가는
저 앞발의 우아함,
발레리노의 까무룩대는 발끝을 닮았다.
허공을 치고 가르다 유연하게 돌아가는
발끝에 쏠린
고통을 닮았다.- P62

멀리서 보이는 대상과 가까이서 보이는 대상, 앞에서 보는 대상과 옆이나 위에서 보는 대상 그리고 뒤에서 보는 대상은 말할 것도 없이 다르게 보인다. 원형은 그대로이나 시각은 착각을 불러온다. 중요한 건 어쩌면 사실보다 그 사실을 바라보는 시선일 것이다.- P161

서로 빈구석을 예쁘게 봐준다면 금상첨화겠지.사람은 누구나 못난 구석이 있는 예쁜 존재이니까.- P168


댓글(4) 먼댓글(0) 좋아요(20)
좋아요
북마크하기찜하기 thankstoThanksTo
 
 
2019-12-28 11:00   URL
비밀 댓글입니다.

2019-12-28 15:26   URL
비밀 댓글입니다.

2019-12-28 15:35   URL
비밀 댓글입니다.

2019-12-28 16:48   URL
비밀 댓글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