거의 황홀한 순간
강지영 지음 / 나무옆의자 / 2025년 2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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내가 어릴 땐 체벌을 '사랑의 매'라고 했다. 때리는 자의 감정이 섞여 있든 아니든 상관없이 권위를 가진 이가 손이나 매로 때리는 행위는 맞는 이를 '사랑'하기 때문이었다. 다 너를 위해서라는 말로 치장하면서 말이다. 그 권위에 반항하기는 쉽지 않았다. 그저 맞았고, 손만 들어도 나는 움찔하곤 했었다.


그런데 같은 반 애가 나를 때릴 땐 화가 났다. 어린 마음에도 잘못되었단 생각이 가득했고 억울했다. 작고 약하다고 맞아야 하나 싶어서 덤볐다. 죽도록 맞고 난 후 나는 초등학교를 졸업할 때까지 그런 폭력에 시달린 적은 없었다. 


권위나 나이에는 저항하지 못했지만, 나와 같다고 믿었던 상대에게서는 나 자신을 지킬 수 있었다. 그것이 나의 한계였다.


무영은 어렸지만 정말 용감했다. 가깝고 믿었던 이의 폭력에 사과를 요구할 줄 알았다. 그 결과가 비록 더 처참했다 하더라도 무영은 쉽게 자신을 포기하지 않았다. 어렸기에 겁이 많았고, 주위에 이를 터놓고 이야기하고 조언받을 만한 어른이 없었다는 점이 안타까웠다. 그렇게 무영은 몹쓸 짓을 당한 채로 고향을 떠나 타지에서 혼자 애를 낳고 살다가 강간범인 희태를 마주치게 되고, 그의 헛된 약속에 속아 같이 살게 되었다.


희태는 나쁜 놈이었다. 자신보다 약하다고 생각하면 아무렇지도 않게 폭력을 행사했다. 아내인 무영도 때리고 딸인 민아에게도 함부로 대했다. 그러던 어느 날, 희태는 결국 민아의 친구마저 건드렸고 민아는 도마를 들었다. 희태가 피를 흘리며 쓰러졌을 때 희태의 친구인 제문이 들어섰고 상황을 파악한 그는 119에 신고했다. 희태는 넘어진 것이었다. 


딸을 살인자로 만들 수 없었던 무영은 희태를 간호했다. 그리고 그가 퇴원했을 때 연향으로 내려왔다.


사랑이 태어나서 죽는 도시 연향. 그곳에는 김하임이 있었다. '우주신'인 할아버지와 조연 탤런트인 엄마와 함께 사는, 남자친구와 헤어지고 고향인 연향으로 내려 온 하임이 말이다. 인간의 모든 운명이 적혀 있다는 '나디샤스트라'를 찾아 인도로 가고 싶었던 그녀는 할아버지의 매점에서 일하며 우윳빛깔을 가진 지완을 만났다. 흔하다면 흔하고 순수하다면 순수해 보이는 그들의 사랑은 지완의 집에 들어 온 무영을 만나면서 위태로워지기 시작했다.


금방이라도 부서질 것처럼 보이는 무영은 지완의 마음을 흔들었다. 도와주고 싶고 아껴주고 싶은 마음이 들었다. 무영은 희태와는 전혀 다른 남자인 지완이 너무 소중했기에 멀리했다. 지키고 싶은 것이 생기면 사람은 아주 많이 용감해진다. 무영이 그랬다.


김하임과 이무영의 이야기가 교차되면서 진행되는 동안, 나는 줄곧 무영이 하임이처럼 살았더라면 얼마나 좋았을까 생각했다. 저런 나쁜 놈을 만나지 않았더라면, 다른 아이들처럼 떼도 쓰고 연애도 하고 이별도 하고 그렇게 살았더라면 얼마나 좋았을까. 희태를 만나지 않았다면, 무영은 평범한 삶을 살았겠지. 잘못은 희태가 했으나 세상은 무영에게 더 큰 벌을 내렸다. 

 

정말로 나보다 덩치 크고 폭력을 아무렇지도 않게 쓰는 사람에게 저항하는 것은 쉽지 않다. 지켜보는 사람의 입장에서는 무기력하게 보일지라도 말이다. 물리적 폭력도 감당하기 힘들지만 권력으로 짓누르는 폭력 역시 무섭다. 이명박 정부 시절, 집회에 나간 적이 있는데 그때 버스로 차벽이 만들어지자 그 위압감이 너무 무서웠다. 나는 동생의 손을 꼭 잡고 도망치듯 한걸음 물러섰더랬다.


내가 겪은 소소한 압박도 그렇게 무거운데, 가정폭력이나 위력에 의한 폭력을 당한 이들은 얼마나 무섭고 끔찍했을까. 그런 일들이 일어나지 않게 하려면 어떻게 해야 할까. 


하임과 연향 사람들은 그런 무영을 기억했다. 무영의 딸인 민아를 돌보고 무영의 아픔을 이해하려고 했다. 하임의 할아버지가 자신의 신도들을 위해 기억이 돌아온 척 하는 모습부터 하임과 주완이 민아와 함께 놀이공원에서 놀이기구를 타고 즐거워하는 모습까지 보면서 행복이 잔잔하게 흐르는 것을 느꼈다. 눈물이 날 것 같지만 미소가 지어진, 그래서 거의 황홀한 순간인 모양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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희선 2025-04-01 01:58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무영이 어렸을 때는 용감했는데, 희태한테는 그러지 못했네요 희태가 나쁜데... 누군가를 잘못 만나면 거기에서 벗어나지 못하는 것 같기도 해요 집착하는 사람이 있기도 하니...


희선
 
입에 대한 앙케트
세스지 지음, 오삭 옮김 / 반타 / 2025년 2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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늘 생각하지만, <명탐정 코난>에서도 그렇고 이 책에서도 그렇고 도대체 얼마나 밉고 싫어야 죽었으면 좋겠다고 저주하거나 직접 죽이거나 하는거지? 교제살인의 일본저주판인건가. 다른 점은 저주는 엄한 피해자를 만들기도 하다가 결국 본인에게로 돌아가지만 교제살인 혹은 살인을 저지른 범죄자는 대부분 산 채로 풀려난다는 점이랄까. 이 정도면 현실이 더 무서울텐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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희선 2025-03-16 17:22   좋아요 1 | 댓글달기 | URL
명탐정 코난에서는 동기가 약할 때 있기도 하네요 거기에서 말하는 건 동기도 있지만, 어떻게 죽였는지 알아보는 것도 있군요 어떤 때는 참 복잡하게 죽이기도 합니다 그런다고 들키지 않는 건 아닐 텐데...


희선

꼬마요정 2025-03-17 22:27   좋아요 1 | URL
가끔 명탐정 코난 보다보면 터무니없는 이유로 사람을 죽이더군요. 일단 죽여야 코난이 사건을 해결할테니 말이죠. 그러나저러나 코난은 범인을 꼭 잡으니 현실에서도 그러면 좋겠습니다^^
 
우리 집에 왜 왔어?
정해연 지음 / 허블 / 2025년 2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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가족이란 무엇일까. 내 말을 잘 듣고 내 욕구를 충족시켜 주는 사람이 가족<반려, 너>일까. 아니면 누가 희생을 당하더라도 지켜야만 하는 사람이 가족<준구>일까. 남이 보기에 흠없고 자랑할만한 사람이여야 하고 이런 완벽한 상황을 침해하면 누구든 상관없이 나락으로 보낼 수 있는 무언가가 가족<살>일까.

이야기가 빈약하다는 느낌을 지울 수가 없다. 너무 좋아하는 작가인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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희선 2025-03-04 01:37   좋아요 2 | 댓글달기 | URL
꼬마요정 님 어느새 삼월입니다 삼월 즐겁게 보내시기 바랍니다 며칠 추울 듯하지만, 따듯한 봄이 오겠네요


희선

꼬마요정 2025-03-07 16:24   좋아요 2 | URL
희선 님!! 오늘만 해도 한결 날이 풀린 걸 느낍니다. 금요일인 오늘까지는 1,500미터 상공에 영하 6도선이 걸려 있다고 하더군요. 하지만 자연의 힘은 대단해요!! 다음 주엔 같은 높이에 영상 5도선이 걸린대요. 그럼 지상엔 20도까지도 오를 수 있다고 합니다. 너무 덥지도 춥지도 않은 따뜻한 봄날씨이길 바랍니다.^^

페크pek0501 2025-03-06 11:48   좋아요 2 | 댓글달기 | URL
생사고락을 함께 나누는 게 가족이라고 봐요.^^

꼬마요정 2025-03-07 16:26   좋아요 2 | URL
맞아요!! 생사고락을 나누고 정을 나누는 게 가족이겠죠. 공동체라는 게 참 어렵습니다. 끈끈해도 힘들고 떨어져도 힘들고... 적당히 느슨하게 연결된 세상이 오면 좋겠습니다. 가족의 의미를 생각해 봅니다^^
 
추리의 민족: 범인은 여기요
박희종 지음 / 텍스티(TXTY) / 2024년 11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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성실하게 살아가는 이들을 등쳐 먹는 나쁜 놈들을 우당탕탕 잡는 이야기. 같은 일을 겪어도 사람들은 다른 선택을 하고 그 결과는 정의로웠으면 좋겠다. 소소한 행복을 소중하게 생각하는 이들이 억울한 일 없이 통쾌하게 살았으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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페크pek0501 2025-03-06 11:42   좋아요 1 | 댓글달기 | URL
같은 일을 겪어도 갖는 마음자세가 사람마다 다른 건 신기한 일이죠.
저 역시 억울한 이들이 없길 바라는 마음입니다. 나쁜 놈들을 우당탕탕 잡는다니 정말 통쾌할 것 같습니다. 더 글로리, 보면서 통쾌했던 기억이...^^

꼬마요정 2025-03-07 16:28   좋아요 1 | URL
오, 더 글로리 볼 때 정말 사적복수가 올바른 건 아니지만 통쾌했던 기억이... ㅎㅎㅎ 같은 일을 겪어도 다 다르게 행동하니 악인의 과거가 그 사람의 악한 행동을 정당화할 수는 없겠죠. 다만 억울하거나 폭력적이거나 부당한 일을 겪지 않는 게 악을 행할 확률을 낮출 수는 있겠어요.
 
타오 나비클럽 소설선
김세화 지음 / 나비클럽 / 2024년 10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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혐오는 약자에게로 흐른다. 


어쩌면 우리 사회가 품고 있는 가장 큰 위험 요소가 아닐까. SNS의 발달로 남과 비교하는 일이 일상이 되어버리고, 숏폼이 넘쳐 흘러 섣부르더라도 빨리 나온 결과만을 인식하는 현실에서 부러움의 대상은 질시의 대상이 되고 이때 뻗어나온 질투의 감정은 혐오가 되어 대상을 찾고 있으니 말이다. 그 혐오는 결코 위로 올라가지 못한다. 분명하게 혐오란 감정을 쏟아부을 수 있는 곳은 보다 아래, 나보다 약한 쪽이다.


 폭우가 쏟아지던 어느 날 밤, 이슬람 사원으로 가는 골목길에서 누군가가 피습당했다. 피해자인 권윤정 교수는 이슬람 사원을 건립할 당시 교회와 주민들의 반대에 맞서 다문화교류연구원들과 자문변호사와 함께 무슬림을 변호했던 사람이었다. 비 오는 날, 망치로 사람을 내리치고 도망친 사람은 언뜻 보기에 무슬림 혐오자로 보이기도 했고, 단순한 퍽치기 범죄자로 보이기도 했다. 전자는 JBC 박우태 기자의 시선이었고, 후자는 경찰의 입장이었다. 


단순한 사건인 줄 알았는데 며칠 후 다시 비가 세차게 내리던 날 밤, 다문화교류연구원 자문변호사인 윤미라 변호사가 시체로 발견되었다. 그리고 무슬림 사원에 방화가 발생했다. 각 사건은 어떤 연관성을 가지고 있는 걸까. 


작가는 과거에 자신이 성폭력 피해자에게 기사를 위해 사건의 경위를 자세하게 물어봤던 일이 부끄럽다고 했다. 그리고 폭행당한 남자를 취재한 기억은 없다고, 대부분 폭행 사건의 가해자는 남자이기 때문이라고 했다. 그래서 현실적인 사건을 추리소설로 이야기할 때 탐정 역할은 여성 형사로 설정하고 싶어 한 작가님 덕에 오지영 형사가 탄생했다. 


상대의 감정에 깊이 공감하지 못하고 사실관계에 집중하는 성격 덕에 오지영 형사는 이 사건들을 객관적으로 볼 수 있었다. 언론에서는 종교 갈등 및 무슬림 혐오로 몰아가며 경찰의 무능력함을 비판했고, 경찰 내부에서는 사건 해결보다는 실적은 자신들이 챙기고 힘든 일은 오지영 형사에게 미루는 등 알력을 행사했다. 그 와중에도 오지영 형사는 묵묵히 사건에만 집중하는데...


사건은 계속해서 발생했다. 무슬림 사원에서 일어난 방화 사건 이후에 교회에서도 방화가 일어났고, k대학에 다니는 외국인 유학생들과 연관 있던 사람들에게도 사건이 발생했다.


이 이야기는 우리 사회에서 어떤 종류의 사람이 가장 아래쪽에 있을 수 있을까 하는 것을 보여준다. 유학생을 많이 받은 대학교와 근처에 있는 교회, 무슬림 사원, 다문화교류를 위한 비영리단체, 외국인 노동자를 채용한 회사 이 모든 곳에서 약자는 존재했다. 단 한 사람이 이 모든 곳에서 가장 아래쪽에 있었고, 모든 조건이 그 사람을 약자로 만들었다.


그리고 이 조건은 방송국에서도 여실히 드러났다. 이 사건 전체에서 강자의 위치에 있던 기자가 후에 방송국 내에서 약자로 전락하는 장면은 통쾌했지만 씁쓸하기도 했다.


작은 권력만 있어도 휘두르고 싶어하는 사람들이 있다. 그 권력을 휘두른다는 자각 자체가 없을지라도 그러하다. 자신들은 신앙심도 있고 성실하게 살아간다고 믿으면서 다른 사람들의 처지에 따라 달리 대하는 사람들이 바로 그렇다. 끝까지 자신들의 잘못은 없고 억울한 피해자라고 생각할 것만 같아 더 화가 나기도 한다. 이 사건의 가장 큰 가해자는 실제 범인 다음으로 그들이 아닐까 싶다.


권윤정 교수의 심경이나 타오 어머니의 마지막 한 마디는 생각할 거리를 던져 주었다. 두 사람은 비슷했다. 원칙을 중요시하고 남에게 신세지지 않으려고 하는 면들이 말이다. 원칙은 중요하다. 모든 일에서 원칙은 큰 틀을 유지시키고 책임에서 자유롭게 해준다. 원칙을 지켰을 때에는 두려움이 없다. 하지만 그 원칙이라는 것이 무엇일까. 개개인의 모든 사정을 봐 줄 수는 없다하더라도 어느 정도 유연하게 적용될 수 있다면 원칙이라 할 수 있을까. 하지만 인간을 위한 원칙이 도리어 인간을 속박하기만 한다면 그 원칙은 이미 그 뜻을 잃었다고 볼 수 있지 않을까.


오지영 형사의 원칙은 굳건하고 부드러웠다. 그래서 그녀는 보상은 적을지언정 능력을 인정 받았고 사건을 해결했다. 권윤정 교수의 원칙은 사람을 보지 못했고 타오 어머니의 원칙은 자존심을 세우는 정도로 보였다. 


살면서 다른 사람에게 상처를 주거나 받지 않고 살아갈 수는 없다. 하지만 우리 사회가 가진 어두운 면이 주는 상처는 보다 더 끔찍하고 이기적이었다. 돈이나 신앙심으로 상대를 꺾을 수 있다고 생각하는 그 사회적 구조가, 약자에게는 함부로 해도 용인되는 그 사회적 모순이 여실히 보였다. 그래도 우리는 이 사회에서 살아가야 한다. 우리는 상황이 바뀌면 언제든 약자가 될 수 있다. 그러기에 약자를 배려하고 내가 가진 것들에 고마워하며, 세상은 더불어 함께 살아간다는 것을 늘 생각하면 좋겠다. 부디 그런 세상이 빨리 오기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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