역제안
정재환 지음 / 에이플랫 / 2025년 11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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7가지 재미있는 이야기가 있다. 처음부터 눈을 똥그랗게 뜨고 읽었다. <그 남자 죽자 그 여자 살자>에서 죽으려는 문과 남자와 살리려는 이과 여자의 이야기는 엉뚱한 듯 진지했고, 나는 진심으로 여자를 응원했더랬다. 삶이 비탄에 가득찼을 때조차도 희망이란 게 조금이나마 비집고 자리를 차지하고 있다는 생각이 들었다. 


<2상한 2야기>는 진짜 이상했다. 평행세계가 열려 선택의 기회가 생겼다 한들, 그것이 선택일까. 본인의 의지로 선택한 듯 보이지만 사실 상황에 떠밀린 것은 아닐까. 김주연은 망한 인생을 되돌릴 기회를 잃은 것일까, 애초에 되돌릴 기회가 없었던 것일까. 영화 <슬라이딩 도어즈>가 생각났더랬다.


<도청>은 무서웠다. 사람은 참 이상한 동물이다. 언제나 '호기심'이 무슨 일이든 만들어낸다. 귀신 나오는 집이라 해도 호기심 때문에 흉가의 문을 열고, 살인마가 나온다 해도 호기심 때문에 소리나는 쪽으로 다가간다. 유재현은 군단 교환수로 군내에서 군인 오석호와 애인의 통화를 도청으로 듣게 된다. 듣기만 하면 아무 일도 안 일어났겠지만, 오석호의 애인이 마음에 든데다 오석호가 양다리를 걸치고 있다는 사실을 알게 되자 그 사실을 애인에게 알리고 만다. 한 사람의 인생에 개입할 힘이 있다는 걸 알게 된 사람은 그 힘을 휘두르지 않고는 견딜 수가 없는 가 보다. 그래서 그들은 어떻게 될 것인가.


<정당방위>는 한 남자의 범죄구성 이야기이다. 이 건실한 청년의 우발살인은 정당방위로 인정받을 수 있을까. 제목부터 스포가 풀풀 풍겨서 범인이 누구인지는 바로 알 수 있지만, 마지막 문장에서 그럴 수도 있겠다란 생각이 들었다. 우리나라는 사건에 따라 가해자에게 더 친절한 것 같아 보이는데, 부디 억울하고 가슴 아픈 피해자가 없었으면 좋겠다. 


<대행>은 열심히 사는 한 남자의 이야기이다. 그는 대행회사에 속하여 여러가지 대행일을 하고 있다. 어떤 날은 하객이었다가 어떤 날은 신부의 아버지, 어떤 날은 신랑의 아버지가 되기도 한다. 그는 자신에게 맡겨진 일을 빈틈없이 해내는 사람이었다. 생각보다 사기꾼은 많고 어떤 사람을 만나는 지가 운인 것 같다. 운이 좋다면 그를 만날 것이다.


<여기 백신이 있다!>를 제일 재미있게 읽었다. 백신에 성공하자마자 좀비가 되어버린 김 수석은 자신에게 백신을 주사한 덕에 좀비 바이러스가 뇌를 전부 점령하는 것은 막을 수 있었다. 그는 자신이 좀비라는 것도 알았고, 인간의 살점과 피에 대한 욕망을 조절할 줄도 알았다. 그는 어떻게 해서든 백신의 존재를 외부에 알리려고 했으나 난관이 많았다. 역시 빌런은 한없이 이기적이었고, 못났다. 김 수석은 과연 자신의 딸에게 백신의 존재를 알릴 수 있을까. 그리고 행복이란 과연 무엇일까. 


<역제안>은 탐정이 되고 싶었던 흥신소 직원과 돈이 필요해서 미친 듯이 일하며 의뢰인과 대상자 사이에서 줄타기를 하는 베테랑의 이야기이다. 영종과 성 실장은 재벌 딸과 그 남편의 불륜을 조사하면서 제안과 역제안을 거듭 받게 되는데, 욕심의 끝은 어디까지일까 진지하게 생각해본다.


이야기들이 짧지만 재미있어서 시간 가는 줄 모르고 읽었다. 역시 인간은 정말 요상한 생명체이면서 예측가능하기도 하지만 애틋하기도 한 존재다. 모두의 마음에 평화가 깃들기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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여름밤 해변의 무무 씨 - 그리고 소설가 조해진의 수요일 다소 시리즈 1
조해진 지음 / 다산책방 / 2025년 9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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철썩거리는 물소리를 들으며 마찰로 일어나는 하얀 거품을 바라보면 여기가 왠지 한적한 바닷가라고 상상하는 게 이상하지 않은 듯 하다. 무인 세탁소는 한적한 시간에 가면 때론 바닷가가, 때론 멋진 카페가, 때론 조용한 도서관이 되기도 한다. 그곳을 드나드는 사람들은 각자의 사연이 묻어난 빨랫감들을 세탁기에 돌리면서 하루의 고단함을 씻어내는지도 모른다.


50대의 김은희는 암이 재발하여 병원에 가야했고, 무무 씨가 키우던 오모리와 양평이를 보살펴 줄 누군가가 필요했다. 회계사무실 취업이 무산된 수연은 동준의 소개로 은희의 럭키타운 402호를 알게 되고 입주하게 된다. 은희와 수연은 각자 서로가 어떤 인물일지 상상하게 되는데, 어쩌면 서로가 원하던 삶을 사는 인물로 그린 것은 아닐까 생각했다.


상무라는 이름이 회사의 직급으로 오해받는 게 싫었던 그는 무무 씨로 불리길 바랐다. 은희는 그와 평범하지만 따뜻한 일상을 보냈고, 그에게서 삶의 위안을 얻었다. 그리고 그와 그가 돌보던 고양이들의 보금자리였던 럭키타운 402호를 인수했다.


두 사람은 서로를 모른 채 연락을 주고 받았고, 수연은 은희에게 양평이와 오모리의 사진을 찍어 보냈다. 수연은 은희의 집에서 양평이와 오모리를 돌보며 우연히 메모장과 사진을 보게 되고, 무무 씨의 이야기를 알게 된다. 책에서는 계속 세무소라고 하는데 회계사무실이라고 하는 게 더 맞을텐데 라는 생각을 했다. 수연은 세무사 시험을 준비했었고, 회계사무실을 다닌 경력이 있었다. 그 경험으로 동준과의 인연이 계속되었고, 은희와도 인연이 있던 동준은 그렇게 두 여자를 연결시켰다.


삶의 끝을 생각하는 여자와 여전히 살아갈 날이 많은 여자는 서로를 보며 삶이 무엇인지를 생각한다. 은희와 수연은 서로를 강렬하게 느꼈고 살아갈 힘을 얻었다. 두 사람의 연대는 아름다웠고 삶이 묻어있었다. 부디 그들이 갓 빨래와 건조가 끝난 뽀송뽀송한 이불처럼 포근하게 살았으면 좋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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절창
구병모 지음 / 문학동네 / 2025년 9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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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것은 두 사람이 말하는 세 사람의 사랑 이야기이다. 


말 그대로 피가 나는 상처를 통해 그 사람의 생각을 읽을 수 있는 아가씨와 이름에도 드러나듯 '오기'와 '오독'이 본질인 것만 같은 오언, 그리고 그런 그들을 읽어내야만 하는 독서 교사는 책이 끝날 때까지 서로의 사연을 풀어낸다.


어떻게 그런 능력을 가지게 됐는지는 알 수 없다. 아가씨는 수녀원이 운영하는 복지관에서 자랐고 어떻게든 무난하게 살고자 했으나 빈한한 자에게 시혜를 베푸는 행사에서 추행 사건으로 오언을 만났다. 불의한 일이 있었지만 처지가 그러하니 응당 받아야 할 사과가 해야 할 사과로 탈바꿈되어 있었다. 하지만 아가씨가 믿기 어려울 능력에 대해 말하자 오언은 믿었는지 아닌지는 알 수 없으나 아가씨가 그 불한당을 직접 만나게 하지 않았다. 그래서였을까, 아가씨는 극한의 상황에 처했을 때 오언이 줬던 명함을 꺼내들었다.


언제부터였을까. 서로를 마음에 담은 것은.


<파과>에서 조각은 자신의 온 생을 걸고 사랑했다. 한 번도 입 밖으로 꺼내보지 못한 사랑은 그저 칼이 되고 피가 되었을 뿐. 조각의 사랑은 어떤 말로 표현해도 그에게 사랑으로 닿지 못했을 것이다. 어떤 감정은 표현하는 순간 '오독'이 되어버리기도 하니까.


오언에게 감정은 그런 것일지도 몰랐다. 그래서 끊임없이 읽어달라고, 온전히 자신을 내어줄테니 부디 읽어달라고 호소했을지도. 하지만 감정에 서투르고 폭력적인 일을 스스럼없이 저지르는 사람을 사랑하는 건 스스로에게 벌을 주는 것과 같았을 것이다.


아가씨는 그래도 자신에게 더없이 잘해주는 오언에게 마음을 열고 싶었더랬다. 자신을 구속하고 자신의 능력을 끔찍한 일에 이용한다 해도, 태어나서 지금까지 이토록 물질적으로 풍요로웠던 적도 없었고 존중받는다 느꼈던 적도 없었으니까. 하지만 그 사건은 둘을 갈라놓았다. 오언의 뜻대로 하게 되면 아가씨는 스스로를 용서할 수 없었을 것이다. 로설 <메두사>가 떠올랐다. 유채는 류에게 말한다. '당신을 용서하는 게 아냐. 내가 나를 용서했어. 당신을 사랑하는 나를 용서했어.'라고. 아가씨는 끝내 스스로를 용서하지 못했다.


끝내 하고 싶은 말을 하지 못한 오언이 즐겨 인용하는 건 아이러니하게도 세익스피어였다. 오언은 어느 상황에서나 세익스피어의 대사를 즐겨 말했다. 하지만 정작 세익스피어가 그토록 아름답고 화려하게 풀어놓았던 사랑의 언어는 단 한 줄도 읊지 않았다. 오히려 독서 교사가 <자에는 자로>의 이사벨라가 빈센시오 공작이 애원하는 말에 무응답한 이야기를 하며 더 좋아하는 사람의 마음을 칼로 벨 수 있었던 방법에 대해 알려준다. 하지만 아가씨가 이미 온 힘을 다해 오언을 읽지 않겠다, 그 마음에 부응해주지 않겠다 외친 것만으로도 둘 모두에게 이미 크나큰 상처가 아니었을까.


독서 교사와 아가씨가 들려주는 이야기를 나는 어디까지 읽어낸 것일까. 독서 교사는 '본질적인 오독을 전제하지 않고는 생각하기 어렵다'(15쪽)고 했다. 나는 내 마음대로 그들을 '로맨스'로 읽었다. 누군가는 범죄 스릴러로 읽을 것이고 또 다른 누군가는 판타지로 읽을 것이다. 결국 사람은 자신이 가진 사고 범위 내에서 자신이 읽고 싶은 방향으로 이야기를 읽어낸다. 내가 아가씨처럼 그 사람의 상처에 손을 비집고 넣어 읽을 수 있더라도 그건 그 상황에서만 유효한 진실일 것이다. 사람의 생각은 찰나에 지구를 한 바퀴 돌고 자기합리화는 언제든 발동될 수 있으니까. 그러니 어쩌면 오언은 자신의 이름처럼 잘못 알았던 건지도 모른다. 사람은 서로의 눈을 보고 말을 해야 한다. 그 말이 상대에게 닿지 못한다 하더라도. 설사 무응답으로 돌아온다 하더라도. 


문득 오언은 두려웠던 건 아니었을까 싶기도 하다. 말을 뱉음으로 약점이 노출되어 소중한 이를 잃을지도 모르니까. 자라면서 겪었을 일들이 삶을 휘감는 건 아가씨에게만 해당하는 건 아니니까. 이것도 나의 오독일까.


이렇게 오독할 거라면 왜 책을 읽는 것일까? 책을 읽으면 사람이 더 선해진다거나 고상해진다는 건 환상이다. 다만 우리는 독서 교사가 한 말처럼 '원인 따위 결국 알아내지 못하더라도 자기 자신만큼은 이상해지지 않겠다는 마음에 이르는 것이 읽는 사람의 일이야'(302쪽) 라는 말에 고개를 끄덕일지도 모른다.  


시간이 지나고 어느 날, 내가 다시 이 책을 펼치면 그 때 나는 그들의 무엇을 읽게 될까. 그 때는 사랑이 아닌 다른 것을 보게 될까. 설사 여전히 사랑을 보게 된다하더라도 다른 것을 볼 수 있다는 기대감은 내가 책을 읽는 훌륭한 이유가 될 것 같다.


덧붙여 세 사람의 사랑 이야기이지만 세 번째 사람의 사랑을 말 할 수 없어 몹시 안타깝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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서니데이 2026-03-31 00:01   좋아요 2 | 댓글달기 | URL
같은 책도 읽는 시간에 따라 조금씩 느낌이 다를 때가 있는 것 같아요. 의미를 부여하는 것도 좋아하는 부분도요.
꼬마요정님 편안한 하루 되세요.^^

꼬마요정 2026-03-31 00:34   좋아요 1 | URL
어릴 때 정말 감명 깊게 읽은 책도 어른이 되어 보면 다르고, 그냥 읽고 넘긴 책이 어느 날 너무 좋게 느껴질 때가 있는 걸 보면 정말 신기합니다. 그 또한 독서의 묘미인 듯 해요.^^

희선 2026-03-31 05:02   좋아요 1 | 댓글달기 | URL
서로 말을 해도 잘못 알아듣기도 하는군요 마음을 읽는 건 정말 그 사람 마음을 온전히 읽는 걸지... 오해한다 해도 말을 하는 게 더 나을 것 같기도 하네요 말이 잘못 나올 때도 있겠지만... 사람은 다 제대로 못 읽을지도 모르겠습니다 자신뿐 아니라 다른 사람을 알기 어렵겠지요 책을 보고 자신만은 이상해지지 않으려고 하면 좋을 듯합니다 그래야 할 텐데...


희선

꼬마요정 2026-03-31 11:10   좋아요 0 | URL
책을 읽고 이상해지지 않으려고 한다는 게 와닿았어요. 솔직히 책을 읽는 행위에 대해 우리 사회는 지나친 환상을 가지고 있는 듯 합니다.

서로 말을 하면 할수록 오해가 쌓이는 경우가 있잖아요. 특히나 연인끼리 그러면 정말 난감할 것 같습니다. 어쩌면 자기 자신도 자신이 무슨 말을 하는지 모를지도요. 책이든 사람이든 참 어렵습니다.

2026-04-10 23:30   URL
비밀 댓글입니다.

2026-04-12 13:06   URL
비밀 댓글입니다.

2026-04-12 13:18   URL
비밀 댓글입니다.

2026-04-15 22:47   URL
비밀 댓글입니다.

2026-04-16 11:04   URL
비밀 댓글입니다.

2026-04-16 22:15   URL
비밀 댓글입니다.
 
리듬 난바다
김멜라 지음 / 문학동네 / 2025년 11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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누군가는 현실 속에 허구를 끌어들이지 않으면 앞으로 나아가기 힘들다. 누군가는 자신의 사랑을 확인하기 위해 욕받이를 자처한다. 어떤 사랑은 뭇사람들에게 지탄 받는다. 어떤 범죄들 사이에 숨겨둬도 귀신 같이 찾아내 그것만을 물어뜯는다. 이 책은 열심히 살았던 사람들의 치열한 사랑이야기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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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무튼, 디지몬 - 길고도 매우 짧은 여름방학이 시작되었다 아무튼 시리즈 67
천선란 지음 / 위고 / 2024년 6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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예전에 다락방 님이 <아무튼, 피트니스>의 한 구절을 적어주신 뒤로 아무튼 시리즈에 관심을 가지게 되었다. 어떤 아무튼들이 있을까 살펴보던 중 제일 먼저 읽은 건 <아무튼, 야구>였고, 그 다음이 <아무튼, 피트니스>였다. 그리고 세 번째가 바로 <아무튼, 디지몬>이다.


디지몬 어드벤처. 아는 사람은 알고 모르는 사람은 모르는 애니메이션이다. 나는 만화 영화를 좋아해서 어릴 때부터 본방 사수를 하려고 무척이나 노력하는 사람이었는데, 진짜 중학교 때는 '웨딩피치' 보려고 학교 끝나자 마자 부리나케 집으로 왔던 게 기억 난다. 물론 만화 영화 본다고 인생 다 망한 거라는 이야기를 듣긴 했지만.


<웨딩 피치>, <세일러 문>, <태양의 기사 피코>, <마법기사 슬레이어스>, <포켓몬스터> 등등 수많은 만화 영화들이 있었다. 그리고 <디지몬 어드벤처> 역시 그 중 하나였다. 갑자기 디지털 세계로 소환된 아이들이 자신의 디지몬을 만나고 성장하고 헤어지기까지 눈물 없이는 볼 수 없는 드라마를 만들었다. 


밀레니엄 버그를 극복한 인류가 아직 디지털 세상을 빛나는 청사진으로 볼 때 이런 이야기가 나왔다는 게 놀라웠다. 디지바이스를 통해 디지털 세상으로 넘어가고 디지털 세상에 0과 1로 존재하는 어떤 프로그램을 백신으로 진화시키고, 바이러스에 감염된 한 세계를 정상화한다는 게 말이다. 빛나기만 한 미래란 존재하지 않음을 본능적으로 알고 있는 인간이 느낀 불안을 이렇게 표현했는데, 이는 자유를 누리던 홍콩이 반환되면서 느낀 존재론적 불안을 떠올리게 했다. 다만 그들에겐 희망보다는 절망의 틈새에서 배어져 나오는 절박함이 주로 느껴졌다면, 여기서는 결국은 이겨낼 거란 희망을 읽을 수 있었다. 


처음 <디지몬 어드벤처>가 나왔을 때 <포켓몬스터> 따라 한 거 아니냐는 말도 있었더랬다. 하지만 이야기는 완전히 달랐는데, 가장 좋았던 점은 디지몬이 진화했다가 다시 진화 전으로 돌아온다는 것이었다. 피카츄가 이야기가 끝나가는 데도 라이츄로 진화하지 못했던 건 피카츄가 계속 진화를 거부했기 때문이다. 아마도 마스코트가 되어버린 피카츄를 진화시키기엔 부담이 컸을 테다. 그렇게 피카츄는 지우와 함께 모험을 하면서 성장했다. 친구들을 만나고 어려운 일을 헤쳐 나가며 이별과 고통도 겪고 만남과 기쁨을 겪었다. 


디지몬 역시 마찬가지였다. 아이들은(그리고 나는) 디지몬과 함께 디지털 세계를 구하며 수많은 좌절과 이별을 겪으면서도 희망과 사랑을 포기하지 않았다. 심지어 <포켓몬스터>의 악당 로켓단보다 더 무서운 검은색 톱니바퀴에 오염된 데블몬이나 아포카리몬을 상대하면서 많은 상실을 겪기도 했다. 그러면서 아이들은 성장했고, 아이러니하게도 더 이상 디지털 세계에 있을 수 없게 되었다.


이 책은 천선란 작가의 성장기이기도 하다. 어린 시절 만난 <디지몬 어드벤처> 덕분에 다른 세상을 꿈꾸며 현실의 시련을 감당했더랬다. 뇌출혈로 쓰러진 엄마를 돌보는 일은 갓 스물된 작가의 세상을 완전히 뒤집어 놓았다. 아픈 가족을 돌보는 사람들은 자신이 하고 싶은 일을 꿈 꿀 때 죄책감이 정말 심해진다. 그리고 감당할 수 없는 병원비는 사람을 지치게 한다. 아빠와 언니가 있음에도 작가는 그런 죄책감과 불안에서 빠져나오지 못했다. 하지만 그럴 때 디지몬 세상은 작가에게 구원과도 같았다. 자신의 어린 디지몬이 된 엄마를 돌보는 작가는 그렇게 엄마와 세상을 탐험하며 성장한다.


디지몬 친구들! 렛츠 고 렛츠 고! 세상을 구하자! 렛츠 고 렛츠 고! 승리는 언제나 우리의 것!!! 13년이나 지난 만화 영화의 주제곡이 아직도 기억나는 건 이 디지털 세계로 가는 문이 언제고 다시 열릴 것이란 기대가 있기 때문일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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단발머리 2026-02-24 16:57   좋아요 1 | 댓글달기 | URL
아무튼 시리즈는 저도 두어개 읽어봤는데, <아무튼, 디지몬>은 오늘 알게 됐네요. 디지몬으로 현실의 시련을 감당해냈다는 작가 이야기 무척 마음에 와닿네요. 돌보는 일은 누구에게나 쉽지 않지만, 스무 살의 청년이 엄마를 돌보는 일이라는 건 말이지요 ㅠㅠㅠㅠㅠ 저도 읽어봐야겠어요.

꼬마요정 2026-02-26 10:20   좋아요 0 | URL
디지몬이라기에 가볍게 생각했다가 의외로 무거운 이야기에 좀 놀랐습니다. 하지만 디지몬이 작가에게 큰 의지가 되었다하니 다행이라는 생각도 들었구요. 돌보는 일이 정말 어렵지만 그래도 작가가 잘 해냈고 해 나가고 있다는 데 박수를 치고 싶습니다.^^

책읽는나무 2026-02-25 09:44   좋아요 1 | 댓글달기 | URL
저도 옛날 <아무튼 피트니스>를 시작으로 아무튼 시리즈 이게 뭐야?! 그러면서 막 찾아 읽었었죠. 아무튼 시리즈는 다 재미난 거 같아요. 작가들의 삶의 에세이자 본인들의 덕후 인생기를 읽는 듯한 느낌이라 감동스럽기도 하고, 놀랍기도 했어요.(아니, 이런 것에 이렇게도 진심이라고?…그러면서 괜스레 친근해지기도 했죠.)
그나저나 <아무튼 디지몬> 제 딸이 도서관에서 빌려왔거든요. <아무튼 메모>랑 두 권 가져왔길래 메모는 예전에 읽었어서 디지몬 천선란 작가가 썼길래 나도 읽어야지! 눈독 들이고 있었는데 요정 님 리뷰 보니까 반갑네요.^^
저는 지금 <아무튼 인터뷰>랑 <아무튼 데모>를 자기 전 오디오북으로 몇 주째 듣고 있네요. 틀어 놓고 듣다 보면 계속 자고 있어서…ㅜ.ㅜ
근데 은유 작가랑 정보라 작가의 아무튼은 책으로 찾아 읽는 게 답인 게 아닌가? 그런 생각이 들 정도로 내용이 좋은 것 같아요.

꼬마요정 2026-02-26 10:44   좋아요 0 | URL
저도 오디오 북만 틀면 어느 순간 자고 있더라구요 ㅋㅋㅋㅋㅋ <아무튼, 데모>는 정보라 작가 이야기라 꼭 읽어보려고요. <아무튼, 인터뷰>도 좋다구요? 그 책도 찾아 읽어야겠어요. 책들이 얇아도 만만치 않네요. ㅎㅎㅎ

‘디지몬어드벤처‘ 재미있어요. 한 편에 이야기가 끝나는 것도 좋고 귀여운 캐릭터들이 많이 나오는 것도 좋아요. 아구몬이나 파닥몬, 피요몬 귀여워요 ㅎㅎㅎ 그런데 어린애들이 봐도 되나 할 정도로 이별 장면도 있고 잔인하게 느껴질만한 장면들도 있죠. 요즘 애들은 많이 성숙해서 타격이 없을라나요...

만화 시작할 때 나오는 노래가 참 신난답니다. ‘디지몬 친구들 렛츠코‘라고 신나요 ㅎㅎㅎ 그리고 ‘포켓몬스터‘ 노래인 ‘우리는 모두 친구‘도 좋거든요. 재밌는 만화가 참 많군요 ㅎㅎㅎ