서울에 한 양반이 살았는데 조상이 물려준 재산으로 지낼만 했다. 다만, 아들과 딸을 연년생으로 많이 낳아서 기쁨 보다는 걱정이 생기기 시작했다. 너무 많은 식구에 생활비 감당이 갈수록 어려워만 갔기 대문이다. 그래서 일정한 직업이 없이 닥치는대로 일을 맡아 했다. 그러던 어느날, 이웃 부자집에서 보행을 좀 서달라는 부탁이 왔다. (지금으로 말하면 '특사편지' 전달 역할 이었다. 한 보행만 잘하면 상당한 보수를 받는다) 그는 부자집 편지를 가지고 부산까지 무사히 가서 전해주고 다시 서울로 되돌아 오게 되었다. 노자를 이끼기 위하여 남의 사랑에서 자고, 얻어 먹으면서 올라오는 길이었다. 그러던 어느날, 날이 저물어서 자고 갈만한 집을 물색하던 중에 덩그렇게 잘 지은 부자집을 발견했다.
'부자집이니 폐도 덜 되겠지....' 하는 생각으로 주인을 찾았다. 주인은 오십세 전후의 풍채 좋은 선비였다. 찾아 온 뜻을 전하자 기찮아 하는 기색도 없이 맞아주었다. 더구나, 저녁도 주인과 겸상을 해서 잘 대접 받았다. 상을 물린뒤에 무료하기도 하여 이야기를 서로 주고 받는데 여기저기 돌아다니며 보고 들은 이야기며, 가정의 살림에 이르기까지 이야기는 계속 되었다.그러다가 자손 이야기로 화제가 바뀌었다.
"그래 손님은 몇 남매를 두셨소?"
주인의 물음에 객은 연년생으로 남녀간 그 수를 가끔 잊을 정도라고 하자
"그런 수도 있구려!"
하며 이야기는 밤이 깊도록 계속되었고 주인은 밖엘 한번 나갔다가 들어왔다. 그런데 방문이 열리면서 뜻밖에 주안상이 나오는게 아닌가?
"자, 변변치 않지만 한 잔 드시면서 이야기 합시다."
술잔이 오고가고 서로 권하면서 양껏 마셨다. 객으로서는 과분한 대접을 받고는 황송해 했다. 그런데 주인은 술잔을 거듭하면서 다소 침울해 지면서 자리에서 일어나 객의 옆에 앉은 뒤에 손을 덮석 잡으면서
"나 손님에게 부탁이 하나 있소."
그러고 보니 주인의 눈에는 눈물조차 아른 거렸다.
"아니? 갑자기 왜 이러십니까?"
"손님 이 늙은이를 위하여 수고하나 해주셔야 겠소...."
"?"
"날이 밝으면 자연히 알터 이지만 내 이 사랑 누마루에 올라서서 보면 눈이 미치는 곳까지는 다 내 소유외다. 허나 한가지, 남녀간에 생산을 못해봤소. 소실도 차례로 얻어서 셋이나 되오만 뜻을 이루지 못하고, 내가 병신임에는 틀림없는데... 내 이만큼 잘살으니 다른것은 부러운게 없으나 그만 그 자식이 없는데는 그냥 눈이 뒤집히는 구려. 그래서 지금 심정으로는 남의 씨라도 받아서 내 자식을 두어 봤으면...."
".........."
"노형! 노형은 아들 딸을 그리도 많이 두셨다니 날 위해서 좋은일 좀 해주구려"
"원 이게 무슨 망령의 말씀을...."
손님이 손을 설레설레 내저으니까
"하하, 공연한 사양을... 본부인을 어째달라는 것이 아니고, 작은 것들은 본시 천생들이라 좀 그래도 되겠고, 또 나하고 노형하고만 알면 되는 일이 아니오? 노형 연배에 집 떠난지도 여러날 되니 잘 되었소. 날 위해서 꼭 부탁합시다."
참으로 기이한 부탁이다. 주인이 몹씨 측은하게 보이기까지 했다. 객은 그 분위기가 하도 진지해서 얼결에 승낙을 하고 말았다. 이튿날 깨어보니 자기가 입고 있던 헌옷은 치워졌고 새옷 일습이 놓여 있었다. 목욕하고, 새옷 입고, 주객이 마주앉아 아침상을 받았다. 주인따라 대문을 나서보니 조그만 기와집이 세채 나란히 있는데 그 첫째집으로 인도하는 것이다.
여자가 마루아래 내려서며 반가히 주인영감을 맞아 들인다. 낯선 손이 있어서 더 이상의 거래는 없었고 주객은 사랑에 들고 여자는 이내 술상을 차려 내왔고 주객이 많이 먹은 뒤에 주인은 어디론가 나가서 영영돌아오지 않는다. 손은 혼자 있기가 무료해서 안절부절하는데 조금전 들어올때 본 이집 젊은 주인 여자가 낯을 붉히면서 들어오지 않는가.... 그 이튿날 이다. 조반을 먹고 앉아 있으니 주인영감이 들어왔다.
"참 수고했소. 그럼 다음 집으로 갑시다"
다음 날은 또 다음 집으로... 이리하여 세 집을 모두 다녔다. 이에 서울 손님이 떠나려 하자 주인은 동구밖까지 전송을 나오면서 말고삐를 쥐어주었다. 말 두 필에는 부담짝을 실었는데, 속에는 무엇이 들어있는지 알 수 없었다.
서울 손님은 개선장군 모양 말 두필을 뒤에 세우고 충청도 어느 아늑한 마을을 떠나 서울로 향하였다. 집에 도착하여 우선 부담짝부터 열어보니 엄청난 귀금속이 있었다. 급하고 아쉬운 것이 너무 많던 차에 요긴히 쓰고, 여러 자식들 성취시켜 그야말로 팔자 좋게 잘 살았다.
그런지 세월은 흘러 20여년, 그의 머리는 반백발이 되었고 증손자까지 보아서 자식들이 헤일 수 없이 많이 불어나 이제는 대가족이 아니라 한 동네를 이루고도 남음이 있었다. 그러던 어느날, 좋은 옷을 입고 말을 탄 세사람이 왔다는 것이다.
"이 댁 주인어른 이십니까?"
"네, 그렇습니다만 뉘들이신지..."
"들어가서 뵙고 말씀 드리겠습니다."
"이거 누추해서...."
"원 천만의 말씀을..."
셋은 방에 들어서자 날아갈 듯이 절을 공손히 하고
"아버지! 이제 찾아 뵙게 됨을 용서 하십시요"
"?"
"실은 저희들이 안 것은 꼭 3년전 입니다. 아버지께서 그러니까 저희들을 길러주신 아버지께서 돌아가시던 날 저희 셋을 불러 앉히시고 '난 너희를 키우면서 이제껏 나날이 재미를 봤으니 그것만으로도 내 분복에 과한 일이다. 내가 죽어 3년상을 치르고 탈상하거든 그 때 너희들은 그 어른을 찾아라'라고 유언하셨습니다."
"오 그랬구나. 그 뜻은 잘 알겠다만 그 일은 영원한 비밀로 하기로 굳게 약조된 일인데, 이제 세삼스러히.... 그리고 내가 사는 형편이 아들, 손자, 증손자 모두 너무 많은데 또 셋이나 더 합친다..... 이거 큰일 인걸..."
"원, 걱정도 많으십니다. 길러주신 아버지께서는 남겨주신 재산이 고스란히 있고 어머니 세분께서도 계시므로 낙향하셔서 사시면 됩니다."
마침내 권유에 못이기고 낙향을 결심했다. 이튿날, 서울 곧곧에서 가마와 말을 구해서 타고, 대가족이 일로 옥천으로 향했다. 자장 십리를 뻗는 대행렬은 유서 깊은 옥천땅을 찾아와 정착했고, 서울 선비는 말년이 마냥 행복하기만 해서 태평하게 여생을 지냈다 한다. 그 뒤로 이 마을을 "삼형제 골"이라고 하다가 이제는 "삼청(현재三靑里)골" 이라 불리워져 오고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