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쾌도난마 한국경제 - 장하준.정승일의 격정대화
장하준 외 지음, 이종태 엮음 / 부키 / 2005년 7월
평점 :
제목처럼 우리 경제가 잘 나간다면 얼마나 좋을까... 하지만 과연 경제가 전부일까... 무엇이 우선일까.. 공존의 해법은 없는걸까...
곧 대선이다. 유력한 대선 후보 둘.. 상당히 마음에 안 들지만, 특히 그 중 한 명.. 현재 상당히 높은 지지도를 자랑하고 있다. 왜냐.. 경제를 살릴 수 있지 않을까..란 희망을 주고 있기 때문이다. 물론 나야 정치와 경제는 확실히 다르다고 생각하기에 그 후보의 생각에 동의할 수 없지만. 5년 전 대선 분위기에 비해 볼 때 대한민국에서 가장 중요한 가치는 '먹고 살기'에 있는 게 틀림없다. 겨우 10년도 안 되는 기간 정도 '민주'를 부르짖었던가. 바닥까지 떨어진 경제성장률과 취업대란, 고용불안정... 이상만으로 '민주'를 외치던, 그리하여 제대로 된 해답을 갖지 못한 채 신자유주의 경제정책을 수용한 결과, 이상은 사라졌다. 현실과 이상을 접목시키지 못한 민주세력의 한계라고 해야 할까.
어떤 말로 미화하고, 어떤 업적으로 칭송한다 해도 독재로 인한 인권침해, 인권유린, 언론탄압 등을 가릴 수는 없다. 우리 사회는 계속 싸웠다. 박정희 군사정권의 옳고 그름에 대해.
이 책은 나에게 잊고 있던 하나를 가르쳐줬다. 박정희 군사정권을 떠받드는 부류를 이해하지 못하고 있던 나에게 그 이유를 알려줬다. 그건 바로 사실과 가치의 차이였다. 얼마나 중요한 사실을 잊고 나만의 주장에 열중했던가.
박정희 군사정권이 경제성장을 주도했다는 사실은 없어지지 않을, 무엇으로도 없앨 수 없는 사실이다. 나는 그 사실을 외면한 채 가치의 문제에만 집중했다. 그러나 사실을 정확히 알고 가치판단을 해야 한다는 기본을 잊었던 나의 주장은 빈약했다. 하지만, 이 책을 읽고 그 사실을 깨달은 후 나는 한동안 고민을 했고... 이제 어느정도 결론을 얻었다.
이 책을 읽은 건 재작년.. 그리고 1년 반만에 리뷰를 쓴다.
위에서 언급한 말들... 불과 40여년 정도의 역사이다. 1961년 쿠데타를 일으킨 박정희는(전 대통령이라는 칭호를 쓰고 싶지 않다. 왜냐하면 그는 헌법이 정한 바를 명백하게 거스른 정통성 없는 유혈쿠데타를 일으켜 정권을 잡았으니까) 자신의 정통성을 반공과 경제에서 찾고자 했다. 우리 역사의 흐름을 볼 때 그의 쿠데타는 자업자득인 셈이지만. 여기서 그의 정통성을 다룰 건 아니고.
우리는 그 동안 소위 선진국이라 부르는 나라들, 특히 미국이 주장하는 대로 완전한 자유무역, 시장신봉, 자본주의사회가 옳다고 교육받았다. 그러나 박정희 정권 시절의 경제성장은 그 이론과 많이 다르다고 느껴지지 않는가. 독재 하에서의 경제성장이 시장개방보다 더 효율적이라는 사실이 이상하다고 생각되지 않는가 말이다. 여기서 우리는 이미 성장할 대로 성장하여 시장이 넓어지기를 바라는 선진국의 야욕을 읽을 수 있다. 20세기 초엽까지 자행되던 식민지 건설이 이제는 자유무역, 시장개방이라는 탈을 쓰고 선한 척, 옳은 척 한다는 것을 알 수 있다. 내가 이 책을 읽고 박정희 정권 당시 경제성장에 대해 알게 된 후 새롭게 깨달은 사실이다. 신자유주의의 가면도, 독재 정권에 대한 그릇된 비판도(여기서 그릇된 비판이란 건.. 무조건 나쁘다고 몰아붙였던 나의 어리석음을 가리킨다.) 알 수 있었다.
군사독재 시절 경제성장이 괄목할 만큼, 세계에서 놀랄 정도로 빨랐다는 사실은 확실히 박정희가 독재자였기 때문일 것이다. 독재정권이 있는 나라라면 다 이룰 수 있는 게 아니라는 것은 이 책에 확실히 잘 나타나 있다. 그 경제성장의 원동력이 베트남에서 흘린 군인들의 피값이니, 일본의 성노예로 고통받던 우리네 할머니들의 한이니, 식민시절 한맺힌 사람들의 절규니 이런 가치 문제는 살짝 덮자. 그냥 사실 그대로를 본다면 경제성장은 박정희였기에 가능하다는 결론이 나온다.
그러나!!!
사실을 알고 난 뒤 난 더더욱 그러나! 그는 독재자이고, 수많은 사람들을 학살하고, 하고 싶은 말을 못하게 하고, 많은 학생들이 자유를 부르짖으며 타오르게 하고, 수많은 노동자들을 울린 비합법적 정권의 지도자라는 생각을 굳혔다. 장하준 교수가 가르쳐 준 건 그 시절의 경제상황과 박정희가 사용한 경제정책의 효율성이었고, 그걸 바탕으로 난 박정희를 비난한다. 조선시대 세조가 왕권을 굳건히 하고 나라의 기틀을 다졌다 해도 그 정통성 문제가 흠으로 남듯이, 박정희 역시 경제성장을 주도했다고는 하나 그 사실 하나로 그의 독재가 미화되어서는 안 된다. 게다가 그 시절 한창 시민의식이 성장하던 때라 쿠데타가 없었다면 우리의 역사는 어떻게 변했을지 아무도 모를 일이니까.
경제를 공부하는 입장에서 장하준 교수의 말이 와 닿았다. 현재 주류 경제학에서 도외시하고 있는 부분들을 잘 지적해 주었고, 다른 저서들을 보았을 때 이 책을 집필한 건 필연적이었을 거라는 생각이 들었다. 그의 이론을 뒷받침해 줄 중요한 근거가 될 테니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