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붉은 눈의 노예 2
정연주 지음 / 파란(파란미디어) / 2005년 2월
평점 :
품절
인내심을 가지고 읽은 책이었다. 지나치게 오만하고 억지스러운 남주도 싫지만, 그런 성격의 여주도 싫다. 너무 순종적이고 인내심 많은 여주도 싫지만, 너무 순종적이어서 뭐든 다 이해할 것만 같은 모습의 남주도 싫다. 모두가 성격장애자인 것만 같다.
계급이 뚜렷하고 서열이 중요한, 한 사람의 황제가 다스리는 나라 홍화국. 그곳에서 붉은 눈을 한 사람들은 짐승보다 못한 존재였다. 그들은 각기 한 가지씩 검은 눈을 한 사람보다 월등한 능력을 타고 나는데, 그 뛰어남이 다수인 검은 눈의 질투와 두려움을 자극하였고, 급기야는 먼 옛날 미친 황제가 딸을 범하여 붉은 눈이 태어났다는 전설마저 생길만큼 붉은 눈을 멸시하고 피했다. 붉은 눈을 한 휘 역시 말과 의사소통이 된다는 능력을 타고 났으나, 버림받은 처지였다. 그런 휘를 독고연은 누구보다도 사랑했다. 너무나 사랑하여 그를 지키기 위해 그에게 매질을 가할만큼, 그를 살리기 위해 죽기보다 싫어하는 남자와 혼인을 할 만큼. 그런 그녀의 마음을 아는지 모르는지, 휘는 자신만의 방식으로 연을 사랑한다. 연이 자신을 싫어할거라고 굳게 믿는 그는 그래도 어릴 적 자신에게 보여준 그 미소와 그 눈물 때문에 가슴에 품은 그녀를 버리지 못한다. 그렇게 서로가 애타는 감정으로 바라만 보던 차, 유력한 차기 황제라는 삼황자 독고영성이 나타나자 그들의 조그만 안식은 깨어졌다. 둘은 결코 많은 것을 바라지는 않았다. 그저 서로 바라만 보는 것. 그게 다였건만, 영성은 기어코 휘를 죽이고자 칼을 빼어든다. 연에게, 자신보다 높은 지위에 있는, 보다 많은 권력을 가진 영성에게서 휘를 지킬 방법은 단 하나였다. 영성과의 혼인. 연은 영성과의 혼인을 조건으로 휘를 살릴 것을 요구했지만, 영성은 그 약조를 너무나도 간단하게 깨어버린다. 자기만 아픈 줄 알고, 모든 것을 가졌음에도 미처 가지지 못한 하나 때문에 무수히 많은 피를 본 영성에게, 삶의 목적이었던 휘를 죽이려고 갖은 애를 쓰는 그에게 복수를 다짐하는 연. 황토빛 누하강에 가라앉아버린 휘는 말이 없었다.
후반부에 약간의 반전이 준비되어 있다. 약간은 억지스러워 보이는 연의 태도와 유약하게만 보이는 휘의 태도에 싫증이 나 있던 나는 좀 놀랐다. 그 반전 때문에 연의 태도를 조금은 이해할 수 있었다. 게다가 개연성까지 있고, 멋진 복수극이었으니 아주 마음에 들었다. 다만 지나치게 모든 것이 해피엔딩으로 흘러가는 건 마음에 들지 않았다. 모두가 두려워하며 회피하던 붉은 눈이 너무나도 당당하고 쉽게 자리를 잡아가는 것이나, 아리 홍화녀와 반황과의 미적지근한 관계는 좀 답답했다. 그래도 뭐 괜찮게 읽은 로설이다. 뒤에 수록된 휘의 출생 관련 이야기도 재미있게 읽을 수 있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