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구덩이 ㅣ 민음사 세계문학전집 153
안드레이 플라토노프 지음, 정보라 옮김 / 민음사 / 2007년 8월
평점 :
모든 프롤레타리아의 멋진 집단 숙소이자 사회주의가 나아가고자 했던 이상향의 기초인 ’구덩이‘. 구덩이는 여러 인간 군상들의 노동과 헌신으로 훌륭하게 완성되는 줄 알았으나 ‘집단화 정책’에 휩쓸려 ‘노동’이 아닌 ‘약탈’과 ‘폭력’으로 유토피아를 건설하려 한 이들에 의해 무덤이 되고 만다. 유토피아란 이 세상에 없음이니.
남은 시간 동안 보셰프와 다른 일꾼들은 다시 일하러 갔다. 해는 아직도 높이 떠 있었고, 새들은 떠들썩하지 않게, 그저 공간 속에서 먹이를 찾으며 밝은 공기 속에서 애처롭게 노래했다. 몸을 굽히고 구덩이를 파는 남자들 위로 제비들이 낮게 화살처럼 지나갔다. 그들의 날개는 피로에 지쳐 조용했으며, 궁핍으로 인한 땀이 솜털과 깃털 아래를 적시고 있었다. 그들은 동이 틀 무렵부터 자신을 괴롭히기를 쉬지 않고 처자식을 먹이기 위해 날아다니고 있었다. 한번은 보셰프가 날아다니다 갑자기 죽어 땅에 떨어진 새를 집어 올렸다. 새는 땀으로 푹 젖어 있었다. 보셰프가 그 몸을 보기 위해 깃털을 뽑자그의 손안에는 노동하느라 기진맥진하여 죽은 비참하고 빈약한 생물이 나타났다. 이제 보셰프는 몸을 아끼지 않고 단단하게 엉겨붙은 흙을 부수었다. 이 자리에 건물이 들어설 것이고, 그 안에서 사람들은 불행으로부터 보호받으며 살 것이고, 창가에 서서 밖에서 사는 새들에게 빵 부스러기를 던져 줄 것이었다. - P38
"프롤레타리아는 노동에 대한 열정을 위해 삽니다. 보셰프동무! 당신은 이런 성향을 익힐 때가 됐소. 조합원 모두의 육체는 이 표어를 위해 불타야 하오!" - P80
"그런데 댁은 누구시오?" 존경심에 찬 얼굴을 그러모아 주의 깊은 표정을 만들며 노인이 물었다. "무슨 사기꾼이오, 아니면 그냥 부르주아 권력자요?" "전 프롤레타리아 출신입니다." 치클란이 내키지 않게 대답했다. "아하, 그럼 댁이 현재의 차르구먼. 그렇다면 여기서 기다리지" - P82
그러나 나스탸는 보셰프를 쳐다보기는 했지만 전혀 즐거워하지 않았고, 보셰프는 소녀의 벌린 채 소리 내지 않는 입과 무관심하고 지친 몸을 보고 소녀를 살짝 건드렸다. 보셰프는 조용해진 아이 앞에 당혹해하며 서 있었다. 그는 이미 아무것도 모르게 되어 버렸다. 사회주의가 먼저 아이의 감정과, 확신에 찬 인상(印象) 속에 있지않다면 앞으로 대체 세상 어디에 있을 것이란 말인가? 진리를기쁨과 활동으로 바꾸어 주는 조그맣고 진실한 인간이 없다면 삶의 의미와 보편적 기원의 진리가 그에게 무슨 소용이겠는가? - P21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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