혜잔의 향낭
한수영 지음 / 큰나무 / 2004년 12월
평점 :
절판


아직도 생생히 기억나는 옛 이야기가 하나 있다. 붉은 실에 묶여 한 여인만을 기다려야 하는 남자. 그 운명에 거부하기 위해 자신의 반려를 해치려 했지만, 결국 그는 운명에 순종하고 말았다는 이야기. 혜잔의 향낭에서 가장 중요한 모티브는 바로 이 붉은 실이다. 공통점이라고는 없는 두 사람을 이어주는 강력한 인연의 고리. 한국 전주에서 혜잔은 공방을 운영하며 수제 인형을 판매한다. 신화나 전설, 민담 등에 등장하는 친근한 인물들을 인형으로 만들어 전시회나 대회에 출품하여 외국에 나름대로 알려져 매니아를 가지고 있는 대단한 여자. 그런 그녀가 20대 후반의 나이에 얼토당토하지 않게 외국의 가수 라칸에게 빠져든다. 십대 때나 느낄 만한 연예인에 대한 열광을 뒤늦게 경험하게 된 혜잔은 그에 대한 사랑이 너무나 강열하여 자신의 주위를 맴돌며 자신만을 바라보는 남준을 거부하고 인형을 고치러 온 라칸을 따라 영국으로 건너가 버린다.

어쩌면 너무나 비현실적이기도 하지만, 달리 생각해보면 있음직하기도 하다. 혜잔이 만드는 인형이 알려져 있으니 라칸의 조카 에이미가 혜잔이 만든 인형을 가지고 있을 수 있다. 또한 어떤 서양인들은 쌍꺼풀이 없는 동양인의 눈에 묘한 매력을 느낀다는 말도 있고, 한복의 정갈함과 우아함이 혜잔을 한층 더 매력적으로 보이게 할 수도 있다. 하지만 가장 중요한 것은 국적의 차이나 기타 여러가지 다른 상황 속에서도 붉은 실로 매어진 두 사람의 인연은 결코 우연이 아니라는 것. 둘은 반드시 만나야만 할 사람들이었고, 우연히 다른 곳에 태어난 것 뿐이었다. 그렇게 처음부터 둘은 서로를 강하게 의식한다. 앞도 뒤도 보지 않고 오로지 상대만을 바라보며 해바라기 같은 사랑을 불태우는데, 어떤 시련이나 역경, 라이벌이 등장하여도 둘 사이의 신뢰 앞에서는 속수무책.

꽤나 두툼하지만 별 어려움없이 술술 읽히는 책. 각 장마다 혜잔이 만든 인형들의 이야기가 소담하게 실려있다. 관나 부인이나 낙랑 공주, 백일홍 전설의 자미 아씨 등 이야깃거리가 가득이다. 뭐, 큰 오해나 사건이 있어도 그다지 신경 쓰이지 않으니 감정적으로 부담은 없다. 둘은 죽어라 둘만 바라보니까. 그런 오해나 사건이 있어도 헤어지거나 아파하거나 하지 않는다. 게다가 강하면서 뭐든지 척척인 남주와 당차면서 능력있는 여주나 다 맘에 드는 캐릭터들이다. 특히 은빛눈의 라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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꼬마요정 2005-04-17 15:38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재미있어요~~~^^*

다락방 2007-05-13 14:43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아, 저도 이 책은 단숨에 읽었더랬지요. 훗.

꼬마요정 2007-05-16 17:01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저두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