역시 조선은 세종을 빼면 이야기가 안 되지. 세종과 정조는 정말 멋진 왕이다. 고려에서 조선으로 넘어오며 사연이 없는 이가 없다지만 그 가운데서도 아란과 윤오의 이야기는 가슴이 아프다. 한 나라가 세워지면 하나부터 열까지 법을 만들어야 하고, 지배체제를 공고히 하기 위해 호구 조사도 해야 한다. 사람 사는 세상에 범죄가 없을 리 없으니, 세종대왕이 우리 실정에 맞게 <무원록>에 주해를 더하고 음훈을 붙여 <신주무원록>을 편찬하여 반포했다. 그리하여 죽은 이가 남긴 마지막 몸짓이나 흔적을 놓치지 않도록. 그나마 한 명이라도 억울함을 풀어줄 수 있도록 말이다. 복수는 결국 또 다른 원한만 남기니, 진정한 복수란 무엇인가 생각해 보게 된다. 그래서 윤오와 아란의 다음 이야기는 작가님!! 쓰고 계신 거죠?
최고의 선을 지키기 위해 최악의 악을 ‘발명’해야 했던 시대. 한낱 소수의 권력을 위해 무지한 다수가 휩쓸렸던 시대. 마을에서 이웃 사이에 서로 돕던 부조의 전통이 흔들리자, 가난하고 약한 이들의 요청을 무시한 사람들의 죄책감이 대상을 정한다. 니더(개미나라)나 인스티토리스(말레우스)에 따르면 여성이 불완전해서 악마의 유혹에 빠지기 쉽다고 한다.(사회적으로 힘이 없는 계층에 여자들이 많았다.) 하지만 모든 마녀가 여자는 아니고, 밤베르크에서의 경우처럼 시장이 마녀로 몰려 화형을 당하기도 한다. 정말 어이없이 마녀가 되고 마법사가 된다. 의자에 매달고 물에 빠트렸을 때 떠오르면 마녀이고 가라앉으면 마녀가 아니다. 떠오르면 화형이고 가라앉으면 익사다… 고문을 견디지 못하고 자백하면 마녀이고 견디면 악마가 도와줘서 견디는 것이라 마녀다… 마녀 사냥은 끝나지만 현대에도 그 양상을 볼 수 있다. 나치에게서, 파시스트에게서, 소련에게서, 우리에게서도.
어릴 때 극장에서 본 영화다. 당시 레오나르도 디카프리오 때문에 이 영화 본 사람 많을텐데(나!), 극장을 나올 때는 다니엘 데이 루이스만 떠올랐던 듯 하다. 넷플릭스에서 12월 1일부터 볼 수 없다고 하길래, 다시 봤다. 거의 20년 전에는 정말 잔인하다 생각했는데, 지난 시간 살아온 동안 잔인하고 어이없는 것들을 많이 봤는가보다. 생각보단 덜 잔인했고, 생각만큼 부끄러운 과거(나 말고 뉴욕이)를 그리고 있었다. 파이브 포인츠, 이민자가 토착민이라고 유세를 떨며 뒤이어 오는 아일랜드인들을 무시한다. 결국 두 세력은 맞붙고 빌 부처가 이끄는 토착파가 승리하고 아일랜드 이민자를 이끌던 사제의 아들인 암스테르담은 복수를 다짐하는데… 결말이 예상과 달랐고 마음에 들었다. 멋있게 싸우다 죽었으면 뭔가 미화되고 결국 강자가 모든 것을 가지는 게 정당화될 것 같았는데, 시대의 흐름이 그들의 운명을 선택한 느낌이라 좋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