무심한 듯 시크하게 !
패션계의 잔다르크였던 코코 샤넬이 이런 말을 했다 : 남자인 당신이 여자를 만났을 때 나중에 옷만 기억나는 여자라면 그 사람은 만나지 마세요. 만약에 코코 샤넬이 남성이 아닌 여성에게 조언을 했다고 해도 크게 달라질 것은 없었을 것이다. 여성인 당신이 남자를 만났을 때 나중에 옷만 기억나는 남자라면 그 사람은 만나지 마세요.
그런데 전자와 후자의 예는 느낌이 사뭇 다르다. 전자는 머리에 든 것은 하나도 없으면서 온통 옷에만 신경을 쓰는 여성을 지시하는 쪽에 가깝다면 후자는 반대로 패션에 대해 너무 무심한 남성을 지시하는 쪽에 가깝다는 느낌이 든다. 하긴 청청 패션에 뾰족한 검은 구두를 신고 흰 양말을 가터 벨트처럼 바짝 올려 입는 남성은 그 자체로 강렬한 인상을 남기는 법이지. 더군다나 바지를 너무 끌어올려서 남근이 지퍼를 뚫고 세상 밖으로 튀어나올 태도를 갖추면 이 사태를 어찌 잊으리오. 문제는 자신이 패션 고자라는 사실을 모른다는 데 있다. 샤넬의 충고는 < 무심 > 과 < 시크 > 사이에서 균형을 잡으라는 말처럼 들린다. 이 충고를 무시하고 한쪽으로 기울면 패션 날라리가 되거나 패션 고자가 될 뿐이다.
그래서 나온 패션계 명언이 " 무심한 듯 시크하게 ! " 이다. 패션, 참..... 어려운 경지다. 꾸민 듯 안 꾸민 듯한 패션이야말로 패션의 정석인 셈이다. 다른 식으로 말하자면 정성을 다해 꾸미되 안 꾸민 척하라(좋은 예가 박근혜'다. 세월호 당일, 그녀의 헤어스타일에 주목하자. 부스스한 얼굴과 다급한 나머지 머리 손질을 하지 않은 듯한 헤어스타일은 사실은 정교한 미용이 아니었던가). 그런데...... 햐, 그게 말처럼 쉬운 게 아니다. 그것은 마치 노아웃 만루 위기에 빠진 투수에게 감독이 다가가 작전이랍시고 힘 빼고 던지라고 주문하는 것과 같다. 힘 빼고 던지라니, 절체절명의 위기에서 배팅볼을 던지라는 말인가 !
색에 대한 욕심이 지나치면 키치가 되고 절제에 성공하게 되면 엘레강스가 된다. 알록달록한 색감이 화려해 보일 수는 있으나 색감이 화려하면 할수록 우아한 감성과는 멀어진다. 톤-다운시킬 필요가 있다. 그런데 이 문제는 어디까지나 여성 패션에 국한되는 것이고 한국 남성들은 지나치게 톤-다운해서 문제가 발생한다. 무채색 이너웨어에 무채색 아우터를 입고 덧대어 무채색 바지에 검정 구두를 신는다. 유채색에 대한 공포마저 느껴진다. 한국 남성들은 옷을 입을 때 색에 대한 공포에서 벗어날 필요가 있다. 색은 대대로 권력자만이 누릴 수 있었다. 염색 비용이 워낙 비싼 탓이기도 했지만, 지배 계급이 색깔에 대한 독점권을 가진 탓이기도 했다.
예를 들면 보라색은 교황만이 누릴 수 있는 색깔이었는데 만약에 교황보다 계급이 낮은 사람이 보라색 옷을 입으면 혹독한 벌을 받아야 했다. 색깔이 계급을 지시하는 시대였던 것이다. 그렇기에 계급이 낮은 계층일수록 색깔 없는 옷을 입어야 했다. 내가 지금껏 살아오면서 들었던 " 국뽕 오브 국뽕 " 의 쓰빽따끌하며 아스트랄한 화룡점정은 옛 조상은 전쟁을 싫어하고 평화를 좋아해서 백의민족이 되었다는 헛소리였다. 그 말이 사실이라면 조선의 왕이 입던 곤룡포는 왜 그렇게 화려했던가(왜, 세도가 양반집 귀한 손자는 때때옷을 입는가). 진실은 하나다.
옛 조상이 백의민족이 되었던 이유는 염색 기술이 떨어졌을 뿐만 아니라 똥구멍이 찢어지도록 가난한 나라여서 그렇다. 그게 진실이다.

지금은 옷감에 색을 들이는 데 많은 비용이 들지 않는다. 그리고 특정 계급이 색을 독점하는 시대도 지났다. 하여, 나는 남성인 당신에게 (여자에게 색만 밝히지 말고) 색을 권한다. 옷이 날개다 ■
덧대기 ㅣ 최신 유행하는 명품 스카프를 돈을 살 수는 있지만 스타일은 돈을 살 수 없다. 스타일은 스스로 만드는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