용의자 x의 헌신




주의 : 스포일러 있음



 


히가시노 게이고 추리소설 << 용의자 x의 헌신 >> 은 도쿄 에도가와 인근 한 연립 주택에서 중년 남자가 모녀에 의해 살해되면서 사건은 시작된다. 모녀 이름은 하나오카 야스코와 딸 미사토. 우연히 이 사실을 알게 된 옆집 남자 이시가미가 모녀의 완벽한 알리바이를 만들기 위해 계획을 꾸민다. 

여기까지 읽고 나서 스포일러를 노출했다며 나에게 항의할 필요는 없다. 이 소설은 범인이 누구인가에 초점을 맞춘 추리소설이 아니다. 이처럼 소설은 독자에게 이미 범인이 누구인지 알려주고 게임을 시작한다. 중요한 것은 모녀가 경찰을 어떻게 속일 것인가에 초점이 맞춰져 있다(혹독한 경찰의 심문과 거짓말 탐지기 검사를 속일 수 있는 알리바이를 조작하는 것이다).  거짓말이란 거짓말이 거짓말을 낳고 그 거짓말이 또 다른 거짓말을 낳아서 나중에는 걷잡을 수 없는 상황에 이르게 되는 법인데,  법 없이도 살 법한 모녀가 이 혹독한 시련을 견디고 과연 경찰 앞에서 완벽한 거짓말을 만들어낼 수 있을까 ?  ㅡ

독자는 이런 마음으로 가해자를 응원하게 된다.  이 소설의 트릭은 살해된 날짜를 변경하는 데 있다.  예를 들면  :  트릭을 사용해서 살인이 발생한 날짜인 23일을 24일로 변경하는 것이다. 그렇다 보니 경찰이 모녀에게 추궁한 알리바이는 23일이 아니라 24일'이다. 야스코 씨, 당신은 24일에 뭐하셨습니까 ?                          모녀 입장에서 보면 경찰에게 굳이 거짓말을 말할 필요가 없다. 모녀는 거짓말은커녕 진실을 말함으로써 의혹에서 벗어난다. 이 소설이 가진 매력은 " 살인자는 반드시 거짓말을 한다. " 는 익숙한 코드를 전복시킨다는 데 있다. 이처럼 진실은 때때로 범죄에 악용된다.

팩트가 범죄까지는 아니더라도 자신에게 유리한 쪽으로 악의적으로 이용되는 사례는 많다. < 올해 매출액이 전년도에 비해 자그마치 120%로 엄청나게 상승했다 > 와 < 올해 매출액이 전년도에 비해 겨우 20% 상승하는 데 머물렀다 > 에서 둘 다 제시된 값은 동일(120% = 20%)하지만 그것을 받아들이는 느낌은 다르다.  전자는 진실을 가지고 호도하는 경우이다. 장난 지금 나랑 하냐 ?    정봉주 보도 진실은 사건이 발생한 날짜를 2011년 12월 23일로 못을 박고 공방을 시작하지만 내가 보기엔 그 못을 빼고 다시 시작해야 한다. 사건이 발생한 날짜는 23일이 아니라 24일이다(라고 나는 추정한다).

사건이 발생한 날짜가 하루 늦춰지면 정봉주, A(안젤라), 민국파의 주장은 모두 진실이 된다. 정봉주는 24일에 렉싱턴 호텔 로비 카페에서 A를 만난 적은 있으나 23일에는 만난 적이 없기에 " 23일에 A를 본 적 없다 " 고 주장하는 것이고, 24일을 23일로 착각한 A 씨'는 " 23일(사실은 24일)에 정봉주를 만난 적이 있다 " 고 주장하는 것이며, 민국파 또한 크리스마스 즈음하여 정봉주를 렉싱턴 호텔에 데려다준 적이 있다고 주장한 것이다. 결과적으로 < 기억 오류 > 가 < 사실 오류 > 가 되는 것이다. 진중권 교수는 프레시안 기고문 << 응답하라, 정봉주 >> 에서 오후 1시에서 오후 2시 52분 사이에

그가 렉싱턴 호텔에 없었다는 것을 증명하지 못한다면 그가 거짓말을 하고 있다고 보아야 한다고 주장했는데, 나는 논리 척척박사가 쏟아낸 얼토당토않는 주장을 읽고 나서 깜짝 놀랐다.  엄밀히 말해서 사실을 입증할 책임은 정봉주가 아니라 의혹을 제기한 프레시안에게 있다. 검찰이 용의자를 기소했을 때 유죄를 입증해야 되는 쪽은 검찰 몫인 것과 같다. < 있다 > 는 것을 증명하는 것보다 어려운 것은 < 없다 > 는 것을 증명하는 것이다. 가령, 악마는 존재하지 않는다라는 주장을 완벽하게 입증하기 위해서는 지구촌 사람 모두를 만나서 진술을 받아내야 한다. 반면에 악마는 존재한다는 주장은 그렇지 않은 경우보다 쉽다.

지구는 둥그니까 자꾸 걷다 보면 중간에 악마를 보았다고 주장하는 사람을 만날 수도 있기 때문이다. 이것을 악마의 증명(devil's proof)이라고 한다. 그래서 법은 모든 입증 책임은 " 없다 " 고 주장하는 사람에게 있는 것이 아니라 " 있다 " 고 주장하는 사람에게 입증 책임을 부여한 것이다.    논리 척척박사 진중권은 이 사실을 누구보다도 잘 알고 있다.  진중권은 2012년 7월에 BBK의혹을 제기한 정봉주가 유죄 판결을 받자 네티즌과 설전을 펼치는 과정에서 재판부 판결을 옹호하며 이렇게 말했다. " 입증의 책임(onus probandi)은 그것을 주장한 사람에게 있습니다.  즉 정봉주 전의원에게 있지요. 재판부에서 그런 것까지 밝혀야 한다는 법이론은 어느 나라 건가요?1) "


정봉주 성추행 의혹 보도에서 정봉주의 범죄 사실이 있다고 주장하는 쪽은 프레시안이다.  그렇다면 응답해야 될 쪽은 정봉주가 아니라 프레시안이다. 하여, 진중권의 법이론을 빌려 프레시안에게 되묻고 싶다.  입증의 책임은 그것을 주장한 사람에게 있습니다. 즉 프레시안에게 있지요.  정봉주가 그런 것까지 밝혀야 한다는 법이론은 어느 나라 건가요 ? "  그때 그때 달라요. 진중권의 일구이언, 졸라 비겁하다




​                                      
1) 진중권

 



덧대기 ㅣ 프레시안은 내부적으로 " 날짜 오류 " 를 인지했을 것이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호기를 부리는 데에는 사건이 발생한 날짜를 여러 차례 오락가락 번복한다는 것은 결국  패배를 인정하는 것이나 다름없기 때문이다. 메신저가 오염되면 메시지는 가치를 상실하는 법. 그렇기에 프레시안은 자신의 주장을 입증할 증거를 확보하기 위해 후속 보도를 취재할 생각은 않고 안젤라'라는 감성적 스토리를 동원하여 " 알리바이는 중요한 것이 아니다 " 라거나 " 진위 여부가 중요한 것은 아니다 " 라고 주장하는 것이다. 정봉주가 제시한 디지털 사진 780장에는 그의 23일 알리바이를 증명할 사진이 무더기로 쏟아질 것이라 확신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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마립간 2018-03-19 11:15   좋아요 1 | 댓글달기 | URL
또 하나의 유죄 추정의 원리에 따라 무죄를 증명하는 ‘사회적 사건‘이 되겠군요.

곰곰생각하는발 2018-03-19 12:07   좋아요 0 | URL
아마 이번 사건은 언론 역사의 크나큰 사건이 아닐까 싶습니다..

2018-03-19 12:20   URL
비밀 댓글입니다.

2018-03-19 12:33   URL
비밀 댓글입니다.

만화애니비평 2018-03-19 12:37   좋아요 1 | 댓글달기 | URL
진교수님 좋아했지만, 요새 갈수록 이상해집니다. 가장 최신적인 미학을 연구하는 분이, 가장 구좌파적 관점으로 세상을 보고 있습니다.

곰곰생각하는발 2018-03-19 13:03   좋아요 0 | URL
이 양반은 그냥 미학에 관련된 발언만 해야 해요..

2018-03-19 13:41   URL
비밀 댓글입니다.

2018-03-21 11:29   URL
비밀 댓글입니다.

AgalmA 2018-03-19 20:01   좋아요 1 | 댓글달기 | URL
최근 ˝아기가 죽었다˝로 시작한 레일라 슬리마니 <달콤한 노래>도 그렇지만 요즘은 결과보다 과정이 더 초점이 되는 것 같아요. 이건 비단 문학만의 경향은 아닌 듯.
세월호도 이미 결과는 이렇죠. 7시간 30분부터 해서 우린 그 과정의 어그러짐을 끝없이 파헤쳐야 할 상황이죠.
주장만 난무하니 세상이 온통 답답함 천지에요.

곰곰생각하는발 2018-03-21 11:29   좋아요 0 | URL
저는 이 모오든 게 전부 다 세월호의 혼령들이 이끌어낸 성과가 아닌가 싶습니다..

마태우스 2018-03-25 12:21   좋아요 1 | 댓글달기 | URL
곰발님 안녕하세요 책주문 땜시 들어왔다가 곰발님의 글이 있어서 이곳에 왔습니다. 그러다 정봉주 관련 이 글을 보게 됐습니다 (사실 아래 글도 봤어요!) 용의자 x의 헌신과 정봉주를 연결하는 과정이 정말 와닿습니다. 글은 이렇게 써야 하는구나, 라는 생각을 다시금 느낍니다. 저는 대부분의 경우 곰발님 생각에 동의합니다만, 이번 사건의 경우엔 의견이 좀 다릅니다. 정봉주가 무고한 사람이 당했을 때 보이는 반응과 현저히 다른 반응을 보이고 있고, 성관련 범죄에 연루된 사람들은 원래 혐의를 부인하게 마련인지라 아직은 좀 지켜봐야 한다는 입장입니다. 말씀드리려는 건 그게 아니고요, 알라딘에 보다 충실하기로 했으니 앞으로도 종종 들러 가르침을 받겠습니다. 건승하십시오.

곰곰생각하는발 2018-03-25 12:28   좋아요 0 | URL
네에. 제 글의 핵심은 정봉주는 거짓말을 하고 있다입니다. 그리고 a는 진실을 말하고 있다. 다만, 이번 보도에 대한 프레시안의 언론 윤리 규칙 위반은 심각하다... 뭐 이 정도로 요약할까요. 제가 뭐.. 언론인도 아니고 그냥 오고가는미스테리 말풍선에 호기심이 생겨서.. 문득 용의자x가 생각나서 추론 한 번 해 본 것입니다..ㅎㅎ
마태우스 님의 알라딘 몰입 선언 대환영합니다아.. ㅎㅎㅎ

마립간 2018-03-25 15:40   좋아요 0 | URL
마태우스 님과 곰곰생각하는 발 님의 의견을 종합하면,
; 정봉주 의원은 (성희롱이라는 )성폭력을 하였고, 프레시안은 심각한 언론 윤리를 위반한 것이 되나요? 그렇다면 정치 그만두는 것과 폐간은 상보적인 것이 아닌 것이 되는군요.

곰곰생각하는발 2018-03-25 15:48   좋아요 0 | URL
폐간까지는 그렇고 사과 보도는 해야 되지 않을까요 ? ㅎㅎ. 정봉주는 물러나고...

마립간 2018-03-26 08:01   좋아요 0 | URL
언론 윤리를 위반한 사례에 황우석 사건도 있습니다. 보도 내용이 너무 커서 윤리 위반은 문제가 되지 않았지요.

정봉주는 물러나고, 프레시안은 사과한다. ; 제 판단에는 양적 균형이 맞지 않는 것 같군요.

곰곰생각하는발 2018-03-26 09:12   좋아요 0 | URL
그렇다면 마립간 님이 보시기에 양적 균형을 맞춘 결과는 어떤 결과입니까 ? ㅎㅎㅎ

마립간 2018-03-26 10:42   좋아요 0 | URL
폐간과 사과 그 중간의 방법이 있다면, 그 중간이 되겠지요.

정봉주 의원의 경우, 성추행을 하지 않았다고 주장하니 만약 성추행이 사실이라면 성추행과 관계없이 거짓된 주장을 한 것이니 스스로 물러나지 않더라도 정치 생명은 끝이라고 봅니다.

프레시안의 경우, 저와 같이 가장 비중있게 읽던 독자( 저는 다른 신문보다 우선적으로 프레시안을 읽습니다.)의 신뢰을 잃었고, 좌파( 또는 진보) 측의 도덕성 손상은 대한 우파와는 다르죠. 할 수 있는 것이 사과 밖에 없더라고 해도 그에 대한 대가를 치르겠죠.

프레시안이 이런 기사를 연달에 낸 적이 있습니다. ; 1) 사교육은 효과 없다. 그러니 사교육을 시키지 말라. 2) 우리나라 학생 성적은 부모의 재력에 의한 사교육의 효과로 서열화 된다. 그래서 문제다.

그래서 프레시안을 ‘편견이 넘치는 정의로운 언론‘으로 생각하고 있었습니다.

마립간 2018-03-26 10:49   좋아요 0 | URL
정확한 사실 fact에 대한 기사가 나올 때까지 기다리고 있다가 덕분에 정봉주 성추행 기사를 검색해 봤습니다.

상대편이 주장하는 것이 ‘키스‘였다가 바뀐 모양인데, 피해자의 주장이 뭔지 검색으로는 잘 확인이 안 되는군요.

곰곰생각하는발 2018-03-28 10:05   좋아요 0 | URL
저도 프레시안 애독자입니다. 이번 문제는 정봉주 성추행 의혹은 별개로 해도 언론의 보도 윤리에 대한 문제가 여실히 들어난 점에서 프레시안은 비판에서 벗어날 수 없다고 봅니다.. 오늘 뉴스 보니 정봉주 호텔 갔다고 시인했더군요.. 비판은 이 둘을 별개로 볼 필요가 있다고 봅니다. a의 주장이 옳다고 해서 프레시안의 언론 보도 태도가 옳다고 볼 수는 없다고 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