단순한 열정 (무선) - 문학동네 세계문학전집 99 문학동네 세계문학전집 99
아니 에르노 지음, 최정수 옮김 / 문학동네 / 2012년 11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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자기객관화라는 환상





여러분에게 질문 하나 던져보자. " 사실적 ㅡ " 와 " 사실 ㅡ " 은 동일한 말일까 ? 에둘러 말하지 말고 서둘러 결론을 말하자면 " 사실적 표현 ㅡ " 이라고 했을 때 그것은 최대한 사실에 가깝게 표현(유사성)을 했다는 뜻이지, 사실 그 자체를 의미하는 것은 아니다. 예를 들어서, 학생 A는 저녁 7시까지 공부하고 나서 8시에 술집에서 소주를 급하게 병나발 분 후 식당 종업원과 싸운다. 그리고 9시에 집에 도착했다는 사실을 두고 " 학생 A는 저녁 7시까지 도서관에 남아 공부했다. 그는 9시가 되어서야 집에 도착했다 " 라고 했을 때 이 문장은 사실적인가 아니면 사실인가 ? 


사실을 나열하는 것과 사실에 가깝게 묘사하는 것은 같은 듯하지만 다르다. 그런데 우리는 이 사실을 자주 혼동한다. 책(이나 영화) 읽고 나서 잘난 척하기로 유명한 내가 1년 전에 에니 아르노의 << 단순한 열정 >> 이라는 책을 읽고도 그동안 안 읽은 척했던 이유는 이 소설이 매우 마음에 들지 않았기 때문이다. 많은 이웃들이 이 소설을 극찬했던 터라 똥물을 붓고 싶지 않았던 것. 그래서 뒤늦게 느닷없이 고백한다. " 난 이 책, 존나 구렸어.... " 


이 소설을 소개하는 사람들은 모두 다 앵무새처럼 똑같은 멘트를 친다. " 에니 아르노는 경험하지 않은 것은 쓰지 않는다. " 다시 말해서 에니 아르노는 " 사실적 ㅡ " 이라는 소설적 장치를 제거하고 " 사실 " 만을 적시하는 작가라는 것이다. 요즘 한국 문학에서 유행하는 오토 픽션1)의 대가라는 것. 오, 마이, 갓. 지저스, 크리스마스, 이브다야. 하지만 이것은 착각이다. 그녀는 자신이 경험한 것만을 사실 그대로 나열하는 것이 아니라 그냥 자신이 경험한 이야기를 사실적으로 묘사했을 뿐이다. 


다시 말해서 << 단순한 열정 >> 은 자전 소설이 아니라 자전적 소설인 것이다. 인간은 그 어떤 식으로든 자신의 감정에 100% 솔직할 수 없다. 완벽한 자기객관화란 허상을 뿐이다. 그래서 나는 이런 종류의 오토 픽션에 대하여 시큰둥한 편이다. 일단, 재미가 없다. 자기 스스로를 굉장히 솔직하다고 믿고 있는(착각하고 있는) 작가에게 조금 질리기도 한다. 이 작품은 에세이로써는 훌륭할지는 모르지만 문학으로써는 높은 점수를 줄 수 없다. 나 이렇게 솔직한 사람이야, 라고 자랑하는 작가보다는 차라리 내 구라에 속았지롱, 이라고 말하는 스티븐 킹이 낫다. 소설의 궁극적 재미는 뻥이다.







1) 내가 모 이웃에게 남긴 댓글 : 라면을 끓였다고 했을 때 보통 그것을 " 자신이 만든 요리 " 라고 말하지는 않잖아요. 그것은 어디까지나 식품 공장에서 만든 상품에 불과하니까요. 스프를 넣고 면발을 익혔다고 해서(그것은 요리가 아니라 단순히 음식에 불과합니다) 내가 만든 요리가 될 수 없는 것처럼 사실이라는 재료 몇 개를 정직하게 이어붙였다고 해서 그것이 문학적 문장이 될 수는 없다고 생각합니다. 라면이 요리가 되려면 그것을 만드는 사람 고유의 레시피가 요리에 반영이 되어야만 합니다. 라면을 끓일 때 콩나물도 넣고, 전복도 넣고, 재료를 넣는 순서도 독창적이어야 아무개표 요리가 되죠. 저는 이 과정이 문학이라고 생각합니다. 사실이라는 재료(면발, 스프)에 덧대어 콩나물,전복, 조미료 첨가, 불의 세기를 종합적으로 판단해서 적재적소에 적용할 때 좋욘 문학적 문장이 완성되는 것이 아닌가 싶습니다. 저는 오토 픽션이라는 게 하나의 환상에 불과하지 않을까 싶습니다. 오토 픽션 주장하면서 트위터에서 쓰던 글 무단으로 인용해서 작품이랍시고 내놓는 작가들 보면 아 이 인간들은 라면을 끓이고는 " 아, 나 오늘 집에서 열심히 라면 요리를 만들어서 먹었어. " 이렇게 말하는 것 같아서 웃기더라고요. 작가라면 적어도 음식과 요리의 차이는 분별할 수 있어야 된다고 생각합니다. 저는 이렇게 말하렵니다. 멍청아, 그것은 너의 요리가 아니라 농심에서 만든 신라면이잖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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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22-12-14 14:45   URL
비밀 댓글입니다.

2022-12-14 15:11   URL
비밀 댓글입니다.
 






















다시 한 번 헤어질 결심















페니스를 라틴어로 팔루스'라고 합니다. 팔루스는 남성 성기를 상징하는 가죽 인공물입니다. 고대 연극에서 팔루스라는 장식 도구를 착용한 등장인물은 권력자라는 뜻입니다. 알기 쉽게 설명하자면 절대반지의 소유자'라고 할 수 있죠. 여러분, 제가 누굽니까. 대한민국 제1호 범성론자로서 팔루스 감별사 아닙니까 ? 영화 << 헤어질 결심 >> 예고편에 등장하는 산 정상을 보았을 때 느낌이 오더군요. 아, 저, 저저저것은 팔루스로구나. 

 

추락 사고가 발생한 산 정상을 보십시오. 누가 봐도 딱딱한 남근상(팔루스)이죠. 저는 우뚝 솟은 바위산 정상의 갈라진 틈을 보고서 혀를 내둘렀습니다. 오모모. 박찬욱 감독, 참 에로틱하게 디테일 허시다. 거시기하죠. 실제로 저 장소가 존재한다면 사람들은 귀두봉이라고 부를 겁니다. 팔루스의 정상에서 여자가 남자를 떨어뜨려서 죽인 행위는 상징적 거세를 뜻합니다. 제가 이 블로그를 통해서 몇 번이나 소개한 적이 있는데 남성 성기를 거세할 수 있는 힘을 가진 여성을 " 바기나 덴타타 " 라고 합니다. " 이빨 달린 질 " 이란 뜻이에요. 여성 성기에 이빨이 달려서 남성이 삽입하는 순간, 뜨아 !!!!!!!!!! 


그런 점에서 여자 서래는 바기나 덴타타 괴물입니다. 그녀는 이빨 달린 여성 성기 요괴죠. 원래, 요괴라는 것이 굉장히 아름다운 괴물이에요. 대표적인 바기나 덴타타 괴물은 무엇일까요. 여러분 모두 아는 괴물입니다. 그리스 신화에 나오는 바다 괴물 세이런입니다. 안개 자욱한 바다에서 사람 귀를 홀리는 노래가 들려옵니다. 뱃사람들은 그 소리에 홀려 뱃머리를 돌려 소리의 근원을 찾아가다가 난파하죠. 설화 속 바기나 덴타타는 주로 축축한 늪의 검은 동굴에 삽니다. 여러분들은 이미 검은 동굴과 축축한 늪이라는 표현에서 감 잡으셨을 겁니다. 그래요, 여성 자궁의 은유죠. 


이 영화는 크게 두 개의 상징적 장소를 보여줍니다. 산과 바다죠. 설명했다시피 산은 팔루스의 지정학적 장소이고 바다는 바기나 덴타타의 지정학적 장소입니다. 저의 과도한 해석이 아닙니다. 두 가지 버전의 영화 포스터를 보십시오. 박해일의 뒷 배경은 산이고 탕웨이의 뒷 배경은 바다입니다. 뭐, 이 정도면 빼도 박도 못한 감독의 결심인 셈입니다. 



종합하면  :  이 영화는 팔루스 vs 바기나 덴타타의 빅 매치인 겁니다. 킹콩 vs 공룡의 대결 같은 것이죠. 제가 언젠가 이런 말을 한 적이 있습니다. 세계의 모든 국어사전은 남성의 시각으로 만들어진 남성 언어'의 결정체라고 말이죠. 한국어 사전만 해도 그렇습니다. 유교 사상에서 중요한 것은 서열입니다. 모든 단어는 여성보다 남성이 앞자리를 차지합니다. 사전에 남녀라는 단어는 있지만 여남이라는 단어는 없죠. 심지어 Ladies and gentlemen 을 번역하면 숙녀 신사 여러분이 아니라 신사 숙녀 여러분으로 번역이 됩니다. 하지만 딱 한 번, 여자가 남성보다 상위 포지션을 차지할 때가 있습니다. 


궁금하시죠 ? 두구두구두구두구,,,,,,, 욕 할 때 순차의 역차가 발생합니다. 그 단어가 바로 " 연놈 " 이라는 낱말입니다. 사전에서 " 놈년 " 이라는 단어 보셨습니까 ? 단어가 욕으로 사용될 때에는 여자가 남성보다 앞섭니다. 조상 어르신의 꼼꼼한 꼼수에 혀를 차게 되죠. 꼼꼼허시다. 사전이야말로 남근중심주의적 시각이 반영된 결정체입니다. 철학사를 공부하다 보면 남성은 이성(로고스)을 상징하고 여성은 감정(파토스)를 대표했습니다. 로고스는 이성과 함께 언어로 발화된 말이라는 뜻으로 로고스는 파토스보다 우월합니다. 이것을 로고스 중심주의라고 합니다. 남근중심주의와 로고스 중심주의는 모두 남성성의 우월을 강조합니다. 


프랑스 철학자 자크 데리다는 남근중심주의와 로고스중심주의를 합쳐서 " 팔루스로고스중심주의(남근이성중심주의) " 라는 개념을 고안하고서는 사냥개처럼 남근이성중심주의(팔루스로고스중심주의)를 비판합니다. 자, 그렇다면 여자 주인공 서래는 남근이성중심주의 시각에 반대하는 여성 괴물이므로 바기나파토스중심주의의 주체라고 할 수 있죠. 서래西來, 서쪽(중국)에서 온 여자는 국어사전의 체계를 비틀어버립니다. 서래가 발화하는 " 마침내 ㅡ " 의 뜻은 국어사전의 그 뜻과는 미묘하게 다르고,  발화된 마침내를 받아들이는 형사들은 서래가 사용한 단어를 정확히 이해하지 못해서 


이것을 어떻게 해석해야 할지 몰라서 당황해 합니다. 서래는 그 모습을 보면 재미있다는 듯 웃습니다. 저는 이 행위를 남근이성중심주의의 결정체인 국어사전의 체계를 파괴하는 행위로 보았습니다. 제가 언젠가 그런 주장을 했었죠 ? 페미니즘의 시작은 국어사전에 기록된 남성중심주의 언어를 파괴하는 것이라고 말이죠. 그런 점에서 페미니즘은 여성학보다는 언어학에 가깝다고 말이죠. 이 영화를 본 많은 사람들은 영화의 마지막 장면을 두고 그것을 자살이라고 생각했지만 제 생각은 전혀 다릅니다. 서래는 바다에 익사한 것이 아니라 자기가 살던 집으로 컴백홈 한 겁니다. 


말했잖아요. 서래는 서쪽에서 온 바기나 덴타타 바다 괴물이라고. 그녀는 이렇게 말했을 겁니다. " 한바탕, 신나게 놀고 가요. 여러분 ~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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yamoo 2022-07-20 08:09   좋아요 1 | 댓글달기 | URL
와~~ 곰발 님 글 올만에 봅니다.
헤어질 결심, 얼릉 봐야하는데, 아직까지 못봤다는...근데, 저 포스터 배경이 참으로 심오한 상징을 가졌구료~
가만 보니, 사진이 아닌 그림같기도 합니다..어쨌거나 반갑습니다!^^

곰곰생각하는발 2022-07-20 15:31   좋아요 0 | URL
오, 야무 님. 방가방가 ~ 야무 님이야말로 얼릉 돌아오십셔.

포스트잇 2022-07-20 10:40   좋아요 1 | 댓글달기 | URL
엔딩해석이 기가 막힙니다^^ 그러네요.
컴백홈이네요.

그리고, ‘연놈‘에서 빵 터졌습니다. ㅋㅋ 아니, 그런 건 어떻게 찾으신답니까?

곰곰생각하는발 2022-07-20 15:33   좋아요 1 | URL
전 화장실 수건함에 수건 대신 국어사전이 있어요. 화장실 갈 때마다 국어사전을 펼쳐서 한 꼭지 읽는데 연놈이라는 단어가 있더라고요. 전 이게 단어가 아니라고 생각했는데...

조선인 2022-07-20 18:03   좋아요 1 | 댓글달기 | URL
우와. 이 영화 꼭 봐야겠네요.

곰곰생각하는발 2022-07-21 15:17   좋아요 0 | URL
평점 높은 걸 보니 이견은 없을 듯합니다.

감은빛 2022-11-29 13:41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영화를 보고 나서 제목에 대해 한참을 생각했어요.
나중에 다시 한번 더 봐야 제목을 이해할 수 있을 것 같아요.

오랜만에 이 서재에 놀러와보네요.
잘 읽었습니다. ^^

마음의 꿈 2023-07-19 14:41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보지못했던 시각으로 해석한 ‘헤어질 결심‘ 공감이 가는 해석입니다. 감사^^

마음의 꿈 2023-07-19 14:46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왜 헤어질 결심 인가?...잽을 한번 날려 봤지만 아직은 공존할 수 없는 현실이라 일단 한발작 물러설수 밖에 없는...
 
90년생이 온다 - 간단함, 병맛, 솔직함으로 기업의 흥망성쇠를 좌우하는
임홍택 지음 / 웨일북 / 2018년 11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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밀레니얼 춘 향 전  :  90년생은 없다












때는 바야흐로 조선 숙종. 전라도 남원 마을에 월매라는 기생이 살았는디. 늦은 나이에 딸 춘향을 낳았어라. 월매가 보기에 춘향이 월매나 예뻤드래요. 세월이 흘러 춘향 나이 열여섯 나던 해. 남원 사또 아들 몽룡이 하는 짓이 방자하여 이름이 방자인 방자를 데리고 꽃 구경 하다가 아, 글쎄 그만 ~ 얼쑤. 꽃 중의 꽃을 만났어라. 그 이름 춘향이렷다. 


둘은 첫눈에 하트가 뿅뿅하고 버터가 러브하니 지금 이 소리는 심장 박동 소리인가, 대포 터지는 소리인가 ? 몽룡과 춘향 커플은 그 시대의 새파란 젊은이답게 시대에 불온하고 발칙하였으니 업고 놀고 누워 놀고 덮고 노니 날마다 눈 뜨면 섹스라. 스포츠에도 능통하니 승마와 레슬링은 기본이렷다. 몽룡이 말하길 : 오늘도 너와 나 홀딱 벗고 사랑질이나 좀 해보자꾸나. 춘향 백일홍 붉어 말하길, 아이 잡성스러워라. 나는 부끄러워 그리 못 벗겠소 _ 하며 옷고름 풀어헤치니 몽룡의 모든 피가 아래로 남하하는지라. 추, 추추추춘향아. 너,너너너너너너만 보면 후끈 달아오르는구나. 


춘향전 판소리 이야기다. 두 사람은 관혼상제의 예를 갖추는 것이 목숨보다 중요했던 유교사회에 그 모든 혼례를 생략하고 물 한 그릇 올리고 부부의 연을 맺었으니 파격이라 할 만하다. 몽룡과 춘향의 러브스토리는 한국인이라면 모를 리 없다. 조선시대 청춘남녀 상열지사를 통해서 그 시대의 세대 분석을 하자면 몽룡과 춘향은 " 간단하거나, 재미있거나, 정직하거나 " 로 요약할 수 있을 것이다. 몽룡과 춘향은 누구보다도 자기 감정에 정직하다. 또한 몽룡이 어렸을 때부터 방석집을 드나들며 주색에 빠졌다는 점에서 재미를 추구하는 젊은이이기도 하다. 


그 정점은 암행어사 출두 장면에서도 드러난다. 암행어사가 된 몽룡은 부채로 얼굴을 가린 채 변사또에게 수청 들기를 거부한 춘향에게 농을 건다. 재미는 못 참지롱. 또한 복잡한 혼례 절차를 생략하고 그들 만의 간소한 혼인을 치룬 점으로 보아 이들 커플은 허례허식을 타파한 젊은이이다. 그 시대의 문학이 당대의 세태와 세대 특징을 반영한다는 점을 감안한다면 조선시대 젊은이들은 놀기(재미) 좋아하고, 복잡한 허례허식을 싫어하며(간단), 자기 감정에 솔직한(정직) 세대라고 할 수 있다. 그런데 그것이 비단 조선시대 젊은이들 만의 특징일까 ? 


세월이 흘러흘러, 21세기 대한민국. 임홍택은 << 90년생이 온다 >> 라는 책을 통해서 밀레니얼 세대만이 가지고 있는, 그 전 세대와는 판이하게 다른 세대 특성을 발견한다. 그가 이 책에서 내린 결론은 이렇다. 90년생의 특징은 간단하거나, 재미있거나, 정직하거나. 책은 불티나게 팔렸다. 문재인 대통령은 직원들에게 이 책을 선물했고, 티븨 앞에 선 문화평론가나 서평가들은 90년생을 신인류의 탄생으로 묘사했다. 두둥 ~ 지금까지 이런 세대는 없었다 ! 이것은 지구인인가,  외계인인가. 


90년생은 이 책의 예리한 통찰에 맞짱구를 치며 호들갑을 떨었고 꼰대들은 지못미를 외치며 꼰대 탈출을 외쳤다. 저자의 분석이 과학적 사실에 기반한다면 몽룡과 춘향 또한 밀레니얼 세대라고 볼 수 있다. 그렇다면 몽룡과 춘향 커플은 시대를 앞선 인물일까, 아니면 밀레니얼 세대가 지나치게 레트로 지향적 세대일까 ? 모르겠다. 분명한 것은 이 책은 엉터리라는 점이다. 세대의 보편성을 세대의 특이점으로 이해하는 방식은 마치 원인과 결과를 혼동하는 것만큼이나 멍청하고, 멍청하고, 멍청하며, 또 멍청한 일이다. 니체의 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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스미스는 왜 록의 뺨을 때렸나 ?




 





아카데미 영화제 시상자로 무대에 오른 유명 코미디언 크리스 록은 윌 스미스의 아내 제이다 핀켓 스미스를 상대로 농담을 던진다. 카메라는 이미 크리스 록이 제이다를 향해 농담을 던질 것이란 사실을 알고 있었다는 듯이 크리스가 입을 떼자마자 전광석화와 같은 속도로 윌 스미스 부부를 향한다. 그리고는 모두 다 알고 있다시피 예상치 못한 사건이 발생하는데..... 뚜벅. 뚜벅. 뚜벅. 뚜벅 그리고 불꽃 싸다구. 윌 스미스가 크리스 록의 뺨을 풀스윙으로 후려친 것이다. 와우. 가십 천국인 할리우드에서 초유의 사태가 발생한 것이다. 동서양을 막론하고 불꽃 싸다구에 대한 설왕설래가 오갔다. 


한국인의 반응은 대체로 피해자가 맞을 짓을 했다와 가해자가 때릴 만하다로 요약할 수 있다. 한국인이 윌 스미스 편에 선 이유는 가족주의다. " 가족을 건드리는 것은 못 참지 ㅡ 이 글을 읽는 여러분의 생각도 ? 노파심에서 하는 말이지만 윌 스미스를 응원하는 사람이라면 이 글은 읽지 않는 것이 좋다. 왜냐하면 윌 스미스를 옹호할 생각이 추호도 없기 때문이다. 이 글의 주장은 다음과 같다. " 윌 스미스, 이 새끼. 너무 좆같다. " 종종 페미니즘 관점에서 크리스 록의 살인 조크를 비판하는 사람이 있다. 남자는 여자를 보호해야 한다는 핑계로 윌 스미스를 옹호하는 것이다. 


윌 스미스는 가족을 대표하는 남편이자 여성을 지켜야 하는 남자라는 것이다. 놀라운 해석이다. 오히려 이러한 해석은 페미니즘적이라기보다는 가부장제에 대한 열렬한 옹호처럼 보인다. 가족을 대표하는 사람이 왜 반드시 윌 스미스여야 할까 ?  제이다의 인물 파워(그녀는 자신의 이름을 딴 토크쇼 진행자다) 역시 남편 못지 않은 데 말이다. 크리스 록의 조크에 화가 났다면 따귀를 때릴 사람은 제이다이지 윌 스미스가 아니라는 말이다. 윌 스미스는 제이다와 그 어떤 상의도 없이 그녀를 대변한다는 이유로 폭력을 행사한 것이다. 자신의 아내는 의사 결정할 수 있는 능력이 모자란 것처럼. 


내가 이 사태를 보면서 느낀 것은 윌 스미스의 남성성 과시'였다. 그는 전 세계가 지켜보는 무대에서 " 가족을 위해서라면 무슨 짓이든 할 수 있는 남자 " 를 연기한 것이다. 그는 크리스 록의 뺨을 때리고는 스스로 자신이 멋져보였을 것이다. 이 초유의 사태에서 우리가 놓치고 있는 것이 있다. 바로 카메라맨이다. 카메라맨은 크리스 록이 무대에 오르면 제이다를 향해 농담을 던질 것이란 사실을 어떻게 알았을까 ?  그가 제이다를 향해 입을 떼자마자 미리 알고 있었다는 듯이 카메라는 미리 제이다의 반응을 담고 있었으니 말이다. 


그것은 크리스 록의 즉흥적 농담이 아니라 미리 대본에 의해 정해진 발화라는 것을 말해준다.  크리스의 선 넘은 농담이 전 세계가 지켜보는 가운데 따귀를 맞을 정도로 해악하다면 그 사실을 미리 알고 용인한 아카데미 관계자들은 더 나쁜 놈들이다. 가족주의의 핵심은 가부장제'이다. 그리고 그 가부장제의 핵심은 폭력적인 아버지'다. 폭력적인 아버지 없이는 가부장제는 제대로 작동하지 않으며 권위적인 가부장제 없이는 가족주의도 없다. 한국인이 윌 스미스를 지지하는 이유는 한국 사회가 가족주의 사회이기 때문이다. 


한국인은 가부장제의 오랜 폭압에 길들여져 있어서 아버지의 폭력에 대하여 관대하다. 골때리는 지점이다. 아버지의 폭력을 증오하지만 동시에 아버지의 폭력이야말로 우리 가족을 지키는 힘이라고 믿는 것이다. 이 얼마나 가증스러운 이중적 태도란 말인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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초원 2022-04-03 22:07   좋아요 1 | 댓글달기 | URL
곰발님의 글은 늘 시원시원합니다. 저도 이 소란을 보며 쓰고 싶은 글이 있어서 더 반갑게 읽었습니다.

잘 지내시죠? 일 없이 걷고 뛰어도 좋은 일요일 오후, 즐겁게 보내시길 바래요.

곰곰생각하는발 2022-04-07 14:17   좋아요 1 | URL
아, 초원 님.. ㅎㅎ 잘 지내고 있습니다. 초원 님도 무탈하시지요 ? 댓글이 늦었네요. 자주 오는 편은 아니어서....

커피소년 2022-04-23 12:31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주말 잘 보내고 계십니까? 갑자기 옛 생각에 그리워서 글 남기고 갑니다. 좋은 하루 되세여.

고라니 2022-06-02 16:58   좋아요 2 | 댓글달기 | URL
재밌게 읽었습니다. 곰발님 의견도 일리가 있지만 제 생각에는 코미디/농담에 대한 수용 문화의 차이가 더 큰 거 같은데요. 미국도 마초적이고 가족주의적인 면이 있는건 한국 이상이기도 하고.. 미국에선 아무래도 농담의 수위에 대해 더 관용적이죠. 우리나라에선 부모 욕(싸우다가도 엄마욕 한 쪽이 무조건 잘못)이 엄청 큰 잘못이지만 your mama 조크가 미국에선 흔하거처럼요. 그리고 미국에서는 싸우스 파크나 패밀리 가이 같은 쇼가 무려 TV에서 방송하고 수십년째 장수하는데 이건 한국에선 없는 일이니까요.. 일례를 들면 패밀리 가이에선 졸업 무도회에 여학생이 무도회장 쓰레기통에 버린 신생아가 프랭크 시나트라처럼 노래하는 조크가 있고 싸우스 파크에서는 카트맨이 자기를 괴롭히던 애의 부모를 죽여서 믹서기로 갈아서 요리한 다음에 속이고 먹이는 장면이 나오는데 이런걸 한국에서 (특히 tv에서) 시도했다간 그야말로 엄청난 스캔들이 되겠죠.. 방송이 되지도 않겠지만. 하지만 미국에선 저런 쇼가 그냥 평범하게 tv에 나올뿐만 아니라 엄청난 대중적 인기를 누리기 때문에.. 코미디에서 가능한 수위에 대해서는 우리보다 훨씬 관용적이라고 할 수 있죠. 그런데 저렇게 코미디에 관용적인 미국 사회에서 겨우 대머리 조크로 뺨을 때린건 심한 무리수죠.. 하지만 앞서 말했듯 우리나라에서는 가족은 안 건드는게 상례고 농담의 수위에 훨씬 엄격하니까 미국 코미디 문화에 익숙지 않아서 좀 엇나간 반응을 한 것이 아닐까 싶습니다.

곰곰생각하는발 2022-06-01 11:18   좋아요 1 | URL
고라니 님, 댓글 읽다 보니 미국 청소년들은 크면 부모를 욕하면서 집을 떠나고 한국 청소년들은 크면 부모에게 붙어서 집에 안주한다는 뭐 그런소리를 들은 적이 있는데 아마도그러한 성향이 이번 사태의 반응이 상대적으로다르게 나타난 것 같네요. 아마도 개인주의와 가족주의의 차이인 것 같습니다.미국 스탠딩 코미디 보면... 조금 받아들이기 힘든 측면도 있고.. ㅎㅎㅎㅎ 뭐, 그렇습니다.

고라니 2022-06-02 17:02   좋아요 1 | URL
네 그렇기도 하죠 ㅎㅎ 우리나라에선 결혼 안 한 성인 자녀가 부모랑 같이 사는게 크게 이상한 일은 아닌데, 미국에서는 basement dweller라고 심하게 조롱 당하니까요. 근데 미국이나 유럽도 주택 문제가 심각해서 점점 용인되는 분위기인거 같긴 합니다.. ㅎㅎ
제목을 다시 보고 생각난 건데, 처음에 ‘스미스가 록의 뺨을 때렸다‘는게 그룹 The smiths가 록음악의 뺨을 때렸다는 얘긴 줄 알고 들어왔었네요. ㅎㅎ 글 재밌게 읽고 있으니 바쁘셔도 가끔씩 써주시면 좋겠네요.
 
샌프란시스코에서 하룻밤(1disc) - [할인행사]
낸시 사보카 감독, 리버 피닉스 외 출연 / 워너브라더스 / 2004년 1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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쓰러지지 않기 위해 껴안는 포옹












내가 영화를 볼 때 집중하는 곳은 시작과 끝이다. 사람들은 시작점을 영화 타이틀 장면(타이틀 시퀀스)이 끝나고 시작되는 장면으로 인식하지만 영화의 진짜 시작점은 타이틀 시퀀스'다. 타이틀만 송출하는 장면도 있지만 단순하게 화면 위에 덧씌워지는 타이틀 시퀀스도 존재한다. 그냥 의무적인 표기 장면처럼 보이지만 사실 감독은 타이틀에 사용되는 글꼴부터 고심한다. 로맨틱 코미디 영화 타이틀로 고딕체를 선택할 수는 없는 것 아닌가. 만약에 MZ 신세대 영화랍시고 제목으로 굴림체를 사용했다면 당장 자리에서 일어나 도망치는 게 상책이다. 


영화의 시작점을 가장 탁월하게 사용한 감독은 알프레드 히치콕이다. 난 이 사람의 타이틀 시퀀스 때문에 종종 미츄어버리곤 한다. 경험을 토대로 말하자면  :  시작점이 훌륭하면 대체로 그 영화는 최소한 본전은 하는 영화'다. 그렇다고 해서 타이틀 시퀀스가 영화 전체의 승패를 좌우할 정도로 영향력을 행사하는 것은 아니다. 우리가 영화의 시작점에서 엿볼 수 있는 것은 감독의 태도'다. 타이틀 글꼴은 그 영화의 전체적은 분위기를 엿볼 수 있는 첫 번째 단서를 제공하고, 타이틀과 오버랩되는 화면들은 전체 이야기를 압축하는 상징적 오브제로 구성되는 경우가 허다하다. 


그리고 어느 배우의 이름이 먼저 등장하는가를 통해서 감독의 편애와 편파도 읽을 수 있다. 권투 경기에 비유하자면 타이틀 시퀸스는 1회전을 알리는 종소리가 울리면 제일 먼저 툭, 던지는 잽과 비슷하다. 그것은 싸우기 위해 던지는 잽이 아니라 일종의 주먹으로 오고가는 인사말이다. 잘해봅시다잉. 잽을 던지며 툭 ! 끗. 시작점이 힘 없이 툭 던지는 잽이라면 끝점(라스트 신)은 KO펀치'여야 할까 ? 꼭 그렇지는 않다. 마지막 장면은 온 힘을 다해 내던지는 강펀치일 수도 있지만 모든 것을 내려놓고 툭, 치며 작별 인사를 하는 잽이거나 서서 버틸 힘이 없어서 상대를 껴안는 것일 수도 있다. 


내가 좋아하는 영화의 끝 중 하나가 바로 낸시 사보카의 << 샌프란시스코에서의 하룻밤, dogfight>> 이다. 영화 제목 dogfight는 가장 못생긴 여자를 꼬셔서 약속 장소에 데리고 오면 이기는 쪼다 게임이다. 제목을 그대로 적용하자면 웨이트리스 로즈(릴리 테일러)는 그 동네에서 가장 못생긴 여자'에 속한다. 그리고 그녀를 선택한 군인은 리버 피닉스다(오, 마이 갓. 리버 피닉스라니).  반전은 없다.  못생긴 로즈는 노래도 못한다. 그럭저럭 못생긴 릴리 테일러와 가장 잘생긴 리버 피닉스의 데이트가 성공적일 수는 없다.  하지만 알 수 없는 여운을 남긴 채 남자는 베트남으로 가는 군용 버스에 오르며 혼잣말을 한다. 


" 우리는 어쩌다가 쪼다가 되었을까 ? "  4년이라는 세월이 흐른 어느 날, 다리를 절며 한 남자가 카페 안으로 들어온다. 마술이 시작되는 지점은 지금부터다. 뒤늦게 상이군인이 되어 돌아온 그를 알아본 로즈는 잠시 망설이다가 그 어떤 말도 없이 조용히 끌어안는다. 과장된 기쁨의 표정도, 그렇다고 위안을 가장한 슬픈 표정도 없다. 그 흔한 안부 인사도 없다. 영화는 바로 그 장면에서 끝이 난다. 매우 조용한 장면이었지만 내 심장은 주책없이뛰었다. 아, 시바. 내 심장아. 제발 조용히 하라고. 그것은 서 있을 힘이 없어 어떻게 해서라도 버티기 위해 상대를 껴안는, 드러눕기 일보직전인 권투선수의 클린치 상황 같았다. 


내가 쓰러지지 않기 위해 껴안는 포옹. 아니, 어쩌면 네가 쓰러지지 않기 위해 껴안는 포옹. 영화 << 샌프란시스코에서의 하룻밤 >> 이 그런 영화다. 좋은 영화란 무엇일까 ? 모두 다 대동소이한 말을 할 것이다. 첫 장면과 끝 장면이 훌륭하면 그 영화는 대체로 훌륭하다. 그리고 매우 훌륭한 영화의 특징도 모두 엇비슷할 것이다. 첫 장면과 끝 장면이 훌륭하되 지나치게 힘을 주지 않는 장면. 시작부터 물어뜯을 기세로 주먹을 뻗지 않으며 내내 치열하게 싸우되 끝에 가서는 쓰러지지 않기 위해 주먹 대신 허리를 껴안는 끝 장면. 










■  덧대기


좋은 글이란 무엇일까 ? 모두 다 대동소이한 말을 할 것이다. 첫 문장과 끝 문장이 훌륭하면 그 글은 대체로 훌륭하다. 그리고 매우 훌륭한 글의 특징도 모두 엇비슷할 것이다. 첫 문장과 끝 문장이 훌륭하되 힘을 주지 않은 글이다. 시작부터 물어뜯을 기세로 주먹을 뻗지 않으며 경기 내내 치열하게 싸우되 끝에 가서는 쓰러지지 않기 위해 주먹 대신 상대 선수의 허리를 껴안는 끝 문장이 좋은 글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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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와같다면 2022-03-30 20:13   좋아요 2 | 댓글달기 | URL
최근 경험한 강렬한 타이틀 스퀀스는 윤당선자가 직접 브리핑 한 ‘대통령 집무실 용산이전‘ 매우 과장된 녹색의 ‘국방부 앞 공원조감도‘ 였습니다

˝국방부에서 합참까지 50m밖에 안 되는데 거리가 과장됐고, 다른 건물들은 그냥 지웠다. 사람으로 치면 얼짱 각도로 찍고 녹색으로 화장한 것과 같다˝ - 배정한 교수

강렬하고 두려운 오프닝 시퀀스

곰곰생각하는발 2022-03-30 21:01   좋아요 2 | URL
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
자원외교한다잖아요. 몇 조 해 먹겠죠.
사대강 부활한다면서요. 다시 녹조라테 보겠죠. 이거 정말 끔찍한 겁니다.
원전 짓겠죠......
이동차에서 국가비상회의한다잖아요.
뭐 세월호 같은 비극적 사고 하나 터지면..... 이 모든 게 시작도 안 했습니다.

곰곰생각하는발 2022-03-30 20:38   좋아요 2 | 댓글달기 | URL
어쩌죠.. 그것은 오프닝 시퀸스가 아니라 제작 발표회인데.. 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 앞으로 정말 지옥도가 펼쳐질 겁니다.

나와같다면 2022-03-30 20:58   좋아요 1 | URL
아.. 아직 시작도 안한거구나 ㅋ

기억의집 2022-03-30 20:55   좋아요 1 | 댓글달기 | URL
아 아까 이 페이퍼 읽고 릴리 테일러 검색하다가 딴 길로 샜네요. 저도 이십대는 비디오세대라 왠만한 거 다 봤는데… 리버 피닉스야 우리 세대에선 워낙 유명한 배우라 기억이 박혀 있는데 못 생겼다고 하니 릴리 테일러 궁금하더라구요.

윤이 똘기로 무장한 것처럼 우리도 이제부터 똘기로 무장해야 오년을 버텨낼 수 있겠구나 하는 생각이 듭니다!!

곰곰생각하는발 2022-03-30 20:59   좋아요 1 | 댓글달기 | URL
오늘 여론조사 보니깐 윤석열에게 희망을 품는 기대치가 30%대더라고요. 와... ㅎㅎㅎㅎ 거의 모든 대통령이 시작할 때에는 70%에서 시작하는데 이 새끼는 30%.