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
백야 외 ㅣ 열린책들 세계문학 126
표도르 도스토예프스키 지음, 석영중 외 옮김 / 열린책들 / 2010년 6월
평점 :
요즘은 불을 끄고 침대에 누우면 << 카라마조프 형제들 >> 오디오북을 1시간 정도 듣는다. 열두 밤을 보냈으나 갈 길이 멀다. 이 오디오북의 녹음 시간은 무려 43시간이니 말이다. < 죄와 벌 > 을 읽고 경악했고, < 카라마조프... > 를 읽고는 대작가의 대작에 경탄했으나 정작 내가 사랑하는 도스토옙스키 작품은 소품들이다. < 지하생활자의 수기 > 를 읽는 내내 지하생활자에게 감정 이입이 되어 힘들었다. 자존감은 바닥을 치고 자존심은 하늘을 찌를 때 발생하게 되는 감정의 찌꺼기들이 고스란히 나에게로 전해졌다. 도스토옙스키는 인간의 찌찔함을 가장 능수능란하게 다루는 작가가 아닐까 싶다.
단편이라 하기에는 중편에 가까운 << 백야 >> 라는 작품도 내가 사, 사사사사사사 좋아하는 작품이다. 도스토 예프시 키가 이토록 달달한 애정 소설을 쓸 줄은 꿈에도 몰랐다. 이 소설을 읽다 보면 누군가가 공작새의 날갯죽지 깃털로 내 심장을 살살 간질이는 것만 같다. 심장아, 나대지 마 ~ 어제는 루치노 비스콘티 감독이 연출한 << 백야,1954 >> 을 보면서 계속 욕을 했다. 내 성정머리가 왜 이 모양인지는 모르겠으나 찬사를 쏟아내야 할 때 욕을 하게 된다. " 와, 시바. 개 미쳤다. 아놔, 진짜 이 작품 뭐냐. 와, 개비스콘인지 비스콘티인지 하여튼 천재. 시바. 인정한다. 비스콘티 개 부럽. 개 천재 !!!! "
온갖 감탄을 쏟아내며 이 영화를 감상했고, 끝나자마자 다시 한번 더 봤다. 걸쭉한 욕과 함께 말이다. 도스토옙스키의 원작을 영화로 만든 수많은 작품 중에서 이 작품이 가장 훌륭하다는 데 500원 건다. 이웃이여, 쩨쩨하게 500원이 뭐냐고 비웃지 마라. 내 전 재산이니 말이다. 영화 속 남자는 수줍음 많고 소심한 성격 탓에 연애 고자'로 사는 남자다(마르첼로 마트로얀니). 흙흙흙, 내가 고자라니...... 어느 날 밤. 그는 다리 위를 거닐다가 운명적 여인(마리아 쉘)을 만나 첫눈에 반한다. 그녀에게는 사랑하는 남자가 있었는데 1년 전 사랑의 언약을 깨고 약속 장소에 나타나지 않아 다리 위에서 눈물을 흘린다.
그녀는 변심한 남자에게 편지를 보내기로 결심하고, 그 편지를 연애 고자에게 부탁한다. " 사랑의 전령사가 되어 주세요. " 과연 변심한 그 남자는 약속 장소에 나타날까 ? 비스콘티는 이 달달한 연애 사건을 제한된 공간 안에서 완벽하게 장악한다. 제한적인 공간 때문에 단조로울 수 있는 깊이감은 마술에 가까운 조명의 힘으로 극복한다. 무엇보다도 마리아 쉘, 그녀의 웃는 모습은 활짝 핀 목련꽃 같다. 그녀만 바라보면 언제나 이보다 좋을 순 없다. 이 영화에 필 받아서 다용실에 쌓아 둔 박스(책을 담은 박스들)를 모두 뜯어내서 드디어 도스토옙스키의 << 백야 >> 라는 책을 찾아내서 읽었다. 한겨울 밤에 읽는 꿈결 같은 사랑의 백일몽이라니. 좋다, 비스콘티도 천재이고, 도스토옙스키도 천재구나. 시바. 세상은 넓고 천재도 많구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