젓지 않되 흔드는 법 !





보드카 마티니, 젓지 말고 흔들어서

ㅡ 서서비행 148쪽, 금정연



작가의 문장 스타일을 보면서 가끔 작가의 술버릇을 상상하곤 한다. 꺾어 마실까 ? 흔들어서 마실까 ? 아니면 맛있게 말아서 ?? 예를 들어 << 잃어버린 시간을 찾아서 >> 의 마르셀 프르스트는 술집에 가면 왠지 칵테일 한 잔을 주문하며 이렇게 말할 것 같다. “ 흔들지 말고 빨대로 저어주세요오오오옹. ” 그러고는 프랑스 조개과자 안주 서비스 없냐고 묻겠지. 홀짝, 홀짝, 홀짝. 참새처럼 칵테일 한 모금에 입술을 적시며 조개과자 반 쪽. 그는 칵테일 한 잔을 마시면서 조개과자에 대해 장장 세 시간에 걸쳐 혼잣말을 할 것이다. 뭐, 조개과자를 앞에 둔 한 남자의 내면 고백이라고나 할까.


반면에 << 보봐리 부인 >> 의 플로베르는 파티 모임에 참석하여 얼음과 각종 과일을 둥둥 띄운, 대형 유리그릇에 담긴 과실주를 커다란 국자로 휘저으며 퍼마실 것 같다. 엄지와 검지로 체리를 건져 올리고는 음, 맛있다해, 맛있다해. 띵호와~ 땅호와 ~ 프랑스 사람이 비단 장수 왕 서방 말투를 사용하는 것을 보면 이 글이 사실적 근거는 조또, 아니 1도 없다는 것은 분명하다. 왠지 그럴 것 같다는 느낌적 느낌의 느낌이 시냅스를 타고 섹시한 등골을 지나 여름 장마철 북상하는 태풍의 이동 경로처럼 빠르게 5번 척추와 6번 척추를 강타한 후 나의 뇌하수체에 삼 파장 발광 다이오드적 극성 신호를 보내고 있음을 본능적으로 느끼고 있을 뿐이다. 아, 됐고.


여기 한 사내가 있다. 바의 구석진 곳에 앉은 그는 말이 없다. 바텐더가 묻는다. 무엇을 주문하시겠습니까? 사내는 말한다. 소삼맥칠(소주3 맥주7), 젓지 말고 흔들어서 묻지 말고 따블로 !! 이 사내의 이름은 조지 오웰. 그 모습을 지켜보는 한 여성. 그에게로 다가간다. 또각또각, 하이힐 소리. 챙 넓은 모자를 깊게 눌러 쓴 여자가 담배연기를 남자의 얼굴에 냅다 쏟아내며 수작을 건다. “ 어머, 우리 귀여운 말라깽이 영국 아저씨래 오데로 가는 길이실까나 ? ” 사내는 이렇게 대답하리라. “ 위건 부두 가는 길(1936)이오. ” 바텐더는 여자에게 다가가 귓속말로 정보를 흘린다. “ 버마 시절(1934), 경찰 생활을 하신 분입니다. 얼마 전에 그만 뒀디요. 그 후, 파리와 런던의 밑바닥 생활 (1933)을 하시었습네다. ” 여자는 영국 남자에게 그 이유를 묻는다. 소맥을 젓지 않고 흔들어 마신 남자는 짖지 않고 (꼬리나) 흔드는 푸들은 되고 싶지 않았소 _ 라고 대답한다. 점점, 그 남자가 사용하는 하드보일드한 랭귀지의 조탁 능력과 피 끓는 웜바디에 빨려드는 여자. 여자는 남자에게 정열의 빨간 추파춥스를 던진다. 무림고수에게서나 느낄 수 있는 치, 치치치명적 필살기. “ 오늘 저와 뜨밤 어때요? ” 남자는 냉정하다. “ 우린 서로 어울리지 않아(하이스미스 소설 제목) ” 민망한 여자, 신경질적이다. “ 어머, 나 이대 나온 여자야아아악 !!! 겁 없이 까칠하시다. 아니, 까칠해서 겁이 없나. 호호호.” 남자는 술에 취한 듯 혼잣말을 한다. “ 위선 말고 오로지 직선 !! ” 


조지 오웰의 책 세 권(위건 부두로 가는 길, 버마 시절, 나는 왜 쓰는가) 속 문장들을 읽으면서 내가 상상한 그는 이런 모습이었다. 그는 핵심을 에둘러 말하지 않고 서둘러 말하지만 조급하지 않고 여유가 있다. 또한 진지하지만 정색하지 않는다. 무엇보다도 오웰의 문장은 감성에 젖지 않되 마음을 흔들 줄 안다. 전형적인 내유외강의 문장이다. 앗, 외유내강이었던가. 이런 그가 달달한 칵테일이나 홀짝홀짝 마실 것 같지는 않다. 공업용 알코올이 그대의 오장육부를 녹이더라도 잔을 꺾는 법은 없으리라. 그는 무조건 스트레이트 원 샷 풀 배팅하는 남자. 허억, 나의 죽음을 알리지 말라. 으으. 물론 이것은 오로지 나만의 느낌적 느낌의 느낌이다. 느낌..... 아니까 !


명료한 언어의 적은 위선이라고 강조했던 오웰은 << 나는 왜 쓰는가 >>에서 다음과 같은 문장으로 끝을 맺는다. “ 어떤 책이든 정치적 편향으로부터 자유로울 수는 없다. 예술은 정치와 무관해야 한다는 의견 자체가 정치적 태도인 것이다...... (중략) 내 작업들을 돌이켜보건대 내가 맥없는 책들을 쓰고, 현란한 문장 구절이나 의미 없는 문장이나 장식적인 형용사나 허튼소리에 현혹되었을 때는 어김없이 정치적 목적이 결여되어 있던 때였다. ” 


20세기 영국 작가 중에서 가장 이상적인 작가는 누구냐고 묻는다면 조지 오웰을 뽑고 싶다. 제국의 개가 되어 불의에 짖지 않고 (꼬리나) 흔드는 일을 거부했던 조지 오웰은 내게 “ 감성에 젖지 않되 마음을 흔드는 방법 ”을 가르쳐준 인물이었다. 그의 가르침을 따라 소맥을 탈 때 (젓가락으로) 젓지 않되 (맥주잔만) 흔들어서 맛있게 주조하는 방법을 터득하게 되었다, 웽?! 캬, 이 맛에 소맥을 만다. 이게 다 오웰 덕분이다. 


그는 문학사에서 언과 행이 완벽하게 일치했던 몇 안 되는 인물이었다. 평소에는 입 바른 소리를 하던 사람도 정작 자신의 문제로 귀결되면 반갑게 꼬리를 흔들다가도 느닷없이 이빨을 드러내기 마련. 프랑스적인 너무나 프랑스적인 카뮈는 죽을 때까지 알제리의 독립을 반대했다. 제국의 시민이었던 그의 변명이 명불허전이다. 프랑스 제국으로부터의 알제리 식민지 독립이나 자유보다 중요한 것은 우리 엄마의 안녕이오, 라고 그가 말했을 때 나는 카뮈에게 실망했다. 엄마가 죽었다, 라는 문장으로 세계적 명성을 쌓은 그가 피식민지 국가의 자유보다 우리 엄마 개인의 안녕이 더 중요하다고 말하는 마마보이였다는 사실에 실망한 것이다. 일본 제국의 식민지 시절을 경험했던 한국인으로서 솔직히 카뮈에게 죽빵 한 대 날리고 싶은 심정이었다. 그 당시, 프랑스로부터의 독립과 자유를 위해 죽은 알제리 사람은 100만 명이 훌쩍 넘었다. 주로 프랑스 군경이 자행한 고문과 집단 학살의 결과였다. 고다르도 마찬가지다. 스스로를 마오이스트라고 부르고 철저하게 사회주의 노선을 주장하며 제 3세계 식민지 국가의 독립과 자유를 외쳤던 그는 정작 베니스 영화제에서 알제리의 독립 투쟁을 그린 걸작 << 알제리 전투 >> 가 상영되자 항의 표시로 그 자리를 박차고 퇴장했다. 영화인이 할 수 있는 가장 강한 메시지인 셈이다. 그들은 결정적 순간에는 제국주의 승냥이 속내를 드러낸 것으로 제국주의의 위선을 낱낱이 고발했던 오웰과는 정반대의 길을 선택을 한 것이다. 오웰은 1950년 1월 21일, 눈을 감는다. 그의 나이 47세였다. 조지 오웰을 추천한 이유가 무엇이냐고 묻는다면 이렇게 대답하겠다. “ 묻지 말고 오웰로 가. 이유는 없어. 오웰이니까.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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기억의집 2023-01-18 21:13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전 근데 1984읽고 조금 오웰을 다시 생각하고 있어요…

곰곰생각하는발 2023-01-19 11:41   좋아요 0 | URL
오, 반가워요. 기억 님. 1984에 대한 다른 생각이 궁금하네요.

기억의집 2023-01-20 11:26   좋아요 2 | URL
저도 오디오북으로 1984 다시 들었는데 여성을 묘사하는 부분이 너무 실망해서.. 이게 젊었을 때는 그걸 못 느꼈는데. 첫장면은 솔직히 강간 시도거든요. 범죄고.. 만약에 내가 그런 생각을 하고 그 다음으로 그건 범죄다라고 인식하는 장면이 나왔다면 1984의 첫장면은 아무 문제가 되지 않었을 건데.. 명백히 범죄자의 마인드입니다!!! 새해 복 많이 받으세요~ 저는 오늘 내려가서 바쁘네요!!!

곰곰생각하는발 2023-02-12 07:14   좋아요 0 | URL
헉, 그래요. 전 이 작품 하도 오래 전에 읽어서 생각이 나지 않넹ㅅ,
그 당시에는 확실히 여성에 대한 인식이 성립되지 않았었죠. 기회가 되면 다시 한번 읽어야겠네요.
댓글 늘 늦어 미안해요. 제가 알라딘 방문이 뜸해서요. 건강하시죠 ?

기억의집 2023-02-12 11:14   좋아요 0 | URL
네~ 건강 한 것 같은데, 이번에 장염 걸려서 엄청 고생했어요. 장염인데 오한과 근육통과 헛구역질때문에… 감기인 줄 알고 오인해서… 아무래도 저 때 여성을 주체적이고 독립적으로 살아야할 개인으로 보기엔 힘들었을 것 같긴 해요. 유럽이 여성참정권도 늦게 도입돼서.. 우리 나라가 생각보다 근대화나 현대화 과정이 빠른 나라더라고요!! 곰발님도 건강하세요!!! 늦는 답변에는 그렇게 신경쓰지 않어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