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단순한 열정 (무선) - 문학동네 세계문학전집 99 ㅣ 문학동네 세계문학전집 99
아니 에르노 지음, 최정수 옮김 / 문학동네 / 2012년 11월
평점 :
자기객관화라는 환상
여러분에게 질문 하나 던져보자. " 사실적 ㅡ " 와 " 사실 ㅡ " 은 동일한 말일까 ? 에둘러 말하지 말고 서둘러 결론을 말하자면 " 사실적 표현 ㅡ " 이라고 했을 때 그것은 최대한 사실에 가깝게 표현(유사성)을 했다는 뜻이지, 사실 그 자체를 의미하는 것은 아니다. 예를 들어서, 학생 A는 저녁 7시까지 공부하고 나서 8시에 술집에서 소주를 급하게 병나발 분 후 식당 종업원과 싸운다. 그리고 9시에 집에 도착했다는 사실을 두고 " 학생 A는 저녁 7시까지 도서관에 남아 공부했다. 그는 9시가 되어서야 집에 도착했다 " 라고 했을 때 이 문장은 사실적인가 아니면 사실인가 ?
사실을 나열하는 것과 사실에 가깝게 묘사하는 것은 같은 듯하지만 다르다. 그런데 우리는 이 사실을 자주 혼동한다. 책(이나 영화) 읽고 나서 잘난 척하기로 유명한 내가 1년 전에 에니 아르노의 << 단순한 열정 >> 이라는 책을 읽고도 그동안 안 읽은 척했던 이유는 이 소설이 매우 마음에 들지 않았기 때문이다. 많은 이웃들이 이 소설을 극찬했던 터라 똥물을 붓고 싶지 않았던 것. 그래서 뒤늦게 느닷없이 고백한다. " 난 이 책, 존나 구렸어.... "
이 소설을 소개하는 사람들은 모두 다 앵무새처럼 똑같은 멘트를 친다. " 에니 아르노는 경험하지 않은 것은 쓰지 않는다. " 다시 말해서 에니 아르노는 " 사실적 ㅡ " 이라는 소설적 장치를 제거하고 " 사실 " 만을 적시하는 작가라는 것이다. 요즘 한국 문학에서 유행하는 오토 픽션1)의 대가라는 것. 오, 마이, 갓. 지저스, 크리스마스, 이브다야. 하지만 이것은 착각이다. 그녀는 자신이 경험한 것만을 사실 그대로 나열하는 것이 아니라 그냥 자신이 경험한 이야기를 사실적으로 묘사했을 뿐이다.
다시 말해서 << 단순한 열정 >> 은 자전 소설이 아니라 자전적 소설인 것이다. 인간은 그 어떤 식으로든 자신의 감정에 100% 솔직할 수 없다. 완벽한 자기객관화란 허상을 뿐이다. 그래서 나는 이런 종류의 오토 픽션에 대하여 시큰둥한 편이다. 일단, 재미가 없다. 자기 스스로를 굉장히 솔직하다고 믿고 있는(착각하고 있는) 작가에게 조금 질리기도 한다. 이 작품은 에세이로써는 훌륭할지는 모르지만 문학으로써는 높은 점수를 줄 수 없다. 나 이렇게 솔직한 사람이야, 라고 자랑하는 작가보다는 차라리 내 구라에 속았지롱, 이라고 말하는 스티븐 킹이 낫다. 소설의 궁극적 재미는 뻥이다.
1) 내가 모 이웃에게 남긴 댓글 : 라면을 끓였다고 했을 때 보통 그것을 " 자신이 만든 요리 " 라고 말하지는 않잖아요. 그것은 어디까지나 식품 공장에서 만든 상품에 불과하니까요. 스프를 넣고 면발을 익혔다고 해서(그것은 요리가 아니라 단순히 음식에 불과합니다) 내가 만든 요리가 될 수 없는 것처럼 사실이라는 재료 몇 개를 정직하게 이어붙였다고 해서 그것이 문학적 문장이 될 수는 없다고 생각합니다. 라면이 요리가 되려면 그것을 만드는 사람 고유의 레시피가 요리에 반영이 되어야만 합니다. 라면을 끓일 때 콩나물도 넣고, 전복도 넣고, 재료를 넣는 순서도 독창적이어야 아무개표 요리가 되죠. 저는 이 과정이 문학이라고 생각합니다. 사실이라는 재료(면발, 스프)에 덧대어 콩나물,전복, 조미료 첨가, 불의 세기를 종합적으로 판단해서 적재적소에 적용할 때 좋욘 문학적 문장이 완성되는 것이 아닌가 싶습니다. 저는 오토 픽션이라는 게 하나의 환상에 불과하지 않을까 싶습니다. 오토 픽션 주장하면서 트위터에서 쓰던 글 무단으로 인용해서 작품이랍시고 내놓는 작가들 보면 아 이 인간들은 라면을 끓이고는 " 아, 나 오늘 집에서 열심히 라면 요리를 만들어서 먹었어. " 이렇게 말하는 것 같아서 웃기더라고요. 작가라면 적어도 음식과 요리의 차이는 분별할 수 있어야 된다고 생각합니다. 저는 이렇게 말하렵니다. 멍청아, 그것은 너의 요리가 아니라 농심에서 만든 신라면이잖아.