각하, 통촉하여 주시옵소서 !

청순과 미를 대표하는 여배우 가운데 한 명이 (심)은하'라면, 꼼수와 꾀죄죄한 염통을 대표하는 이는 각하'다. 하, 하, 하 ! 각하가 실시간 검색어 1위'를 달릴 때마다 대한민국 국격은 20단계씩 떨어지는 것 같다. 부동산 거래법 위반'으로 꼼수란 이런 것이다 를 몸소 가르쳐주시더니 이제는 상금' 가지고 분탕질을 한 모양. 최영 장군은 황금 보기를 돌 같이 하라, 하셨으나 한때 한 나라의 원수였던 각하는 십 원짜리 하나라도 황금처럼 알뜰히 챙겨라 하시니 그 근면 성실한 검약 정신'을 높이 살 만하다. 이런 정신으로 나라 살림을 했다면 좋으련만 나랏돈은 눈먼 돈이라 그리 신경을 쓰지는 않으셨던 듯하다. 하여튼 상금 세탁 사건에서 문제는 편법이 동원된다는 데 있다. " 돈 세탁 " 이라는 소리는 들어봤어도 " 상금 세탁 " 이란 소리는 처음 들어본다. 전 재산'을 헌납하겠다고 한 약속은 뻥이 된 지 이미 오래이고, 돌아가는 꼴을 보니 헌납은커녕 돈 긁어모으는 쟁기질에 재미를 붙이신 모양이다. 그래도 각하에게 돌을 던지면 안 된다. 예수가 말하지 않았던가 ? 죄 없는 자, 저 여인에게 돌을 던지라고 말이다. 재임 당시 G 20 정상 회의'를 개최한 것만으로도 21조 5천억원에서 24조 6천억원'의 경제 효과를 얻었다고 하지 않았던가. 잔치 한 번 벌이고 24조를 번 영웅'이 그깟 상금 5억 원에 붙는 세금을 안 내고자 그짓을 했을 리 없다. 설령, 했다고 치자. 24조를 벌어서 국위를 선양하고 국격을 높이신 분에게 상금 5억'은 코끼리 비스켓'이 아닐까 ? 그는 그저 쟁기로 돈을 긁어모으는 레크레이션 활동'을 했을 뿐이다. 하, 하, 하 ! 하도 어이가 없어서 농담 한마디 했다. 하여튼 각하는 꾀죄죄죄죄죄죄죄죄죄한 어르신'이었다. 쪽팔린 것도 모르고, 지금도 둥근 해가 떠오르면 공짜로 테니스나 칠 궁리를 하고 있을 것이다. 옛날에는 그래도 선비 정신이 있어서 이런 짓을 하면 " 전하, 통촉하여 주시옵소서 ! " 라며 항의하는 이도 있었으나 이제는 아무도 " 각하, 통촉하여 주시옵소서 ! " 따위를 내뱉을 위인은 없다. 쓰고 보니 " 각하, 통촉하여 주시옵소서 ! " 라는 말이 꼭 " 각하, 동쪽으로 튀십시요 ! " 라는 말처럼 들린다. 동해 바다 건너 현해탄 너머 일본으로 가시라. 쪽팔리다. 영화 카피에 자주 쓰이는 문장이 있다. < 당신이 있어 행복합니다 > 와 < 이런 사랑 또 없습니다 > 라는 문구인데, 실력 있는 카피라이터'라면 이런 문장은 쓰지 않는다. 하지만 각하를 설명할 때 가장 좋은 문장이기도 하다. 각하 ! 당신이 있어 불행합니다. 그리고 이런 사람 또 없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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르미에르 2014-01-11 16:57   좋아요 0 | 댓글달기 | 수정 | 삭제 | URL
"초지일관"을 1세기만 지나면 "이명박"으로 바꿀기세...
너 일하는게 이명박하구나
공부는 이명박한 마음가짐이 중요해.

캬~~~~역시 우리 각하!
싸나이들의 로망...자수성가의 롤모델!

빨리 국가가 운영하는 요양원에 모셔서...규칙적으로 운동도 시키시고 웰빙식단에 혼식하시고...그래야 오래 사실텐데...

지금껏 존경해본 인물이 없었는데...
앞으로 진심으로 각하를 존경하기로 결심했음.

곰곰생각하는발 2014-01-11 17:03   좋아요 0 | URL
각하 모실려면 요양원 앞마당에 꽃밭 불도저로 밀어버리고 테니스장 하나 만들어야죠.
그게 바로 전 대통령에 대한 예우 아니겟습니까. 테니스장 만들 때 같이 참여하자고요...

르미에르 2014-01-11 17:05   좋아요 0 | 댓글달기 | 수정 | 삭제 | URL
역시 저보다 생각이 깊으심...!

곰곰생각하는발 2014-01-11 17:10   좋아요 0 | URL
공 줍는 사람들은 요양원에 있는 노인들이 자원봉사하겠죠.... 저희는 그저 땅을 밀면 됨...

수다맨 2014-01-12 01:28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우리 각하를 보고 있으면 정말이지 존재의 신비와 추악이 뭔지 제대로 느낍니다...... 이 분에게 국가가 베풀어야할 것은 이제 무료급식, 무료숙박, 무료경호가 아닐까 싶어요. 교도소 말이죠...

곰곰생각하는발 2014-01-12 02:03   좋아요 0 | URL
안 됩니다.수다맨 님을 국정원에 고소할 수밖에 없군요.
교도소에 테니스장을 만들어야 하는데 차마 그짓은 못하겠군요.
각하에게 물어봐서 테니스 대신 탁구로 취미를 바꾸라고 해야 할 것 같습니다.

2014-01-13 10:07   URL
비밀 댓글입니다.

2014-01-13 16:28   URL
비밀 댓글입니다.
 

 

 

 

 

개동 아범 小史

 이 남자의 이름을 실명으로 공개하는 대신 그냥 " 개동 아범 " 이라고 하자. 왜냐하면 실명으로 거론하는 순간, 당신은 흥미를 잃고 이 서재를 빠져나갈 테니깐 ! 마치, 호리병 속 " 지니 " 가 홀연히 빠져나가듯이 말이다. 그는 스티븐 스필버그가 아니다, 크리스토퍼 놀란'도 아니며, 왕가위'도 아니다, 폴 토마스 앤더슨'도 아니다. 하지만 단언컨대 ! 그는 스필버그, 놀란, 왕가위, 앤더슨'보다 뛰어나다. 일단은 그냥 개. 동. 아. 범'이라고 부르자. 개동 아범'은 대학 진학에 실패하자 궁리 끝에 영화사에 들어갔다. 그가 하는 일은 스튜디오 촬영 현장에서 시다바리'를 하는 일이었다. 시다바리'라는 일본어가 당신의 주먹과 남근을 불끈 솟아오르게 한다면 그것은 " 정의감 " 이나 " 애국심 " 이 아니라 단순한 발기'다. 애국과 발기'를 혼동하지는 말자.

< 애국 > 은 " 조국의 빛난 얼을 되살리지 못하고 안으로는 자주 독립을 밖으로는 민주 번영에 이바지하지 못해서 " 피가 심장으로 몰리는 격정 신파'라면, < 발기 > 는 피가 남근으로 쏠리는 격한 욕정'이라 할 수 있다. 그래도 심기가 불편하다면 < 시다바리 > 대신 < 허드렛일 > 이라고 하겠다. 하여튼, 개동 아범'은 스튜디오에서 허드렛일'을 했다. 하지만 엄격한 연공서열을 감안한다면 그에게 영화를 연출할 수 있는 날은 까마득했다. 그러던 그에게 기회가 찾아왔다. 중소 스튜디오에서 입봉이 까마득한 조감독이나 기술 스태프들을 영입하기 시작했다. 짧은 기간 안에 감독으로 입봉할 수 있는 기회가 개동 아범에게도 찾아온 것이다. 아, 눈물이 앞을 가렸으리라. " 내 아들 개동아 ! 이 아빠. 메가폰 잡고 레디 고를 외치며 영화판을 호령하리라. "

그는 입사한 지 2년 만에 입봉'을 하게 된다. 경력이 미천하였으니 좋은 작품이 나올 리 없었다. 하지만 영화사는 이 개떡 같은 작품에 신경 쓰지 않았다. 당시 연간 제작 편수가 500편에 달했는데 이 가운데 심혈을 기울인 작품은 10편 남짓이었다. 박근혜 대통령이 즐겨 쓰시는 " 대박 " 을 기대하고 만든 영화는 열 손가락에 뽑을 수 있었다는 말이다. 나머지는 모두 동시상영용 B급 영화였다. 1+1 행사'를 위한 미끼 상품이었다. 일주일에 두 편 정도를 극장에 꾸준히 제공해야 하는 작품이 대부분이었고, 개동 아범은 바로 이 미끼 상품을 찍어냈던 것이다. 여기서 당신은 B급 영화'라는 말에 힌트를 얻어서 " 개동 아범 " 이 " 에드워드 우드 " 라고 추측할지 모르겠지만 당신의 선택은 틀렸다. 그는 에드우드'가 아니다. 하여튼 B급 영화의 생명은 작품성이 아니라 속전속결'에 있다.

제작비는 정해져 있다. 그리고 사시사철에 한 편씩 영화를 개봉해야 했다. 촬영을 빨리 끝내야 편집 및 사운드 녹음을 해야 하니 촬영을 빨리 끝낼수록 보다 좋은 작품'을 만들 수 있다. 왕가위나 코폴라 흉내 낸다고 게으름을 피웠다가는 영화사에서 해고당하기 쉽다. 개동 아범에게는 영화란 예술 창작이 아니라 그냥 납품 기일에 빵구나지 않고 주문량을 채워주는 것, 그 이상도 이하도 아니었다. 개동 아범은 성실했다. 배우들이 자신의 연기가 못마땅해서 감독에게 " 베이비, 원 모어 타임 ! " 을 외치고는 했지만 그는 항상 이렇게 말하고는 했다. " 열정 따위, 개나 줘 ! " 납품 기일에 맞춰야 하기 위해서는 시간이 모자랐기 때문이었다. 1년에 4편 정도 영화를 만들어 내놓아야 하는 스케쥴은 박정희 때 봉제 공장 노동자가 각성제를 먹으며 살인적인 공급 물량 주문을 소화해야 했던 것만큼이나 빠듯했다.

사람들은 A급 감독이 만든 A급 영화를 보기 위해 영화관을 간 것이지 B급 영화를 보기 위해 영화관을 찾는 것이 아니었다. A와 B의 관계는 건빵과 별사탕의 관계가 아니라 짜장면과 단무지의 관계였다. 없으면 찾게 되지만 있어도 그저 한두 개 입에 물다 버리게 되는, 그런 단물 쏙 빠진 단무지 말이다. B무비란 그런 존재였다. 냄비 뚜껑 찍어내듯 영화를 만들다 보니 영화는 모두 다 거기서 거기였다. 개동 아범'은 어느 정도 시스템이 돌아가는 꼴을 파악한 후 새로운 전략을 짜기 시작했다. 버릴 것은 확실하게 버리가 챙길 것은 확실하게 챙기자는 전략이었다. 그러니깐, 팔 할은 버리고 이 할'만 제대로 찍자는 것이었다. 그래서 그는 80분은 버리고 20분을 챙겼다. 이 20분은 정말 심혈을 기울여서 찍었다. 훗날, 이 20분은 전설이 되었다. 그의 이름은 스즈키 세이준'이었다.

개인적인 취향을 토대로 말하자면 일본 영화 감독 가운데 가장 뛰어난 이는 구로자와, 오즈 야스지로 그리고 스즈키 세이준'이다. 팔 할은 엉터리였지만 이 할'이 빛났던 감독. 스즈키 세이준이 없었다면 오우삼은 존재하지 않았다. 열 번 잘해도 한 번 잘못하면 욕 먹는 것이 현실이지만 스즈키 세이준은 열 번 잘못해도 한 번 잘해서 칭송을 받는 감독이었다. 그의 영화는 그가 심혈을 기울인 10분 분량의 장면만 보면 된다. 맛보기'로 " 관동무숙 " 예고편을 소개한다.  예고편 맨마지막에 나오는 저 장면을 볼 때는 너무 아름다워서 똥 쌀 뻔했다. 예고편만으로도 심장이 떨린다. 이 말에 동의하지 않는다면 당신은 종북 세력'이다. 나와 다른 모든 것은 다 종북이니깐 말이다. 요즘 박근혜 정권에서 유행하는 코드 아니었던가 ! 버스 기사'가 정류장을 향해 뛰어오는 당신을 기다리지 않고 야멸차게 떠난다면 그 사람 또한 종북'이다. " 시원한 국물 맛은 청정원, 따끔하게 매운 맛(을 보여줄 때)는 국정원 !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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비로그인 2014-01-10 19:52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헉. 첫 문단만 읽고선 전 곰곰발님 얘긴 줄 알았음요! ^^;

스즈키 세이준.. B급의 탁월한 감각이 작정하면 얼마나 빅뱅을 일으키는지 보여준 감독인 것 같습니다. 지고이네르바이젠.. 그 작품 보면서 넋을 잃었었죠. 20년도 넘었는데 영화 디테일은 가물가물해도 그때 받았던 강렬한 인상 만큼은 잊을 수 없어요.

곰곰생각하는발 2014-01-10 20:33   좋아요 0 | URL
찌고네르.... ㅎㅎㅎㅎㅎㅎㅎ 걸작이죠. 전 그가 닛카츠에서 쫒겨나기 전엔 60년대 영화가 좋습니다. 세이준 영화제나 빨리 했음 좋겠네요. 다시 가서 보고 싶습니다.
저번 영화제 땐 박찬욱이 왔더라고요... ㅎㅎㅎㅎㅎ 같이 보았음..

나탈야 2014-01-10 20:29   좋아요 0 | 댓글달기 | 수정 | 삭제 | URL
2분 12초에 나오는 처자는 박근혜 가카- 인가요? 닮았는데 이쁘게 닮았네~! *^^*

곰곰생각하는발 2014-01-10 20:34   좋아요 0 | URL
음...-_- ; 1초 빙의 !

유구일턴 2014-01-11 10:08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변희재랑 싸우는 느낌? 문제는 변씨는 보수가 뭔지도 모르는 업자라는게 진실일겁니다. 김영환이나 박성헌의 이야기에도 귀기울여보시는건 어떠실른지요?

곰곰생각하는발 2014-01-11 14:53   좋아요 0 | URL
변희재가 보수도 아니라는 사실은 다들 알고 있을 겁니다. 김영환이나 박성헌의 목소리에도 귀기울여야 함은 옳지만 소수 의견은 거의 막히죠. 보수라는 핸드마이크는 새누리가 쥐고 있는데 보면 그냥 개 같습니다.
메피스토 펠레스 같은...

만화애니비평 2014-01-11 11:25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2013년 서재의 달인 등급 감축드리옵니다

곰곰생각하는발 2014-01-11 14:54   좋아요 0 | URL
왠 뒷북입니까... ㅎㅎㅎㅎㅎㅎ 감사하옵니다. 만애비 님, 서울 나들이 함 하십셔...

수다맨 2014-01-11 15:02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이거 나름 진지한 영화 같은데 은근히 웃기네요. 특히 저 선글라스 낀 사람과, 얼굴이 말처럼 길쭉한 사람 표정이 어딘지 코믹하게 느껴집니다 ㅎㅎ

곰곰생각하는발 2014-01-11 16:54   좋아요 0 | URL
항상 진지하지만 언제나 웃깁니다. 어설프면 웃기잖아요. 다음에 스즈키 영화제 하면 같이 보러 갑시다요.
 

 

 

 

 

 


 

 

 

왜 나는 A무비'를 버리고 B무비'를 사랑하게 되었나 !

 

 

- 외계로부터의 9호 계획 풀 영상

 

뤼미에르 형제가 1895년에 < 기차의 도착 > 이란 영화를 한 카페에서 상영했을 때 사람들은 기차가 가게 안으로 들어오는 줄 알고 놀라서 도망쳤다고 한다. 그 후, 영화는 가장 훌륭한 오락거리 가운데 하나가 되었다. 그런데 4,50년대에 텔레비전 시스템이 만들어지고 컬러 티븨'가 대중적으로 보급되자 영화 산업은 큰 위기에 빠진다. 이 불황을 벗어날 묘책은 딱히 없다. 박리다매 ! 예나 지금이나 안 팔린다 싶으면 " 1 + 1 행사 " 가 최고'다. 헐리우드는 영화 한 편을 볼 수 있는 티켓 가격으로 개봉작 두 편을 볼 수 있도록 했다. 그러니깐 한 편은 서비스 차원에서 영화사가 제공하는 것이었다. 그래서 탄생한 것이 바로 A급 영화와 B급 영화'다. A급 영화는 말 그대로 영화사에서 심혈을 기울여 만든 영화였다. 최고의 감독과 배우 그리고 스탭이 참여해서 오랜 시간 공을 들여 만들었다. 반면 B급 영화'는 쪽수만 채우면 되었다. 제작비는 터무니없이 적었고,

촬영 기간은 평균 한두 달'을 넘지 않았으며 감독, 배우, 스탭 모두 3류를 기용했다. 메이저급 영화 제작 기간이 보통 1,2년이 소요되었다면 B급 영화는 1,2달 안에 완성해야 했던 것이다. 사정이 이러하니 제대로 된 영화가 나올 턱이 없었다. 그리고 영화사 또한 B급 영화에는 신경을 쓰지 않았다. 흥행을 좌우하는 것은 A급 영화이지 B급 영화가 아니기 때문이다. B 무비는 일종의 서자'였다. 홍길동이었다. 옛날 티븨 광고 중 " 공부는 못해도 좋다, 튼튼하게만 자라다오 ! " 라는 카피'가 있었듯이, 영화사 사장은 B무비에 대해 " 영화는 후져도 좋다. 제발... 물량만 대다오 ! " 라는 자세를 시종일관 유지했다. A급 영화가 제작비 100으로 1년에 한 편을 뽑아냈다면 B급 영화는 제작비 1로 1달에 한 편을 뽑아냈으니 관심을 가질래야 가질 수가 없었다. 망해도 상관 없어 !

그런데 이 무관심이 창작의 자유를 선사했다. 제작부가 촬영 현장을 쫒아다니며 간섭을 하지 않다 보니 B무비 감독 입장에서는 자신이 만들고 싶은 것을 마음대로 만들 수 있었다. 개성은 곧 창조'였다 ! 한때 나는 A급 영화만 찾아서 보았다. 소위 먹물들이 좋아하는 아트 무비'에 빠져서 살았다. 처음에는 아카데미 작품상을 탄 영화만 보다가 어느 순간부터는 칸느, 베를린, 베니스 영화제가 건드린 작품만 보게 되었다. 그리고 정성일의 평론을 열심히 읽었다. 지금에 와서 고백하자면 저 영화가 무엇을 말하려고 하는지 잘 몰랐고, 정성일이 무슨 소리를 하는지 도통 알 수 없었지만 나는 언제나 엄지손가락 두 개를 치켜세우며 브라보를 외쳤다. 테오 앙겔로플로스여, 가는 길에 영광 있으라 !  정성일이여, 당신도 가는 길에 영광 있으라 ! 그런데 그것은 일종의 기만이었다. A급 취향을 공유함으로써 A 계급에 묻어가려는 허세'에 지나지 않았기 때문이었다.

내가 A급 영화에 대해 불만을 가지면서 의심을 하기 시작한 계기는 코폴라 감독의 < 지옥의 묵시록 > 때문이었다. 영화는 A급 감독이 만들었기에 잘빠진 A급이었다. 당시에는 최고 제작비가 투입된 영화였다. 감독은 약속했던 제작비'를 2배 이상 초과했고 촬영 마감은 약속 기한을 넘겨서 기약없이 늘어졌다. 제작에 참여했던 제작사 몇몇이 파산했다. 그런 우여곡절 끝에 만들어진 영화가 바로 < 지옥의 묵시록 > 이었다. 그런데 나는 이 영화가 과연 제작사가 돈을 천문학적으로 쏟아부을 만큼 훌륭한 영화인가라는 의문이 들기 시작했다. 영화사에 길이 남을 걸작 운운하는 것은 코폴라 감독에게는 영광스러운 말이지만 그 사람 때문에 파산한 영화사는 속에서 열불이 나지 않을까 ? 당초 제작비를 가볍게 뛰어넘고 촬영 기한을 무한정 연장시킨 것은 감독의 열정이 아니라 뻔뻔한 욕망은 아닐까 ?

그런 생각이 뒤죽박죽 섞이면서 내가 이 영화에 대해 내린 결론은 " 엿먹어라 ! " 였다. ( 오, 이 영화를 사랑하는 이에게는 못할 소리이지만 말이다. 이해해 주시길... ) 말론 브란도가 어둠 속에서 호러 !  호러 ! 라고 외칠 땐 웃겼다. 죽도 밥도 아닌, 어정쩡한 관념'은 기만처럼 느껴졌다. 그때 혜성처럼 등장한 영화가 바로 B무비'였다. 에드우드가 촬영 프로세스 막 위로 시계 부품 나사 같은 우주선을 실로 매달아 둥실둥실 띄울 때 진심으로 감동했다. 그리고 공동 묘지에서 배우들이 이리저리 뛰어다닐 때마다 바지단에 쓸려서 묘비와 십자가가 휘어질 때에도 진심으로 감동했다. 죽은 자를 기리기 위해서 금강으로 묘비를 세우는 것이 인지상정이거늘, 왜 저 묘지의 주인은 라면 박스로 십자가와 묘비를 세웠을까 ? 그리고 배우가 문을 쾅 하고 닫을 때 세트 전체가 흔들리면 B무비이고, 흔들리지 않으면 A무비라는 사실도 배우게 되었다. B무비에 사용된 세트와 소품은 말 그대로 진짜 같은 게 하나도 없었다. < 외계에서 온 9호 계획 > 에서는 백악관이 등장하는데 소품이라고는 철제 책상 하나에 전화기 두 대가 전부였다.

배우가 여기는 백악관이라고 다급하게 말하니 그냥 백악관이라고 믿을 수밖에 없었다. 미국의 심장인 백악관이 이 정도이니 우주선 내부라고 해서 별반 다르지 않겠지만 그래도 백악관보다는 미장센'에 대해 신경을 쓰지 않았을까, 라는 나름대로의 추측은 여지없이 무너졌다. 어찌된 영문인지 지구보다 문명이 10000000000000000000배는 발달한 우주선은 백악관보다 더 후졌다. 우주선 안에서 우주인과 지구인이 싸우는데 탁자 하나가 발라당 발랄하게 뒤집어지는 장면이 나온다. 뒤집어진 탁자 다리는 놀랍게도 공사판 현장에서 볼 수 있는 각목으로 만들어졌다 ! 지구인보다 문명이 1000000000000000000배는 더 발달한 우주선 안에 놓인 탁자가 각목으로 만들어졌다는 사실 앞에서 관객은 웃지도 못하고 울지도 못했다. ( 런닝 타임 1:14: 00) 저 빈곤함 앞에서 어찌 웃을 수 있겠는가.

그런데 이 조악함'은 오히려 좋은 쪽으로 빛을 발한다. B무비 속 세트장이 온통 가짜이다 보니 진짜인 배우에 집중할 수 있었다. 배우들은 빈곤한 리얼리티'를 어떻게 해서라도 회복시키기 위해서 몸 동작을 보다 과장할 수밖에 없다. 유일한 리얼리티를 확보한 몸은 그렇게 조악'함을 극복하기 위해 위악의 제스츄어'를 갖는다. 벨라 루고시와 뱀피라 그리고 토르 존슨'은 그렇게 애를 쓴다. 바로 이 애잔한 서정'이 나는 마음에 들었다. 그것은 비루해서 초라하지만 적어도 위선적이지는 않았다. 이 B급 서정은 통속과 일맥상통하는 구석이 있긴 하지만 통하지 않는 구석도 있다. 뒤돌아보면 내 아버지가 이룩한 가난한 살림살이는 우주선 안에 놓여 있던, 공사판 각목으로 만들어진 세간'과 다르지 않았고, 내 방에 놓인 책장과도 다르지 않았다. 공사판 각목으로 만들어진 탁자가 금칠로 위장을 했듯이,

내 책장은 폐자재로 버려진 나무토막을 간 톱밥을 압축해서 만든, 나무 무늬가 없으면서도 나무 무늬가 그려진 포장지로 덧입힌 것이다. 그것은 모두 낯익은 것들이었다. 그래서 내가 이 B딱한 서정'에 끌린지도 모른다. 중요한 것은 진짜냐 가짜냐가 아니다. 영화에서 중요한 것은 리얼리티 / reality'가 아니라 진실 / truth'다. 진실을 위해서는 리얼리티'가 도움이 될지는 모르겠으나 리얼리티가 부족하다고 해서 진실이 아니라고는 말할 수 없다. 영화 역사상 재능이 가장 떨어지는 감독으로 선정된 에드우드는 끝끝내 9회말 역전 홈런을 날리지 못했다. 60년대에는 싸구려 포르노를 찍다가 잊혀져 갔고, 무일푼으로 생을 마감했다. 그는 비록 영화 역사상 재능이 가장 떨어지는 감독이었지만 그가 가진 포부는 영화 역사상 가장 위대한 오손 웰즈'를 뛰어넘는 것이었다.

하지만 누가 알았으랴. 버려진 나무토막으로 만들어졌으면서 통나무로 만들어진 것처럼 위장을 한 책장을 보며 당신 영화를 떠올리는 팬이 있다는 사실을, 그리고 당신이 평생 동안 만든 영화의 총제작비보다 많은 제작비로 당신을 위한 최고의 영화를 만든 이도 있었다는 사실을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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까레이 2014-01-09 19:24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오 이 글 너무 좋습니당. B급 영화 최고. 저도 인생이 B급이라 그런지 B급에 끌리더군요 흐흐

곰곰생각하는발 2014-01-09 20:32   좋아요 0 | URL
감샇ㅂ니다. 영화 풀버전 올렸으니 감상하십시요. 내가 이 영화 보기 위해서 별 쑈를 다했는데이거 유투브에서 그냥 보여주니 뭔가 좀 억울하군요....

이거 영화관에서 보면 꽤 재미있습니다.

유다 2014-01-09 19:57   좋아요 0 | 댓글달기 | 수정 | 삭제 | URL
공감이어요 ㅋㅋㅋㅋ아 이 블로그는 책과 영화를 위한 것인가요

곰곰생각하는발 2014-01-09 20:33   좋아요 0 | URL
원래 알라딘에서 터를 잡았으니 뭐 책 영화위주로 쓰겠지만 제약은 하지않을 생각입니다.

비로그인 2014-01-09 20:16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저도 영화 관람 초창기부터 B무비에 빠졌고 지금도 좋아합니다. 중학생 때 너무너무 보기 어려웠던 B급 영화를 보고 싶어 몇 시간 동안 인터넷을 뒤졌던 기억이 나네요

곰곰생각하는발 2014-01-09 20:33   좋아요 0 | URL
오호, 삐 무비'라.. 어떠 영화가 보고 싶었나요 ?

비로그인 2014-01-09 20:52   좋아요 0 | URL
책 박찬욱의 오마주나 영화에 대하여 알고 싶은 두세가지 것들에서 알게 된 영화들이 많았던 것 같아요. 키아누 리브스와 데니스 호퍼가 주연한 기괴한 청춘영화 <리버스 엣지>나 중학교 교사가 핵폭탄을 만들어 위협하는 <태양을 훔친 사나이>, 시드와 낸시 감독의 데뷔작 <리포 맨>... 13일의 금요일같은 영화의 효시격인 마리오 바바의 <블러드 베이>나 조지 로메로, 웨스 크레이븐의 초기작들, 스즈키 세이준의 영화들.. 보고 싶은 게 참 많았죠. 끝내 다 봤어요

비로그인 2014-01-09 20:55   좋아요 0 | URL
톰 크루즈의 <위험한 청춘>(청춘 사업?이었나)이랑 영국 공포영화 <위커 맨>도 갑자기 기억나네요. 이 둘도 정말 보고 싶었는데 찾을 수가 없더라고요.

곰곰생각하는발 2014-01-10 02:59   좋아요 0 | URL
리버스 엣지'란 영화는 쉽게 구할 수 있었을 텐데요. 아마 요거 비디오로 출시가 되었었죠. 재미있었습니다. 리포맨도 삐급 영화 마니아들 사아이에서는 컬트 취급 받고는 했죠. 에밀리오 에스테베즈가 주연이었죠. 바바는 참 대단한 작가예요. 창의적이죠. 이런 말 하기 뭐하지만 피의 만' 도 보면 정말 고민하면서 갖가지 종류로 사람 죽이는구나... 그런 생각 들죠. 정말 다양하게 죽잖아요. 예술적으로다가...ㅎㅎ

마리오 바바 영화제 어디서 함 했음 좋겠네요... 색보정 잘해서 매끈한 화면으로 함 보고 싶군요...

글구 톰크루즈 고건 정확한 기억은 안 나ㅡㄴ데 위험한 청춘이 마을 겁니다. 칵테일 바에서 벌어지는 일 다룬 거잖아요. 뭐 럭키 비즈니스'인가.. 아니다... 하여튼 위험한 청춘이 맞을 ㅓ겁니다.

행인 2014-01-09 23:21   좋아요 0 | 댓글달기 | 수정 | 삭제 | URL
리얼리티와 트루 를 구분하신 대목이 탐복스럽네요! 예전에 드라마 황진이 (하지원 주연) 2006년도 였나 일회보고나서 더 보고 싶지 않다는 생각이 든 것이 동네 저잣거리에 뛰어나와 노는 아이들의 옷이 전부 새하얀 무명옷이라 어이상실이었어요. 아무리 HD 드라마 어쩌고 해도 HD의 고퀄이 단지 그 때깔을 위해 존재하는가 싶고 리얼리티는 어디갔나 했었죠. 그냥 이쁜 드라마 만드는 건가 싶어서 호기심이 사라지더라고요. 디테일의 리얼리티에 충실했던 사극만 본 사람으로서는 거부감들게 했었는데 그것이 또 트루를 추구하는데 방해요소였나? 생각하면 꼭 그렇지도 않은것 같아요. 영화도 많이 보는 편은 아니지만, 자본 A,B 급 영화나 비교적 자본으로부터 독립된 독립영화나 딱히 그래서 취향은 없고, 나름의 재미요소로 보는 편입니다. 근데 오늘 갑자기 B급 영화하니 급 생각나는 것이 백윤식 나오는 '지구를 지켜라' .. 그 영화 보면서 이런게 B급일까? 의식적으로 생각했던듯요. 보셨나요? 저는 아주 박장대소 전율 느끼며 감상했었죠. 여튼 리얼리티와 트루의 관계에 대한 생각을 유발하는 글이었어요! 스맛폰이라.. 대충 여기까지 ㅎㅎ 좋은 단상을 제공하신 글입니다. 헉헉.... 총총.

곰곰생각하는발 2014-01-10 02:30   좋아요 0 | URL
지구를 지켜라 같은 영화가 제대로 만든 삐 무비'였죠. 그리고 한국형 컬트 영화 반열에도 오른, 뭐 거의 축복같은 영화 아니겠습니까. 행복한 데뷔작이었습니다. 옷 깨끗한 머슴 옷 보면 성의가없구나 하죠.
하지만 삐급 영화는 깨끗하고 새옷을 입히려고 해도 옷 자체가 없어요..ㅎㅎㅎㅎㅎ.
저도 독립영화라고 해서 무조건 칭찬하고 그러지는 않습니다.
독립영화 중에도 안 좋은 영화는 많거든요. 하여튼 저는 너무 잘빠진 영화는 그닥 닿지 않더라고요.

heter 2014-01-10 01:26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B급 영화에 대한 탄생 배경이 재미있네요. 'B루하고 B참하고 B딱한' 모든 B급들, 저도 은근 좋더라구요.

가끔씩 들러서 페루애님 글 잘 보고 있습니다. 네이버 블로그에 글 올릴 때도 좋았는데, 알라딘이라 해서 못 오는 것도 아니니. :)

곰곰생각하는발 2014-01-10 02:31   좋아요 0 | URL
오호, 토리 님도 알라디너였군요.. 허허...
종종 마실 가겠습니다. 전 5,60년대 괴물 삐- 무비'를 좋아합니다. 거대 개미의 습격''' 막 이런 거...
인형을 가지고 괴물이라며 비명 지를 때 엄청 재미있더라고요....

heter 2014-01-10 16:51   좋아요 0 | URL
알라딘에서 책을 사긴 하지만... 알라딘 서재는 이용하지 않고 있어서... 여전히 네이버 블로그 이용 중입니다. 비급 무비 찬양, 좋아요. 저도 찬찬히 봐봐야 될 것 같습니다.

곰곰생각하는발 2014-01-10 20:36   좋아요 0 | URL
좋은 글이니 양쪽 다 올려주십셔.. ㅎㅎㅎ.

수다맨 2014-01-10 06:44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중요한 것은 리얼리티가 아니라 진실이다... 아 오늘도 또 이렇게 배웁니다.
사실 저는 영화를 잘 보지 않습니다. 1년에 많아야 10편 정도입니다. 한때는 영화관에 꽤나 들랑거렸는데 지금은 안 간지 너무 오래되었네요-_-;;;
영화를 많이 보지도 않고 이런 말 하기는 그렇지만, 한국에는 제대로 된 A급 영화도 많지 않고, 확실한 B급 영화도 더더욱 드문 것 같아요. 그저 A랑 B사이에서 어중간하게 포지션만 잡는 영화들만 즐비한 듯합니다.

곰곰생각하는발 2014-01-10 15:42   좋아요 0 | URL
종종 리얼리티에 목숨 거는 사람들이 있어요. 야, 야야야... 사실적이지 않잖아. 뭐, 공룡 cg 너무 티난다. 등등등등.... 그런데 가만 보면 리얼' 한 것은 본질은 리얼'하지 않다는 거잖아요.
비슷한 얼굴은 비슷한 얼굴이지 그 얼굴을 보고 리얼하다고 하지는 않습니다. 리얼'과 트루'는 분류를 해야 하는데 사람들은 이걸 혼동해요. 예를 들면 쥬리기 공룡은 리얼'하기 때문에 트루'라고 말하고, 티라노의 발톱은 리얼하지 않기에 진심'이 결여되었다고 한다면 ? 과연 맞는 말일까 ? 그런 생각이 듭니다. 리얼한 것은 진짜로 받아들이면 곤란하다는 거죠....

르미에르 2014-01-10 18:11   좋아요 0 | 댓글달기 | 수정 | 삭제 | URL
저도 아이돌 보다는 인디음악을 선호합니다.
단 음악이 인디지...돈은 아이돌 만큼 벌기를 원합니다 -_-;

곰곰생각하는발 2014-01-10 20:35   좋아요 0 | URL
그럼요. 음악은 인디적으로 돈은 아이돌스럽게 벌어야 합니다.
 

 

 

 

 

외계 생명체 괴물 영화 베스트 10'

 

 

 

 

10. 우주생명체 블롭 ( 1988, 척 러셀 )

09. 인 투 피치 블랙 ( 2000,

08. 외계인 삐에로 ( 1988, 스티븐 치오도 )

07. 우주의 침입자 ( 1978, 필립 카우프만 )

06. 스타쉽 트루퍼스 ( 1997, 폴 베호벤 )

05. 우주 전쟁 ( 2005, 스티븐 스필버그 )

04. 스타트랙 시리즈

03. 프레데터 시리즈

02. 괴물 ( 1982, 존 카펜터 )

01. 에일리언 ( 1979, 리들리 스코트 )

 

 

 

 

 

 


 

 

한때 " 컬트 영화 " 에 대한 갈망'이 있었다. 컬트'란 특정 영화에 대한 숭배를 뜻하는데 " 이음새 없고 잘빠진 A급 주류에 대한 비주류의 삐딱한 B 서정 무비 " 라 할 수 있다. 숭배 목록에는 주로 공포 영화나 특수 효과가 조악한 괴물 영화들이 이 목록을상당수 채웠다. 대부분의 평론가들이 엄지손가락을 < UP > 이 아닌  < DOWN > 을 향해 찍어눌렀기에 구해 보기도 쉽지 않았다. 그런데 " 구해 보기 힘 " 이 드는 상황'이야말로 컬트族에게는 극복해야 할 지상 과제'처럼 느껴졌다. 쉽게 구해서 볼 수 있다면 그것은 더 이상 컬트'가 아닌 것'이다( 라고 그 당시에는 생각했다 ) 에드워드 우드의 < 외계로부터의 9호 계획 > 이라는 영화를 시네마떼크에서 드디어 보았을 때는 너무 기뻐서 눈물이 앞을 가렸다. 영화 역사상 최악의 영화로 선정된 이 영화는 정말 이보다 더 나쁠 수는 없었다.

SF 영화의 화룡정점은 우주선이나 외계인이 출몰하는 장면일 텐데 영화 속에서 등장한 우주서는, 아...... 꾀죄죄죄죄죄죄죄죄죄죄했다. 테엽 시계 부품처럼 생긴 우주선 위로 끈이 보였다. 줄에 매달린 인형극을 보고 있는 듯했다. 영화 속 우주선은 떠다니는 것이 아니라 매달린 것이다. 여기저기서 박장대소하는 소리가 들렸다. 하지만 이 웃음은 조롱이 아닌 어떤 숭고한 기쁨이었다. 나는 그만  침대에서나 내지를 법한 교성을 질렀다. 끈적끈적한 소리였다. 50년대 헐리우드에서 동시 상영용 영화로 만들어진 외계 괴물 삐 무비'는 대부분 조악했다. 스티븐 맥퀸이 출현한 58년도 영화 < 블롬 > 도 마찬가지'였다. 외계에서 유입된 끈적끈적한 액체가 닥치는 대로 사람들을 먹어치운다는 이야기인데 특수 효과가 어색하다 보니 무섭기는커녕 웃기기만 했다.

우우, 해야 할 때 와와, 했고 와와, 해야 할 때 우우, 하게 만드는 매력이 있는 영화였다. 척 러셀 감독이 만든 10.< 우주 생명체 블롬 > 은 이 엉터리 영화를 그럴 듯하게 만들었다. < 나이트메어 3 > 에서 " 펑크한 감각 " 을 선보인 척 러셀 감독은 < 우주 생명체 블롬 > 에서 정말 끈끈한 게 무엇인지를 제대로 보여준다. 바끄네 비서실장인 김기춘이 초원복집'에서 내뱉은 " 우리가 남이가 ? " 라는 끈끈한 서정 따위는 비교가 되지 않을 정도로 끈끈하다. 역시 내 취향은 이런 쪽이다. 주목해야 될 부분은 각본이다. 낯익은 이름이 보이다. < 쇼생크 탈출 > 을 만든 프랭크 다라본트'다. 그가 작정하 고 만든 B급 취향의 영화 < 미스트 > 이전에 이미 < 우주 생명체 블롬 > 이 있었던 것이다.   09. < 인 투 피치 블랙 >08. < 외계인 삐에로 > 는 보지 않았다. 

07. < 우주의 침입자, 1978 > 는 돈 시겔 감독이 만드 걸작 < 우주의 침입자, 1956 > 를 리메이크한 영화'다. 필립 카우프만'이 만든 영화도 좋지만 원판'이 워낙에 뛰어나서 상대적으로 묻히는 감이 있다. 돈 시겔 이후로 만들어진 우주의 침입자 리메이크'는 모두 불초 소생'이라 할 만하다. 아무리 아버지(오리지날) 을 닮으려고 해서 닮을 수 없다. 원판불변의 법칙'이다. 아벨 페라라 감독이 93년도에 만든 < 바디 에이리언 > 과 2007년도에 만든 < 인베이젼 > 모두 불초라 할 수 있다. 이 영화가 나오기 전까지, 대부분의 영화는 < 적 > 은 모두 외부'에서 왔다. 그래서 이웃들은,내부에 있던 사람들은, 힘을 모아 외부에서 온 괴물'을 물리친다. 하지만 이 영화는 다르다. 적은 외부에 있는 것이 아니라 내부에 있다. 믿었던 이웃이 바로 신체 강탈자'이다.

 06. < 스타쉽 트루퍼스 > 는 지나치게 과소평가된 영화'다. 그저 그렇고 그런 영화 취급을 했는데 이 영화는 그저 그렇고 그런 영화'가 절대 아니다. 훗날 제대로 된 평가'를 기대해 본다. 이 영화는 로버트 하인라인이 쓴 동명 소설을 바탕으로 만들었는데 당시에는 지나친 폭력성과 군국주의적 이미지 때문에 논란이 있었지만 내가 보기에는 전체주의'에 대한 조롱으로 읽힌다. 이 영화에는 군대'라면 당연히 있어야 할 전략과 전술이 전무하다. 그냥 벌레 같은 적이 쳐들어오면 떼거지로 나가서 우왕좌왕하는 게 전부'다. 폴 베호벤은 목적도 없이 우르르 몰려나가서 처참한 죽음을 맞이하게 되는 트루퍼'들을 통해 정치적 인간'이란 무엇인가, 라는 질문을 던진다. 왜 싸우는가 ? 어떤 신념을 가지고 싸우는가 ? < 스타쉽 트루퍼스 > 과 과소평가된 영화라면

05. < 우주 전쟁 > 은 과대 포장된 영화'다. 21세기 시작되면서 칸느는 집요하게 스티븐 스필버그를 정략적 이해 관계를 위해서 밀어부치는 경향이 있다. 그 노림수가 너무 뻔해서 뻔뻔해 보인다. 이 영화는 좋지도 않고 나쁘지도 않다. 이음새 없는 잘빠진 특촬과 최고의 스탭과 배우가 모여서 만든 영화이니 꾀죄죄죄죄한 에드워드 우드 영화에 비하면 반지르르르르하지만 딱 거기까지'이다. 02. < 괴물 > 은 정말 뛰어난 영화'다. < 에일리언 > 이 1979년도에 만들어진 영화라는 사실을 알게 되면 감동이 배가 되듯이, 이 영화 또한 시대적 핸디캡을 감안하면 놀라운 영화'다. 외계 생명체가 인간의 몸을 숙주로 이용한다는 신체 강탈 서사'를 차용했다. 존 카펜터는 공포 영화계의 소크라테스다. 흥미진진한 볼거리를 만들어냈다.신체는 변형되고 쪼개지며 합쳐진다. 

만약에 당신이 이 영화가 주는 교훈이 무엇이냐며 훈계를 한다면 나 또한 똑같은 방식으로 되돌려줄 수 있다. < 쉰들러 리스트 > 가 당신에게 주는 교훈은 무엇인가 ? 혹은 < 지옥의 묵시록 > 이 당신에게 끼친 영향은 ? 전쟁'은 나쁘다 ?! 어떻게 해서든 교훈을 억지로 끄집어내려는 태도'는 잰 체하는 먹물 근성'에 지나지 않는다. 현실을 날것 그대로 직시하게 만드는 영화는 좋은 영화이지만 현실을 왜곡해서 교훈을 강요하는 영화는 나쁜 영화'다. 내가 스티븐 스필버그 영화를 좋아하지 않는 이유는 지나치게 보수적인 가치로 설교를 하려 하기 때문이다. 01. < 에일리언 > 은 위에서도 언급했듯이 1979년에 만들어졌다는 사실이 기적처럼 보인다. 2013년에 만들어진 SF 영화보다 황홀하다. 여기에는 에이리언을 디자인한 HR.기거'의 공이 크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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비로그인 2014-01-08 18:22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무시받고 핍박받던 토마토 괴수(?)들이 인간들을 습격하는 [토마토 대소동]도 낑겨 주세욧~ (읭?)

전 존 카펜터의 [괴물]도 좋지만 고2 때 재개봉관에서 우연히 보게된 [프린스 오브 다크니스]가 참 눅눅하니 좋더라구요. 25년이 지났고 그 동안 다시 본 적도 없는데 아직까지 장면들이 또렷한 거 보면.. 아, 이 영화는 괴수영화는 아니구낭.. ^^;

곰곰생각하는발 2014-01-08 19:09   좋아요 0 | URL
아마 이 목록은 에일리언'에 한정해서 뽑은 목록 같습니다.
토마토 공격대.. 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 최고였져.
아, 토마토 공격대 다시 보고 싶군요. 엄청 재미있게 보았는데 말이죠....


카펜터 최고작은 아무래도 다크니스' 같습니다. 최고예요..

비로그인 2014-01-09 06:16   좋아요 0 | URL
그러고 보니 인상적인 카펜터 영화 두 편 모두 '다크니스'네요. 프린스 오브 다크니스, 인 더 마우스 오브 다크니스.. :)

수다맨 2014-01-08 22:58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외계로부터의 9호 계획 유튜브에 있어서 조금 봤는데 이거 아주 골 때리네요 ㅎㅎ 비행접시 움직이는 거 보고 뿜을 뻔했습니다.

곰곰발님 말씀을 들으니 스타십 트루퍼스도 새롭게 보이네요. 저는 이거 딱 미국애들 입맛에 맞는 영화라 단정했었는데, 다시 생각해 보니 거대한 풍자 같다는 느낌이 듭니다. 이 영화에 나오는 군인들, 메딕도 파이어뱃도 배틀크루져도 없는 마린에 가깝습니다. 그저 전략도, 우수한 무기도 없이 총 하나 들고 떼거지로 몰려다니다가 죽기 십상이죠.

곰곰생각하는발 2014-01-09 03:08   좋아요 0 | URL
와우, 후후후... 아마 9호 계획 풀 무비'로 깔렸을 겁니다. 저작권 해제되었으니 다 볼 수 있어요. 워낙 시나리오가 단순하니 자막 없이도 다 이해 가능합니다. 비행접시 무슨 요강 뚜껑 같죠 ? ㅎㅎㅎㅎㅎㅎ.

스타쉽'은 한때 나치 찬양이라는 비판을 받기도 했죠. 나치즘 찬양이다, 라는 거였는데 존나 웃기죠.
정반대거든요. 아마 폴 베호벤은 벌레처럼 그냥 아무 생각도 없이 우두머리의 조종에 휘둘려서
생각없이 나가서 싸우기나 하는 벌레 같은 무뇌아들에 대한 조롱이 아니었나 싶습니다.

고양이라디오 2016-01-30 00:12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글 재미있게 잘 읽었습니다^^ 안 본 영화들이 많네요. <에일리언>은 나중에서야 보게 되었는데, 정말 깜짝 놀라게 재밌더군요ㅎ

곰곰생각하는발 2016-01-30 17:11   좋아요 1 | URL
에일리언 보고 나서 제작년도 보면 진짜 깜짝 놀라죠. 이건 지금 만들었다고 해도 전혀 의심을 안 할 겁니다. 정말 잘만든 영화입니다. 반갑슴돠. 고양이 라디오님..

고양이라디오 2016-01-30 22:50   좋아요 0 | URL
네. 저도 그 생각하면서 봤어요. 진짜 지금 개봉해도 옛날 영화라는 생각 전혀 안날꺼 같아요.

곰곰생각하는발 2016-01-31 01:15   좋아요 0 | URL
색깔은 좀 다르지만 테리 길리엄의 << 브라질 >> 이란 영화가 있습니다. 그 영화 보십시오. 에일리언의 작품 완성도에 못지 않는 뛰어난 걸작입니다.

고양이라디오 2016-01-31 13:43   좋아요 0 | URL
좋은 영화추천까지 감사합니다^^
꼭 챙겨보겠습니다ㅎ

yamoo 2016-02-01 12:48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1, 3, 4. 5, 6 봤어요~ 이블 데드나 헬 레이저도 엄청난 컬트 영화에 속하는 거 같아요. 에일리언 1, 2는 정말 그 당시 최고였다고 생각합니다. (개인적으로 최고는 79년작 스타원즈 개봉작이라 생각합니다만..) 지금 봐도 넘 재밌다는..ㅎ

곰발 님의 영화평은 언제나 맛깔스럽습니다!

30일 경부터 바빠 지금에야 이 글을 보네요~^^

곰곰생각하는발 2016-02-01 18:26   좋아요 0 | URL
바쁘면 좋죠.. ㅎㅎㅎ. 아, 헬레이져.... 최고봉입져. 최고봉 ~~
헬레져 보고 진짜 저런 얄딱구리한 영화도 있구나 했습니다.. 캬.... 헬레져 다시 보고 싶네요...
 


   

 

스티븐 킹 원작을 바탕으로 한 영화 베스트 10.

 

 

 

 

 

10. 초인 지대 ( 1983, 데이빗 크로넨버그 ) , 데드 존

09. 미래의 묵시록 ( 1994. 믹 가리스. TV시리즈 ) , 스탠드

08. 피의 피에로 ( 1990. 토미 리 월리스 TV시리즈 ) , 잇

07. 미스트 ( 2007. 프랭크 다라본트 )

06. 캐리 ( 1976, 브라이언 드 팔마 )

05. 스탠 바이 미 ( 1986, 로브 라이너 ) http://blog.aladin.co.kr/749915104/6744767

04. 미저리 ( 1990, 로브 라이너 ) http://blog.aladin.co.kr/749915104/6254801

03. 그린 마일 ( 1999, 프랭크 다라본트 ) http://blog.aladin.co.kr/749915104/6467093

02. 샤이닝 ( 1980, 스탠리 큐브릭 )

01. 쇼생크 탈출 ( 1994 , 프랭크 다라본트 )

 

 

 

중학교 때 작가 지망생'인 친구가 있었다. 조용한 아이'였다. 왕따는 아니었으나 스스로 자폐아 코스프레'를 해서 내가 " 레인맨 " 이라고 불렀다. 그 친구는 자신이 쓴 습작을 내게 보여주고는 했다. 카프카 소설을 흉내 낸 단편들이었다. 나는 그 친구가 쓴 습작을 읽어 주는 조건으로 돈가스를 얻어먹을 수 있어서 그리 나쁜 거래는 아니었다. 혓바닥에서 사르르 녹는 고기 맛은 그 친구가 쓴 문장을 압도해서 단편 소설이 눈에 들어올 리 없었다. 그래서 늘 같은 말을 하고는 했다. " 좋아, 하지만 헛점들이 보이는군. 앞으로는 좀더 분발해야 겠어 ! 그런데.... 이거, 이거 있잖아... 음, 다꽝( takuan, 澤庵) 좀 더 달라고 하면 안 되냐 ? " 레인맨은 아무 말 없이 나를 바라보다가 한 마디 했다. " 그건 다꽝이 아니라 피클'이야... "  우리는 분식집을 나와 볕 잘 드는 담벼락에 앉아서 가방에서 아무 책이나 꺼내서 맨 뒷장에 걸린 출간 목록'을 꼼꼼히 체크하고는 했다.

 

레인맨이 읽은 소설은 X자로 표시했고, 내가 읽은 소설은 O으로 표시했다. X는 O보다 많았다. 당시에 그는 책벌레였고, 나는 영화관 죽돌이'였다. " 졌어 ! " 내기에서 졌기에 티켓은 내가 끊었다. 내가 내기에서 이기기 위해서는 전략이 필요했다. 범우사 출간 목록에 나온 책만 골라서 읽기 시작했다. 고등학교를 졸업했을 때 레인맨은 범우사 세계 문학 전집 목록에 X 표시를 150개 정도 체크했고, 나는 O 표시'를 그보다 많이 했다. 딱 한번 이겼다 ! 그 친구 이름으로 소설이 나온 적이 없는 것을 보면 그는 문학의 꿈을 접고 생활 전선에 뛰어든 모양이다. 내가 소설'을 열심히 읽은 적은 그때가 유일했다. 그 이후로는 소설을 읽지 않았다. 출간 목록을 보며 내기를 할 만한 친구가 없었을 뿐더러 문학에 대한 흥미를 느끼지 못했다. 그리고 결정적인 것은 읽고 나면 곧 잊는다는 사실 때문이었다.

 

허먼 멜빌의 < 백경 > 을 고통스럽게 읽었지만 내용은 아무 것도 기억이 나지 않았다. 내가 기억하는 것이라고는 흰 고래'가 전부였다. 모비딕'은 흰 고래다, 라는 사실을 알기 위해서 몇 날 며칠을 고생해야 했던가 ? 내게 있어서 소설 따위를 읽는다는 것은 시간 낭비'에 가까웠다. 그래서 문학 작품만 빼고 나머지 분야의 책을 읽기 시작했다. 내 교양은 하늘을 찔렀다 ! 내가 문학 작품을 다시 읽기 시작한 이유는 스티븐 킹 때문이었다. 한때 공포 영화를 섭렵하겠다는 야심찬 계획을 짠 적이 있었다. 그래서 주말이 오면 공포 영화 비디오를 무져놓고 보고는 했다. 비디오 가게에서 영화를 고를 때 선정 기준은 딱히 없었다. 그냥 공포 영화 코너에 가서 일렬로 나열된 테이프 다섯 개를 꺼내서 계산을 하면 끝이었다. 그런 식으로 공포 영화 코너에 진열된 영화를 모두 털면 다른 비디오 가게'를 털었다.

 

재미있는 공포 영화가 이 할이라면 더럽게 재미없는 공포 영화는 팔 할이었다. 공포 영화를 300편 정도 보다 보니 내가 좋아하는 취향이 보였다. 내 취향을 분석하다 보니 내가 좋아하는 공포 영화 중 상당수가 스티븐 킹 소설을 원작으로 하고 있다는 사실을 발견하게 되었다. 그래서 그때부터 스티븐 킹 위주로 소설을 읽기 시작했다. 소설이 재미있다는 사실을 처음으로 알게 되었다. 내 취향은 순문학이 아니라 장르 문학'이었다. 10. < 초인 지대 > 는 데이빗 크로낸버그의 초기 작품인데 그를 숭배한다면 이 영화는 보지 않는 것이 좋다.  < 비디오드롬 > 을 생각하고 이 영화를 보았다가는 당혹스러울 테지만 공포 영화를 보는 재미 가운데 하나는 < 조악함 > 이 아니었던가 ? 공포 영화란 기본적으로 메이저 리그가 아닌 마이너 리그'다. 후질수록 그럴 듯하다 ! 그게 공포 영화의 미덕'이다.

 

09. < 미래의 묵시록 > 08. < 피의 피에로 > 는 TV 시리즈이니 접어 두자. 07. < 미스트 > 를 보았을 때 머리에서 나사 하나가 빠진 듯한 격한 감동이 몰려왔다. 기립 박수'라도 치고 싶었으나 사람들은 불만이 가득한 표정으로 어이없다는 듯 투덜대기 시작했다. 결말이 당혹스러웠기 때문이다. 하지만 나는 이 결말이 좋았다. 스티븐 킹 또한 이 영화의 결말에 대해 칭찬을 아끼지 않았다는 사실을 감안하면 프랭크 다라본트'는 확실히 스티븐 킹 소설을 재해석하는 데 있어서 탁월한 재능을 갖춘 감독이라 할 수 있다. 스탠리 큐브릭이 만든 걸작 < 샤이닝 > 에 대해서 남들이 모두 걸작이라며 엄지손가락 세 개를 추켜세울 때에도 그는 엄지손가락을 위가 아닌 아래로 내리꽂았던 킹을 생각하면 의외'다. 그런 그가 직접 영화를 감독한 적이 있다. 그 영화가 바로 < 맥시멈 오버드라이브, 1986' > 이다. 영화는 개판이었다. 그 이후, 다시는 만들지 않았다.

 

< 미스트 > 를 본 관객들은 공포의 대상은 괴물이라거나 안개라고 말하지만 내가 보기에는 핵심은 괴물도 아니고 안개도 아니다. " 바로, 바로바로바로 인간이다 ! " 라고 내가 말할 줄 알았지 ? 아니다. 인간도 아니다. 그러니깐 이 영화에서 보여준 공포의 주체'는 빨판(영화 속에서는 괴물을 " 빨판 " 이라고 부른다) 도 아니고, 안개도 아니며, 인간'도 아니다. 핵심은 전기, 수도, 가스 따위의 공급 차단'이다. 기술 시스템으로 작동되는 도시 문명 사회'는 역설적으로 불완전한 사회'다. 만약에 문명 도시에 전기 공급이 한 달 간 중단된다면 어떻게 될까 ? 아비규환이 따로 없을 것이다. 당장 물을 퍼올리는 펌프가 멈추게 되면 지하철에 물이 넘치게 된다. 타워 팰리스의 화장실은 어떻게 될까 ? 똥이 둥둥 떠다닐 것이다. 그 아비규환의 세계'를 주제 사마라구는 < 눈 먼 자들의 도시 > 에서 생생하게 묘사한 바'가 있다.

 

초고층 빌딩은 현대 최첨단 기술의 총합이지만 그 총합의 부피만큼 재난의 사이즈도 거대해진다. 초가집이 불타면 지붕만 타지만 타워가 불타면 모두가 죽는다. 영화 < 미스트 > 는 인간과 괴물에 대한 공포에 앞서 전기와 가스 공급이 차단될 때의 쇼크를 다룬다. 06. < 캐리' > 는 지금 보아도 여전히 걸작이다.  영화 속 분할 화면'은 드 팔마의 전매특허'가 되었다. 이 시기에 만들어진  " 시스터즈 - 캐리 - 드레스 투 킬- 필사의 추적 " 으로 이어지는 초기 필모그래피'는 그가 당대 최고였음을 입증한다. 압도적이다. 프랭크 다라본트와 함께 스티븐 킹 원작을 영화로 가장 잘 다듬는 감독 가운데 한 명이 바로 로브 라이너'이다. 05. < 스탠 바이 미 > 는 군더더기 없는 훌륭한 성장 영화'다. 스탠 바이 미'가 스티븐 킹 소설을 바탕으로 만들어진 영화라는 사실을 알았을 때 깜짝 놀랐던 기억이 난다.  

 

그가 이런 달달한 소설도 쓸 수 있구나 ! 그는 공포 소설을 잘 쓰는 작가가 아니라 그냥 글쓰기 재능이 탁월한 작가'라는 생각이 들었다. < 캐리 > 가 영화로 만들어진 이후로 그의 소설은 매해마다 영화화되었다. 그러므로 올해에도 헐리우드에서는 킹의 소설을 영화로 만들고 있을 것이다. 내년에도 영화가 만들어질 것이 분명하다. 경이로운 결과'다. 그리고 이 소설이 포함된 4편의 중편 < 사계 > 라는 작품집을 읽고 나서 다시 한번 놀랐다. 그때부터 킹에 대해 흥미를 가지기 시작했다. 뒤늦게 걸린 발동이었다. 장정일의 말처럼 따분해서 그냥 습작처럼 쓴 작품이 이 정도라면 한국 작가들은 넥타이 공장이나 차려야 한다. 야박하게 말해서 끽 소리 내며 죽어야 한다는 소리이다. 로브 라이너 감독이 만든 04. < 미저리  > 또한 훌륭하다. 캐시 베이츠의 압도적 연기'가 큰 몫을 차지했지만 영화는 전체적으로 짜임새가 탄탄하다.

 

" 약을 빨면서 글을 쓰는 작가 스토리 " 는 킹 소설에 자주 등장하는 캐릭터'이다. 실제로 킹은 80년대에는 글을 써야 한다는 강박에 사로잡혀서 약을 빨면서 소설을 작성했다. < 쿠조 > 라는 소설은 자신이 쓰고도 한동안 자신이 이 소설을 썼다는 사실을 모를 정도였고, < 런닝맨 > 은 3일 만에 쓰여진 장편 소설'이었다. 한국 작가들이 원고지 2장 분량 가지고 징징거릴 때 킹은 하루에 원고지 200매 분량을 써 재꼈다. < 미저리 > 나 < 샤이닝 > 은 바로 자신의 경험이 투영된 자기반영적 소설이라 할 수 있다. 03. < 그린 마일 > 은 스티븐 킹이 소설 기계'인가를 알려주는 작품이다. 내가 이 소설을 읽다가 놀란 것은 이 소설이 예수 그리스도'를 투영한 작품이기 때문이다. 모비 딕 (moby dick : 거대한 놈'이란 뜻이다) 인 흑인 J.C ( 존 커피 ) 는 Jesus Christ '다. 예수가 타인의 고통 앞에서 눈물 흘리며 기적을 행하듯,

 

흑인 죄수 또한 교도소 안에서 기적을 행한다. 예수를 교도소 안에 가두어 이야기를 끄집어내는 솜씨는 알래스카에서 냉장고를 팔 솜씨에 버금간다.그의 손을 거치면 평범한 이야기도 판타지가 된다. 대망의 1위는 예상 가능한 결과'다. 01. < 쇼생크 탈출 > 이다. 두 말 하면 잔소리이니 짧게 언급하겠다. 니체가 죽기 전에 포도주 한 잔을 마시며 쏟아냈다던 짧은 감탄사로 끝내겠다. " 아, 좋다 !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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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4-01-07 11:03   URL
비밀 댓글입니다.

2014-01-07 17:41   URL
비밀 댓글입니다.

비로그인 2014-01-07 12:09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대박. 넘 재미나서 순식간에 읽었어요..
아, 초인지대도 원작이 스티븐 킹이었구나요~
전 영화 초인지대가 조악하기보다 너무 점잖고 싱거운 인상으로 남아있습니다.
저야 당근 일등은 샤이닝이구요.

스티븐 킹이 큐브릭의 샤이닝을 보고 스타일 면에선 놀랍지만 자기 책의 정수를 제대로 영화에 싣는 데는 실패했다며 엄청 싫어했다죠? 특히 큐브릭이 귀신들린 저택에 관한 이야기들을 지나치게 제거, 축소한 것이 불만이었다네요.

1997년에 스티븐 킹이 직접 각본 쓰고 제작을 맡아서 샤이닝을 다시 만들었는데...
http://movie.naver.com/movie/bi/mi/basic.nhn?code=27523
결과는.. 장르 문학의 대가가 꼭 훌륭한 장르 영화인은 아니었다는.. :)

곰곰생각하는발 2014-01-07 17:59   좋아요 0 | URL
76년 이후로 매년 1편 이상이 영화로 만들어졌어니 최소 한 50편은 넘지 않겠습니까.
킹 원작을 샀다는 말은 돈이 좀 있다는 소리이니 그럴 듯하게 만들었을 것이고...
킹 원작인 영화가 굉장히 많아요.
깜짝 놀라게 됩니다.
사실 샤이닝''' 이거 공포 영화의 눈부신 걸작 아닙니까... 이 영화에 딴지를 걸다니..ㅎㅎㅎㅎㅎ
킹은 영화에는 영 소질이 없어요. 소질이 있으면 신은 불공평한거죠..

수다맨 2014-01-07 12:23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언제 봐도 지리는(!) 영화가 쇼생크 탈출이 아닐까 싶어요. 이 영화 OCN으로도 보고, 언젠가 군대에서도 보고, 가끔은 인터넷으로도 보지만 질리지 않으면서, 사람을 지리게(!) 만듭니다 ㅎㅎㅎ

곰곰생각하는발 2014-01-07 18:00   좋아요 0 | URL
저도 수없이 보지만 전혀 질리거나 지루하지 않습니다.
매우 신기한 현상이네요.
오죽했으면 한 편 볼 때마다 다른 관점에서 영화를 보기 시작합니다.

키티 2014-01-07 17:18   좋아요 0 | 댓글달기 | 수정 | 삭제 | URL
"다크 하프"가 개인적으로는 연출력이 돋보입니다.

좀 재밌게 봤던건 "나이트 플라이어" 도 추춴해보구 싶고...


곰곰생각하는발 2014-01-07 18:01   좋아요 0 | URL
오 ! 맞습니다. 다크 하프'가 안 알려져서 그렇지 요거 영화 좋습니다.
아마 조지 로메로가 만들지 않았나요 ? 그렇게 알고 있는데....
제가 좋아하는 영화입니다.

tumorism 2014-01-07 19:02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페루애 님, 죽음보다 무서운 비밀, 맹글러, 캣츠 아이도 재밌게 본 기억이 나네요.
저도 스티븐 킹 팬이라 그의 많은 소설을 읽어 봤고 영화화되는 것도 아무리 졸작이라도 다 보려하죠...

곰곰생각하는발 2014-01-07 20:06   좋아요 0 | URL
투모리즈님 ! 반가워요. 요즘 어찌 지내시나요. 뭐, 평소와 다름 없이 지내시겠지만... ㅎㅎㅎㅎㅎ.
킹 영화는 최소한 다 기본은 하더라고요...
올해도 킹 영화가 나오겠지요. 계산해 보니 1976년 이후로 매해 킹 소설이 영화화되었습니다.
올해도 아마 4편인가 만들어진다고 하더라고요.

전 요즘 잔뜩 기대하는 게 바로 샤이닝 2'입니다... 왜 레드럼, 레드럼.. 외치던 꼬마 대니가 어른이된 이야기라고 하네요.. 잔뜩 기대 !!!!

보슬비 2014-01-07 22:23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아.. 저도 미스트 책으로 읽을때도 재미있다 생각했는데, 영화 엔딩 정말 마음에 들었어요. 약간 B급이라 예상보다 주목을 받지 못해 안타까웠지만, 저도 영화 정말 재미있게 봤답니다.^^

'샤이닝'은 최근에 다시 읽었는데 영화, 드라마, 책 다 좋았어요. 스티븐킹이 원작과 조금 달라진 영화보다 원작쪽에 충실했던 드라마를 더 마음에 들었다고 하는데, 각자 개성들이 있어서 전 다 좋았던것 같아요.

암튼.. 요즘 '언더 더 돔'도 드라마로 찍고 있는것 같은데, 나중에 기회가 되면 한번 볼예정이예요.

그나저나 저 10편중에 저는 4편만 책으로 읽어보았네요. 스탠드와 잇은 책 분량이 장난 아닌지라 마음의 준비를 하고 읽어야할것 같아요.^^

곰곰생각하는발 2014-01-08 03:17   좋아요 0 | URL
아마.... 미스트가 스케레톤 크루'에 있ㅇㅆ죠 ? 원작에서 안개'는 슈퍼마켓 안에 있는 것보다 차라리 밖에 나가는 게안전하다는 내용이잖ㅇ요. 나가는 걸로 끝나는데 영화는 학 바꾸었어요. 그런데 킹이 무지 좋아하더군ㅇ.
평상시 같으면 싫어해쓸 텐데 말이죠. 저도 스탠드는아직 안 읽고 이쓰니다. 잇은 꽤 재미있어ㅛ.

덧글을 좀 길게 달아야 하는데 자판 쓰기에 문제가 있어서 여기까지마 씁니다..

tumorism 2014-01-07 23:50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네, 그럭저럭 잘 지냅니다. 샤이닝의 후속작, Doctor Sleep의 프랑스 출간에 맞춰 킹이 파리에 갔을 때, 오스카 와일드 비석에 키스하고 짐 모리슨을 보러 갈 거라고 한 얘기가 기억나네요. 이 무렵 데이빗 크로넨버그는 한 인터뷰에서 큐브릭은 공포의 실체를 모른다면서 영화, 샤이닝을 비판했었죠..(킹은 크로넨버그의 말에 좋아했겠어요. 킹이 가장 싫어하는 영화 중 하나잖아요.) 아무튼 소설이나 영화나 Doctor Sleep 기대됩니다.

곰곰생각하는발 2014-01-08 03:13   좋아요 1 | URL
크로넨버그마저 비판했군요. ㅎㅎㅎㅎㅎㅎㅎㅎ 얌생이 ~ ㅎㅎㅎㅎㅎㅎㅎ.
샤이닝'은 자전적 요소가 강하잖아요. 약에 중독되서 코피를 무진자 쏟았다고 하더라고요.
그리고 쿠조 같은 경우는 자기가 이 작품을 섰다는 것도 모르고....
그런데도 죽음에 가까운 글쓰기를 하고 있는 겁니다. 이게 샤이닝에서는 보여요.
글쓰기의 고통... 이런 게.. 공포 이런 게...
그런데 샤이닝은 좀 큐브릭스러게 갔죠...ㅎㅎㅎㅎㅎ 너무 예술적으로 잘빠져잖아요...
싫어할 만..... 저도 닥터슬립 엄청 기대하고 있습니다. 번역 작업 중이라고 하던데 아직 아 나오고 이싸 봅니다.

2014-01-08 01:38   URL
비밀 댓글입니다.

2014-01-08 03:16   URL
비밀 댓글입니다.

양손잡이 2014-02-05 05:09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뒤늦게 블로그 역주행 중입니다. 글이 너무 재밌어요!
영상을 보니 <그것>을 읽을 때 공포가 되살아나는군요.
감사히 잘 읽겠습니다.
그런데, 닉네임이 너무 긴데 뭐라고 불러야 하나요.
설마, 그대로?

곰곰생각하는발 2014-02-05 12:22   좋아요 0 | URL
네에, 전 그냥 곰발' 이라거나 곰곰발' 이라고 하시면 됩니다.
사람들이 대부분 곰곰발'이라고 하더라고요.
그것 읽으셨군요 ?좋죠 ? ㅎㅎㅎㅎㅎ 킹의 걸작들은 대부분 7,80년대 작품들 같아요.
이때가 최고였죠...

고양이라디오 2022-03-31 16:13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다음 스티븐 킹의 영화나 소설을 고르고 있습니다. 곰발님 포스팅을 참고할 수 있어 좋네요ㅎ

곰발님이 공포영화를 통해 스티븐 킹 소설로 오시게 됐군요ㅎ <캐리>를 보고 싶은데 구하기가 어렵더라고요ㅠ <미저리>는 전체 줄거리를 알고 있어서 안 볼려고 했는데 <스탠 바이 미>의 로브 라이너 감독 영화라니 보고 싶네요.

저도 언젠가 스티븐 킹 영화 top10을 뽑아봐야겠네요. 좋은 글 감사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