내 몸의 별자리·삶의 빛
시네이드 글리슨 지음, 이나경 옮김 / 아도니스출판 / 2024년 5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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몸을 검열하면 숨 쉬고 말하는 걸 동시에 검열하는 것이다. 자신에 대해 써보라. 몸이 전하는 말을 들어야 한다.” - 엘렌 식수, <메두사의 웃음>(<내 몸의 별자리 삶의 빛>의 제사)

 

 모리스 메를로-퐁티는 나는 나의 몸이다라고 했다. 의식은 육화된 의식이고 몸은 의식하는 몸이다. 결국 주체는 몸이다. 거주지인 세계에서, ‘현상의 장에서 의미를 길어내고 몸틀(le schema corporel)을 갖추고 (혹은 아비튀스화되고) 세계를 재구성하는 육화된 코기토, 의식하는 몸이 곧 나다, 우리다.

 <내 몸의 별자리 삶의 빛>은 육화된 코키토, 의식하는 몸 특별히 질병과 통증을 달고 사는 몸 이 전하는 개인적 일화이자 자신의 몸을 지렛대로 삼아 젠더 문제를 파헤친 사회적, 정치적 텍스트다. 과거를 반추하며 미래를 지향하는 아름다운 회고록이자 현재형 글이 시사하듯 한 시대의 관념이나 사회적 통념, 사회가 요구하는 여성적 아비튀스를 비판적으로 읽어내는 지금 여기의 이야기다. 그렇다고 꼭 페미니즘 책으로 보이지는 않는다. 그냥 우리의 이야기다.

 저자인 시네이드 글리슨은 열세 살 때 단관절염을 시작으로 척추측만증, 심부 정맥 혈전증, 급성 전골수구 백혈병 등 한 몸으로 감당하기 힘든 다양한 질병과 고통스런 치료 과정을 겪어왔다. 멜러니 선스트럼은 통증은 누구나 살짝 맛본 적이 있는 독약과 같아서, 맛을 기억할 수는 없지만 들이켜기는 두려워한다”(통증 연대기, 노승영 옮김, 에이도스)며 통증을 보편적인 비일상적 경험으로 인식했으나 글리슨은 그것을 식탁 위의 일상 요리처럼 늘 맛보며 살아왔다. 그 일상적 경험은 글의 재료가 됐다. 그리고 프리다 칼로와 조 스펜스와 루시 그릴리의 몸처럼 그녀의 병든 몸은 고유의 이야기 충동"을 지닌다. 결국 그 충동에 이끌린 그녀는 질병의 고통과 마주하며 살아온 경험을, 몸에 흉터로 남긴 고단한 삶의 흔적을 유난히 뜨거웠던 지난 여름의 일화처럼 담담히 기록한다. 무심하게, 초연하게. 이는 자신에게 영감을 준 세 예술가의 질병의 재현처럼 무슨 일이 일어났는지를 스스로에게 설명하려는 시도이자, 자신의 방식대로 세상을 해체한 뒤 다시 재건하려는 시도이다.” 비로소 그녀는 질병을 그걸 피할 수 있는 운좋은 사람들은 결코 완전히 이해할 수 없는달이나 북극처럼 닿기 어려운 곳에 이르게 해준 전초기지라고 말할 수 있는 통찰과 예술적 기지를 얻는다. 자연스럽고 무심하게. 고통을 예술로 승화한 이들에겐 자기 연민은 없다.

 

우리에겐 엉덩이도 있고 제작자도 있어요.

우린 즐거운 시간을 보내죠.

덕분에 계속 춤출 수 있어요.

드디어 아무 걱정 없어졌어요.

크리스틴 허시의 노래, Hips and Makers 중에서

"나는 그 가사를 노처럼 밀었다 당겼다." - 시네이드 글리슨


<내 몸의 별자리 삶의 빛>에는 메이저 레이저(Major Lazer), -야드스(Tune-Yards), 세인트 빈센트(St. Vincent), 미즈 다이너마이트(Ms. Dyanmite), 조애나 뉴섬(Joanna Newsom), 아미나(Amiina), 더 고 비트윈스(The Go-Betweens), 조 잭슨(Joe Jackson) 등 다양한 음악이 흘러서 좋다.  


 <내 몸의 별자리 삶의 빛>은 수차례 수술로 박힌 금속들, 스스로 말하길, 살갗 밑에서 빛나는 인공별, 오래되고 새로운 금속들이 이룬 별자리를 품은 우주와 같은 몸이 전하는 이야기이기도 하다. 빛나는 별이 있다면 어둠이 있다. 그녀는 병상 커튼 뒤에 도사린 혼돈 질병의 고통과 시선의 폭력, 혹은 당혹스러움 을 생생하게 그러나 (감정의 폭풍에 휩쓸리는 법 없이) 공기와 바람과 비와의 상호작용으로 변화해온 흙과 돌멩이에 깃든 이야기를 들려주는 지질학자처럼 조곤조근 고요히 재현한다. 그 혼돈과 자의식은 어둠 속에서 아름다운 문장으로 빛난다. 그리고 사적인 이야기는 공적인 담론으로 확장된다. 이를테면, 스스로 체험에서 통찰한 생식의 권리와 같은 여성의 실존적 문제에 대해서. “생식 보건은 자주성과 주체성, 선택과 의견 청취에 관한 것이다. 또한 돈과 계급, 접근성과 특권의 문제이기도 하다.” “배 속의 배. 물리적 몸 우리가 세상에 보여주는 뼈와 살의 가시적 집합체 은 만약 그 몸 안의 자궁이 계획에 없거나 원치 않는 임신을 담고 있다면 온전히 그 몸의 주인의 것이 아니다. 그런 여성을 상기시켜 줄 온갖 종류의 사람들이 줄지어 서 있다.” 

 당연하게도 질병은 개인의 문제이자 사회적 문제다. 지극히 보편적인 질병은 유형과 용어가 존재하지만 지문처럼 모든 환자마다 다 다르다. 그것은 통칭으로 부를 수 있는 대상이 아니다. 동질성을 거부한다. 질병은 생물학적인 것만도 아니며, 젠더, 정치, 인종, 경제, 계급, 성 상황에 따라 나뉜다.” p132

  

 가장 흥미로운 장은 앤 카슨의 시에서 가져온 제목인 상처는 스스로 빛을 발한다이다. 상처를 영감의 원천으로 삼은 프리다 칼로, 루시 그릴리, 조 스펜스의 이야기다. 모두 병든 자기 몸을 예술로 승화시킨 예술가, 작가의 특별한 이야기다.

 지극히 보편적인 것이라지만 질병은 지극히 사적인 체험이다. 그렇기에 병든 몸은 고유의 이야기 충동이 있다. 흉터는 그 시작이고 질문으로의 초대이다.” “그녀의 고통은 그녀만의 것이었다. 고통은 정열과 달리 다른 존재와 공유할 수 없고, 고통은 나눌 수 있는 조각이 없다.” “통증은 존재를 상기시키는, 거의 데카르트적인 실체다. 나는 느낀다, 고로 존재한다. 나는 아프다/고통스럽다, 고로 존재한다,....”


 멜러나 선스트럼은 통증은 우리가 죽을 수밖에 없는 존재임을 웅변하는, 인간의 본질적 특징이다고 했다. “때로 삶은 통증으로 시작하여 통증으로 끝나기도 한다. 통증은 깊숙한 자아를 위협하며, 죽음을 예고하여 자아의 궁극적 사라짐을 일깨운다.”(통증 연대기, 노승영 옮김, 에이도스) 나이 들수록, 빈번히 찾아오는 통증이 예고하는 죽음을, 사라짐을 뼈저리게 느끼곤 한다. 한번 찾아오면 통증은 살아있는 생물처럼, 불가사의한 존재인 오드라덱(Odradek)처럼 몸을 돌아다니며, 떠나길 거부한다. 결국 약물로 때려 잡는 수밖에 없다.

 

 삶이 있다면 죽음이 있다. 아이들의 웃음과, 예술과 문학과 음악이 있는 일상을, , 질병 이야기를 경유해, 친구 남편과 옛 연인의 죽음, 그리고 고모의 죽음을 들려준다. 고모와의 추억은 아름답지만, 내게 가장 인상적인 것은 누구에게든 찾아올 수 있는 죽음에 대한 단상이다. 친구가 남편을 잃은 직후, 그녀는 친구와 그 남편의 손을 하나씩 잡는다. “그의 심장은 마지막 박동을 다했다. 그렇게 먼 거리를 돌던 혈액이 순환 여행을 마쳤다. 이것이 최후를 마친 몸이다. 혈액은 다른 어떤 것으로 변한다. 움직이며 보낸 숱한 세월 끝에 이 최후의 순간이 온다. 나는 죽으면 몸이 굳고, 모든 혈액이 응고되고, 따뜻한 피부가 얼마나 빠르게 식는지 잊고 있었다. 평생을 움직이던 붉은 것이 죽음에 이르러 어떻게 변하는지 떠올린다. 혈액은 마지막 재창조, 멈춤을 향해, 모든 살아 있는 것들의 생명력으로부터 멀어져 간다.”(p81)

 옛 연인의 죽음 앞에서 슬픔은 영원한 두통이자, 위경련이다. 슬픔은, 멍하니 길거리의 타인들을 바라보며, 어떻게 아무 일도 없었던 것처럼 행동할 수 있나, 고 생각하는 느린 시간이다. 슬픔은, 태양이 여전히 하늘에서 미소 지으며 희미해져 가는 것에 치미는 분노이다.”(pp94-95)

 시리 허스트베트는 모든 질병에는 이질성, 침입 및 통제력의 상실감이 있다고 했다. 치매야 말로 가장 이질적인, 별안간 침입하는 언캐니한 질병이다. 치매에 걸려 죽어가는 고모의 모습은 애처로움에 앞서 무섭다. “나는 죽는 것보다 정신을 잃는 것이 더 두렵다. 정신을 빼앗기고 그 자리에 연기가 들어차느니 상어에게 물리고 높은 데서 떨어지고 칼에 찔리는 편이 낫다. 치료할 수 없는 치매에 걸리느니 또 한 차례 암에 걸리겠다. 혈관에 독을 흘려 넣는 화학치료를 받겠다. 내 가족이 내 개성, 내 기억, 내가 어느 닿을 수 없는 바다 밑바닥으로 빠져드는 걸 지켜보느니 그편이 낫다.”(p250)

 

한 몸이 겪기에는 너무 가혹하고 놀라운 이야기임에도 이 고요한 글은 서사의 과장 없이 시작해 과장 없이 끝난다. 칼비노의 <존재하지 않는 남작>의 숲 속의 사라짐처럼. 그것이 이 작품의 진정한 매력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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거식증 일기
발레리 발레르 지음, 박광수 옮김 / 아도니스출판 / 2020년 10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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거식증은 일종의 연습 같은 것이며하나의 목표다더는 다른 사람들처럼 존재하지 않겠다는 것이제는 물질적 욕망의 노예가 되지 않겠다는 것절대로 복부 한가운데가 가득 채워진 것을 느끼고 싶지 않았다는 것이며배고픔이라는 악마가 괴롭힌다고 느낄 때 경험하는 허위의 즐거움인 것이다.”

                    - 거식증 일기, 발레리 발레르, 박광수 옮김, 아도니스 출판, 2020, p224.


엊그저께밤을 새워 읽은 책이다이 작품은 21세에 사망한 영원한 젊은 작가발레리 발레르가 13세 때 겪은 거식증 체험담(허기 갈망), 정신병원 감금 생활을 15세 무렵에 쓴 병상일기, 세상에 대한 저항일기이다버지니아 울프는 일기를 쓰는 바람직한 태도는 자신만을 위해 쓰거나 모든 비밀을 안전하게 들을 수 있고 모든 동기를 옮게 평가할 수 있는 후대를 위해 쓰는 것이라고 했다발레르는 일기라는 내밀한 기록을 통해 자유가 박탈된 감금 상태에서 자신의 개인적인 정체성과 자존감을 잃지 않으려 분투한다.(일기를 쓰는 과정을 통해또는 그 물리적 증거를 통해 에릭슨이 말하는 자신의 정체성을 확인하고 싶었는지도 모른다.) 또한 남성세계에 대한 처철한 분노를 토해냈던 밸러리 솔래너스처럼 병원 체계(현대 세계 시스템)가족어른의 세계정상성이라는 일반적 가치에 대한 처절한 분노를 타인들에게후세에 증언하고자 몸부림친다사실그녀의 분노는 거의 독백과 침묵으포 표출된다그러나 로제 그르니에의 말처럼 때로는 침묵에는 그 어떤 말보다그 어떤 글보다 더 전복적인 힘이 있다그녀의 침묵은 거부를 욕망하는 필경사 바틀비와 맞닿아 있고그녀의 독설 가득한 독백은 인디언 추장브롬든(뻐꾸기 둥지위로 날아간 새)의 현대 세계에 대한 통찰력과 일견 맞닿아 있다.


"가축 우리 같은 객차들, 오렌지색 시트가 깔린 기다란 좌석들, 그리고 암흑 같은 터널들. 이게 곧 자유라는 것이고, 바로 이런 것을 너는 원했다."(p301)


 약물 과다 복용으로 사망한 발레리 발레르의 죽음은 명확하지 않다그러나 일찌감치 유서를 작성해 놓았고음식물을 바짝 날이 선 칼처럼 여기며섭취를 거부하고죽음을 소화하려고 애쓰며 죽음을 갈망했다는 점에서자살한 것으로 보인다그녀는 창밖으로는 조각난 하늘 밖에 보이지 않은 정신병동에서는 밖을 욕망했지만정작 밖으로 나왔을 때는 결코 밖에 도달할 수 없다는 것을밖은 없다는 것을 깨닫는다결국 그녀에게 진정 밖은 세상 밖, 곧 죽음이었으리라... 

 어쩌면 정상의 테두리, 일반적인 기준을 벗어나지 못하는 평범한 우리가 미친 놈에 더 가까운지도 모른다흔히 새로 태어난 인간이 15세 무렵이 되면미친 세계에 나름 적응한 반쯤 미친 존재바로 우리와 같은 존재가 된다바로 이것이 우리의 현 시대가 정상이라고 여기고 있는 것이다.”(로널드 랭(R.D. Laing), 경험의 정치학(The Politics of Experience), 1967.)


 이 책을 읽으면서 다시 한번 뼈저리게 느낀 바지만, 우리는 너무 많이 먹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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깃털 - 가장 경이로운 자연의 걸작
소어 핸슨 지음, 하윤숙 옮김 / 에이도스 / 2013년 7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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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자연의 걸작... 상상할 수 있는 가장 완벽한 모험”, ˝가장 경이로운 자연의 걸작’이라는 깃털의 거의 모든 것.˝ 가벼움의 대명사, 깃털 하나에 이토록 많은 이야기가 숨어 있다는 게 놀랍지 않은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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동물원 - 우아하고도 쓸쓸한 도시의 정원
토머스 프렌치 지음, 이진선.박경선 옮김 / 에이도스 / 2011년 7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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흥미진진한 책, 동물원에 대한 상식을 깨는 놀라운 통찰력, 우리가 사는세상이 동물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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