개동 아범 小史

 이 남자의 이름을 실명으로 공개하는 대신 그냥 " 개동 아범 " 이라고 하자. 왜냐하면 실명으로 거론하는 순간, 당신은 흥미를 잃고 이 서재를 빠져나갈 테니깐 ! 마치, 호리병 속 " 지니 " 가 홀연히 빠져나가듯이 말이다. 그는 스티븐 스필버그가 아니다, 크리스토퍼 놀란'도 아니며, 왕가위'도 아니다, 폴 토마스 앤더슨'도 아니다. 하지만 단언컨대 ! 그는 스필버그, 놀란, 왕가위, 앤더슨'보다 뛰어나다. 일단은 그냥 개. 동. 아. 범'이라고 부르자. 개동 아범'은 대학 진학에 실패하자 궁리 끝에 영화사에 들어갔다. 그가 하는 일은 스튜디오 촬영 현장에서 시다바리'를 하는 일이었다. 시다바리'라는 일본어가 당신의 주먹과 남근을 불끈 솟아오르게 한다면 그것은 " 정의감 " 이나 " 애국심 " 이 아니라 단순한 발기'다. 애국과 발기'를 혼동하지는 말자.

< 애국 > 은 " 조국의 빛난 얼을 되살리지 못하고 안으로는 자주 독립을 밖으로는 민주 번영에 이바지하지 못해서 " 피가 심장으로 몰리는 격정 신파'라면, < 발기 > 는 피가 남근으로 쏠리는 격한 욕정'이라 할 수 있다. 그래도 심기가 불편하다면 < 시다바리 > 대신 < 허드렛일 > 이라고 하겠다. 하여튼, 개동 아범'은 스튜디오에서 허드렛일'을 했다. 하지만 엄격한 연공서열을 감안한다면 그에게 영화를 연출할 수 있는 날은 까마득했다. 그러던 그에게 기회가 찾아왔다. 중소 스튜디오에서 입봉이 까마득한 조감독이나 기술 스태프들을 영입하기 시작했다. 짧은 기간 안에 감독으로 입봉할 수 있는 기회가 개동 아범에게도 찾아온 것이다. 아, 눈물이 앞을 가렸으리라. " 내 아들 개동아 ! 이 아빠. 메가폰 잡고 레디 고를 외치며 영화판을 호령하리라. "

그는 입사한 지 2년 만에 입봉'을 하게 된다. 경력이 미천하였으니 좋은 작품이 나올 리 없었다. 하지만 영화사는 이 개떡 같은 작품에 신경 쓰지 않았다. 당시 연간 제작 편수가 500편에 달했는데 이 가운데 심혈을 기울인 작품은 10편 남짓이었다. 박근혜 대통령이 즐겨 쓰시는 " 대박 " 을 기대하고 만든 영화는 열 손가락에 뽑을 수 있었다는 말이다. 나머지는 모두 동시상영용 B급 영화였다. 1+1 행사'를 위한 미끼 상품이었다. 일주일에 두 편 정도를 극장에 꾸준히 제공해야 하는 작품이 대부분이었고, 개동 아범은 바로 이 미끼 상품을 찍어냈던 것이다. 여기서 당신은 B급 영화'라는 말에 힌트를 얻어서 " 개동 아범 " 이 " 에드워드 우드 " 라고 추측할지 모르겠지만 당신의 선택은 틀렸다. 그는 에드우드'가 아니다. 하여튼 B급 영화의 생명은 작품성이 아니라 속전속결'에 있다.

제작비는 정해져 있다. 그리고 사시사철에 한 편씩 영화를 개봉해야 했다. 촬영을 빨리 끝내야 편집 및 사운드 녹음을 해야 하니 촬영을 빨리 끝낼수록 보다 좋은 작품'을 만들 수 있다. 왕가위나 코폴라 흉내 낸다고 게으름을 피웠다가는 영화사에서 해고당하기 쉽다. 개동 아범에게는 영화란 예술 창작이 아니라 그냥 납품 기일에 빵구나지 않고 주문량을 채워주는 것, 그 이상도 이하도 아니었다. 개동 아범은 성실했다. 배우들이 자신의 연기가 못마땅해서 감독에게 " 베이비, 원 모어 타임 ! " 을 외치고는 했지만 그는 항상 이렇게 말하고는 했다. " 열정 따위, 개나 줘 ! " 납품 기일에 맞춰야 하기 위해서는 시간이 모자랐기 때문이었다. 1년에 4편 정도 영화를 만들어 내놓아야 하는 스케쥴은 박정희 때 봉제 공장 노동자가 각성제를 먹으며 살인적인 공급 물량 주문을 소화해야 했던 것만큼이나 빠듯했다.

사람들은 A급 감독이 만든 A급 영화를 보기 위해 영화관을 간 것이지 B급 영화를 보기 위해 영화관을 찾는 것이 아니었다. A와 B의 관계는 건빵과 별사탕의 관계가 아니라 짜장면과 단무지의 관계였다. 없으면 찾게 되지만 있어도 그저 한두 개 입에 물다 버리게 되는, 그런 단물 쏙 빠진 단무지 말이다. B무비란 그런 존재였다. 냄비 뚜껑 찍어내듯 영화를 만들다 보니 영화는 모두 다 거기서 거기였다. 개동 아범'은 어느 정도 시스템이 돌아가는 꼴을 파악한 후 새로운 전략을 짜기 시작했다. 버릴 것은 확실하게 버리가 챙길 것은 확실하게 챙기자는 전략이었다. 그러니깐, 팔 할은 버리고 이 할'만 제대로 찍자는 것이었다. 그래서 그는 80분은 버리고 20분을 챙겼다. 이 20분은 정말 심혈을 기울여서 찍었다. 훗날, 이 20분은 전설이 되었다. 그의 이름은 스즈키 세이준'이었다.

개인적인 취향을 토대로 말하자면 일본 영화 감독 가운데 가장 뛰어난 이는 구로자와, 오즈 야스지로 그리고 스즈키 세이준'이다. 팔 할은 엉터리였지만 이 할'이 빛났던 감독. 스즈키 세이준이 없었다면 오우삼은 존재하지 않았다. 열 번 잘해도 한 번 잘못하면 욕 먹는 것이 현실이지만 스즈키 세이준은 열 번 잘못해도 한 번 잘해서 칭송을 받는 감독이었다. 그의 영화는 그가 심혈을 기울인 10분 분량의 장면만 보면 된다. 맛보기'로 " 관동무숙 " 예고편을 소개한다.  예고편 맨마지막에 나오는 저 장면을 볼 때는 너무 아름다워서 똥 쌀 뻔했다. 예고편만으로도 심장이 떨린다. 이 말에 동의하지 않는다면 당신은 종북 세력'이다. 나와 다른 모든 것은 다 종북이니깐 말이다. 요즘 박근혜 정권에서 유행하는 코드 아니었던가 ! 버스 기사'가 정류장을 향해 뛰어오는 당신을 기다리지 않고 야멸차게 떠난다면 그 사람 또한 종북'이다. " 시원한 국물 맛은 청정원, 따끔하게 매운 맛(을 보여줄 때)는 국정원 !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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비로그인 2014-01-10 19:52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헉. 첫 문단만 읽고선 전 곰곰발님 얘긴 줄 알았음요! ^^;

스즈키 세이준.. B급의 탁월한 감각이 작정하면 얼마나 빅뱅을 일으키는지 보여준 감독인 것 같습니다. 지고이네르바이젠.. 그 작품 보면서 넋을 잃었었죠. 20년도 넘었는데 영화 디테일은 가물가물해도 그때 받았던 강렬한 인상 만큼은 잊을 수 없어요.

곰곰생각하는발 2014-01-10 20:33   좋아요 0 | URL
찌고네르.... ㅎㅎㅎㅎㅎㅎㅎ 걸작이죠. 전 그가 닛카츠에서 쫒겨나기 전엔 60년대 영화가 좋습니다. 세이준 영화제나 빨리 했음 좋겠네요. 다시 가서 보고 싶습니다.
저번 영화제 땐 박찬욱이 왔더라고요... ㅎㅎㅎㅎㅎ 같이 보았음..

나탈야 2014-01-10 20:29   좋아요 0 | 댓글달기 | 수정 | 삭제 | URL
2분 12초에 나오는 처자는 박근혜 가카- 인가요? 닮았는데 이쁘게 닮았네~! *^^*

곰곰생각하는발 2014-01-10 20:34   좋아요 0 | URL
음...-_- ; 1초 빙의 !

유구일턴 2014-01-11 10:08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변희재랑 싸우는 느낌? 문제는 변씨는 보수가 뭔지도 모르는 업자라는게 진실일겁니다. 김영환이나 박성헌의 이야기에도 귀기울여보시는건 어떠실른지요?

곰곰생각하는발 2014-01-11 14:53   좋아요 0 | URL
변희재가 보수도 아니라는 사실은 다들 알고 있을 겁니다. 김영환이나 박성헌의 목소리에도 귀기울여야 함은 옳지만 소수 의견은 거의 막히죠. 보수라는 핸드마이크는 새누리가 쥐고 있는데 보면 그냥 개 같습니다.
메피스토 펠레스 같은...

만화애니비평 2014-01-11 11:25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2013년 서재의 달인 등급 감축드리옵니다

곰곰생각하는발 2014-01-11 14:54   좋아요 0 | URL
왠 뒷북입니까... ㅎㅎㅎㅎㅎㅎ 감사하옵니다. 만애비 님, 서울 나들이 함 하십셔...

수다맨 2014-01-11 15:02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이거 나름 진지한 영화 같은데 은근히 웃기네요. 특히 저 선글라스 낀 사람과, 얼굴이 말처럼 길쭉한 사람 표정이 어딘지 코믹하게 느껴집니다 ㅎㅎ

곰곰생각하는발 2014-01-11 16:54   좋아요 0 | URL
항상 진지하지만 언제나 웃깁니다. 어설프면 웃기잖아요. 다음에 스즈키 영화제 하면 같이 보러 갑시다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