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연아 편파 판정 논란 : 포데기 신파에서 스포츠 국가주의로.

 

방금 피겨 스케이팅 종목이 끝났다. 결과는 러시아 선수가 금메달, 대한민국이 은메달, 이탈리아가 동메달'이었다. 김연아 선수가 별다른 실수 없이 경기를 마쳤다는 점을 감안하면 억울한 면이 있다. 사실 예상 가능한 시나리오'였다. 소치 올림픽이 푸틴의 야망을 확장하기 위한 1인 모노극이기에 부덕의 소치'가 될 것이란 점은 모두 알고 있던 터였다. 볼썽사나운 시나리오가 연출될 거란 예상이었다. 하지만 그것보다 더 볼썽사나운 현상이 대한민국에서 벌어질 거란 사실도 알아야 한다. 이제 곧 끔찍한 저주의 험담들이 오고갈 것이다. 언론은 한때 김연아를 띄우기 위해서 아사다 마오를 작살냈듯이, 이번에는 편파 판정에 대한 울분을 토해낼 것이다. 한국인은 어느새 국제 빙상 연맹 피겨 스케이트 국제 심판처럼 굴며 러시아 선수가 왜 잘못되었는가를 조목조목 설명하며 해당 선수는 물론 심판진에 대한 신상털기를 외치지 않을까 ?

 

안 봐도 뻔하다. 열심히 한 김연아에게 박수를 보내듯이 러시아 선수에게도 박수를 치자. 그냥 러시아의 홈 텃새는 강했고 김연아는 금메달 따는 데 아쉽게도 실패했다고 생각하자. 혈압 올리며 퍽유 러시아를 외치지는 말자는 뜻. 이번 경기가 그렇게 억울하면 역지사지의 심정으로 2002년 월드컵 경기 때 한국이 저지른 편파 판정을 생각해 보자. 월드컵 역대 오심 베스트 10'에 무려 2002년 월드컵 한국 경기가 4차례나 순위에 올랐다는 사실을 상기할 필요가 있지 않을까 ? 유감스럽게도 오심 10'에 오른 4경기에서 한국은 모두 이겼다. 이 결과는 한국에게 유리한 편파 판정이었다는 점이 된다. 꼭, 이쯤되면 나오는 딴지. " 넌 어느 나라 편이냐 ? " 이럴 때, 나는 매우 슬픈 목소리로 당신에게 촉촉하게 대답하겠다. " 나도 목이 터져라 김연아 우승을 응원했다, 시바. 됐냐 ? "

 

벌써부터 해당 선수에 대한 사이버 테러와 심판들 신상털기'에 착수한 모양이다. 국가가 나서서 해결하기를 요구하는 사람도 있는 모양. 아주 뻔한 스토리여서 놀랍지도 않다. 이처럼 편파 판정에 대해 들끓는 여론을 다루는 언론과 국가를 보면 국격을 읽을 수 있다. (이웃인 잉여킹 님이 재치있게 분류한 것을 적용하자면) 세 가지로 나눌 수 있다. ① 국민은 분노하지만 언론과 국가는 흥분하지 않는다. ② 국민은 분노하고, 언론도 이에 동조한다. 하지만 국가는 분노하지 않는다. ③ 국민이 분노하고, 언론이 이에 동조하며 덩달아 국가도 흥분한다. 1번과 같은 성향을 보이는 나라는 대부분 선진국이다. 반면 2번 이하는 국격에 문제가 있다. 대한민국은 2번에 해당된다. 그동안 대한민국은 한국 스포츠 영웅에게 도전장을 내민다 싶으면 가차없이 그 상대를 비난하기에 열을 올리고는 했다.

 

아사다 마오는 여왕의 시녀가 되어서 김연아 앞에서는 " 피겨 하지 마오 " 가 되고, 안톤 오노를 향해서는 " 한국에 언제 오노 ? " 라며 칼을 간다. 한국 오면 원 펀치 쓰리 강냉이를 선보이겠다는 말씀. 거친 여론을 걸러서 중재해야 할 한국 언론은 오히려 더 거칠게 ,< 피겨 하지 마오 > 와 < 한국에 언제 오노 > 를 재생산한다. 아침 뉴스는 온통 김연아에 대한 잡다한 뉴스'를 배치하고는 그 다음 뉴스는 부산외대 사건을 짧게 다룬다. 왜 한국인은 김연아가 금메달을 빼앗겼다고 생각할까 ? 김연아가 은메달을 얻었다고 생각하면 안 되나 ?! 당신이 네 이웃을 내 몸과 같이 사랑하라, 라는 성경 말씀을 실천하는 것은 좋다. 하지만 이 실천은 좀 존나 간사한 데가 있다. 우리가 눈물을 쏟고 온 열정을 다해서 지지하는 이웃은 " 될 놈 " 이 아니라 " 된 놈 " 들이다.

 

그것은 박애가 아니라 편애'다. 비판을 받아야 할 사람들은 엘리스 크리스티나 소트니코바'가 아니라 스포츠 마피아들이다.  선수들은 그저 자신이 가지고 있는 실력을 뽐냈을 뿐이다. 한국인이 스포츠 판정에 대해 지나치게 흥분하는 이유에는 " 포데기 신파 " 가 큰 몫을 차지한다.  < 포데기 신파 > 란 " 내 새끼 가는 길, 아무도 막지 마라. 이 엄마는 내 새끼가 가는 길이라면 그 무슨 짓이라도 하리 - 주의 " 다. 내 혈통을 위해서라면 주변 사람들에게 피해를 주는 것은 아무렇지도 않게 생각한다. 오히려 < 억척 > 과 < 악착 > 을 아름다운 모성으로 둔갑시킨다. 이 포데기 신파'가 스포츠 국가주의를 부른다. 내 새끼 박승희'에게 반칙을 한 엘리스 크리스티는 쌍년이 되고 여동생 김연아에게서 금메달을 빼앗은 소트니코바는 얄미운 년이 된다. 이 억척과 악착에 가까운 애국적 오지랖이 나는 혐오스럽다.

 

이따위 신파에 울지 마라. 이제는 포데기 신파를 버릴 때도 됐다. 이번 2차 자유 경기에서 가장 아름다운 모습을 보인 사람은 아사다 마오'였다. 물론 김연아 선수도 아름다웠다. 소트니코바'도 대성할 재목이다. 하여튼 흥해라, 눈물과 기쁨이여 ! 청춘은 그렇게 소비되는 것이니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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엄동 2014-02-21 09:24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굿모닝입니다
웬일로 아침일찍 글을 ㅎㅅㅎ

후후
곰발님이 연아킴의 은메달 획득에 분노하는 이들의 사고를
포데기 신파"와 연관시키실거 같았어요

뭐. 저도 아쉬운 1인입니다만.
외신까지 나서서 자극적인 기사를 내도 달라질건 없쟈나여

그녀가 잘 해냈고, 유종의 미를 충분히 거두었다는걸
모두가 알기에 힘찬 박수를 보냅니다

즐금 불금 행금 되십쇼

곰곰생각하는발 2014-02-21 12:24   좋아요 0 | URL
은메달에 분노하는 애국 시민을 보면 이 심리의 기저에는 " 애국적 오지랖 " 이라고나 할까요.
지금 청원 때리고 난리던데, 후후...
이런 자세라면 적어도 4천만 애국 시민들이 모두 하얼핀으로 가 도시락 폭탄 던질 태세입니다.

엄동 님도 알금 되시기 바랍니다. 알콜로 젖는 금요일되시길...

마립간 2014-02-21 09:24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저는 경기를 보지 못하고 아침에 결과만 알게 되었고, 몇 신문의 기사를 읽었지만, 생각보다는 국민과 언론이 덜 흥분하고 있다고 생각합니다. 국민이든 국가든 한순간에 성숙될 수는 없지 않을까요? 그리고 어느 정도의 자기 절제 안 되는 사람도 있기 마련이고, 그런 사람의 행동이 크게 보이잖아요.

저는 4년 뒤가 더 걱정됩니다. 서울올림픽이나 2002년 월드컵처럼되지 않을까 해서요.

마립간 2014-02-21 09:29   좋아요 0 | URL
http://www.pressian.com/news/article.html?no=114440
연관된 글이기에.

곰곰생각하는발 2014-02-21 12:25   좋아요 0 | URL
평창의 복수인가요 ? 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
서울올림픽과 2002 월드컵 때 정말 어마어마한 편파판정으로
애간장 태운 나라가 한두 나라가 아니죠.

마립간 2014-02-21 14:56   좋아요 0 | URL
오후가 되니 흥분한 글이 많이 보이네요. 아마 제 판단이 틀리고 곰곰발님의 판단이 맞나 하는 생각도 듭니다.

편파 판정에서 1986년 서울 아시안 게임도 만만치 않았죠. 저는 이런 국격을 기대해 봅니다. (평창에서 기대하기는 무리지만,) 다른 대회와 달리 홈그라운드의 잇점이 전혀 작용하지 않은 공정한 대회였다.

곰곰생각하는발 2014-02-22 05:51   좋아요 0 | URL
러시아에 대한 복수는 편파 판정으로 복수를 하기보다는 ㅁ
정말 깨듣한 페어로 복수를 하는 게 가장 통쾌하죠.
하지만 그럴 것 같지는 않습니다.
88올림픽, 86아시안게임, 2002월드컵에서 보여준 편파판정은 역대 모든 리스트를 파괴할 만큼 잔인하고 집요하게 편파 판정으로 순위를 올리고는 했죠. 88올림픽 때 로이 선수인가요 ? 미국 선수...
그 사람 완전 이기고도 져서 이거 거자고 미국이 엄청 항의했던 기록이 있더군요.

마립간 2014-02-22 08:11   좋아요 0 | URL
언뜻 듣기에 서울 올림픽때 경기에 지고 스스로 은메달로 딸 것을 생각했는데, 미국 선수 제치고 금메달 딴 한국 선수, 편파 판정의 충격으로 권투를 그만두었다고 하는군요. (인터넷 검색에는 박시헌 선수로 나오고, 자살까지 생각했다는 글이 보이네요.)

누구의 평에 의하면 푸틴 대통령과 박정희 대통령은 닮았다고...

samadhi(眞我) 2014-02-21 13:57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피겨하지마오로 불린 줄은 몰랐어요. ㅎㅎ. 마오를 보면 자꾸 짠해요. 속된 말로 연아는 그냥 신. 이라 생각되는데. 저 우에서 혼자 느긋하게 거니는 그런 존재처럼 느껴져요. 그래서 이런 일도 "뭣도 모르는 것들" 하고 가볍게 넘어갈 것만 같아요.

곰곰생각하는발 2014-02-22 05:48   좋아요 0 | URL
피겨하지마오'는 제가 막 지어낸 말입니다...ㅎㅎㅎㅎㅎ. 개인적 말장난이에요..

블랙겟타 2014-02-22 02:10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사실 피겨스케이팅이라는 종목자체가 기록경기가 아니기에 판정논란은 어제 오늘일이 아니지요. 제가 보기엔 올림픽 경기중에 참 '주관'적인 종목이라고 생각이 들기도 하네요. 하지만 그것보다 어제 새벽 마지막 올림픽경기이었던 김연아, 마오의 경기를 보면서 즐거워했습니다. 금메달이든 아니든 전 그걸로 당연하게 만족 합니다. 메달을 떠나 두 선수에게 모두 수고했다고 말하고 싶네요. 거대한 국가(한국, 일본)를 뒤에 짊어진채 그 동안 힘들어했을 동갑이자 라이벌이었던 아사다 마오, 김연아. 이제 그 무거운 짐을 놓으셔도 될 것같네요.

곰곰생각하는발 2014-02-22 05:48   좋아요 0 | URL
제가 이런 글을 쓰면 꼭 넌 누구를 응원했냐, 하는데 전 물론 김연아를 응원했습니다. 안티가 아니란 말입니다. 하지만 겟타 님 지적처럼 채점 기준이 심판의 주관적 입장이 크게 반영하기 때문입니다. 내가 하면 로맨스과 남이 하면 블륜이 되는 걸 지적하고 싶었던 겁니다. 신문선 해설위원인가요 ? 가 양반이 월드컵 때 한국 선수 반칙이 맞다고 해서 지금까지 스포츠 해설을 못하고 있습니다. 끔찍한 광기죠. 화면 판독 결과 한국 선수의 반칙이었는데도 불구하고( 신문선 해설 위원 말이 맞죠. ) 지금까지 해설을 못해요. 과연 그런 것들을 모두 외면한 채
이번 편파 판정에서만 광기에 가까운 소릴 하는 게 그렇다는 말입니다.
 
구로사와 아키라 자서전 비슷한 것
구로사와 아키라 지음, 김경남 옮김 / 모비딕 / 2014년 2월
평점 :
구판절판


 

 

 

 

 


 

 

 

 

 

자소서 비슷한 것.

 

 

 

 

 

 

 

 

 

오즈 야스지로는 < 옆 > 을 잘 찍는 감독이기보다는 < 곁 > 을 잘 찍는 감독이다. 오즈의 카메라는 두 사람이 나누는 대화에 끼어든다는 느낌 없이 곁에 머물면서 조용히 지킨다. 옆을 바라본다는 것과 곁을 지킨다는 것은 다른 느낌이다. 오즈가 다른 감독들과 다른 점은 바로 이 지점이다. " 곁 " 을 포착하는 능력은 오즈가 가장 탁월했다. 반면 구로자와 아키라'는 < 앞 > 을 잘 찍는 아시아 감독에 속한다.* 관객은 종종 배우의 응시를 불편하게 받아들인다. 수평적 관계를 중시하는 서양에서는 이 응시가 매혹적일 수 있으나 예를 중시하는 동양 문화에서는 자칫 무례하게** 보일 수 있는 구도이다. 그래서 그랬을까 ? 구로자와 아키라 영화는 밖에서는 열렬한 찬사를 받았지만 자국 내에서는 짜디 짠 박대를 받았다. 일본적이지 않다는 지적'이다. 그들은 오즈 야스지로의 위대함을 위해서 구로자와 아키라를 평가 절하시키고는 했다.

 

마치 김연아의 우아함을 위해서 아사다 마오와 비교 평가***하는 것처럼 말이다. 나는 구로자와 아키라 영화를 매우 좋아했다. [ 거미의 성 ] 은 셰익스피어 연극을 영화로 만든 모든 작품 가운데 가장 탁월했고, [ 숨은 요새의 세 악인 ] 은 영화가 활동극'으로 불린 이유를 깨닫게 해준다. 그런 그가 자서전 비슷한 것을 쓴 모양이다. 그래서 제목도 < 자서전 비슷한 것 > 이다. 역자 후기를 보니 < 자서전 비슷한 것 > 은 1978년 3월 ~ 1978년 9월까지 신문에 연재한 것을 덧대고 재구성해서 단행본으로 나온 책으로 구로사와 감독이 부제로 붙인 이름이 " 자서전 비슷한 것 " 이라고 한다. 그러니깐 이 책은 < 데루수 우자라 / 1975 > 와 < 가게무샤 / 1980 > 사이의 긴 공백 기간에 쓰여졌다. 칠순에 가까운 그가 지난 일을 떠올리며 쓴 글이다. 사실 이 책을 펼쳐놓고서는 한동안 당혹스러웠다.

 

내가 알고 싶었던 것은 [ 라쇼몽 ] 이후에 만들어진 영화 현장이었는데 이 자서전 비슷한 것은 " 라쇼몽 " 까지만 다룬다. 아뿔싸, 책을 살 때 차례'를 자세히 보지 않은 탓이다. 더군다나 전체 가운데  2/3는 감독이 되기 전 이야기'를 다룬다. 하지만 실망은 1,2장만 넘기면 글 솜씨에 빠져들게 된다. 그는 훌륭한 감독이기에 앞서 탁월한 시나리오 작가였다는 점을 다시 한 번 상기하게 만든다. 자서전에서 보이는 그 흔한 허세'가 보이지 않는다. 직설적이며 화를 잘내는 성격이 글에서도 그대로 묻어난다. 자상한 할아버지가 손주에게 달달하게 말하는 분위기도 아니고, 차 한 잔 마시며 진지하게 예술혼에 대해 말하는 분위기도 아니다. 왁자지껄하는 저잣거리 술집에서 불알친구들과 모여 낄낄거리며 수다를 떠는 것 같은 분위기'다. 그렇기에 그의 필모그라피 중 가장 화려했던 시기가 아닌 어렵고 힘들었던 애송이 시절에 집중했는지도 모른다.

 

모든 글이 꼭 유쾌한 것만은 아니다. 관동대지진 때 벌어진 재일 조선인에 대한 흉흉한 소문을 바라보는 감독의 시선은 감동적이며 서른이 되기 전에 자살한 형에 대한 애틋한 마음은 처연하기까지 하다. 하지만 구로사와의 글빨에서 불구하고 찜찜함은 남는다. 감독 스스로가 말했듯이 자서전이라고 하기에는 미흡하다. 미완으로 남은 자소서 같다.

 

 

 

 

FIN

 

 

 

 

 

 

 

 


 

 

구로사와 아키라 영화(들)

 

▦ 내가 가장 좋아하는 구로사와 영화는 < 거미의 성 > 이다.

▦ < 거미의 성 > 을 볼 때 늘 궁금했던 점 하나가 마지막 장면이다. 1957년도에 만들어진 영화이니 특수촬영으로 화면을 조작할 리는 없는데 와시즈(미후네 도시로가 )가 수많은 화살을 피해 도망가는 장면은 아무리 봐도 이해하기 불가능했다. 왜냐하면 " 리얼 " 했기 때문. 하지만 이 책 부록에 해당하는 필모그라피에는 그 궁금증을 해소할 만한, 청천벽력 같은 사실이 폭로된다. 다음과 같다. " 와시즈가 비처럼 쏟아지는 화살을 피해 도망가는 라스트신에서 와시즈 역을 맡은 미후네의 공포에 질린 얼굴은 연기가 아닌 것처럼 보였는데, 실제로 대학의 궁도부원들에게 미후네를 향해서 화살을 쏘게 했다고 한다. " 맙소사 ! 미후네의 영화 속 공포는 연기가 아니라 진짜였던 것이다.  한국 양궁 선수라면 모를까 ? 실력이 꾀죄죄죄한 일본 대학 궁도부원들이 진짜로 미후네를 향해 화살을 쏜 것이다.  화살이 그를 향해 비처럼 쏟아졌는데 그중 한 발이라도 엇나갔다면 미후네는 어떻게 되었을까 ? 문득 베르너 헤어조크 감독의 < 피츠카랄도 > 가 떠올랐다.  구로사와가 화살을 쏘았다면 헤어조크는 권총으로 배우를 협박했다. " 연기할래, 아니면 죽을래 ? " 둘 다 약간 미친 감독 같다.

▦ < 천국과 지옥 > 은 카메라의 동선과 배우의 동선이 서로 얽히지 않고 유려하게 치고 빠질 수 있는 신기를 보여준다. 오랫동안 호흡을 함께 한 탱고 같다. 집중력을 잃지 않는 힘, 그것이 바로 구로사와 영화가 가지고 있는 힘이다.

▦ 구로사와는 여름을 배경으로 하는 영화는 겨울에 찍고 반대로 겨울을 배경으로 한 영화는 여름에 찍는, 아주 못된 버릇이 있다. 그래서 촬영장은 전쟁터 같은 치열함이 있었다고 한다. < 살다 > 라는 영화는 겨울이 배경인데 이 영화는 여름이 찍었다. 아, 불쌍한 시무라 다카시. 눈이 펑펑 내리는 놀이터에서 ' 곤돌라의 노래 ' 를 부를 때 얼마나 더웠을까 ? 시무라 다카시에게는 미안하지만 이 장면은 구로사와 영화 중 가장 아름다운 장면이 아닐까 싶다.  

▦ 개인적으로 구로사와에게 영광을 안긴 < 라쇼몽 > 을 그닥 좋아하지 않는다. 구로사와 영화치고 심심한 영화에 속한다. 혹여, 이 영화 한 편 보고 지레 실망해서 그의 다른 영화를 보지 않기로 했다면 당신은 큰 실수를 저지르는 꼴이 된다.

▦ 그는 꽤 굵직굵직한 해외 문학 작품을 영화로 만들었다. < 거미의 성 > 은 [ 맥베스 ] 가 원작이고, < 밑바닥 > 이라는 영화는 막심 고리키의 [ 밑바닥에서 ] 가 원작이다. < 요짐보 > 는 대실 해밋의 [ 피의 수확 ]에서, < 란 > 은 [ 리어왕 ]에서, < 백치 > 는 제목 그대로 도스토엡스키의 [ 백치 ]에서, < 살다 > 는 톨스토이의 < 이반 일리치의 죽음 > 에서 영감을 얻어 만든 작품이다.

▦ 러시아가 구로사와를 초대해서 < 데루수 우잘라 > 를 찍었는데 그것은 러시아 문학 작품을 꾸준히 영화로 각색한 노 감독에 대한 답례처럼 보인다. 실제로 영화 제작 및 투자를 담당한 러시아는 영화 제작 과정에서 참견을 일절 하지 않았다고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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매직퀸 2014-02-21 04:00   좋아요 0 | 댓글달기 | 수정 | 삭제 | URL
이 책 읽을만 한가요? 제 블로그에 구로자와에 대한 글도 아니고 블로그 포스팅 한 글에 구로자와 이름이 있었는데 이 책 낸 출판사에서 서로 이웃 신청하더군요 ㅎㅎ 흥미로워 보여서 살까 생각은 하고 있는데. 이게 예전에 나왔던 감독의 길의 정식 버전이라고 하던데요...

곰곰생각하는발 2014-02-21 04:13   좋아요 0 | URL
맞습니다. 감독의 길'이죠. 이전 책이 영문 번역이었다면, 이 책은 원판 번역.. 이게 맞는 말인가?! 하여튼...
촬영현장이나 우리가 흔히 알고 싶어하는 이 영화 이 장면 어떻게 찍었지 ?! 이런 굼금증을 해소해 줄 것은 하나도 없다는 측면에서는 좀 아쉽습니다. 그냥 이야기를 풀어내는 것으로는 좋으나 전문적으로 무엇인가를 배우고 싶다는 측면에서는 거의 아무것도 보여주지 않죠. 퀸 님에게는 별 득이 안 되는..
그러니간 나 같은 영화 좋아하는 사람이 그냥 읽기에는 좋지만 기술적인 노하우를 얻고 싶어하는 사람에게는 평범한 책이 아닌가 싶습니다.

매직퀸 2014-02-21 05:07   좋아요 0 | 댓글달기 | 수정 | 삭제 | URL
답변 감사. 인생 이야기가 사실 더 궁금하고 흥미롭긴 합니다 ㅎㅎ

곰곰생각하는발 2014-02-21 05:11   좋아요 0 | URL
책 아주 재미있습니다 ! 읽어보세요. 문장력도 좋아서 책이 술술 읽힙니다. 딱딱하지 않습니다.

노이에자이트 2014-02-21 17:54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미후네 도시로와 구로자와 아키라는 늘 함께 떠오르더군요.나중에 대판 싸우고 결별했지만...이 자서전에는 미후네 도시로에 대한 언급은 어느 정도 나오나요?

곰곰생각하는발 2014-02-22 05:55   좋아요 0 | URL
아, 노이제자이트 님 오랜만입니다. 후후.
미후네에 대해서는 크게 다루지는 않아요. 워낙 , 라쇼몽 까지만 다뤄서 말이죠.
하지만 읽어볼 만한 후일담입니다.
 

 

 

 

 

 

 

 

 

 

 

 

 


 

 

 

 

 

 

아주 오래된 통증......

 

 

 

복사꽃을 본 지 오래되어서 다음해 맹무살수의 고향에 갔다. 하지만 그곳엔 복사꽃은 없었다. 복사꽃은 처음부터 없었다는 걸 떠날 때에야 깨달았다. 복사꽃은 그 여자의 이름이었다. 그녀의 눈물을 보고 나서야 황약사가 날 찾아왔던 이유를 알았다.

 

- 동사서독, 구양봉(장국영)의 독백 中

 

 

김훈은 에세이 < 상처와 풍경 > 서문에서 “모든 풍경은 상처의 풍경일 뿐이다.” 라고 고백한다. 염세주의자인 나는 이 말을 " 모든 관계는 상처의 풍경일 뿐이다. " 라고 고쳐 말한다. 관계'가 상처를 주는 원인이라면 가장 농밀한 관계라 할 수 있는 사랑은 말해서 무엇하랴.  이 세상, 모든 사랑은 상처의 풍경일 뿐. 사랑할 때는 보이지 않으나 헤어지고 나면 비로소 깨닫게 되는 것이 부재'다. 사랑은 본질적으로 장소를 공유하는 데'에서 출발한다. 함께 했던 " 자리 " 를 기억하는 행위가 바로 사랑에 대한 기억이다. 함께 했던 < 자리 > 에서 텅 빈 자리를 바라볼 때 그 사람의 부재를 읽는다. 왕가위 영화 속 사랑은 대부분 장소에 대한 기억이다. 영화 < 동사서독 > 에서 사랑의 상처를 얻고 고향을 떠나 세상 밖으로 떠도는 맹무살수(양조위)는 사랑을 기억하기 위해서 사랑하는 사람보다 먼저 " 복사골 " 을 호명한다.

 

그는 복사꽃이라는 이름을 가진 여자를 기억하기 위해서 복사꽃 피는 마을(복사골)을 에둘러 말한다. 그래야지 사랑에 대해 말할 수 있다. 슬픈 사랑이다. 그는 도적떼가 휘두른 칼 끝에 자신의 목이 베일 때 경쾌한 바람소리를 듣는다. 사랑을 잃는다는 것은 장소를 잃는다는 것과 같은 말이다. 이처럼 상처라는 낱말이 품은 핵심은 장소/자리'이다. 상처에서 < 처 > 가 한자로 < 處 : 곳 처 > 다. 롤랑 바르트'처럼 화려한 만연체로 말하자면 실연에 따른 아픔은 그 사람이 없기 때문이 아니라 자주 가던 장소에 그 사람이 부재하기 때문에 발생하는 처연'이다. 글을 쓰다 보니 너무 먹물스럽게 말을 비비꼬았나 ? 헤헤헤. 됐고 ! 언제부터인가 나는 상처라는 말보다 흉터'라는 말이 가슴에 더 와닿았다. < 상처 > 라는 말은 왠지 싸구려 신파 같았고 < 흉터 > 는 가슴에 사무쳤다.  

 

어제는 떠나버린 사랑 때문에 질질 짜다가 오늘은 느닷없이 사랑하는 사람이 생겼다며 희희낙락할 수 있는 감정이 " 상처 " 라는 낱말에 어울릴 것 같았다. 반면 < 흉터 > 는 묵직하고 담담한 어감이다. 흉터는 쉽게 울지 않고 쉽게 웃지 않는다. < 상처 > 와 < 흉터 > 는 모두 " 통증 " 이라는 공통분모를 가지고 있지만 상처가 주는 통증은 찰나'에 가깝고 흉터가 주는 통증은 지속'에 가깝다. 부풀어오른 통증은 살아 있다는 증거'가 된다. 흉터란 오랜 시간을 거쳐야 완성되는 흔적이기 때문이다. < 동사서독 > 에서 도적떼에게 목이 베인 맹무살수는 목에 흉터를 남기지 않는다. 왜냐하면 그는 통증을 견디지 못하고 죽은 자이기 때문이다. 이처럼 상처는 치명적이고 흉터는 지속적 속성을 가지고 있다. 상처는 못 견디는 것이고, 흉터는 견디는 것이다. 

  

 

 

한 여성 행위 예술가가 현대인의 소통 단절에 대한 퍼포먼스를 진행하고 있다. 낯선 사람과 1분 간 서로 눈으로 대화를 나누자는 의도이다. 여기에 의도치 않은 한 남자가 등장한다. 행위예술가는 그 남자를 보자 설움과 기쁨이 섞인 눈물을 쏟는다. 옛날에 사랑했던 남자이자 동지였던, 그 남자 ! 여기서 여자 앞에 앉은 남자는 흉터'다. 한때는 못 견딜 것 같던 상처였으나 이제는 견딜 수 있는, 아름다운, 그리운, 보고 싶던 흉터가 그녀 앞에 있다.

 

영화 < 화양연화 > 에서 양조위는 아주 오래된 앙코르와트 사원에서 돌의 흉터'를 본다. 그는 천년 세월에도 무너지지 않는, 단단한 돌 속에서 상처입은 돌 하나를 발견한다. 숨탄것은 상처를 방치하면 살이 부풀어올라 양각으로 새겨진 흉터를 남기지만 나무와 돌은 음각으로 새겨진 흉터를 남긴다. 전자는 덧대고 후자는 파인다. 양조위가 앙코르와트에서 발견한 돌 구멍'은 아주 오랜 시간 동안 아물지 못했던 돌의 흉터였다. 얼마나 깊은 통증이었기에 저토록 단단한 돌에 구멍이 파였을까 ? 그는 오래된 통증 앞에서 자신이 겪었던 통증을 섞는다. 그리고는 지푸라기로 봉합한다. 그것은 일종의 치유이다. 텅 빈 자리를 메우는 상징적 몸짓이다. < 흉터 > 라는 말이 한자 조합으로 이루어진 낱말 같지만 사실은 순우리말이다. " ~ 터 " 는 놀이터, 일터, 낚시터'처럼 " 자리 " 나 " 장소 " 를 뜻한다.

 

슬프다 

 

내가 사랑했던 자리마다

 

모두 페허다

 

나에게 왔던 사람들,

모두 어딘가 부서진 채

모두 떠났다

 

내 가슴속엔 언제나 부우옇게

바람에 의해 이동하는 사막이 있고

뿌리 드러내고 쓰려져 있는 갈퀴나무, 그리고

말라 가는 죽은 짐승 귀에 모래 서걱거리는

 

어떤 연애로도 어떤 광기로도

이 무시무시한 곳에까지 함께 들어오지는

못했다, 내 꿈틀거리는 사막이, 그 고열이

에고가 벌겋게 달아올라 신음했으므로

내 사랑의 자리는 모두가 폐허가 되어 있다

 

아무도 사랑해 본적이 없다는 거

언제 다시 올지 모를 이 세상을 지나가면서

내 뼈아픈 후회는 바로 그거다

그 누구를 위해 그 누구를 사랑하지 않았다는 거

 

젊은 시절, 도덕적 경쟁심에서

내가 자청한 고난도 그 누구를 위한 헌신은 아녔다

나를 위한 헌신, 나를 위한 희생, 나를 위한 자기 부정

 

그러므로 나는 아무도 사랑하지 않았다

그 누구도 걸어들어온 적 없는 나의 폐허

다만 죽은 짐승 귀에 모래알을 넣어주는 바람 뿐

 

- 시집 < 어느 날 나는 흐린 주점에 앉아 있을 거다 > 중 시 " 뼈아픈 통증 " 전문

 

 

 

황지우 시집 < 어느 날 나는 흐린 酒店에 앉아 있을 거다 > 에 수록된 " 뼈아픈 후회 " 는 사랑과 장소'가 밀접한 관계가 있음을 말한다. 시인은 " 사랑했던 자리 " 가 " 모두 폐허 " 가 되는, 쓸쓸한 풍경을 지켜본다. 그는 < 상처 > 나 < 흉터 > 라는 말 대신 < 폐허  廢墟 > 라고 말한다. 여기서 허(墟 : 터, 언덕, 구렁) 는 " 처 " 와 " 터 " 를 동시에 아우르는 지점이다. 폐허는 상처와 흉터 어딘가에 위치한다. 시인은 이 폐허를 견디지 못하고 " 그러므로 나는 아무도 사랑하지 않았다 " 라고 말하지만 우리는 이 고백이 상처를 숨기기 위한 위악이라는 사실을 알고 있다. 이 텅 빈 자리(폐허)를 메우는 행위가 비록 " 죽은 짐승 귀에 모래알을 넣어주는 바람 뿐 " 이라고 해도 우리는 이 지지부진한 채움'을 견뎌야 한다. 모래가 모여서 사막이 되듯, 속을 비운 채 질긴 가죽만 남은 죽은 짐승 귀에 모래알을 넣어 내부의 폐허를 채우는 행위가 사랑이다. 이처럼 " 處 " 와 " 墟 " 를 메워야지 사랑이라는 텅 빈 기표를 완성할 수 있다.

 

나는 한때 산기슭을 내려오다가 나무 구멍에 대고 속삭인 적이 있다. 누군가가 그 나무가 베였다는 소식을 전해주었다. 내가 누설했던 비밀을 품은 나무가 봉인 해제되었으니 이제 저잣거리에서는 벌통을 건드린 벌떼처럼 풍문으로 떠돌 것이다. 하지만 어쩌랴. 시계의 시계추처럼 매달려 울던 신파를 조롱해도 어쩌랴. 한 여자를 오래 사랑했으니, 후회는 없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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Forgettable. 2014-02-19 18:56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흉이 남아 있는 터군요. 슬프다.

곰곰생각하는발 2014-02-20 04:45   좋아요 0 | URL
전 처음에 흉이 가슴 凶인 줄 알았습니다. 알고보니 순우리말이더라고요...

밤하늘의별소리 2014-02-19 19:39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황지우의 [뼈아픈 후회]라는 시가 생각나네요-

슬프다.

내가 사랑했던 자리마다

모두 폐허다.

완전히 망가지면서
완전히 망가뜨려놓고 가는 것 그 징표 없이는
진실로 사랑했다 말할 수 없는 건지
나에게 왔던 모든 사람들
어딘가 몇 군데는 부서진 채
모두 떠났다.

...

--

'한 여자를 오래 사랑했으니, 후회는 없다.'라고 말하는 곰발님이 멋져요. 제가 생각하는 저는 나중에 나이들어서 이 시구절을 되뇌일 것 같거든요 : "아무도 사랑해 본 적이 없다는 거/ 언제 다시 올지 모를 이 세상을 지나면서/ 내 뼈 아픈 후회는 바로 그거다/ 그 누구를 위해 그 누구를/ 한 번도 사랑하지 않았다는거"

곰곰생각하는발 2014-02-20 04:47   좋아요 0 | URL
이 시, 제가 좋아하는 시이고 자주 인용하는 부분이죠.
사랑했던 자리마다 / 모두 폐허다

참... 아련해지네요. 이 글을 좀 보충해야 할 것 같군요.
그 여자였으니 저 같은 사람을 좋아했지 그 누가 나를 사랑하겠습니까.
전 볼썽사나운 괴물이었습니다.

샤아 2014-02-20 07:20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저는 끔찍한 악귀였지요.

곰곰생각하는발 2014-02-21 00:23   좋아요 0 | URL
좋은 일 하시는 샤아 님이 악귀면 이명박은.. 음....

samadhi(眞我) 2014-02-20 10:59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정말 와닿는 시네요. 제가 손대는 것마다 망가지거나 부서져서 제스스로 "마법의 손" 이라며 돌려 말하고는 하는데.

곰곰생각하는발 2014-02-21 00:24   좋아요 0 | URL
황지우 시인만한 사람도 없죠. 황지우 시에는 어떤 처절함이 있는 거 같습니다.

곰곰생각하는발 2014-02-21 00:24   좋아요 0 | URL
황지우 시인만한 사람도 없죠. 황지우 시에는 어떤 처절함이 있는 거 같습니다.

samadhi(眞我) 2014-02-21 08:37   좋아요 0 | URL
당장 시집을 주문해야겠어요. 제 수준이 워낙 바닥이라 시를 잘 안 읽는데. 이해하기 쉬운^^ 시 몇 편 정도만 좋아하고.

수다맨 2014-02-20 15:20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저 영상이 참 가슴 저리게 다가오네요. 영화보다 더 영화 같은 장면이 바로 저런 것이 아닐까 싶습니다. 만일 저 두 사람이 눈을 마주치고, 손잡는 것 이상의 접촉을 보여주었으면 이 감동이 격감됐을 것도 같구요. 오로지 눈빛 하나로 여자의 흉터, 그 속에 담긴 온갖 복잡미묘한 감정을 그대로 보여주는 군요.

2014-02-21 00:23   URL
비밀 댓글입니다.

2014-02-21 01:02   URL
비밀 댓글입니다.

엄동 2014-02-21 09:26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저 시 좋네요.
첫 세줄에 가슴이 먹먹해요

곰곰생각하는발 2014-02-22 05:53   좋아요 0 | URL
저 시 좋죠 ? 좋아요.... 정말 먹먹하죠. 가슴을 후벼하는 힘이 있습니다.

유다 2014-02-22 00:39   좋아요 0 | 댓글달기 | 수정 | 삭제 | URL
억. 저 동영상 공연 제가 뉴욕살 때라 모마에서 직접 봤는데 영상은 뭔가 있어보이네요...; 걍 사람들 십 초만에 힐끔 보고 지나감. 거의 병풍;수준...

곰곰생각하는발 2014-02-22 05:52   좋아요 0 | URL
아니 유다 님 뉴요커셨군요 ? 전 아마 그때 군산커'였을 겁니다...
 
화양연화 (1disc) - [초특가판]
왕가위 감독, 양조위 외 출연 / 드림믹스 (다음미디어) / 2005년 3월
평점 :
품절


 

 

 


 

 

 

 

 

 

 

돌의 흉터.

 

 

 

 

 

 

 

 

한 여자를 사랑했다. 부모는 시장에서 생선을 팔았다. 가난한 누대의 맏딸'이었다. 그녀와 함께 그녀가 사는 달동네 집을 찾아간 적이 있었다. 그녀가 내 이마에 송글송글 맺힌 땀을 손으로 닦아주며 말했다. 마을 어귀에 다다를 수록 성한 나무는 없다고, 근사한 놀이터와 장난감이 없는 달동네 아이들에게는 나무가 놀이터이자 장난감이라고, 그래서 가끔은 친구 같다고, 내 몸이 나무에 비해 너무 성해서 부끄럽다고. 운동권에 몸담았던 그녀는 치열하게 살지 못한 자신을 부끄러워했다. 그녀 말마따나 마을이 가까울 수록 나무엔 흠집이 많았다.  가지는 꺾이고 나무 기둥 곳곳은 움파였다. 어떤 나무에는 칼로 나무를 도려낸 낙서도 있었다. 소년 A가 소녀 B를 사랑한다는 낙서이거나, 소녀A가 소년B를 짝사랑한다는 낙서였다. 저 나무는 얼마나 오랫동안 저 낙서를 간직하고 있었을까,

 

그리고 또 앞으로 얼마나 오랫동안 간직해야 할까 ? 가파른 기슭 끝에 여자네 집이 보였다.  낡고 좁고 초라했다. 몇 년 후, 우리는 헤어졌다.  오래 사귀었으나 이별은 승냥이의 걸음보다 빨랐다. 그리고 또다시 몇 년 후, 문득 그 동네를 보고 싶다는 생각이 들었다. 나는 하던 일을 내팽개치고 그 동네를 향했다. 나무는 모두 그 자리에 있었다. 마을이 가까울 수록 흠집이 많던 나무는 여전히 흉터가 많았지만 싱싱하고 울창했다. 조금 더 올라가자 칼로 새긴 낙서를 품은 나무가 보였다. 그래, 바로 그 나무였다. 세월이 흐른 만큼 살이 돋았으니 나무에 새겨진 문신은 사라졌을까 ?  다가가 꼼꼼하게 살폈으나 칼로 새긴 흉터는 보이지 않았다. 그때, 나는 한없이 슬퍼졌다. 왜 슬퍼졌는지는 잘 모르겠다. 이유를 알 수 없어서 더 슬펐다. 아쉬운 마음을 접고 그녀가 살던 집을 향해 몇 걸음 더 걸었을 때,

 

나는 방금 내가 착각을 했다는 사실을 깨달았다. 칼로 새겨진 낙서를 품은 나무는 아까 그 나무가 아니었다. 내 앞에 있던 나무는 몇 년이 지났으나 여전히 음각으로 새겨진 낙서가 선명하게 보였다. 아, 그때 깨달았다. < 흉터 > 는 느리게 자라는 존재라는 사실을 말이다. 흉터는 나무와 함께 자라고 있었다. 꽃은 피고 지지만 흉터는 달팽이보다 느리게 조금씩 조금씩 자랐다. 상처는 빠르게 봉합되면 흉터가 남지 않지만 흉터는 오랫동안 아물지 못하고 부풀어올라 이음매를 남긴다. 그 나무를 보다가 깨닫게 되었다. 그녀는 나의 흉터였다. 아주 오랫동안 그녀 때문에 아팠다. 아물지 못하고 부풀어올라 흉터로 남은 여자. 그 나무 밑에 있다가 어둑어둑해질 무렵 내려왔다. 내려오는 길에 옹이가 빠져서 생긴 나무 구멍에 입을 대고 속삭였다. 무슨 말을 했는가는 당신에게 말하지는 않겠다.

 

나는 그해 부산영화제'에서 기술 스텝으로 일을 했다. 영화제 기간 중 늦은 밤, 부산 다찌집에 들렸다가 왕가위 감독을 우연히 만났다. 그리고 그 자리에 합석을 하게 되었다. 그때 나는 그에게 달동네와 흠집이 많던 나무에 대한 이야기를 했다. 나무 구멍 속에다 비밀을 털어놓았다는 말도 했던 것도 같다. 왕가위의 눈빛이 순간 반짝였다. 몇 년 후, 왕가위는 < 화양연화 > 라는 영화를 만들었다. 왕가위 감독이 만든 영화 중 가장 아름다운 영화였다. 저 처연한 슬픔은 " 느림 " 에서 파생된 아름다움이었다. 느리다는 것은 슬픈 것이니깐, 뒷모습은 늘 느리니깐, 기억이란 본질적으로 아주 오래 묵힌 된장 같으니깐. 양조위가 앙코르와트 사원을 찾는 장면에서 나는 낮게 소리쳤다. " 개새끼... 내 이야기를 훔쳤군 ! "  움파인 나무에 대고 속삭인 장면은 어느새 돌벽 구멍에 대고 속삭이는 양조위로 바뀌었다.

 

화가 난 나는 극장을 박차고 나와 홍콩에 머물고 있는 그에게 전화를 걸었다. " 웨이 ? " 그의 탁한 목소리가 전해졌다. 나는 분을 삼키고 울먹이는 목소리로 말했다. " 오갱끼데스까 ? 와따시와 갱끼데스.... " 그는 내 심중을 알아채고는 다음과 같이 말했다. " 이봐, 친구 ! 이 영화 속 주인공은 곰곰발 자네도 아니고 장만옥도 아니야. 물론 양조위도 아니라네. 실제 주인공은 바로 흉터'야. 나는 흉터에 대해서 말하고 싶었다네. 돌의 흠집 말이야. 사람은 흉터가 생기면 부풀어오르지만 나무는 흉터가 생기면 파인다네. 돌도 마찬가지야. 나는 벼린 것들로 도려진 흉터를 메우고 싶었지. 흉터를 치유하고 싶었거든...... "  감독의 말을 듣고 나자 영화가 말하고자 하는 바를 깨닫게 되었다. 양조위는 돌 속에 비밀을 묻는다. 돌은 바람과 달라서 입이 무거운 법, 그가 토해놓은 비밀은 천년만년 봉합되리라. 

 

돌의 흉터를 생각하니 아득해졌다.  얼마나 많은 세월 동안 아물지 못하고 부풀어올라야지 저토록 단단한 흉터가 될 수 있을까 ? 언제부터인가 나는 < 상처 > 라는 단어가 그닥 슬프게 와닿지 않았다. 상처'라는 말에는 " 지금의 아픔 " 과 통증만 있을 뿐 오랜 세월의 흔적은 없었다. < 흉터 > 라는 말이 좋아지기 시작했다. 흉터는 느리게 자라는 통증이니깐, 흉터는 선명한 불행이니깐, 나는 불행한 것과 느린 것을 사랑하니까.

 

 

이상한 꿈을 꿨다. 한 여자가 내게 와서 수상한 소문이 떠돌고 있는데 그 소문이 아무래도 당신 이야기 같다고 말했다. 여자는 슬픈 듯 잠시 바닥을 보더니 내게 뜬금없이 미안하다는 소리를 남기고는 이내 사라졌다. 여자가 사라진 자리에는 라일락 향이 코끝을 어지렵혔다. 꿈에서 깼으나,  잔향은 그대로 남았다.

 

 

하, 수상하여 오늘 그 동네를 가보았다. 마침 여름 수해를 대비하기 위한 산림 정비가 한창이었다. 내가 가지고 있던 비밀을 고백했던 나무는 베어져서 밑둥치'만 허옇게 보였다. 생각해 보니, 그 나무는 라일락이었다.

 

 

 

 

FIN.

 

 

 


 

 

왕가위 영화에 대한 생각(들)

 

 

▦ 내가 가장 좋아하는 왕가위 영화는 < 동사서독 > 이다. 사실 완성도 측면에서 보았을 때 그가 만든 영화 중 가장 질이 떨어지는 영화이지만 나는 이 영화가 좋다. < 아비정전 > 은 마흔 번 넘게 보았다. 느리다는 것이 아름다울 수도 있다는 것을 < 화양연화 > 를 통해 깨닫게 되었다. 빠르다는 것은 아름다움이 아니라 즐거움에 속한다. 그러므로 < 느림 > 의 반대말은 < 빠름 > 이 아니다. 내가 < 해피투게더 > 에서 가장 좋아하는 장면은 장첸이 양조위와 마지막 작별 인사를 하기 위해서 포옹하는 씬'이다. 이때 화면은 버퍼링 노이즈'처럼 잠시 멈춘다. 그 장면을 좋아했다.  ▦ 이 세상에서 흰 빤스가 가장 잘 어울리는 배우는 장국영이었다. < 아비정전 >< 해피투게더 > 를 보다가 확실히 깨닫게 되었다. 불알이 큰 놈은 흰 빤스가 어울리지 않는다.  장국영이 자살했을 때, 나는 섹스에 열중하고 있었다. 섹스를 좋아하니깐. 내가 생각하는 왕가위 영화 중 최악은 < 2046 > 이었다. 자기 복제 차원을 떠나서 자기 표절에 가까워서 그 이후로는 그의 영화를 보지 않았다. 왕가위는 악전고투 끝에 영화를 뒤죽박죽으로 만들 수록 이상하게 좋은 영화를 만든다. < 아비정전 > 이 그렇고 < 동사서독 > 이 그렇다. ▦ 지금 방금 생각났는데 가장 최악은 < 동사서독 리마스터링 > 이었다. 색 보정을 보강하고 불친절한 서사를 친절하게 재배치했는데 마치 알타이 고분 벽화가 희미하다고 해서 노루표 페인트로 덧칠을 하는 것 같은 효과를 주었다. 맙소사, 정말 끔찍한 영화였다. 한때 나는 매점 아가씨에 대한 환상을 가지고 있었다. < 아비정전 > 때문이었다. < 타락천사 >< 중경삼림 > 이란 영화는 그닥 좋아하지 않는다. 왜냐하면 왕가위가 별 걱정없이 쉽게 촬영을 끝냈으니깐 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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유령 2014-02-18 23:25   좋아요 0 | 댓글달기 | 수정 | 삭제 | URL
흑흑

곰곰생각하는발 2014-02-19 03:10   좋아요 0 | URL
유령이라 좋은 이름이군요.

유령 2014-02-19 07:23   좋아요 0 | 댓글달기 | 수정 | 삭제 | URL
저는 그 나무구멍에서 오백년을 살은 넋입니다. 어느 날 당신이 속삭인 말을 들었지요 후후.

곰곰생각하는발 2014-02-19 16:48   좋아요 0 | URL
그럼, 그때 내 꿈속에 나온 분이 바로 당신이셨군요 ? 후후

엄동 2014-02-19 10:35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가끔 누군가와의 추억이 깃든 장소를
서성거리고 기웃거리곤 합니다
강도하 만화에서 말했듯.
이별 후 잃는건 사람만은 아니니

이 글을 읽고 나니
그닥 설레지도 아리지도 않았던
흉터"란 단어가 달리 느껴져요
부르튼 아픔" 처럼 따꼼따꼼하게

곰곰생각하는발 2014-02-19 17:03   좋아요 0 | URL
사랑한다는 것은 결국 장소를 공유한다는 것이 됩니다.
흉터'가 한자 조합 같지만 사실은 순수이말이에요.
여기서 ~터' 가 바로 ' 장소 ' 를 나타냅니다.
낚시터, 놀이터 할 때 그 터죠.
그리고 왜 우리 흉터를 흔히 흠집이라고도 하는데
~집'도 보면 자리를 의미합니다.
상처도 마찬가지잔하요. 처가 바로 곳 처' 라는 한자 뜻이니...

사랑은 본질적으로 상처요, 흉터요, 흠집이라고 생각하는 저에게는
사랑과 자리'를 뗄래야 뗄 수 없는 관계입니다.


samadhi(眞我) 2014-02-19 13:57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화양연화 비디오테이프를 싸게 사려고 발품 좀 팔았는데 티비 없이 십여년 사는 동안에 어디로 가버렸는지 모르겠어요.

곰곰생각하는발 2014-02-19 17:04   좋아요 0 | URL
저도 티븨 안 봅니다만... ( 밥 먹을 때만 봄 )
안 보면 안 보게 되더라고요. 안 보니 차라리 편합니다...

samadhi(眞我) 2014-02-20 11:00   좋아요 0 | URL
한 가지 아쉬운 것은 크고 선명한 화질로 된 야구중계를 보지 못한다는 것이죠.

곰곰생각하는발 2014-02-21 00:26   좋아요 0 | URL
진짜 그르네요. 하지만 보고 싶은 경기할 때는 무조건 호프집 가서 봐야죠.
야구는 집에서 보는 것보다 술집 가서 맥주 마시면서 보아야 함...

미미달 2014-02-20 16:52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갑자기 해피투게더를 다시 보고 싶어졌어요.

곰곰생각하는발 2014-02-21 00:28   좋아요 0 | URL
전 어제 다시 보았는데 영화 처음 부분이 좀 야해서 깜짝 놀랐습니다.
제가 극장에서 보았을 때는 삭제를 했나 ?! 배드씬이 안 나왔던 거 같던데...ㅋㅋㅋㅋ
제가 동성재 반대를 외치는 사람은 전혀 아닌데 사실 남자이다 보니 동성애 배드씬이 나오면
좀 당황하게 됩니다. 하지만 영화는 뭐 명불허전이죠...
 

 

 

 

 

 

안현수'를 생각한다. 

 

 

- 국뽕의 좋은 예 : 김연아 보고 김연아가 아니라고 한다면 문제는 심각하다. 관계부정은 확장되면 관계망상으로 이어진다. " 너는 대한민국 국민이다 " 가 아니라 " 너는 대한민국이다 " 라고 할 때 개인을 국가로 인식하는 과대망상이 된다. 정신과 치료가 요구된다.

 

 

이번 소치 올림픽 쇼트트랙 경기에서 나는 한국인이기 때문에 한국 선수를 응원했다. 동시에 안현수 선수도 응원했다. 박근혜가 " 비정상화의 정상화 " 를 주문했다면 나는 " 빅토르의 빅토리 " 를 응원했다. 누가 이겨도 좋았다. 중요한 것은 인간의 투지'이지 국적이 아니니 말이다. 지금까지 펼쳐진 레이스를 보았을 때, 빅토르의 빅토리'로 끝날 판이다. 인코너를 파고드는 솜씨와 불꽃 질주가 인상적이었다.  지금은 " 국뽕 " 이 제철인지라 안현수의 선전과 비교해서 한국 선수들이 맥을 못 추자 애국심이 투철했던 열혈 시청자들은 빙상에서 빙신으로 추락한 빙상 연맹과 선수들을 부덕의 소치'로 치부했다. 여기서 반드시 짚고 넘어가야 할 부분이 있다. " 소치 " 는 러씨아의 소치이지 부덕의 소치는 아니다. 부덕이 부곡 하와이 옆에 있는 다운타운인지는 모르겠지만 말이다.

 

하여튼, 안현수는 영웅이 되었다. " 빙상인지 빙신인지 빵상인지 " 모를 연맹 때문에 불의에 저항한 영웅이 되어 있는 것이다. 그런 안현수에게 토, 토토토토토다는 놈은 모두 to 부정사, 투투 용법, 배신, 배반형이 되는 형국이다. 국뽕이 제대로 발휘되는 시점이다. 사실 안현수를 지지하며 만행을 저지른 연맹과 선수들을 싸잡아서 비판하는 태도는 얼핏 보면 " 스포츠 국가주의를 넘어 한 선수의 개인적 선택을 존중해주는 풍토가 조성된 것 ( 미디어오늘 기사 발췌) " 같지만 자세히 들여다보면 이게 다 한국 쇼트트랙의 성적이 형편없기 때문에 발생한 불만이다. 결국은 성적에 민감하게 반응하는 성적 지상주의 결과가 역으로 안현수 지지 현상으로 나타난 것이다. 왜 그런 것 있지 않은가 ? 믿었던 놈이 못하면 오히려 열불이 나서 상대팀을 응원하는 현상 : 한-일 전에서 한국이 1대0으로 지고 있는 상황이라면 목이 터져라 한국의 빅토리를 응원하지만 5대0으로 지고 있으면 차라리 일본의 빅토리를 응원하는 삐딱한 마음 말이다.

 

안현수 사태를 냉정하게 바라보고자 했던 경향일보 기사'는 한순간에 막돼먹은 경향일보'로 찍히는 추세다. 조중동도 안현수를 옹호하며 빙상 연맹을 맹비난하는데 하물며 진보지였던 경향이 ?! 라는 속내가 읽힌다. 그런데 나는 경향일보가 오히려 한쪽으로 쏠리지 않으려고 노력한 흔적이 보여서 좋았다. 경향일보가 < 안현수 파벌 피해 ' 진실 혹은 오해 ' > 라는 기사에서 말하고 싶었던 점은 안현수를 비극적 피해자'로 만들기 위해서 지나치게 한국 선수들을 가해자로 몰고간다는 지적이었다. 안현수는 거대한 조직의 만행과 불의에 맞서 싸우기 위해 투쟁한 영웅이 아니라 단순히 자신이 바랐던 꿈을 실현시키기 위해 러시아 行을 선택한 것이다. 내 말은 안현수는 불의에 대항한 투사'가 아니라 단순히 개인적 꿈을 충족시키기 위한 선택이었을 뿐이라는 점이다. 

 

나는 개인적 꿈을 위한 안현수 선수의 용기를 비판할 생각이 없다. 문제는 안현수가 아니다. 안현수를 소비하는 당신이다. 안현수 선수가 파벌 싸움의 희생양이었다면 역으로 안현수 선수가 한체대와 비한체대의 싸움에서 혜택을 입었던 적은 없었는가, 라는 반론을 역으로 제기해 볼 필요가 있다. 비한체대 출신 코치가 감독을 맡았을 때 안현수가 차별을 받았다면 역으로 한체대 출신 코치가 감독이었을 때 안현수를 위해 비한체대 선수들이 상대적으로 차별을 받았던 적은 없었을까 ? 애국심에는 적이 필요하다. 또한 영웅을 만들기 위해서는 악당이 필요하다. 베트맨을 위해서 조커가 필요하듯이 말이다. 지금 우리는 안현수라는 베트맨을 만들기 위해서 성적이 나쁘다는 이유로 쇼트트랙 선수들을 조커로 만들고 있다. 내가 보기에는 빙신 연맹과 함께 출전 중인 쇼트트랙 선수들도 도매가로 싸잡아서 비판하는 자세야말로 " 국뽕 "의 전형처럼 보인다.

 

빙신 연맹을 욕해도 좋다. 하지만 열심히 달린 쇼트트랙 선수를 욕하지는 말자. 안현수나 이호석 선수나 모두 열심히 달렸다. 다만 행운의 여신 티케는 안현수를 지지했을 뿐이다.

 

 

 

+

 

http://amd780501.blog.me/130185822278  : 안현수 사태'에 대한 가장 속시원한 글이다. 이 글의 핵심'은 이젠 더 이상 스포츠가 국위 선양이나 인간 승리 따위'의 메시지'를 내포하고 있지 않다고 이 글을 쓴  나턀야 이브첸코 라스콜리니코프'는 말한다. 인기 없는 종목은 퇴출당한다. 마라톤과 함께 올림픽 스포츠의 원형이라고 할 수 있는 레슬링'도 퇴출당하는 판국에 무슨 올림픽 정신인가. 스포츠를 통해 우정과 평화의 메시지를 전달한다고 ?! 글쎄다, 올림픽 정신을 구현하기에는 현대 스포츠는 지나치게 자본化되어 있다. 개인적 욕망과 국가적 욕망을 혼동하면 안 된다. 대한민국은 될 놈'에게는 관심도 없다. 오로지 된 놈'만 좋아한다. 비록 남자 쇼트 트랙 선수들이 노메달에 그친다고 해도 우리는 안현수를 지지하듯 한국 선수들을 지지할 필요가 있다. 스포츠 성적 우선 주의의 피해자라는 인식 때문에 안현수를 지지한다면, 적어도 당신은 성적 우선'에 얽매여서 노메달에 그친 한국 선수를 비판하면 안 된다. 이율배반적 태도이니깐 말이다. 대한 육식 연맹 총수님 말마따나 애국은 별개 아니다. 소고기 맛있게 사 묵고 먹은 고깃값 에누리 없이 내면 그게 애국이다. 다 큰 어른이 고기 값 비싸다고 " 음마, 앙 돼용 ! " 이라며 애교 떨지 말자. 한국 선수 노메달이라고 몸 부들부들 떨지 말자. 한국 쇼트트랙 노메달이어도 국격은 여전히 G20이다, 라고 이 글을 쓴 나탈야 이브첸코 라스콜리니코프 3세'는 말한다. 그러므로 이 글을 읽고 뿔따구가 난다면, 이 모든 비난은 나탈야 이브첸코 라스콜리니코프  주니어 3세'에게 있음을 알리는 바'다. 링크를 걸어 두니 모든 비난은 그의 블로그에서 하자 ! 나는,  지켜보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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마립간 2014-02-18 07:56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저는 과학을 좋아하고 과학에도 상보성이 있지만 과학의 상보성은 저에게 감정적 동요를 일으키지 않는데, 인문학에 존재하는 상보성/역설?은 저에게 불쾌감을 일으킵니다.

내적 유대 강화에 외부 배척 (이것은 외부 배척을 통해 내적 유대가 강화되기도 하죠.) - 같은 이유로 인해 외부에 개방적인 상황을 유도하는 것은 내적 유대감을 약화시킵니다. 외부 배척을 통해 내적 유대를 강화하려는 가장 좋은 예는 남한 사회의 북한을 대하는 태도죠. 경우에 따라 일본이 되기도 하고 중국이 되기도 하고, 서양 문명 자체가 되기도 하고 인종적으로 백인, 흑인이 되기고 하고. 이것은 분명히 도덕적으로 나쁜 것입니다. 타파해야 할 나쁜 인식이죠.

반면 문명 특히 교통 통신의 발달로 근세 이전보다는 외부 배척이 약화된 것은 사실입니다. 그래서 아프리카의 어려운 사람을 돕거나 다른 나라에 지진, 태풍이 있을 때, 국제적인 도움이 있기도 합니다. 여기에 동반된 (부?)작용이 바로 옆에 있는 사람에 대한 연민이 약화되는 것입니다. 그래서 도시에서 노숙자를 외면하는 현상이 발생합니다. (일부 진보적 모임에서는 작은 사회 운동을 펼치기도 하죠.)

경향신문의 기사는 저도 읽었습니다. 한편으로 제가 생각했던 것을 이야기해 주어 후련한 면도 있지만, 인문학의 모순이 보여 답답함을 함께 느꼈습니다.

타임머신을 타고 안연수 선수 발탁이 이전으로 시간을 거슬러 올라가겠습니다. 빙상계의 집행위원들은 성인군자입니다. 누구를 선수를 뽑느냐 그 기준에, 재능있고 노력해서 실력있는 선수가 될 가능성을 뽑는 것이 정의롭고, 도덕적일 것입니다. 하지만 가능성 있는 후보가 뽑혀 훌륭한 선수가 되는 것이 아니고 뽑힌 선수가 훌륭하게 자라나는 것이죠. (말콤 글래드웰의 아웃라이어)

마립간 2014-02-18 09:27   좋아요 0 | URL
http://amd780501.blog.me/130185822278

자본주의, 대량 소비 사회 다음에 무슨 사회가 올까요. 무슨 사회가 아니고 인류 멸종이 있으려나.

곰곰생각하는발 2014-02-18 09:46   좋아요 0 | URL
스피드 스케이트'는 기록 경기입니다. 그래서 누구나 최선을 다하면 됩니다. 하지만 쇼트트랙은 스피드 스케이트와는 사뭇 다릅니다. 협동이 필요하죠. 바람잡이가 필요하는 거죠. 그게 바로 작전입니다. 같은 국가 선수 두 명이 오르면 한 명은 질주를 하고 다른 한 명은 조력자가 되어야 합니다. 뒤따라오는 다른 나라 선수의 길목을 차단하거나 앞서 달리는 자국 선수가 힘을 보충하게 만들기 위해서 느리게 질주를 해서 자신이 미는 선수와 격차를 벌이기도 하죠. 그렇다면 누가 선두가 되고 조력자가 되고 싶을까요 ?

안현수 사태는 안현수가 코치진의 작전대로 조력자 역할을 하기에는워낙 실력이 타고 났다는 점입니다. 다들 고만고만한 실력인데 안현수는 탁월했죠. 그래서 조력자 역할을 할 수 없는 겁니다. 하지만 조력자 역할을 했던 나머지 선수들도 실력이 모두 고만고만하다고 해서 당연히 조력자가 되어야 한다고 생각하지는 않을 겁니다. 바로 이 지점에서 충돌이 생기는 것입니다.

안현수는 파벌 싸움의 피해자이지만 역으로 파벌 싸움에서 수혜를 입기도 했습니다. 바로 그 점을 이해할 필요가 있지 않을까 싶습니다.


+
자본주의 - 소비 사회 다음은... 음, 지구최후의날이지 싶습니다..
전 지구멸망을 원하지는 않지만 인류멸망에는 동조합니다. 모든 자연생태계는 타자에게 에너지를 공급하죠. 꽃은 열매를 짐승에게 주고 짐승은 그 열매를 먹고 다른 짐승에게 먹이가 되고.. 하지만 인간은 오로지 자연을 착취할 뿐입니다.

마립간 2014-02-18 12:45   좋아요 0 | URL
첨언을 하자면, 우리 나라가 쇼트트랙에서 팀웍이 뛰어나 누구나 질주하는 선수가 되어 금메달을 딸 가능성이 있다면, 선수들이 돌아가면서 질주 선수와 조력자 역할을 바꾸는 것이 옳을까요. 아니면 그래도 역시 잘하는 선수가 질주를 하는 것이 옳을까요. 누군 말에 의하면 이 (지분에 해당하는) 파벌 싸움에 병역 문제가 있다고 합니다.

안현수 선수는 탁월한 재능이 있었겠죠. 하지만 탁월한 재능이 꽃 피우는 것에 (곰곰발님일 언급한, 그리고 저도 이해를 하지만) 파벌싸움에 수혜를 입었다는 것이 탐탁하지 않다는 것이죠. 안현수 선수가 아닌 다른 선수가 발탁되었어도 그 선수가 역시 혜택을 받은 것이고요.

아랫글도 비슷한 내용
http://sports.media.daum.net/sports/column/newsview?newsId=20140218090604511&gid=110349

다크아이즈 2014-02-18 08:08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격하게 공감합니다. 안현수 잘못도 없지만 안현수 사태 때문에 다른 선수들이 가해자가 되는 형국은 옳지 않다고 봅니다.
빙상연맹이 잘못한 건 백 번 지당하지만 그 때문에 그 어떤 선수도 전적으로 피해자거나 가해자가 될 수는 없습니다. 선수 모두 피해자인 게지요. 이 건 관련 각종 자료를 훑어본 입장에서 결코 안현수만이 피해자가 아니라는 걸 확신하게 되었습니다.우리 선수 모두가 피해자였지요. 지금 안현수 선수는 영웅이 되었고 심리적 경제적 보상이라도 받게 되었지만, 또다른 피해자인 선수들은 어떻게 되나요?

차제에 금메달 하나에 애국을 들먹이는 과격한 풍경이 없어지기를 바랄 뿐입니다.
개인의 영광이 타인에게 더불어 흐뭇함을 선사할 수는 있지만 온 국민이 그짓에 열광하는 것은 코미디보다 더한 코미디일 뿐입니다.

곰곰생각하는발 2014-02-18 09:44   좋아요 0 | URL
그렇죠. 제가 하고 싶은 말을 팜므 님이 정확하게 뽑으셨습ㄴ다. 지금 뛰고 있는 선수들은 가해자가 아닙니다. 같은 피해자라고 봐야죠. 그래고 박근혜가 철딱서니없이 성급하게 경기 중에 뒷조사 운운해서 지금 뒤숭숭할 것입니다. 그들이 뭔 죄가 있나요. 4년 동안 단 며칠의 이 축제를 위해 여기 서 있을 뿐인데 말이죠.

스포츠 국가주의, 참 천박한 것인데 이게 없어지질 않아요. 올림픽만 되면 모두 안중근 의사 같습니다. 놀라운 광경임..

samadhi(眞我) 2014-02-18 11:11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저는 지구멸망=인류멸망으로 가볍게 인식했고, 머지 않아 곧 이라는 생각에 2세도 만들지 않아야 한다는 극단적인 생각까지 가질 정도입니다. 저도 그냥 망했으면 좋겠습니다. 제가 그렇게 바라지 않아도 하루하루 멸망을 향해 달려가는데요.

언제나 분야별 스포츠협회, 연맹때문에 선수들만 죽어나는 것 같습니다. 책임자들이 심지어 그 분야 전문가도 아니고. 어쩌면 그렇게 구태의 정치행태와 똑같은지.

곰곰생각하는발 2014-02-18 20:37   좋아요 0 | URL
사람들이 흔히 인류멸망하면 지구멸망이라고 착각하더라고요. 인류가 멸망하면 지구는 번성하죠.
전 인류는 멸망해야 한다고 보는 1인입니다. 그게 지구를 착취했던 인간이 마지막에 해야 할 과제가 아닐까 싶습니다.

사실 모든 연맹을 꿰차고 있는 놈들은 모두 정치인이죠. 쓰레기들입니다.

나탈야 이브첸코 라스콜리니코프 2014-02-18 13:08   좋아요 0 | 댓글달기 | 수정 | 삭제 | URL
빙신연맹이 지랄이라서 그렇지 선수들끼리는 사이 좋답니다. (코팜)

연맹자체를 없애버려야함. 선수들 상금받으면 그거 삥뜯어 운영하는 조직이- 정작 선수한테 지랄 염병

곰곰생각하는손. 2014-02-18 14:13   좋아요 0 | 수정 | 삭제 | URL
전적으로 공감입니다.
대한민국 체육계는 주로
연맹이란 새키들이 죄ㅡ말아먹죠ㅡ

근데 나탈야랑 라스콜리니코프,는 알겠는데
이브첸코? ..는 어디서 가져다 붙이신 겁니까?

음.. 제법 매력적인 이름이란 생각에 궁금해서..

나탈야 알렉산드로브나 로마노바 2014-02-18 16:43   좋아요 0 | 수정 | 삭제 | URL
당황스럽군요... <나탈야 이브첸코 라스콜리니코프>는 페루애님이 본문에다가 직접 만들어 적어주신이름 아닙니까... ㅇㄴㄹㄴㅁㅇㅎㄴㅇㅎㅁㅇㅎ

저의 본명은 사실 다음과 같습니다.
Natalya Aleksandrovna Iskander Romanova

나탈야 알렉산드로브나 이스칸더 로마노바.

곰곰생각하는손 2014-02-18 19:21   좋아요 0 | 수정 | 삭제 | URL
어? 첨엔 링크만 달랑 있었는데 어느새 글이 불어났네?!ㅎㅎㅎㅎ

오호~ 본명은 그러했군뇨?! 스펠까지 가르쳐주셔서 감사하므니다.
음 그러니까 당신은.. 나탈야 알렉산드로브나 이스칸..응? 로마노.... ?

ㅎㅎㅎㅎ(에잇~ 본명은 이브첸코 머시기보다 더 지긋지긋 매력적인 이름이로군!ㅋㅋ)

곰곰생각하는발 2014-02-18 20:39   좋아요 0 | URL
나탈야 이브첸코 라스콜리니코프 주니어3세가 아니라 원래
나턀야 알렉산드로브나 로마노바'로군요. ㅎㅎㅎㅎ
전 이상하게 이 러시아 이름이 뭔가 굉장히 귀족적이고 입에 짝짝 붙어요.
다음에는 긴 이름을 달 수 있는 나라에서 태어나고 싶습니다.


+

곰곰생각하는손 ? 오늘은 우리 곰곰가문이 모두 출동해서 손발이 다 척척 맞는구나.


밤하늘의별소리 2014-02-18 19:45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저 선전 보다보니 소름이 돋네요... 무서울지경..

또 주제에 엇나간 댓글을 남기자면, 저는 서경식의 <디아스포라 기행>을 읽고 있는 와중에 안현수 선수가 러시아로 귀화한 과정을 알게 되었어요. 한국 빙상연맹의 부패를 견디지 못하고 한국을 떠나 러시아로 간 안현수 선수가 멋있지만,저는 역사의 흐름 속에서 조선을 떠났지만 다시 돌아오지 못하고 일본에서 애매한 신분으로 남아있을 수 밖에 없는 재일조선인인 서경식 선생님의 처지에 계속 마음이 가더라구요.

<디아스포라 기행>에 나온 한 구절이예요
: 실재로 재일조선인들 중에는, 일본이 정말로 싫어져 해외이주를 하는 사람들이 늘고 있다. 그러나 그렇게 할 수 있는 이들은 경제력이나 특별한 능력을 지닌 소수뿐임 을 조금만 생각해보면 알 수 있다.
재일조선인의 대다수가 일본 식민지배의 결과 의도하지 않은 채 이 나라에서 태어났다. 때문에 이 나라의 언어밖에 모르고, 여기밖에는 집이 없고, 여기밖에 직장이 없고, 여기밖에는 친구도 아는 사람도 없다. 다시 말하면, 삶의 기반이 여기 외에는 없는 것이다. 어떤 때는 완곡하고 부드러운 말로, 어떤 때는 거친 목소리로 싫으면 나가라고 하는 말을 들어가면서, 그래도 여기밖에는 살 곳이 없는 것이다. (31)

한국의 여건이 자신과 맞지 않아 스스로 한국을 떠나 러시아로 귀화한 안현수선수를 바라보면서, 한국에서 떠나야만했지만 여전히 국적을 '한국'으로 지니고 일본을 터전으로 살아가고 있기에 어느 국가에도 동화되지 못하고 살아가야만하는 그 경계인의 슬픔이 느껴지는데, 너무 억지로 문제를 연결시켜버린건가..하는 생각이 들기도하고 디아스포라의 삶에 대해서 아는 것도 잘 없어서 좀 더 알아보고 있는 중이예요;;ㅎㅎ

곰곰생각하는발 2014-02-18 20:49   좋아요 0 | URL
저게 굉장히 위험한게 자세히 보면 < 너는 한 명의 대한민국 국민이다 > 가 아니라 < 너는 단 1명의 대한민국이다 > 라고 하잖아요. 대한민국 국민이다 와 대한민국이다, 는 전혀 다르잖습니까. 멘트를 전자'로 차용했다고 해도 스포츠 국가주의인데 후자는 이에 한발 더 나아가 파시즘이 되는거죠. 이건 완벽한 파시즘입니다. 개인과 국가를 합일의 차원으로 이미지화한게 대표적으로 무엇인가요 ? 가미가제 특공대 아닙니까.
그때 그들에게 세뇌시켰던 것은 너는 국가'다. 그래서 자기 목숨 버리고 뛰어든 거...

이슬람 과격 단체도 같은 논조 아닐까요 ? 너의 희생은 국가의 부활이다, 바로 이 슬로건으로 미친듯이 자살 폭탄 테러를 감행하는 거죠. 저 광고는 그냥 재수없는 광고가 아니라 한국 사회가 파시즘으로 흘렀다는 증거를 제시하는 기표이기도 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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디아스포라, 저도 읽어보았습니다. 많지 않은 분량인데 참 많은 것을 메시지를 던져주더군요. 문득 송두율 교수도 생각나고 스티브 유도 생각나네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