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주 오래된 통증......
복사꽃을 본 지 오래되어서 다음해 맹무살수의 고향에 갔다. 하지만 그곳엔 복사꽃은 없었다. 복사꽃은 처음부터 없었다는 걸 떠날 때에야 깨달았다. 복사꽃은 그 여자의 이름이었다. 그녀의 눈물을 보고 나서야 황약사가 날 찾아왔던 이유를 알았다.
- 동사서독, 구양봉(장국영)의 독백 中
김훈은 에세이 < 상처와 풍경 > 서문에서 “모든 풍경은 상처의 풍경일 뿐이다.” 라고 고백한다. 염세주의자인 나는 이 말을 " 모든 관계는 상처의 풍경일 뿐이다. " 라고 고쳐 말한다. 관계'가 상처를 주는 원인이라면 가장 농밀한 관계라 할 수 있는 사랑은 말해서 무엇하랴. 이 세상, 모든 사랑은 상처의 풍경일 뿐. 사랑할 때는 보이지 않으나 헤어지고 나면 비로소 깨닫게 되는 것이 부재'다. 사랑은 본질적으로 장소를 공유하는 데'에서 출발한다. 함께 했던 " 자리 " 를 기억하는 행위가 바로 사랑에 대한 기억이다. 함께 했던 < 자리 > 에서 텅 빈 자리를 바라볼 때 그 사람의 부재를 읽는다. 왕가위 영화 속 사랑은 대부분 장소에 대한 기억이다. 영화 < 동사서독 > 에서 사랑의 상처를 얻고 고향을 떠나 세상 밖으로 떠도는 맹무살수(양조위)는 사랑을 기억하기 위해서 사랑하는 사람보다 먼저 " 복사골 " 을 호명한다.
그는 복사꽃이라는 이름을 가진 여자를 기억하기 위해서 복사꽃 피는 마을(복사골)을 에둘러 말한다. 그래야지 사랑에 대해 말할 수 있다. 슬픈 사랑이다. 그는 도적떼가 휘두른 칼 끝에 자신의 목이 베일 때 경쾌한 바람소리를 듣는다. 사랑을 잃는다는 것은 장소를 잃는다는 것과 같은 말이다. 이처럼 상처라는 낱말이 품은 핵심은 장소/자리'이다. 상처에서 < 처 > 가 한자로 < 處 : 곳 처 > 다. 롤랑 바르트'처럼 화려한 만연체로 말하자면 실연에 따른 아픔은 그 사람이 없기 때문이 아니라 자주 가던 장소에 그 사람이 부재하기 때문에 발생하는 처연'이다. 글을 쓰다 보니 너무 먹물스럽게 말을 비비꼬았나 ? 헤헤헤. 됐고 ! 언제부터인가 나는 상처라는 말보다 흉터'라는 말이 가슴에 더 와닿았다. < 상처 > 라는 말은 왠지 싸구려 신파 같았고 < 흉터 > 는 가슴에 사무쳤다.
어제는 떠나버린 사랑 때문에 질질 짜다가 오늘은 느닷없이 사랑하는 사람이 생겼다며 희희낙락할 수 있는 감정이 " 상처 " 라는 낱말에 어울릴 것 같았다. 반면 < 흉터 > 는 묵직하고 담담한 어감이다. 흉터는 쉽게 울지 않고 쉽게 웃지 않는다. < 상처 > 와 < 흉터 > 는 모두 " 통증 " 이라는 공통분모를 가지고 있지만 상처가 주는 통증은 찰나'에 가깝고 흉터가 주는 통증은 지속'에 가깝다. 부풀어오른 통증은 살아 있다는 증거'가 된다. 흉터란 오랜 시간을 거쳐야 완성되는 흔적이기 때문이다. < 동사서독 > 에서 도적떼에게 목이 베인 맹무살수는 목에 흉터를 남기지 않는다. 왜냐하면 그는 통증을 견디지 못하고 죽은 자이기 때문이다. 이처럼 상처는 치명적이고 흉터는 지속적 속성을 가지고 있다. 상처는 못 견디는 것이고, 흉터는 견디는 것이다.
▶ 한 여성 행위 예술가가 현대인의 소통 단절에 대한 퍼포먼스를 진행하고 있다. 낯선 사람과 1분 간 서로 눈으로 대화를 나누자는 의도이다. 여기에 의도치 않은 한 남자가 등장한다. 행위예술가는 그 남자를 보자 설움과 기쁨이 섞인 눈물을 쏟는다. 옛날에 사랑했던 남자이자 동지였던, 그 남자 ! 여기서 여자 앞에 앉은 남자는 흉터'다. 한때는 못 견딜 것 같던 상처였으나 이제는 견딜 수 있는, 아름다운, 그리운, 보고 싶던 흉터가 그녀 앞에 있다.
영화 < 화양연화 > 에서 양조위는 아주 오래된 앙코르와트 사원에서 돌의 흉터'를 본다. 그는 천년 세월에도 무너지지 않는, 단단한 돌 속에서 상처입은 돌 하나를 발견한다. 숨탄것은 상처를 방치하면 살이 부풀어올라 양각으로 새겨진 흉터를 남기지만 나무와 돌은 음각으로 새겨진 흉터를 남긴다. 전자는 덧대고 후자는 파인다. 양조위가 앙코르와트에서 발견한 돌 구멍'은 아주 오랜 시간 동안 아물지 못했던 돌의 흉터였다. 얼마나 깊은 통증이었기에 저토록 단단한 돌에 구멍이 파였을까 ? 그는 오래된 통증 앞에서 자신이 겪었던 통증을 섞는다. 그리고는 지푸라기로 봉합한다. 그것은 일종의 치유이다. 텅 빈 자리를 메우는 상징적 몸짓이다. < 흉터 > 라는 말이 한자 조합으로 이루어진 낱말 같지만 사실은 순우리말이다. " ~ 터 " 는 놀이터, 일터, 낚시터'처럼 " 자리 " 나 " 장소 " 를 뜻한다.
슬프다
내가 사랑했던 자리마다
모두 페허다
나에게 왔던 사람들,
모두 어딘가 부서진 채
모두 떠났다
내 가슴속엔 언제나 부우옇게
바람에 의해 이동하는 사막이 있고
뿌리 드러내고 쓰려져 있는 갈퀴나무, 그리고
말라 가는 죽은 짐승 귀에 모래 서걱거리는
어떤 연애로도 어떤 광기로도
이 무시무시한 곳에까지 함께 들어오지는
못했다, 내 꿈틀거리는 사막이, 그 고열이
에고가 벌겋게 달아올라 신음했으므로
내 사랑의 자리는 모두가 폐허가 되어 있다
아무도 사랑해 본적이 없다는 거
언제 다시 올지 모를 이 세상을 지나가면서
내 뼈아픈 후회는 바로 그거다
그 누구를 위해 그 누구를 사랑하지 않았다는 거
젊은 시절, 도덕적 경쟁심에서
내가 자청한 고난도 그 누구를 위한 헌신은 아녔다
나를 위한 헌신, 나를 위한 희생, 나를 위한 자기 부정
그러므로 나는 아무도 사랑하지 않았다
그 누구도 걸어들어온 적 없는 나의 폐허
다만 죽은 짐승 귀에 모래알을 넣어주는 바람 뿐
- 시집 < 어느 날 나는 흐린 주점에 앉아 있을 거다 > 중 시 " 뼈아픈 통증 " 전문
황지우 시집 < 어느 날 나는 흐린 酒店에 앉아 있을 거다 > 에 수록된 " 뼈아픈 후회 " 는 사랑과 장소'가 밀접한 관계가 있음을 말한다. 시인은 " 사랑했던 자리 " 가 " 모두 폐허 " 가 되는, 쓸쓸한 풍경을 지켜본다. 그는 < 상처 > 나 < 흉터 > 라는 말 대신 < 폐허 廢墟 > 라고 말한다. 여기서 허(墟 : 터, 언덕, 구렁) 는 " 처 " 와 " 터 " 를 동시에 아우르는 지점이다. 폐허는 상처와 흉터 어딘가에 위치한다. 시인은 이 폐허를 견디지 못하고 " 그러므로 나는 아무도 사랑하지 않았다 " 라고 말하지만 우리는 이 고백이 상처를 숨기기 위한 위악이라는 사실을 알고 있다. 이 텅 빈 자리(폐허)를 메우는 행위가 비록 " 죽은 짐승 귀에 모래알을 넣어주는 바람 뿐 " 이라고 해도 우리는 이 지지부진한 채움'을 견뎌야 한다. 모래가 모여서 사막이 되듯, 속을 비운 채 질긴 가죽만 남은 죽은 짐승 귀에 모래알을 넣어 내부의 폐허를 채우는 행위가 사랑이다. 이처럼 " 處 " 와 " 墟 " 를 메워야지 사랑이라는 텅 빈 기표를 완성할 수 있다.
나는 한때 산기슭을 내려오다가 나무 구멍에 대고 속삭인 적이 있다. 누군가가 그 나무가 베였다는 소식을 전해주었다. 내가 누설했던 비밀을 품은 나무가 봉인 해제되었으니 이제 저잣거리에서는 벌통을 건드린 벌떼처럼 풍문으로 떠돌 것이다. 하지만 어쩌랴. 시계의 시계추처럼 매달려 울던 신파를 조롱해도 어쩌랴. 한 여자를 오래 사랑했으니, 후회는 없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