구로사와 아키라 자서전 비슷한 것
구로사와 아키라 지음, 김경남 옮김 / 모비딕 / 2014년 2월
평점 :
구판절판


 

 

 

 

 


 

 

 

 

 

자소서 비슷한 것.

 

 

 

 

 

 

 

 

 

오즈 야스지로는 < 옆 > 을 잘 찍는 감독이기보다는 < 곁 > 을 잘 찍는 감독이다. 오즈의 카메라는 두 사람이 나누는 대화에 끼어든다는 느낌 없이 곁에 머물면서 조용히 지킨다. 옆을 바라본다는 것과 곁을 지킨다는 것은 다른 느낌이다. 오즈가 다른 감독들과 다른 점은 바로 이 지점이다. " 곁 " 을 포착하는 능력은 오즈가 가장 탁월했다. 반면 구로자와 아키라'는 < 앞 > 을 잘 찍는 아시아 감독에 속한다.* 관객은 종종 배우의 응시를 불편하게 받아들인다. 수평적 관계를 중시하는 서양에서는 이 응시가 매혹적일 수 있으나 예를 중시하는 동양 문화에서는 자칫 무례하게** 보일 수 있는 구도이다. 그래서 그랬을까 ? 구로자와 아키라 영화는 밖에서는 열렬한 찬사를 받았지만 자국 내에서는 짜디 짠 박대를 받았다. 일본적이지 않다는 지적'이다. 그들은 오즈 야스지로의 위대함을 위해서 구로자와 아키라를 평가 절하시키고는 했다.

 

마치 김연아의 우아함을 위해서 아사다 마오와 비교 평가***하는 것처럼 말이다. 나는 구로자와 아키라 영화를 매우 좋아했다. [ 거미의 성 ] 은 셰익스피어 연극을 영화로 만든 모든 작품 가운데 가장 탁월했고, [ 숨은 요새의 세 악인 ] 은 영화가 활동극'으로 불린 이유를 깨닫게 해준다. 그런 그가 자서전 비슷한 것을 쓴 모양이다. 그래서 제목도 < 자서전 비슷한 것 > 이다. 역자 후기를 보니 < 자서전 비슷한 것 > 은 1978년 3월 ~ 1978년 9월까지 신문에 연재한 것을 덧대고 재구성해서 단행본으로 나온 책으로 구로사와 감독이 부제로 붙인 이름이 " 자서전 비슷한 것 " 이라고 한다. 그러니깐 이 책은 < 데루수 우자라 / 1975 > 와 < 가게무샤 / 1980 > 사이의 긴 공백 기간에 쓰여졌다. 칠순에 가까운 그가 지난 일을 떠올리며 쓴 글이다. 사실 이 책을 펼쳐놓고서는 한동안 당혹스러웠다.

 

내가 알고 싶었던 것은 [ 라쇼몽 ] 이후에 만들어진 영화 현장이었는데 이 자서전 비슷한 것은 " 라쇼몽 " 까지만 다룬다. 아뿔싸, 책을 살 때 차례'를 자세히 보지 않은 탓이다. 더군다나 전체 가운데  2/3는 감독이 되기 전 이야기'를 다룬다. 하지만 실망은 1,2장만 넘기면 글 솜씨에 빠져들게 된다. 그는 훌륭한 감독이기에 앞서 탁월한 시나리오 작가였다는 점을 다시 한 번 상기하게 만든다. 자서전에서 보이는 그 흔한 허세'가 보이지 않는다. 직설적이며 화를 잘내는 성격이 글에서도 그대로 묻어난다. 자상한 할아버지가 손주에게 달달하게 말하는 분위기도 아니고, 차 한 잔 마시며 진지하게 예술혼에 대해 말하는 분위기도 아니다. 왁자지껄하는 저잣거리 술집에서 불알친구들과 모여 낄낄거리며 수다를 떠는 것 같은 분위기'다. 그렇기에 그의 필모그라피 중 가장 화려했던 시기가 아닌 어렵고 힘들었던 애송이 시절에 집중했는지도 모른다.

 

모든 글이 꼭 유쾌한 것만은 아니다. 관동대지진 때 벌어진 재일 조선인에 대한 흉흉한 소문을 바라보는 감독의 시선은 감동적이며 서른이 되기 전에 자살한 형에 대한 애틋한 마음은 처연하기까지 하다. 하지만 구로사와의 글빨에서 불구하고 찜찜함은 남는다. 감독 스스로가 말했듯이 자서전이라고 하기에는 미흡하다. 미완으로 남은 자소서 같다.

 

 

 

 

FIN

 

 

 

 

 

 

 

 


 

 

구로사와 아키라 영화(들)

 

▦ 내가 가장 좋아하는 구로사와 영화는 < 거미의 성 > 이다.

▦ < 거미의 성 > 을 볼 때 늘 궁금했던 점 하나가 마지막 장면이다. 1957년도에 만들어진 영화이니 특수촬영으로 화면을 조작할 리는 없는데 와시즈(미후네 도시로가 )가 수많은 화살을 피해 도망가는 장면은 아무리 봐도 이해하기 불가능했다. 왜냐하면 " 리얼 " 했기 때문. 하지만 이 책 부록에 해당하는 필모그라피에는 그 궁금증을 해소할 만한, 청천벽력 같은 사실이 폭로된다. 다음과 같다. " 와시즈가 비처럼 쏟아지는 화살을 피해 도망가는 라스트신에서 와시즈 역을 맡은 미후네의 공포에 질린 얼굴은 연기가 아닌 것처럼 보였는데, 실제로 대학의 궁도부원들에게 미후네를 향해서 화살을 쏘게 했다고 한다. " 맙소사 ! 미후네의 영화 속 공포는 연기가 아니라 진짜였던 것이다.  한국 양궁 선수라면 모를까 ? 실력이 꾀죄죄죄한 일본 대학 궁도부원들이 진짜로 미후네를 향해 화살을 쏜 것이다.  화살이 그를 향해 비처럼 쏟아졌는데 그중 한 발이라도 엇나갔다면 미후네는 어떻게 되었을까 ? 문득 베르너 헤어조크 감독의 < 피츠카랄도 > 가 떠올랐다.  구로사와가 화살을 쏘았다면 헤어조크는 권총으로 배우를 협박했다. " 연기할래, 아니면 죽을래 ? " 둘 다 약간 미친 감독 같다.

▦ < 천국과 지옥 > 은 카메라의 동선과 배우의 동선이 서로 얽히지 않고 유려하게 치고 빠질 수 있는 신기를 보여준다. 오랫동안 호흡을 함께 한 탱고 같다. 집중력을 잃지 않는 힘, 그것이 바로 구로사와 영화가 가지고 있는 힘이다.

▦ 구로사와는 여름을 배경으로 하는 영화는 겨울에 찍고 반대로 겨울을 배경으로 한 영화는 여름에 찍는, 아주 못된 버릇이 있다. 그래서 촬영장은 전쟁터 같은 치열함이 있었다고 한다. < 살다 > 라는 영화는 겨울이 배경인데 이 영화는 여름이 찍었다. 아, 불쌍한 시무라 다카시. 눈이 펑펑 내리는 놀이터에서 ' 곤돌라의 노래 ' 를 부를 때 얼마나 더웠을까 ? 시무라 다카시에게는 미안하지만 이 장면은 구로사와 영화 중 가장 아름다운 장면이 아닐까 싶다.  

▦ 개인적으로 구로사와에게 영광을 안긴 < 라쇼몽 > 을 그닥 좋아하지 않는다. 구로사와 영화치고 심심한 영화에 속한다. 혹여, 이 영화 한 편 보고 지레 실망해서 그의 다른 영화를 보지 않기로 했다면 당신은 큰 실수를 저지르는 꼴이 된다.

▦ 그는 꽤 굵직굵직한 해외 문학 작품을 영화로 만들었다. < 거미의 성 > 은 [ 맥베스 ] 가 원작이고, < 밑바닥 > 이라는 영화는 막심 고리키의 [ 밑바닥에서 ] 가 원작이다. < 요짐보 > 는 대실 해밋의 [ 피의 수확 ]에서, < 란 > 은 [ 리어왕 ]에서, < 백치 > 는 제목 그대로 도스토엡스키의 [ 백치 ]에서, < 살다 > 는 톨스토이의 < 이반 일리치의 죽음 > 에서 영감을 얻어 만든 작품이다.

▦ 러시아가 구로사와를 초대해서 < 데루수 우잘라 > 를 찍었는데 그것은 러시아 문학 작품을 꾸준히 영화로 각색한 노 감독에 대한 답례처럼 보인다. 실제로 영화 제작 및 투자를 담당한 러시아는 영화 제작 과정에서 참견을 일절 하지 않았다고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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매직퀸 2014-02-21 04:00   좋아요 0 | 댓글달기 | 수정 | 삭제 | URL
이 책 읽을만 한가요? 제 블로그에 구로자와에 대한 글도 아니고 블로그 포스팅 한 글에 구로자와 이름이 있었는데 이 책 낸 출판사에서 서로 이웃 신청하더군요 ㅎㅎ 흥미로워 보여서 살까 생각은 하고 있는데. 이게 예전에 나왔던 감독의 길의 정식 버전이라고 하던데요...

곰곰생각하는발 2014-02-21 04:13   좋아요 0 | URL
맞습니다. 감독의 길'이죠. 이전 책이 영문 번역이었다면, 이 책은 원판 번역.. 이게 맞는 말인가?! 하여튼...
촬영현장이나 우리가 흔히 알고 싶어하는 이 영화 이 장면 어떻게 찍었지 ?! 이런 굼금증을 해소해 줄 것은 하나도 없다는 측면에서는 좀 아쉽습니다. 그냥 이야기를 풀어내는 것으로는 좋으나 전문적으로 무엇인가를 배우고 싶다는 측면에서는 거의 아무것도 보여주지 않죠. 퀸 님에게는 별 득이 안 되는..
그러니간 나 같은 영화 좋아하는 사람이 그냥 읽기에는 좋지만 기술적인 노하우를 얻고 싶어하는 사람에게는 평범한 책이 아닌가 싶습니다.

매직퀸 2014-02-21 05:07   좋아요 0 | 댓글달기 | 수정 | 삭제 | URL
답변 감사. 인생 이야기가 사실 더 궁금하고 흥미롭긴 합니다 ㅎㅎ

곰곰생각하는발 2014-02-21 05:11   좋아요 0 | URL
책 아주 재미있습니다 ! 읽어보세요. 문장력도 좋아서 책이 술술 읽힙니다. 딱딱하지 않습니다.

노이에자이트 2014-02-21 17:54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미후네 도시로와 구로자와 아키라는 늘 함께 떠오르더군요.나중에 대판 싸우고 결별했지만...이 자서전에는 미후네 도시로에 대한 언급은 어느 정도 나오나요?

곰곰생각하는발 2014-02-22 05:55   좋아요 0 | URL
아, 노이제자이트 님 오랜만입니다. 후후.
미후네에 대해서는 크게 다루지는 않아요. 워낙 , 라쇼몽 까지만 다뤄서 말이죠.
하지만 읽어볼 만한 후일담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