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 말이 없는 것들.

 

6 : 아, 입이 없는 것들 + 섬

 

 

 

 

 

결핍은 욕망을 낳기에 절식은 포식에 대한 강렬한 욕구를 야기한다. 내가 연애에 실패했을 때, 이별 후에 오는 것은 슬픔, 상실, 후회 따위가 아니라 공교롭게도 코카콜라'였다. 하루 평균 뚜껑 달린 코카콜라를 일곱 개나 마셨다. 심지어는 1.5리터 대용량 코카콜라를 3병이나 마신 적도 있었다. 코카콜라 탄산 알갱이는 입 속으로 들어오면 느닷없이 피라냐로 변해서 혓바닥을 가차없이 물어뜯었다. 이 알싸한 고통은 이성복 시인의 표현을 빌리자면 " 소금밭을 종종걸음 치는 갈매기 발 " 처럼 따가웠다. 이 고통은 독한 말을 쏟아냈던 입, 게걸스럽게 음식을 탐했던 입, 바람이 전했던 흉흉한 소문을 덧대어서 다른 이에게 즐겁게 속삭이던 입'에 대한 자기 징벌에 가까웠다(고 설레발을 쳐본다). 나는 구순기 고착형 인간'이었다.

 

그때부터 말수가 적어지기 시작했다. 개봉 영화'를 보는 횟수가 적어지는 대신 고전 영화를 다시 보기 시작했고, 말이 많은 우디 알렌 토키 영화보다는 말이 전혀 없는 찰리 채플린 무성 영화'를 찾아서 보기 시작했다. 점점 조용한 영화가 좋아지기 시작했다. 안드레이 타르코프스키 영화를 좋아하는 이유는 바로 조용한 영화이기 때문이다. < 거울 > 이라는 영화는 인간이 말이 없어지면 몸짓이 얼마나 우아한가를 단적으로 보여준 작품이었다. 아, 말이 없는 것들 !

 

 

저 꽃들은 회음부로 앉아서

스치는 잿빛 새의 그림자에도

어두워진다

 

살아가는 징역의 슬픔으로

가득한 것들

 

나는 꽃나무 앞으로 조용히 걸어나간다

소금밭을 종종걸음 치는 갈매기 발이

이렇게 따가울 것이다

 

아, 입이 없는 것들

 

      - 이성복. 아, 입이 없는 것들. 전문

 

 

" 저 꽃들은 " 초라하다. " 스치는 잿빛 새의 그림자에 " 작은 꽃은 금세 어두워진다. 이성복은 꽃을 " 살아가는 징역의 슬픔으로 가득한 " 존재라고 생각한다. 그가 보기엔 < 꽃 > 은 아름답다기보다는 슬픈 존재'다.  자유로운 잿빛 새와는 달리 꽃은 박힌 못'처럼 갇혀 있다. 꽃을 가두는 존재는 바로 " 꽃나무 " 이고, 그 꽃나무를 가두는 존재는 뿌리'다. 뿌리는 꽃나무를 가두고, 꽃나무는 가지를 가두고, 가지는 끝에 꽃을 피운다. 비유를 들자면 꽃은 물 위에 뜬 배이고, 뿌리는 배를 고정시키기 위해 물 밑바닥으로 내린 닻이다. 하지만 이 징역은 운명과 같아서 꽃은 뿌리에서 떨어져 나가는 순간 말라 죽는다. 입이라는 기관이 없는 꽃은 뿌리가 입이다. 그러므로 낙화는 자유를 얻는 동시에 죽음으로 마무리되는 허무한 자유 의지'라 할 수 있다. 

 

입이 있는 것들은 위에서 먹이를 섭취해서 밑바닥으로 쏟아내지만 입이 없는 것들은 아래에서 섭취해서 위로 쏟아낸다.  역설적이게도 입이 있는 것'이 아래로 쏟아내는 것은 더러운 똥이지만 입이 없는 것이 위로 쏟아내는 것은 아름다운 꽃이다. 시인에게 있어서 < 꽃 > 은 꽃나무가 먹고 남은 것을 쏟아낸 결과'이다. 김기덕 감독의 영화 < 섬 > 은 입은 있으나 말이 없는 것들에 대한 이야기'이다. 김기덕은 이 영화로 페미니즘 진영쪽 영화평론가들에게 살인에 가까운 독설을 들어야 했고 < 나쁜 남자 > 에서 정점'을 찍었다. 김기덕을 향한 비판은 비판이라기보다는 차라리 조롱과 경멸에 가까웠다.  그들은 끊임없이 이어지는 폭력과 강간 장면을 여성에 대한 조롱과 경멸로 읽었고 똑같은 방식으로 감독에게 되돌려 주었다. 

 

김기덕을 비판하던 평론가들은 이 가학성'을 " 김기덕의 정신병적 취향 정도 " 로 이해했고, 가족 중에 가족력(정신과 치료를 받은)이 있는지 의심해 보아야 한다는 기상천외한 평론을 남발하는 이도 있었지만, 김기덕(영화)보다 더 폭력적인 이는 김기덕을 공격한 페미니즘 진영쪽 영화평론가들이었다. 내가 보기에 이 영화는 문학과 미학적인 면에서 두루 성공한 작품이다. 낚시터 주인은  말수가 적은 여자가 아니라 말이 없는 여자'다. 有口無言인 여자는 인간이기보다는 人魚에 가깝다. 그녀는 물을 지배한다.  영화 < 섬 > 은 이성복이 시 < 아, 입이 없는 것들 >에서 다루는 세계와 유사하다.  닻에 고정된 부표(집)는 뿌리에 의해 고정된 꽃이다. 부표는 꽃이고 닻은 뿌리'이다. 꽃이라고 하기에 어두운 영화라면 물풀'이라고 하자.  

 

사람을 죽여서 경찰을 피해다니는 것으로 추측되는 남자는 저수지 위에 외따로이 떠 있는 노란색 부표(집)로 숨어들지만 사실 그 행위는 자기 징벌에 가깝다. 닻에 고정된 부표로 숨어든다는 사실은 " 살아가는 징역 " 에 해당되기 때문이다. 영화 속 좌대는 완벽한 1인용 감옥이다. 그러므로 남자는 스스로 징역살이를 자처하는 꼴이다. 그는 몸속에 내재된 동물성을 거세하기 위해 입 속에 낚시바늘을 삼켜 스스로 " 입이 없는 것(식물성) " 이 된다. 이 행위는 일종의 성전환'이다.  어쩌면 여자 또한 그 옛날에 낚시 바늘을 삼켜서 입이 없는 것이 되었는지도 모른다. 이제 상처 입은 < 입 > 은 무엇인가를 삼킬 때마다 " 소금밭을 종종걸음 치는 갈매기 발 " 처럼 " 이렇게 따가울 것이다 " 그는 말을 잃어 풀이 된다. 

 

영화는 물 속에 내렸던 닻을 올리는 것으로 끝난다. 뿌리에서 떨어져나간 부표는 흘러간다.  자유에 대한 열망일까 ? 아니면 죽음에 대한 욕망일까 ? 뿌리에서 떨어져 나갔다는 측면에서 그 행위는 자살에 가까운 상징적 몸짓이다. 페미니즘 평론가들은 낚시 바늘로 찌르고 칼로 도려내는 장면을 불쾌하게 생각했지만 나는 이 상처가 아름답다. 말이 없는 여자가 떠나는 남자를 붙잡기 위해 자궁 속에 낚시 바늘을 넣어 줄을 당겨 외마디 비명을 질렀을 때, 나는 그 모든 것을 용서하기로 했다. 아파야지만 소리를 지를 수 있는 이 불쾌한 소리는 사이렌이 감미롭게 부르는 노래는 아니지만 묘하게 나를 감동시켰다. 뼈아픈 통증을 통해서만 가까스로 소리를 만들어서 떠나는 배를 붙잡는, 이 처연한 절규에 그 누가 돌을 던지랴.

 

이 세상 모든 꽃나무는 상처에서 꽃을 피운다. 꽃 진 자리'에서 다시 꽃이 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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마립간 2014-04-05 12:10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도서관에서 이런 표어를 봤습니다. '책은 문화의 뿌리이자 꽃이다.' 이 문장이 단기적 맥락이라고 생각하고 제가 선호하는 장기적 맥락의 의미가 담긴 '책의 문화의 씨앗이자 열매이다.'로 바꿔 생각했습니다. 이로써 순환의 고리를 연결했죠.

곰곰생각하는발 2014-04-05 14:33   좋아요 0 | URL
열매가 좋겠습니다. 그러고 보니 꽃 진 자리에 열매가 자라더군요.

곰곰손 2014-04-05 20:53   좋아요 0 | 댓글달기 | 수정 | 삭제 | URL
꽃진 자리에 열매가 자란다는 말 조타.
피운 꽃이 진다는건 정말 슬픈일일꺼야
근데 그자리에 열매가 맺인다면
또 그만한 구원이 없겠지..



곰곰생각하는발 2014-04-06 08:31   좋아요 0 | URL
꽃 진 자리에 열매가 열리는 법이지.
상처에서 열매가 자라는 거 아니겠냐.

samadhi(眞我) 2014-04-07 21:17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그래도 낚싯줄 집어넣는 장면은 소름이 돋아요. 생각만 해도 끔찍해서...으..... 김기덕 영화는 봄여름가을겨울그리고봄이 제일 좋았어요. 그것도 사실은 무척 잔인하기도 했지만 정말 아름다웠죠. 영화가 끝나도 일어설 수 없었지요.

곰곰생각하는발 2014-04-08 02:51   좋아요 0 | URL
점 이 섬'이 제일 좋아요. 김기덕 영화는 후기작으로 갈쑤록 뭔가 좀 타협한다는 느낌이 들어서 쓸쓸하비다.
낚시줄 넣는 장면은 정말 끔찍하죠. 저도그 부분에서는 섬찟합니다.
이때 김기덕은 인간이 아니었어요. 지금은 나이를 먹어서 순해진 거 같습다. 스티븐 킹 처럼 말이죠.
킹도 요즘 작품들은 말랑말랑해요..
 

 

 

 

 

 

 

 

 

 

 

 

 

 

 

 

 

 

 


 

 

 

 

 

 

내 안의 너

 

5 : 슬픈 게이 + 달콤한 인생

 

 

 

 

김지운 감독의 영화 < 달콤한 인생 > 은 느와르 멜로 영화‘이다. 표면적으로는 부하가 보스의 여자를 사랑해서 의리 없는 전쟁이 시작되는 것으로 설정되었지만 사실 보스가 부하에게 보낸 여자‘는 히치콕이 즐겨 사용하는 " 맥거핀 " 에 지나지 않는다. 하지만 맥거핀'이란 언제나 서사를 끌고 가는 강력한 오브제가 아니었던가. < 여자 > 는 아무 의미도 없는 nothing에 불과하지만 " 아버지가 소유한 영토 " 에 편입되는 순간 그것은 강력한 금기taboo가 된다. 이제 그녀는 " 건들면 (아버지에게) 혼나는 대상 " 이 되었다. 그녀는 판도라의 상자'이며 동시에 에덴 동산의 사과나무'다. 아버지(보스)는 사과꽃 필 무렵 아들에게 수수께끼 상자를 선물하며 에덴 동산을 떠난다. 아들은 이 유혹을 견딜 수 있을까 ? 

 

이 영화가 느와르 장르 영화라는 점을 고려하면 여자가 맡은 역할은 "악녀 / 팜므 파탈 " 이다. 악녀는 남자를 파괴하기 위해 존재한다. 아들이 여자 옷고름 같은 선물용 리본을 풀어헤쳐 금단의 열매를 따먹는 순간 아버지는 쏜살같이 돌아오리라. 그런데 이 영화를 자세히 들여다보면 아들은 아버지가 남기고 간 선물을 풀어헤쳐 금단의 열매를 따먹지는 않는다. 그냥 단순하게 흔들렸을 뿐이다. 악녀와 손을 잡고 아버지를 제거할 음모를 꾸미거나 그 흔한 키스 씬 하나 없지 않았나 ? 아들은 유혹에 빠진 것이 아니다. 어쩌면 그가 흔들린 것은 여자가 아니라 여자가 연주하는 첼로 곡이었는지도 모른다. 하지만 아버지는 아들을 제거하기 위해 돌아온다. 그는 모든 것을 다 알고 있는 듯한 눈빛으로 여자를 본다. 어쩌면 보스가 사랑하는 사람은 여자가 아니라 남자인지도 모른다.

 

그렇다, 두목과 부하는 서로 사랑하는 사이’다. 이 영화는 " 느와르 퀴어 멜로 무비 " 다. 영화 초반부 보스가 부하를 바라볼 때, 그 나긋나긋한 눈빛을 보라. 그리고 부하인 이병헌이 보스인 김영철 앞에서 조심스레 몸단장을 하는 몸짓을 보라. 두목과 겸상할 때, 이병헌의 황홀한 표정은 어떤가 ? 지아비를 섬기는 자태 고운 조강지처 같다. 그들은 서로 사랑한다. 다만 성관계’가 없을 뿐이다. 이 사랑은 영원할까 ? 문득 보스는 부하의 사랑을 시험하고 싶다. 그래서 두목은 부하 앞에 아름다운 여자’를 보낸다. 이 유혹을 이긴다면 두 남자 간 굳은 맹세는 더욱 견고해질 것이다. 하지만 부하는 유혹에 빠졌다(고 보스는 판단한 모양이다). 그 순간 부하는 유혹에 빠진 파계승‘으로 전락한다. 말 그대로 사랑과 전쟁’이다. 이병헌이 혈투 끝에 드디어 만난 김영철에게 하얀 치아‘를 드러내며 “ 왜 그랬어요 ? ” 라고 질문을 던졌을 때 그 말은 마치 “ 당신을 향한 내 사랑을 의심했나요 ? ” 라는 절규처럼 들린다.

 

그렇다, 그들은 서로에게 화가 났다. 두목은 부하가 자신에게 집중하지 못하고 한눈판 것에 대해 화가 났고, 부하는 보스가 자신의 사랑을 의심했다는 사실에 화가 났다. 이 영화를 한 마디로 요약하자면 한때 사랑했으나 치정’으로 끝나는, 질투에 눈이 먼 치정극으로 요약할 수 있겠다. 이 영화에서 가장 인상 깊은 장면은 이병헌이 검은 유리창을 거울 삼아 샤도우 복싱‘을 하는 시퀸스’인데 그는 유리창에 비친 사내‘를 보고 웃는다. 남자가 남자에게 보내는 웃음치고는 상당히 유혹적이다. 토마스 샤츠는 < 할리우드 장르의 구조 > 에서 슈레이더의 " 필름 느와르를 특징 짓는 7가지 반복적인 테크닉 " 을 소개하면서 필름 느와르가 " 물에 대해 거의 프로이트적인 집착이 있다 " 고 지적한다. 여기서 물의 대체자는 거울, 창문, 그 외 반사하는 물체들이다.

 

< 달콤한 인생 > 또한 물(자기 모습을 반사하는 것)에 대한 집착을 보여준다. 호텔 바 내부는 " 물의  이미지 " 로 이루어져 있다. 내부는 온통 반사되는 것투성이'다. 이병헌은 호텔 바 어디에 서 있어도 반사된 자신을 볼 수 있다. 위에서도 지적했듯이 이병헌은 밤이 스며든 유리창에 비친 자신을 보며 황홀해 한다. 이 자기애'는 영화의 주제를 단적으로 보여준다. 그가 사랑하는 대상은 여자가 아니라 남자다. 채호기는 < 슬픈 게이 >  연작에서 게이를 " 페이스-오프 " 하는 존재라고 말한다. 그러므로 보이는 얼굴은 내것이 아니다.

 

손바닥에 너의 두 눈

내 눈을 빼고 그걸 끼운다.

코와 입 귀를 지우고

너의 코와 입 귀를 덮는다.

머리카락을 뽑고

너의 머리카락을

씌운다.

내 얼굴은 사라지고

거울 속에 비친 네 얼굴

웃는다 너처럼.

너무나 생생한 예전의 너의 미소

그걸 흉내낸다.

내 생각이 너의 생각이도록

반복하고 반복한다.

너를 연기하는 배우가 아냐.

네가 되어 너의 삶을 살아가는거지.

 

                        - 슬픈 게이, 부분.

 

" 너의 두 눈 / 내 눈을 빼고 그걸 끼 " 우거나 내 " 머리카락을 뽑고 / 너의 머리카락을 / 씌운다. " 이로써 " 내 얼굴은 사라지고 " 대신 " 거울 속에 비친 네 얼굴 " 만 남는다. 채호기에게 있어서 게이는 분열적이며 다중적 존재'다. 게이는 < 더블 > 이다. 그것은 기만적인 것이 아니라 사회적 폭력으로부터 자신을 보호하기 위한 몸짓'이다. 영화 속 이병헌이 밤이 스며든 거울을 보며 샤도우 복싱을 하는 장면은 < 슬픈 게이 > 를 연상시킨다. 그 또한  " 거울 속에 비친 네 얼굴 " 을 보며 " 웃는다 " 이  미소는 일종의 " 흉내 " 다. 게이는 " 내 몸이 / 내게 맞지 않 " 은 외투를 입은 자다.

 

내 몸이
내게 맞지 않다.

몸에 갇혀
끙끙거리는
나 아닌
몸 속에
다른 이의
애타는
목소리.

덜컹거리는 몸에 실려
나의 일생을 떠메고 가는
잘못 입은 너의
몸의
쓸쓸한 뒷모습.

—채호기, 「게이 4」 전문

 

그는 외투를 벗어 알몸을 보여주고 싶지만 동성애는 사회적 금기'다. 그래서 게이는 슬픈 운명을 가졌다. 내 안에 너 있다. 겉은 < 너 > 인데 속은 < 나 > 다. 혹은 그 반대도 성립된다. 동병상련일까 ? 겉인 < 너 > 는 < 나 > 가 안쓰럽고, < 나 > 는 애써 태연한 척 밝게 웃는 < 너 > 가 애처롭다. 김지운 영화에서 " 동성애적 감성 " 을 읽어내는 것은 그리 어렵지 않다. < 달콤한 인생 > 에서 이병헌은 이야기 하나를 들려준다. 스승에 잠에서 깨어나 울고 있는 제자를 보며 묻는다. 무서운 꿈을 꾸었느냐 ? 아닙니다. 슬픈 꿈을 꾸었느냐 ? 아닙니다. 달콤한 꿈을 꾸었습니다. 그럼 왜 우느냐 ? 달콤한 꿈은 이루어질 수 없기 때문입니다. 여기서 그가 말하는 달콤한 꿈'이란 무엇일까 ?

 

스승은 흔들리는 것은 바람도 아니고 나뭇가지도 아닌 마음이라 했으나, 사실  가지를 흔들리게 만든 주체'는 뿌리 때문이다. 뿌리가 없는 티끌은 흔들리지 않고 날아갈 뿐이다. 부러진 가지가 이리저리 흔들리던가 ? 오직 깊게 박힌 존재만이 흔들린다. 자유로운 것은 뿌리가 없는 존재들이다. 인간도 마찬가지다. 행복한 자는 뿌리'가 없는 자'이다. 인간은 사회가 인간에게 부여한 고정된 역할 놀이 때문에 힘들어한다. 슬픈 게이는 뿌리(마음)은 여성인데 가지(몸)은 남성이거나 뿌리는 남성인데 가지는 여성인 자다. 그래서 그들은 흔들린다. 바람이 불지 않아도, 그렇게 흔들리는 존재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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매직퀸 2014-04-04 09:14   좋아요 0 | 댓글달기 | 수정 | 삭제 | URL
김지운 감독의 유일한 걸작. 누가 김지운 감독 좋아하냐 물어보면 다른 모든 영화를 안 좋아하는데 이 영화때문에 좋아한다고 말합니다 ㅎㅎ

곰곰생각하는발 2014-04-04 09:39   좋아요 0 | URL
빙고 ! 저도 김지운 감독의 유일한 걸작이라고 말하고 싶군요. 이 영화 때문에 계속 실망하면서도 김지운 영화를 보지만 이 영화보다 잘빠진 후속작을 만들지는 못하더군요. 여기까지가 그의 한계인 듯......

수다맨 2014-04-04 11:44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김영철 씨 연기를 참 잘 하는데 왠지 스크린으로 보기는 어려운 듯합니다. 개인적으로는 최수종/정보석 같은 이들은 나이가 들어도 저만한 포스나 느낌이 나오지 않는 것 같은데 말이죠.
이 영화를 보스와 부하의 사랑 얘기로 보는 것도 굉장히 흥미롭네요 ㅎㅎㅎ

곰곰생각하는발 2014-04-04 12:50   좋아요 0 | URL
독보적이죠. 김지운이 김영철을 기용했다는 것은 탁월한 안목입니다.
최수종, 정보석... 전, 이 두 양반 대한민국에서 연기 제일 못하는 사람으로 뽑습니다.
특히 최수종 표 연기... 아주 질색임.....

samadhi(眞我) 2014-04-04 12:27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저도 이병헌이 화장실 거울을 보며 "내가 왜 이렇게 된 거지?" 하는 장면이 인상깊었죠. 그 대사가 양파의 "달콤한 인생" 노래 중간에 나와서 더욱 기억이 나요. 하필 그 대사가 나오는 음악을 다운 받는 바람에^^ 그 음악을 들으며 이병헌처럼 그 대사를 치곤 했었죠. 저도 이 영화 때문에 김지운 감독을 좋아해서 후속작도 괜찮겠거니 믿고 봤다가 그 영화만 잘만든 거구나 했어요.

곰곰생각하는발 2014-04-04 12:49   좋아요 0 | URL
느와르 영화는 본질적으로 이중적 자아'를 담습니다. 이 이중성을 담기 위해서는 반사되는 물의 이미지'만큼 좋은 것도 없죠. 화장실 장면도 그렇고 말이죠. 느와르가 본질적으로 성적 불균형을 담는다고 토마스 샤츠 어르신이 말씀하시는데 이 영화는 그런 불균형을 다룹니다. 그래도 수작 여러 편 있는 것보다는 걸작 하나 있는데 감독으로써는 뿌듯할 겁니다... ㅋㅋㅋ
 

 

 

 

 

 

 

 

 

 

 

 

 

 

 

 

 

 

 

 


 

 

 

여장남자 시코쿠

 

 

 황병승

 

하늘의 뜨거운 꼭짓점이 불을 뿜는 정오

 

도마뱀은 쓴다

찢고 또 쓴다

 

(악수하고 싶은데 그댈 만지고 싶은데 내 손은 숲 속에 있어)

 

양산을 팽개치며 쓰러지는 저 늙은 여인에게도

쇠줄을 끌며 불 속으로 달아나는 개에게도

 

쓴다 꼬리 잘린 도마뱀은

찢고 또 쓴다

 

그대가 욕조에 누워 있다면 그 욕조는 분명 눈부시다

그대가 사과를 먹고 있다면 나는 사과를 질투할 것이며

나는 그대의 찬 손에 쥐어진 칼 기꺼이 그대의 심장을 망칠 것이다

 

열두 살, 그때 이미 나는 남성을 찢고 나온 위대한 여성

미래를 점치기 위해 쥐의 습성을 지닌 또래의 사내아이들에게

날마다 보내던 연애편지들

 

다시 꼬리가 자라고 그대의 머리칼을 만질 수 있을 때

까지 나는 약속하지 않으련다 진실을 말하려고 할수록

나의 거짓은 점점 더 강렬해지고)

 

어느 날 누군가 내 필통에 빨간 글씨로 똥이라고 썼던 적이 있다

 

(쥐들은 왜 가만히 달빛을 거닐지 못하는 걸까)

 

미래를 잊지 않기 위해 나는 골방의 악취를 견딘다

화장을 하고 지우고 치마를 입고 브래지어를 푸는 사이

조금씩 헛배가 부르고 입덧을 하며

 

도마뱀은 쓴다

찢고 또 쓴다

 

포옹을 할 때마다 나의 등 뒤로 무섭게 달아나는 그대의 시선!

 

그대여 나에게도 자궁이 있다 그게 잘못인가

어찌하여 그대는 아직도 나의 이름을 의심하는가

 

시코쿠, 시코쿠,

 

붉은 입술의 도마뱀은 뛴다

 

장문의 편지를 입에 물고

불속으로 사라진 개를 따라

쓰러진 저 늙은 여자의 침묵을 타넘어

 

뛴다, 도마뱀은

 

창가의 장미가

검붉은 이빨로 불을 먹는 정오

 

숲 속의 손은 편지를 받아들고

꼬리는 그것을 읽을 것이다

 

(그대여 나는 그대에게 마지막으로 한번 더 강렬한

거짓을 말하련다)

 

기다려라, 기다려라!

 

 

 

 

                                                                                                                                                                 

 

 

 

 

 

응답하라, 시코쿠여 !

 

 

 4 : 여장남자 시코쿠 + 러브 레터

 

문학 모임에서 누근가가 황병승의 < 여장남자 시쿠코 > 를 낭독했을 때, 나는 이 개똥 같은 소리에 당황한 적이 있다. 상대는 국문과 학생들. 그들은 아카데믹한 무림 학원에서 기술을 습득한 무림 맹주들. 손끝을 튕기면 태풍이 휘몰아치리라. 맹무살수가 나에게 " 난해한가 ? " 라고 먼저 선빵을 날렸지만 당황하지 않고 ① 태연한 척 미소를 던지며 코를 파 코딱지를 얼굴에, 팍 ! 끝 ② 도마뱀'이 옥타비오 파스의 불도마뱀'이라는 포에틱딕션을 차용한 것을 아나 ? 라는 질문에 물파스는 들어봤어도 옥타비오 파스는 금시초문이어서 무척 당황스럽지만 내색하지 말고 쓰디쓴 커피와 담배 한 모금 연기를 빨아들이며 빙고, 라고 외친 후 말없이 박수를 짝,짝,짝 ! 끝 ③ 상대방이 지치지 않고 시쿠코가 누구냐고 계속 공격을 하면 ④ 벌떡 일어나며 " 애(황병승)가 많이 다쳤어 ! " 라며 창밖을 본다, 끝. ⑤ 상대방이 비웃으며 개똥 같은 소리 하지 말라고 조롱하면 뒷걸음질치며 함부로 그런 말 하는 거 아냐. 끝.

 

재작년 해외토픽 한 토막 소개하자면 일하기 싫어하던 우체부 직원이 무더기로 편지를 쓰레기통에 버리다가 들킨 적이 있다. 왜 그랬냐는 질문에 돌아온 대답은 딴스홀에 가서 춤을 추기 위해서라고. 또 어떤 이는 편지를 자기 집에 쌓아 두기도 했다. 실제로 편지를 보냈는데 받지 못하는 경우는 비일비재하다. 이때 소중한 편지(letter) 은 잡동사니(litter)가 된다. 배달 사고'란 결국 알파벳 E ☞ I 로 둔갑하게 만든다. 사소한 점과 획 하나가 전체 패러다임을 바꾸는 것이다.  남이라는 글자에 점 하나를 빼면 님이 되고, 신부님이라는 낱말에서 님 하나를 빼면 신부가 되지 않느냔 말이다. 전자가 神父(신부)라면 후자는 新婦(신부)다. < 님 > 이라는 글자는 이처럼 아슬아슬하다.

 

편지도 마찬가지다. 답장이 오지 않으면 우리는 그것은 변심이라고 생각하는 경향이 있다. ( 딴스홀에 가기 위해 엉뚱한 짓을 한 ) 우체국 직원이 버린 편지 때문에 헤어진 연인들이 꽤 많이 있었을 것이다. 오해에서 비롯된 이별'이다. 라캉은 편지는 항상 수신인에게 도착한다고 말했지만 보다 정확히 말하자면 LETTER는 수신인에게 전달될 때에만 LETTER가 된다. 이와이 슌지의 < 러브 레터 > 에서 도시 여자'는 죽은 남자친구를 잊지 못한다.  그녀는 우울증에 걸려 있다. 프로이트가 " 애도와 우울증 " 에서 지적했듯이 애도는 슬픔을 다 함께 나누는 행위이고, 우울은 혼자서 간직하는 행위'이다. 죽은 남자는 이별 통보도 없이 겨울 산에서 길을 잃고 사라졌다. 도시 여자가 보기엔 그는 작별 인사도 없이 빠이빠이를 한 것이다. 여자는 그 점이 괘씸하다.

 

그래서 그녀는 그를 놓아주지 않는다. 그것은 마치 바람난 남편이 아내에게 이혼을 요구할 때 " 누구 좋으라고 내가 이혼을 해줘 ? " 라고 말하는 조강지처의 심리 상태와 비슷하다. 그녀는 잊지 못한다기보다는 괘씸하다. 도시 여자는 아무 생각없이 죽은 애인 주소로 편지를 보낸다. 물론 이 행위는 의미없는 행위다. 살아 있을 때에도 이별 통보도 없이 빠이빠이한 남자였으니 죽어서도 답장을 보낼 리 없기 때문이다. 그녀가 보낸 letter는 곧 litter가 되리라. 그런데 답장이 온다. 죽은 남자 이름이 " 정현 " 이라고 하자. 돌아온 편지에는 다음과 같이 써 있다. " 내가 정현인데 넌 누구니 ? 뿌잉뿌잉 " 죽은 자에게서 편지가 온 것일까 ? 라캉이 말한 대로 편지는 항상 수신인에게 도착하는 것일까. 하지만 수신자인 정현은 남자가 아니라 여자'다. 동명이인'일 뿐이다.

 

사연이 어찌 되었든, 답장이 돌아왔다. 답장을 받은 도시 여자는 그를 놓아주기로 한다. 이혼 서류에 도장을 찍는다. 이 영화에서 가장 유명한 설산 장면'은 " 응답의 치유 과정 " 을 담는다. 도시 여자는 허공에 대고 소리친다. 오갱끼데스까? 와따시와 갱끼데스. 그러자 메아리도 응답한다. 당신도 잘 있었소 ? 나도 잘 지냈다오. 이 메아리는 죽은 남자의 응답이다. 왜냐하면 그 남자는 바로 이 설산에서 죽었기 때문이다. 그들은 서로 안부를 묻는다. 말없이 떠나서 미안하다고, 잘 지내냐고 ? 죽음은 쏜살같아서 편지를 부칠 시간이 부족했다고, 나는 잘 지내고 있다고. 그렇게 서로 주고 받는 것이다. 프랑스어 사랑(amour)와 벽 (mur)은 닮았다. 메아리란 소리가 벽에 부딪쳐 되돌아오는 응답이 아니었던가.

 

황병승의 < 여장 남자 시코쿠 > 는 처음 읽으면 개똥 같은 소리처럼 보이지만 몇 번 읽다 보면 의외로 쉽다( 잘난 척, 잘난 척. 헤헤) " 꼬리 잘린 도마뱀 " 은 편지를 쓴다. " 찢고 또 쓴다 " 라고 반복적으로 말하는 것으로 보아 러브레터'인 모양이다. 누구에게 보내는 것일까 ? 정답은 " 꼬리 " 다. < 꼬리 잘린 도마뱀 > 이 급히 도망치느라 놓고 온 < 잘린 꼬리 > 에게 편지를 보내는 것이다. 이러한 추정은 " 꼬리는 그것을 읽을 것이다 " 라는 문장에서 확인할 수 있다. 그러니깐 < 여장 남자 시코쿠 > 는 한쪽을 잃어버린 도마뱀이 한쪽에게 보내는 러브레터다.

 

" 장문의 편지 " 는 대략 이런 내용일 것이다 : 사랑하는 꼬리에게. 보고 싶구나. 이 편지가 제대로 전달될지 모르겠다. 개가 편지를 입에 물고 불 속으로 뛰어들 수도 있거든. 일단 오해는 없었으면 한다. 이별 통보도 없이 너를 먼 오지에 남겨두고 떠난 것이 아니다. 내 사랑은 무쇠보다 더 강하고 바위보다 무겁다. 상황이 상황이다 보니 야밤도주하듯 사선을 넘다 보니 꼬리가 떨어져나갔는지 몰랐단다. 다 내 불찰이다. 나를 용서하렴. 참고 견뎌라. 언젠가 다시 만날 것이다. 그때까지 죽지 말고 기다려라. 사랑하는 나의 꼬리여. 아, 아아아아. 눈물은 왜 뒤가 없어서 눈물이 앞을 가리게 할까. 신을 저주한다. 다시 만날 때까지. 꼬리 잘린 도마뱀 씀.

 

정말 눈물 없이는 볼 수 없는 연애 편지'다. 영화 < 러브레터 > 와 시 < 여장남자 시코쿠 > 의 공통점은 편지로 접촉을 시도한다는 점이다. 이들은 모두 잃어버린 한쪽에게 보낸 메시지가 잘 전달될까 걱정이다. 그리고는 그들이 응답하기를 바란다. 일단 눈물 닦고 이 편지를 다시 읽으면 꼬리 잘린 도마뱀과 꼬리의 신파는 고스란히 시인과 독자의 관계로 이어진다. 시인은 밤마다 찢고 쓰고 다시 찢고 쓴 시를 독자에게 무사히 보낼 수 있을까 ?  아니, 그것은 둘째치고라도 우선 시나 제대로 완성할 수나 있을까(시인의 손은 잘려서 숲속에 있다). 하지만 번번이 좌절되는 모양이다. 찢고 다시 쓸 뿐이다. 한때는 " 조금씩 헛배가 부르고 입덧을 하 " 기도 하지만 이내 좌절하게 된다. 여장남자는 결코 임신을 할 수 없기 때문이다. 불임이다.

 

이 온갖 근심이 이 시 속에 있다. 다급한 마음에 시인은 " 기다려라 기다려라 " 라고 말한다. 비록 그 말이 " 강렬한 거짓 " 이라고 해도 독자는 기다려야 한다. 그것이야말로 시가 써지지 않아서 똥줄이 타는 시인에 대한 예의가 아닐까 싶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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samadhi(眞我) 2014-04-03 14:03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우리 세대 답지 않게(?) 저는 편지로 연애했습니다.^^ 이메일이 난무하는 세상이었지만. 얼굴을 보지 않고 몇개월 동안 편지로만 안부를 주고 받고 6개월쯤 뒤에 처음 만났죠. 그 사람이 제일 좋아하는 영화가 이 러브레터인데요^^
아주 구식인 선배가 저에게 늘 "넌 나보다 구식이야" 라고 했듯 오래된 삶의 방식을 고집합니다. 물론 새로운 것에 환장하기도 하지만요.

곰곰생각하는발 2014-04-04 08:23   좋아요 0 | URL
손편지'가 사라지는 추세죠. 참... 안타까워요.
손편지는 손편지가 가지고 있는 그 묘한 서정이 있는데 말입니다.
전 주로 모으는 성질이 아니어서 다 버리는 스타일인데 편지는 꼬박꼬박 모아두었습니다.

봄밤 2014-04-03 15:27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와우. 여장남자 시코쿠를 다시 읽어요. 아. 좋네요.

곰곰생각하는발 2014-04-04 08:22   좋아요 0 | URL
개인적으로 좋아하는 시집입니다.

heter 2014-04-03 20:31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결국 라캉식 편지 얘기로 하자면 편지는 영원히 그 누구에게도 도착하지 못하는 구조로 되어 있다는 말을 몇 주 전에 라캉 개론서 비슷한 책에서 읽었던 기억이...

그러고 보니 오래전에 <러브레터>를 봤던 기억이 나네요. 사람들이 다 명작, 명작해서 봤는데... 정작 그 이상한 사촌? 사촌이었는지 아무튼 어떤 남자의 괴상한 인상만 남았었네요. ㅎㅎ

곰곰생각하는발 2014-04-04 08:22   좋아요 0 | URL
어, 그런가요 ? 그럼 제가 거꾸로 읽은 것이로군요. 편지는 반드시 수신인에게 도착해야 한다를 편지는 반드시 수신인에게 도착한다, 라고 쓴 모양입니다.

저도 그 사촌인가 하는 사람, 참... 이 영화에는 안 어울린다 했습니다.

heter 2014-04-04 16:24   좋아요 0 | URL
그... 에드거 앨런 포 <도둑맞은 편지>를 예를 들면서 썼던 글이었던 걸로 기억하는데요. 뒤팽이란 탐정이 자신한테 의뢰한 G 경찰국장한테 편지를 찾아서 돌려주는데 실은 뒤팽 역시도 편지를 소유하고 있다고 착각하는 사람 중 한 명이라고, 계속 삼각 형태로 반복해서 돌고 돌고, 결국 편지는 그 누구의 손에도 쥐어지지 않는다는 얘기였던 걸로... 저도 가물가물하네요 ㅎㅎ;
 

 

 

 

 

 

 

 

 

 

 

 

 

 

 

 

 

 


 

 

 

 

 

 

개똥 같은 소리

 

 

3 : 햄버거에 대한 명상 + 미녀는 괴로워

 

 

 

 

 

한 번의 성공과 네 번의 실패였다. 말이 좋아서 네번의 실패이지 내 가족의 흥망성쇠는 줄곧 실패패패패에에에에'였다. 위로 누나와 형이 1년 터울로 대학생이 되자 어머니는 두 사람의 대학 등록금을 감당할 수가 없어서 곁방 하나를 세를 주었다. 세입자는 잘생긴 총각 아저씨였는데 문청의 뜻을 품은 채 대기업에 다니는 사람이었다. 살림으로는 그 흔한 냄비 하나 없었지만 책은 많았다. 이 자리에서 고백하지만 나는 출근하고 없는 곁방에 들어가 책을 읽고는 했다. 그때 읽었던 책이 바로 장정일 시집 < 햄버거에 대한 명상 > 이었다. 시집에 수록된 시들은 전혀 기억이 나지 않는데 표지 제목과 같은 제목의 " 햄버거에 대한 명상 " 이라는 시는 또렷이 기억한다. 왜냐하면 읽으면서 속으로 뭐, 이런 개똥 같은 소리가 다 있나 ? 라며 의아해했던 기억이 나기 때문이다.

 

시 < 햄버거에 대한 명상 > 전문 펼치기 ▼

 

햄버거에 대한 명상

 

                       - 가정요리서로 쓸 수 있게 만들어진 시

 

 

옛날에 나는 금이나 꿈에 대하여 명상했다
아주 단단하거나 투명한 무엇들에 대하여
그러나 나는 이제 물렁물렁한 것들에 대하여도 명상하련다

오늘 내가 해보일 명상은 햄버거를 만드는 일이다
아무나 손쉽게, 많은 재료를 들이지 않고 간단히 만들 수 있는 명상
그러면서도 맛이 좋고 영양이 듬뿍 든 명상
어쩌자고 우리가 <햄버거를 만들어 먹는 족속> 가운데서
빠질 수 있겠는가?
자, 나와 함께 햄버거에 대한 명상을 행하자
먼저 필요한 재료를 가르쳐 주겠다. 준비물은

햄버거 빵 2
버터 1½큰 술
쇠고기 150g
돼지고기 100g
양파 1½
달걀 2
빵가루 2 컵
소금 2 작은 술
후춧가루 ¼작은 술
상추 4 잎
오이 1
마요네즈소스 약간
브라운소스 ¼컵

위의 재료들은 힘들이지 않고 당신이 살고 있는 동네의
믿을 만한 슈퍼에서 구입할 수 있을 것이다.―슈퍼에 가면
모든 것이 위생비닐 속에 안전히 담겨 있다. 슈퍼를 이용하라―

먼저 쇠고기와 돼지고기는 곱게 다진다.
이 때 잡념을 떨쳐라, 우리가 하고자 하는 이 명상의 첫단계는
이 명상을 행하는 이로 하여금 좀더 훌륭한 명상이 되도록
매우 주의깊게 순서가 만들어졌는데
이 첫단계에서 잡념을 떨치지 못하면 손가락이 날카로운 칼에
잘려, 명상을 포기하지 않으면 안 되도록 장치되어 있다

쇠고기와 돼지고기를 곱게 다졌으면,
이번에는 양파 1개를 곱게 다져 기름 두른 프라이팬에 넣고
노릇노릇할 때까지 볶아 식혀 놓는다.
소리내며 튀는 기름과 기분 좋은 양파 향기는
가벼운 흥분으로 당신의 맥박을 빠르게 할 것이다
그것은 당신이 이 명상에 흥미를 느낀다는 뜻이기도 한데
흥미가 없으면 명상이 행해질 리 만무하고
흥미가 없으면 세계도 없을 것이다.
이것이 끝난 다음,
다진 쇠고기와 돼지고기, 빵가루, 달걀, 볶은 양파,
소금, 후춧가루를 넣어 골고루 반죽이 되도록 손으로 치댄다.
얼마나 신나는 명상인가. 잠자리에서 상대방의 그곳을 만지는 일만큼
우리의 촉각을 행복하게 사용할 수 있는 순간은,
곧 이 순간,
음식물을 손가락으로 버무리는 때가 아니던가

반죽이, 충분히 끈기가 날 정도로 되면
4개로 나누어 둥글납작하게 빚어 속까지 익힌다.
이때 명상도 따라 익는데, 뜨겁게 달구어진 프라이팬에
반죽된 고기를 올려놓고 1분이 지나면 뒤집어서 다시 1분 간을 지져
겉면만 살짝 익힌 다음 불을 약하게 하여 ―이렇게 하기 위해서는
절대 가스레인지가 필요하다― 뚜껑을 덮고 은근한 불에서
중심까지 완전히 익힌다. 이때
당신 머리 속에는 햄버거를 만들기 위한 명상이 가득 차 있어야 한다.
머리의 외피가 아니라 머리 중심에, 가득히!

그런 다음,
반쪽 남은 양파는 고리 모양으로
오이는 엇비슷하게 썰고
상추는 깨끗이 씻어놓는데
이런 잔손질마저도
이 명상이 머리 속에서만 이루고 마는 것이 아니라
명상도 하나의 훌륭한 노동임을 보여준다.

그 일이 잘 끝나면,
빵을 반으로 칼집을 넣어 벌려 버터를 바르고
상추를 깔아 마요네즈 소스를 바른다. 이때 이 바른다는 행위는
혹시라도 다시 생길지 모르는 잡념이 내부로 틈입하는 것을 막아준다.
그러므로 버터와 마요네즈를 한꺼번에 처바르는 것이 아니라
약간씩, 스며들도록 바른다.

그것이 끝나면,
고기를 넣고 브라운 소스를 알맞게 끼얹어 양파, 오이를 끼운다.
이렇게 해서 명상이 끝난다.

이 얼마나 유익한 명상인가?
까다롭고 주의사항이 많은 명상 끝에
맛이 좋고 영양 많은 미국식 간식이 만들어졌다

 

 

 

펼친 부분 접기 ▲

 

아마 접힌 부분을 펼쳐본 이 또한 개똥스러워 하기는 나와 마찬가지일 것이다. " 뭐, 이런 개똥 같은 소리가 다 있담 ?! " 잘 빠진 교과서용 시만 접하다가 이런 시를 만나면 개똥스럽게 된다. 그런데 편견없이 읽으면 이해하기 쉽다. 이 시를 말 그대로 실용적이다. 시를 읽으면서 그대로 따라하면 먹음직스러운 햄버거가 만들어지니 실용적이지 않은가 ? 장정일은 이미 " 가정요리서로 쓸 수 있게 만들어진 시 " 라고 친절하게 설명한다. 이 말은 곧 지금까지의 시들이 실용적이지 못했다는 것을 의미한다. 그러니깐 시인들이 계룡산 뜬구름 잡는 소리만 했다는 지적처럼 들린다. 노스텔지어 어쩌구저쩌구, 푸른 해원 어쩌구저쩌구..... 거창한 담론만을 말하다 보니 시를 현실과 동떨어져서 뜬구름만 잡고 있는 것이다. 그래서 시인은 주먹 불끈 쥐고 가정요리서로 쓸 수 있는 시를 만든 것이다. 1절, 2절, 3절 따라 읽다 보면 어느새 "맛이 좋고 영양 많은 미국식 간식이 만들어 "  진다.

 

아, 침이 고인다. 하지만 햄버거란 결국 정크 푸드가 아니었던가. 이 시는 실용적이기는 한데 결과물은 정크'다. 그러므로 좋은 결과가 아니다. 이 아이러니'를 장정일은 즐긴다. 먹고 나서 돼지나 돼라 ! 이 시를 읽다 보면 생각나는 영화가 있다. 바로 김용화 감독의 < 미녀는 괴로워 > 이다. 하지만 그 전에 위대한 걸작 < 사랑은 비를 타고 > 에 대해 말해야 한다. 이 순서가 실용적이니깐 말이다. 무성영화 시절에는 배우의 목소리가 중요하지 않았다. 개똥 같은 소리를 가진 베컴이 그 시대에 태어났다면 최고는 아니더라도 그럭저럭 훌륭한 배우가 되었을 것이다. 하지만 토키 영화 시대'에는 목소리가 무엇보다도 중요했다. 이제 무성영화 스타는 지고 매혹적인 목소리 음색과 정확한 발성법’을 배운 배우가 인기‘를 끌게 되었다. 뮤지컬 영화 < 사랑은 비를 타고 > 는  무성 영화에서 유성 영화로 교체되는 30년대 헐리우드‘가 배경이다. 

 

" 싸운드 " 가 도래하자 " 마임 " 은 곧 사라질 운명.  영화 속 무성영화의 디바였던 여배우는 공교롭게도 " 여자 베컴 " 이었다. " 이, 런 된장 ! 컷 !!  이봐요, 안젤리나 모스키토 양 ! 당신 목소리는..... " 감독은 차마 개똥 같은 소리요, 라는 말을 할 수 없어서 목구멍 속으로 삼킨다. 당시에는 후시녹음 시스템이 없었기 모든 토키 영화 촬영은 생방송처럼 진행되어야 했다. 성질이 고약한 디바 모스키토 양'에게는 목소리 대역이 필요했다. 신은 그녀에게 아름다운 얼굴을 주었지만 반대로 더러운 목소리를 선사했으니 주사위는 공평하다고 말해야 하나 ?! 이 목소리 대역은 얼굴은 평범하지만 목소리가 아름다운 옥소리 양'이 맡기로 했다. 물론 마음씨도 비단 같이 고운 처녀였다. 그녀는 카메라 뒤에서 디바 모스키토 양의 목소리를 연기했다. 그녀는 남진이 느끼하게 부르던  " 얼굴만 예쁘다고 여자냐, 마음이 고와야 여자지 ! 한 번만 마음 주면 변치 않는, 그런 여자가 정말 여자 "  다.

 

남진이 불쑥  “ 한 번만 응응 주면 ” 이라는 성적 코드만 들고 나오지 않았다면 썩 괜찮은 뽕짝이 되었을 것이다. 하지만 속임수란 그리 오래 가지 않는 법‘이다. 개똥 같은 소리'를 가진 여배우의 사기 행각은 들통이 나고, 대신 그 자리’를 " 한 번 주면 절대 변치 않는 " 마음씨 착한 신데렐라‘가 차지해서 행복하게 산다는 내용이다.  뻔, 하다. 쇼란 늘 그런 것이니깐 말이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나는 이 영화에 열광해서 열 번 넘게 보았다. 영화 < 미녀는 괴로워 > 는 < 사랑은 비를 타고 >의 기본 서사를 그대로 차용한다. < 사랑은 비를 타고 > 에 나오는 평범한 여성이 디바에게 자신의 옥소리를 빌려주었다면 < 미녀는 괴로워 > 속 뚱보 양 또한 비쥬얼 가수에게 자신의 옥소리'를 빌려주었다. 그리고 한발 더 나아가서 성형의 힘을 빌려서 날씬한 미녀로 둔갑한다.

 

목소리는 자연산‘이고, 비쥬얼은 양식’이다. 둘, 다, 맛, 있다 !  그녀는 곧 디바‘로 성공한다.  그렇다면 이 성공은 노래를 잘했기에 성공한 것일까 아니면 얼굴이 예뻐서 성공한 것일까. 결론은 얼굴이 예쁜데 노래까지 잘해서 성공한 것이다. 그러니깐 방점은 < 미녀 > 이지 < 가수 > 가 아니다. 그래서 영화 제목이 " 가수가 괴로워 " 가 아니라 " 미녀가 괴로워 " 인 이유다. 김용화 감독은 " 얼굴만 예쁘다고 가수냐, 노래를 잘해야 가수다 " 라는 메시지를 뿌리지만 그것은 일종의 예의 차원이다. 이 영화를 끌고 가는 것은 " 노래만 잘한다고 가수냐, 얼굴이 예뻐야 가수지 " 다. 하지만 이 영화를 비판할 생각은 없다. 상업영화의 한계이니 말이다. 하여튼 이 영화가 전달하는 메시지는 분명하다. 비만은 아름다움의 적'이다.

 

다시 < 햄버거에 대한 명상 > 으로 돌아오자. 미녀를 꿈꾸는 여성들에게 비만은 적이다. 그러므로 식욕은 적이다. 식욕이 적이니 당연히 맛있는 햄버거는 공공의 적이다. 칼로리가 무려.........   지금 당신은 햄버거 레시피를 자세하게 설명하는 실용적인 시를 읽고 있다. 읽으면 침이 고인다, 식욕이 생긴다, 욕망이 살아난다. 어떻게 할 것인가. 캔디처럼 참고 참고 참아서 날씬한 미녀가 될 것이냐 아니면 무대 뒤에 숨어서 대역 가수가 될 것인가. 장정일은 햄버거 레시피를 통해서 당신의 욕망을 건드린다. 실용적이라며 끝까지 읽을 것을 강요하지만 다 읽고 나면 햄버거를 먹고 싶다는 욕망만 남는다. 그러므로 당신의 욕망과 정크 푸드는 동일하다. 결국 당신의 욕망은 영양가 하나 없는 개똥이다. 

 

 

- 네이버 블로그, 2011/04/29 19:4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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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tour 2014-04-02 20:51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음. 기막힌 반전적 결말. 욕망의 하찮음.

곰곰생각하는발 2014-04-03 07:11   좋아요 0 | URL
마자요. 바로 제가 하고 싶은 핵심입니다. 즐인 님은 확실히 훈련이 되어서 그런지
요점을 매우 정확히 요약하세요. 이게 쉬운 게 아닌데 말이죠....
가끔 놀랍니다.

엄동 2014-04-03 04:29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이 시간에.
가정요리서대로 햄버거 하나 푸짐하게 만들어 먹고 싶은

아아 이 개똥같은 욕망이여

곰곰생각하는발 2014-04-03 07:12   좋아요 0 | URL
이 시간에 깨어 있는 걸 보니 전날 술 꽐라대서 목 말라 깨어나신 것 같군요.
오늘은 북엇국으로 해장을 ~~~

엄동 2014-04-03 09:37   좋아요 0 | URL
야빠에 엘빠 친구따라 빠져드는 중입니다.
이겼잖아요 ㅋㅋㅋ
북엇국점심 참고하지요 :))

곰곰생각하는발 2014-04-03 10:24   좋아요 0 | URL
엄동 님도 야빠에 엘빠입니까 ?
사실 전 엘빠는 아니에요. 엘지 팬이기는 하지만
요즘은 메이져리그만 봅니다. 허허허허허...
욕 먹을 수리지만
메이저리그보다가 국내 야구 보면 좀 답답해요.
그래도 전 엘지 영원한 팬입죠...

만화애니비평 2014-04-03 08:46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이런 책도둑에게는 책친구가 될 수 있죠. 그분은 무얼하는지(정말 실화라면)

곰곰생각하는발 2014-04-03 10:23   좋아요 0 | URL
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 책도둑은 아닙니다. 허락업이 방과 책을 빌렸을 뿐...

samadhi(眞我) 2014-04-03 14:11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어제밤에도 빌어먹을 식욕과 싸우려고 욕봤어요. 욕망의 실체가 진짜가 아닌 걸 알면서도 당해주고 속아주고 휘둘리고 싶은 비겁한 마음과 싸우는 요즘이지요.

곰곰생각하는발 2014-04-04 08:51   좋아요 0 | URL
흠흠... 자정 넘으면 라면에 신 김치가 최고죠. 정말 먹고 싶음..
 

 

 

 

 

 

 

 

 

 

 

 

 

 

 

 

 

 

 

 


 

 

 

 

 

 

쌈마이, 의리적 혈투

 

 

 

 

2 :  돌아온 외팔이 + 넘버3

 

 

 

 

 

내가 살던 동네는 집집마다 마당에 라일락 나무가 있었다. 국가 주도형 기획 도시여서 대규모 밭을 주택 단지'로 만들었는데 건설사에서 1가구 1자녀 정책에 호응이라도 하듯 1주택 1(라일락)나무를 심었다. 그래서 4월이 오면 마을 전체가 하얀 라일락 군락이 되어 장관이었다. 기획 도시이다보니 집들이 다 고만고만했는데 유독 한 집'만 규모가 컸다. 대부분의 주택이 40평 내외였다면 그 집은 100평 규모였다. 무엇보다 마당 넓은 집이어서 나무가 많이 심어져 있었다. 우리는 그 집을 " 형사네 " 라고 불렀다. 집주인이 형사였기 때문이다. 그런데 어찌된 영문인지 " 형사네 " 는 집 전체를 세 놓고 다른 곳으로 이사를 갔는데 새로 온 이웃은 공교롭게도 조폭 두목이었다. 형사가 살던 집에 조폭 두목이 들어온 것이다. 돌아가는 꼴을 보니 조폭 두목은 젊은 여자와 바람이 나서 두 집 살림'을 하는 모양이었다.

 

지금도 기억나는 것은 똘마니들이 골목길에 주욱 대기하는 풍경이었다. 영화에서 보는 풍경과 흡사했는데 어린 마음에 꽤 근사해 보였다.  그 남자는 조폭 세계에서 한 획을 그은 인물이 틀림없었다. 부끄러운 고백이지만 나는 이웃인 조폭 두목과 두목의 애인'을 좋아했다. 그들은 주로 배달 음식을 시켜 먹었는데 툭 하면 짜장면이나 군만두 따위를 우리에게 주고는 했다. 여자는 늘 짙은 화장에 미용실에서 갓 다듬은 머리를 하고 있었다. 화류계에서 놀던 여자가 분명했다. 밤에 출근을 해서 새벽에 들어오고는 했으니깐 말이다. 나는 짜장면을 허겁지겁 먹으면서 늘 생각했다. " 깡패 짓도 꽤 근사한걸 ! " 그들은 그 집에서 그리 오래 머물지 않았다. 1년 후, 사라졌다. 어디로 갔는지는 모른다. 내가 깡패'를 근사하게 본 이유는 아마도 < 야인시대 > 따위의 이미지 때문일 것이다.

 

김두한, 시라소니, 최영의가 주먹만으로 조직을 평정하던 이야기에는 주먹질에 낭만을 부여했으니깐 말이다. 주먹으로  세를 과시하던 건달은 어느새 연장을 사용하기 시작했다. 사보이 호텔 사건은  조폭史에서 " 주먹 싸움 " 에서 " 칼질 " 로 패러다임이 180도 바뀐 중요한 사건이었다.  조양은, 그가 바로 이 사건의 핵심 인물이었다. 영화 < 보스 > 는 조양은을 다룬 전기영화인데 그는 이 영화에서 주연도 맡았다. 영화는 토 나올 만큼 개같은 영화'였다. 들리는 소문에 의하면 주연을 맡은 조양은'이 주먹을 휘두르며 제작에 깊숙이 개입했다고 한다. 그러다 보니 영화는 " 조양은 1인 독재 찬양 영화 " 가 되었다. 이 영화의 시나리오를 쓴 사람이 바로 송능한'이다. 그는 이 영화의 시나리오를 쓰면서 양아치가 어떤 놈인가를 제대로 배웠을 것이다. 그는 후에 전설적 컬트 영화 < 넘버3 > 로 감독 데뷔를 한다

 

영화는 3부'구성되어 있다. 1부 제목은 < 백조 > 다. 우리는 이 영화에서< ~ 인 척흉내를 내는 > 속물()’을 보고 있다. 조폭 두목은 합법적 경영인 흉내를 내며 경영선진화 정책을 펴고, 양아치 부하들/박상면은 애국자 시늉을 내며 랭보/박강성은 고뇌하는 시인 흉내를 낸다. 룸살롱 새끼 마담은 술 마시고, 노래 하고, 춤을 추면서 시인이 되고, 불사파 두목 조필/.송강호불한당 같은 선비 흉내를 낸다. 이들이 가지고 있는 공통점은 우아한 척'이다. 이들 모리배는 마치 호수에 둥둥 떠다니는 오리배 같다. 1부 제목 < 백조 > 는 겉으로 보기에는 우아하지만 살기 위해서는 물 속에서 쉴 새 없이 오리발을 우스꽝스럽게 휘져어야 하는 백조의 이중적 태도에 대한 조롱이다. 백조는 물 밖에서는 < 우아 >하지만 물속에서는 < 우스 >운 놈이다. 그것은 꼴통과 꼰대 그리고 좌파인 척하는 우파들의 이중적 태도와 유사하다.

 

두 번째 장 제목은 < 쌈마이> . 이 영화에는 송강호가 연기한 조필이는 불사파 조직 두목으로 나온다.  아닐 ,에 죽을. 조직 이름인 불사라는 표현은 왠지 모르게 음란하다. 불사파를 상징하는 토템 도상인olo 또한 그, 그그그것을 닮았다. 더군다나 조필이라는 이름을 강하게 부르면 좆삐리가 되지 않던가 ? 삐리는 광대를 따라다니며 재주를 배우는 아이를 말하는데, 좆과 삐리가 만나면 어린아이의 작은 성기라는 뜻을 내포한다. 그렇다, 불사파 제자들에게 자신을 거대한 후지산, 딱딱한 대물, 오래 가는 양물이라고 소개하는 조필이는 좆삐리였다. 백조와 쌈마이는 한통속이다. 백조가 물 위에서는 우아한 것처럼 보이지만 물 속에서는 죽기살기로 물장구를 치듯이, 조폭으로 상징되는 오야붕 조필이는 알고 보면 코찔찔이 얼라의 그것'이었다. 이게 무슨 개똥 같은 짓인가.  조필'은 발기해도 3센티미터다.

 

필로 상징되는 볼품 없는 허풍은 전설이 되었다. 현정화와 최영의에 대한 육담’은 근대적 아버지에 대한 신랄한 풍자다. 현정화로 대표되는 <헝그리 정신 > 과 최영의로 상징되는 <무뎃뽀* 정신 > 은 학교 운동장에서 월요 조회 시간이면 머리에 못이 박히도록 들었던 훈화 정신이다.  헝그리 정신은 젊어서 고생은 사서도 한다는 박카스 특유의 미친 신세계이고, 무뎃뽀 정신불가능은 없다의 세계이다. 박카스 국토대장정 식 헝그리 정신이 우리에게 가르치는 것은 고생의 미학이 아니라 순종의 미학이다. 집 나가면 개고생이다. 길 위의 날씨는 덥고, 집 안은 시원하다. 부모 말 잘 듣자, 공부 열심히 해서 땡볕에서 일하는 노동자는 되지 말자, 순종하자, 그러자, 그게 장땡이다. 박카스 참가자들이여, 울먹이면서 이렇게 인터뷰하자 : 엄마, 아빠 사랑해요 !

 

그것()은 박정희 식으로 말하자면 < 악 > 을 닮았다.  면 먹고 달린 선수가 현정화가 아니라 임춘애라고 해도, 정답은 현정화라고 말해야 한다. 틀려도 믿고 따라야 하는 이유는 무조건적 믿음에 의해서만 잘 살아보세, 라는 욕망이 보상을 받을 수 있기 때문이다. 밴츠 몰고, 폼 나게 룸살롱에서 양주도 먹을 수 있는 것이다. 그런가 하면  6척 거인 존슨과 맞짱 뜬 최영의의 전설적 다구리는 정주영 식 < 깡' >을 닮았. 그들은 농번기가 되면 농민들과 막걸리를 마시며 풍월가를 읊거나 사막 한가운데 바벨탑을 짓는 전설적 성공 신화의 주인공들이지만, 카메라 < 틸 다운 >해서 물밑과 땅 밑으로 침투하면 그곳에는 좆나게 휘젓는 오리발의 세계가 있다. 막걸리 너머엔 날마다 술집 아가씨를 청와대 아방궁으로 공수하는 이상한 위스키의 세계가 있으며 정주영의 낡은 구두 신화에는 노동운동에 대한 집요한 탄압이 있었다. 그들 상체는 우아한 백조이지만 하체는 우스꽝스러운 오리발이며불굴의 페니스는 알고 보면 발기해도 3센티미터인 초라한 고추의 세계이다.

 

마지막 3부 제목은< 카오스 >. 영화 속 오리배들은 모두 카오스로 모인다. 카오스는 룸살롱이름이다. 이곳에는 3류 건달들과 3류 야쿠자와 3류 검사와 3류 시인과 3류 마담은 각자 방에서 놀고 있다. 한국 양아치는 일본 양아치와 독도를 놓고 신경전 중이다. 그리고 시인과 부인<>고 있는 중이다. 이 와중에 불한당 같은 선비들이 침투하고, 마지막은 형사들이 접수한다. 불이 나간 컴컴한 지하 공간에서, 피아 구별이 불가능한 어둠 속에서도 그들은 서로 찌르고 죽인다. 이 신랄한 육담과 조크는 대한민국 세기말에 대한 독설처럼 보인다. 감독이 보기에 대한민국은 썩을 대로 썩었고, 갈 때까지 갔다.  위에서 아래로, 좌에서 우로, 보수에서 꼴통 모두 백조다, 쌈마이다, 넘버 3,  좆삐리다. 3센티미터다. 말캉말캉하다, 애국가 1절이 끝나자마자 무섭게 돌아눕는 남편의 등짝이다. 한 대 차주고 싶은 등짝이다.  어차피 이놈이 저놈이고, 저놈이 이놈이니 누가 누구를 찌르던 상관없다. 아비규환이 따로 없다. 룸살롱으로 축소된 욕망의 대한민국은 대책이 없다.

 

혼란 그 자체다. 감독이 원하는 것은 갱생이기보다는 파멸인 것처럼 보인다. 감독은 실제로 < 세기말 > 을 찍은 후 홀연히 영화계 은퇴를 선언한 후 이민을 갔다. 내가 보기엔 이민이 아니라 정치적 망명처럼 보인다. 영화 < 넘버 3 > 는 여러 가지 면에서 선구적인 작품이다. 이 작품은 무게 있는 건달 영화에서 가벼운 양아치 조폭코미디 영화로 바뀌는 시발점이 되었으며, 자막의 적극적 활용, 콜라주 기법, 입말이 풀어내는 향연은 코미디 영화에 절대적 영향을 끼친 작품이 되었다. 기존의 조폭 영화가 위악적 남성의 거친 서사를 다루었다면, 이 영화는 쌩-양아치를 있는 그대로 보여준다. 사랑을 위해서 희생한다거나 가족을 위해서 희생한다는 식의 자기 희생 서사가 배제된다. 왜냐하면 그런 양아치는 존재하지 않기 때문이다. 그런 놈은 영화에서나 가능하다.

 

사시미 칼에 윤리가 있던가 ? 눈물이 있던가  ? 사시미 칼은 윤리적이지도 않으며 로맨스적이지도 않고 영웅적이지도 않다. 사시미는 사시미다. 여러분, 이런 나라에서 열심히 사시미 !(개인적 취향이 담긴 조크다) 감독 송능한은 로버트 알트만과 쿠엔틴 타란티노 사이에 있는 듯하다. 그는 한국 영화의 전통 서사로부터 완벽하게 벗어난 듯 보인다. < 넘버 3 > 는 유하의 시집 < 무림 일기 > 속 세상과 비슷하다. 대한민국은 좆만한 놈들이 설치는 세계다. 시인 유하는 시집 < 무림일기 > 에서 한국 사회를 싸구려 무협영화 속 중원무림으로 풀어낸다. 이 중원무림에 절대 맹주는 없다. 맹주들이 항상 으름장을 놓곤 하지만 알고 보면 개똥 같은 소리'다. 그들은 " 닭 잡을 힘도 없 " 는 꾀죄죄한 놈들이다. 맹주가 아니라 맹추다. 좆만한 놈들이 무림을 평정하겠다고 설치니, 하는 짓이 가관이다. 시 < 돌아온 외팔이 > 는 얼뜨기 맹추를 양산하는 정글 자본주의 속성을 풍자한다.

 

응? 살기가...... !

펑펑 비수가 날아오고, 잽싸게 주인공 외팔이가 몸을 날려

내려선 곳은 소림사의 잔디밭, 아차차

'잔디에 들어가지 마시오' 하얀 푯말이 그대로 화면에 비친

웃지 못할 국적 불명 무술 영화

싸구려 제작비에 재미는 시시껄렁해도

어늘한 영상 속에 걸핏하면 나오는, '하산해도 좋느니라'

깊은 산중 사부님의 쩌렁쩌렁한 말 한마디 속에서

문득 심오한 철학적 의미를 발견한다

복수를 위해 남해신검의 제자가 된 지 어언 십오년

비로소 비전의 철학을 배우고 하산하는 외팔이

가는 곳마다 똘마니들이 찌럭찌럭 건들지만

끝끝내ㅏ 검을 뽑지 않는 외팔이

아아 어떻게 배운 팔만사천 검법인가

물 긷고 밥 짓기 삼 년

나무하고 장작 패기 삼 년

빨래하고 아흔아홉 계단 쓸기 삼 년......

 

피아노 단기 완성!

대입 미술 이 개월 책임 지도!

돈만 내면 즉석에서 흔쾌히 모든 걸 전수해주는,

오늘날의 화끈한 싸부님들 싸부님들

발랄한 제자들은 아무 때나 발랄하게 하산하여

아무 때나 아무 때나 칼을 뽑아 든다

복싱을 배우고 나면 흉기 같은 주먹으로 기껏 아내나 패고

소리를 전수 받으면 뽕짝이나 부르고

무술을 배우면 약장수 아니면 정치 깡패가 되는,

얄밉도록 발랄한 현실의 제자  여루분들

 

그러고 보면, 자신의 재주를 삼가고

귀히 여긴다는 것은 얼마나 어려운 일인가

아무리 황당무계한 삼류 무협영화지만

'하산해도 좋느니라'

백발성성한 사부의 말씀 그 속뜻만큼은 얼마나

합리적이고 과학적인 안배가 깃들어 있는가

 

헌데, 만약 내 시의 사부가 있다면?

이놈, 하산은 무슨 얼어 죽을.....

연필만 한 삼 년 더 깎어라

껄껄껄

 

                               - 돌아온 외팔이, 전문

 

 

 " 싸부님들 싸부님들 " 은 " 돈만 내면 즉석에서 흔쾌히 모든 걸 전수해 " 준다. " 물 긷고 밥 짓기 삼 년 / 나무하고 장작 패기 삼 년 / 빨래하고 아흔아홉 계단 쓸기 삼 년 " 을 거쳐야 비로소 사부님으로부터 " 하산해도 좋느니라 " 라는 소릴 듣던 시절과 비교하면 너무 다르다. 정글자본주의는 " 이 개월 책임 지도 " 하에 기술을 전수하여 중원무림에 내놓는다. 이러니 " 아무 때나 아무 때나 칼을 뽑아 " 들고 " 복싱을 배우고 나면 흉기 같은 주먹으로 기껏 아내나 패고 / 소리를 전수 받으면 뽕작이나 부르 " 는 것이다. < 사부님 > 은 없고 < 싸부님들 > 만 넘쳐난다. 영화 < 넘버 3 > 속 모리배들도 모두 싸부들로부터 이 개월 책임 지도 하에 단기 속성으로 무술을 연마한 무림 맹추'들이다. 물론 그들은 맹주라고 우길 테지만 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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스누피 2014-04-02 13:41   좋아요 0 | 댓글달기 | 수정 | 삭제 | URL
믿고 보는 페루애 님 글들! ㅋㅋㅋ

곰곰생각하는발 2014-04-02 15:50   좋아요 0 | URL
감사합니다. 스누피 님 !

rendevous 2014-04-02 15:08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토토토토토토토토토토토토토토토
토토로 보고 싶어졌어요 ㅎㅎ

곰곰생각하는발 2014-04-02 15:50   좋아요 0 | URL
토토토토토토토달면 배반입니다.

밤하늘의별소리 2014-04-02 16:41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ㅋㅋㅋ 아ㅋㅋㅋ 저 영상보고 진짜 웃었어요.

그나저나 조폭 코메디 영화가 도대체 무슨 의미가 있지?라고 궁금해했었는데, 곰발님 글 읽고 뭔가 그 의문이 풀렸어요..

게다가 마지막 유하의 "돌아온 외팔이"는 ... 대박이네요. "발랄한 제자들은 아무 때나 발랄하게 하산하여/ 아무 때나 아무 때나 칼을 뽑아든다." 그에 반해, "자신의 재주를 삼가고/ 귀히 여긴다는 것" "백발 성성한 사부의 말씀 그 속 뜻".

왠지 이 시가 제 마음에 콕 박혀버린듯한 느낌이예요ㅎㅎ 전 곰발님 글이랑 곰발님이 소개해주는 것들이 없으면 못살 것 같아요오오오오오 곰발님 평생평생평생평생 글써주세요~~

곰곰생각하는발 2014-04-02 17:35   좋아요 0 | URL
그래요 ? 흠흠.... 이거 네이버 블로그에 저장되어 있는 글들입니다.
새롭게 쓴 게 아니라.... 네이버 블로그 들렸다가 영화 카테고리 눌렀더니
글들이 의외로 많더라고요. 밤하늘 님이 재미있다 아니 하루여 몇 편씩 옮겨놓겠습니다.

수다맨 2014-04-03 11:38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넘버3, 이 영화 희대의 걸작이라 봅니다. 장엄이나 근엄을 까발리면 그 속에 우스개와 싸구려 밖에 없다는 것을 이 영화만큼 재미나고 멋지게 보여준 작품도 드문 것 같아요 ㅎㅎ

곰곰생각하는발 2014-04-03 11:55   좋아요 0 | URL
이 작품 정말 넘버1입니다.
지금 봐도 여전히 세련됬습니다. 기똥찬 작품입죠....
대단한 작품입니다.

samadhi(眞我) 2014-04-03 14:20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대학에 입학하자 마자 동아리 선배들이 입말로 달고 살았죠. 넘버3 송강호 대사들. 정말 손에 꼽을 명작이죠.
제자 여루분들 ㅋㅋㅋㅋ. 시 참 좋네요. 이 형아 신랄해서 멋지네요.

곰곰생각하는발 2014-04-04 08:50   좋아요 0 | URL
이게 다 애드립이었다고 하죠 ? 대단한 드립력입니다.
어떤 신공이 느껴져요. 무림일기'는 아마 시집 가운데 가장 재미있는 시집이 아닌가 싶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