내 안의 너
5 : 슬픈 게이 + 달콤한 인생
김지운 감독의 영화 < 달콤한 인생 > 은 느와르 멜로 영화‘이다. 표면적으로는 부하가 보스의 여자를 사랑해서 의리 없는 전쟁이 시작되는 것으로 설정되었지만 사실 보스가 부하에게 보낸 여자‘는 히치콕이 즐겨 사용하는 " 맥거핀 " 에 지나지 않는다. 하지만 맥거핀'이란 언제나 서사를 끌고 가는 강력한 오브제가 아니었던가. < 여자 > 는 아무 의미도 없는 nothing에 불과하지만 " 아버지가 소유한 영토 " 에 편입되는 순간 그것은 강력한 금기taboo가 된다. 이제 그녀는 " 건들면 (아버지에게) 혼나는 대상 " 이 되었다. 그녀는 판도라의 상자'이며 동시에 에덴 동산의 사과나무'다. 아버지(보스)는 사과꽃 필 무렵 아들에게 수수께끼 상자를 선물하며 에덴 동산을 떠난다. 아들은 이 유혹을 견딜 수 있을까 ?
이 영화가 느와르 장르 영화라는 점을 고려하면 여자가 맡은 역할은 "악녀 / 팜므 파탈 " 이다. 악녀는 남자를 파괴하기 위해 존재한다. 아들이 여자 옷고름 같은 선물용 리본을 풀어헤쳐 금단의 열매를 따먹는 순간 아버지는 쏜살같이 돌아오리라. 그런데 이 영화를 자세히 들여다보면 아들은 아버지가 남기고 간 선물을 풀어헤쳐 금단의 열매를 따먹지는 않는다. 그냥 단순하게 흔들렸을 뿐이다. 악녀와 손을 잡고 아버지를 제거할 음모를 꾸미거나 그 흔한 키스 씬 하나 없지 않았나 ? 아들은 유혹에 빠진 것이 아니다. 어쩌면 그가 흔들린 것은 여자가 아니라 여자가 연주하는 첼로 곡이었는지도 모른다. 하지만 아버지는 아들을 제거하기 위해 돌아온다. 그는 모든 것을 다 알고 있는 듯한 눈빛으로 여자를 본다. 어쩌면 보스가 사랑하는 사람은 여자가 아니라 남자인지도 모른다.
그렇다, 두목과 부하는 서로 사랑하는 사이’다. 이 영화는 " 느와르 퀴어 멜로 무비 " 다. 영화 초반부 보스가 부하를 바라볼 때, 그 나긋나긋한 눈빛을 보라. 그리고 부하인 이병헌이 보스인 김영철 앞에서 조심스레 몸단장을 하는 몸짓을 보라. 두목과 겸상할 때, 이병헌의 황홀한 표정은 어떤가 ? 지아비를 섬기는 자태 고운 조강지처 같다. 그들은 서로 사랑한다. 다만 성관계’가 없을 뿐이다. 이 사랑은 영원할까 ? 문득 보스는 부하의 사랑을 시험하고 싶다. 그래서 두목은 부하 앞에 아름다운 여자’를 보낸다. 이 유혹을 이긴다면 두 남자 간 굳은 맹세는 더욱 견고해질 것이다. 하지만 부하는 유혹에 빠졌다(고 보스는 판단한 모양이다). 그 순간 부하는 유혹에 빠진 파계승‘으로 전락한다. 말 그대로 사랑과 전쟁’이다. 이병헌이 혈투 끝에 드디어 만난 김영철에게 하얀 치아‘를 드러내며 “ 왜 그랬어요 ? ” 라고 질문을 던졌을 때 그 말은 마치 “ 당신을 향한 내 사랑을 의심했나요 ? ” 라는 절규처럼 들린다.
그렇다, 그들은 서로에게 화가 났다. 두목은 부하가 자신에게 집중하지 못하고 한눈판 것에 대해 화가 났고, 부하는 보스가 자신의 사랑을 의심했다는 사실에 화가 났다. 이 영화를 한 마디로 요약하자면 한때 사랑했으나 치정’으로 끝나는, 질투에 눈이 먼 치정극으로 요약할 수 있겠다. 이 영화에서 가장 인상 깊은 장면은 이병헌이 검은 유리창을 거울 삼아 샤도우 복싱‘을 하는 시퀸스’인데 그는 유리창에 비친 사내‘를 보고 웃는다. 남자가 남자에게 보내는 웃음치고는 상당히 유혹적이다. 토마스 샤츠는 < 할리우드 장르의 구조 > 에서 슈레이더의 " 필름 느와르를 특징 짓는 7가지 반복적인 테크닉 " 을 소개하면서 필름 느와르가 " 물에 대해 거의 프로이트적인 집착이 있다 " 고 지적한다. 여기서 물의 대체자는 거울, 창문, 그 외 반사하는 물체들이다.
< 달콤한 인생 > 또한 물(자기 모습을 반사하는 것)에 대한 집착을 보여준다. 호텔 바 내부는 " 물의 이미지 " 로 이루어져 있다. 내부는 온통 반사되는 것투성이'다. 이병헌은 호텔 바 어디에 서 있어도 반사된 자신을 볼 수 있다. 위에서도 지적했듯이 이병헌은 밤이 스며든 유리창에 비친 자신을 보며 황홀해 한다. 이 자기애'는 영화의 주제를 단적으로 보여준다. 그가 사랑하는 대상은 여자가 아니라 남자다. 채호기는 < 슬픈 게이 > 연작에서 게이를 " 페이스-오프 " 하는 존재라고 말한다. 그러므로 보이는 얼굴은 내것이 아니다.
손바닥에 너의 두 눈
내 눈을 빼고 그걸 끼운다.
코와 입 귀를 지우고
너의 코와 입 귀를 덮는다.
머리카락을 뽑고
너의 머리카락을
씌운다.
내 얼굴은 사라지고
거울 속에 비친 네 얼굴
웃는다 너처럼.
너무나 생생한 예전의 너의 미소
그걸 흉내낸다.
내 생각이 너의 생각이도록
반복하고 반복한다.
너를 연기하는 배우가 아냐.
네가 되어 너의 삶을 살아가는거지.
- 슬픈 게이, 부분.
" 너의 두 눈 / 내 눈을 빼고 그걸 끼 " 우거나 내 " 머리카락을 뽑고 / 너의 머리카락을 / 씌운다. " 이로써 " 내 얼굴은 사라지고 " 대신 " 거울 속에 비친 네 얼굴 " 만 남는다. 채호기에게 있어서 게이는 분열적이며 다중적 존재'다. 게이는 < 더블 > 이다. 그것은 기만적인 것이 아니라 사회적 폭력으로부터 자신을 보호하기 위한 몸짓'이다. 영화 속 이병헌이 밤이 스며든 거울을 보며 샤도우 복싱을 하는 장면은 < 슬픈 게이 > 를 연상시킨다. 그 또한 " 거울 속에 비친 네 얼굴 " 을 보며 " 웃는다 " 이 미소는 일종의 " 흉내 " 다. 게이는 " 내 몸이 / 내게 맞지 않 " 은 외투를 입은 자다.
내 몸이
내게 맞지 않다.
몸에 갇혀
끙끙거리는
나 아닌
몸 속에
다른 이의
애타는
목소리.
덜컹거리는 몸에 실려
나의 일생을 떠메고 가는
잘못 입은 너의
몸의
쓸쓸한 뒷모습.
—채호기, 「게이 4」 전문
그는 외투를 벗어 알몸을 보여주고 싶지만 동성애는 사회적 금기'다. 그래서 게이는 슬픈 운명을 가졌다. 내 안에 너 있다. 겉은 < 너 > 인데 속은 < 나 > 다. 혹은 그 반대도 성립된다. 동병상련일까 ? 겉인 < 너 > 는 < 나 > 가 안쓰럽고, < 나 > 는 애써 태연한 척 밝게 웃는 < 너 > 가 애처롭다. 김지운 영화에서 " 동성애적 감성 " 을 읽어내는 것은 그리 어렵지 않다. < 달콤한 인생 > 에서 이병헌은 이야기 하나를 들려준다. 스승에 잠에서 깨어나 울고 있는 제자를 보며 묻는다. 무서운 꿈을 꾸었느냐 ? 아닙니다. 슬픈 꿈을 꾸었느냐 ? 아닙니다. 달콤한 꿈을 꾸었습니다. 그럼 왜 우느냐 ? 달콤한 꿈은 이루어질 수 없기 때문입니다. 여기서 그가 말하는 달콤한 꿈'이란 무엇일까 ?
스승은 흔들리는 것은 바람도 아니고 나뭇가지도 아닌 마음이라 했으나, 사실 가지를 흔들리게 만든 주체'는 뿌리 때문이다. 뿌리가 없는 티끌은 흔들리지 않고 날아갈 뿐이다. 부러진 가지가 이리저리 흔들리던가 ? 오직 깊게 박힌 존재만이 흔들린다. 자유로운 것은 뿌리가 없는 존재들이다. 인간도 마찬가지다. 행복한 자는 뿌리'가 없는 자'이다. 인간은 사회가 인간에게 부여한 고정된 역할 놀이 때문에 힘들어한다. 슬픈 게이는 뿌리(마음)은 여성인데 가지(몸)은 남성이거나 뿌리는 남성인데 가지는 여성인 자다. 그래서 그들은 흔들린다. 바람이 불지 않아도, 그렇게 흔들리는 존재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