개똥 같은 소리

 

 

3 : 햄버거에 대한 명상 + 미녀는 괴로워

 

 

 

 

 

한 번의 성공과 네 번의 실패였다. 말이 좋아서 네번의 실패이지 내 가족의 흥망성쇠는 줄곧 실패패패패에에에에'였다. 위로 누나와 형이 1년 터울로 대학생이 되자 어머니는 두 사람의 대학 등록금을 감당할 수가 없어서 곁방 하나를 세를 주었다. 세입자는 잘생긴 총각 아저씨였는데 문청의 뜻을 품은 채 대기업에 다니는 사람이었다. 살림으로는 그 흔한 냄비 하나 없었지만 책은 많았다. 이 자리에서 고백하지만 나는 출근하고 없는 곁방에 들어가 책을 읽고는 했다. 그때 읽었던 책이 바로 장정일 시집 < 햄버거에 대한 명상 > 이었다. 시집에 수록된 시들은 전혀 기억이 나지 않는데 표지 제목과 같은 제목의 " 햄버거에 대한 명상 " 이라는 시는 또렷이 기억한다. 왜냐하면 읽으면서 속으로 뭐, 이런 개똥 같은 소리가 다 있나 ? 라며 의아해했던 기억이 나기 때문이다.

 

시 < 햄버거에 대한 명상 > 전문 펼치기 ▼

 

햄버거에 대한 명상

 

                       - 가정요리서로 쓸 수 있게 만들어진 시

 

 

옛날에 나는 금이나 꿈에 대하여 명상했다
아주 단단하거나 투명한 무엇들에 대하여
그러나 나는 이제 물렁물렁한 것들에 대하여도 명상하련다

오늘 내가 해보일 명상은 햄버거를 만드는 일이다
아무나 손쉽게, 많은 재료를 들이지 않고 간단히 만들 수 있는 명상
그러면서도 맛이 좋고 영양이 듬뿍 든 명상
어쩌자고 우리가 <햄버거를 만들어 먹는 족속> 가운데서
빠질 수 있겠는가?
자, 나와 함께 햄버거에 대한 명상을 행하자
먼저 필요한 재료를 가르쳐 주겠다. 준비물은

햄버거 빵 2
버터 1½큰 술
쇠고기 150g
돼지고기 100g
양파 1½
달걀 2
빵가루 2 컵
소금 2 작은 술
후춧가루 ¼작은 술
상추 4 잎
오이 1
마요네즈소스 약간
브라운소스 ¼컵

위의 재료들은 힘들이지 않고 당신이 살고 있는 동네의
믿을 만한 슈퍼에서 구입할 수 있을 것이다.―슈퍼에 가면
모든 것이 위생비닐 속에 안전히 담겨 있다. 슈퍼를 이용하라―

먼저 쇠고기와 돼지고기는 곱게 다진다.
이 때 잡념을 떨쳐라, 우리가 하고자 하는 이 명상의 첫단계는
이 명상을 행하는 이로 하여금 좀더 훌륭한 명상이 되도록
매우 주의깊게 순서가 만들어졌는데
이 첫단계에서 잡념을 떨치지 못하면 손가락이 날카로운 칼에
잘려, 명상을 포기하지 않으면 안 되도록 장치되어 있다

쇠고기와 돼지고기를 곱게 다졌으면,
이번에는 양파 1개를 곱게 다져 기름 두른 프라이팬에 넣고
노릇노릇할 때까지 볶아 식혀 놓는다.
소리내며 튀는 기름과 기분 좋은 양파 향기는
가벼운 흥분으로 당신의 맥박을 빠르게 할 것이다
그것은 당신이 이 명상에 흥미를 느낀다는 뜻이기도 한데
흥미가 없으면 명상이 행해질 리 만무하고
흥미가 없으면 세계도 없을 것이다.
이것이 끝난 다음,
다진 쇠고기와 돼지고기, 빵가루, 달걀, 볶은 양파,
소금, 후춧가루를 넣어 골고루 반죽이 되도록 손으로 치댄다.
얼마나 신나는 명상인가. 잠자리에서 상대방의 그곳을 만지는 일만큼
우리의 촉각을 행복하게 사용할 수 있는 순간은,
곧 이 순간,
음식물을 손가락으로 버무리는 때가 아니던가

반죽이, 충분히 끈기가 날 정도로 되면
4개로 나누어 둥글납작하게 빚어 속까지 익힌다.
이때 명상도 따라 익는데, 뜨겁게 달구어진 프라이팬에
반죽된 고기를 올려놓고 1분이 지나면 뒤집어서 다시 1분 간을 지져
겉면만 살짝 익힌 다음 불을 약하게 하여 ―이렇게 하기 위해서는
절대 가스레인지가 필요하다― 뚜껑을 덮고 은근한 불에서
중심까지 완전히 익힌다. 이때
당신 머리 속에는 햄버거를 만들기 위한 명상이 가득 차 있어야 한다.
머리의 외피가 아니라 머리 중심에, 가득히!

그런 다음,
반쪽 남은 양파는 고리 모양으로
오이는 엇비슷하게 썰고
상추는 깨끗이 씻어놓는데
이런 잔손질마저도
이 명상이 머리 속에서만 이루고 마는 것이 아니라
명상도 하나의 훌륭한 노동임을 보여준다.

그 일이 잘 끝나면,
빵을 반으로 칼집을 넣어 벌려 버터를 바르고
상추를 깔아 마요네즈 소스를 바른다. 이때 이 바른다는 행위는
혹시라도 다시 생길지 모르는 잡념이 내부로 틈입하는 것을 막아준다.
그러므로 버터와 마요네즈를 한꺼번에 처바르는 것이 아니라
약간씩, 스며들도록 바른다.

그것이 끝나면,
고기를 넣고 브라운 소스를 알맞게 끼얹어 양파, 오이를 끼운다.
이렇게 해서 명상이 끝난다.

이 얼마나 유익한 명상인가?
까다롭고 주의사항이 많은 명상 끝에
맛이 좋고 영양 많은 미국식 간식이 만들어졌다

 

 

 

펼친 부분 접기 ▲

 

아마 접힌 부분을 펼쳐본 이 또한 개똥스러워 하기는 나와 마찬가지일 것이다. " 뭐, 이런 개똥 같은 소리가 다 있담 ?! " 잘 빠진 교과서용 시만 접하다가 이런 시를 만나면 개똥스럽게 된다. 그런데 편견없이 읽으면 이해하기 쉽다. 이 시를 말 그대로 실용적이다. 시를 읽으면서 그대로 따라하면 먹음직스러운 햄버거가 만들어지니 실용적이지 않은가 ? 장정일은 이미 " 가정요리서로 쓸 수 있게 만들어진 시 " 라고 친절하게 설명한다. 이 말은 곧 지금까지의 시들이 실용적이지 못했다는 것을 의미한다. 그러니깐 시인들이 계룡산 뜬구름 잡는 소리만 했다는 지적처럼 들린다. 노스텔지어 어쩌구저쩌구, 푸른 해원 어쩌구저쩌구..... 거창한 담론만을 말하다 보니 시를 현실과 동떨어져서 뜬구름만 잡고 있는 것이다. 그래서 시인은 주먹 불끈 쥐고 가정요리서로 쓸 수 있는 시를 만든 것이다. 1절, 2절, 3절 따라 읽다 보면 어느새 "맛이 좋고 영양 많은 미국식 간식이 만들어 "  진다.

 

아, 침이 고인다. 하지만 햄버거란 결국 정크 푸드가 아니었던가. 이 시는 실용적이기는 한데 결과물은 정크'다. 그러므로 좋은 결과가 아니다. 이 아이러니'를 장정일은 즐긴다. 먹고 나서 돼지나 돼라 ! 이 시를 읽다 보면 생각나는 영화가 있다. 바로 김용화 감독의 < 미녀는 괴로워 > 이다. 하지만 그 전에 위대한 걸작 < 사랑은 비를 타고 > 에 대해 말해야 한다. 이 순서가 실용적이니깐 말이다. 무성영화 시절에는 배우의 목소리가 중요하지 않았다. 개똥 같은 소리를 가진 베컴이 그 시대에 태어났다면 최고는 아니더라도 그럭저럭 훌륭한 배우가 되었을 것이다. 하지만 토키 영화 시대'에는 목소리가 무엇보다도 중요했다. 이제 무성영화 스타는 지고 매혹적인 목소리 음색과 정확한 발성법’을 배운 배우가 인기‘를 끌게 되었다. 뮤지컬 영화 < 사랑은 비를 타고 > 는  무성 영화에서 유성 영화로 교체되는 30년대 헐리우드‘가 배경이다. 

 

" 싸운드 " 가 도래하자 " 마임 " 은 곧 사라질 운명.  영화 속 무성영화의 디바였던 여배우는 공교롭게도 " 여자 베컴 " 이었다. " 이, 런 된장 ! 컷 !!  이봐요, 안젤리나 모스키토 양 ! 당신 목소리는..... " 감독은 차마 개똥 같은 소리요, 라는 말을 할 수 없어서 목구멍 속으로 삼킨다. 당시에는 후시녹음 시스템이 없었기 모든 토키 영화 촬영은 생방송처럼 진행되어야 했다. 성질이 고약한 디바 모스키토 양'에게는 목소리 대역이 필요했다. 신은 그녀에게 아름다운 얼굴을 주었지만 반대로 더러운 목소리를 선사했으니 주사위는 공평하다고 말해야 하나 ?! 이 목소리 대역은 얼굴은 평범하지만 목소리가 아름다운 옥소리 양'이 맡기로 했다. 물론 마음씨도 비단 같이 고운 처녀였다. 그녀는 카메라 뒤에서 디바 모스키토 양의 목소리를 연기했다. 그녀는 남진이 느끼하게 부르던  " 얼굴만 예쁘다고 여자냐, 마음이 고와야 여자지 ! 한 번만 마음 주면 변치 않는, 그런 여자가 정말 여자 "  다.

 

남진이 불쑥  “ 한 번만 응응 주면 ” 이라는 성적 코드만 들고 나오지 않았다면 썩 괜찮은 뽕짝이 되었을 것이다. 하지만 속임수란 그리 오래 가지 않는 법‘이다. 개똥 같은 소리'를 가진 여배우의 사기 행각은 들통이 나고, 대신 그 자리’를 " 한 번 주면 절대 변치 않는 " 마음씨 착한 신데렐라‘가 차지해서 행복하게 산다는 내용이다.  뻔, 하다. 쇼란 늘 그런 것이니깐 말이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나는 이 영화에 열광해서 열 번 넘게 보았다. 영화 < 미녀는 괴로워 > 는 < 사랑은 비를 타고 >의 기본 서사를 그대로 차용한다. < 사랑은 비를 타고 > 에 나오는 평범한 여성이 디바에게 자신의 옥소리를 빌려주었다면 < 미녀는 괴로워 > 속 뚱보 양 또한 비쥬얼 가수에게 자신의 옥소리'를 빌려주었다. 그리고 한발 더 나아가서 성형의 힘을 빌려서 날씬한 미녀로 둔갑한다.

 

목소리는 자연산‘이고, 비쥬얼은 양식’이다. 둘, 다, 맛, 있다 !  그녀는 곧 디바‘로 성공한다.  그렇다면 이 성공은 노래를 잘했기에 성공한 것일까 아니면 얼굴이 예뻐서 성공한 것일까. 결론은 얼굴이 예쁜데 노래까지 잘해서 성공한 것이다. 그러니깐 방점은 < 미녀 > 이지 < 가수 > 가 아니다. 그래서 영화 제목이 " 가수가 괴로워 " 가 아니라 " 미녀가 괴로워 " 인 이유다. 김용화 감독은 " 얼굴만 예쁘다고 가수냐, 노래를 잘해야 가수다 " 라는 메시지를 뿌리지만 그것은 일종의 예의 차원이다. 이 영화를 끌고 가는 것은 " 노래만 잘한다고 가수냐, 얼굴이 예뻐야 가수지 " 다. 하지만 이 영화를 비판할 생각은 없다. 상업영화의 한계이니 말이다. 하여튼 이 영화가 전달하는 메시지는 분명하다. 비만은 아름다움의 적'이다.

 

다시 < 햄버거에 대한 명상 > 으로 돌아오자. 미녀를 꿈꾸는 여성들에게 비만은 적이다. 그러므로 식욕은 적이다. 식욕이 적이니 당연히 맛있는 햄버거는 공공의 적이다. 칼로리가 무려.........   지금 당신은 햄버거 레시피를 자세하게 설명하는 실용적인 시를 읽고 있다. 읽으면 침이 고인다, 식욕이 생긴다, 욕망이 살아난다. 어떻게 할 것인가. 캔디처럼 참고 참고 참아서 날씬한 미녀가 될 것이냐 아니면 무대 뒤에 숨어서 대역 가수가 될 것인가. 장정일은 햄버거 레시피를 통해서 당신의 욕망을 건드린다. 실용적이라며 끝까지 읽을 것을 강요하지만 다 읽고 나면 햄버거를 먹고 싶다는 욕망만 남는다. 그러므로 당신의 욕망과 정크 푸드는 동일하다. 결국 당신의 욕망은 영양가 하나 없는 개똥이다. 

 

 

- 네이버 블로그, 2011/04/29 19:4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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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tour 2014-04-02 20:51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음. 기막힌 반전적 결말. 욕망의 하찮음.

곰곰생각하는발 2014-04-03 07:11   좋아요 0 | URL
마자요. 바로 제가 하고 싶은 핵심입니다. 즐인 님은 확실히 훈련이 되어서 그런지
요점을 매우 정확히 요약하세요. 이게 쉬운 게 아닌데 말이죠....
가끔 놀랍니다.

엄동 2014-04-03 04:29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이 시간에.
가정요리서대로 햄버거 하나 푸짐하게 만들어 먹고 싶은

아아 이 개똥같은 욕망이여

곰곰생각하는발 2014-04-03 07:12   좋아요 0 | URL
이 시간에 깨어 있는 걸 보니 전날 술 꽐라대서 목 말라 깨어나신 것 같군요.
오늘은 북엇국으로 해장을 ~~~

엄동 2014-04-03 09:37   좋아요 0 | URL
야빠에 엘빠 친구따라 빠져드는 중입니다.
이겼잖아요 ㅋㅋㅋ
북엇국점심 참고하지요 :))

곰곰생각하는발 2014-04-03 10:24   좋아요 0 | URL
엄동 님도 야빠에 엘빠입니까 ?
사실 전 엘빠는 아니에요. 엘지 팬이기는 하지만
요즘은 메이져리그만 봅니다. 허허허허허...
욕 먹을 수리지만
메이저리그보다가 국내 야구 보면 좀 답답해요.
그래도 전 엘지 영원한 팬입죠...

만화애니비평 2014-04-03 08:46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이런 책도둑에게는 책친구가 될 수 있죠. 그분은 무얼하는지(정말 실화라면)

곰곰생각하는발 2014-04-03 10:23   좋아요 0 | URL
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 책도둑은 아닙니다. 허락업이 방과 책을 빌렸을 뿐...

samadhi(眞我) 2014-04-03 14:11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어제밤에도 빌어먹을 식욕과 싸우려고 욕봤어요. 욕망의 실체가 진짜가 아닌 걸 알면서도 당해주고 속아주고 휘둘리고 싶은 비겁한 마음과 싸우는 요즘이지요.

곰곰생각하는발 2014-04-04 08:51   좋아요 0 | URL
흠흠... 자정 넘으면 라면에 신 김치가 최고죠. 정말 먹고 싶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