좋은 세월은 가고 나쁜 세월은 오고......

 

 

 

 

 

 

< 시티즌 X > 라는 케이블 티븨용 영화'가 있다. 티븨 영화'치고는 스테븐 레아, 도날드 서덜랜드, 막스 폰 시도우 같은 훌륭한 배우뿐 아니라 무엇보다도 제프리 드먼 ( 살인자 역 ) 이라는 조연급 배우를 좋아해서 보게 되었다. 내용은 소련에서 실제로 벌어진 연쇄살인사건을 다루었는데 범인은 12년 동안 52명을 살해했다.  그가 바로 " 안드레이 치카틸로 " 다.희생자 수는 치카틸로의 자백에 근거한 수치이니 실제로는 더 많은 사람이 희생되었으리라 짐작된다. 희생자들은 대부분 여성과 아이들이었다. 영화는 기대했던 것 이상이었다. 카메라는 스릴러 장르가 가지고 있는 " 겉멋이 잔뜩 든 잔재주 " 를 버리고 무뚝뚝하게 사건을 나열한다. 이 과정에서 당과 정부 그리고 기관의 무능이 여실히 드러난다. 이 영화가 " 비판의 촛점을 맞춘 부분은 바로 무능한 조직 " 이다.

 

안드레이 치카틸로가 첫 번째 살인을 저질렀을 때 잡았더라면 그 수많은 희생자'는 없었을 것이다. 첫 번째 살인의 경우 : 안드레이 치카틸로는 유력한 용의자로 지목되었지만 경찰이 엉뚱한 사람을 범인으로 지목해서 풀려나왔다. 또한 당은 연쇄살인이 더러운 자본주의의 산물이라고 주장하며 애써  이 사건들을 하나로 연결 지으려는 시도를 하지 않았다. 개별적 사건으로 정리되니 사건은 점점 미궁 속으로 빠지게 되었다. 같잖은 대의명분과 무능력이 수많은 희생자를 양산한 것이다. 세월 호 침몰 사고 보도를 보고 있자니 제일 먼저 떠오른 영화가 바로 < 시티즌 X > 였다. 박근혜는 세월 호 늙은 선장의 도피를 살인 행위에 비유했는데 언론에서도 지적했듯이 핵심을 잘못 짚었다.

 

사고 책임자를 단순하게 무책임한 선원과 구원파 탓으로만 몰고가는 것은 또 다른 재앙이 될 수 있다. 시간을 되돌려보자. 이 사건이 벌어지게 된 결정적 계기는 이명박 정권이었다. 이명박은 정권은 여객선 운항 연한을 25년에서 30년으로 규제를 " 프랜들리 " 하게 완화'함으로써, 청해진 해운이 폐기처분되어야 할 낡은 배( 18년 사용 ) 를 헐값에 사들여서 국내에서 뱃길 장사를 할 수 있도록 만들었다. 만약에 25년으로 규제가 묶여 있었다면 어떻게 되었을까 ? 100억짜리 낡은 배'를 사서 5년 안에 본전을 뽑는 일이란 쉽지 않으니 애초에 세월 호를 구입하지 않았을 것 아닌가 ! 이래도 규제'가 암덩어리'라고 자신있게 말할 수 있을까 ?

 

세월 호는 2014년 4월 16일에 침몰했지만 사실 그 불씨는 이미 2009년에서부터 서서히 시작되었다고 보아야 한다. 그것은 마치 치키틸로가 1990년에 잡혔지만 그 시작은 첫 번째 살인이 이루어진 1978년부터 시작된 것과 같다. 이명박 정권이 규제를 완화하지 않았다면 세월 호는 없었을 것이다. 무책임한 선장과 선원'보다 이 사고에 대해 책임을 져야 할 사람들은 세월 호를 띄울 수 있는 여건을 만든 이'들이다. 해피아, 해수부 마피아들이 그들이다. 하지만 2009년이 비극의 시발점'이었을까 ? 그렇지 않다. 방향타를 좀더 먼 곳으로 돌리면 1990년 세모 유람선 사고와 1987년 오대양 집단 자살 사건에 도달하게 된다. 전두환 정권과 " 프랜들리 " 한 관계에 있었던 유병언'은 증거불충분으로 풀려난다. 그때 제대로 수사를 하고 엄중한 처벌을 내렸다면 세월 호는 존재하지 않았을 것이다. 각각의 개별적 사건들이 모여서 거대한 참사를 양산했다.

 

사고를 낸 사람은 세월 호 선장과 선원들이지만 제1 주범은 세월 호'라는 배를 띄울 수 있게 만든 관료 사회의 암묵적 동의와 뒷거래'다. 이 악순환은 과연 뿌리 뽑을 수 있을까 ? 사건만 터지만 성금부터 헌납하는 사회는 과연 건강한 사회일까 ? 국가가 해야 할 일을 왜 국민이 나서서 금붙이를 내놓고 성금을 모금하는 것일까. 피해자에게 보상해야 할 보상금을 걱정할 정도로 대한민국은 그토록 가난한 나라였던가 ? 슬픔에 대해 애도하는 것은 인간이 갖추어야 할 당연한 도리이지만 슬픔 때문에 냉정을 잃으면 안 된다. 용서는 의미없다. 가끔은 지독해야 한다. 복수가 가장 아름다울 때는 지독할 때'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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마립간 2014-04-28 13:40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저는 투표를 하는 정도의 복수지만, 어떻게 지독하게...
구한말 세도정치에서 친일파로, 친일파에서 친독재개발로, 이제는 스스로가 권력을 행사하는 기득권 집단에게

게다가 역사 왜곡으로 미화를, '우리는 차별에 찬성합니다' 책에서 쓰여진 바와 같이 우리 세대보다 더 희망이 보이지 않는 (괴물인지 아닌지 모르겠지만) 다음 세대.

곰곰생각하는발 2014-04-28 14:01   좋아요 0 | URL
만날 용서만 하고 응징은 하지 않으니 이 꼴이 되는 겁니다.
용서- 코스프레'는 친일파들이 가장 좋아하는 퍼포먼스 아니겠습니까.
독일을 본받아야죠. 범죄에 자비란 없습니다.

유유 2014-04-28 14:36   좋아요 0 | 댓글달기 | 수정 | 삭제 | URL
저... 서민인 저도 적은 돈이나마 기부를 했는데, 기부를 하면서도 이상하더라구요.. 다들 열심히 기부 많이들 하고 있잖아요, 연예인들도 몇천 몇억... 그거 왜 우리가 하고 있지? 싶더라구요. 그 돈이 아까워서가 아니라... 왜 아직도 다들 진도 체육관에서 열악한 환경에서 몇날며칠을 대기하고 있는지... 시신도 임시 안치되질 않나... 열받네요.

곰곰생각하는발 2014-04-29 02:08   좋아요 0 | URL
아픔을 나눈다는 의도는 알겠는데 이젠 국민소득 3만 불을 내다보는 자칭 경제10위권 국가 아닙니까.
옛날에는한푼두푼모아서 성금을 냈다 하지만 지금도 여전히 그런 식으로 해야 하는지 의문입니다.
뭔가 잘못되면 국가가 사비를 털어 배상금을 내야지요. 그게 맞는 것 같습니다.

세이지& 2014-04-28 15:34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규제는 자동제어장치입니다..
앞날과..전체를 위한..

곰곰생각하는발 2014-04-29 02:09   좋아요 0 | URL
세이지 님 가만 보니 낯익은 닉네임 같습니다만...
기억이 가물가물하네요...

엄동 2014-04-29 16:59   좋아요 0 | 댓글달기 | 수정 | 삭제 | URL
모든것들이 참

무의미하고

모든일들에 참

무기력합니다.

곰곰생각하는발 2014-04-30 05:04   좋아요 0 | URL
분통이 터집니다. 도대체 어디까지 적폐를 도려내야 제대로 될지 의문입니다.
박근혜부터 도려내야죠. 적폐의 첫 번째는 박근혜입니다.
 
[반란의 도시]를 읽고 리뷰 작성 후 본 페이퍼에 먼 댓글(트랙백)을 보내주세요.
반란의 도시 - 도시에 대한 권리에서 점령운동까지
데이비드 하비 지음, 한상연 옮김 / 에이도스 / 2014년 3월
평점 :
절판


 


 

 

 

 

공간은 정치적이다 !

 

 

 

우리는 일상 속에서 알게 모르게 정치적 행위에 동참하게 된다. 페이스북이나 블로그에 작성된 글에 대하여 " 좋아요 " 나 " 공감 " 을 클릭하는 행위도 정치적이며, 해경이 세월 호 승객 구조 현황을 설명하면서 지상 최대의 작전 운운할 때 " 개똥 같은 소리하고 자빠졌네... " 라고 소리치는 것도 정치적 행위'다. 그리고 육식을 버리고 채식을 선언하는 순간도 정치적 행위'에 포함된다. 둘 중 하나를 선택하는 과정은 기본적으로 이데올로기적'이다.  그런데 " 공간'은 정치적이다 " 라는 말에는 고개를 갸우뚱하게 된다. 생각하는 동물인 인간이 정치적이라는 말에는 쉽게 동의할 수 있으나 무생물인 공간을 두고 정치적 결과'라는 말에는 쉽게 동의하기가 어렵다. " 공간은 정치적이다 " 라는 말은 르페브르'가 한 말이다. 르페브르 선생이 한 말을 들어보자.

 

공간은 정치적이다. 공간은 이데올로기나 정치와 무관한 과학적 대상이 아니다. 그것은 항상 정치적이며 전략적이었다... ( 중략 ) 우리가 보기에 공간은 동질하게 보이고, 순수한 형태로 완전히 객관적인 것처럼 보이지만, 그것은 사회적 산물이다. 공간의 생산은 특정 상품의 생산과 유사하다.

- 르페브르, 공간의 생산

 

르페브르가 보기에 < 공간 > 은 자본주의의 산물이다. 왜냐하면 공간이란 이윤 창출과 노동 착취에 의해 만들어지기 때문이다. 자본가는 목 좋은 곳(중심부)에 집중적으로 자본을 투자하여 지대와 임대료를 높인 후 원래 그곳에서 살던 원주민을 가차없이 주변부로 내쫓는다. 전망 좋은 곳은 모두 자본가가 차지하게 된다. " 강남 " 과 " 강북 " 은 그런 식으로 만들어진 공간'이다. 원주민이 살던 곳에서 쫓겨나 피난길에 오르는 과정은 다음과 같다.

 

현대 대도시가 성장하면서 일부 지역, 특히 도심 지역에는 인위적 가치가 부여된다. 이 가치는 시간이 흐르면서 점차 높아진다. 도심 지역에 들어선 건물은 시간이 흐르면서 토지의 가치를 높이기보다는 떨어뜨린다. 주변환경이 변하면 어울리지 않게 되기 때문이다. 이제 그런 건물은 철거 되고 다른 건물이 세워진다. 도심 지역에 위치한 노동자 주택에서도 같은 일이 벌어진다. 아무리 인구가 과밀한 지역의 노동자 주택이라 해도 임대료는 일정한 최고한도를 넘어서 상승하지 못한다. 설령 상승한다 해도 그 속도는 매우 완만하다. 이제 이런 노동자 주택이 철거되고, 그 자리에 점포, 상품창고, 공공건물이 들어산다.

 

놀랍게도 위 단락( 파란색 문장)은 엥겔스가 1872년에 쓴 < 주택 문제에 대하여 > 에서 지적한 내용'이다. 140년 전이나 지금이나 변한 게 없다. 문제는 자본의 공간 약탈뿐만 아니라 정치 행정'에서도 중심에서 벗어난 변방은 차별 대우를 받는다는 데 있다. 강남구 국회의원 김종훈 의원 나리 선생님께서 말씀하신 " 저기, 저어기 어두컴컴한 " 비-강남은 개차판 대우를 받는다. 좋은 예가 cctv 설치'다. 5세 훈이'는 강남의 자랑스러운 아들답게 cctv를 부자 동네인 강남에 우선적으로 집중 설치했다. 표를 몰아준 강남 3구에 대한 보은 차원이었으리라. " 도둑놈이 부잣집 털지, 가난한 흥부집 터는 거 봤냐 ? " 라는 자세'라고 할까 ?  그런데 치안 사각지대는 부자 동네'보다는 가난한 동네에 몰려 있다는 사실을 감안하면 흥부가 사는 동네에 cctv를 집중 배치해야 되는 게 순리 아닐까 ?

 

방범 장치가 강남에 집중되다 보니 강도들은 상대적으로 cctv가 설치되지 않은 강북으로 이동했다. 대표적인 인물이 바로 유영철이었다. 유영철은 강남에 비해 치안과 방범이 부실한 강북을 작업실로 선정한 것이다. 공간이 정치적이라는 사실을 실감하게 되는 대목이다. 이후, 서울시에서 부랴부랴 강북에 cctv를 대대적으로 설치하자 쥐새끼 같은 범죄자들은 다시 cctv가 없는 곳으로 옮겼다. 어디로 갔을까 ? 서울 외각 지역'이다. 강호순은 이곳에 터를 잡고서 더러운 욕망을 채웠다. 결국은 자본이 집중적으로 투입된 공간의 치안 때문에 변두리는 점점 치안의 사각지대가 되어 버렸다. 이들에 의한 희생자는 대부분 가난한 이들이었다. 이 얼마나 정치적인가 !

 

데이비드 하비는 < 반란의 도시 >에서 " 르페브르의 구상(도시권) " 을 확장하고자 한다. " 나는 르페브르의 결론에 기본적으로 동의하지만, 그의 결론을 한층 더 선명하게 부각하고자 한다. ( 16쪽 ))  " 하비는 모든 도시 구성원들은 계급과 상관없이 도시에 대한 권리, 즉 " 도시권 " 을 가진다고 주장한다. 노동권이 노동자의 권리라면 도시권은 도시 노동자의 권리로써 " 도시인의 행복추구권 " 이다. 이 책에서 하비는 자본이 원주민을 내쫓고 공간을 약탈하는 과정을 추적한다. 파리 코뮨, 1942년 뉴욕에서 시작된 미국 대도시 재편성 프로젝트, 2008년 서브프라임 모기지 사태를 통해 자본의 도시화'를 폭로한다. 이 목록에는 악명 높은 서울의 재개발도 포함된다.

 

하비는 말한다 : " 1980~90년대 서울에서도 건설회사와 토지개발업자가 험상궂은 용역깡패를 동원해 달동네 주택을 대형 해머로 때려 부수고 주민을 몰아내는 일이 비일비재했다. 1950년대부터 가난한 사람이 거주하던 고지대 토지가 1990년대에 이르로 가치가 높아졌기 때문에 빚어진 일이다 ( 51쪽 ) " 하비는 이러한 도시화에 대해 회의적이다. " 극적인 도시화는 인간의 행복에 기여했는가 ? ( 27쪽 ) " 그는 도시화가 " 도시노동자를 아노미와 소외, 분노와 좌절이 만연한 세상 " 을 만든다고 주장한다. 이러한 태도는 < 도시권 > 이 기본적으로 < 행복추구권 > 과 일맥상통하는 개념이란 사실을 말해준다. 왜냐하면....

 

10년 전 행동 과학자, 신경학자, 심리학자(프린스턴대학의 한 노벨상 수상자를 포함하여)이 모여 행복의 지수를 측정하고 행복의 원인을 규명하려는 실험을 진행했다. ( 중략 ) 그렇다면 이 실험 결과는 어땠을까 ? 새삼스러울 것도 없이 모든 사람이 섹스를 통해 더 큰 행복감을 느끼는 것으로 나타났다. 그 다음으로는 하루의 일과를 끝내고 동료나 친구와 한잔 걸치는 것이 큰 점수를 얻었다. ( 중략 ) 행복하게 사는 방법은 아주 간단하다. 집에서 그리 멀지 않은 안정적인 일터에서 즐겁게 일하고 동료들과 한잔 걸친 후 집에 가서 섹스를 하는 것 ! 행복의 비밀은 바로 여기에 있었다 !

 

- 행복은 어디에 있는가, 리처드 스코시

 

 

< 행복은 어디에 있는가 > 라는 책에서 인상적인 부분은 < 행복의 조건 > 중 " 집에서 그리 멀지 않은 " 이라는 단서가 포함되어 있다는 점이다. 실험대상자 인터뷰에 의하면 출퇴근 왕복 2시간 이상이 걸리면 행복하지 않다고 생각한단다. 자동차 문화가 발달한 나라'에서도 이 지경이라면 지옥철이라는 대중 교통을 이용해야 하는 한국인은 어떨까 ? 부동산 개발과 약탈의 경제에 의해 도시에서 변두리로 쫓겨난 도시 노동자가 느끼는 행복 지수는 얼마나 될까 ? 재개발 사업은 필연적으로 도심과 함께 inner city ( 황폐화한 도심 빈곤 지대 ) 를 양산한다. 한국에서는 가난한 사람일수록 출퇴근 시간이 오래 걸린다. 치솟는 집값 때문에 가난한 도시 노동자는 점점 도심 외각 변두리'로 옮긴다. 그만큼 출퇴근 시간은 길어진다. 전설적인 노동 시간에 더해져서 전설적인 출퇴근 시간을 더하면 가난한 도시 노동자에게 대한민국은 지옥이나 다름 없다.

 

< 반란의 도시 > 에서 아쉬운 점이 있다면 : 시작은 창대했으나 끝은 미미했다는 점이다. 이 책 마지막 장인 7장 제목이 " 월스트리트를 점령하라 " 인데, 이 장은 다른 장에서와는 달리 어조가 사뭇 격정적이다. 월가 시위에 " 필 " 받아서 선동적으로 쓴 글 같다. 르페르브의 구상'을 학문적으로 정립하려는 시도가 느닷없이 삼일 독립 선언문 낭독 같은 비장한 느낌을 준다. 그가 말하고자 하는 바는 간단하다. 공장 노동자 중심인 투쟁에는 한계가 있으므로 도시 노동자로 그 범위를 확대해서 자본과 싸워야 한다는 것이다. " 만국의 노동자여, 단결하라 ! " 라는 데 그 누가 돌을 던질까마는, 급히 매조지해서 용두사미로 끝나는 것 같은 아쉬움이 든다. 됐고 ! 하여튼... 만국의 노동자여, 단결하자 ! 그 길밖에는 없다.

 

 

 

 

 

* 알라딘 공식 신간평가단의 투표를 통해 선정된 우수 도서를 출판사로부터 제공 받아 읽고 쓴 리뷰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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마립간 2014-04-28 11:21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http://www.aladin.co.kr/shop/wproduct.aspx?ISBN=8958201657

'건축, 권력과 욕망을 말하다' 제가 별 5개 준책 입니다. 이미 읽으셨는지 모르겠지만, 책 내용에 공감할 부분이 많을 것입니다.

곰곰생각하는발 2014-04-28 12:28   좋아요 0 | URL
고맙습니다. 좋은 책 소개해 주셔서 말입니다. 참고하도록 하겠습니다. 별 다섯이라... 귀중한 정보로군요..

rendevous 2014-05-12 02:06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바리케이드를 설치하지 못하도록 파리의 도시계획을 세웠다는 구절을 보고 뜨끔 했더랬죠. 함돈균 평론가의 글이었던 것 같긴 한데 청와대는 높은 곳에서 아래를 내려다 보지만 영국의 건물은 평등한 위치에 자리잡고 있다는 걸 지적했던 게 기억납니다. 타워팰리스 같은 곳이나 으리으리한 집에서 살면 사람들이 '미개해'보일 지도 모르겠습니다.

곰곰생각하는발 2014-05-12 10:36   좋아요 0 | URL
독재자의 특징이 대부분 거대한 것을 좋아합니다. 히틀러가 대표적이었죠. 그는 바그너의 웅장한 무대극을 그대로 도시 계획에 옮긴 이였습니다. 아마, 히틀러가 성공했다면 거대한 고딕 도시가 생겼을 겁니다. 크고, 높고, 그런 것들....
 
[투명사회]를 읽고 리뷰 작성 후 본 페이퍼에 먼 댓글(트랙백)을 보내주세요.
투명사회
한병철 지음, 김태환 옮김 / 문학과지성사 / 2014년 3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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창이 없는 건물은 있지만

문이 없는 건물은 없다.

 

 

※ 어제 급히 < 투명사회 > 리뷰를 올렸는데 생각해 보니 성의 없이 쓴 티'가 " 확 나서 " 다시 읽으니 " 화나서 " 다시 쓴다.

 

 

 

이 세상 모든 종교는 " 위에서 다 내려다보고 계십니다 ! " 라는 말씀을 신도들에게 전파한다.  " 그분이 다 보고 계십니다 " 라는 말은 곧 " 그분은 다 알고 계십니다. " 라는 뜻이 된다. 종교가 가진 위엄'은 바로 " 투시 / 투과(성) " 에 있다. 부처님과 하느님은 겉을 꿰뚫어 속을 속속들이 보는 능력을 가진 존재'다. " 남산 위의 저 소나무 철갑을 두른 " 다 한들, 신 앞에서는 벌거벗은 초라한 소나무에 지나지 않는다. 신 앞에서 시력 자랑하지 마라. 신은 " X- (ray) eye " 다. 모든 인간은 신 앞에서 벌거숭이가 된다. 이 투시'를 푸코'는 약간 다른 각도로 비튼다. " (하느님의) 내려다보심 " 과 " (부처님의) 손바닥 안 " 을 하드코어 - 느와르 - 와이어리스 - 바디 투 바디 - 감옥 - 아크로바틱 - 악숀 - 무우비 버젼으로 변형하면 < 판옵티콘 > 이 된다. 

 

판옵티콘이란 원형감옥 core에 위치한 높이 솟은 탑의 감시창에서 감시자가 죄수들을 감시하는 시스템으로 pan은 < 모두 >, optic은 < 본다 > 는 뜻이니 한국말로 번역하자면 요즘 불티나게 팔리는 차량 블랙박스 " 다본다 " 라고 할까 ?  판옵티콘은 소수가 다수를 감시하는 시스템이다. 그런데 사회학자 토마스 마티센'은 현대의 감시 체제'가 판옵티콘에서 시놉티콘'으로 이동했다고 말한다. 그러니깐 " 소수가 다수를 감시하는 체제 " 에서 " 다수가 소수를 주시하는 체제 " 로 전환되었다는 것이다. 소셜 미디어'가 그것을 가능하게 만들었다. " 신상털기 " 가 좋은 예'이다. 옛날에는 선그라스 낀 7급 공무원이 < 그 짓 > 을 하더니 이제는 시민들이 자발적으로 나서서 < 그  짓 > 을 한다. 그들은 스스로 감시하면도 동시에 감시당한다. 가해자이면서 피해자'요, 파놉티콘 수감자이면서 빅브라더'이다.

 

a를 b가 감시하고, b를 c가 감시하고, c는 a가 감시한다. 21세기 디지털 시민 사회에서 시민은 자경단 역할을 자임한다. 현대 사회는 더 이상 정보를 수집하기 위해 선그라스를 낀 특수 요원을 파견하지 않는다. 개인이 자발적으로 흘린 정보를 기관은 그저 수집할 뿐이다. 현대 사회에서 개인이 소비하는 형태 : 전화 통화, 검색어 기입, 이메일, 신용카드 기록, 페이스북 좋아요 클릭 유형, CCTV, 동의서 작성 행위는 온갖 개인 정보를 타인에게 공개하는 꼴이 된다. 문제는 이 정보'가  쉽게 털린다는 점이다. 마음만 먹으면 누구나 접근 가능한 투명성은 이제 공포로 다가온다. 한병철은 < 투명사회 > 에서 투명한 사회는 신뢰 사회가 아니라 새로운 형태의 감시 사회'라고 주장한다.

 

그는 " ' 투명성이 신뢰를 만듭니다 ' 라는 구호는 사실 ' 투명성이 신뢰를 철폐합니다 ' 로 바뀌어야 한다. ( 98쪽 ) " 라고 주장하며 오히려 불투명성'이 필요한 사회라고 지적한다. 이 책에서 한병철이 말하는 " 투명성 " 은 잠금 장치는 있지만 커튼이 없는 투명한 창문과 같다. 잠금 장치가 있다고는 하나 커튼이 없으니 속이 속속들이 다 보인다. 비밀은 쉽게 폭로된다. 사실 < 알 권리 > 보다 중요한 것은 < 알려지지(보이지) 않을 권리 > 이다. 그런데 현대 사회'는 알려지지 않을 권리는 무시한 채 알 권리만 강요한다. 소비자는 무조건 약관에 동의해야 한다. 당신이 약관에 동의한 정보는 장사꾼들에게 팔린다. 장사꾼이 당신에 대해 모르는 것이 있다면 신음소리뿐이다. 오르가슴 시 당신은 아, 소리를 내는지 오, 소리를 내는지 이것도 저것도 아니라면 애, 매모호한 소리를 내는지 그 사실만 모를 뿐이다.  

 

 

세월 호 침몰 사고 보도를 통해서도 드러났듯이 언론은 " 알 권리 " 를 내세워 지나치게 피해자를 벌거벗긴다. 그것은 폭력이다. 거리 두기'를 무시한 카메라는 칼이나 다름없다.  이렇게 해서 만들어진 " 타인의 고통은 " 은 기사에 실려서 " 클릭 " 된다. 그리고 클릭 수에 따라 수익이 창출된다. 전형적인 어뷰징'이다. 세월 호를 보도한 카메라는 영화 < 피핑 톰 / 마이클 파웰, 1960 > 에 나오는 살인 카메라 장치'다. 카메라는 찍는 게 아니라 찌른다 !  한병철은 과잉(포지티브)에 대항하기 위해서 결핍(네거티브)를 옹호한다. < 투명사회 > 에서 보여주는 문제 인식은 곧 전작인 < 피로사회 > 와도 일맥상통한다.  피로사회와 투명사회 속 구성원들은 모두 스스로에게 채찍을 휘두르는 피가학적 이상 행동을 보인다. " 아이구야, 아프구나 ! " < 피로사회 > 가 행복에 대한 강박에 시달려서 스스로를 피로하게 만들었듯이,

 

< 투명사회 > 인 디지털 판옵티콘 시대는 불특정 다수와 커뮤니케이션(친밀성)를 맺기 위해서 개인의 프라이버시를 폭로해서 시장에 내놓는 이상한 사회'로 발전했다. 공유하지 않으면 우정 따위는 없어.   원래 손가락이라는 의미를 가진 라틴어 digitus에서 나온 디지털은 가상의 창문(원도우)으로 이루어진 세계'다. ( 커튼이 없다는 가정에서 ) 창문은 문과는 달리 닫아도 밖에서 안을 들여다볼 수 있는 장치'다. 그러므로 원도우 체제는 잠금 장치가 없는 문보다도 더 투명하다. 여기에는 오로지 노출과 관음만 존재한다. 알프레드 히치콕 감독이 54년에 만든 위대한, 위대한, 위대한, 위대한 걸작 < 이창 / rear window > 은 21세기 디지철 창문(윈도우)의 세계를 적확하게 예언한다. 개인적으로 이 영화에 대해 할 말은 많으나 자세한 내용은 다음으로 미루기로 한다.

 

< 이창 / rear window > 를 통해서 개인의 사생활이 실시간으로 노출된다면, 21세기  " digital window " 는  이제 트위터, 블로그, 페이스북이 되어 실시간으로 온갖 정보를 제공한다.  어제 타임라인을 엿보니깐 어떤 새끼는 지금 자신이 똥싸고 있다는 사실을 실시간으로 남기더라 ! 똥을 몇 가닥으로 나눌지 고민이라는 친절한 멘트와 함께 말이다. 이제는 모든 것을 투명하게 폭로해야지만 친밀한 관계가 되었다. 영화 제목도 의미심장하다. < rear > 은 < real > 과 형태상 유사하지만 의미는 전혀 다르다. ( 햄릿이 한국인이었다면 이렇게 말했을 것이다. " R이냐 L이냐, 그것이 문제로다 ! " 내 귀에는 rear이나 real 모두 [ríər] 로 들린다. ) 우리는 디지털 윈도우 세계'가 " real " 하다고 생각하지만 사실은 " rear "다. 그러니깐 디지털 원도우는 실제가 아니라 욕망을 배설하는 뒷간(rear)에 불과하다. 

 

< 깃발 > 은 사람이 눈으로 직접 < 바람 > 을 볼 수 있도록 고안한 발명품이다. 엘리어트 카네티가 한 말'이다. 만약에 바람이라는 자연 현상이 일어나지 않았다면 필요 없는 물건이다. 가까운 미래에 당신이 화성으로 이사를 가게 되는 경우가 생긴다면 바람에 휘날리는 태극기나 깃발 따위는 가지고 가면 안 된다. 그곳에는 바람은 존재하지 않으니 말이다. 바람은 선-존재이고 깃발은 후-존재이다. 창문과 문의 관계도 마찬가지다. 창문이 없는 건물은 있을 수 있지만 문이 없는 건물을 있을 수 없다. 깃발이 휘날린다는 사실은 바람이 존재한다는 정보를 제공하듯이, 창문이 있다는 사실은 그 건물에 반드시 문이 있다는 정보를 제공한다. 선-존재는 문이고, 창문은 문을 위해 존재하는 후-존재'다.

 

현대 사회는 창문( 알 권리와 투명성 역할)의 개방성을 강조하지만 정작 중요한 것은 문( 보이지 않을 권리와 불투명성 역할)이 가지고 있는 폐쇄성'이다. 비밀을 보장하는 문이 없다면 창문이 아무리 전망 좋고 투명하다 한들 무슨 의미랴. 창문은 있으나 문이 없는 건물은 기형적 구조'다. 다시 한번 말하지만 문은 선-존재이고 창문은 후-존재'이다. 부정성의 철학자 한병철은 이 책에서 창문이 가지고 있는 포지티브'보다 문이 가지고 있는 네거티브에 주목한다. 코페르니쿠스적 발상이다. 마르셀 프루스트가 홍차와 함께 마들렌을 권했다면 나는 < 투명사회 > 와 함께 영화 < 이창 > 을 권한다. 책 한 권과 영화 한 편, 좋은 궁합 아닌가 ?

 

 

 

 

 

덧대기 : 이 책은 철학 에세이'이지 철학서'가 아니다. 철학서에 촛점을 맞추면 내용이 아쉽고, 에세이로 보자면 충분하다. 나는 이 책을 에세이'라는 측면에서 평가했다.

 

 

 

 

 

 

 

* 알라딘 공식 신간평가단의 투표를 통해 선정된 우수 도서를 출판사로부터 제공 받아 읽고 쓴 리뷰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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새벽 2014-04-26 11:22   좋아요 0 | 댓글달기 | 수정 | 삭제 | URL
투명성의 방향이 완전 뒤집혀 거꾸로 된 세상이에요. 또한 그 방향이 제대로 잡힌다한들 말씀대로 문이 없으면!

여튼 요즘 곰곰발님 성정에 맘고생 몸고생 많으셨을 줄 압니다. 건강 챙기시길.

곰곰생각하는발 2014-04-27 05:41   좋아요 0 | URL
새벽 님 오랜만이군요. 국가적 재난이고 국가적 애도 기간이죠. 어처구니없는 일을 매년 봅니다.
변하는 것은 없고 답답하군요....

마립간 2014-04-26 11:57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아파트 베란다의 큰 유리로 된 (커튼이나 블라인드가 필요한) 미닫이 ; 창일까요. 문일까요?

곰곰생각하는발 2014-04-27 05:40   좋아요 0 | URL
당연히 창입니다. 큰 창입니다. 문의 기본적 성격은 불투명성이죠. 문은 무조건 안이 보이지 않아야 합니다.

수다맨 2014-04-27 14:04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곰곰발님 한동안 안 보이셔서 걱정했습니다^^;;;
요즘 이 정권 하는 짓 보고 있으려니 정나미가 다 떨어져서요. 사악한 것을 넘어 이제는 무능과 허위의 극치로 가는 것 같더군요. 이런 인간들이 위정자라니 이제는 한숨만 나옵니다.

곰곰생각하는발 2014-04-28 12:29   좋아요 0 | URL
분노 이런 거 보다는 솔직하게 고백하면 그냥 죽이고 싶습니다. 분노는 그래도 어느 정도의 생각함'이 있기에 가능하지만.... 선원들보다 더 얄미운 것들이 있죠..

만화애니비평 2014-04-28 13:13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그래서 제 덧글이 없는군요!

곰곰생각하는발 2014-04-28 13:22   좋아요 0 | URL
알라딘은 덧글 확인이용이하지가 않습니다. 사랑을 전합니다.

rendevous 2014-05-12 01:51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최인훈의 시대만 해도 남한은 밀실이었는데 이거야 뭐... 순결한 전자광장이여!

곰곰생각하는발 2014-05-12 10:37   좋아요 0 | URL
최인훈이 바랐던 것은 광장 그러니깐 열린 사회'였죠. 그런데 시대가 많이 변했습니다.
이제는 열린 구조에 의한 개인 침해가 문제가 되는 사회가 되었습니다.
 

 

 

 

 

조금새끼들아 !

 

세월 호 침몰 뉴스를 보면 < 사리 > 와 < 조금 > 이라는 말이 자주 나온다. 문득, 김선태 시 < 조금새끼 > 가 떠올랐다. 남도 갯마을' 사람들은 지금도 " 조금새끼 " 라는 말을 쓴다. 음력 초하루(매달 첫째 날)와 보름(매달 열닷새 날) 사이, 그리고 보름과 그믐(매달 마지막 날) 사이'에 든 7, 8일과 22, 23일을 " 조금 " 이라 하는데 이때가 물이 가장 낮을 때'다. 반대로 보름과 그믐은 물이 가장 높을 때'다. 이때를 " 사리 " 라고 하는 모양이다. 고기잡이배를 타는 선원들은 < 사리 > 때 먼 바다로 나가 고기를 잡고, < 조금 > 때가 되어 항구로 돌아온다고 한다. 뱃사람들이 물이 높을 때 먼 바다로 나갔다가 물이 낮을 때 항구로 돌아오니 그들에게는 조금 때가 주말'인 셈이다. 어떻게 보면 뱃사람들은 " 주말 부부 " 의 원조였다. 이처럼 긴 이별과 짧은 만남이 사리와 조금 때에 맞춰 이루어지니 조금은 " 집집마다 애를 갖는 물때 " 라고 김선태는 말한다.

 

가난한 선원들이 모여 사는 목포 온금동에는 조금새끼라는 말이 있지요. 조금 물때에 밴 새끼라는 뜻이지요. 그런데 이 말이 어떻게 생겨났냐고요? 아시다시피 조금은 바닷물이 조금밖에 나지 않아 선원들이 출어를 포기하고 쉬는 때랍니다. 모처럼 집에 돌아와 쉬면서 할 일이 무엇이겠는지요? 그래서 조금 물때는 집집마다 애를 갖는 물때이기도 하지요. 그렇게 해서 뱃속에 들어선 녀석들이 열 달 후 밖으로 나오니 다들 조금새끼가 아니고 무엇입니까? 이 한꺼번에 태어난 녀석들은 훗날 아비의 업을 이어 풍랑과 싸우다 다시 한꺼번에 바다에 묻힙니다. 태어나서 죽을 때까지 함께인 셈이지요. 하여, 지금도 이 언덕배기 달동네에는 생일도 함께 쇠고 제사도 함께 지내는 집이 많습니다. 그런데 조금새끼 조금새끼 하고 발음하면 웃음이 나오다가도 금세 눈물이 나는 건 왜일까요? 도대체 이 꾀죄죄하고 소금기 묻은 말이 자꾸만 서럽도록 아름다워지는 건 왜일까요? 아무래도 그건 예나 지금이나 이 한 마디 속에 온금동 사람들의 삶과 운명이 죄다 들어있기 때문이 아니겠는지요.

- 김선태 시 '조금새끼' 전문  

 

 

" 조금 물때에 밴 새끼 " 라는 뜻을 가진 " 조금새끼 " 는 핏줄은 각각 다르지만 공동체적 운명을 함께 하는 동아리'다. 그들은 " 아비의 업을 이어 풍랑과 싸우다 다시 한꺼번에 바다에 묻 " 힌다. 그래서 " 생일도 함께 쇠고 제사도 함께 지내는 집이 " 많다. 가만히 보면 조금새끼들은 물고기떼를 닮았다. 멸치떼처럼 우르르 몰려다니다 거대한 그물망에 잡혀 생을 마감하는, 희노애락을 함께 하는......

 

세월 호'가 진도에서 전복한 지 5일째'다. 희박한 공기와 차가운 수온을 생각하면 희망보다는 기적을 바라야 할 때다. 그러나 실낱같은 기적을 간절히 원하기에는 시간은 속절없이 흘렀고, 정부는 속도 없이 우왕좌왕하고, 배는 10미터 수면 아래로 가라앉았다. 어두컴컴한 고래 뱃속 같은 배 안에 갇혀 죽은 아이들을 생각하니, 그 아이들 운명 또한 조금새끼' 같다는 생각이 들었다. 그 아이들은 " (같은 해에) 태어나서 죽을 때까지 함께 " 였던 공동체적 운명을 가진 또래'였다.  선장이 떠난 배 안에서 한겨울 몸을 잔뜩 웅크린 짐승처럼 몸을 숨긴 아이들을 생각하면 아픔이 생강처럼 아려와서 일생 생활에서 생각없이 웃다가도 문득 죄책감이 든다. 

 

나를 포함해서 당신은 공공의 적이 되어버린 선장을 욕할 자격이 없다. 그럴 만큼 우리는 떳떳하지 못한 존재'다. 특종에 눈이 멀어서 윤리를 버린 언론이나 비극을 미끼로 허위 사실을 유포하는 사람들도 공범자'이며,  이미 불법이 관례가 되어 버려서 일상이 되어버린 그 무수한 편법과  각종 규제를 암덩어리'라고 규정하는 그 비열한 청와대도 공범자이다. 또한 이런 글 따위를 쓰면서 비극 앞에서 꽤나 괴로운 척하는 나도 개새끼'다. 입이 열 개라도 할 말이 없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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스누피 2014-04-20 22:21   좋아요 0 | 댓글달기 | 수정 | 삭제 | URL
여기, 개새끼 하나 추가요. (저요!) 지쳐서 무뎌졌다가, 세월호-관제센터 무선 내용 듣고, 욕지기가 게거품처럼 끓어오르는 밤입니다.

곰곰생각하는발 2014-04-20 23:53   좋아요 0 | URL
규제는 필요하죠. 규제는 암덩어리가 아니라 규제야말로 이런 대형 사고를 막을 수 있는 최소한의 장치입니다.
이명박이 이 규제를 대폭 풀었죠. 그걸 박근혜가 여전히 이상한 논리로 풀자고 하는 것에 대해 놀라울 따름입니다.

에피큐리언 2014-04-21 00:03   좋아요 0 | 수정 | 삭제 | URL
규제를 풀자는 것은 대기업에 선물을 주기 위해서입니다.
강자에게 떡하나 더주자는 논리죠.

에피큐리언 2014-04-20 23:40   좋아요 0 | 댓글달기 | 수정 | 삭제 | URL
시에 <그런데 이 말이 가난한 어떻게 생겨났냐고요?>에서 '가난한'은 빼야 합니다.

곰곰생각하는발 2014-04-20 23:52   좋아요 0 | URL
맨 앞에 들어갈 말이 그리붙었군요. 에피큐리언 님 오랜만입니다.
별탈없으셨는지요..

푸르푸르 2014-04-21 10:36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맞아 이래서 당신을 좋아하는 거
나도 개새끼라고 할 줄 알아서...

곰곰생각하는발 2014-04-21 18:40   좋아요 0 | URL
오쉬프 님은 개가 아니라 곰입니다.

세이지& 2014-04-21 11:09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시시비비 니미락내미락 하는 사이에
꽃 같은 아이들이 얼어죽어갑니다..

부끄럽고 슬퍼도
하소연할 데도 없습니다..

곰곰생각하는발 2014-04-21 18:41   좋아요 0 | URL
모든 게 갑자기 3류로 추락했죠.
사실 1류였던 적은 없었습니다만.

엄동 2014-04-21 13:09   좋아요 0 | 댓글달기 | 수정 | 삭제 | URL
일상생활에서 생각없이 웃다가.
문득 죄책감이 든단 말에 너무나 공감합니다.

제발.
모든 가해자들(언론 포함)은 반성하고 뉘우치고 사죄하길.
두달이채 되지 않아 월드컵 열기로 이 재앙을 쉬 지워버리지 않길.


곰곰생각하는발 2014-04-21 18:43   좋아요 0 | URL
월드컵이 올해이던가요 ? 그렇군요, 쉽게 잊혀지겠죠.
때론 망각이 건강에 도움이 되기도 하지만
때론 망각이 은폐를 도모하기도 합니다.

방관자 2014-04-26 12:06   좋아요 0 | 댓글달기 | 수정 | 삭제 | URL
사회의 불법과 부조리를 보아도 못본척 내 안위에 급급했던 우리 사회 모든이가 공범자입니다.

곰곰생각하는발 2014-04-27 05:39   좋아요 0 | URL
그렇습니다. 우리 모두 방관자입니다.
 

 

 

 

 

 

 

 

 

 

 

 

 


 

 

 

전주를 떠나며......  

 

 

14. 사랑은 봄비처럼 + 달빛길어올리기

 

 

 

부산 영화제'는 딱 한번 갔다. 규모 면에서 보자면 국내 영화제 가운데 규모가 가장 크고 화려하지만 영화제 자체의 맛은 없다. 도떼기시장 같았다. 영화제의 주인공은 영화이지 레드 카펫을 밟는 영화인은 아니지 않은가 ? 그래서 부산 영화제'보다는 전주 영화제를 자주 갔었다(과거형으로 쓰는 이유는 다들 아실 것이다). 부산 영화제에 비해 조용할 뿐더라 상영 영화들도 더 알찼다. 그런데 요즘은 정치적 이해타산으로 변질된 모양이다. 영화인과 시네필을 위한 영화제가 아니라 정치 행정에 영화제를 이용하는 느낌이다. 이럴 바에는 차라리 낙원동 아트시네마'에서 정기적으로 하는 영화제가 더 알차다. 나는 전주에서도 1년 정도 머물렀다.

 

전주역에 도착하자마자 택시를 탔는데 운전기사에게 전주를 대표하는 맛집으로 안내해 달라고 주문하자 그가 내려준 곳은 어느 " 100년 전통 전주비빔밥 " 집이었다. 가격은 꽤 비싸서 일반 백반 가격보다 5배는 비쌌다. 맛, 없었다. 그 흔한 비빔밥들과 견주어 비교했을 때 맛의 차이를 느낄 수 없었다. 이 따위가 세계적인 맛인가 ? 한번 빈정이 상하자 계속 삐딱해져서 사람들이 전주 비빔밥'을 으뜸으로 칠 때마다 나는 심통을 부렸다.

 

" 이보쇼, 전통이라 함은 옛것을 그대로 계승하여 보존함을 뜻하는데 내 귀동냥으로 얻어 들은 상식에 의하면 비빔밥은 바쁜 농사철에 일꾼이나 부역에 끌려온 백성들이 밥 먹는 시간을 아끼기 위해 바가지에 이것저것 섞어 먹은 데서 유래했다는 설과 제사 음식을 처리하기 위한 잔반 처리 방식'이라는 소리도 있으니 이래저래 좋은 의미는 아니지 않소 ? 비빔밥을 전통음식, 전통음식 하는데 전통, 전통, 전통 따지자면 농사철 일꾼들이나 부역에 동원된 백성이 먹던 음식을 재현해야 하는 거 아니냔 말이오. 비빔밥은 엄밀히 말하자면 빨리빨리의 원조가 아니겠소 ? 전형적인 패스트푸드요 ! 음식이면 그냥 음식이지 뭔 놈의 전통 음식'이오. 전통 하나 들어갔다고 백반을 2만 원에 파는 상술이 나는 못마땅하오. 옛것은 모두 그리 좋답디까 ? 당신은 항상 말끝마다 겨레, 넋, 얼 따위를 섞어서 말하는 습관이 있던데 옛것이 그리 좋소 ? "

 

내가 보기에는 옛것은 무조건 훌륭하다며 전통'을 강요하는 사람은 " 새것 거부 증후군 환자 " 처럼 보였다. 전통에 대한 맹신은 자칫 국수주의자'가 될 공산이 크다. 시대가 변하면 세대도 변해야 하고, 따라서 문화도 변해야 한다. 음식은 시대를 반영하기보다는 당대'를 반영한다. 예를 들어 명태가 많이 잡히면 그 전에는 몇 가지 없었던 명태 요리가 다양한 형태로 나타나게 된다. 그러므로 음식은 당대의 먹거리 공급에 영향을 크게 받을 뿐이지 전통음식에서 조상의 빛난 얼을 오늘에 되살려 안으로는 자주 독립을, 밖으로는 민주 번영에 이바지하겠다고 꼴값을 떨면 안 된다는 소리이다. 음식에 국경이 어디 있나. 맛있으면 장땡이다.

 

스시'를 좋아하면 애국자가 아닌가 ? 전주'는 전통 문화의 도시답게 예스럽다. 그런데 이러한 전통 이미지'는 뭔가 작위적이어서 도시 전체가 민속박물관 같다. 전주는 " 보여주기 위한 도시 " 다. 임권택 감독의 < 달빛 길어올리기 > 는 전주 특산물 홍보 영화 같아서 보다가 잤다. 그가 전주 한지'에 대한 우수성을 알리려고 했다면 극영화가 아닌 다큐로 접근했어야 했다. 정성일은 분명 이 영화에 대해 침이 마르도록 칭찬을 했을 것이다. 안 봐도 뻔하니깐 ! 비빔밥 이야기를 하다가 여기까지 왔지만 전주는 비빔밥만 빼고는 그럭저럭 좋은 도시'다. 웽이집에서 먹던 콩나물 국밥 맛을 잊지 못하고, 그 수많은 가맥집에서 보낸 불멸의 밤을 잊지 못하며,

 

베테랑 칼국수와 중앙시장 매운 순댓국도 잊지 못한다. 무엇보다도 아가씨들이 예뻐서 좋다. 사실 나에게는 " 전주 " 하면 떠오르는 것은 영화제, 한옥마을, 비빔밥, 웽이집, 삼백집, 막걸리 거리'가 아니다. 길을 걷다가 우연히 거리에서 나오는 노래 하나를 듣다가 갑자기 울고 싶었던 순간이 있었다. 내가 평소에 듣던 음악 취향은 아니었으니 즐겨 듣고 좋아할 만한 노래는 아니었다. 하지만 이 노래는 안개가 자욱한 바다 위 솟아오른 바위에서 사이렌이 부르는 노래처럼 들렸다. 나는 길을 걷다가 멈춰섰다. 서울에 두고 온 애인 생각이 났다. 전주 하면 항상 이 노래가 생각난다. 내가 전주를 떠나던 날 비가 왔다. 파란 방수 비닐'로 덮었으나 책 절반은 젖어서 울고 있었다. 나도 울었다.

 

다들 아시겠지만 이 트럭은 금강 하구를 지나다가 전복되어 물에 빠졌다. 1.5톤짜리 트럭은 빠르게 바닥을 향해 내려앉았다. 차창 밖은 온통 캄캄했다. 차 앞 부분이 뻘에 쳐박힌 모양이었다. 그래도 다행인 것은 창문을 닫아 놓은 상태여서 물이 운전석 안으로 들어오지는 않았다. 이 정도 공기라면 5분은 버틸 수 있으리라. 나는 라디오를 켰다. 달콤한 목소리가 흘러나왔다. " 오늘 봄비치고는 많은 비가 내립니다. 운전 조심하십시요. 임현정이 부릅니다. 사랑은 봄비처럼.... " 나는 조용히 눈을 감았다. 그리고 이 음악을 끝까지 들을 수 있는 희박한 공기를 선물한 죽음의 신에게 감사했다. 눈물이 봄비처럼 주르륵 흘렀다. 가사를 유심히 새겨들었다.

 

 

묻지 않을께 니가 떠나는 이유 / 이제 사랑하지 않는다는 걸 알기에 / 야윈 너의 맘 어디에도 / 내 사랑 머물 수 없음을 알기에 / 이해해 볼께 혼자 남겨진 이유 / 이젠 나의 눈물 닦아 줄 너는 없기에 / 지금 나의 곁에 있는 건 / 그림자 뿐임을 난 알기에 / 사랑은 봄비처럼 내 마음 적시고 / 지울 수 없는 추억을 내게 남기고 / 이제 잊으라는 그 한마디로 / 나와 상관없는 다른 꿈을 꾸고 / 이별은 겨울비처럼 두 눈을 적시고 / 지울 수 없는 상처만 내게 남기고 / 이젠 떠난다는 그 한마디로 / 나와 상관없는 행복을 꿈꾸는 너

기도해볼께 니가 잊혀지기를 / 슬픈 사랑이 다신 내게 오지 않기를 / 세월 가는 대로 그대로 / 무뎌진 가슴만 남아있기를 / 왜 행복한 순간도 사랑의 고백도 / 날 설레게한 그 향기도 / 왜 머물순 없는지 떠나야 하는지 / 무너져야만 하는지 / 사랑은 봄비처럼 내 마음 적시고 / 지울수없는 추억을 내게 남기고 / 잊으라는 그 한마디로 / 나와 상관없는 다른 꿈을 꾸고 / 이별은 겨울비처럼 두 눈을 적시고 / 지울 수 없는 상처만 내게 남기고 / 떠난다는 그 한마디로 /
나와 상관없는 행복을 꿈꾸는 너

- 사랑은 봄비처럼

 

사랑은 봄비처럼 내리고 이별은 겨울비처럼 내리는구나. 눈물이 앞을 가렸다. 눈물은 가면과 같아서 뒤가 없으니깐. 그러므로 눈물과 가면은 같은 말이다. 앞을 가리는 것은 눈물과 가면뿐이다. 나는 캄캄한 트럭 안에서 내 죽음에 쓰이는 장송곡을 감상했다. 그때였다. 옆에 있던 트럭 운전수가 내게 소리쳤다. " 안 내리고 뭐하쇼 ? 재수 없으라니깐 이게 뭔 꼴이람. 한 길도 안되니 다행이지 물이 깊었다간 황천길 갈 뻔했오. 오지게 재수없구마이. " 운전수가 와이퍼를 작동하자 진흙이 씻기면서 밖에 보였다. 트럭은 깊은 물에 빠진 게 아니라 얕은 물에 빠진 것이었다. 책들이 죽은 물고기처럼 둥둥 떠다녔다. 나는 낮은 신음소리를 토하며 말했다. " 시바....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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곰곰손 2014-04-16 21:53   좋아요 0 | 댓글달기 | 수정 | 삭제 | URL
곰발~~~~~~~~머해~~~~~~?

나취해써~ㅋㅋㅋㅋ

근데오늘나ㅡ쫌슬퍼ㅡㅠㅠㅠㅠ

아! 근데나,
진짜대박날꺼같애ㅡ

ㅋㅋㅋㅋ



+아참, 올리버색스 책 어때? '뇌신경' 잼나?
담달에 두권정도 읽어볼까하는데..

곰곰생각하는발 2014-04-16 22:01   좋아요 0 | URL
뉴스 보고 있다. 방금 알았는데 여객선이 침몰해서 300명 가량 생사를 알 수 없다고 뉴스에서 속보를 내보네네... 대부분 학생들인 모양이다. 수학여행 간 모양이더라.
마음이 무겁네.....



+

올리버색스 책 읽을 만하다. 글 잘쓰는 뇌신경 의사이니 믿을 만하다.

곰곰손 2014-04-17 03:58   좋아요 0 | 수정 | 삭제 | URL
2명 빼고 다 구조된걸로 알고 별 걱정 안했는데 이게 대체 어찌된 일이야?!
기사들 찾아봤는데 이거, 선내의 학생들이 자기들 부모한테 연락안했음
구조가 더 늦어져서 사상자가 더 늘었을 거 아냐.

이런 대형참사가 터지니 한국 매스컴 수준이 적나라하게 드러나네.
어떻게 진상 확인도 못한 상황에 "전원 구조" 이런 보도를 할 수가 있어?
어휴.. 그렇게 많은 아이들이 타고 있었는데 어른들이 어떻게 그렇게 안일할수가 있어.
아 정말 분하다..

곰곰생각하는발 2014-04-17 04:34   좋아요 0 | URL
나이가 들어서 그런가 학생들이 이렇게 사고를 당하면
이상하게 미안한 생각이 든다.
생존 확률도 희박한 모양이더라... 참, 이게.... 참......

samadhi(眞我) 2014-04-16 21:52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이 노래 정말 좋아하는데요. 임현정이 저보다 어린데도 깊은 목소리 때문인가, 언니처럼 여겨져요. 우리 현정이언니 노래 참 따뜻하게 부르지요.

곰곰생각하는발 2014-04-16 22:17   좋아요 0 | URL
임현정 다른 노래도 있나 모르겠네요. 그나저나 아이들이 사고를 당해서 무겁네요.
살아있어야 할 텐데 말입니다.
제가 듣기로는 2명 사망하고 나머지는 모두 무사하다고 해서 천만다행이네, 라고 생각했는데
오보였군요.

samadhi(眞我) 2014-04-16 22:57   좋아요 0 | URL
네 다른 노래도 많아요. 첫사랑이라는 노래도 괜찮구요. "사랑은 봄비처럼...." 이 노래 만큼은 아니지만.
윤도현밴드의 "철망 앞에서" 라는 노래 중간에 임현정이 부르는 대목이 있어요. 이 노래를 몇년 전부터 들었는데 그땐 몰랐다가(그땐 임현정을 잘 몰랐거든요.) 오랜만에 들었더니 임현정 목소리가 들리더라구요.
수색을 중단했다고 하니 더 절망적이네요. 새벽 1시에 재개한다고 하는데 그동안은 어떡한답니까.

곰곰생각하는발 2014-04-17 04:40   좋아요 0 | URL
참담하네요. 살아있다면 아이들이 무척 추울 텐데
날씨도 흐리다고 하고, 물살도 무척 빠르다고 합니다.
아무래도 한계가 있는 것 같습니다.
계속 뉴스 속보를 보는데 희망 섞인 내용은 없네요....

유구일턴 2014-04-17 07:05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삼가 고인들의 명복을 빕니다. 좋은 소식이 들리기를 계속 기도하는방법 밖에 없네요. ㅠ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