좋은 세월은 가고 나쁜 세월은 오고......
< 시티즌 X > 라는 케이블 티븨용 영화'가 있다. 티븨 영화'치고는 스테븐 레아, 도날드 서덜랜드, 막스 폰 시도우 같은 훌륭한 배우뿐 아니라 무엇보다도 제프리 드먼 ( 살인자 역 ) 이라는 조연급 배우를 좋아해서 보게 되었다. 내용은 소련에서 실제로 벌어진 연쇄살인사건을 다루었는데 범인은 12년 동안 52명을 살해했다. 그가 바로 " 안드레이 치카틸로 " 다.희생자 수는 치카틸로의 자백에 근거한 수치이니 실제로는 더 많은 사람이 희생되었으리라 짐작된다. 희생자들은 대부분 여성과 아이들이었다. 영화는 기대했던 것 이상이었다. 카메라는 스릴러 장르가 가지고 있는 " 겉멋이 잔뜩 든 잔재주 " 를 버리고 무뚝뚝하게 사건을 나열한다. 이 과정에서 당과 정부 그리고 기관의 무능이 여실히 드러난다. 이 영화가 " 비판의 촛점을 맞춘 부분은 바로 무능한 조직 " 이다.
안드레이 치카틸로가 첫 번째 살인을 저질렀을 때 잡았더라면 그 수많은 희생자'는 없었을 것이다. 첫 번째 살인의 경우 : 안드레이 치카틸로는 유력한 용의자로 지목되었지만 경찰이 엉뚱한 사람을 범인으로 지목해서 풀려나왔다. 또한 당은 연쇄살인이 더러운 자본주의의 산물이라고 주장하며 애써 이 사건들을 하나로 연결 지으려는 시도를 하지 않았다. 개별적 사건으로 정리되니 사건은 점점 미궁 속으로 빠지게 되었다. 같잖은 대의명분과 무능력이 수많은 희생자를 양산한 것이다. 세월 호 침몰 사고 보도를 보고 있자니 제일 먼저 떠오른 영화가 바로 < 시티즌 X > 였다. 박근혜는 세월 호 늙은 선장의 도피를 살인 행위에 비유했는데 언론에서도 지적했듯이 핵심을 잘못 짚었다.
사고 책임자를 단순하게 무책임한 선원과 구원파 탓으로만 몰고가는 것은 또 다른 재앙이 될 수 있다. 시간을 되돌려보자. 이 사건이 벌어지게 된 결정적 계기는 이명박 정권이었다. 이명박은 정권은 여객선 운항 연한을 25년에서 30년으로 규제를 " 프랜들리 " 하게 완화'함으로써, 청해진 해운이 폐기처분되어야 할 낡은 배( 18년 사용 ) 를 헐값에 사들여서 국내에서 뱃길 장사를 할 수 있도록 만들었다. 만약에 25년으로 규제가 묶여 있었다면 어떻게 되었을까 ? 100억짜리 낡은 배'를 사서 5년 안에 본전을 뽑는 일이란 쉽지 않으니 애초에 세월 호를 구입하지 않았을 것 아닌가 ! 이래도 규제'가 암덩어리'라고 자신있게 말할 수 있을까 ?
세월 호는 2014년 4월 16일에 침몰했지만 사실 그 불씨는 이미 2009년에서부터 서서히 시작되었다고 보아야 한다. 그것은 마치 치키틸로가 1990년에 잡혔지만 그 시작은 첫 번째 살인이 이루어진 1978년부터 시작된 것과 같다. 이명박 정권이 규제를 완화하지 않았다면 세월 호는 없었을 것이다. 무책임한 선장과 선원'보다 이 사고에 대해 책임을 져야 할 사람들은 세월 호를 띄울 수 있는 여건을 만든 이'들이다. 해피아, 해수부 마피아들이 그들이다. 하지만 2009년이 비극의 시발점'이었을까 ? 그렇지 않다. 방향타를 좀더 먼 곳으로 돌리면 1990년 세모 유람선 사고와 1987년 오대양 집단 자살 사건에 도달하게 된다. 전두환 정권과 " 프랜들리 " 한 관계에 있었던 유병언'은 증거불충분으로 풀려난다. 그때 제대로 수사를 하고 엄중한 처벌을 내렸다면 세월 호는 존재하지 않았을 것이다. 각각의 개별적 사건들이 모여서 거대한 참사를 양산했다.
사고를 낸 사람은 세월 호 선장과 선원들이지만 제1 주범은 세월 호'라는 배를 띄울 수 있게 만든 관료 사회의 암묵적 동의와 뒷거래'다. 이 악순환은 과연 뿌리 뽑을 수 있을까 ? 사건만 터지만 성금부터 헌납하는 사회는 과연 건강한 사회일까 ? 국가가 해야 할 일을 왜 국민이 나서서 금붙이를 내놓고 성금을 모금하는 것일까. 피해자에게 보상해야 할 보상금을 걱정할 정도로 대한민국은 그토록 가난한 나라였던가 ? 슬픔에 대해 애도하는 것은 인간이 갖추어야 할 당연한 도리이지만 슬픔 때문에 냉정을 잃으면 안 된다. 용서는 의미없다. 가끔은 지독해야 한다. 복수가 가장 아름다울 때는 지독할 때'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