고승덕 서울시 교육감 후보 딸이 서울 시민에게 보내는 글

 

 

 

서울 시민 여러분들께, 

 

저는 서울 시민은 아니지만 오늘 여러분께 서울 교육의 미래에 대하여 절박하고 간절한 마음을 담아 이 글을 씁니다. 지금 제 이름은 캔디 고(Candy Koh)입니다. 1991년부터 1998년까지 서울에 살았을 때 이름은 고희경이었습니다. 저는 이번 지방 선거에 교육감 후보로 출마한 고승덕과 박유아 사이에서 난 두 자녀 중 장녀입니다. 최근 지방 선거에서 아버지계서 교육감으로 출마했다는 소식을 들었을 때, 저는 그분의 자녀로서 침묵을 지킨다는 것이 양심에 걸렸습니다. 서울 시민 여러분께서는 혹 당선이 되면 서울 교육을 대표하고 책임질 그 분에 대해서 더 아셔야 할 것들이 있습니다. 고승덕은 자신의 자녀들 교육에 대해서 아무런 일도 하지 않았습니다.

저는 어머니와 고씨가 결혼 관계에 있을 1987년 미국 메사추세츠 주 캠버리지 시에서 태어났습니다. 1991년 미국 뉴저지 주에서 제 남동생이 태어난 직후에 우리 가족은 한국으로 이사를 했습니다. 어릴 적 기억을 아무리 더듬어 봐도 저와 동생의 교육에 대한 아버지의 존재가 기억이 나지 않습니다. 어머니께서는 저와 동생을 데리고 미국으로 왔고 뉴욕에 있는 학교에 보냈습니다. 고씨는 한국에 머물렀으며 우리 모두와 더 이상 연락하지 않기로 결정했습니다.

아버지 없는 생활에 익숙해졌을 무렵 저는 겨우 11살 이었습니다. 매년마다 돌아오는 아버지의 날은 저에겐 아무런 의미가 없었습니다. 사람들이 아버지는 어디 계시고, 무얼 하시느냐고 묻는 것이 저는 끔찍하게 싫었습니다. 그분과 결코 말을 해 본 적이 없었기 때문에 저는 그저 모른다고 대답을 하기 시작했습니다. 전화나 인터넷이 있었지만 저나 동생에게 잘 있는지 연락 한번 하신 적이 없었습니다. 자기 자식들이 존재하고 있다는 사실조차 인지하지 않았기 때문에 고후보에게 연락이나 생일 선물을 받는 것은 상상조차 할 수 없었습니다. 당연히 경제적 지원이나 자녀 교육에 대한 아무런 역할을 하지 않았습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저는 대학에 진학하였고 가장 좋은 성적으로 졸업을 하였습니다. 공익에 대한 관심 때문에 이번 가을에 법대에 성적 장학금을 받고 진학할 예정으로 있습니다. 피가 섞인 아버지 없이도 이만큼 이루었다는 사실에 대해 저는 매우 자랑스럽게 생각합니다. 엄마나 외할아버지가 없었으면 불가능했을 것입니다. 엄마는 혼자서 두 자식을 키웠고, 외할아버지는 돌아가시기 전까지 심리적으로 아버지가 할 수 있는 역할을 담당했습니다. 미국에서 자라는 동안 한국 미디어를 통해서 고씨가 아이들에게 어떻게 공부를 하는지, 또 어떻게 해야 성공을 하는지 강연하는 것을 보았습니다. 저는 또 그분이 학부모들에게 어떻게 아이들을 최고로 가르칠까에 대해 말하는 것도 보았습니다.

 

2000년대 초반 무렵이었는데, 저는 매우 화가 났었습니다, 자기 자식도 교육시키지 않고 심지어 완벽하게 방치했으면서 어떻게. 그렇지만 저는 겨우 10대 청소년이었고 미국에 살고 있었습니다. 제가 무엇을 할 수 있었겠습니까? 침묵하는 것 밖에 할 수가 없다고 생각했습니다. 많은 한국민들이 그분이 이룬 성취와 소위 그 탁월함을 칭송하는 것을 보면서도 저는 침묵을 지킬 수 밖에 없었습니다. 제 목소리가 중요하지 않다고 생각했기 때문이었습니다. 저 자신이 미국계 한국인이고 한국 정치 현장에 특별히 관여하는 게 중요하지 않다고 느꼈는지도 모르겠습니다. 그러나 고승덕이 서울시 교육감 직책에 출마하는 것은 선을 넘는 행위입니다. 제가 여기서 침묵한다는 것은 서울 시민 여러분을 기만하는 것처럼 느껴집니다.

그분이 전혀 가르치지도, 그다지 말한 적도 없는 그 분의 자녀로서 저는 서울 시민 여러분께 그분은 교육감이란 직책에 자격에 없다는 것을 알리지 않을 수 없습니다. 교육감의 역할이 한 도시의 교육 정책과 시스템을 돌보는 것이라면, 고승덕은 이 일과 관련이 없는 사람입니다. 자신의 피붙이도 가르칠 뜻이 없는 사람이 어떻게 한 도시의 교육 지도자가 될 수 있겠습니까? 

 

교육은 세상에서 가장 중요한 일입니다. 그들의 손에 미래가 달려 있는 사람들- 여러분 도시, 민족, 세계의 미래-을 키우는 일입니다. 그분의 딸로서 저는 그분으로부터 교육에 대한 어떠한 지원을 받은 적이 없습니다. 서울에 살고 있는 많은 친구와 더불어 한때 서울의 시민이었던 저는 여러분이 살고 있는 도시의 미래를 위해 올바른 결정을 하고 그 직책에 보다 적합한 후보를 선택하리라고 믿습니다. 서울 교육을 진정 염려하고 후보자 자신과 가장 가까운 사람, 자기 자녀를 돌보면서 시작할 그런 사람을 말입니다.

 

 

 

 

 


 

 

 

 

 

내 아버지는 페인트공'이었다. 작업복은 항상 알록달록한 페인트로가 묻어서 더러웠다. 사춘기 시절이라 나는 그런 아버지가 부끄러웠다. 어느 날이었다. 마을 언덕에 올라 바람을 쐬고 있는데 저 멀리 달동네 초입에서 아버지가 올라오는 모습이 희미하게 보였다. 으레, 그날 일을 마치고 남은 페인트통(들)과 붓을 들고 있었다. 그런데 걷는 자세가 불편해 보였다. 다리를 다치셨나 ? 작고 희미했던 모습이 점점 선명해질 무렵, 나는 아버지의 걸음걸이가 불편한 이유를 알았다. 아버지는 붓과 페인트통을 왼손에만 움켜쥐었기 때문이었다.  오른손은 가볍게 주먹을 쥔 상태였다. 무게가 한쪽으로 쏠리다 보니 걷기가 불편한 까닭이었다. 아버지가 내게 다가와 오른손을 살며서 열었다. 손 안에는 작은 메뚜기 한 마리가 있었다. 당시, 나는 작은 상자 안에 메뚜기를 키우고 있었다. 내게 주려고 잡은 것이다. 아버지의 최종 학력은 고졸이었다, 페인트공이었고, 알콜중독자'였다. 고승덕 후보 딸이 쓴 글을 읽다가 문득 내 아버지가 생각났다. 고승덕에 비하면 꾀죄죄한 생의 이력'을 살다갔지만 고승덕보다는 천 배 훌륭한 사람이라는 생각이 든다. 아버지, 고맙습니다.

 

 

 


댓글(2) 먼댓글(0) 좋아요(29)
좋아요
공유하기 북마크하기찜하기
 
 
수다맨 2014-06-01 03:13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참 뭐랄까, 서울시장 도전하는 정 씨도 그렇고 교육감 노리는 고 씨도 그렇고 참 결함 많은 인간들 같습니다.
저는 이 딸의 마인드가 참 마음에 드네요. 단순히 고발이나 폭로를 잘 해서 그런 게 아니라, 가족 로망스가 없다는 것이 마음에 들어요. (비록 개인적 울분이 문장의 배면에 깔려 있지만) 자기 부친을 혈육의 정과는 상관없이 한 명의 주체로서 바라보고, 그 이의 역량의 유무를 분별하는 모습이 인상 깊습니다.

곰곰생각하는발 2014-06-01 09:42   좋아요 0 | URL
자리에 대한 욕심이 극에 달한 거 아니겠습니까. 자격증 따듯 자리'를 따려고 하는 욕망...
요 양반은 고시 학원 원장이나 하는 게 딱이죠....
 
인문/사회/과학/예술 주목 신간 작성 후 본 글에 먼댓글 남겨 주세요.

 

 

 

 

 

 

 

■ 6월 인문/사회/과학/예술 주목 신간

 

 

- 알라딘 신간 평가단 14기 활동

 

 

 

 

1.  식사하셨어요 ?       

 

 

 

 

 

한울아카데미 출판사'에서 출간된 < 음식의 문화학 > 은 음식 문화를 사회과학적 틀 안에서 바라본다(라고 출판사는 말한다). 개인적으로 여러 저자가 쓴 텍스트를 책 한 권으로 엮어서 내놓는 방식을 그다지 선호하지는 않지만 일단 한울아카데미'라는 출판사를 믿고 고른다. 책에 대한 정보가 미흡할 때는 좋은 출판사를 믿고 고르는 것도 나쁜 선택은 아니다. 목차를 보니 레비스트로스와 엘리아스 그리고 부르디외에 대한 언급이 나오는 모양이다. < 신화학 1, 2 / 레비스토르스 > 와 < 문명화과정 / 엘리아스 > 그리고 < 구별짓기 / 부르디외 > 를 흥미롭게 읽었다면 이 책도 재미있게 읽을 수 있겠다. 개인 서가에 꽂힌 책은  그 사람 머릿속을 들여다볼 수 있는 리트머스 종이'이고,  그 사람이 섭취한 음식은 재정상태표를 알려주는 리트머스 종이'다. 전자는 정치적 지표이고 후자는 경제적 지표이다. 서민은 음식을 먹고, 귀족은 요리를 먹는다. 이 책이 신간평가단 도서로 선정된다면, 나로서는 땡큐베루마치'다.   ( 사회학 분야 )

 

http://blog.aladin.co.kr/749915104/7009592

 

 

                                                       

                                

 

                  

2. 길 이야기      

 

 

 

 

 

< 길 > 은 우리가 생각하는 것보다 종류가 많다. 장소에 따라 " 골목길 " 이 되고, " 산길 " 이 되고,  " 들길 " 이 되고,  궤적과 방향에 따라 " 지름길 " , " 둘레길 " , " 샛길 " 이 만들어진다. 그리고 위치에 따라 " 내리막길 " , " 오르막길 " 이 된다. 아주 특별한 길도 있다. 사랑했던 사람과 함께 걷던 길이다. 아름다운 길이 있으면 더러운 길도 있다. 정치인이 선거 때만 되면 출판기념회에서 자신이 살아온 길'을 과대 포장할 때이다. 이처럼 길은 제각각'이다. 하지만 바다에는 눈에 보이는 길이 없다. 바다는 흔적을 남기지 않는다. 나침판이 발명되기 전에 살았던 뱃사람들은 어떻게 바다에 길을 냈을까 ? 아니, 어떻게 길을 발견했을까 ? 궁금하지 않은가. 나는 보이지 않는 길'이 무척 궁금하다. 띠지에 소개된 문장을 그대로 인용하자면 " 고고학계의 거장 브라이언 페이건 신작 " < 인류의 대항해 > 는 위와 같은 이유'에서 읽고 싶은 책이다.  이 책이 신간평가단 도서로 선정된다면, 나로서는 땡큐베루마치'다.  ( 역사 분야 )

 

 

    http://blog.aladin.co.kr/749915104/7012306

 

 

 

 

 

3. 마가렛 대처의 장례식을 민영화하자

 

 

 

 

캔 로치 감독은 마가렛 대처와 앙숙 관계였다. 다른 감독들은 우아하고 사려 깊은 배려 속에 숨겨진 위선을 고발하기 위해서 상류사회'를 소재로 영화를 만들기도 했지만, 캔 로치'는 기득권, 자본가를 공격하기 위해 집요할 정도로 하층민을 다룬 감독이었다. 그에게 타협이란 없다. 그동안 나는 움직이는 대상에 접근하는 카메라의 동선, 빛을 받아들이는 필름의 감각 따위를 중요한 미학적 기준으로 삼았으나, 정작 영화에서 중요한 것은 기교보다는 진심을 담은 목소리'라는 사실을 일깨워준 사람이 바로 캔 로치 감독'이었다. 마가렛 대처가 장수를 누리다가 2013년 4월에 사망했을 때 캔 로치는 “그의 장례식을 민영화하자. 경쟁 입찰에 붙여 가장 싼 업체에게 맡기자. 대처 본인이 원한 것도 바로 그런 방법일 것이다 ” 라고 냉정하게 말했다. 그답다는 생각이 든다.  이 책이 신간평가단 도서로 선정된다면, 나로서는 땡큐베루마치'다.  ( 예술 분야 )

 

http://blog.aladin.co.kr/749915104/6777064

 

 

 

 

 

4. 다빈치와 독수리                   

 

 

 

 

< 다 빈치와 최후의 만찬 / 저자, 로스 킹 > 은 레오나르도 다 빈치에 대한 역사/예술 논픽션'이다. 출판사에서 제공하는 책소개 글을 읽으니 저자는 픽션과 논픽션 분야를 넘나들며 작품 활동을 한 모양이다. 국내에 소개된 책으로는 인상주의 화가 마네를 다룬 < 파리의 심판 > , 시스티나 예배당 천당 프레스코 작업 과정'을 다룬 < 미켈란젤로와 교황의 천장 > 그리고 산타마리아 피오레 성당 돔을 설계한 브루넬레스키 이야기 < 브루넬레스키의 돔 > 이라는 책이 출간됐다. 이쪽 분야(역사 예술 논픽션)에서는 솜씨가 꽤 좋은 모양이다. 로스 킹은 재밋거리를 위해서 짝패와 적수 관계를 적극 끌어들이는 모양이다. < 파리의 심판 > 은 뭘 해도 잘 되는 에르네스트 메소니에와 뭘 해도 욕 먹는 마네를 다루었고, < 미켈란젤로와 교황의 천장 > 은 미켈란젤로와 라파엘로의 대립을, < 브루넬레스키의 돔 > 은 브루넬레스키와 로렌초 기베르티를 다룬다. 다소 뻔한 구성이지만 악당이 있기에 영웅이 존재하는 법이다. 조커 없는 베트맨을 상상할 수 있을까 ? 이 책이 신간평가단 도서로 선정된다면, 나로서는 땡큐베루마치'다.   ( 예술 분야 )

 

http://blog.aladin.co.kr/749915104/7019486

 

 

 

 

 

5. 개봉 박두         

 

 

 

 

월터 옹은 < 구술성과 문자성 > 이라는 책에서 문자문화와 구술문화를 구분했다. 문자문화에 속하는 사람은 토론을 통한 논리 싸움을 옹호하지만 구술문화에 속하는 사람은 내기와 말싸움을 통해 해결하려 한다. 문자문화는 < 이성 > 에 호소하고, 구술문화는 < 감성 > 에 호소하는 경향이 강하다. 당연히 문자문화가 교양 있는 사회에 가깝고, 구술문화는 교양 없는 사회에 가깝다.  대한민국은 디지털 구술문화에 속한다. 대한민국 대중은 문자 텍스트'보다는 게임, 드라마, 영화와 같은 이미지'에 쉽게 반응한다. 진중권은 << 호모 코레아니쿠스 >> 에서 " 인문학의 위기란 다름 아닌 이 디지털 실어증의 산물 " 이라며 " 사회가 문자문화에서 영상문화로 이행하는 데에 따른 필연적 현상 " 이라고 지적한다. << 이미지 인문학 >> 에서 < 이미지 > 와 < 인문학 > 은 서로 상반되는 개념이다. 이미지는 구술성'에 속하고, 인문학은 문자성에 속하니깐 말이다. (아직 읽지 않아서 내용 파악을 할 수는 없지만) 아마도 진중권은 지나치게 한쪽으로 기울어진 편향을 바로잡고자 대안을 내놓은 것처럼 보인다. 이미지(구술성)를 단순히 보지 말고 읽자고 제안한다(문자성). 아는 만큼 보인다. 중요한 것은 < 무엇을 보느냐 > 가 아니라 < 어떻게 읽느냐 > 가 중요하다.  이 책이 신간평가단 도서로 선정된다면, 나로서는 땡큐베루마치'다.  ( 인문학 분야 )

 

 

http://blog.aladin.co.kr/749915104/7011773

 

 

 

 

 


댓글(6) 먼댓글(0) 좋아요(4)
좋아요
공유하기 북마크하기찜하기 thankstoThanksTo
 
 
요즘엔 새벽에도 덥군요 2014-05-31 11:38   좋아요 0 | 댓글달기 | 수정 | 삭제 | URL
서민은 음식을 먹고 귀족은 요리를 먹는다.. 인상적입니다.
사실 먹거리에 있어선 풍미보다 대충 간단을 선호해서 전 천생 음식 쪽 :)
작년 요맘때였나요. 저 민영화하잔 소식 전해듣고 역시 켄 로치답다, 싶었더랬죠.
다섯 권 다 면면이.. 읽어보고 싶은 책들이네요.

곰곰생각하는발 2014-05-31 12:27   좋아요 0 | URL
제 누님이 그러더군요. 서민은 음식을 하고 귀족은 요리를 먹는다고 말이죠...
햐옅ㄴ 로치 할아버지' 정말 정정한 분이십니다. 강골이에요. 대쪽입니다.

대처는 영국의 수치'죠.

수다맨 2014-06-01 03:05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켄 로치를 보고 있으면 영국이라는 나라에 부러움이 일고 한편으로 저만한 대쪽같은 거장이 희귀한 우리 영화계에 대해 아쉬움도 듭니다. 한국 영화계도 솜씨 좋고 재주 넘치는 이들이 물론 많겠습니다만, 할 말은 하고 본다는 당찬 감독들은 보기 드문 것 같아요.

곰곰생각하는발 2014-06-01 09:37   좋아요 0 | URL
상류사회의 위선을 다루는 영화는 비판도 있지만 부러움도 있죠. 하지만 로치 감독은 하층민의 곤궁을 통해서 상류사회, 기득권 사회를 신랄하게 비판합니다. 정말 대쪽같은 위인입니다.

rendevous 2014-06-03 00:51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땡큐베루마치... 이거 중독됩니다 ^^ 요즘 아트시네마에서 켄 로치 회고전 하던데... 빅 스크린으로 보고 싶어요 ㅜ

곰곰생각하는발 2014-06-03 10:02   좋아요 0 | URL
아트시네마에서 로치 회고전 한다고요 ? 이런 정보는 태큐베루마치'죠.


... 아니이게 뭡니까.. 엇그제 끝났구만.
이런 건 퍽큐베루마치'입니다. ㅋㅋㅋㅋㅋㅋㅋㅋ


아쉽네요. 다시 볼 기회였는데.... 아, 아쉽다...
 
[다산 정약용 평전]을 읽고 리뷰 작성 후 본 페이퍼에 먼 댓글(트랙백)을 보내주세요.
다산 정약용 평전 - 조선 후기 민족 최고의 실천적 학자
박석무 지음 / 민음사 / 2014년 4월
평점 :
장바구니담기


 

 

 

 


 

 

 

 

 

 

지나친 애정은 균형을 잃는다

 

 

첫만남은 다음과 같은 순서로 진행된다 : 먼저 손을 씻는다. 아이보리 비누로 깨끗이 씻는다. 청결은 상대에 대한 기본 예의. 그렇다고 장갑을 낄 필요는없다. 다음은 상대 옷을 벗긴다. 벗기고 나서 흐뭇한 마음으로 위아래 구석구석 훑어본다. 지금까지는 서론이다. 중요한 것은 본론이다. 겉도 중요하지만 무엇보다 중요한 것은 속'이다. 가수 남진이 말하지 않았던가. " 얼굴만 예쁘다고 여자냐 ? 마음이 고와야 여자지 ! " 손으로 더듬더듬하며 속을 만져본다. 아, 한다. 좋다.  때론 우, 하기도 한다. 겉과 속이 전혀 다른 경우도 있으니까. 이상한 상상은 하지 마셔셔. 책을 읽기 전에 손을 씻는 행위는 내 오랜 버릇이다. 여기서 < 옷 > 이란 책을 감싼 종이 덮개를 말한다. 종이 덮개와 하드커버 디자인'이 다른 경우가 있는데 그것을 확인하기 위해서 옷을 벗긴다.

 

좋으면 아, 하고 나쁘면 우, 한다. 애, 매한 경우에는 소리 없이 지나간다. 책 만듦새를 확인하는 깐깐한 과정이 끝나면 이제 속을 펼쳐서 종이 재질, 제본 방식, 레이아웃 따위를 살핀다. 이 모든 과정이 끝나야지 비로소 책을 읽기 시작한다. 다시 한번 말하지만 내 오랜 습관이다. 다산 연구의 최고 권위자인 박석무 다산연구소 이사장이 쓴 < 다산 정약용 평전 / 민음사 > 은 우선 만듦새'가 매우 만족스럽다. 책을 사철 제본 방식으로 튼튼하게 만든 부분이 무엇보다 마음에 든다. 무선 제본(떡제본)에 비하면 사철 제본은 얼마나 든든하고 " 클래식 " 한가 !  나는 읽던 책을 잠시 뒤로 하고 첫인상에서 높은 점수를 받은 << 다산 정약용 평전 >> 을 먼저 읽기 시작했다. 하지만 첫인상에 대한 좋은 호감은 그리 오래 지속되지는 않았다.

 

이 자리에서 정약용에 대한 약전(略傳) 을 갈무리해서 옮길 생각은 없다. 이 책에 대해 아쉬운 점을 지적하는 것으로 매조지하겠다. 방대한 책 내용을 압축한 결과가 < 제목 > 이다. 책이 몸이라면 제목은 얼굴이다. 관상은 얼굴(겉)을 통해서 속을 꿰뚫는 방식이다. 제목도 마찬가지다. 독자는 제목(겉)을 통해서 내용(속)을 대충 짐작할 수 있다. 그런데 제목과 내용이 전혀 다르면 내용이 아무리 알차다고 해도 좋은 점수를 줄 수 없다. 첫 단추를 잘못 끼우면 처음부터 다시 시작해야 한다. << 다산 정약용 평전 >> 은 제목이 잘못되었다. 사전적 의미로 평전은 " 개인의 일생에 대하여 평론을 곁들여 적은 전기 " 다. < 리영희 평전 > 을 쓴 김삼식이 말을 인용하자면 평전은 시비(是非)를 치우침 없이 다루는 형식'이다.  

 

그런데 이 책은 평전이라고 하기에는 민망하다. 정약용에 대한 (저자의) 지나친 애정이 균형을 잃었다. 평전이라기보다는 차라리 전기(傳記)에 가깝다. 저자는 그러한 사실을 의식했는지 서문에서 다음과 같이 말한다.

 

 

다산에 대한 당대의 평가이건 먼 뒷날의 평가이건, 대체로 다산의 사람됨과 학문에 대해서는 훌륭하다는 칭찬의 평가가 주를 이루고 잘못되었다거나 좋지 않다는 평가는 평가는 많지 않기 때문에, 그러한 평에 따른 이 책 또한 찬양 위주의 평전이 된 것이다. 이 점에 대해서는 필자의 역량 부족으로 여겨 또다시 부끄러움을 면할 길이 없다. 조선 선비들의 공통적인 자세이기도 하지만, 학자들이 다른 학자를 평가할 때는 대체로 후한 점수를 주지 야박한 점수를 주는 경우는 많지 않았던 것이 역사적 사실이다. 다산의 경우도 어쩔 수 없이, 잘했다는 평가가 많았고 잘못했다는 평가는 많지 않았다. ( 17쪽)

 

 

결국 저자는 자기 글이 평전이라고 하기에는 뒷맛이 개운치 않다는 사실을 알았다. 평전은 시비(是非), 입장, 논쟁을 골고루 다루어야 하는데, 시(是)는 있으나 비(非)가 생략되어 각각의 입장과 논쟁이 없는 글이 되었다. 그런데도 밀어붙인 꼴이다. 좋은 평전은 열정보다는 냉정이 필요한 분야'이고, 휴머니스트'보다는 소시오패스 성향을 가진 사람이 더 좋은 평전을 쓸 수 있다. 칭송과 편애는 평전의 적'이다. 박석무는 정약용을 지나치게 흠모한 나머지 정약용에게 적대적인 인물에 대해서는 " 몇몇 악인 악당들 ( 70쪽 ) " 이라는 표현을 쓰며 흥분한다. 이성보다 감정이 앞서면 죽도 밥도 아닌 뒤죽박죽이 된다. 슬픈 노래를 부를 때 가수가 관객보다 먼저 울면, 그 가수는 실력 있는 가수가 아니다. 관객을 울리고 나서 우는 가수가 훌륭한 가객이다.  

 

설령 저자가 보기에 그들이 악당이라고 해도 평전을 쓰는 입장에서는 인물에 대한 감정적 수사를 최대한 배제해야 한다. 인물 평가는 작가가 내리는 게 아니라 독자가 판단한다는 사실을 모르는 듯하다. 뜬금없는 부분도 나온다. 다산은 무등산에 올라 시도 짓고 기행문도 썼다. 아름다운 강산을 본 느낌을 적은 글이다. 당시 17세 소년이 작성한 문장이라고 하기에는 탁월한 글솜씨'다. 박석무는 이 사실을 상기시키며 다음과 같이 말한다.

 

  

무등산은 얼마나 훌륭한 역사를 태동시켰던가. 지역 이름보다도 사회 과학적 의미를 지닌 광주, 민중 주체의 역사 발전을 위해 얼마나 큰 희생을 치렀으며 수난과 고난의 아픔을 안아야 했던가. 동학 혁명이 그랬고 광주 학생 항일 운동이 그랬고 5.18 민주화 운동이 그랬지 않은가. 무등산이 낳은 역사의 큰 아들 때문에 민주주의의 가치가 살아나지 않았는가. 무등산의 공화로 역사는 바른 방향으로 흐르게 된다는 뛰어난 다산의 관찰력 같은 것을 어렴풋이 느끼게 해 준다. (110쪽)

 

  

5.18 광주 민주화 운동이 위대하다는 사실에는 120% 동의하지만 다산을 언급하며 위대한 광주를 엮는 방식에는 의문이 든다. 억지로 짜 맞춘 흔적이 역력하다. 정작 뜨거운 감자 가운데 하나였던  정약용의 " 배교 행위 " 에 대해서는 언급이 별로 없다. 다산 정약용이 신유옥사 때 국청 국문에서 천주교를 사교(邪敎)라고 말하며 황사영을 원수라고 고백한 부분에 대해서는 " 죄지은 사람을 숨겨 줄 수 없다는 정의감의 발로(318쪽) " 라고 해석한다. 정약용의 배교 행위'에 대해 비판할 생각은 (전혀) 없지만, 저자가 그것을 단순하게 " 정의감의 발로 " 라고 말하는 태도는 눈살을 찌푸리게 만든다. 우스개로 " 누가 정약용의 배교에 대해 물으면, 당황하지 말고, 쿨하게 정의감의 발로'라고 말하며, 사람 좋은 웃음을 던진 후, 박수를 짝, 짝, 짝.  끗 !! " 이라고 말하는 뉘앙스'다.

 

평전에서 중요한 것은 칭찬이 아닌 논쟁인 데도 말이다. 이 책은 처음 기대와는 달리 실망이 컸다. 책 제목에서 " 평전 " 이라는 낱말을 삭제했다면(이 책이 평전이 아니라면) 좋은 내용이 될 수도 있지만 평전'이라는 형식 틀 안에서 보면 실망스러운 내용이다. 차의 종류에 따라서 차를 담는 용기(容器)도 달라야 한다. 홍차를 커피잔에 따를 수는 없지 않은가 ? 아, 하려다가 우, 하게 된다.

 

 

 

 

 

* 알라딘 공식 신간평가단의 투표를 통해 선정된 우수 도서를 출판사로부터 제공 받아 읽고 쓴 리뷰입니다

 

 

 

 

 

 

 

 

 


댓글(10) 먼댓글(0) 좋아요(16)
좋아요
공유하기 북마크하기찜하기 thankstoThanksTo
 
 
samadhi(眞我) 2014-05-30 05:53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어차피 읽기를 미뤄 둔 책이 많아 이런(?) 책까지 손이 안가겠지만, 인용해주신 부분들 보니 정말 읽고 싶은 마음이 안드네요.

곰곰생각하는발 2014-05-30 09:32   좋아요 0 | URL
이번 기회에 목민심서나 함 읽어봐야겠어요. 호치민이 목민심서를 늘 머리맡에 두고 경전처럼 소중히 여겼다고 하죠 ?

samadhi(眞我) 2014-05-30 13:07   좋아요 0 | URL
그렇답니까. 그 멋진 호치민이. 우리 약용이 형아 대단한 건 알지만. 그런 천재가 또 있을까 싶어요.

곰곰생각하는발 2014-05-31 07:03   좋아요 0 | URL
그렇답니다. 아마 세계 정치인 중에서 개인적으로 가장 뛰어난 정치인 중 하나가 호치민옹이라고 생각합니다. 전설은 전설이 알아본다고, 약용 할아버지도 훌륭하지만 그 훌륭함을 아는 호치민옹도 훌륭합니다.

만화애니비평 2014-05-30 08:35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신해사옥 때 자신의 이종사촌들이 이종사촌의 어머니 신주를 불사른 게 화근이었죠.
천주교에서 저 문제로 말이 남아있는 모양입니다. 다산 선생이 십자가를 품에 안고 죽고 회개했다고 하나
다산의제자들이 있는 강진군의 후손들의 입장에서는 전혀 그런 말을 듣지 못하네요.
제사문화로 본다면 조금 오버인게 아닌가 하나, 어째든 지식인이라면 정약용 선생에 대해
존경심은 당연하나, 박석무 이사장님은 지나친 감이 없지 않아 보이군요(물론 그런 가치가 있는 분이지만 말입니다!)

곰곰생각하는발 2014-05-30 09:31   좋아요 0 | URL
다산이야말로 한국이 낳은 위대한 인물입니다. 분야를 보면 과연 이 사람 천재구나 하는 생각을 합니다. 심지어의학에도 정통해서 나중에는 순종이 병 났을 때 어의 비스무리하게 내진하기도 햇으니말이죠.
전 신해사옥 때 정약용의 선택을 비판하고 싶은 생각 전혀 없습니다.
저자는 정의감'이라고 했는데 100% 틀린 말이죠. 그것은 절박함에서 비롯된 선택이지 정의감 때문이 아니었습니다. 그런 미화는 오히려 위험합니다. 하여튼... 전 이 책이 굉장히 짜증스러워서 읽는 내내 고역이었습니다.

마립간 2014-05-30 09:08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저와 공통점이 또 발견되는군요. 내용에 맞는 제목을 가지고 있는 것은 제 책 평가에서 감점 요인입니다. 최근에 그런 경향이 강화되고 있구요.

수많은 책들 중에서 독자의 눈에 띠려면, 튀는 제목을 가져야 하는 어쩔 수 없은 상황도 이해가 가지만. (그리고 저도 제목에 이끌려 구입한 책이 있으므로 좀 뭐한 입장입니다만,) 이런 책의 내용으로 왜 저런 제목을 가졌을까하는 책들이 (어떤 경우는 제목이 다인 경우도) 종종 눈에 띱니다.

곰곰생각하는발 2014-05-30 09:34   좋아요 0 | URL
제목 중요하죠. 제목과 내용이 180도 다르면 그건 사기죠. 예를 들어 < 엘지 트읜스여 영원하라 ! > 라는 책이 있는데 내용은 온통 < 두산 베어즈 얘기라면 어떻겠습니까 ? ㅎㅎㅎㅎ.



ㅇㅇ 2014-05-31 11:33   좋아요 0 | 댓글달기 | 수정 | 삭제 | URL
신간 평가단으로 책 받으면 다 읽고 꼭 올려야 합니까? 읽기 싫은 책 읽는 거 만큼 고역도 없는데 읽기 싫은 책 걸리면 만만치 않겠습니다.

곰곰생각하는발 2014-05-31 12:28   좋아요 0 | URL
관심 없는 분야 책에다가 페이지 수가 1000페이지 육박하면,더군다나 재미가 없으면... 이것도 고역입니다. 책을 받았으니 서평은 써야겠지요 사실 4권 중 3권이 제가 고른 책이어서 다행이었습니다만... 앞으로가..ㅎㅎㅎㅎ
 
후딱 말하기

 

 

 

 

 

 

후딱 말하기 2

 

 

 

6. 생각하는 갈대와 생각 없는 꼰대 : 대한민국 정치가 쌍팔년도 수준을 벗어나지 못하는 이유는 정직한 청년보다 현명한 노인'이 없다는 데 있다. 대한민국이라는 토양에서 뿌리를 내린 아이는 자라서 " 생각하는 갈대 " 가 되고, 어른은 자라서 " 생각 없는 꼰대 " 가 된다. 파스칼은 << 팡세 >> 에서 "인간은 자연 가운데서 가장 약한 하나의 갈대에 불과하다. 그러나 그것은 생각하는 갈대'다. "라고 말했지만 그가 대한민국에서 태어났다면 생각하는 갈대'라는 문장 대신 생각 없는 꼰대'라고 고쳤을 것이다. 대한민국 꼰대는 철갑을 두른 듯하다. 바람 소리 불변함은 일편단심이다. 그네들에게 꽃 중의 꽃은 오로지 박근혜 꽃'뿐이다. 악의없는 순수한 몰입이 대한민국 정치를 망친다. 양심이 없는 늙은 놈보다는 차라리 싸가지 없는 젊은 놈이 낫다.

 

 

7. 박가분, 일베의 사상 : 박가분은 < 일베의 사상 > 에서 " 일베 " 를 진보 좌파에 대한 반동으로 태어난 세력으로 규정했는데, 첫 단추부터 잘못 끼우다 보니 마지막에는 단추 하나가 남았다. 단추 모양새가 맹추 같다. 박가분은 일베를 진보 좌파의 거울쌍'이라고 주장한다. < 코페르니쿠스적 전회 : 사고방식이나 견해가 종래와는 달리 크게 변하는 일을 비유적으로 이르는 말 > 다. 하지만 뒤통수 후려치는 반전은 추리소설에나 어울리는 말방귀'이지, 사회학에는 어울리지 않는 말재주다. 분석 틀을 너무 과도하게 돌렸어요, 뿌잉뿌잉 ! 일베는 진보 좌파에 대한 반동으로 태어난 세력이 아니라 상식에 대한 반동으로 태어난 세력'이다. 그들은 < 젊은 우파 > 가 아니라 < 젊은 서얼 > 이다. 형을 형이라 하지 못하고 아버지를 아버지라 하지 못하자, 서러움이 특정 소수를 향한 혐오로 바뀐 것이다. 그대 이름은 홍길동이 아니라 홍, 길, 똥' 이다. 박가분은 일베를 통해 우파 메시지를 읽지만 그것은 메시지가 아니라 울화통이 터지는 의성어'다. 의성어'는 감각의 증후일 뿐 메시지'는 아니다.  

 

 

8. 재벌은 항상 불행하다 ?!  : JTBC 드라마 < 밀애 > 는 1% 상류 사회'가 배경이다. 오혜원(김희애)는 상류사회에 속한 여자'이지만 로열 패밀리'에게 무시받고 사는 존재'다. 평민 출신으로 왕자와 결혼해서 왕족이 되었으나 " 그들만의 리그 " 에 진입하지 못해서 불행한 사고를 겪은 다이애나 왕세자빈과 오혜원은 약간 겹친다. 그때, 스무살 청년이 그녀 앞에 나타난다. 그녀는 마흔살이다. " 따블 ! " 이다.  < 밀애 > 를 느와르 장르라고 한다면,  선재(유아인)는 옴므파탈이다. 혜원은 " 이거 모야, 설레자나 ! " 라며 어이없어하지만 심장은 나이트 클럽 스피커만큼 쿵쾅거린다. 그녀는 순애보를 선택하기에는 적당히 속물'이며, 꽤 늙었고, 상당히 똑똑하다. 하지만 결론은 뻔하다. 상류 사회에 편입되는 대신 " 따블 " 을 극복하고 진정한 사랑을 선택한다는 이야기.  와와, 시청자는 오혜원의 선택을 지지한다. 온기 없는 상류사회에서 사느나 차라리 가난하지만 뱃속 편한 게 낫다고 생각한다. 그런데 상류 사회를 비판적으로 다루는 드라마는 겉으로는 사랑 없는 치열한 패밀리 전쟁'을 비판적으로 다루지만 속은 화려한 라이프 스타일을 전시해서 시청자의 욕망을 건드린다. 겉과 속이 다르다. 시청자는 사랑 없는 로열 패밀리 전쟁'을 보며 욕을 하지만 동시에 그들이 누리는 화려한 삶이 부럽다. 배부른 돼지보다 굶주린 소크라테스를 선택한다고 해서 뱃속 편할 리 없다. 과도한 욕심은 행복을 야금야금 무너뜨리지만 굶주림은 행복을 한순간에 무너뜨린다. 티븨 드라마 속 재벌은 항상 불행하다(고 드라마는 말한다). 정말 그럴까 ?  빈곤과 굶주림이 주는 고통에 비하면 의리 없는 패밀리 전쟁은 애교에 가깝다. 스무살 청년 선재는 왜 자기보다 " 따블 " 인 혜원을 사랑했을까 ? 간단하다, 상류 사회 여자'였기 때문이다. 재벌은 서민이 생각하는 것만큼 불행하지 않다. 이거 모야, 속았자나 !

 

 

9. 가난하니깐 행복하다 ?! : 지금 당신은 50년대 할리우드 느와르 영화'를 본다. 한 여자가 탐정 앞으로 다가온다. 그녀는 차양 넓은 모자를 썼다. 눈동자는 모자에 가려 보이지 않는다. 보이는 것이라고는 새빨간 입술, 새빨간 입술, 새빨간 입술 !! 여자는 고개를 들어 탐정을 바라본다. 그때 비로소 여자는 얼굴을 온전히 드러낸다. 형광등 백 개를 켜 놓은 듯한 아우라. 그녀는 탐정을 아, 아아아아아아아압도한다. " 담뱃불 좀 빌릴 수 있을까요 ? " 탐정은 황홀한 표정으로 그녀를 바라본다. 불쌍타, 탐정은 지금 개미지옥에 빠졌다 ! 관객은 사전 정보 없이 탐정 앞에 나타난 여자가 팜므파탈이라는 사실을 단박에 알아차린다. 왜냐하면 관객은 차양 넓은 모자, 킬힐, 담배를 피우는 여자'라는 기호가 팜므파탈을 상징하는 " 뻔한 공식 " 이라는 사실을 알기 때문이다. 느와르 장르'는 물신적 기호'를 적극 끌어들여서 관객이 인물을 탐색하는 데 드는 시간과 비용을 효과적으로 줄인다. 자기소개서 시간을 따로 가질 필요가 없으니 화면을 쫀쫀하게 사용할 수 았다. 한국 드라마도 장르 공식에 충실하다. 일일 드라마에서 재벌은 가난을 미화시키기 위해 등장하는 가족드라마형 팜므파탈'이다. 재벌가에서 벌어지는 암중모색은 가난하지만 착한 서민의 행복을 돋보이게 만든다. 그리고는 시청자에게불행한 재벌과 행복한 거지의 삶 가운데 하나를 선택하라고 말한다. 이 말은 500원 가질래, 아니면 10원 가질래 ? 와 똑같은 질문이다. 사람들은 500원 대신 10원을 고른다. 맹추 ! 10원으로는 아주공갈염소똥을 12개밖에 살 수 없어.  티븨 드라마 속 서민은 가난해도 행복하다. 정말 그럴까 ? 가난해도 행복한 사람이 있고, 가난해서 불행한 사람도 있다. 하지만 가난하기 때문에 행복한 사람은 없다. 이거 모야, 또 속아짜나 !

 

 

10.  

 

 

 

 

 


댓글(8) 먼댓글(0) 좋아요(14)
좋아요
공유하기 북마크하기찜하기
 
 
곰곰손 2014-05-28 10:15   좋아요 0 | 댓글달기 | 수정 | 삭제 | URL
이바보야~ 밀애,가 아니라 <밀회>야!! ㅋㅋㅋㅋ

곰곰생각하는발 2014-05-28 10:18   좋아요 0 | URL
그르네? ㅋㅋㅋㅋㅋㅋ 난 여태컷 밀애'줄 알았어...

곰곰손 2014-05-28 10:22   좋아요 0 | 수정 | 삭제 | URL
크하하하하 아미치겠다 ㅋㅋㅋㅋㅋㅋㅋ존나우껴ㅋㅋㅋㅋ
나 요몇일 밤샘하고 눈이 반쯤 감겼었는데 너 글 보고 눈이 번쩍하고 빵터짐 ㅋㅋㅋㅋㅋㅋ
완전 똑똑한 말투로.. ㅋㅋㅋㅋㅋ 계속 밀애,밀애..이래 ㅋㅋㅋㅋ

곰곰생각하는발 2014-05-28 10:27   좋아요 0 | URL
희애가 주인공이다보니 밀애가 자꾼 입말에 붙는다;

마립간 2014-05-28 11:00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위 글에 대한 이야기는 기회 있을 때 하고, 저는 갑자기 이런 생각을 떠올렸습니다.

대중은 한발짝 앞서는 가는 것만 허용한다. ; ;그런데 문제는 두발짝을 앞섰을 때의 행동입니다. 한 발짝 물러나야 할까요? 아니면 한발짝 더 내딛거나, 최소한 그 자리를 지켜야 할까요?

곰곰생각하는발 2014-05-28 15:54   좋아요 0 | URL
글세요. 이렇게 말하는 건 어떻습니까 ? " 천천히 가 !! "

samadhi(眞我) 2014-05-30 06:11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중의적 표현. "그네들" 마음에 드네요. 저는 쓸데없이 길게 그네와 일당들 이라고 했는데 ㅋㅋ 이거 좋네요. 곰발님이 의도하셨는지는 모르겠지만요.
각 문단의 기발한 표현에 킬킬킬킬 웃었습니다. 늘 깜딱 놀라지만 어휘가 무척 풍부하시네요. 글을 쓸 때마다 어휘의 한계에 부딪치는데 질투가 솟아납니다.
서울교육감 선거가 한숨 나오네요. 시장 걱정은 없는데 교육감은 머리까만 미쿡인이 될까 두렵네요. 인지도로 투표하는 사람들이 많다는 얘기에 정말 답답합니다. 1번만 달고 나오면 무조건 찍어주는 동네랑 다를 바가 없을테니까요.

곰곰생각하는발 2014-05-30 09:39   좋아요 0 | URL
진아 님 예리하시군요. 사람들 그네'라는 단어 자체를 잘 몰라요. 중의적으로 쓴 표현 맞습니다.
박근혜에서의 그네'와 그네와 대명사 그네'가 동음이의어'여서 그네들'로 표현했습니다.
여기서 그네들이란 ( 박)그네를 꽃 중의 꽃이라 여기는 그네(당신)들이란 뜻입니다.


요즘은 정치 하고 좋다는 생각이 들어요. 그냥 오락 프로 몇 번 나와서 인지도 높인다음 새누리당 가면 100%임....

 
호모 Punk 異般 - 레즈비언, 게이, 퀴어 영화비평의 이해
바바라 해머 외 지음, 주진숙 외 엮고 옮김 / 큰사람 / 1999년 6월
평점 :
품절


 

 

 


 

 

 

 

그들은 분명히 보고 있어 !

 

 

이 글은 어제 올린 것을 보완해서 다시 쓴 글이다. 흔히 레즈비언, 게이, 트랜스젠더, 장애인을 소수자(minority)라고 지시하는데, 이런 식으로 계통을 분류하는 방식은 시작부터 잘못되었다. 소수'라는 말은 잘못된 표현이다. 인종차별주의는 < 숫자 > 가 아니라 < 권력 > 문제에 속한다.  동성애 사회는 관심과 사랑'을 가지고 이해해야 할 존재'가 아니다. 이 말 속에는 이미 자신이 속한 그룹(이성애 사회)를 우월한 위치에 놓고 동성애 문화를 깔보는 기만이 숨겨져 있다. 대가리 수로 계통과 계열의 우월성을 주장하는 짓은 천박한 우생학'이다. 이 글 제목 < 그들은 분명히 보고 있어 > 는 실라 맥로린의 레즈비언 영화 < 그녀는 분명히 보고 있어 > 에서 따왔다.  

 

 

 

" 너나 잘하세요 ! " 와 " 잘 알지도 못하면서.... " 라는 말은  소크라테스의 " 너 자신을 알라 ! " 라는 격언과 일맥상통하는 구석이 있다.  옛날에는 < 모르는 게 약(藥)이고 아는 게 병(病) > 인 시절도 있었지만, 지금은 < 모르는 게 약(弱)이고 아는 게 강(强) >인 시대가 됐다. 아는 만큼 보인다. 현대사회는 지식사회요, 정보사회'다. 중요한 지식, 정보, 인맥'을 독점하는 자'가 돈과 명예를 얻는다. 이 자리를 빌려 고백하자면 : 그동안 나는 책에 대해 많이 아는 흉내를 냈으나 사실 쥐뿔도 아는 게 없다. 책이 관심 분야이기는 하나 전공 분야는 아니다. 아는 척했을 뿐이다. 이제는 말할 수 있다. 내가 자신있게 말할 수 있는 분야는 포르노'다. 느낌, 아니까 ! 교양인이 소쉬르를 통해 언어학을 배웠다면, 나는 포르노를 통해 언어와 정치와 자세'를 배웠다. 말씀 이전에, 아......  " 태초에 신음소리가 있었어. "

 

어두운 밤, 오르막길에 다다른 여성이 내지르는 교성은 나라마다 달랐다. 서양과 동양은 각각 < ㅗ > 와 < ㅓ > 에 가까웠고, 대한민국은 < ㅏ > 로 통일되었다. 아, 아아. 나는 신음소리만 듣고도 국적을 간파하는 " 감각의 더듬이 " 가 자라기 시작했다. 우우, 이상한 일이다. 다음은 미국 포르노와 일본 AV 를 다룬 글이다. 부분 발췌해서 올린다. 

 

 

 

 

가능성 : AV적 리얼리즘

 

미국은 포르노를 서부극처럼 찍는다. 미국 포르노는 배우들의 압도적인 육체를 풍경처럼 전시한다. 미국 포르노의 단 한 가지 특징을 꼽으라면 놀라울 정도로 과시적인 크기에의 집착일 것이다. 달리 말해, 미국 포르노는 와이드 사이즈 화면비가 어울리는 유일한 포르노의 전통을 이어받았다. 프리츠 랑은 2.35:1 시네마스코프 사이즈는 뱀과 장례식을 찍을 때 유용하다고 말했지만 미국 포르노라면 한 가지 덧붙일 것이다. 미국 포르노는 위압적인 남성의 성기와 여성의 가슴과 둔부의 크기를 과시하듯 전시한다. 허문영 평론가는 미국의 서부극(과 소수의 SF)의 위대한 성취 중 하나로 서사로 정돈되지 않는 리비도를 풍경이 끌어안으며, 서사적 기획과 긴장하는 시각적 기획의 전통에 있다.”고 말한 바 있다.

 

서부극에서 리비도를 뿜어내며 서사를 끌어안고 있는 대전제로서의 풍경은 미국 포르노에서 배우들의 거대한 육체로 치환된다. 미국 포르노가 서사적 기획에 큰 관심을 두지 않는 것 또한 이러한 맥락에서 유추해볼 수 있다. 미국 포르노는 서사적 상황 구축을 헐겁게 만드는 대신 차라리 표면의 코스프레에 관심을 둔다. 어떻게든 상황을 만들어야 하는 플롯을 귀찮다고 여기며 등장인물들의 표면적 지표로 상황 설명이 해결된다고 믿는다. 이를테면 학교 안에서의 섹스를 다룰 때, 일본은 어떻게든 섹스가 벌어지는 상황 설정을 지루할 정도로 길게 설명하지만 서구의 포르노는 인물들이 교복을 입고 나오는 것만으로 충분하다고 생각한다. 풍경화 된 인물들의 거대한 육체를 보여주는 것이 에로스의 측면에서 서사적 기획보다 강력하게 작용하고 있다는 것이다.

 

이를 통한 시각적 효과가 서사적 기획을 앞서 나간다는 것이 미국영화의 형식적 전통이라고 말할 수 있다. 그런데 서구의 포르노 중에서는 정반대의 전통도 존재한다. 이는 포르노를 예술영화처럼 찍는 것이다. 이 전통은 예술영화가 포르노에 영향을 준 것인지, 포르노가 예술영화에 영향을 준 것인지 모호하기 때문에 정확한 진단을 내리기 힘들다. 이러한 종류의 포르노들은 대개 눈부시게 아름다운(‘예쁜이나 귀여운이 아닌) 배우들과 광고에 가까운 영상과 음악, 그리고 멋진 대자연의 풍경을 배경으로 삼는다는(미국 포르노에서는 배우들의 육체가 풍경의 대체재 역할을 수행하므로 풍경을 배경으로 보여주는 것은 이중구속이라고 말할 수 있다) 특징을 지니고 있다. 이러한 종류의 포르노들은 이상할 정도로 에로스를 숨기려 들고 그 자체(주로 배우들의 몸)를 미학화하려 한다.

 

이 때의 포르노는 충만한 자연의 풍경들을 서사적 기획 안으로 끌고 들어오지 않고 배경으로 남겨둘 뿐이다. 그로 인해 이 종류의 포르노는 눈부시게 아름다운 이미지(자연 풍경과 배우들의 몸)에도 불구하고 숏의 길이가 가장 짧고 그만큼 숏의 사이즈가 가장 많으며 러닝타임도 매우 짧다. 말하자면 압도적인 물성의 이미지 앞에서 핵심(섹스)을 회피하려 들거나 이를 숨기기 위해 여러 곁가지들을 끌고 들어온다는 인상이 강하다. 더 솔직히 말하자면 이 스타일의 포르노를 보고 섹슈얼하다는 느낌을 받지 못한다. 반면 일본의 포르노(일본 AV가 아니다. AV에 대해선 뒤에서 더 질문하겠다.)는 이상할 정도로 구멍에 집착한다. 일본 포르노를 보면서 가장 의아해지는 대목은 여성의 항문이나 외음부 등을 익스트림 클로즈업으로 잡아내는 장면들이 나올 때이다.

 

앞서 언급한 대로 일본 포르노는 상황의 은밀함을 강조하기 위해 섹스가 벌이지는 앞뒤 상황의 서사적 기획을 중시하고 그 기획의 전통을 발전시켜 온 바 있다. 일본 포르노는 점점 더 상황과 공간을 축소시키고 제약을 넓힘으로써 역설적으로 은밀함을 서사 안에 녹여내는 전략을 사용한다. 이를테면 굳이 남편이 자고 있는 옆에서 섹스를 하고 굳이 사람들이 많이 있는 공공장소에서 옷을 벗는 식으로. 그런데 구멍을 익스트림 클로즈업으로 잡는 장면들은 전혀 은밀한 느낌을 불러내지 않는다. 이는 이상한 도착증의 기운이 감돌뿐이다. 일본은 축소 지향적 태도를 기반으로 포르노의 서사적 기획을 발전시켜 왔다. 그 서사적 기획의 결과물로서의 섹스가 진행될 때, 이와 같은 구멍에의 집착이 느닷없이 등장할 때 그 축소 지향적 기획의 그로테스크한 이면이 난입하는 것은 아닐까.

 

[출처] 가능성: AV적 리얼리즘|작성자 *******

 

 

 

글쓴이는 " 미국 포르노는 길이(페니스)에 집착하고 일본 AV는 깊이(구멍)에 집착 " 한다고 지적한다. 책만 읽는 알라딘 선비들이야 잘 모르겠지만,  세운상가 뒷골목에서 논 사람이라면 이 지적이 타당하다는 사실에 공감할 것이다.  미국산 클래식 포르노는 남근 길이에 촛점을 맞추는 경향이 있었다. 글쓴이가 미국 포르노를 서부극에 비유한 이유는 < 남근 = 권총 > 으로 작동하기 때문이다. 남근이 우람할수록 그는 성능 좋은 권총을 가진 총잡이'이자 불을 끄는 소방수 역할'을 맡는다. 총잡이'이자 소방수인 배우는 불타는 건물 대신 (성적 불만으로 가득한) 뜨거운 여성 육체'를 진압한다. 앞으로, 앞으로, 앞으로 ! 소방 호스'에서 쏟아내는 끈끈한 액체를 뒤집어쓰고 나서야 뜨거웠던 여성 육체는 차갑게 식는다. 남자는 여자를 뒤로 하고 떠난다.

 

반면 일본 AV는 남근을 최대한 프레임 밖으로 내쫒고 그 자리를 여성 성기'가 차지한다. 일본 AV는 애초에 남성 성기에 대해 관심이 없다. 미국 총잡이가 권총을 전시한다면 일본 사무라이는 칼을 휘두르지 않는다. 미국 포르노는 남자와 여자가 거의 동시에 빤스를 벗지만 일본 AV는 여자가 빤스를 벗고 나서 (한참 지나서야) 남자가 빤스를 내린다. 그것은 억지로 끌려나온다. 그렇다면 미국 포르노는 남근 중심 영화이고, 일본 AV는 여성 성기 중심 영화'라고 말할 수 있나 ? 포르노를 소비하는 주체는 모두 남성이지만 접근법이 다른 이유는 뭘까 ? 미국 포르노가 남근 중심인 이유는 포르노를 보는 관람 주체가 남성이기에 가능하다. 미국 남성 관객은 거대한 남근을 가진 포르노 배우를 자신과 동일화해서 1인칭 시점으로 포맷한다.

 

반면 일본 남성 관객은 제 3자가 개입될 때 흥분한다. 그래서 일본 AV 속 상황은 " 굳이 남편이 자고 있는 옆에서 섹스를 하고 굳이 사람들이 많이 있는 공공장소에서 옷을 벗는 식으로 " 전개된다. 이 상황극은 < 누군가가 반드시 보고 있다 > 는 환상을 제공한다. 은밀한 공간에 타자'가 개입하는 순간 판타지는 작동한다. 여기서 제3자(타자)가 장면을 훔쳐보든, 잠을 자든, 마네킹이 되든, 그것은 전혀 중요한 것이 아니다. 바바리맨'은 누군가가 보고 있다고 느낄 때 절정을 느끼는 부류다. 그는 바바리'만 입고 발바리처럼 거리를 쏘다닌다. 중요한 것은 내 남근이 아니라 내 남근을 목격하는 제3자의 눈'이다. < 호모, 펑크, 이단 > 은 주류 영화는 물론이고 비주류에 속하는 동성애 영화, 포르노 영화 등을 통해 성정치학을 다룬다.

 

무엇보다도 로빈 우드의 논문이 두 편( 게이 영화비평가의 책임, 살기를 띤 게이들 : 히치콕의 동성애혐오즘 ) 아니 수록된 점은 무엇보다도 반갑다. 미국 클래식 포르노는 주로 백인 남성과 백인 여성, 흑인 남성과 백인 여성 혹은 백인 남성과 아시아 여성'으로 이루어진다. 재미있는 사실은 흑인 남성과 백인 여성의 배치'는 용납하지만, 백인 남성과 흑인 여성'이 한 조가 되는 포르노는 적다는 점이다. 그것은 주요 관객인 남성들이 백인 여자와 동양 여자'를 선호한다는 뜻이다. 포르노 속 흑인'은 무대 주인공이기보다는 우람한 페니스'만을 위한 까메오 출연에 불과하다.  포르노에서 흑인 남성이 자주 등장하는 이유는 우람한 페니스에 있다. 흑인 혁명 사상가 프란츠 파농은 < 검은 피부, 하얀 가면 > 이라는 책에서 " 흑인은 가려진 채 페니스로 전환된다. 그가 바로 페니스인 것이다. " 라고 말한다.

 

백인 남성이 등장하는 포르노는 소방 호스에서 끈끈한 액체를 쏟을 때 백인 남성 얼굴을 확대해서 보여주지만 흑인 남성이 등장하는 포르노'에서는 사정하는 흑인 얼굴을 보여주지 않는다. 대신 여성의 몸 위로 분출하는 거대한 소방 호스에서 쏟아내는 아찔한 수압을 보여줄 뿐이다. 검은 소방 호스에서 쏟아지는 수압을 감안하면 불타는 유전도 단번에 끌 수 있는 힘이다. 게이 포르노는 더욱 노골적으로 인종차별주의적'이다. 주로 백인 남성과 백인 남성 혹은 백인 남성과 동양 남성의 결합으로 이루어져 있다. 여기서 눈여겨보아야 할 점'은 백인 남성과 흑인 남성이 짝패를 이루는 동성애 영화는 거의 없다는 점'이다. 검은 소방 호스에 비해 하얀 소방 호스는 마치 꾀죄죄죄죄한 수족관 속 개불처럼 보인다. 백인이 보기에 검은 소방 호스는 자기 것보다 스펙타클'하다.

 

그래서 게이 포르노는 백인 남성과 동양 남성이 짝패인 경우가 많다. 하얀 소방 호스가 뿜어내는 수압에 비해 동양인이 가지고 있는 소방 호스는 달동네 꼭대기 집 수도꼭지에서 새어 나오는 수압에 불과하다. 그래서 남자 역할은 백인이고 여자 역할'은 동양인이 맡는다. 그러니깐 동양 남자'는 깔리고 서양 남자'는 자그마한 동양인 엉덩이를 큰 손으로 잡으며 로데오 경기에 열중한다. 워, 워워워. 깔린 동양 남자'는 백인에게 복종하는 것처럼 보인다.  그들은 어느새 카우보이가 되어 서부 시대를 재현한다. 백인은 마초이고, 동양 남자'는 계집애'다. 이 판타지는 결국 백인 남성이 동양 남자'를 강간하는 것처럼 보인다.  여기서 질문을 던져보자. 거꾸로 동양 남자가 백인 남성'을 강간하는 판타지'는 실현 불가능한 것인가 ? 그런 것 같다. 

 

왜냐하면 지금까지 그런 포르노는 없었기 때문이다. 그렇다면 다시 " 노멀한 " 질문을 다시 던져보자. 할리우드 주류 시스템에서 동양 남성과 백인 여성이 사랑을 나누는 영화는 없는가 ? 그런 것 같다. (몇몇 예외를 제외하고는) 그런 할리우드 주류 영화는 없다. 한류 스타 비‘가 주인공으로 등장하는 영화 < 닌자 어세션 >은 이종교잡에 대한 할리우드 백인 중심 사회의 거부 반응’을 드러낸다. 한류 스타 비'는 평범한 흑인여성’과 맺어진다. 끼리끼리 놀라는 메시지'다. 백인 마초 영웅이 흑인이나 아시아 여성과 정사 장면을 보여주는 영화는 많지만 반대로 흑인이나 아시아 남성이 백인 여성과 섹스하는 할리우드 주류 영화는 거의 없다. 영화 < 킹콩 > 은 백인 주류 사회가 얼마나 색깔에 민감한지를 제대로 보여준 블록버스터'다.

 

" 킹콩 " 은 흑인 노예, 쿤타킨테'다.  흑인 노예인 킹콩이 백인 여성을 욕망하는 순간, 백인 사회'는 킹콩을 불온한 존재로 인식한다. 킹콩이 반기를 들고 남근처럼 우뚝 솟은 엠파이어 빌딩 ( Empire : 제국, 제왕의 영토, 제왕의 주권, 황제의 통치, 절대 지배권'이란 뜻이다 ) 를 짓밟자 킹콩은 가차없이 제거된다. 왕좌'를 노리는 놈은 배,배배배배배신, 배반형이다. 동네 바보 형은 용서할 수 있어도 배반형'은 절대 용서할 수 없다. 백인 남성은 마음대로 흑인 여성이나 동양 여성을 가질 수 있지만, 흑인 남성과 동양 남성은 백인 여성을 욕망하는 순간 불온한 주체가 된다. 이 영화는 괴수영화가 아니라 노골적인 인종차별 영화'다.  영화 < 헐크 > 도 마찬가지'다. 하얀 피부는 용서할 수 있지만 녹색 피부는 용서할 수 없다는 점에서 이 영화도 인종차별 영화'다. 이 정도면 " 잰더 트러블 " 이 아니라 " 컬러 트러블 " 이다.

 

" 포르노적이다 " 라는 표현이 경멸을 내포하고 있다면 할리우드 주류 영화( 모두 다 그렇다는 말은 아니다) 또한 포르노적'이다. 진중권이 지적했듯이 현대인은 문자를 읽는 능력을 탁월하지만 이미지를 읽는 능력은 부족하다. 이미지는 강력한 어퍼컷 한 방'이 아닌 가벼운 잽-전략'을 구사한다. 가랑비에 옷 젖는 줄 모른다는 속담이 있듯, 할리우드 주류 영화는 가벼운 잽처럼 대중을 야금야금 세뇌시킨다. 문자 해독력도 중요하지만 이미지 해독력도 중요하다. 이미지'를 대할 때에는 < 무엇을 보느냐 > 가 아니라 < 어떻게 읽느냐 > 가 중요하다. 아는 만큼 보인다. 대중은 알게 모르게 나쁜 교육에 동참한다. 포르노를 지지할 생각은 없다. 같은 이유로 할리우드 주류 아카데미 영화를 지지할 생각도 없다. 똥 묻은 개 겨 묻은 개 나무라는 꼴이요, 도토리 키재기, 그 나물에 그 밥이다.

 

쿤타킨테 같은 두툼한 입술을 오므라이스처럼 오므리며 나는 말하련다. " 너나 잘하세요, 잘 알지도 못하면서..... " 

 

 

 

 

 


댓글(11) 먼댓글(0) 좋아요(12)
좋아요
공유하기 북마크하기찜하기 thankstoThanksTo
 
 
samadhi(眞我) 2014-05-27 05:15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뽀르노 속 인종차별이라. 이럴 땐 사투리로 "되차" 라고 해줍니다. 지들이 우월한 줄 아는 것들이 뭔들 안그럴까 싶지만요.

곰곰생각하는발 2014-05-27 12:56   좋아요 0 | URL
되차 ?! 대차다, 라는 사투리인가요 ? 진아 님 오랜만입니다..... 이민 가신 줄 알았씁니다.

samadhi(眞我) 2014-05-27 22:59   좋아요 0 | URL
네 사투리죠. 고등학교 때 윤리선생님이 이 말을 즐겨쓰셨죠. 이 말 할 때마다 우린 웃었지요. 가랑잎 구르는 소리만 들어도 웃음나는 여고생들이었으니.
대차다 가 아니고요. 제 생각엔 어원이 대차대조표에서 나온 것 같아요. 딱 맞아 떨어진다. 과연. 이럴 때 쓰는 표현입니다.
이 끔찍한 나라를 뜨고는 싶지만 능력이 안되네요.

곰곰생각하는발 2014-05-28 04:25   좋아요 0 | URL
갈라파고스로 갑시다 ! 거북이 버스 타고 핀치 새를 비행기삼아 물고기나 잡자고요.

마립간 2014-05-27 13:48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이 글의 주제와 연관 있는지 모르겠지만 영화 '초대받지 않은 손님'을 TV에서 방영했는데 어린 저에게 꽤 충격이였죠. 이 영화가 1960년대에 만들어졌다는 것도. (국내 첫 TV 방영 연도가 검색이 안 되고, 2014년 방송으로 나오네요.)

http://movie.naver.com/movie/bi/mi/basic.nhn?code=13890

마립간 2014-05-27 09:11   좋아요 0 | URL
주연 배우를 보니 이 영화도 생각나는군요.
밤의 열기 속으로 In The Heat Of The Night, 1967

곰곰생각하는발 2014-05-27 12:57   좋아요 0 | URL
지금도 보면 이 영화 당시로써는 무진장 파격이고 지금도 파격에 가깝습니다. 아마, 60년대가 미국 영화 황금기여서 그럴 겁니다. 이시기 헐리우드는 모든 금기를 영화로 만들고는 했죠. 80년 레이건이 장악하면서 미국은 급 보수의 길을 걷습니다. 미국영화는 60년대가 황금기였습니다.

만화애니비평 2014-05-28 09:38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총을 좋아하는 애들이 미국애들이죠
거대한 페니스에 정액이 슝슝

곰곰생각하는발 2014-05-28 10:18   좋아요 0 | URL
물총이죠.. ㅋㅋ

손님 2015-02-01 20:43   좋아요 0 | 댓글달기 | 수정 | 삭제 | URL
할리우드 불편한 시선 킹콩 비 이종교잡에 관한 내용은 책에 적혀져있던 것인가요? 그 책 제목 알고있다면 가르쳐줄수 잇는지?

곰곰생각하는발 2015-02-01 20:59   좋아요 0 | URL
그냥 제 생각입니다.